2014년 1월 28일 화요일

네팔 인민민주혁명의 시련과 과제

이병진 교수 기사입력: 2014/01/28 [22:44] 최종편집: ⓒ 자주민보 [이 글은 전국노동자정치협회(http://lmagit.jinbo.net)에서 발간하는 '노동자정치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외부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_ 편집자 주] 인민봉기, 인민전쟁, 인민해방군 1994년 5월, 나는 뉴델리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구름 속을 뚫고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보면서 신비감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지상으로 내려와 네팔의 현실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교통은 마비되었고 곳곳의 도로가 봉쇄되었다. 통행금지에다 가로등마저 꺼져 있어 밤은 도시 전체가 암흑이었다. 네팔은 20세기 말인데도 봉건적인 왕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카스트에 의한 세습적인 신분 차별이 인도보다 심하다. 여성들은 학교 교육은커녕 노예처럼 살고 있었다. 수도인 카트만두는 인도의 지방도시에 와 있는 것처럼 인도산 상품으로 넘쳐 났다. 대중들의 일상은 고단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의 심성은 순박하고 따뜻했다. 낙후된 봉건 사회의 모습과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팽팽한 긴장감과 새로운 변화를 느꼈다. 1996년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이 ‘인민봉기’에서 ‘인민전쟁’으로 전환하여 내전을 일으켰을 때, 네팔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다시 떠오른다. 변변한 무기와 총조차 부족한 인민해방군이 잘 훈련된 네팔 왕국 병사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인민해방군은 군사력은 약했지만 산악지형과 밀림지역을 활용한 게릴라전으로 해방구를 늘려갔다. 인민해방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의 전위이자 혁명 무력이었다. 마침내,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2006년 4월 네팔을 240년 동안 지배해왔던 샤 왕국을 쓰러뜨렸다. 10년 동안의 인민전쟁에서 13,000명이 희생되었다. 이런 혹독한 고난을 이긴 네팔 인민들은 간고(艱苦)한 투쟁으로 위대한 승리를 이루었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우경화와 혁명의 시련 역사적으로 네팔은 외국의 간섭을 많이 받았다. 험준한 산악지대에 사는 네팔인들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1903년 티벳을 공격할 때 네팔을 이용했고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영국 지배자들이 300,000명이나 되는 네팔인들을 용병으로 쓰려고 전쟁터로 끌고 갔다. 그 대가로 영국은 1923년 네팔을 독립국가로 인정해주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물러갔지만 서구 국가들의 간섭은 여전했다. 그런 외세의 간섭을 탈피해보려고 1955년에 즉위한 마헨드라(Mahendra) 왕은 친 중국 노선을 걸었다. 그러자 1959년에 주 네팔 주재 스위스 대사관이 직접 개입한 반란이 계획되었다. 스위스는 당시 총리인 BP 꼬이랄라(koirala)를 도와 용병 출신 네팔인들을 반란에 투입하였고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무기를 공급하였다. 그 반란 계획은 실패하여 BP 코이랄라 총리는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네팔이 서구 열강들과 교류를 끊고 쇄국 정책을 펼치자 그들의 개입과 간섭 공작은 더욱 교활하고 집요했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국제연합(UN)을 내세워 회유와 협박으로 네팔을 압박했다. 국제연합은 1983년에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the International Center for Integrated Mountain Development)'를 만들고 히말라야 산맥 주변의 산림, 광물, 지질 조사와 개발에 착수하였다. 이 기구는 히말라야 산맥과 연계된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중국, 인도, 미얀마, 파키스탄까지 포괄한 대규모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 거대 프로젝트는 이들 지역의 생태환경과 산림환경, 지하자원과 물을 조사연구 하였다. 1990년대 쏘련이 붕괴되자, 네팔에서 국제연합은 연구조사에 머물지 않고 노골적으로 간섭활동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모든 국제연합 기관들과 국제 비정부 단체들이 네팔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은 원조를 통해 네팔인들을 길들이려 했다. 실제로 가난한 나라인 네팔은 국제기구와 비정부 단체들의 원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티벳을 통합하게끔 방치한 일을 커다란 전략 실패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네팔에 대한 간섭에 더욱 집요하다. 1996년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이 인민전쟁을 벌이자, 미국은 즉각 이 당을 테러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소탕하는데 많은 돈을 사용하였다. 