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9일 월요일

부동산 투기대책에 등장한 ‘친일파 재산몰수’에 대하여

 

정운현 | 2021-03-30 09:03:37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부동산 투기대책에 등장한 ‘친일파 재산몰수’에 대하여


최근 정부.여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당이득을 ‘소급 적용’해 몰수하고 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을 ‘모든 공직자’로 넓히기로 했다. 28일 민주당은 공직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를 ‘친일 반민족행위’에 견주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해방 후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활동 사례 참고한 것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제헌국회는 법률 제3호로 반민법(반민족행위자처벌법)을 제정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과 친일잔재 청산에 나섰다. 근거는 제헌헌법 제101조(‘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1948년 8월 5일 제40차 국회 본회의에서 김웅진 의원은 ‘반민족행위처벌법 기초위원회’ 구성을 긴급동의안으로 내놓았는데 이것이 반민특위 구성의 첫걸음이었다.

기초위원회는 우여곡절 끝에 한 달 후인 9월 7일 제59차 본회의에서 재적 140명 중 가 103, 부 6으로 반민법을 통과시켰다. 전문 3장, 총 32조로 구성된 반민법은 이튿날 정부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반민법 제정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이승만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반민법을 거부했다. 주된 거부 이유는 3권분립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부가 추진 중이던 양곡수매법을 국회가 보이콧 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반민법을 법률 제3호로 공포(9.22)하였다. 

반민법은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소급입법이다. 8.15 해방 전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아 사후에 벌을 준 것이다. 둘째, 신체형과 재산형을 병과한 점이다. 즉, 반민특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강제로 체포하여 조사한 후 특별검찰부의 기소, 특별재판부의 재판을 거쳐 유죄를 선고받은 자는 감옥에 처넣었다. 동시에 친일을 한 대가로 축적한 재산과 후대의 자손들에게 상속된 유산에 대해서는 죄질에 따라 일부, 혹은 전부를 몰수했다. 

반민법에서 규정한 재산몰수의 사례(별첨 1 참조)를 보면, 을사오적과 같은 매국조약에 가담한 자는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제1조), 작위를 받은 자나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을 지낸 자는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제2조), 독립운동가를 박해한 자는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제3조), 습작자나 밀정 등에 대해서는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방해 책동으로 중도에 와해되고 말았다. 따라서 친일파들의 재산몰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들의 재산은 후손들에게 상속되었다. 그러다가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제2의 반민특위’가 구성되었다. 이번에는 친일파 행적조사와 재산몰수를 분리하여 두 개의 특별법이 각각 제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김희선 의원 발의)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최용규 의원 발의)이 그것이다. 이를 근거로 두 개의 위원회(친일행위진상규명위, 친일파재산조사위)가 구성돼 활동하였다.

친일파 재산 국가귀속(환수)을 위한 특별법은 반민법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특별법 제2조 2항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였다. 즉, 이들의 재산은 친일부역의 대가이므로 몰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였다.

특별법이 발효하면서 재산조사위는 토지 환수작업에 나섰다. 그러자 친일파 후손들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제13조 제2항에 위배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친일파 후손 60여 명은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한 모든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추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친일행적 자체가 일제와의 유착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며, 그 기간에 취득한 재산은 친일재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다만, 재산조사위원회 활동개시(2006년) 이전에 제3자에게 이미 매각된 토지는 환수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선의의 목적으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선의의 피해자를 고려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별첨 2 참조) 한시기구로 출범한 재산조사위는 2010년 7월 12일자로 공식활동을 종료하고 그해 10월 12일 해산했다. 현재는 법무부가 이 업무를 승계하여 수행하고 있는데 친일파 후손들과의 소송전을 계속해서 진행 중이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투기이익 소급 몰수’를 두고 위헌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세운 것은 이번 기회에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막아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만시지탄이나 이번 기회에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별첨 1] 반민족행위처벌법(약칭 반민법)
제1장 죄(罪)
[제1조]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병에 적극 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정부로부터 작(爵)을 수(受)한 자 또는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 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제4조] 아래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
1. 습작한 자
2.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 되었던 자
3. 칙임관 이상의 관리되었던 자
4.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6.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7. 비행기, 병기 또는 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경영한 자
8.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9. 관공리 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 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이하 조문 생략)
[별첨 2]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약칭 친일재산귀속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우리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가 그 당시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 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정 2006. 9. 22., 2011. 5. 19.>
1.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하 “친일반민족행위자”라 한다)”라 함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제6호ㆍ제8호ㆍ제9호의 행위를 한 자(제9호에 규정된 참의에는 찬의와 부찬의를 포함한다). 다만, 이에 해당하는 자라 하더라도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으로 제4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결정한 자는 예외로 한다.
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3조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일제로부터 작위(爵位)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 다만, 이에 해당하는 자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ㆍ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자 등으로 제4조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결정한 자는 예외로 한다.
다.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자 중 제4조의 규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ㆍ처형ㆍ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자 등 친일의 정도가 지극히 중대하다고 인정된 자.
2.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 한다)”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ㆍ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ㆍ증여를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ㆍ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
[제3조(친일재산의 국가귀속 등)]
①친일재산(국제협약 또는 협정 등에 의하여 외국 대사관이나 군대가 사용ㆍ점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친일재산 및 친일재산 중 국가가 사용하거나 점유 또는 관리하고 있는 재산도 포함한다)은 그 취득ㆍ증여 등 원인행위시에 이를 국가의 소유로 한다. 그러나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②친일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구체적 절차와 그 밖의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4조(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설치)] 친일재산의 조사 및 처리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이하 조문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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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새만금공사 사장, 배우자 법인 통해 17억 상가주택 매입

