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8일 금요일

박래군 "세월호 관련자 처벌? 유가족 고립 의도"


경찰, 관련자 소환 조사 착수…"진상 규명 의지 꺾이지 않을 것"
서어리 기자2015.05.08 18:23:16


박래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경찰이 세월호 집회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박 위원장은 "시민사회단체를 위축시켜 유가족과 분리한 뒤 유가족들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라며 경찰을 규탄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7일 박 위원장을 소환해 세월호 집회 관련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지난달 16일과 18일, 그리고 지난 1일과 2일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세월호 관련 집회에서 폭력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집회 참가자들과 주최 측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경찰은 박 위원장을 시작으로, 김혜진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 대표와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다른 공동운영위원장들을 차례로 소환 조사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지난 18일 세월호 집회 참가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 ⓒ프레시안(손문상)

박 위원장은 8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경찰 측 질문의 절반이 국민대책회의와 416 연대 조직의 결성 과정, 운영 방법, 구성원 등에 대한 것이었다"며 "집회 당시 불법성에 대한 확인보다는 세월호 관련 조직에 대한 파악에 주안점을 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은 7일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했으며, 이에 따라 경찰은 12일 박 위원장을 다시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박 위원장은 "경찰 측이 이미 위헌 판결이 난 차벽을 설치하고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캡사이신 물대포 난사 등 공권력을 남용한 데 이어 참가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까지 예고한 것은 한마디로 과잉 대응"이라고 했다. 

▲지난 18일 광화문 인근에 설치된 차벽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그는 경찰이 '과잉 대응'하는 이유에 대해 "처벌을 통해 참가자들을 위축시켜 세월호 운동의 동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그는 "특히 국민대책회의와 416 연대를 구성한 시민사회단체를 위축시켜 유가족들로부터 분리시킨 뒤 유가족을 고립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416 연대는 세월호 집회 당시 경찰이 공권력을 남용해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지난 4일, 유엔 특별보고관에 긴급청원을 제출한 바 있다. 유엔 특별보고관 긴급청원제는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당 유엔 특별보고관에게 전달해 국가가 최대한 인권 침해 상황을 서둘러 조사하거나 침해를 막도록 하는 제도다.

경찰청은 "경찰이 최소한의 물리력을 행사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 경찰의 물리력 사용이 과도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며 항변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경찰은 도리어 세월호 집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의 문제를 이쪽으로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근 세월호 집회는 불법성 여부를 떠나, 정부의 잘못된 시행령 제정에 대한 정당한 저항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행령 폐기를 온전하게 이뤄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4월부터 다시금 확인한 것은 여전히 국민들은 세월호 진상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라며 "경찰이 일시적으로 탄압을 가한다고 해서 '416 운동'은 중단되거나 위축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416 운동을 보다 더 대중적으로 넓히고 강화하기 위한 준비들을 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의도한 대로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대 위기에 몰린 홍준표

모래시계 뒤집혔나... '돈 전달자'에 정치생명 걸렸다

15.05.08 21:33l최종 업데이트 15.05.08 21:3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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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종영 소식을 다룬 <경향신문>의 1995년 2월 17일자 기사.
ⓒ 경향신문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국회의원을 할 때도, 도지사를 할 때도 늘 '모래시계 검사'란 말이 따라붙는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래시계>는 지난 1995년 1~2월 SBS가 방영, 평균 50.8%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다.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대엔 서울 시내에 행인도 뚝 끊겨 '귀가시계'라는 별칭도 얻었다. 당시까지 SBS는 수도권에만 송출돼 방송을 보지 못한 이들이 많았고, 전국 송출이 이뤄진 1998년에 재방송되면서 또다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홍 지사의 수식어가 된 건 극중 등장인물 우석(배우 박상원)이 홍 지사를 모델로 각색된 인물이란 점 때문이다. 1995년 1월 1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극 중에서 우석은 비료 도둑 누명을 쓰고 경찰에서 억울한 고초를 겪은 아버지로부터 '너는 나중에 검사가 돼라'는 말을 듣고 검사의 길을 걷게 되는데 홍 검사도 마찬가지 이유로 검사가 된 것이다. 홍 검사가 고3이던 71년 12월 어느 날, 홍 검사의 아버지는 농협 창고에 보관 중이던 비료 3백 포대를 훔쳤다는 모함을 받고 파출소에 끌려갔다. 아버지는 이틀간 밤샘 조사를 받으며 온갖 시달림을 당한 끝에 간신히 누명을 벗고 풀려났다. 

