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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1-03-30 04:59수정 :2021-03-30 08:27

29일 <한겨레> 취재 결과, 강 사장은 지난해 3월 재산공개 때는 자신과 배우자 ㄱ씨 공동명의의 서울 우면동 아파트와 ㄱ씨 명의의 논현동 빌라를 보유해 다주택자로 분류됐다. 하지만 ㄱ씨는 지난해 7월 2억600만원짜리 논현동 빌라를 친척에게 증여해 올해 재산공개에서는 1주택자로 분류됐다.
문제는 ㄱ씨가 논현동 빌라 증여 직전인 지난해 6월8일 설립된 자본금 3억원의 ㄴ법인에 지분 70%를 출자하고, 그로부터 14일 만인 같은 달 22일 전라북도 익산시 모현동1가에 있는 4층짜리 상가주택을 17억원에 사들였다는 점이다. 유한회사인 ㄴ법인의 법인등기부등본을 보면 ㄱ씨가 유일한 이사로 등재되어 있으며 설립목적에는 △부동산개발·투자·매매업 △부동산 임대업 △건축물 유지보수 공사업 △서비스업·공간임대업 등이 명시되어 있다.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법인인 셈이다. 법인 주소지도 ㄴ법인이 매입한 전북 익산시 상가주택으로 되어 있다. 법인을 통한 우회적 주택 구매로 다주택 논란을 피한 셈이다.
이와 별도로 전북 새만금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주도하는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장의 배우자가 인근 도시에서 부동산 투자회사를 세워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이해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사장은 2018년 9월 초대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올해 9월 임기가 만료된다. 지역 언론에서는 강 사장을 내년에 있을 익산시장 선거 후보로도 거론하고 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강 사장의 사례가 불법은 아니지만 다주택을 숨기려는 편법으로 볼 수 있다”며 “특히 강 사장의 경우 국토부 관료 출신에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담당하는 공사 사장을 맡고 있는 현직인데 배우자가 부동산 투자법인을 세워 운영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 사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사 사장 임기가 끝나면 고향(익산시)에서 살려고 (ㄴ법인의 지분 30%를 가진) 지인과 함께 상가주택을 구입한 것”이라며 “법인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2주택자인 것은 아니다. 내가 들어가도 전세로 들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인구도 줄어드는 익산에 집을 산 것을 누가 투기라고 할 수 있냐”고 반박했다. 서울 우면동 아파트는 “아들이 살고 있어 처분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익산 지역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ㄴ법인이 지난해 매입한 상가주택이 있는) 모현동 쪽이 최근까지 택지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라 익산에서 부동산을 보유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며 “급격한 상승을 기대하긴 쉽지 않지만 조금씩 오를 것을 기대해볼 만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주빈 강재구 기자 yes@hani.co.kr
※부동산 투기 제보를 부탁드립니다
오직 SR만이 수서발 전라선을 달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처별 성적을 매기자면 꼴지는 국토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실패로 드러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은 서민들과 청년들의 입에서 "이게 나라냐?"는 절망의 한숨만 나오게 하고 있다. 부동산 블랙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국토부가 관장하는 다른 분야의 정책들은 개혁의 ㄱ자도 꺼내 보지 못하고 좌초하고 있다. 철도가 그렇다. 지난 수 십 년을 풍미한 철도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시장 맹신 정책이었다.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철도에서 국가의 역할을 종결짓고 탈출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 설계 도면이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 철도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교통수단으로 주목받았고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그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급격한 가치 전환의 시대에 낡은 정책을 대물림받은 가보로 숭배하고 있는 관료, 혹은 관료주의는 오늘도 철도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철도의 발목에 쇠사슬을 묶은 상징적 정책은 수서발 고속철도, 즉 SR의 출범이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고 철도 민영화와 경쟁체제를 이상향으로 설정했던 국토부 철도 관료들의 바램이 실현되었다. 수서고속철도 분리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컸던 2013년, 나는 여러 차례의 언론 기고와 <철도의 눈물>이란 책을 통해 수서 고속철도 분리가 한국철도의 네트워크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말했다. 그중에서도 고속선만 운행하는 SR이 포항, 창원, 전주, 여수 등의 도시를 외면하면서 결국은 지역 차별 문제에 직면하고 말 것이라고 예견했다.
