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2일 목요일

국민주도 민주정부를 세우자 - ③ 시민혁명 이어갈 촛불경선

곽동기  | 등록:2017-01-13 09:17:49 | 최종:2017-01-13 09:32:03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국민주권시대에서 향후 정국은 국민이 주도하는 민주정부를 세워낼 때 비로소 안정화될 수 있다. 촛불의 민심을 존중하고 외세나 권력실세가 아니라 민의를 섬기는 정권이 출범해야 대한민국이 정상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탄핵 이후를 준비하자
박근혜 퇴진 촛불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더욱 다그치고 있다. 항간에는 1월말이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 정리되며 2월초에는 선고가 가능하다는 희망적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헌재가 박근혜 탄핵을 인용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가 불가피하다. 헌재가 만일 박근혜 탄핵안을 기각한다면 촛불은 분노의 횃불이 되어 청와대와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기득권을 청산하는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결국 헌재의 탄핵인용 여부와 관계없이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권과 결탁하여 온갖 권력을 누리던 기득권 세력들도 청와대의 눈치를 무시하고 이른바 제3지대나 개헌 등을 운운하며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국면전환을 노리며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도 박근혜 정권이 사실상 끝장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반발과 보수진영의 우왕좌왕 등 다소간 유동성을 감안하더라도 늦어도 5월 이전이면 대선이 치러지는 일정이다. 촛불집회에서도 박근혜의 즉각 퇴진, 강력처벌과 더불어 탄핵 이후를 준비하자는 주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탄핵 선고가 다가올수록 촛불민심과 기득권 세력의 대결은 더욱 첨예한 양상을 띨 것이다.
목표는 국민주도 민주정부
국민주권시대에 수립될 차기 정권은 <국민주도 민주정부>가 되어야 한다. 국민주도 민주정부란 촛불민심이 주도하고 촛불민심을 따르는 정부다. 촛불민심이 이끄는 여러 민주세력이 하나로 힘을 합쳐 정권을 창출해야 기득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민주도 민주정부는 지난날 재야운동진영 일각에서 논의되었던 민주연립정부와는 개념상 다소간 차이가 있다. 지난날 민주연립정부는 재야세력과 야권이 연립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경우 국민의 민의가 곧바로 반영되기보다는 재야와 야권의 대표자들의 결심에 의한 연대 성격이 강했다.
지난날의 민주연립정부 주장은 군부독재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싸움에서는 일정한 의의가 있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1000만 촛불이 타오르는 지금 상황에서 종래의 민주연립정부는 새롭게 접근될 필요가 있다. 정치권과 재야의 몇몇 대표자들이 주도하는 연립정부는 야권이라 하여도 촛불민심을 온전하게 담아내기 어렵다. 이제는 촛불민심이 정권수립을 주도해야 한다. 
왜 촛불이 정국을 주도해야 하는가. 지금의 조기대선은 강력한 1000만 촛불로 박근혜 정권 탄핵을 강제하고 있기에 현실화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1000만 촛불이 없었다면 조기대선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지금 대권에 뛰어든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에도 처음부터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후보는 얼마되지 않는다. 애당초 박근혜 탄핵국면은 야권정치세력이 중심이 아니었다. 촛불민심이 야권을 끌고 온 것이고, 야권은 국면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촛불민심에 끌려왔던 것이다.
박근혜 탄핵과 조기대선국면을 열어낸 것은 야권정치권이 아니라 1,000만 촛불이었다. 그러니 향후 차기정권 수립도 야권이 아니라 1,000만 촛불이 주도해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요 민심이다.
방법은 촛불주도 국민경선
촛불이 주도하는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방법은 촛불이 주도하는 국민경선이 유력하다. 야권연대, 대선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은 정치권이 아니라 촛불이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지금껏 큰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었던 야권단일화는 모두 각 정치진영의 대표자들이 주도한 연합이었다. 야권단일화는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하여 줄기차게 요구하였다. 야권단일화는 진보진영의 독자후보를 사장시킨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주요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당선시키며 수구기득권세력의 전횡에 맞서는 위력한 선거전술로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왔다.
그러나 종래의 야권단일화는 각 진영의 대표자들의 결단에 의해 성사여부가 좌우되어왔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가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30분 면담 끝에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후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와의 경선에서 밀리자 두문불출하여 대선을 상당히 위태롭게 만들고 말았다.
종래의 단일화는 승자독식 단일화
야권단일화가 수구진영에 의해 지속적으로 공격받았던 것은 단일화 과정이 매우 첨예한 논쟁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일화 과정이 첨예했던 것은 경선에서 승리하면 야권단일후보로 추대되는데 반해 경선에서 패배한다면 후보에서 사퇴하고 유권자로 돌아가야 하는, 속된 말로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승자독식 구조였기 때문이다.
대선주자 입장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야권경선에서 자칫 패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의 정치행보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기에 각 정치세력들은 야권 후보간 경쟁에도 심혈을 쏟아부었다. 야권진영의 경선 경쟁자와 대립과 경쟁이 과열될 경우 수구진영은 이를 비난하며 야권단일화를 “야합”으로 공격해왔다.
그러니 안철수 같이 2012년 경선에서 물러난 경험이 있던 자들은 종래와 같이 승자독식으로 치러지는 경선방식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1000만 촛불이 타올라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열리자 결선투표제라는 김빠지는 대안을 주장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선투표제는 야권의 후보단일화를 강제하는 면도 있지만 야권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진영의 후보단일화를 강제하는 면도 있다. 야권의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해도 40% 수준인 상황에서 야권을 반대하는 확장성있는 인물이 야권의 대항마로 출마한다면 정국은 어떻게 될까. 향후 결선투표를 진행할 경우 보수와 수구진영의 지지를 합친 야권 대항후보가 결선에서 더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야권경선은 단일화 이후 정국에서 기득권의 적폐를 지속적으로 분쇄해나갈 동력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승자독식의 야권경선이 축제의 장, 화합의 장이 아니라 대결의 장, 갈등의 장으로 치러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경선에서 패배한 진영은 야권단일화가 감빠지는 단일화였다고 선언하고는 차기 정권을 박차고 어정쩡한 제3지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선에서 일시적으로 뭉쳤다고 하더라도 대선 이후의 국면에서 야권이 또 다시 흩어져 분산된다면 차기 정권은 추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개혁은 그만큼 속도를 내기 어려워진다.
촛불경선 어벤져스
야당 대선후보들이 참여하여 단 1명의 승자를 선출하고 나머지는 모두 패자가 되는 승자독식 야권단일화가 아니라 촛불 앞에 모든 후보들이 함께 나서 촛불공동정부를 구성하고 차기 정권의 예비내각을 함께 책임지는 방식의 새로운 경선은 어떤가.
1명의 대통령 후보만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경선에 참여하는 모든 후보들이 차기 정권을 약속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경선 2위는 국민들에게 국무총리직을 약속하고 3위 후보부터는 중요 국무위원직을 약속하는 방식의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70년을 이어온 기득권 세력의 전횡에 맞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방법은 촛불의 이름으로 모든 야권 대선후보들이 단결하고 연대하는 촛불경선을 펼치는 방법밖에 없다. 경선을 시작하기 전에 최다득표자부터 순서대로 대통령 후보, 국무총리 후보, 각 정부부처 장관 직을 약속하며 일종의 예비내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야권이 정권교체 이후 야권이 다시 분열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촛불민심이 기득권 세력을 지속적으로 압도할 수 있다. 개혁동력이 줄기차게 이어질 수 있다. 차기 정부는 명실상부하게 촛불 앞에 모든 정치세력이 연합하는 공동정부를 이뤄야 적폐청산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결국 촛불의 이름으로 기득권 세력을 압도하는 정치지형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국민주도 민주정부를 구성하는 유력한 방법 아닐까.
퇴진행동 강화
일각에서는 촛불경선과 같은 새로운 경선방식은 종래의 선거법을 위반하므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공석이 된 비상시국에서 치러지는 비상대선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개헌이니, 결선투표제니 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00만 촛불로 박근혜 정권을 밀어낸 국민들 앞에서 지난날의 단일화를 답습한다면 환영받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도 개헌을 비롯, 각종 법체계 재정비로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한다. 시민진영도 선거법을 수정하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어떻게 신뢰하고 야권경선을 치르겠는가 하는 우려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의 불법행위가 판을 쳤던 경험이 있기에 선거감시 기능을 강화하자는 의견은 매우 타당하다. 
지금까지 촛불민심을 받들어 오며 1,000만 촛불을 기획하고 운영해 온 “박근혜 퇴진을 위한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촛불경선 관리에 참여하는 것은 어떨까? 퇴진행동은 무려 2,00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망라되어 있으며 어떠한 이해관계가 없이 민의를 대변하며 1,000만 촛불을 일구어왔다. 퇴진행동은 지역조직까지 순차적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촛불민심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물론 촛불집회 관련 실무에 집중하고 있는 현 퇴진행동이 곧바로 전국단위의 경선을 관리해주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하지만 퇴진행동이 더욱 강화되고 국민운동본부로까지 나아가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모두가 화합하고 단결이 강화되는 촛불경선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문재인과 이재명, 박원순을 비롯한 현 대선주자들 가운데 1명만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탈락하는 상황이 아니라 이들 가운데 대통령과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등을 책임져 예비내각을 함께 구성하는 발상의 전환을 이루자. 이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손잡고 수구세력과 싸운다면 대한민국의 적폐청산은 훨씬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국민이 주도하는 촛불경선은 1,000만 촛불시민들의 환호와 열기 속에 하나의 성대한 국민잔치의 장으로 치러질 것이다. 이렇게 탄생하는 촛불공동정부는 기득권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며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해 꿈에 그리던 민주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것이다. <끝>
우리사회연구소 / 곽동기 상임연구원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097&table=byple_news 