그러나 이때 감수성 예민한 홍 검사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그는 당시 이미 육사(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 합격통지서를 받은 상태였으나 '법조인이 돼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당찬 다짐을 하고 고려대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

이는 연출을 맡은 고 김종학 PD와 작가 송지나씨도 각종 인터뷰에서 인정한 내용이다. 특히 <모래시계>의 후반부엔 슬롯머신사건을 수사한 홍준표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카지노-조직폭력배-정치인의 삼각구도는 홍 지사가 강력부 검사로 겪은 조직폭력배에 대한 경험과 슬롯머신사건 수사에서 나타난 도박업자-정치인의 연계를 하나로 엮어놨다.

극 중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실장으로 등장, 권력을 휘두르다 강우석 검사에 의해 법정에 서게 되는 강동환(배우 김병기)은 실제 안기부장 특보를 지낸 이력이 있는 '6공화국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과 유사점이 많다.

극 중에선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부장검사가 수사자료를 빼돌리기도 하는데, 실제 슬롯머신사건에서는 이건개 당시 대전고등검찰청장이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정덕일 형제에게 수사정보를 흘리며 도피를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준표 검사는 이건개 고검장도 구속했다.

그러나 극 중 박태수(배우 최민수) - 윤혜린(배우 고현정) - 강우석 간의 삼각관계는 홍 지사와는 별 상관이 없다. 광주민주화운동 부분도 마찬가지다.

홍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모래시계 검사'

<모래시계> 드라마 방영 전부터도 홍준표 검사는 '소신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1989년 서울 남부지청 특수부로 배치된 홍 검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인 전기환씨의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혐의를 수사, 전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이학봉 당시 민정당 의원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후 특수부에서 형사부로, 다시 광주지검 강력부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홍 검사는 1991년 국제PJ파의 두목 여운환과 그 조직원들을 일망타진해 김태촌 검거 이후 조직 폭력배 수사의 최대 성과를 올렸다. 또 조직 폭력배들의 건설공사 입찰 개입을 수사, 일신종합건설 등 광주·전남 지역 건설 회사 입찰 담당 임직원 17명을 구속했다.

홍 검사가 서울지검에서 한창 슬롯머신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인 1993년 5월 20일 발행 <시사저널> 기사는 홍준표 검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 조폭 검사, 풍차에 돌진해 들어간 동키호테 검사, 통제 불능의 소신 검사, 이른바 인기 절정의 김영삼 대통령 사인을 두 장 받아야 그의 사인 한 장과 바꿀 수 있는 탤런트 검사….

요즈음 언론이 묘사한, 조직 폭력과 그 비호 세력과의 한판 싸움을 벌이는 한 평검사의 모습이다. 어쩌면 건국 이래 한 검사가 이처럼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같은 인기가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를 구상하는 데에 모티브가 됐고, <모래시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그에게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타이틀이 붙었고 이는 홍 지사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됐다.

이후 홍 지사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오직 정의만 추구하는 가난한 검사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1995년 10월 검사직을 관둔 홍 지사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하면서 '모래시계 홍준표'라는 제목의 만화 선거공보를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 지사는 1999년 3월 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을 확정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그러다가 2001년 10월 서울 동대문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고, DJ 정권의 권력형 비리 사건 '이용호 게이트'가 터져 있는 상황에서 부패 척결에 앞장선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 당선됐다. 이후 4선 의원까지 지내는 동안 홍 지사는 여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되기도 했고, 대표직에서 밀려난 뒤에도 경남도지사에 당선되는 등 정치적 부침을 거듭했다. 그 동안에도 모래시계 검사라는 말은 언제나 홍 지사의 이름 앞에 있었다.

