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5일 목요일

어제가 박근혜 3년 되는 날, 이렇게 조용할 수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 4년차 언론 보도 비교해보니… 탈탈 털다가, 여론조사로 퉁 치더니, 이젠 안하나?

정상근 기자 dal@mediatoday.co.kr  2016년 02월 26일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5일로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이제 집권 4년차에 들어서며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로 달려가는 시기다. 어느 정도 성적표가 공개되는 시점이며 대통령 단임제인 한국 정치제도 하에서 남은 2년은 지난 3년을 수습하고 가다듬는 시기다.
집권세력이 1년 2년 지나면서 언론은 그 동안의 국정운영을 평가하고 앞으로를 전망하며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집권 3주년, 2011년 이명박 정부 집권 3주년 때도 언론은 각각 지난 3년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그리고 올해도 언론은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향후 2년의 전망을 내다보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세 정부 모두 집권 3주년 때 언론으로부터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는데 있다. 바로 소통 문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권이든, 어느 언론이든 비슷한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세 정부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다른 점이 많다. 언론사 별로 다르고 같은 언론이라도 누가 집권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렸다.
미디어오늘은 집권 3주년 시기인 2006년 2월, 2011년 2월, 2016년 2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의 기사를 분석했다. 올해의 경우 25일 까지를 기준으로 했다. 대체로 언론은 집권 몇 주년 평가 기사를 일주일~3일 전까지는 내놓는데 비해, 올해의 경우 4개 일간지 중 한겨레 만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3년 평가를 진행 중이다.
대통령의 소통방식 양방향→단방향→무방향
세 정부의 집권 3년차 보도를 분석해보면, 각 대통령이 언론을 대하는 특징에 명확한 차이가 드러난다. 시대가 지날수록 대통령과 언론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1월18일 신년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취임 3주년인 2월26일에는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갔다. 아울러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기도 했다.
청와대 참모진도 언론과의 접촉이 넓었다. 집권 3주년을 맞아 중앙일보는 청와대 수석들과 중앙일보 관계자들의 3대3대담을 하기도 했는데, 여기에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김영주 경제정책수석, 김용익 사회정책수석이 참가했다. 당시 중앙일보에서는 박태욱 논설위원실장,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김교준 정치에디터가 참가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왼쪽부터) ⓒ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집권 4년차 핵심과제로 꼽았는데,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양극화 현상을 진단하는 기획 연재물을 내놓았다가 당시 한나라당으로부터 “대자보 정치하냐”고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즉 노무현 정부는 소통에 비판을 받았지만 소통을 안 한다란 비판 보다는 보수세력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소통 부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때만 해도 동아일보는 “우리도 선진국의 대통령이나 총리처럼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 없이 기자들과 날선 문답을 주고받는 기자회견을 보고 싶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2011년 2월2일 사설 ‘“개헌 늦지 않다”는 대통령 발언, 현실감 떨어진다’)
이명박 대통령도 불통을 의식해서인지 2011년 2월20일 출입기자단과 산행을 한다. 하지만 이때도 질문 개수를 제한하고 스스로 불을 지핀 개헌논란에 대한 질문에 “등산 갔다 와서 그런 딱딱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분위기에 안 맞다”라고 피해갔다. 동아일보는 이때도 사설(2011년 2월21일 ‘MB 3주년 기자간담회의 문답 4개)을 통해 “우리 국민은 이 대통령이 선진국의 대통령이나 총리처럼 손드는 기자들을 무작위로 지명하고 당당히 답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4년차를 맞아 ‘대통령과의 대화, 2011대한민국은’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이 자리에는 정관용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수진 SBS 앵커만이 참여했다.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는 결이 다른 소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체로 일방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피력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소통이 아예 없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질문을 주고받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놀라운 것은 이젠 언론에서도 특별히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청와대 참모진이 인용된 청와대 기사들이 나왔다. ‘창성동 특별팀’으로 불리던 특보단과 관련된 내용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이후 수석들의 정례브리핑 정도만이 유일한 청와대와 기자단 사이의 소통창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책 검증’은 여론조사로 바뀌고
집권 3년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를 살펴보면, 역시 세 정부 간 언론보도의 차이는 크다. 일단 박근혜 정부의 경우, 동아일보는 25일 ‘내우외환’으로 지난 3년을 평가했다. 북한 문제 등 외교적 상황과 국회입법이 마비 등 현 상황의 탓을 외부로 돌린 것이다. 2면에는 향후 2년에 대한 전문가 제언이 들어갔고, 다만 사설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들어 박근혜 정부를 질타했다.