삼성 이재용, 22시간 조사받고 귀가…구속영장 청구될 듯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발행 2017-01-13 08:37:21
수정 2017-01-13 11: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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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며 대기하던 기자들을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며 대기하던 기자들을 보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비선실세’ 최순실(61)씨 등이 연관된 뇌물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22시간 마라톤 조사를 받고 13일 아침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7시 50분께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나왔다. 혐의 인정 여부 등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그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고 대기 중이던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이 부회장은 전날 오전 9시 30분께 뇌물공여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는 검사 출신인 양재식(51‧사법연수원 21기) 특검보 지휘 아래 ‘대기업 수사통’으로 불리는 한동훈(44‧27기) 부장검사, 김영철(44‧33기) 검사가 진행했다.
수사진은 이 부회장을 상대로 최씨 일가에 대한 삼성 지원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결정에 대한 뇌물 차원으로 이뤄진 것인지 등을 캐물었다.
특검팀은 삼성이 지난 2015년 8월 최씨의 독일 현지 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와 200억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 같은 해 10월부터 작년 3월까지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후원한 것 등을 합병 찬성에 대한 대가로 보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 합병 문제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과정이었다.
특검팀은 삼성이 최씨가 실질적으로 설립‧운영한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의 출연금을 낸 데 대해서도 뇌물죄 적용을 통한 공소장 변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출연금과 관련해서는 기존 검찰 수사에서 최씨 측 강요에 의한 출연금이라는 결론이 나 최씨 등에게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됐다.
이 부회장은 뇌물죄 외에도 위증 혐의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로부터 고발된 상태다. 최씨 일가에 대한 지원금이나 삼성물산 합병에 유리하도록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도록 지시한 의혹 등과 관련해 배임‧횡령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의 최씨 일가 지원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상진(64)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도 전날 오후 2시께 소환돼 13시간 이상 조사받고 귀가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이 부회장과 박 사장을 포함해 최근 소환했던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일괄적으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박 대통령의 공모 부분이 적시될 지도 주목된다. 이미 특검팀은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최씨에 대해 뇌물죄 등을 추가해 새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북, 조미대결전 최후승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있다

북, 조미대결전 최후승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있다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1/13 [10: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이 사진은 2016년 2월 24일 경기도 연천에서 진행된 도하작전연습에 참가한 미국군 전차부대의 기동장면이다. 

북 노동신문이 10일 <원수들의 발악은 조선의 승리에 대한 증명이다>란 제목의 장문의 논평에서 "우리는 조미대결전의 최후승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있다는것을 확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인터넷에 소개된 이 논평은 북 배금희 논설위원이 작성한 것으로 2016년 북미대결전을 총화하고 향후 전망을 밝힌 내용으로 향후 북의 대미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논평에서 북 김정은 위원장이 전당초급당위원장대회에서 "제국주의반동세력들이 유엔《제재결의》를 조작해내고 《단독제재》까지 떠벌이며 발악하고있는것은 우리의 승리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명"이라고 언급한 내용을 2016년 북미대결전의 총화라고 지적했다.