 등록 :2021-03-30 04:59수정 :2021-03-30 08:27


강팔문, 다주택 회피 ‘꼼수’ 의혹

작년 재산공사 때 2주택 소유
1채 증여해 올해 1주택 신고했지만
작년 배우자 출자한 부동산 법인서
익산시 4층 상가주택 사들여
새만금개발공사 전경. &lt;한겨레&gt; 자료 사진.
새만금개발공사 전경. <한겨레> 자료 사진.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장인 강팔문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의 배우자가 지난해 부동산 투자 법인을 세운 뒤 17억원 규모의 상가주택을 매입했지만, 강 사장은 재산신고 때 해당 회사의 지분(2억1천만원·70%)만 신고해 1주택자로 분류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장, 국토해양부 국토정책국장 등을 지낸 강 사장이 다주택 보유를 숨기려는 수단으로 배우자 법인을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29일 <한겨레> 취재 결과, 강 사장은 지난해 3월 재산공개 때는 자신과 배우자 ㄱ씨 공동명의의 서울 우면동 아파트와 ㄱ씨 명의의 논현동 빌라를 보유해 다주택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ㄱ씨는 지난해 7월 2억600만원짜리 논현동 빌라를 친척에게 증여해 올해 재산공개에서는 1주택자로 분류됐다.

 

문제는 ㄱ씨가 논현동 빌라 증여 직전인 지난해 6월8일 설립된 자본금 3억원의 ㄴ법인에 지분 70%를 출자하고, 그로부터 14일 만인 같은 달 22일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1가에 있는 4층짜리 상가주택을 17억원에 사들였다는 점이다. 유한회사인 ㄴ법인의 법인등기부등본을 보면 ㄱ씨가 유일한 이사로 등재되어 있으며 설립목적에는 △부동산개발·투자·매매업 △부동산 임대업 △건축물 유지보수 공사업 △서비스업·공간임대업 등이 명시되어 있다.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법인인 셈이다. 법인 주소지도 ㄴ법인이 매입한 전북 익산시 상가주택으로 되어 있다. 법인을 통한 우회적 주택 구매로 다주택 논란을 피한 셈이다.

이와 별도로 전북 새만금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장의 배우자가 인근 도시에서 부동산 투자회사를 세워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이해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사장은 2018년 9월 초대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올해 9월 임기가 만료된다. 지역 언론에서는 강 사장을 내년에 있을 익산시장 선거 후보로도 거론하고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강 사장의 사례가 불법은 아니지만 다주택을 숨기려는 편법으로 볼 수 있다”며 “특히 강 사장의 경우 국토부 관료 출신에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담당하는 공사 사장을 맡고 있는 현직인데 배우자가 부동산 투자법인을 세워 운영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사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사 사장 임기가 끝나면 고향(익산시)에서 살려고 (ㄴ법인의 지분 30%를 가진) 지인과 함께 상가주택을 구입한 것”이라며 “법인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2주택자인 것은 아니다. 내가 들어가도 전세로 들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인구도 줄어드는 익산에 집을 산 것을 누가 투기라고 할 수 있냐”고 반박했다. 서울 우면동 아파트는 “아들이 살고 있어 처분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익산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ㄴ법인이 지난해 매입한 상가주택이 있는) 모현동 쪽이 최근까지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라 익산에서 부동산을 보유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며 “급격한 상승을 기대하긴 쉽지 않지만 조금씩 오를 것을 기대해볼 만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주빈 강재구 기자 yes@hani.co.kr

※부동산 투기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88730.html?_fr=mt1#csidx029b86afb0088abb7a326f82fae1d1c 

개혁 외면한 채 철도 쪼개기 경쟁체제 대못 박는 국토부

 오직 SR만이 수서발 전라선을 달려야 한다?