하지만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1억 원을 주고 받았다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직전 쪽지와 인터뷰로 인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됐고 8일 소환조사를 받는, 정치인생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돈 전달자와 목격자의 증언으로 박철언 주장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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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의 질문 뿌리치는 홍준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날 홍 지사는 "이런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 유성호

홍 지사는 성 회장의 돈을 받지 않았다고, 앙심을 품고 죽은 사람이 남긴 말을 믿을 수 있느냐고 항변해왔다. 하지만 결정적 증인, 성 회장의 돈을 전달했다는 윤아무개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진술이 마치 거대한 산맥처럼 홍 지사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 부분은 홍 지사를 모래시계 검사로 만든 1993년 슬롯머신사건 때와 매우 흡사하다. 박철언 당시 의원을 구속시켜 처벌받게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증언도 바로 '돈 전달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5월 3일 오후에 자진 출석하겠다던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씨를 같은 날 새벽 기습 체포한 홍준표 검사는 조세포탈혐의로 정씨를 구속했다. 구속 7일 만에 정씨의 입에서 '박철언에 5억 원을 주고 1990년 특별 세무사찰을 막았다'는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물증이 없었다.

돈 전달자는 정씨의 동생인 정덕일씨였다. 또, 그 사이에는 박 전 의원과 가까운 독신 여성 홍성애씨가 있었다. 검찰에 불려간 홍씨는 박 전 의원과의 관계를 부인했지만, 결국 '정덕일이 돈이 든 가방을 박철언에 주는 걸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홍 검사는 위헌결정을 받아 지금은 없어진 제도인 '공판 전 증인신문' 제도를 활용해 홍씨의 진술을 증거로 남겨놨다.

이제 문제는 행방이 오리무중인 정덕일씨였다. 이건개 고검장의 2~3개월 숨어있으란 말에 서울과 경기지역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전전했던 정덕일씨는 구속된 형 정덕진씨의 설득으로 자수, 체포됐다. 홍 검사는 결국 돈을 준 사람과 전달한 사람, 또 전달 과정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 모두를 확보했다. 박철언 의원이 끝까지 '정덕일을 알고 지냈지만 돈을 받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홍 검사의 손을 들어줬다.

역사는 반복된다... 모래시계 뒤집혔나? 

모래시계는 위쪽 모래가 다 떨어지면 멈추지만 다시 뒤집으면 똑같은 형태로 작동한다.  드라마 연출자와 제작자는 '과거의 일들이 형태만 조금씩 바꿔 반복된다'는 뜻으로 드라마에 이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모래시계가 뒤집힌 것인가? 수사와 향후 있을 지도 모를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돈 전달자의 증언 덕에 세상에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떨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이번엔 자신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이의 진술 때문에 검사 출신이란 자부심도, 정치적인 자산도 모조리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영혼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하라!

영혼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하라!
이성원 자주시보후원회장 
기사입력: 2015/05/08 [15: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981년 백기완 작사, 김종률 작곡 "님을 위한 행진곡" 원본 악보.     ©5.18기념재단 제공

영혼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하라!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 도청과 광주 도심 곳곳에서는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애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시각 도청 사수가 불가항력인줄 알면서도 많은 시민군이 도청에 남아 있었다. 결국, 1시간 남짓한 최후 항쟁에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을 비롯한 많은 시민군이 시신으로 남겨졌다.

그로부터 1년 후 황석영과 김종률은 5.18 광주항쟁을 추모하기 위해, 영혼으로 남겨진 시민군을 기리기 위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8년 추운 겨울 노동운동과 야학운동을 하다 운명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창작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으로 준비한다.
황석영은 백기완이 1980년 서대문 구치소에서 지은 시 “묏비나리”를 개작하여 노랫말을 만들고 김종률은 곡을 붙이면서 1981년 말 “님을 위한 행진곡”이 완성된다. 그리고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넋풀이-빛의 결혼식”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다 함께 부르는 노래로 초연된다.