즉 미국의 전례없는 대규모 합동훈련, 성격 측면에서도 참수작전과 같은 유례없는 도발적인 군사훈련에다가 1년에  두 차례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채택이라는 사상 초유의 제재압박을 가해온 미국에 북은 두 차례에 걸친 수소탄 시험과 각종 첨단무기 시헙으로 맞대응하여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었다며 북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북의 핵무력은 더욱 강해졌고 북 주민들의 자강력 의지는 높아졌기 때문에 북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특히 논평에서는 "새로운 핵탄두폭발시험은 국가핵무력완성의 최종관문통과를 알린 일대 사변이였으며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안전을 담보한 력사적장거였다. 우리 혁명무력은 탄도로케트장착용수소탄까지 완전무결하게 장비하고 다종의 핵탄들을 지상과 공중, 해상과 수중 등 모든 작전공간에 제한없이 운반할수 있는 최첨단타격수단들을 갖추게 되였으며 침략자, 도발자들을 임의의 시각, 임의의 장소에서 생존불가능하게 들부시고 괴멸시킬수 있게 되였다."고 북의 핵무장력을 평가하였다.

논평은 이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이렇게 우리의 핵보유국지위를 굳건히 해주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지난 시기 조미관계에서는 미국의 일방적인 핵위협공갈만이 존재하여왔고 그로 하여 조선반도는 항상 극도의 초긴장상태에 놓여있었다. 이제는 미국본토의 운명이 위태롭게 되였다. 수많은 외신들이 조선은 미국본토를 실지로 타격할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미국의 대조선전략은 완전히 실패하였다고 경쟁적으로 보도하고있는것은 우연하지 않다."며 왜 북이 승리했다고 하는지 그 근거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 <사진 8> 김정은 제1위원장이 화성-13호 재진입체에 장입되는 수소탄 핵탄두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실물 핵탄두를 그처럼 자세히 살펴본 국가지도자는 전 세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제1위원장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위의 사진은 세계정치사에 특기할 매우 특별한 사진이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핵탄두에는 격발기에 연결되는 구멍이 있다. 격발기의 중수소-삼중수소 혼합가스통을 그 구멍에 연결시켜놓으면, 격발 순간 그 구멍으로 중수소-삼중수소 혼합가스가 들어가게 된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논평은 2017년에도 이런 북의 대응은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방향도 제시하였다.

"미국의 폭정시대에 사형선고를 내린 주체조선은 승리자의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2017년의 장엄한 진군을 시작하였다. 힘과 강권으로 좌우지되는 현 국제관계에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자면 힘이 있어야 하고 적대세력의 핵위협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것은 력사가 남긴 교훈이며 철의 진리이다."라며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또 다시 가해진다면 역시 북은 또 다시 힘으로 맞설 의지를 피력하였다.

그러면서 "원쑤들이 제아무리 정치, 경제, 군사적위협과 공갈소동을 광란적으로 벌리며 우리를 굴복시키려고 미쳐날뛰여도 그것은 강자에게 쫓기는 약자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남을 짓밟는것을 도락으로 삼으며 비대해진 미국의 운명을 발밑에 딛고선 우리는 조미대결전의 최후승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있다는것을 확신한다. 위대한 병진로선을 억세게 틀어쥔 천만군민은 선군으로 강성하고 경제부흥으로 만복을 누릴 사회주의강국의 휘황찬란한 래일을 본다."고 강조했다.

한편 논평에서는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이 미국 아마존을 통해 전자출판한 '김정은의 통일전략'이란 책의 내용도 거들었는데 "일본의 한 군사평론가는 《김정은통일전략, 미국을 제압하다》라는 제목의 도서에서 김정은최고령도자께서는 5~10년안에 미국을 쥐락펴락하며 길들일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스스로 조선에 대한 제재를 풀수밖에 없다, 조선반도 남쪽에 주둔한 미군과 일본주둔 미군도 철수하게 될것이라고 예평하였다. 그만이 아닌 많은 전문가들이 여기에 공감을 표시하고있다."고 언급하여 눈길을 끌었다.

일부 정세분석가들은 올해 북미사이에 사변적인 일들이 터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북은 주민들에게 낙관과 신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혹은 미국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기 위해 아주 단호하면서도 확신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해왔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올해 키리졸브 훈련에서 미국이 또 다시 군사적 압박을 가한다면 북은 분명히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등 강력한 무력시위에 나설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강력한 응징 제재와 북미 막후 접촉이 추진되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과정에 북의 핵무장력은 미국 본토를 얼마든지 초토화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공개가 될 것이며 미국의 군사패권은 무너져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과 필리핀, 베트남 등 서태평양의 미군의 영향력을 중시하는 국가들의 동요가 심각해질 것이며 자체핵무장 움직임도 거세지고 일본 등 아시아의 친미국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북과 직접 접촉하려는 의지가 높아질 것이며 미국의 패권은 무너져내릴 것이다.
양적으로 이런 모순이 계속 쌓이면 결국 미국의 패권은 언젠가는 급격히 무너지는 단계에까지 접어들 것이다.

김명철 소장은 그 시기를 5-10년으로 보고 있는 것이며 이번 북의 논평은 이를 거들어 환기시키며 일정하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사실 이대로 가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미국의 패권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패권이 붕괴되더라도 연착륙을 시키려면 올해 미국이 북과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올해를 놓치게 되면 북은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완전히 보유한 나라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어 이후 북미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싫다면 결국 미국 패권의 급격한 붕괴를 막으려면 북과의 전쟁밖에 남지 않게 된다. 이미 수소탄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까지 보유했다고 말하는 북과의 전쟁은 미국도 선뜻이 선택하기 쉽지 않을 것이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북의 핵무장력은 더 강해지기 때문에 전쟁을 결심했다면 서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위험한 전쟁보다는 대화와 협상으로 시간을 끌면서 북미관계를 연착륙시켜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미국이 트럼프 신 행정부의 방향은 올 키리졸브-독수리 합동훈련에서 드러나게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긴장된다.

CNN, 이 시점에 주한미군가족 한반도 엑소더스 상세 보도?

CNN, 이 시점에 주한미군가족 한반도 엑소더스 상세 보도?