2016년 2월25일자.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25일 지난 3년 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변화를 분석했다. “박 대통령은 초강수의 결단을 이어왔다. 원칙과 명분을 앞세운 특유의 위기 돌파 방식”을 칭찬하며 “3년 간 요동쳤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체로 박 대통령이 초강수를 둘 때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었고 기업 구조조정을 과제로 들었다. 조선일보는 25일 까지 이렇다 할 3년 평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집권 3년차에 대한 세밀한 검증에 들어갔는데 22일 외교안보 분야에 이어 23일 경제분야에 대한 시리즈 검증을 하고 있다. 한겨레의 3년 평가 머리기사는 22일 ‘결딴난 균형외교…한국, 미‧일동맹 ‘하위 파트너’ 전락’이고, 23일 ‘“민생지수 계속 악화…경제활성화도 경제민주화도 실패”’다. 24일에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박 대통령이 지난 3년 동안 누구를 만나고 어떤 얘기를 했는지 보도했다.
2016년 2월24일자. 한겨레.
이명박 정부의 경우, 한겨레는 2011년 2월21일 ‘민생무능’의 주제로 집권 3년을 평가했다. ‘민생경제 ‘연쇄부도’…헛말 된 ‘경제대통령’’의 큰 주제로 구제역 총체적 부실대처, 물가관리 실패, 일자리, 자영업자 문제, 부동산 정책, 가계부채 증가로 나눠 분석했다. 다음날에도 ‘최악의 인사’를 주제로 이명박 정부 3년을 평가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그해 2월19일 6면 한 면만 할애해 이명박 정부 3년 평가를 했다. 기사의 제목은 ‘‘경제’로 내달린 3년, ‘정치’가 남은 2년…’, 대체로 경제지수만 그래프로 나열하고 기사는 원고지 5~6매 정도로 짧았는데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가 가장 빼어난 실적을 남긴 분야는 경제다. 이 대통령은 CEO 출신답게 임기 첫 해 닥친 세계 금융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금융위기를 넘어선 나라 중 하나로 평가된다”고 했고 다만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정치의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3년 간 끊임없이 제기돼온 소통의 문제는 이 정권이 풀지 못한 해묵은 숙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안국포럼 인사들의 3년 평가가 밑에 들어갔고, 소설가 복거일씨의 평가가 하단에 배치됐다. 그리고 사설에서도 이명박 정부를 높이 평가(“위기 속에서 국가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했고 앞으로 2년을 조언(“그러나 어떤 정권도 임기가 흐를수록 힘은 떨어지고, 이런저런 질병이 찾아온다”)하는 수준에 그쳤다.
2011년 2월19일자.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여론조사로 대체했다. 동아일보는 전문가 여론조사와 국민 여론조사를 병행했고, 중앙일보는 2면에 작은 크기의 여론조사로 3년 평가를 대체했다.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기사 머리기사는 ‘G20-FTA 성과 4.4 ‘최고점수’…서민생활 안정 2.3 ‘최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4년차, 언론의 표정은 전혀 다르다. 한겨레의 경우 2006년 2월13일부터 노무현 정부 3주년 진단과 해법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냈는데, 1부만 12회에 달하는 대형 기획이었다.
조선일보는 2006년 2월20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노무현 정부 정책 전반을 평가했다. 20일에는 정치‧외교‧경제‧분배라는 노무현 정부의 4대 비전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고 점수로 수치화하기도 했다. 21일에는 남은 2년에 대한 전망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 때 안국포럼 인사들의 말을 빌려 평가했지만 2006년 노무현 정부 때는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포진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냈다.
사설에서의 평가는 인색하다. 조선일보는 21일 사설 ‘노무현 정부 3년 성적표, 뿌린 대로 거뒀다’에서 “사사건건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싸움을 붙이고 그 전투 에너지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으니”, “청와대 관계자들은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 ‘관성적인 비판’이라는 반응이다. (중략) 청와대만 그 결과를 인정 못하겠다니 바로 그런 아집 때문에 2주년 때나 3주년 때나 똑같은 과목에 똑같은 낙제 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6년 2월14일자.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공약 150개를 뽑아 점검했다. 2006년 2월14일 동아일보는 ‘노 정부 3년, 핵심공약 150개 어떻게 돼가나’ 기사를 통해 “2002년 대선 당시 내걸었던 150개 핵심 공약 중 임기 3년이 지난 2006년 2월 현재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공약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때나 박근혜 정부 4년차 때 볼 수 없는 기획이다. 2월16일에는 한미관계에 초점을 맞춰 3년을 평가했고 18일에는 비서실-정부의 잦은 직제변화를 꼬집었다. 2월25일에는 “노무현 대통령 직계 인사들이 청와대와 중앙부처 1급 이상 공직자만 320명 중 35명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청와대 참모진들과 합동 좌담을 했으며, 2월25일에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정부와 비교해 4년차 이후 청와대의 국정운영 방향과 유의점을 분석했다. 이런 변화를 감안했을 때, 박근혜 정부 3년차에 대한 평가도 여론조사로 이뤄지지 않을까?
‘코드인사’는 특별팀으로
그렇다면 집권 3년차 기획기사가 아닌 일반 기사 속 각 정부의 모습은 어땠을까? 노무현 정부 때는 다들 인식하다시피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 형국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언론의 비판의 대상이 됐다.
조선일보는 2006년 2월27일 사설 ‘정치철학보다 민생에 관심 갖는 대통령 되길’에서 “대통령 이야기에 동원된 용어, 개념, 논리 등은 웬만한 사람으로선 밑줄을 치며 읽어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중략) 대통령이 일하고 남는 시간에 혼자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가다듬고 수양하는 것은 훌륭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주입교육시키려 드는 건 조금 생각해 볼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말을 어렵게 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2006년 2월17일자. 조선일보.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수석보좌관들과 만나 “요즘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이 야당”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조선일보는 그해 2월17일 사설 ‘“제일 해보고 싶은게 야당”이라는 대통령’에서 “이 정권은 임기 반환점을 돌자 벌써 국정을 책임지기가 부담스러운지 ‘야당 해보고 싶다’느니 ‘남을 비판해보고 싶다’느니 하는 퇴행성 투정을 부리고 있다. 남이 할 때는 만만해보이더니 막상 내가 맡고 보니 되는 일은 없고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는 심정인 모양이다”라고 했다.