“민중 속에서 영생하라 신혜원 동지여!”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3/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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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방문을 환영하는 순회공연 '꽃물결' 활동을 한 신혜원 동지.     ©김영란 기자

 

▲ 2017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벽화 작업.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가 벽화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1. 신혜원 작가의 약력

 

1978년 2월 4일 서울 출생

1996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입학

1996년 민족무예경당 동아리 백두대간 활동

2000년 홍익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역임. 한총련 대의원으로 수배

2001년 홍익대 총여학생회 회장 역임

2002년 투옥

2004년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교육선전국장

2005년 미술운동단체 그림공장 활동

2012년 콜트 콜텍 전시회 참여

2013년 7월 국정원게이트 버스킹 참여

2013년 12월 종북예술제 참여

2014년 그림책 『들꽃의 노래』 출간

2015년 4월 개인전시회 ‘들꽃의 노래’

2015년 영화 ‘불안한 외출’ 포스터 작업

2017년 5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벽화 작업

2017년 7월 미술운동단체 ‘베란다항해’ 결성

2017년 10월 방미 트럼프 탄핵 청년원정단 실천

2017년 11월 한미일 삼각동맹 풍자 전시 ‘마름전’ 진행

2018년 1월 반미반일통일전시 ‘지금, 우리’ 진행

2018년 4월 제주 4.3 전시 ‘이제사 고람수다’ 진행

2018년 6.13 지방선거 강남 ‘다’ 선거구 민중당 후보로 출마

2018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순회공연 ‘꽃물결’ 활동

2019년 6월 세월호광장 금요실천 시작

2019년 8월 통일선봉대 참가

2020년 1월 유방암 말기 판정, 투병활동 시작

2021년 3월 22일 오후 12시 24분 영면

 

2. 신혜원 작가의 삶

 

신혜원 작가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삶은 조국과 민중, 조직과 동지를 위해 헌신해 온 삶이었다.

 

신혜원 작가는 자주·민주·통일을 염원하며 자신의 한 생을 바쳤다. 

 

신혜원 작가는 1996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96년 당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은 3월부터 학원자주화 운동을 비롯해 반미, 조국통일운동을 맹렬히 펼쳤다. 신혜원 작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신혜원 작가는 2000년 홍익대 동아리연합회 회장을 결심한다. 그 당시 한총련 대의원이 되면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자가 되고 차가운 감옥으로 갈 것을 알면서도 결의했다. 결국 2002년 신혜원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된 후 투옥이 되었다.

 

학생운동 이후 신혜원 작가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염원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해왔다. 

 

학생운동 이후 미술단체인 ‘그림공장’ 활동을 하면서 반미와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했다. 그 외에 2012년 콜트 콜텍 전시회, 2013년 7월 국정원게이트 버스킹, 2013년 12월 ‘종북예술제’, 2018년 1월 반미반일통일전시 ‘지금, 우리’ 만나 등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다. 

 

특히 신혜원 작가는 통일의 열기가 높아졌던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순회공연 ‘꽃물결’ 활동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기다리며,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작품을 다양하게 창작했다. 

 

▲ 2017년 벽화작업 이후에 벽화처럼 함께 춤을 추는 신혜원 작가(맨 오른쪽)과 동료들. 이들은 이후에 '베란다항해'라는 그림단체를 만들었다.     ©김영란 기자

 

신혜원 작가는 민중을 한없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신혜원 작가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미술치료사가 되었고 위안부 할머님들을 ‘들꽃’으로 형상한 그림책 『들꽃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또한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했다.

 

윤미향 의원은 신혜원 작가에 대해 “그 길이 이 땅의 민중과 함께 하는 일이라면, 세월호 노랑리본이 되고, 우리민족 자주를 세우고, 통일을 위한 길에, 베트남의 미국전쟁에서 한국군과 미군에 의해 인권을 짓밟힌 희생자들을 위한 길에, 재일조선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길에,  몸으로 그림으로 삶을 살아냈더이다”라고 기억했다. 

 

신혜원 작가는 조직의 요구에 늘 충실한 사람이었다. 

