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8조7000억원 혹은 13조원, 때로는 3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레이디 크레딧
김주희 지음/현실문화/432쪽/2만2000원
‘왜 한국에서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비슷한 시기에 기업형 성매매라고 불리는 대형 성매매 업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가?’ <레이디 크레딧>이 제기하는 한국 성매매 산업의 역설이다.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선 오늘날 성매매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며 한국 사회 자체가 사실상 성매매를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밝힌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이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를 거쳐 공적 경제에 포섭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20대부터 70대까지의 여성 15명을 심층면접해 생애 경험, 이들을 둘러싼 돈의 흐름을 살펴본다. 또한 성매매 여성들과 다양하게 얽혀 있는 사채업자, 부동산업자, 강남 룸살롱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멤버팀장’, 반성매매 활동가, 성 구매자 남성 등 10명을 추가 인터뷰해 전 사회가 가담하고 있는 한국 성산업의 구조를 적나라하게 들춘다.
8조7000억원 혹은 13조, 때로는 30조 규모로 추산된 한국 성매매 산업은 그간 성판매자 여성, 알선자, 성구매자 남성 간 피해-가해의 문제로 다루어져왔다. 여성주의 입장 안에서도 한쪽은 성매매를 ‘노동’으로 정의하며 자발적 의지를 강조했고, 다른 쪽에선 성매매를 ‘폭력’이라는 강제적 구조로 정의했다. 그 결과는 성매매 ‘인정’과 ‘근절’이라는 다른 정치적 해법으로 나타났으며, 그에 따라 성매매에 참여하는 경제적 요인도 ‘소득’을 위해서 혹은 ‘부채’ 때문이라는 전혀 다른 설명이 나왔다. 책에선 300만원으로 시작한 선불금(소위 ‘마이킹’)이 2억원까지 늘어나 성매매에 속박되는 사례 등 당사자들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부채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성산업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하지만 책에서 더 나아가는 지점은 ‘여성들이 경제적 주체로서 성매매에 나서는’ 변화된 성산업의 현실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기점은 IMF 경제위기 이후 대출시장의 폭발적 성장이다. ‘카드 대란’을 촉발한 신용카드사와 은행의 가계대출 확산이 성산업의 대형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책에서 주목하는 사례는 2011년 J저축은행 비리 사건에서 드러난 ‘유흥업소 특화 대출’ 상품이다. 당시 유명 폭력조직 두목인 조모씨와 그의 부하 K는 자본금 없이 성매매 업소를 차리고 300억원 넘는 돈을 벌었다. 이 대출 상품은 강남 유흥업소 업주들을 상대로 유흥업소 종사자에게 지급되는 선불금 서류를 ‘담보’ 성격으로 제출하면 돈을 빌려줬다. 여성의 몸이 ‘신용’ 담보가 되고, 시중 은행이 성매매 업소 경영과 결합하는 변화된 성산업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금융화 과정에선 이른바 ‘풀링’이라는 기법도 사용됐다. 금융시장에서 ‘리스크 헷지’와 다를 게 없다. 금융회사가 여성들의 차용증을 비슷한 액수끼리 묶어 담보로 받거나 대출 채권으로 거래하기 시작하고, 성매매 업주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서라도 빚을 가진 다수의 여성들을 한 업소에 집결시킨 것이다. 규모가 커지자 그 안에선 ‘텐프로’부터 ‘하드코어·풀방’까지 위계화가 이어지고, 구매자 남성은 분화된 가격과 서비스에 따라 “합리적 소비 실천”으로서 성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금융화는 성매매 여성들의 경제관과 내면까지 바꿔놓았다. “최근 강남 룸살롱에는 대학의 기말시험 기간만 되면 출근하는 아가씨들이 줄어들어 영업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책에선 학자금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남 룸살롱에 진입한 여성들 이야기를 전한다. 경제 논리가 ‘도덕률’이 된 오늘날 자산이 없는 젊은 여성들은 몸을 담보로 한 ‘자발적’ 성매매로 부채 갚기에 나선다. 실상은 ‘빈곤을 타개하고 부채를 상환하는 경제 주체가 윤리적’이란 신자유주의적 도덕률이 ‘강제한’ 참여다. “이미 ‘빚이 있는 젊은 여성’인 이들이 업소의 타깃 집단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동시에 이 여성들, 자신의 대학 공부를 위한 비용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몸 가치’가 가장 높은 시기에 강남 유흥업소에 진입해 스스로 ‘기회’를 만든 이들을 누구보다 ‘합리적인 계산’을 하는 이 시대 ‘젊은 여성 채무자’의 형상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보인다.” ‘강희’라는 여성의 “나중에 저도 언니처럼 박사과정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그저 도덕적 타락이 아닌 복잡한 시선으로 읽게 되는 이유다.