청와대가 연재한 양극화 기획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정책 얘기가 담긴 것도 불만인 듯 했다. 조선일보는 2월23일 사설 ‘양극화 선동 위해 사실까지 왜곡하나’에서 “‘양극화 선동’에 정신이 팔린 이 정권은 역사적 사실조차 입맛대로 꿰맞춰가며 30~40년 전 정권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툭 하면 노무현 정권을 거론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하지 않은 비판이다.
동아일보는 단어가 훨씬 격정적이다. 증세 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바꾼 때가 있었는데 노 대통령이 비판받을 지점이 있지만 동아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역시 믿을게 아니었다”라고 냉소한다. 장관 청문회 이후 한나라당이 임명을 반대하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며 “민심을 거슬러 역주행하겠다는 권력의 자폐증상”이라고 표현했다.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보기 어렵던 비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략) 5명의 (장관)내정자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그러면서 ‘검증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청문회를 제안했던 것인데 정쟁의 기회로 변질돼 아쉽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흠들을 정쟁이란 말로 덮으려는 역시 ‘노 대통령 다운’ 발언으로 들린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를 포함해 언론이 노무현 정부에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코드’다. 인사를 돌려막고 측근만 기용한다는 비판인데, 이는 노무현 정부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도 비슷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 수행비서에 안국포럼 출신의 김재윤 행정관을 임명했지만 동아일보는 그냥 ‘그랬다’고 보도했다. ‘코드’, ‘회전문’이란 단어는 쓰지 않았다.
2011년 2월11일자. 동아일보.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과 별도로 특보단을 구성해 창성동 사무실에서 일종의 별동대를 가동했을 때도 언론은 ‘그냥 그랬다더라’였다. 동아일보는 2011년 2월11일 ‘청 밖의 청 ‘창성동 별동대’를 아시나요?’기사에서 “청와대 정문에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방향으로 500m 지점에 있는 5층 짜리 옅은 노란색 건물 주변은 요즘 들어 부쩍 크고 작은 차량이 부산하게 들고 난다. (중략) 이명박 정권의 몇몇 핵심 인사들이 올 초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도 2월23일 ‘창성동 특별팀 첫 소집 MB “수시로 들르겠다”’ 기사에서 “이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앞으로 대통령 조직과는 별개로 특보단의 도움을 공식적으로 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 특유의 경쟁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고 호평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이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행동 하나 말 하나 비판하며 조롱까지 거듭하던 일부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했다. 소통문제, 구제역 대책 미흡 부분에 대해, 원세훈의 국정원이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를 침입하는 국제범죄를 일으켰을 때 정도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을 물었다.(조선일보 2월22일 사설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노하우가 전혀 없는 지방행정가에게 지휘봉을 맡겼을 때부터 예견됐던 사태”)
그 외에는 측근 비리가 일어나도 “정권의 나사가 풀려있으면 이 대통령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한 레임덕은 곧바로 시작될 것이다”(동아일보 2월18일자 사설)는 충고만, 물의를 일으키고 물러난 이명박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이 과학기술위원장에 임명됐을 때도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어떨까? 올 2월의 보도를 보면 이들 언론은 대통령을 가운데 놓고 주변 사람들 드잡이에 나선 모습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라는 대외적 변수가 있긴 하지만 유독 집권 4년차에 접어듬에도 대북‧대외관계나 경제 위기의 책임을 야당과 참모들에게만 돌리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서명운동 정치에 나섰을 때도 동아일보는 ‘비박에 ‘살아오라’는 김무성, ‘권력자’ 비난하며 따라하나’라며 조선일보는 ‘김무성, 당 대표 포기하고 계파 보스 자처하는건가’라며 여당 대표를 혼을 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생일인 2월3일 축하난을 보냈지만 이를 청와대가 거절하자 동아일보는 사설 제목을 ‘용렬한 ‘대통령 생일난’ 거절, 그런 정무수석이면 경질하라’로 뽑으며 정무수석을 앞세웠다.
▲ 2016년 2월3일자. 조선일보.
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에 대해 조선일보는 ‘더민주, 원한 가진 사람들 모아 뭐하자는 건가’라고 화를 내고, 동아일보는 ‘더민주, 쟁점법안 뭉개면서 정권 책임 묻겠다는 건가’라며 경제위기의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대통령을 겨냥한 사설들의 경우 대체로 “야당을 설득하라, 소통에 나서라”는 듣기 좋은 훈수 정도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불러 법안처리를 닦달하고 다른 법안과 연계하라고 지시했다면?,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말이 하루만에 오락가락 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축하난을 거절했다면? 언론은 결코 점잖게 ‘훈수’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조롱과 저주가 아닌 권력자를 상대로 비판을 퍼붓는 것이 언론의 기능에서도 맞다. 언론은 2016년보다 2006년에 훨씬 언론다웠다.