네트워크 산업은 망 자체의 유기적 호환성이 그 건강함을 유지 시킬 수 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고속열차는 고속선 뿐만 아니라 고속선과 연계된 일반선을 직결 운행해 고속 전용선이 없는 포항, 창원, 진주, 전주, 여수, 순천 지역에도 고속철도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혜택은 서울역과 용산역이 기종착역인 코레일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국토부가 철도산업을 발전시키겠다며 분리시킨 SR의 등장은 포항이나 여수에서 수서까지 직통으로 갈 수 없는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SR분리 강행 때, 국토부가 주장하는 국민편익 우선이란 방침은 고려되지 않았다. 결국 곪고 곪은 문제가 터져버렸다. 지역사회의 압력은 국토부에 대안을 요구했다. 국토부는 이제라도 합리적 판단과 시민편익을 위한 조치에 나서야 했는데 어떻게든 분리체제를 공고히 하는 방안으로 지역사회에 응답했다. 대통령 임기 말 관료들의 놀이터가 된 정책 현실은 황당하기만 하다.
국토부는 지역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SR이 운행되지 않는 전라선에 수서발 고속열차를 운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수서 직통 고속열차 운행은 전라선뿐만 아니라 포항, 진주, 창원에서도 필요하다. 지역을 갈라 특정 노선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통합의 인프라인 철도를 분열의 매개로 악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국토부가 경상지역을 빼고 전라선에 우선 열차를 투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수서발 지역선 운행사를 SR로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현재 SR의 차량 여유는 고작 10량 1편성이고 하반기에 가서나 한 편성을 더 늘릴 수 있다. 전라선에 상징적으로 수서발 고속열차를 운행하는 것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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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선로라는 물리적 망이 전제된 시스템이다.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흐름이 전체 망을 주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 인체 혈관의 특정 부분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면 막힌 부분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한국철도망을 일관되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관은 코레일이다. 역사와 운행노선, 차량 보유량에서도 SR에 비해 압도적이다. SR의 차량정비와 유지보수, 객실 서비스까지 코레일이 맡아하는 실정이다. 수서발 전라선 직통열차 문제 해결책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고속철도 차량 운영에 여유가 있는 KTX가 수서와 지역을 연결하면 된다. 전라선뿐만 아니라 포항과 경전선 구간까지 연결할 수 있다. 진정한 국민편익이 실현되는 것이다.
안전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일반선은 고속열차 뿐만 아니라 코레일의 일반열차, 화물열차가 공용하는 선로이다. KTX는 이 같은 노선을 고속열차가 개통된 이래 계속 운행해 왔기에 충분한 경험과 전문성이 확보되어 있다. 반면 SR이 전라선을 운행하기 위해서는 구간 면허 인증도 받아야 하고 운전에 투입되는 기관사들이 상당 시간의 실무견습도 받아야 한다. 철도 운행은 단순히 열차만 투입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역과 관제실과의 조응, 유지보수 팀과의 밀접한 협의, 기관사의 누적된 운행 경험을 통한 노선 이해, 그 밖에 갑자기 발생하는 이상 상황에 대처하는 노하우가 오랜 시간 축적되고 문화로 정착될 때 안전이 보장된다. 코레일과 SR의 수송지표를 비교해 보더라도 지역 도시와 수서간 고속열차 직통 운행은 누가 주력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것이 합리적인지 불을 보듯 뻔한 사안임에도 국토부 관료들은 요지부동이다. 코레일이 아니라 오직 SR만이 수서발 전라선을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KTX가 수서역과 지역 일반노선을 연결할 경우 국토부가 숭배했던 경쟁체제의 허상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도색만 다른 열차가 같은 구간을 달릴 때 무엇이 경쟁의 효과인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때 공공성을 기초로 한 철도개혁이 제시됐지만 관료들의 시간끌기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내 딛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제기된 전라선 수서발 고속열차 운행 방침은 국토부의 일방주의를 벗어나 시민편익의 관점에서 재조정되어야 한다. 국토부는 민주공화국의 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수호하는 부처로 거듭나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1/03/29 [14:49]
1. 신혜원 작가의 약력
1978년 2월 4일 서울 출생 1996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입학 1996년 민족무예경당 동아리 백두대간 활동 2000년 홍익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역임. 한총련 대의원으로 수배 2001년 홍익대 총여학생회 회장 역임 2002년 투옥 2004년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교육선전국장 2005년 미술운동단체 그림공장 활동 2012년 콜트 콜텍 전시회 참여 2013년 7월 국정원게이트 버스킹 참여 2013년 12월 종북예술제 참여 2014년 그림책 『들꽃의 노래』 출간 2015년 4월 개인전시회 ‘들꽃의 노래’ 2015년 영화 ‘불안한 외출’ 포스터 작업 2017년 5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벽화 작업 2017년 7월 미술운동단체 ‘베란다항해’ 결성 2017년 10월 방미 트럼프 탄핵 청년원정단 실천 2017년 11월 한미일 삼각동맹 풍자 전시 ‘마름전’ 진행 2018년 1월 반미반일통일전시 ‘지금, 우리’ 진행 2018년 4월 제주 4.3 전시 ‘이제사 고람수다’ 진행 2018년 6.13 지방선거 강남 ‘다’ 선거구 민중당 후보로 출마 2018년 1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순회공연 ‘꽃물결’ 활동 2019년 6월 세월호광장 금요실천 시작 2019년 8월 통일선봉대 참가 2020년 1월 유방암 말기 판정, 투병활동 시작 2021년 3월 22일 오후 12시 24분 영면
2. 신혜원 작가의 삶
신혜원 작가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삶은 조국과 민중, 조직과 동지를 위해 헌신해 온 삶이었다.