1982년 이후 518 광주항쟁을 기억하며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으며 5월 항쟁은 1996년 국가가 기념하는 기념일로 지정되면서 “5.18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5.18 진압 관련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반란 수괴”, “내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 및 상관 살해 미수”의 죄명으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으로 학살자를 처벌한다.
1997년 5월부터 “5.18 민주화 운동” 공식 기념행사를 정부 주관으로 하게 되면서 2008년까지 “님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 식순에 포함되어 제창하게 된다.
2009년 공식 기념식에서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은 TV 생방송 전 식전행사로 부르거나 합창단의 합창 시 또는 무용 공연 배경음악으로 변형시켜 참석자들이 따라 부르는 상황이다.
2013년 “5.18 민주화 운동 33주년 기념식”에서는 합창단의 합창에 박근혜 대통령도 태극기를 들고 일어나서 사실상 참석자들과 함께 제창하는 듯한 광경도 있었다.
2013년 6월 27일 국회에서 여야의 합의로 “님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국회의장이 보훈처장에게 공식 문건으로 지정곡을 요청하였으나 현재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중항쟁의 상징이며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중항쟁의 역사이다.
정부와 보훈처는 국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처사를 당장 그만두고 5.18 민주화 운동을 대변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공식지정하고 기념식에 공식 식순으로 넣어 제창하도록 하여야 한다.

▲ 5월 6일 "제35주년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의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이성원 자주시보후원회장

제35주년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5월 6일 대통령 면담이 취소되고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문 전문을 싣는다.


                      청와대 대통령 면담 무산에 따른 우리의 입장

박근혜 정부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국회의 결의를 존중하여야 한다. 금년 제3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에서는 과거의 국가기념식처럼 '님을 위한 행진곡'이 당연히 공식적인 기념 식순에 포함되고 제창할 것을 여러 차례 요청해 왔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종 입장을 듣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중항쟁의 역사이고 상징이다. 박근혜 정부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마저 거부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5·18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처사라고 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 면담이 무산됨으로써 5·18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공식적인 식순에 포함되지 않고 제창되지 못할 것이 명확해졌다. 이에 제35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공동행동을 취할 것을 결의한다.

                                                    - 다       음 -

1. 5월 3단체와 5·18기념재단, 광주전남시민사회단체의 대표단뿐만 아니라 회원들까지 기념식장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지 않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여 불참을 호소할 것이다.
2. 국가보훈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보훈처 예산을 전액 수용 불가한다.
3. 5월 3단체와 5·18기념재단, 광주전남시민사회단체는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항의방법과 세부사항은 시일 내에 공동행사위원장단과 집행위원회의 연석회의에서 결정한ek.

                                                     2015년 5월 6일
                                        제35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

광복70돌 준비위, '6.15공동행사 서울개최 사실상 합의'