북, 60만배 전자현미경 조종 프로그램개발

‘나노약품, 의학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생물공학 발전 추동’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2/26 [07: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일본의 한 회사의 전자현미경.     © 이정섭 기자

 

조선이 극비에 부쳐진 전자현미경 조종 프로그램을 개발 나노약물(나노약품)을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의학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생물공학을 비롯한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적극 추동할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

북 대외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지난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우리의 것을 귀중히 여기고 빛내어나가는 여기에 조선민족제일주의가 있으며 내 나라, 내 조국의 존엄을 떨치고 부강번영을 앞당기는 참다운 애국이 있습니다.”라는 어록과 함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조선의 오늘은 최근 공화국의 의학과학원 의료기구연구소의 30대 청년연구사들이 60만배 전자현미경을 조종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원래 60만배 전자현미경 조종프로그램은 이 현미경을 제작한 회사에서 비밀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비밀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람개발과정은 어렵고도 복잡한 기술적 문제들이 수없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그 개발비용도 엄청난 것으로 하여 그 누구도 감히 엄두를 못내는 것으로 공인되어왔다고 전해 기존 개발국 외에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학 기술임을 시사했다.

매체는 “이로부터 이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는 많은 나라들에서는 고장이 나거나 프로그램이 파괴되면 해당 나라의 제작회사에 의뢰하여 막대한 보수를 지불하고 수리하거나 기술봉사를 받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왔다.”며 이 기술이 독점적 지위에 있었음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학과학원 의학생물학연구소에서 이용하던 60만배 전자현미경을 조종하는 프로그램이 파괴되었을 때에도 역시 사정은 같았다.”며 “하지만 민족적자존심을 귀중히 여기는 우리의 미더운 청년과학자들은 자체의 힘과 기술로 기어이 조종프로그램을 개발할 열의로 심장을 불태우며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전자현미경의 컴퓨터조종체계를 해석하고 자료복원방법을 확립하였으며 지난해 9월에는 마침내 60만배 전자현미경의 정상가동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조선의오늘은 특히 “60만배 전자현미경을 조종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각종 나노약물들의 질을 훨씬 개선하고 새로운 나노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으며 나아가서는 의학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생물공학을 비롯한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적극 추동할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었다.”고 게재했다.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심층분석] 100년의 시간-이토와 아베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정운현 | 2016-02-25 13:46:1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100년 전 상황과 비슷한 형국을 띠고 있다. 한 세기 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오늘에 와서 재현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에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눈치만 살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반도는 미-중 양대 강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한편 일본의 아베 정권은 미국을 등에 업고 극도의 우경화와 함께 또다시 팽창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보수정권은 뚜렷한 외교노선도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대일관계에서 일본에 대해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뒤에서는 역사왜곡 등 일본 극우의 아류를 자처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일본의 극우정권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군사대국화를 모색해 왔다. 그러나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이 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현재 일본은 헌법에 따라 정식 군대를 가지 수 없어 편법으로 자위대를 운용하고 있다. 말이 자위대지 자위대의 군사력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4위를 자랑하고 있다. 일본은 자위권 행사를 구실로 자위대의 해외 진출을 줄기차게 모색해 왔다. 그 길을 터준 것이 2013년10월 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2+2)였다.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일본의 숙원인 ‘집단적 자위권’을 미국이 승인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국이 공격당했을 때 대신 반격할 수 있는 권리로서 유엔 회원국이면 모두 누릴 수 있는 권한이다. 그러나 전범국가인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기존 평화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승인한 것은 전쟁포기, 군대보유 금지, 교전권 부인 등 일본의 평화헌법을 부정하고 ‘전쟁 개시권’을 승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군사동맹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아베 총리(왼쪽)와 오바마 대통령의 환담 모습
미국이 이같은 무리수를 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은 근래 신흥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대항마로 키울 필요를 느껴 왔다. 게다가 일본의 방위예산 증액을 통한 자국의 국방비 지출 감소,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에 따른 대응책 차원 등이 고려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공개적으로 편들고 나섰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사(史)조차도 지지하는 셈이 된다. 이처럼 일본이 주변국 침략 야욕을 드러내면서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당사자인 한국 정부는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인접한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 전쟁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일본은 집단 자위권 행사의 일환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개입을 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현재 한국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갖고 있다. 따라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체제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증대된다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개입력 강화를 의미한다. 미국은 꼭 110년 전에 이미 그같은 선례를 남긴 바 있다. 1905년 7월 29일 맺어진 ‘카쓰라-태프트 밀약’이 그것이다.