-지난 11월 서울서 오키나와까지 1박 2일 동행 취재, 지금에야 보도하는 이유는?
-김정은 신년사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완료, 상반기 군사 도발설 가운데 주목받아
신년벽두부터 미국의 보도전문채널인 CNN에 주한미군가족들의 한반도 철수 훈련 모습이 방영되어 주목을 끌었다. CNN은 지난 4일 ‘Preparing for the worst: How to escape from Kim Jong Un=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김정은에게서 도망가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내보냈다.
이 보도는 ▲1단계 명령받기 ▲2 단계: 짐싸기 ▲3단계 : 등록하기 ▲4단계: 남으로 이동 ▲5단계: 국경 넘기 등 5단계로 이루어진 탈출과정을 고스란히 내보냈다. 언뜻 보기에는 한반도에 위급상황이 벌어져 주한미군가족들이 한반도에서 탈출하는 실제모습처럼 보인 보도였다.
이 훈련은 지난 11월 초에 벌어진 훈련으로 CNN은 서울에서 군용헬기로 대구까지, 그리고 대구에서 군수송기로 오키나와까지 주한미군가족들의 한반도 탈출 과정을 동승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 방송이 나간 뒤 이런 훈련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CNN이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런 보도를 내보냈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이라크와 미국의 걸프전 때 스포츠 중계를 방불케 하는 실황중계로 ‘CNN이 있는 곳에 전쟁이 있다’는 악명을 얻은 CNN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로 연초부터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 보도를 내보낸 메시지가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송은 제목에서 ‘김정은에게서 도망가기’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덧붙여 이 방송의 목적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언급해 미국을 자극한 김정은의 폭력설과 도발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철수훈련이 벌어진 시점을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11월 초, 즉 미국의 대선이 끝난 뒤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것으로 이는 풍문으로 미국의 북 폭격설이 제기됐던 때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당시 풍문은 영국까지 참여하는 동아시아에서의 합동군사훈련을 주목하라는 것과 이 때 주한미군가족들의 철수가 이루어진다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트럼프의 당선으로 풍문으로 제기됐던 오바마 정부의 북 폭격설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당시 벌어진 합동 군사훈련에서 주한미군가족들의 철수훈련이 예정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이번 CNN 보도로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주한미군가족 한반도 철수 훈련은 지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이 완성단계에 있다고 밝혔고 트럼프는 트윗에서 ‘그런 일(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완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를 하고 나섰으며 트럼프에 이어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은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해 “현실적인 목표는 평양과 핵기술을 수출하지 않고,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도 하지 않도록 협상하는 것”이라고 권유하는 등 신년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전쟁 중계의 권위자 CNN의 주한미군가족 한반도 탈출 보도가 예사롭지만은 않게 보인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CNN의 보도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cnn.it/2i9JWti
Preparing for the worst: How to escape from Kim Jong Un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김정은에게서 도망가는 방법
By Juliet Perry, CNN
Updated 5:34 AM ET, Wed January 4, 2017
Seoul (CNN) It’s a bitterly cold, bleak day on a military base in South Korea.
서울(CNN) 살을 에는 듯 혹독하게 추운 한국 미군부대의 어느날.
People are milling around calmly, clutching hot coffees, making small talk. Kids are chasing each other around an air hangar.
사람들은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조용히 이리저리 거닐며 잡담을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격납고 주위에서 서로를 뒤쫓고 있다.
It’s hard to believe they are practicing a high-stakes emergency evacuation that simulates what would happen if North Korea invaded.
북한이 침범할 경우 일어날 일을 가상한 고위험도 비상 후송 상황을 이들이 연습하고 있다고 믿기가 어려운 장면이다.
“In real life, everyone would be wearing masks, rushing through places,” says mom of two Nicholle Martinez. “There would be chaos everywhere. It would be scarier.”
“실제 상황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재빨리 빠져나갈 것”이라고 두 아이의 엄마인 니콜 마르티네즈가 말한다. “모든 곳이 혼돈 상태겠죠. 훨씬 더 무서울 거예요.”
A sign directs evacuees at Yongsan Garrison army base in Seoul.
서울 용산 개리슨 군부대의 대피자들을 위한 안내표지
Nicholle met Nick Martinez when they were both stationed with the US military in Seoul. They’ve now been married for nine years and have two beautiful, energetic and charismatic children. Briannah, 6, is in first grade, and Alannah, 8, is in third.
니콜은 서울 미군부대에 주둔하며 닉 마르티네즈를 만났다. 이제 이들은 결혼한 지 9년이 되었고 예쁘고 에너지가 넘치며 씩씩한 두 아이도 있다. 6세의 브리아나는 1학년이고 앨레나는 3학년이다.
In many respects they’re very typical. They go to church on Sundays and have lunch together afterward. They like to play sports — mom and dad want the girls to grow into healthy, strong young ladies.
많은 점에서 아이들은 아주 평범하다. 그들은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고 교회가 끝나면 함께 점심을 먹는다. 그들은 스포츠를 즐긴다. 엄마와 아빠는 딸들이 건강하고 강한 숙녀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Briannah wants to be a teacher, Alannah wants to be president.
브리아나는 교사가 되고 싶어하고 앨레나는 대통령을 되기를 바란다.
But, because the whole family is now living on post in Seoul, the Martinez family lives with the ever-present danger of a very noisy and unpredictable neighbor — Kim Jong Un.
하지만 온가족이 현재 서울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마르티네즈 일가는 대단히 소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이웃 김정은의 끊임없는 위험을 느끼며 살아간다.
In the face of escalating tension, the Martinez women are practicing their path to safety.
점점 고조되는 긴장에 직면해서 마르티네즈 가의 여성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In a military-led exercise, they traveled by bus, helicopter and military plane from South Korea all the way to the Pacific island of Okinawa, Japan.
군이 주도하는 훈련에서 이들은 버스와 헬리콥터, 그리고 군용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태평양의 섬인 일본 오키나와로 이동한다.
In a CNN exclusive, we went along with them for the ride.
CNN 단독 보도로 우리는 이들의 대피 훈련에 동행했다.
Step One: Receive Orders
1 단계: 명령받기
All those taking part in the drill are volunteers — relations of US soldiers stationed in Seoul. Unlike in a real scenario, they’ve had the opportunity to plan a little for this event.
이 훈련의 모든 참가자들은 서울에 주둔한 미군의 가족들로서 이에 자원했다. 실제의 상황과 달리 이들은 이 훈련을 위해 약간 준비할 기회를 가졌다.
Nicholle with Briannah (L) and Alannah (R). Nicholle says they feel very safe in South Korea.
브리아나(왼쪽), 앨레나(오른쪽)와 함께 있는 니콜. 니콜은 한국에 사는 것이 아주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There are a number of reasons why an order like this could be enacted, says Justin Sturn, a non-combatant evacuation planner. He uses the 2011 earthquake in Japan or the recent evacuation of non-combatants from Turkey as examples.
비전투원 후송 기획자인 저스틴 스턴은 왜 이와 같은 명령이 실제 상황처럼 재현될 수 있는지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11년 일본 지진 혹은 최근 터키의 비전투원 후송을 예로 들었다.
However, for all the claims this is a routine practice run, Kim’s threats loom over the exercise.
그러나 이것이 일상적인 훈련의 실행이라는 온갖 주장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위협은 이 훈련에 모습을 드리운다.
In September, North Korea said it had hit the button on its fifth and potentially most powerful nuclear test. International condemnation and aggressive sanctions have done little to impede the regime’s nuclear ambitions.
지난 9월 북한은 자신들의 다섯 번째 그리고 어쩌면 가장 강력한 핵실험을 실행했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비난과 적극적인 제재도 북한 정권의 핵 야망을 잠재우는 데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In a New Year’s address, Kim said that his country is close to testing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신년 담화에서 김정은은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험이 임박해 있다고 말했다.
“He’s said publicly that we’re the enemy,” says Sturn.