8.15행사는 6.15성과위에 여러 행사 진행하면서 검토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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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5.08  16: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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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70돌 준비위원회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15공동선언발표 15돌 공동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북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진왼쪽부터 김금옥, 이창복, 이윤배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광복 70돌, 6.15공동선언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이하 광복70돌 준비위원회)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음 달 중순 6.15공동선언발표 15돌 공동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북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광복70돌 준비위원회 상임대표인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이날 “사실은 6.15행사를 평양에서 열 수도 있다고 봤지만 이미 그전에 협의한대로 서울에서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미 합의한 내용은 새로 추가하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지난 4월 1일 광복70돌 준비위원회 결성식 당시 합의 사항으로 발표된 ‘서울행사’는 굳이 공동보도문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금옥 대표는 “6.15행사의 평양 진행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북측으로부터 물리적으로 진행이 쉽지 않다는 답을 들었다”며, “사실상 서울에서 하기로 합의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승환 대변인도 행사 장소와 관련해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를 거론하며, “회담 분위기와 관련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다만 광복70주년을 맞아 진행하게 되는 올해 8.15행사에 대해서는 “그에 앞서 6.15행사가 잘되겠느냐는 북측의 의구심이 워낙 컸고, 6.15행사가 되어야 8.15행사도 진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만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행사의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서 8.15행사 장소는 애초에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선양 회담에서도 장소와 관련해서는 “서로 탐색하는 정도였으며 양측에서 논란이 됐던 사항은 아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이창복 상임대표는 “공동행사는 다 연동돼 있다. 6.15가 먼저 잘 진행되면 8.15도 잘 되는 것”이라며, “이 두 달 동안 통일운동 기간을 설정해서 6.15에 포함시키지 못한 프로그램을 이 기간에 배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리를 함께한 이윤배 상임대표(흥사단 이사장)도 “서울과 평양을 주고받는 산술적인 논리에 따르기 보다는 올해 70주년을 맞는 8.15의 의미를 살려서 다양하게 논의했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이후 협의하자고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당초 광복70돌 준비위는 '6.15민족공동행사 서울 개최안'을 가지고 협의에 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8.15민족공동행사 장소와 연동돼면서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는 8.15민족공동행사를 남측지역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강력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복 대표는 이번 중국 선양회의에서 “5년 만에 서로 만나는 남과 북 사이에 신뢰 형성이 미흡한 상태에서 많은 것을 의논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6.15 및 8.15공동행사 성사를 위한 사전접촉 성격의 이번 대표자회의는 당초 5~6일 양일간 열릴 예정이었으나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해 7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창복 대표는 “2박3일 접촉을 통해 올해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자는 큰 틀에서의 합의를 봤다”며 “6.15, 8.15행사 뿐만 아니라 부문별, 계층별 접촉을 통해 다양한 교류가 시도할 수 있도록 논의를 확대했다”고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 대변인은 구체적으로 북측은 이번 회의에서 오는 7월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가지고 있으며, 백두산에서 무등산으로 성화를 봉송하는 문제와 북측응원단을 파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답변했다고 전했다.
또 대학생 문화행사를 교차해서 진행하는 것에 합의, 유적 답사행사에서 우선 남측 대학생들이 북측 백두산을 답사하는 사업이 구체적으로 진전되고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발표된 공동보도문의 내용에 행사 장소를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광복70돌 준비위 측은 “6.15 세부 행사안과 관련한 양측의 창조적인 의견 교환은 있었으나 사전 합의한 장소와 날짜를 비롯한 원칙들만 결정했다”며 부족한 점을 인정했다.
다만, “정기적으로 실무회담을 하도록 양해가 이루어진 만큼 비교적 빈번하게 만나면서 세부 협의를 할 것이고 이때 해결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창복 대표는 “필요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5월 중하순까지 가능하면 북과 접촉하려고 하고 있다. 이번 선양회담에서는 정세문제에 집중하다보니 실무적인 문제가 태산같이 쌓여있다”며, “가능하면 개성에서 하고 싶은데 정부 협조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新야권 건설, 천정배-이종걸 투톱이면 가능


[정치 해설] 불붙은 새정연 주류의 원심력 vs 천정배의 원심력
임두만 | 2015-05-08 10:14:16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새정치민주연합 새 원내대표로 이종걸 의원이 당선되었다. 이 의원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친 손자다. 우당은 일제 강점기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군 양성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으며, 무장단체인 ‘흑색공포단’을 이끌면서 일본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시다가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서 옥사하셨다.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은 이희영 선생의 친 동생이므로 이종걸 의원의 종조부(작은 할아버지)이고,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이종걸 의원의 사촌형이다. 가문으로만 치면 대한민국 성골 중의 성골인 셈이다. 때문에 이종걸 의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박정희 정권에 항거한 학생 운동권이었으나, 또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 된 이종걸 의원의 손을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전임 원내대표가 들어주 고 있다. ⓒ 신문고뉴스 