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겸 임시외무대신 가쓰라 다로(桂太郎)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후일 미국의 제27대 대통령) 사이에 맺어진 소위 ‘카쓰라-태프트 밀약’은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적 지위 인정한 것으로 전형적인 미국의 ‘일본 편들기’라고 할 수 있다. 문서나 조약의 형태가 아니라 서로의 합의를 기록한 각서로만 존재해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이 밀약은 1924년 미국의 외교사가인 타일러 데닛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문서들을 연구하다가 발견해 <커런트 히스토리>지에 발표하면서 그 실체가 공개됐다. 두 나라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에 합의하였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가쓰라 총리는 대한제국 정부가 단독으로 방치되면 다시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어 전쟁이 발발할 수 있으므로, 일본은 대한제국 정부가 임의로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수 없게 막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태프트 특사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protectorate)’으로 되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동의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아시아의 새 강자인 일본의 이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면서 일본을 러시아에 대한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소위 ‘차도살인(借刀殺人)’, 즉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압하는 계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한 달 뒤 1905년 9월 5일에는 포츠머스조약 체결을 통해 러시아로부터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런 식으로 열강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보호국의 지위로 전락시켰으며, 5년 뒤 1910년 8월 29일에는 ‘한일병탄’으로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태프트-가쓰라 밀약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선을 희생양 삼아 일본과 거래한 첫 사례이다.
▲가쓰라-태프트조약 체결자인 가쓰라 타로 일본 총리(오른쪽)과 윌리엄 태프트 미 육군장관
지난 2월말 미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의 발언은 110년 전의 ‘카쓰라-태프트밀약’을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동북아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한국과 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다투고 있는데 이를 이해는 하지만 좌절감을 안겨준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그는 “어느 정치 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서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면서 마치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이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말해 한중 양국의 반발을 샀다. 셔먼 차관의 이같은 발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한편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재균형 전략에 차질이 생기자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불가피하다.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는 전략적 의미가 매우 크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본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아베는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또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미국의 비호 아래 동북아의 맹주가 되려 하고 있고, 미국은 그런 일본을 적극 활용해 동북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랄까.
일본은 미국 하나만 바라보고 한 길로 쭉 가면 그뿐이다. 어차피 중국과는 협력관계를 모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미국과는 전통적인 맹방이며, 중국과는 경제문제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미국은 맹방관계를 앞세워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창립회원국 가입문제를 놓고 한국정부를 압박해 왔다. 안보 문제는 미국이라면 경제문제는 중국을 편들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한국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대략 4가지다. 첫째,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방식. 그러나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동맹국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한국정부가 이 같은 태도를 취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둘째, 두 나라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방식. 즉 사드 한반도 배치도 수락하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개발은행도 참여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역대 한국정부가 가장 선호해온 방식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방식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완전한 균형, 완전한 중립을 이뤄낸다고 보기도 어렵다. 세 번째는 두 나라 중 어느 한쪽 편만 드는 방식. 이럴 경우 미국편을 들 가능성이 큰데 실리 면에서 큰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는 최악의 선택으로 취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마지막은 우리정부가 독자노선을 펼치는 방식인데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결국 한국정부는 두 번째 방식, 즉 미-중 두 나라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서 ‘줄타기’를 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하나 분명히 알아 둘 것은 미국은 ‘일본 편’이라는 사실이다. 이유가 어찌됐건 간에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이 국익에 도움에 되므로 일본과 더 가깝게 지낸다. 국제사회 차원에서나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그저 동북아의 ‘주변 문제’일 따름이다. 2차 대전 전후처리 과정에서도 한국은 독립변수나 상수로 존재하지 못했으며 늘 부차적인 사안 정도로 취급당했다. 카이로회담이나 모스크바 3상회담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였으나 우리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곤 했는데 사정은 지금도 비슷한 형국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적 완충지대일 뿐이다.