신혜원 작가는 자주·민주·통일을 염원하며 자신의 한 생을 바쳤다.
신혜원 작가는 1996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한 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96년 당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은 3월부터 학원자주화 운동을 비롯해 반미, 조국통일운동을 맹렬히 펼쳤다. 신혜원 작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신혜원 작가는 2000년 홍익대 동아리연합회 회장을 결심한다. 그 당시 한총련 대의원이 되면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자가 되고 차가운 감옥으로 갈 것을 알면서도 결의했다. 결국 2002년 신혜원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된 후 투옥이 되었다.
학생운동 이후 신혜원 작가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염원을 미술작품으로 표현해왔다.
학생운동 이후 미술단체인 ‘그림공장’ 활동을 하면서 반미와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했다. 그 외에 2012년 콜트 콜텍 전시회, 2013년 7월 국정원게이트 버스킹, 2013년 12월 ‘종북예술제’, 2018년 1월 반미반일통일전시 ‘지금, 우리’ 만나 등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다.
특히 신혜원 작가는 통일의 열기가 높아졌던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순회공연 ‘꽃물결’ 활동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기다리며,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작품을 다양하게 창작했다.
신혜원 작가는 민중을 한없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신혜원 작가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미술치료사가 되었고 위안부 할머님들을 ‘들꽃’으로 형상한 그림책 『들꽃의 노래』를 펴내기도 했다. 또한 세월호참사 이후에는 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했다.
윤미향 의원은 신혜원 작가에 대해 “그 길이 이 땅의 민중과 함께 하는 일이라면, 세월호 노랑리본이 되고, 우리민족 자주를 세우고, 통일을 위한 길에, 베트남의 미국전쟁에서 한국군과 미군에 의해 인권을 짓밟힌 희생자들을 위한 길에, 재일조선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길에, 몸으로 그림으로 삶을 살아냈더이다”라고 기억했다.
신혜원 작가는 조직의 요구에 늘 충실한 사람이었다.
신혜원 작가를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조직의 숨결과 방향과 일치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신혜원이다. 단 한 치의 타협을 몰랐고 물러서지 않았다.”
신혜원 작가는 좋은 시기이든 어려운 시기이든 조직의 요구를 관철하는 데 흔들림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신혜원 작가는 갑자기 제기된 전시회, 작품 제작 요구를 밤을 새워서라도 완수해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잠은 대체 언제 자느냐’라고 신혜원 작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고생쯤은 달게 여기며 생활해왔다.
이렇듯 신혜원 작가는 묵묵히 자기 일을 완수해왔다.
신혜원 작가는 동지를 귀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신혜원 작가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지들에게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뜨거운 사랑이 담겨있었다. 또한 동지들의 고민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도움을 주는 작가였다. 한 마디로 ‘웅심 깊은 사랑’을 주는 사람아 신혜원 작가였다.
자주민주통일의 길에 동지와 함께 가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한 그림’을 기치로 한 젊은 미술인 단체인 ‘베란다항해’를 조직화하기도 했다. 조직가로서도 훌륭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신혜원 작가의 동지애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그려주는 인터뷰’라 할 수 있다. ‘그려주는 인터뷰’는 신혜원 작가가 동지와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대담 내용과 함께 그 동지의 장점과 특징을 그림으로 표현한 인터뷰였다. 초상화와 함께 그 동지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적어서 동지에게 주곤 하였다. 본지에 ‘그려주는 인터뷰’를 기고하기도 했다.
“자신의 몸이 아픈 와중에도 후배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거금을 준 누나”, “후배가 몹쓸 병에 걸렸을 때 후배를 위해 자진해서 모금활동을 한 언니”, “활동을 어려워하는 후배를 위해 달려가 매일 격려하며 활동을 북돋아 줬던 선배”, “늘 웃으며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던 후배”라며 많은 이들이 신혜원 작가를 기억하고 있다.
신혜원 작가는 미술 실력도 아주 뛰어났다.
홍익대학교 미대를 들어갈 정도라면 기본적으로 그림 실력이 우수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혜원 작가는 더 높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강도 높은 훈련과 연습을 해왔다. 미술학원을 나가면서 그림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매주 미술학원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신혜원 작가가 실력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은 그림으로 민중에게 더 복무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신혜원 작가는 높은 실력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림책 『들꽃의 노래』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50년 넘게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돼 온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전 박람회이다.