1. 이종걸은 누구인가?
이종걸의 학력사항만 보면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율사출신 정도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민변 창립멤버로서 인권변호사를 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영입된 법조출신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이런 외면적 사실 외에 그가 피아노 전공의 학생으로 예원(중)학교를 졸업했다는 내용을 아는 이는 드물다. 또 중학교 3년을 예원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던 예능 특기생이 당시에 최고명문이라는 경기고에 합격한 점도 아는 이가 드물다.
이후의 학업과정도 남다르다. 이 의원은 경기고 재학 중에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리는 등 학업을 등한시하다 1977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 마포 지역 노동자 야학운동에 투신, 야학 은강학교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치다 강제징집을 당해 입대하는 등 대학생활도 온전치 않았다. 사실상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그가 친일파 만주군 출신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강압통치를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육군에서 3년 복무 후 만기전역을 한 이 의원은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1983년 서울대에 응시한다. 그리고 인문계로 합격한 뒤 1987년 국사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다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학사편입, 공법학과에 재학하던 1988년 10월 비로소 제3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다. 졸업 후 연수원을 마치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는데 그가 가는 길은 당연히 민변 소속 인권변호사였다.
1991년 변호사를 개업한 이종걸은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박원순 변호사와 사무실을 공동운영하면서 '참여연대' 설립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는  또 박노해, 백태웅 등의 사노맹사건,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 많은 시국관련 사건과 인권관련 사건을 맡아 승소하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이런 이종걸의 행보가 김대중 대통령의 안테나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 소수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를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 재창당하면서 재야 인재들을 영입했는데 이때 이종걸 변호사도 영입되어 16대 총선에 안양 만안에 공천했다.
무난하게 당선된 이 의원은 이후 이 지역에서 내리 4선을 한다. 그러나 특정계보에 소속되지 않아서 앞서 세 번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낙선했다가 이번에 4수로 당선되었다. 이런 이종걸이 원내대표가 되자 당장 당 밖에서 ‘야권신당’의 핵으로 지목되고 있는 천정배 의원과의 관계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종걸 대표와 천정배 의원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천정배 의원이 지난 4.29 보궐선거 유세도중 지역구의 한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임두만