 

신혜원 작가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조직의 숨결과 방향과 일치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신혜원이다. 단 한 치의 타협을 몰랐고 물러서지 않았다.”

 

신혜원 작가는 좋은 시기이든 어려운 시기이든 조직의 요구를 관철하는 데 흔들림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신혜원 작가는 갑자기 제기된 전시회, 작품 제작 요구를 밤을 새워서라도 완수해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잠은 대체 언제 자느냐’라고 신혜원 작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고생쯤은 달게 여기며 생활해왔다.   

 

이렇듯 신혜원 작가는 묵묵히 자기 일을 완수해왔다.   

 

▲ 신혜원 작가의 그려주는 인터뷰     ©김영란 기자

 

신혜원 작가는 동지를 귀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신혜원 작가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지들에게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뜨거운 사랑이 담겨있었다. 또한 동지들의 고민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도움을 주는 작가였다. 한 마디로 ‘웅심 깊은 사랑’을 주는 사람아 신혜원 작가였다. 

 

자주민주통일의 길에 동지와 함께 가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그림’을 기치로 한 젊은 미술인 단체인 ‘베란다항해’를 조직화하기도 했다. 조직가로서도 훌륭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신혜원 작가의 동지애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그려주는 인터뷰’라 할 수 있다. ‘그려주는 인터뷰’는 신혜원 작가가 동지와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대담 내용과 함께 그 동지의 장점과 특징을 그림으로 표현한 인터뷰였다. 초상화와 함께 그 동지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적어서 동지에게 주곤 하였다. 본지에 ‘그려주는 인터뷰’를 기고하기도 했다.   

 

“자신의 몸이 아픈 와중에도 후배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거금을 준 누나”, “후배가 몹쓸 병에 걸렸을 때 후배를 위해 자진해서 모금활동을 한 언니”, “활동을 어려워하는 후배를 위해 달려가 매일 격려하며 활동을 북돋아 줬던 선배”, “늘 웃으며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던 후배”라며 많은 이들이 신혜원 작가를 기억하고 있다.   

 

신혜원 작가는 미술 실력도 아주 뛰어났다.

 

홍익대학교 미대를 들어갈 정도라면 기본적으로 그림 실력이 우수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혜원 작가는 더 높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과 연습을 해왔다. 미술학원을 나가면서 그림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매주 미술학원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혜원 작가가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은 그림으로 민중에게 더 복무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신혜원 작가는 높은 실력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림책 『들꽃의 노래』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50년 넘게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돼 온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전 박람회이다.   

 

신혜원 작가는 영화 ‘불안한 외출’의 포스터, 도서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1,2』 표지디자인과 삽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벽화 작업’ 등의 작품도 남겼다. 

 

신혜원 작가는 실천에서도 앞장선 사람이었다. 

 

한반도 정세가 격화되던 2017년 10월 신혜원 작가는 ‘방미 트럼프 탄핵 청년원정단’에 함께 했다. 당시 미국의 입국 거부로 방미가 불발되자 동료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반미투쟁에 앞장섰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 강남 ‘다’ 선거구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진보정당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후보로 출마해 활동을 한 것이다. 또한 2019년 6월부터 세월호광장에서 금요실천을 ‘베란다항해’ 동료들과 매주 진행해왔다. 2019년에는 통일선봉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듯 신혜원 작가는 개인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거리 예술가’, ‘민중 예술가’로 한생을 살았다. 

 

신혜원 작가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습이 있었다. 신혜원 작가는 한순간도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투병 중에도 조국의 내일을 밝히는 글을 빠짐없이 읽었다. 

 

신혜원 작가의 학습은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신혜원 작가의 삶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신혜원 작가의 자주·민주·통일 염원은 다른 사람들의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 신혜원 작가의 부고를 접한 뒤 후배동지가 그린 작품, (왼쪽부터 김승교 변호사, 비전향장기수 박선애, 박순애 선생, 신혜원 작가, 김복동 할머니, 이창기 기자) 그리고 세월호.     ©연두

 

▲ 신혜원 작가의 동지가 그린 그림. '새순'은 신혜원 작가의 대학시절 별명이었다.     ©채수정

 

3. 국민주권연대 추도사

 

애석하고 비통합니다.

 

밝은 얼굴로 동지들을 반겨주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리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신혜원동지는 그림공장 활동에 이어 베란다항해를 만들고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량과 함께하는 동지들의 재량을 조국을 위해 바치고자 헌신적으로 살았습니다.