최근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뉴델리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있는 CIA(중앙정보국)와 NSA(국가안전보장국) 감청조직이 ‘XKEYSCORE’라 불리는 시스템으로 네팔과 히말라야 지역의 모든 통신, 인터넷 망을 도청하고 있는 게 드러났다. 주1) 이처럼 미국은 경제적인 원조뿐만 아니라 감시와 도청으로 네팔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간섭하고 있다. 네팔은 대부분의 생필품과 소비제품을 인도에서 공급받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구조에 놓여 있다. 미국과 인도는 이와 같은 네팔의 약점을 이용하여 인민혁명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게 방해하였다. 이와 같은 간섭으로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는 2008년에 인민전쟁 노선을 접고 평화적인 의회주의 노선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로 한다. 새로운 네팔민주공화국의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제헌의회 선거가 2008년 실시되었고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이 제1당이 되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네팔의 대중들은 혁명무력으로 네팔 봉건 지배체제를 쓰러뜨린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을 신뢰했고 민주적인 정부가 건설될 것으로 믿었다. 오랜 기간의 내전으로 궁핍하게 지냈던 네팔 인민들은 평화와 번영의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였다. 인도가 국경 통제를 강화하여 생필품의 부족으로 네팔의 물가가 폭등하였다. 미국과 국제기구의 원조 중단 압박은 네팔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혼란을 틈타 군벌과 자본가들은 왕정복고와 공공연하게 반혁명을 이야기하며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결연한 의지로 혁명정권을 공고히 하기 보다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였다. 정권을 잡은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주요 간부들은 개인 재산을 축적하고 개인 이익추구에 바빴다. 혁명의 배신자들은 헌법을 만들고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는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혁명 정권이 들어서면 급진적인 사회개혁이 이루어질 거라고 잔뜩 겁먹고 있었던 기존의 지배세력은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수정주의 노선에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보냈다.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인민해방군을 해산하지 않으면 어떠한 협상도 없다며, 사실상의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해체를 요구하였다. 인민해방군은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이 물리적 힘을 담보하는 혁명무력인데, 그것의 해체는 혁명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러나 권력의 단맛에 취한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 지도부는 더 이상 혁명무력이 필요 없다며 2011년 11월에 일방적으로 인민해방군을 해산한다. 이는 당 내부에 어마어마한 반발과 혼란을 일으켰으며 조직의 민주성과 사상과 이념을 깡그리 짓뭉개는 일이었다. 당 지도부는 14,000명의 인민해방군을 새로 창설하는 네팔군에 모두 통합시키기로 하였다. 상식적으로 10년 이상을 서로 적대하며 지낸 인민해방군과 정부군을 통합하는 것은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인민해방군에서의 활동은 비합법적인 게릴라 투쟁이었기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을 수 없었는데도 그런 특수한 사정에 대한 배려 없는 통합은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인민해방군은 대부분 자격미달로 1,451명만 정부군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은 고작해야 산악순찰대원이 되는 거였다. 정부군이 되어도 인민해방군 출신에게는 무기가 지급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이상을 목숨 바쳐 투쟁하였던 혁명의 전위대원들은 배신감과 환멸을 느끼며 정부군을 떠났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수정주의 배신은 인민해방군의 해체에 그치지 않았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이 10년 이상 내전을 벌이며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농촌 해방구의 근거지가 튼튼했기 때문이다. 농촌 해방구 지역에서는 대지주의 토지를 몰수해서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토지개혁을 하였다. 