스턴은 “그는 우리가 적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고 말한다.
“With all the rhetoric that comes out of North Korea, of course we have to prepare for the worst case scenario.”
“북한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대해 당연히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합니다.”
Bags sit on the runway in South Korea. Families have to carry food and water with them as well as personal items.
한국 활주로에 놓여진 가방들. 가족들은 자신들의 개인용품뿐만 아니라 식량과 물을 직접 휴대해야 한다.
Military families stationed in South Korea are encouraged to have a bag ready to go at all times. “I have a duffel bag that is always packed with sleeping bags and canned food,” says Nicholle.
한국에 주둔한 군인 가족들은 언제나 떠날 수 있도록 가방을 꾸려놓기를 권고받는다. 니콜은 “집에 침낭과 캔 음식이 든 더플 백이 항상 꾸려져 있다”고 말한다.
According to Sturn, the decision to get soldiers’ families out of the country would come right from the top. A non-combatant evacuation order (NEO) is a political decision, not a military one.
스턴에 의하면 군인 가족들이 한반도 밖으로 대피하는 것에 대한 결정은 상부로부터 온다. 비전투원 후송 명령은 정치적 결정이며 군사적 결정이 아니다.
“We would conduct the mission, but the execution is still a Department of State decision,” says Sturn.
“우리는 그 임무를 수행할 것이지만 그 집행 여부는 여전히 국무부의 결정”이라고 스턴이 말한다.
Step Two : Pack
2 단계: 짐싸기
The Army is trying to make the environment as realistic as possible.
미군은 이 환경을 가능한 한 실제 상황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Family members are permitted to bring along 60 pounds of personal stuff each. Military representatives urge the group to only bring the bare essentials.
가족 구성원들은 개인용품을 각 60파운드 씩 휴대할 수 있다. 군 담당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만을 휴대하도록 이들에게 권고한다.
I ask the Martinez family what went into their bags first.
“My cellphone!” says Nicholle in a heartbeat.
마르티네즈 가족에게 가방에 가장 먼저 무엇을 넣었는지 묻는다.
“내 핸드폰이요!” 니콜이 바로 말한다.
“My blanket,” says 8-year old Alannah. She wraps her comfort around herself like a cape.
“내 담요”라고 8살의 앨레나는 말한다. 그녀는 담요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다.
Briannah pauses, shyly. Mom and sister exclaim they know exactly what went into her rucksack first.
브리아나는 수줍어하며 멈칫거린다. 엄마와 언니는 브리아나 배낭에 무엇이 가장 먼저 들어갔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큰 소리로 말한다.
“Daddy Doll”s face has a clear pocket where a photo of Dad can go.
“아빠 인형”의 얼굴에는 아빠 사진을 넣을 수 있는 투명 포켓이 있다.
The 6-year-old takes a moment to rummage in her bag and produces her must-have item with a flourish — a military issue doll given to the girls when Nick went on his first tour.
6살짜리 아이는 천천히 가방 속을 뒤져 자신이 꼭 가지고 가야하는 물건을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이는 군이 제공한 인형으로 닉이 자신의 첫 출장 때 아이들에게 준 것이다.
“Daddy doll!”
“아빠 인형!”
The girls are carrying their must-have items, but one lesson Nicholle says she’s already learned from the exercise is to pack a little lighter. Although she’s a strong fitness instructor, she’s weighed down with over 150 pounds of luggage and it’s slowing her down.
아이들은 자신들이 꼭 원하는 물건들을 휴대하고 있지만, 훈련에서 이미 배운 한 가지 교훈은 보다 가볍게 짐을 싸야 하는 것이라고 니콜은 말한다. 건강한 피트니스 강사이긴 하지만 150 파운드가 넘는 짐은 그녀에게 버겁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없게 한다.
STEP THREE: REGISTER
3단계 : 등록하기
A string of tents is pitched at Yongsan Garrison military base. There`s an icy wind and a trace of nervous anticipation in the air as families slowly gather.
용산 개리슨 미군 기지에 여러 텐트가 처져 있다. 가족들이 천천히 모여드는 동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긴장감이 감돈다.
This is the first time since 2010 the evacuation simulation has gone all the way to Okinawa. Most people aren`t really sure what to expect — they`ve just been told, “it`s not going to be comfortable.”
오키나와까지 가는 훈련은 2010년 대피 훈련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들은 그저 “편안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The Army estimates approximately 60 people are taking part in the military exercise.
미군은 대략 60명이 대피 훈련에 참여한다고 예상한다.
The group are issued with identity bracelets that will track their progress from South Korea to Okinawa. If this were a genuine evacuation, the families would then be flown back to the United States from Japan.
그 그룹은 한국에서 오키나와로 가는 동안 위치가 추적되는 신분증 팔찌를 받는다. 실제 후송이라면 가족들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다시 이동될 것이다.
There is a security screening and the opportunity to register any pets traveling. The Martinez family joke that the fish didn`t make the cut.
안전 검색이 있고, 데리고 가는 애완동물을 등록하는 절차도 있다. 마르티네즈 가족은 관상어들은 함께 올 수 없었다고 농담한다.
One stage of the registration process also includes instructions on the ICAPS mask — or Infant Chemical Agent Protective System — that protects against the effects of biological attacks for up to 12 hours.
등록 절차의 한 단계는 ICAPS(유아 화학작용제보호시스템) 마스크에 대한 지시를 듣는 것이다. 이 마스크는 생물학적 공격의 영향으로부터 최대 12시간까지 보호해준다.
Parents are shown how to administer the ICAPS after they enable their own protection.
부모들은 우선 자신들의 보호장치를 가동시킨 후에 어떻게 ICAPS를 타인에게 씌우는지 보고 배운다.
There`s a lot of nervous laughter and “Ghostbusters” references abound. Briannah gets into the spirit of things.
훈련 장소에서 긴장감이 감도는 웃음과 “고스트버스터”라는 말도 들린다. 브리아나는 분위기에 빠져든다.
But for all the smiles and calm instruction, the vision of a 6 year-old preparing for a chemical or biological attack isn`t a comfortable one.
그러나 모든 미소와 차분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6살의 어린이가 화학적 혹은 생물학적 공격에 대비하는 모습은 편안한 것은 아니다.
Nicholle, who herself was in the military police, says that as well as being a great life experience, it`s a good opportunity for the girls to get some insight into what dad does for a living. “They only have five more years until dad retires,” she says. “So being here has opened their eyes as to what military life is.”
군 경찰이었던 니콜은 그것이 좋은 인생 경험일 뿐 아니라 소녀들이 아빠가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되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아빠가 은퇴할 때까지 겨우 5년 남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경험이 군 생활에 대해 아이들의 눈을 뜨게 한다.”
Alannah is already showing signs of logistical aptitude. She tells me she`s not sure why they`d take so many steps to evacuate the country, if it really was an emergency.
앨레나는 이미 운송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그녀는 정말 비상사태가 일어난다면, 이 나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왜 그리 많은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내게 말한다.
I suggest it might seem easier just to get families onto a commercial flight in Seoul.
나는 가족들을 서울의 민간 항공사의 비행기에 태우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고 제안한다.
“That`s what I would do!” she says. “Just get outta there.”
“바로 그렇게 할 거예요!” 그녀는 말한다. “그곳까지 가기만 하면 돼요.”
I put Alannah`s question to Sturn, who says the movement south would be in response to hostile maneuverings from the north and the “need to move people out of that hotspot.”
나는 앨레나의 질문을 스턴에게 묻는다. 스턴은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북한의 적대적 공격과 “사람들을 그 전방에서 빠져나오게 할 필요”에 대한 대응이라고 대답한다.
“If it was a natural disaster, or something like that, we would absolutely fly them out of Seoul,” says Sturn.
“만약 자연재해나 그 비슷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서울에서 그들이 비행기를 타도록 할 것”이라고 스턴이 말한다.
“But this is the worst-case scenario. And the worst-case scenario is North Korea is coming across the border, and we need to get people out of harm`s way.”