이런 든든한 ‘뒷배’로 둔 까닭에 일본은 기고만장한 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는 군국주의, 천황주의를 자양분으로 성장했으며, 극우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이다. 아베 자공(자민당+공명당) 정권은 총리 보좌관까지 포함하여 25명의 각료 중 22명이 ‘신도 정치연맹’에, 또 16명은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들은 기존 역사인식의 개악, 각료의 신사 공식 참배, 헌법 9조의 개악을 노리는 극우 세력들이다. 이들은 일본이 다시 아시아의 맹주로 부활해 과거의 명성을 되찾길 바라고 있다. 일본 내 지성계에서 과거 침략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이들은 ‘자학사관’이라며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 2014년 선거에서 자민당 지지의 절대 투표율은 16.99%밖에 되지 않았으나 자민당은 290석을 획득했다. 일본인 가운데 적게는 40%에서 많게는 70% 정도가 극우 또는 극우동조로 분류되는 데 바로 이들은 아베 내각을 떠받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을 포함한 안보법을 제·개정하여 동북아시아에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거듭났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밀리는 형국이 되자 일본이 미국을 대신해 군사적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겉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함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따라서 한미일 안보협력구도에 포함된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같은 구도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는 한국일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27일 미일 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이로써 미일 ‘신동맹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아베 총리의 종전 70주년 ‘8.14 담화’, 안보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 등과 함께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3대 요소로 꼽히고 있다. 일본은 미일 신동맹에 기대어 군사력 확장을 통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 이럴 경우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등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은 아차하면 중국과 한판 전쟁이라도 치를 기세다.
최근 미일 양국은 안보 관련 부처 핵심간부들이 참여하는 군사협의체를 설치하고 평시부터 미군과 자위대 운용을 일체화하는 등 군사동맹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11월 4일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일 양국 정부는 미군과 자위대를 평시부터 일체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안보, 외교부문 등 양국 정부의 중추 부처 관계자로 구성된 새로운 기관인 ‘동맹조정그룹’을 설치했다. 양국은 이를 통해 안보에 있어 ‘발생 가능한 모든 사태’에서 정보를 공유해 신속한 의사결정 가능을 통한 동맹 강화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교도통신은 “자위대 활동을 확대하는 안보법제 시행을 내다본 후속 조치”라고 분석했다.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사진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훈련 모습
‘동맹조정그룹’ 설치는 지난 4월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재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에 의거한 미일 외교·국방 국장급 방위협력소위원회에서 합의한 것이다. 동맹조정그룹에는 일본 측에서 국가안전보장국, 외무성, 방위성 및 자위대의 국장급 간부가, 미국 측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국무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태평양군사령부, 주일미군사령부의 국장급 간부가 참여한다. 양국의 핵심 군 수뇌부가 참여해 대중국 견제정책을 입안, 실천하는 셈이다. 이로써 미일은 적도 군사외교 부문에서는 가히 ‘한 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동아대 원동욱 교수는 “미국은 일본에 대한 외주(outsourcing policy)를 통해 아시아를 관리하고 한일 간 화해를 중재해 한미일 동맹 네트워크를 완성지음으로써 중국 견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평가했다.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에도 여기서도 한국은 배제돼 있다.
작게는 한국의 국익을 위해, 크게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일 간에 평화·민주주의 세력의 연계(혹은 연대)가 필수적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다양한 평화운동 조직이 결성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전쟁 법안 폐기를 위해 결성된 ‘총동원 행동 실행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2014년 12월 15일 전쟁을 반대하는 1,000인 위원회, ‘해석으로 9조를 파괴하지 말라’ 실행위원회, 헌법 공동센터 등의 3단체가 중심이 되어 발족했다. 이 실행위원회는 ‘헌법이념 실현, 헌법 위반의 각의 결정 철회, 미일안보지침·전쟁 관련 법안개정 저지, 정책 전환 및 퇴진’을 목표로 활동을 개시해 5월 3일 헌법기념일 집회, 8월 30일 국회 10만 명, 전국 100만 명이 참가한 집회를 계기로 기존 19개 참가단체 외에도 지지단체가 9개나 느는 등 조직이 확대됐다.
이 단체는 전국적으로 변호사, 학자, 학생 등 다양한 계층에서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있는데 내년 8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 단체는 전쟁법이 통과된 9월 19일에 맞춰 매월 ‘19일의 날’에 전쟁법 폐지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2016년을 맞아 이 단체는 또 2000만 명 서명운동 전개와 함께 5월 3일 헌법기념일에 대대적인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간 ‘침묵하는 다수의 나라’로 불렸던 일본이 전쟁법 제정을 계기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현실을 암담하기만 하다. 우선 박근혜 정권은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때그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임기응변식 대처가 고작이다. 전통 우방 미국과 실리 중심의 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는커녕 번번이 먹잇감으로 전락한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관계라도 원만하다면 뭔가 방안을 모색해 볼 수도 있겠으나 그마저도 기대난망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5·24 대북 제재조치는 5년째 빗장을 풀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민주정권 10년 동안에 쌓은 대북 인맥은 전부 끊어졌으며, 냉랭한 한일관계 탓에 양국 간의 인적교류 역시 별반 나아진 게 없다.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피살당한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그로부터 약 1년 만인 1897년 2월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독립국임을 표방했다. 당시 집권세력인 수구파는 친러정책을 채택한 가운데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대한제국정부는 국외중립(局外中立)을 선언하였다. 이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조치였으나 너무 늦은 탓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듬해 1905년 ‘을사늑약’ 강제체결로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이토 통감 체제가 들어섰고 5년 뒤에는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여전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고 일본은 이토 대신 아베가 등장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지도층은 역사의식도 없는데다 무능하기조차 한 실정이다. 반면 일본의 아베는 미국을 등에 업고 이토를 능가하는 침략주의 근성을 드러내고 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설파했다. 엄중한 시기를 맞아 단재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고 하겠다. (끝)
(* 이 글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발행하는 <독립정신> 2016년 1월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19 