마을인민위원회도 조직하여 치안을 유지하였고 공평한 사법처리를 하여 인민들의 신뢰가 높았다. 특히 여성과 하층 카스트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실질적인 사회개혁에 이바지하였다. 이와 같은 농촌지역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개혁으로 인민대중이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고 혁명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수정주의 당 지도부는 그런 개혁 조치들을 무효화 하였고 토지를 대지주에게 되돌려 주게끔 하였다. 수정주의 당 지도부는 낙후된 네팔의 농촌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자본주의 근대화를 빠르게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 중심의 혁명사상 이론을 폐기하였다. 수정주의자들은 자본가 계급에 완전히 투항하여 인민해방군을 해산하였고 그들의 정권 기반이었던 농촌 해방구도 스스로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몰락과 혁명의 시련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수정주의 노선이 노골화되고 친자본주의 본색이 드러나자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분열되었다. 당의 수정주의 노선 비판에 대해서 당 지도부는 네팔의 현실을 무시하는 교조주의라고 반박하며 사상투쟁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노선을 지키려는 혁명 계승 세력이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을 탈당하여 2012년 6월에 네팔공산당(마오주의)을 창당하였다. 10년 동안의 장기적인 인민전쟁에서의 승리로 봉건왕국을 쓰러뜨리고 네팔의 제1정당으로 부상하여 인민해방군과 농촌지역을 근거지로 혁명정권을 세운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수정주의 노선으로 당을 배신한 지도부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분열되었고 5년 동안의 집권 기간에 새 헌법 초안조차 만들지 못하며 스스로 몰락하였다. 외국 제국주의자들과 네팔의 자본가 계급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인민혁명의 성과물들을 파괴하여 예전의 지배체제로 되돌렸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분열되었고 인민해방군은 이미 해체되어 반동들의 반격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배신을 경험한 인민들은 그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네팔의 자본가 계급은 제3당인 네팔회의당을 중심으로 친자본가 부르주아 정권 수립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13년 11월 19일에 치러진 제2기 제헌의회 선거에서 제1당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았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제3당으로 쪼그라들었고 신생 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선거일 10일 전부터 ‘선거 보이콧’ 운동을 벌이며 총파업을 이끌었지만 ‘선거 보이콧’은 실패했다.(선거의 과정과 결과는 이병진이 쓴 “네팔혁명,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자주민보, 2013년 12월 24일 참조) 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30% 가량의 당원이 탈당하여 만들어졌으며 많은 원로 인민해방군 전사들이 참여하고 있고 학생조직과 기층 인민운동 조직과 강한 연대를 하고 있지만 이번 선거를 무산시킬 만큼 강하지 못하다. 반면에 이번 선거에는 인도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나라들이 엄청난 개입을 하였다. 인도국민회의당은 공개적으로 네팔회의당을 지지했다. 미국은 네팔공산당(마오주의)의 무장투쟁에 대비해 2013년 11월 27일까지 특수부대를 주둔시켰다. 또한 원활한 선거를 위해 많은 돈도 지원하였다. 미국의 전 대통령인 지미 카터는 95명의 선거감시단을 이끌고 일찌감치 네팔에 상주하였다. 유럽연합은 100명, 영국은 4명, 오스트리아는 5명, 자유아시아네트워크(the Asia Network for Freedom)는 100명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 선거감시단을 파견하였다. 인도는 선거관리위원회 고위 대표단을 보냈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타이에서도 선거 참관단을 보냈다. 이것은 이번에 치러진 제2기 제헌의회 선거가 네팔 인민들의 새로운 국가건설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제헌의원을 뽑는 게 아니라 네팔에 새로 건설될 국가를 놓고 얼마나 많은 다른 나라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네팔 인구의 80%가 농업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네팔은 고산지대가 많아 농업에 제약이 많다. 그러다보니 전체 인구의 3분이 2가량이 해외 원조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 실정이다. 