“하지만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그리고 그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이고, 우리는 해를 입지 않도록 사람들을 피신시켜야 합니다.“
STEP FOUR: MOVE SOUTH
4단계: 남으로 이동
After about an hour’s drive in convoy from the registration point in Seoul, we arrive at Camp Humphreys, further south in Pyeongtaek.
서울의 등록지점에서 호송차량으로 약 1시간 이동하면 우리는 보다 남쪽인 평택에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에 도착한다.
We’re taken through a hangar full of military hardware towards two US Army CH-47s, or Chinook helicopters, sitting on the tarmac.
우리는 수많은 군사장비들로 가득한 격납고를 거쳐 활주로에 서있는 두 대의 미군 CH-47, 혹은 시누크 헬기로 향한다.
We’re given a safety orientation, issued earplugs and escorted on to the machine.
우리는 안전교육을 받고, 귀마개를 지급받은 후 헬리콥터로 호송된다.
This is the first time most of the civilians have flown in a military helicopter. The roar, heat and pure force from the blades is overwhelming as we get on board.
민간인들 대부분에 있어 군용 헬기에 탑승하는 것은 처음이다. 헬기 날개의 굉음, 열기와 대단한 힘은 탑승하는 우리를 압도한다.
If they had to evacuate by helicopter, this is a fair enactment of how it would go, says Col. Lance Calvert, commander of the 2nd Combat Aviation Brigade. However, with the increased numbers a real-life scenario would entail, he says there would be more practical ways to transport people out of Pyeongtaek.
실제로 사람들이 헬리콥터로 대피해야 한다면, 이번 훈련은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습이라고 제2 전투항공 여단장인 랜스 칼버트 대령은 말한다. 그러나 더 많은 후송 인원이 있을 실제 상황을 위해서는 평택에서 사람들을 후송해낼 더욱 실용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It’s estimated that — if this were a genuine evacuation of non-combatants from South Korea — the order could be for tens of thousands of civilians to leave over a period of five to seven days. “Trains, buses or commercial transportation systems are much more efficient,” he says.
만약 한국의 비전투원들을 후송하는 실제의 대피라면, 이 지시는 수만 명의 민간인을 5일에서 7일의 기간 동안 이동시키는 것으로 어림잡힌다. “기차, 버스 혹은 대중교통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고 그는 말한다.
The aim of the drill isn’t only to try to give relatives a realistic practice run. The military also considers the “mental aptitude” of a soldier in a crisis and believes exercising this process builds confidence. It shows acting service members that, in a dangerous situation, their family members would be cared for.
이 훈련의 목적은 가족들에게 실제 상황과 같은 연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군은 위기 상황에서 병사들의 “정신력”을 고려하며 이런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고 믿는다. 이 훈련은 복무중인 병사들에게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가족들이 돌보아질 것임을 보여준다.
“In a natural disaster or hostile scenario, the last thing you want is your soldier thinking about his family,'” says Capt. Jimmy Sheehan.
“자연재해나 적대적인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군인들이 자기 가족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라고 지미 쉬한 대위가 말한다.
Capt. Sheehan: “‘You don’t want your soldier thinking: ‘Where’s my wife, where’s my husband?'”
그는 “우리는 병사들이 ‘내 아내는 어디 있지?, 내 남편은 어디 있을까?’라고 걱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STEP FIVE: CROSS BORDER
5단계: 국경 넘기
The helicopters land in Daegu. After a mess dinner, we spend a chilly night in the dormitories on the US military base, Camp Walker. The next morning, we’re up at 5 a.m.
대구에 헬기가 착륙한다. 엉망인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는 켐프 워커 미군기지 내에 있는 숙소에서 추운 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5시에 일어난다.
Despite the intensity and length of the journey so far, all the kids in the group are still in good spirits. A trip to Okinawa aquarium is nearly within grasp.
지금까지 이동의 강도와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모두 여전히 기분이 좋다. 오키나와 수족관까지의 여행은 이제 거의 다 온 거나 다름없다.
A convoy through the spectacular mountainous south takes us to Gimhae Republic of Korea Air Force (ROKAF) base where we’re escorted on to a US Air Force C-130 Hercules transport plane for the drill’s final leg — onwards to Japan.
남부 산악지역을 통한 후송차량으로 김해 한국 공군기지에 도착하며, 그곳에서 우리는 훈련의 마지막여정으로 미공군 C-130 헤라클레스 후송기에 올라 일본으로 향한다.
The Hercules is an impressive beast, and the “non-combatants” run into it in anticipation of arriving in warmer southern climes.
헤르쿨레스는 인상적인 군용기이며 “비전투원들”은 따뜻한 남부 기후지역에 도착할 것을 기대하며 그 안으로 들어간다.
Earplugs at the ready, we’re strapped in. Most of the children curl up and nod off — an oddly peaceful scene in such a stark environment.
사전에 준비된 귀마개를 착용하고 안전벨트를 한다. 그와 같은 삭막한 환경에서도 이상할 정도로 평화롭게 대부분의 아이들은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든다.
When they arrive in Okinawa family members have a night in a military gym to look forward to.
오키나와에 도착해서 가족들은 군 기지 체육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Landing in Japan is the highlight for the Martinez girls, who tell me with great enthusiasm how much they like exploring new places.
일본에 착륙하는 것이 마르티네즈 여자 아이들에게는 여행의 최절정이며 이들은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자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대단히 열정적으로 내게 말한다.
“For some reason, I thought we were going to go on a secret subway tunnel!” says Alannah. Her younger sister interjects wistfully: “I wish we could go through a tunnel to a magical place.”
“나는 어쩐지 우리가 비밀지하통로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앨레나는 말한다. 앨레나의 동생은 “터널을 지나 마법의 세계로 가면 좋을텐데”라고 중간에 끼어들어 동경하듯 말한다.
“Just close your eyes and imagine it,” laughs mom.
엄마는 “그냥 눈을 감고 상상해봐”라고 웃는다.
She says they seize these kinds of opportunities because, as a military family that’s often on the move, they try to make the best of it everywhere they go.
자주 이동하는 군인 가족으로서 어느곳을 가든 최고의 시간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도 잘 활용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Nicholle Martinez: “We struggle at the beginning… It’s just an adjustment, but once you get used to it, you love it here.”
니콜 마르티네즈는 “처음에는 힘이 들지만… 적응할 필요가 있을 뿐이고, 일단 익숙해지면 이곳을 좋아하게 된다”고 말한다.
“You adapt and you will succeed, or you will be miserable if you don’t,” she says. “We embrace these kinds of events because we help our spouses. My husband benefits from us enjoying our time here. If we’re happy, he’s happy.”
“적응하면 해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참해질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배우자를 돕기 위해 이러한 행사를 기꺼이 받아들여요. 우리가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그게 남편에게도 좋아요. 우리가 행복하면 그도 행복해요.”
For Nicholle, the experience has also made her reflect on how an emergency evacuation would really feel. The idea of leaving all the material things behind isn’t difficult.
니콜에게 이 경험은 또한 비상 후송이 실제로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했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at I get my girls to a safe place,”‘ she says.
그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딸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But it has driven home what, for her, would be the most painful part of the process.
그러나 그것은 그 과정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 무엇인지를 그녀가 느끼도록 해주었다.
“Knowing that I would be leaving my husband behind… that would be the hardest thing.”
“남편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게 될 것을 아는 것… 그것이 가장 힘든 일일 거예요.”
[번역 저작권자: 뉴스프로, 번역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배은망덕한 사람... 권양숙 여사 서운해 해" 반기문은 왜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나?