신경민 "박근혜, 책상 치려면 국정원 상대로 쳤어야"


"필리버스터는 새누리 공약"…새누리 홈피 마비
김윤나영
기자
| 2016.02.25 20:56:04

8번째 필리버스터 바통을 이어받은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25일 대본 없는 입담으로 '테러방지법으로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기보다는 국정원 개혁이 먼저'라는 주제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한때 새누리당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의 공약이었는데, 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비난하느냐"고 따지면서다. 

이날 오후 4시 8분부터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에 반대하며 본회의장 단상에 선 신경민 의원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해 새누리당이 시위하고 있다. 본회의장 앞에 '국회 마비 몇 시간째'라는 현수막을 걸어놓는 어처구니없는 시위가 문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새누리당의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새누리 "더민주, 북한을 철썩같이 믿어"

신 의원은 "19대 총선 공약집 '정치 선진화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부분을 보면 '본회의에 필리버스터를 도입하겠다'고 돼 있다"면서 "공약집 92쪽을 보면 '새누리의 실천'에서 (필리버스터 도입을) '실천했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자기들 약속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 의원이 "새누리당 사이트에서 19대 총선 공약집을 뽑아왔으니 직접 가서 보라"고 말하면서 총선 공약집을 던졌다. 이 말로 새누리당 홈페이지는 몇 시간 넘게 마비되기도 했다. 누리꾼들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신경민 의원 본인의 홈페이지도 한때 마비됐다가 복구됐다.

"국가 비상 사태라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 계엄하자는 얘긴가?" 
▲ 새누리당이 25일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앞에 놓은 현수막. ⓒ프레시안(김윤나영)
신 의원은 '국가 비상 사태'라는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한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도 이어갔다. 