 

동지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고귀한 뜻과 뜨거운 지향을 가지고 살았던 동지였습니다.

 

조직가로서 능력, 예술가로서의 재량을 보여준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의 큰 아픔이고, 진보운동의 큰 손실입니다.

 

우리는 신혜원동지의 뜻을 이어 굴함없이 자주민주통일의 길로 전진하겠습니다.

 

동지의 염원이 담긴 민들레를 더욱 강화하고 동지의 몫까지 온 넋을 다해 투쟁하겠습니다.  

 

동지의 심장은 비록 멈추었지만 동지는 우리와 함께 자주민주통일의 길에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민주통일 승리와 더불어 동지를 영원히 추억할 것입니다. 

 

2021년 3월 22일

국민주권연대

 

<관련기사>

[부고] 진보통일 예술인 신혜원 작가 운명 (http://www.jajusibo.com/54871)

 

[추모시] “원, 그대는”, “붓의 항해”... 신혜원 작가를 그리며 (http://www.jajusibo.com/54875)

  

“신혜원처럼 타협 없는 예술투사들이 되겠다” 추모의 밤 열려 (http://www.jajusibo.com/54891)

 

신혜원 작가의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향한 신념을 늘 기억하겠다 (http://www.jajusibo.com/54931)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5. 김맹구 대진연 문예위원장 (http://www.jajusibo.com/48641)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 4. 서지연 주권방송 편집국장 (http://www.jajusibo.com/47137)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3. 이혜진 노래패 우리나라 가수 (http://www.jajusibo.com/46400)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2 .김지영 가극단 미래 배우 (http://www.jajusibo.com/46163)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1. 김나현 청년미래교육원 교원 (http://www.jajusibo.com/45446)

 

"구두보고한 증인 나와" - "남성이 처가 땅에 관심 갖겠나"

 영선-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첫 TV토론에서 팽팽한 설전

21.03.30 02:06l최종 업데이트 21.03.30 07:08l

박소희(sost)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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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또 말을 바꾸네요?"
오세훈 "옛 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 MBC <백분토론>에서 맞붙었다.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 재임 당시 내곡동 보금자리 주택지구 사업과정에서 그린벨트 내 처가 땅이 보상받는 과정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내곡동 땅' 의혹부터 접전이 시작됐다. 

이에 대해 박영선 후보는 "오 후보 측이 36억5천만 원의 보상금 외에 단독주택 용지까지 특별공급 받았다" 등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오 후보는 직접 준비한 판넬을 들고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의 사자성어 '삼인성호'를 반복하면서 "서울시민들은 거짓말에 속지 마라"고 호소했다.

[내곡동]"단독주택용지 추가 보상받아" vs. "수사기관서 마주칠 것"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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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는 첫 자유토론 때 "내곡동 땅과 관련 36억5천만 원 보상금 받은 것 외 추가로 (보상)받은 게 있나"라고 물었다. 오 후보는 "제 아내의 지분은 8분의 1이다. 추가로 받은 건 없다"면서 "정확히 말하면 (제가) 모르죠. 장인, 장모가 받았는데 어떻게 알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박 후보는 "또 말을 바꾼다. 오늘 SH로부터 저희가 답변을 받았다. (보상금 외) 단독주택 용지를 특별공급 받았다"고 지적했다. 오 후보는 "(단독주택 용지를) 몇 평이나 받았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정확히 말하면 (보상금 등은) 제 기억에 없고, 처갓집 재산인데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박했다.

"오 후보가 내곡지구 개발용역이 시작된 2005년 6월 22일 직전 부인과 처가 소유의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있었다"는 당시 땅 경작인과 측량팀장의 증언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이에 오 후보는 "(측량 때) 안 갔다"고 확언하면서도 "기억 앞에선 참 겸손해야 한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박 후보가 "(측량 입회 관련) 증인이 3명이다"고 재차 묻자, "(증인이) 두 명인지 알았는데 세 명으로 늘었나? 우리 속담에 '삼인성호'라고 있다.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고 받아쳤다. "안 가셨다고 하다가 기억 앞에선 겸손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 추가증거가 나오면 어떻게 하시겠나"는 박 후보의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오 후보는 대신 직접 준비한 판넬을 들고 "민주당과 박영선 캠프, KBS가 처음 문제 제기했던 본질은 어디 가고 (제가) 측량하는 데 갔느냐, 안 갔느냐로 초점이 옮겨갔다. 시민 여러분 속지 마시라"고 호소했다.