17.01.12 21:33l최종 업데이트 17.01.13 08:10l








귀국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기중이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귀국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기중이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노무현 정부의 외교보좌관 발탁 당시 그는 본부대기 5개월 만에 한승수 외교부 장관이 유엔총회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의장비서실장으로 1년을 일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던 참이었다."(최광웅 노무현 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2016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4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 파문으로 외교통상부 차관에서 경질됐다. 1970년 외무부 입부 이후 처음 겪은 '치명적인 위기'였다. 주변에 "자살을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반 전 총장은 같은 해 9월 한승수 유엔 총회의장(당시 외교부 장관)의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일반적으로 '국장급'이 맡는 자리였고, 유엔 시스템을 익히고 각국 외교관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든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차후 유엔 사무총장 경선에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 당시 그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그랬던 그가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보좌관으로 발탁됐고, 그로부터 10개월 뒤에는 외교통상부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2006년 10월에 한국인으로는 최초,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그를 당선시킨 1등 공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는 데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반기문의 최대 경쟁자가 '노무현 정부'의 승계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이 반 전 총장을 '배신자'라고 비판하는 데에는 이런 '정치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하겠지만, '인간적인 배신감'이 상당히 깊게 배어 있다.

유인태와 김수동, 이광재, 정찬용 등 '친미보수' 반기문 발탁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조각에 대한 구상을 말씀하셨다. '내각과 청와대가 상호보완될 수 있도록 하겠다.' 외교팀은 윤영관 외교부 장관(교수)이 정해졌다. 당선자께선 외교보좌관은 관료 출신으로 임명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자 시절 정무팀장을 지내며 초기 인사에 관여했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2009년에 한 회고다. "내각이 진보면 청와대 참모는 보수, 내각이 보수면 청와대 참모는 진보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정확히는 유 내정자의 처남인 당시 김수동 외교부 아·중동국장의 추천, 최광웅의 앞의 책), 이광재 팀장,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 내정자가 반기문을 추천했다. 청와대 밖에서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 관계를 잘 아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노 전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그를 추천했다.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노 전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에서 상당히 신뢰받고 있는 사람을 원하셔서 반 전 총장을 추천했고, 대통령께서도 긍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천성적으로 미국의 모든 것에 동조적(naturally sympathic to all things American)"(2006년 7월 1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본국에 보낸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미국에 유리하다'는 비밀 전문)이라는 반 전 총장은 '노무현의 외교보좌관'을 맡았다. 

친미파였고, 보수적이었던 그는 '유연'했다. '균형외교' 노선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와도 호흡을 잘 맞췄고, 역시 자타가 인정하는 '일벌레'답게 일했다. 외교보좌관을 맡은 10개월 뒤인 2004년 1월 그는 외교통상부 장관이 됐다. 노무현 정부 인사과정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그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외교보좌관으로서 노 대통령의 생각도 잘 알았고 순종적이어서 장관으로 내보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보좌관과 외교부 장관으로 총 3년 8개월간 일했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관계자는 "한국 외교관들은 대체적으로 외교적 기술과 실무능력, 업무 헌신성은 대단히 높지만, 큰 그림을 그릴 전략적 마인드는 부족하다"면서 "반 전 총장은 이같은 측면에서 전형적인 한국 외교관이었다"고 평가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균형외교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필요했다"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권우성

2003년 말부터 한국의 유엔 사무총장 입후보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차기가 아시아 순서였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역대 유엔사무총장은 중립성향 국가 출신 인물 중에서 강대국들이 협의해 뽑았기 때문에 비관론이 많았다.