네팔의 주 수입원은 매년 약 600,000명의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들이는 관광수입과 1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중동과 남아시아 국가들에서 돈을 벌어 송금하는 50억불 정도의 금액이다. 그렇다면, 정말 네팔이 가난한 나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먼저 네팔 사람들은 험준한 산 사람들이라 체력과 정신력이 무척 강하다. 어떠한 힘든 역경에서도 그들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으로 이겨내는 사람들이다. 또한 네팔의 자연환경이 갖고 있는 엄청난 잠재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천연 약초와 허브 그리고 고산 식물들의 효능은 인도의 고대 의료서인 ‘아유르베다(ayurveda)'에서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물과 그것을 이용한 수력발전 에너지의 잠재성은 무궁무진하다. 바로 이런 네팔의 잠재성 때문에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네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이번 네팔의 제헌의회 선거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외국의 간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네팔 인민혁명을 부정하려고 하고 소수의 지배계급을 그들의 하수인으로 만들어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네팔인민들을 억압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반동적인 계급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을 때 그 반작용이 인민 대중들을 어떻게 옥죄고 핍박하며 노예살이를 강요하는지 네팔의 현대사가 증언해 주고 있다. 과학적 혁명이론과 사상의 중요성 네팔의 인민민주혁명의 좌절은 과학적 혁명이론과 그 사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 번 가르쳐주고 있다. 통합네팔공산당(마오주의)은 인민해방군을 조직하여 농촌을 해방시키고 봉건지배 체제를 쓰러뜨린다는 목적에는 충실했지만, 그 이후의 정치노선에 대한 자기 현실에 기반을 둔 과학적 이론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계속 반복되는 오류이지만, 혁명을 성공하여 일시적으로 정권을 잡는 것보다 인민혁명 정권을 유지 발전시키는 게 훨씬 어렵고 힘든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과학적 이론에 입각한 올바른 사상인지는 구체적인 현실과 조건에서 판별되겠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기준은 다수의 피억압 계급의 이익과 일치하느냐라는 점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공산당이 정권을 쥐게 되면 인민대중을 배신하고 소수의 당 간부들이 개인의 권력욕에 만족하며 변질되는 일을 많이 본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는 명백하다. 그런 소수의 독점계급이 지배하는 체제의 대안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할 때, 사회주의 정권을 올바르게 이끌어가고 인민대중의 신뢰와 단결을 강화시킬 수 있는 과학적 사상과 이론을 더욱 벼리고 연구해야겠다. <끝> 주1) http://www.globalresearch.ca/obamas-asia-pivot-the-himalayan-angle/5344623. Arun Shrivastava and Silvia Germek "Color Revolution" in Nepal: The world converges to "observe Election", Global Research Nov 16, 2013에서 재인용함. 참고 자료 Gardiner Harris, "Election Result in Nepal signal a Political Right Turn", NYTimes, November 25, 2013. charlie campbell, "Nepal's Maoists Dispute Election Results, Raising Fears of Further Crisis”, Time, November 22. 2013. Doug Enaa Greene, "Two Roads for Communists in Nepal: Capitulation or Revolutionary Struggle?", The Boston Occupier, March 22, 2013. Noman G. Ali "Elections in Nepal and questions for the Left", Viewpoint, December 5, 2013. Aditya Adhikari, "the Discontents After the Revolution", Economy and Political Weekly, Vol-XLⅧ No.4, January 26. 2013. Kiran Pun, "No reviving people's govt, people's courts, army-Baidya", Interview, Republica, January 18. 2013. 이병진, “네팔혁명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자주민보, 2013. 12. 24.(네팔공산당 자료) 네팔마오주의통합당, “프롤레타리아트의 현재 상황과 역사적 과업”, 임경민 번역, <정세와 노동> 2011년 1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Basanta,"Tasks of the seventh National Congress" communist party of Nepal-Maoist, January 7. 2013.<노/정/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