2. 이종걸과 천정배의 인연은?
천정배 의원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2014년 광주로 내려가서 ‘호남정치의 복원’을 주장하며 정치연구소 ‘호남의 희망’을 개설했다. 이 정치연구소는 천 의원이 열린우리당 창당 핵심으로 활동하다 참여정부 법무부 장관이 되던 2003년 자신의 ‘베이스 캠프' 형태로 설립한 ’동북아전략연구원'의 부설로 개설된 것이다.
앞서 2003년 5월 천정배의 싱크탱크로 설립된 사단법인 동북아전략연구원은 이사장 외에 따로 원장을 두고 원장 밑에 4명의 이사와 함께 연구위원회와 기획위원회 등에서 10여명의 상근 비상근 연구원이 연구활동과 정책 개발 활동을 하도록 했다.
설립 당시 이사장은 최병모 변호사, 이사는 장하성(고대 교수), 이성재(김대중 정부 청와대 수석) 등이었다. 또 이들 외에 천 의원 핵심 측근들도 동북아전략연구원을 베이스 켐프로 하여 천정배 정치의 큰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나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더구나 안산 4선 후 서울시장 도전 실패와 서울 송파 을의 도전 실패는 천정배를 ‘개혁의 아이콘’ 이미지까지 잃어가는 과정으로 몰아넣었다. 엄격히는 동북아전략연구원이란 싱크탱크가 천정배의 큰 정치인 만들기는 실패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천정배의 광주행이 결정되었다. 광주에 ‘호남의 희망’이란 새로운 싱크탱크를 개소하고 ‘호남정치 복원’이란 이슈로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호남의 희망이란 정치연구소 뿌리가 사단법인 동북아전략연구원이며 원장이 이종걸 의원이다.
실상 이종걸 의원은 그동안 정동영 전 장관과 더 가까운 것으로 언론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면은 천정배의 싱크탱크로 개설된 동북아전략연구원이 이사장 천정배 원장 이종걸의 투톱체제인 것이다. 이들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정배 의원은 장관을 그만 두고 당으로 돌아와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되었으며 이종걸 의원을 원내 수석부대표로 지명 자신과 원내전략의 호흡을 맞추게 했다. 아마 이런 인연으로 천정배 싱크탱크의 원장을 이종걸 의원이 맡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리고 이 싱크탱크는 결국 호남에서 꽃을 피운다.
2014년 11월 사단법인 동북아전략연구원 부설 연구소 ‘호남의 희망’은 이사장 천정배, 원장 이종걸을 투톱으로 광주로 이전, 정식으로 개설된다. 이후 4.29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4회의 공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활발한 정책개발을 하는 등 싱크탱크로서 제대로 된 활동을 했다. 토론회를 통한 정책개발의 키워드도 호남의 미래였다.
1회는 ‘호남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전망과 과제’ 2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호남차별과 대책’ 3회는 ‘호남의 사회적 문화적 소외와 극복방향’ 4회는 ‘호남 낙후극복과 격차해소를 위한 정치전망과 정책과제’란 주제에서 보듯 이름 그대로 호남의 희망찾기 정책개발이 목표였다.
이에 대해 천정배 의원은 “호남이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호남의 정책적․ 정치적 비전을 세우고자 이번 토론회를 준비했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소외와 배제의 호남에서 기회와 약속의 호남으로, 희망과 미래의 호남으로, 민주와 통일의 중심으로, 호남을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종걸은 이런 토론회를 주최하고 이끈 ‘호남의 희망’ 모체인 사단법인 동북아전력연구원 원장으로 후방 지원했다.
이윽고 천정배는 호남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말하면서 지난 4.29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 때문에 야권정치 변혁의 태풍의 눈이 되어 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새정치연합 내의 가장 확실한 비노이자 천정배 우군인 이종걸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3. 이종걸 당선, 어떤 의미가 있나?
원내 130명의 새정치연합 계파 구도는 친노 70명 비노 60명 정도로 본다. 이날 친노계는 이해찬 전 총리, 구속 수감 중인 김재윤 의원 말고는 68명 전원이 투표에 참석했다, 때문에 2차 투표에 오른 정세균계 친노인 최재성 의원이 어렵지 않게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투표결과는 예측과 반대인 이종걸 66표, 최재성 61표였다.
결국 친노계에서 최재성 반란표가 나온 것이다. 이에 경선이 끝나자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최재성 의원은 망연자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이런 선거 결과에 대해 새정연 의원들이 문재인 체제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견제 심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당 대표와 원내 대표의 ‘투톱’이 모두 친노 인사로 구성될 경우 당 밖의 천정배 원심력에 의해 당의 분열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비노계의 수장으로 꼽히는 김한길 박지원 안철수 의원 등이 이종걸을 강하게 지지한 것은 친노계가 당선될 경우 천정배 신당이 물위로 오르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즉 당의 원심력이 천정배의 원심력을 제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선거가 끝난 뒤 “이런 게 야당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이를 간접 인정했다.
따라서 새정연은 당분간 분당 수준의 흔들림은 없을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천정배 의원도 당에서 사람을 빼오거나 하면서 당과 척을 질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천 의원은 새로운 세력을 말하면서 ‘뉴DJ’의 발굴을 통한 신진인사 위주의 진용을 말했다. 신진인사를 발굴, 기존 새정연 기득권 국회의원들과 한판 승부를 통해 정치세력 물갈이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호흡하는 생물, 움직이는 생물은 앞으로 어떤 획을 그리며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 같은 꿈을 꾸는 천정배와 이종걸이 만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둘의 만남이 시너지를 일으켜 新야권 건설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꿈이 현실화 될 때 거대여당 새누리당 세력과 한판승부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연의 이종걸 선택은 그래서 매우 주목되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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