특히 '내곡동 땅' 의혹을 제기하는 천준호 민주당 의원 등을 가리켜 "박원순 전 시장 비서실장을 했거나 (서울시의) 부시장을 했던 분들"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박원순 시정 초기에 제 잘못을 뒤지기 위해 1년 동안 엄청 뒤졌는데 이후 10년 간 얘기 없다가 (내가) 선거 나오니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6년 전 일이 기억날 리 없어서 제가 여지를 두지만, '삼인성호'라고 했다"며 "언젠가는 그 분들 수사기관에서 마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오늘 SBS에서 당시 사무관이 (오 후보에게) 구두보고했다고 했다"면서 "(내곡동 개발은) '국장 전결' 사안이어서 알 수 없었다"는 오 후보의 해명도 추궁했다. 특히 "국장이 (당시) 오 시장에게 가서 보고를 했더니 '판잣집처럼 하지 말라'고 했다는 (서울시의회)속기록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오 후보는 "인구 1000만 명 도시에 40조 원을 (예산으로) 쓰는데 사업을 어떻게 다 시장이 보고를 받느냐"면서 "한번도 보고 받은 적이 없다. 그건 (해당) 사무관의 개인적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박 후보가 "(오 후보는) '땅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고 지적하자, 오 후보는 "(내곡동 땅은) 제 마음 속에 없다"면서 "대한민국 남성이 처갓집 땅에 꼬치꼬치 (물을 만큼) 관심을 가진 사람이 어딨냐"고 주장했다.

[무상급식]"시장직 내던질 일이었나" vs "복지, 어려운 분들 위주로 해야"

두 후보는 무상급식 문제와 박원순 전 시장의 성비위 사건을 놓고도 설전을 벌였다.

박영선 후보는 돌봄·육아 분야 자유토론에서 "이제 그러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가"라고 물었다. 오세훈 후보가 지난 2011년 무상급식 정책을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강행했다가 시장직에서 사퇴했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오 후보는 "무상급식이 보편적인, 소득수준에 무관한 복지의 시작이라고 봐서 반대했을 뿐"이라며 "(무상급식) 하나만 한다고 했다면 반대할 일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그게 시장직을 내던질 일이었나"라고 지적했다. 오 후보가 "(당시엔) 둑에 뚫린 조그만 구멍에 손을 넣는 심정이었다"고 답하자 "그래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잘못됐던가"라고 재차 물었다. 오 후보는 "지금 부자와 어려운 사람에게 똑같이 10만 원씩 주는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지 않느냐"며 "복지는 어려운 분들 위주로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 후보는 "부잣집과 가난한 집을 나누는 것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면서 "어린이집에서 간식을 주는 건 무상급식 아닌가"라고 물었다. 오 후보가 돌봄 공약 중 하나로 어린이집의 간식비 인상 등을 약속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이에 오 후보는 "이왕 (무상급식이) 시작됐으니 철회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박원순 전 시장이 전임자 정책을 지우는 걸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행정의 연속성은 유지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답했다. 다만, "무상급식 이후 원어민 교사가 줄어들고 화장실 못 고친 건 아느냐"면서 자신은 무상급식 예산으로 공교육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박원순]"피해호소인 3인방 안 썼어야" vs "상처 드린 점 죄송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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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후보는 "이것(무상급식) 때문에 2011년 보궐선거가 있었다"는 박 후보의 질문을 고리 삼아 역공에 나섰다. 그는 "성추행에 의한 보궐선거와 (그 때 선거가) 똑같다는 것이냐. 박 후보에게는 (두 선거의) 가치가 같은가 보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가 "보궐선거 이유를 제공한 건 똑같다는 뜻이었다"고 반박하자, 오 후보는 "(저는) 수십 차례 (저의 중도사퇴에 대해) 사죄드렸다"면서 "박 후보는 이번 보궐선거(원인)에 대해 사죄할 마음이 있느냐"고 공격했다. 이에 박 후보는 "이전에도 사과드렸고 오늘도 사과하라고 하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서울시민께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그러나 오 후보는 "그렇게 사과하는 마음이었다면 (박원순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부른)'3인방(남인순·진선미·고민정 의원)'을 (캠프에) 안 써야 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박 후보는 "그 분들은 스스로 사퇴하지 않았나. 상처를 드린 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오 후보는 (고민정 의원에게) '후궁' 발언을 한 대변인(조수진 의원)을 그대로 쓰시더라"고 꼬집었다. 오 후보가 같은 내용으로 재차 묻자 박 후보는 "그래서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더욱 더 열심히 잘 하겠단 말을 드린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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