그리고 2004년이 됐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노무현 정부의 대외전략을 이끌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반 전 총장의 대선 도전이 거론되기 이전인 2014년 5월에 출간한 회고록 <칼날 위의 평화>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반기문 장관이 한국도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낼 필요가 있다며 외교부가 추천하는 3인의 후보 명단을 순위별로 적어 왔다. 1, 2순위는 직업외교관이 아닌 외교장관 출신자들이었다. 3순위는 반기문 장관 본인이었다."

'순종적인 모범생' 반기문이 '권력 의지'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이 전 장관은 일단 후보 문제는 빼고, '유엔 사무총장 도전 적기'라는 외교부 의견만을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복병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었다. 주미대사로 내정되면서 일찌감치 유엔 사무총장 출마 의지를 피력한 그는 한국의 '사무총장 후보'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나갔으나, '삼성 엑스 파일 사건'으로 대사로 발령 난 지 7개월 만인 2005년 7월 물러나고 말았다. 

그해 가을께는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정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졌다. '반기문 카드'로 마음을 굳힌 당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은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 권진호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의 찬성을 얻은 뒤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수락하면서 이해찬 총리의 의견도 들으라고 요청했고, 이 총리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정부는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반 전 총장을 선택했을까. 

"반 장관 정도의 외교적 역량을 지니고 있으면서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인물이 정확히 균형외교의 지점에 서서 북핵 및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 현안에서 미국을 설득한다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유엔사무총장이 되려면 미국과 가까운 만큼 중국, 러시아 등과도 친선을 유지하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반기문 장관이 유엔 총장 후보가 된다면 반 장관 스스로 균형점을 찾을 테니 우리의 균형 외교는 그만큼 수월해질 것이다." (이종석, <칼날 위의 평화>, 2014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균형외교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핵심요인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홍석현 회장이 주미대사에서 낙마하지 않고 출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종석 전 장관은 "홍 회장이 당선됐을 것으로 본다"면서 "반 전 총장이 당선된 데는 '반기문 개인'의 역량도 있었겠지만, 그 기본 토대는 한국의 국가역량과 노무현 정부의 '균형외교'였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 일변도도 아니고 중국에도 기울어져 있지 않다는 국제적인 인식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노무현은 반기문 선거대책본부의 총괄본부장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기문 선거대책본부의 총괄본부장격이었다…방한하는 외국 고위인사들도 빼놓지 않고 청와대로 불렀다. 심지어 스리랑카의 위크라마나야카 총리가 방한했을 때는 '스리랑카에서도 후보를 낸다는데 그래도, 기회가 되면 도와달라'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스리랑카의 경우 유엔 군축회담 사무차장을 역임한 자얀티 다나팔라를 일찍부터 후보로 확정하고 득표활동에 들어간 상태였다."(최광웅,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2016년)

2006년 2월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가 공식 발표된 후 8개월간의 선거운동 기간 노 대통령은 이집트·알제리·아랍에미리트·코스타리카·아제르바이잔 등을 찾아다녔다. 그 이전 한국 대통령들이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외국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우선적으로 '반기문 지지'를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할 급박성이 없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 정상들을 일부러 만나면서 반 장관을 배석시켰고, 자신이 직접 만나기 어려운 지도자들에게는 권진호 안보보좌관 등을 특사로 보냈다. 

또 아프리카와 유럽에 영향력이 있는 프랑스가 '반기문 지지' 대가로 요구한 '항공연대 기여금' 제도에도 응했다. 2007년부터 우리 국민의 해외 항공료에 포함된 1000원의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이 이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정부 안팎의 숱한 경질 요구에도 반 장관의 외교부 장관 자리를 지켜줬다. 유엔사무총장 출마 발표 직후인 2006년 4월 동원호 피랍자 석방교섭이 늦어지면서 정부의 소극적인 협상 태도와 함께 반 장관 책임론이 떠올랐을 때도, 그해 7월 북한의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와 이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한나라당이 반 장관을 포함한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를 요구했을 때도 이를 거부했다.

이 무렵 청와대 내부에서는 반 장관의 거취와 관련해 10번 정도의 보고서가 올라갔으나, 노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았다(박남춘 전 청와대 인사수석 대표집필, <대통령의 인사>, 2013년). 이광재 전 지사에 따르면 당시 노 대통령은 "욕은 내가 먹는다, 남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사무총장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물리쳤다.

"반기문, 전화는 하면서 왜 문상은 안 왔나? 권 여사가 정말 서운해했다"
공항철도 탄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부인 유순택씨와 함께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까지 이동하고 있다.
▲ 공항철도 탄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부인 유순택씨와 함께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까지 이동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추모 영상이나 서면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장의위원회에 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장례식 2개월 뒤인 7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지만, 경남 김해의 묘소는 찾지 않았다.

그러한 행보에 비례해 반 전 총장을 향한 노 전 대통령 쪽의 서운함이 커졌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비서관을 지낸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양숙 여사가 반 전 총장에 대해 정말 서운해했고, 2011년 가을부터는 주변에 이를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반 전 총장과 함께 일했던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간적으로 실망했다"고 말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인 12월 1일 반 전 총장이 김해를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개인 휴가 중의 비공식일정이므로 언론에 비공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그는 노무현 정부 인사들에게는 확실한 '배신자'로 인식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매몰차게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규정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반 전 총장 쪽의 오준 전 유엔대사는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5월 27일) UN 대표부에 차려진 빈소에 바로 갔다고 들었다"며 "제가 알기에는 권양숙 여사라든지 (노 전) 대통령의 가족분들에게 매년 1월 1일 전화를 하는 거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1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그러나 김경수 의원은 "그가 노 대통령 생존 시에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도 신년과 명절 등에 전화한 것은 것은 맞다"라며 "그런데 왜 전화는 하면서 방문은 안 하고, 노 대통령 서거하신 지 2년 반 만에 묘소를 방문했을 때도 비공개로 해달라고 했을까, 결국 마지못해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외교관들은 의전과 인맥관리의 달인들이고, 반 전 총장은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보인 모습에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박연차 23만불 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이명박 정부에게 약점이 잡힌 상태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얘기가 아예 나오지 않게 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왔다.

이런 '배신론'과 아울러 '업무 성과'를 둘러싸고도 비판이 나온다. 유엔 사무총장 10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국민이 만들어 준 유엔 사무총장이었지만, 국제적 평가가 대단히 부정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었지만, '평화 중재'가 기본 임무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남북관계 개선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 분석) 고정미(아트 디렉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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