신경민 의원은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한 사례를 찾아보니, 10월 유신이 선포된 1972년 12월과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1979년 10월, 마지막이 1980년이었다. 이번은 36년 만의 4번째 국가 비상 사태이자, 국회의장이 선포한 최초의 국가 비상 사태"라며 "국가 비상 사태에서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헌법적으로 얘기하면 지금 계엄령을 선포해도 아무 문제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의원은 "테러가 임박한다고 하지만, 테러 지침은 지금 작동되고 있다. 물론 법으로 되면 좋겠지만,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법을 갑자기 이렇게 (직권 상정으로) 간다는 것은 어떻게 하자는 얘긴가? 계엄(령)을 (선포)하자는 얘기인가, 말자는 얘기인가?"라고 꼬집었다. 

곧이어 신 의원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취임했을 때 언론과 한 인터뷰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정의화 의장이 "나는 친박도 친이도 비박도 아닌 '친대한민국'이다. 어떤 경우에도 직권 상정할 수 없다", "국회의장이 되기 전부터 나는 거수기 의장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삼권 분립, 대의 민주주의 국가다. 그동안 국회가 제 몫을 못한 것이다"라고 말한 대목이었다.  

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두드리면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달라고 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기본권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지 책상을 두드리면서 토론하고 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격노·한숨…"국회, 어쩌자는 겁니까") 

신 의원은 "테러방지법에 따르면 국정원은 영장 없는 통신 감청권, 무차별 정보 수집권, 대테러방지 조사권도 갖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과도하다면서 새누리당에 수정안을 갖고 오라고 했다"면서 "문제는 국정원이 거부한다는 것이다. 법안을 만드는데, 국회가 만드는 게 아니다. 국정원이 만든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국정원이 여당인지, 여당이 국정원인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국정원은 지금도 초법적 기관" 
국정원을 감시하는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보위원회의 야당 간사이기도 한 신 의원은 자신이 그동안 정보위원으로서 활동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했다. 

신 의원은 "국정원은 국정감사,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딱 하나, 청와대밖에 없다"면서 "저도 국정조사도 해봤고,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 때 국정감사도 해봤다. 검찰 수사도 봤다. 그런데 국정원은 다 넘어갈 수 있다. 왜? 정보기관이라. 법으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조직표도 안 보여준다. 정보니까 안 된다고 한다. '안 됩니다' 이러는데 무슨 수사가 되나? 검찰 수사도 안 된다"면서 "수사가 제대로 안 되는데 재판은 어떻게 하겠나. 피고인이 있긴 한데, 이 피고인이 맞는 피고인인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신 의원은 테러방지법보다 '국가정보원 개혁'을 먼저 해야 하는 이유들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국정원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가 기밀인 남북 정상대화록을 공개한 사례,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돌연 '혼외 자식' 문제로 옷을 벗은 사례,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 씨 간첩 조작 사건, 국정원 해킹 파문과 해킹 담당 직원이었던 임 과장 사망 사건 등이 열거됐다.  

"남북 정상대화록을 공개하는 나라는 단언컨대 앞으로 없다. 그런데 국정원이 공개할 수 없는 정상대화록의 보안 등급을 두 단계 내려서 그날 아침에 갖고 왔다. 요약본을 여야에 배달했다. 그 다음날 와서 전문을 뿌려버렸다. 그 전문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그걸 보고 전 세계가 경악했다. 이미 그때 국정원은 댓글 사건으로 웃음거리가 됐었다. 국정원이 그런 국정원이다. 아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데가 바로 여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치려면 그때 쳤어야죠. '어떻게 이런 국정원이 있느냐, 이런 국가 망신이 있고, 이런 정보기관이 있느냐'고 얘기하면서 다 바꿔버렸어야 했다. 어떻게 됐나? 아시다시피 (박 대통령은) 묵언수행이죠. 잘했다는 건지, 못했다는 건지. 남북 정상회담을 무단 유출한 것도 그런데, 공개한 것은 심각한 범죄다. 저는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기에 처하게 했다. 이거야말로 국가 비상 사태다."  

필리버스터가 사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앞서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7분까지는 정의당 김제남 의원이 연설했다. 신 의원은 오후 8시 30분 현재까지 연설을 이어가고 있다. 신 의원 다음에는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강기정 의원, 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이 연설자로 나설 예정이다.  

▲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에 돌입하기에 앞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화] 테러방지법 막아야 하는 5가지 이유

등록 :2016-02-25 16:41수정 :2016-02-26 01:10

정치BAR_시사만화가 ‘하작’의 웃픈 연작
테러방지법이 초법적인 방법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고 야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로 맞서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대선 개입과 간첩 조작을 일삼은 국정원을 개혁하기는커녕 ‘테러 방지’라는 명분으로 막강한 권한을 쥐어주려 합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을 때 다가올 우울한 미래를 시사만화가 ‘하작’씨가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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