신혜원 작가는 영화 ‘불안한 외출’의 포스터, 도서 『일하는 사람의 철학이야기 1,2』 표지디자인과 삽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벽화 작업’ 등의 작품도 남겼다.
신혜원 작가는 실천에서도 앞장선 사람이었다.
한반도 정세가 격화되던 2017년 10월 신혜원 작가는 ‘방미 트럼프 탄핵 청년원정단’에 함께 했다. 당시 미국의 입국 거부로 방미가 불발되자 동료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반미투쟁에 앞장섰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 강남 ‘다’ 선거구 민중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진보정당을 강화하기 위해 직접 후보로 출마해 활동을 한 것이다. 또한 2019년 6월부터 세월호광장에서 금요실천을 ‘베란다항해’ 동료들과 매주 진행해왔다. 2019년에는 통일선봉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렇듯 신혜원 작가는 개인의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거리 예술가’, ‘민중 예술가’로 한생을 살았다.
신혜원 작가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습이 있었다. 신혜원 작가는 한순간도 책을 놓지 않았다. 특히 투병 중에도 조국의 내일을 밝히는 글을 빠짐없이 읽었다.
신혜원 작가의 학습은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신혜원 작가의 삶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신혜원 작가의 자주·민주·통일 염원은 다른 사람들의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3. 국민주권연대 추도사
애석하고 비통합니다.
밝은 얼굴로 동지들을 반겨주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이리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신혜원동지는 그림공장 활동에 이어 베란다항해를 만들고 자신이 가진 예술적 재량과 함께하는 동지들의 재량을 조국을 위해 바치고자 헌신적으로 살았습니다.
동지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한 고귀한 뜻과 뜨거운 지향을 가지고 살았던 동지였습니다.
조직가로서 능력, 예술가로서의 재량을 보여준 동지를 잃은 것은 우리의 큰 아픔이고, 진보운동의 큰 손실입니다.
우리는 신혜원동지의 뜻을 이어 굴함없이 자주민주통일의 길로 전진하겠습니다.
동지의 염원이 담긴 민들레를 더욱 강화하고 동지의 몫까지 온 넋을 다해 투쟁하겠습니다.
동지의 심장은 비록 멈추었지만 동지는 우리와 함께 자주민주통일의 길에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민주통일 승리와 더불어 동지를 영원히 추억할 것입니다.
2021년 3월 22일 국민주권연대
<관련기사> [부고] 진보통일 예술인 신혜원 작가 운명 (http://www.jajusibo.com/54871)
[추모시] “원, 그대는”, “붓의 항해”... 신혜원 작가를 그리며 (http://www.jajusibo.com/54875)
“신혜원처럼 타협 없는 예술투사들이 되겠다” 추모의 밤 열려 (http://www.jajusibo.com/54891)
신혜원 작가의 자주민주통일 세상을 향한 신념을 늘 기억하겠다 (http://www.jajusibo.com/54931)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5. 김맹구 대진연 문예위원장 (http://www.jajusibo.com/48641)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 4. 서지연 주권방송 편집국장 (http://www.jajusibo.com/47137)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3. 이혜진 노래패 우리나라 가수 (http://www.jajusibo.com/46400)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2 .김지영 가극단 미래 배우 (http://www.jajusibo.com/46163)
[신혜원의 그려주는 인터뷰] 1. 김나현 청년미래교육원 교원 (http://www.jajusibo.com/4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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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첫 TV토론에서 팽팽한 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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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
| ⓒ 국회사진취재단 | |
박영선 "또 말을 바꾸네요?"
오세훈 "옛 말에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 MBC <백분토론>에서 맞붙었다.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 재임 당시 내곡동 보금자리 주택지구 사업과정에서 그린벨트 내 처가 땅이 보상받는 과정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내곡동 땅' 의혹부터 접전이 시작됐다.
이에 대해 박영선 후보는 "오 후보 측이 36억5천만 원의 보상금 외에 단독주택 용지까지 특별공급 받았다" 등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오 후보는 직접 준비한 판넬을 들고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의 사자성어 '삼인성호'를 반복하면서 "서울시민들은 거짓말에 속지 마라"고 호소했다.
[내곡동]"단독주택용지 추가 보상받아" vs. "수사기관서 마주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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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 ⓒ 국회사진취재단 | |
박 후보는 첫 자유토론 때 "내곡동 땅과 관련 36억5천만 원 보상금 받은 것 외 추가로 (보상)받은 게 있나"라고 물었다. 오 후보는 "제 아내의 지분은 8분의 1이다. 추가로 받은 건 없다"면서 "정확히 말하면 (제가) 모르죠. 장인, 장모가 받았는데 어떻게 알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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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29일 밤에 열린 TV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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