“이제 채권자는 더 이상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구박하고 때로는 폭력을 일삼던 ‘악덕 포주’가 아니라 번듯한 금융회사다”.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에게 돈의 흐름을 보장하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여겨지는 ‘신용’을 지키려고 성매매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과거 탈주불가능했던 여성들은 이제 파산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기존 성매매 논의에서 ‘사악한 포주’와 ‘비도덕적인 성구매자’라는 인식은 성매매를 범죄화하는 성과를 낳았지만, 성매매의 원인을 경제가 아닌 도덕에서만 찾으려는 결과로 이어졌다. 책에선 부채를 해결해 성매매 여성을 ‘탈성매매’ 여성으로 바꾸는 시도나 여성들을 성노동자로 인식하는 탈규제 해법 모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여성의 몸을 담보로 확대재생산하는 ‘부채 경제’의 동인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성매매를 정치경제적 구조의 문제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매매 문제 해결과 동시에 여성의 몸을 자원 삼아 작동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읽힌다.
지난 7월 26일, 청와대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 이사장은 서신을 통해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감명을 받았으며 한국이 민간분야 백신 개발에도 선두에 있다"면서 "코로나 및 여타 글로벌 보건 과제 대응에 한국정부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이후 다시 한 번 한국의 코로나19 관련 대응에 대한 신뢰와 협력 의사를 밝힌 셈이다.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바이오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빌 게이츠의 속내
미국의 코로나19 피해가 연방정부의 무능한 방역망을 무너뜨리며 심각해지기 시작한 3월 말, 게이츠 이사장은 미국 비영리 재단 테드(TED)의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과 한 인터뷰에서 신속한 대량 검사와 감염자 격리를 시행하는 한국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 초 토크쇼 <더 데일리 쇼>에 출연해서는 "한국은 검사, 격리조치, 동선추적 등을 통해 감염대응에 성공했다"며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24시간 이내에 나오는 한국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미국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보통신기술(IT) 전문가인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역동적 방역 능력을 평가할 당시부터 그가 구상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감염병 조기진단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실현될 수 있을 것임을 직감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게이츠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케이티(KT)에 감염병 연구를 위한 명목으로 3년간 총 12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케이티는 이를 통해 실제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감염병 조기진단 알고리즘과 통신 데이터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경로 예측 모델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 KT 직원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관계자들이 ICT 기반 감염병 대응 연구를 위한 화상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 kt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첨단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본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이번에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주목받은 SK 바이오사이언스(SK Bioscience)는 지난 2014년부터 각종 백신 개발을 위해 게이츠 회장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올해 5월 코로나19 백신 항원 개발을 위해 게이츠 이사장으로부터 43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빌 게이츠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의 백신 사업을 지원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빌 게이츠 음모론'이다. 황당한 괴담 수준이지만 야후뉴스/유고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28%가 이러한 음모론을 믿고 있다고 한다. 음모론의 내용을 떠나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워싱턴 시애틀 등 정보산업분야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과 사이가 좋지 않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미국의 정보산업분야 기업들에 대해 비호감을 넘어 적대적 성향마저 보인다. 빌 게이츠 이사장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적대감도 예외가 아니다.
▲ <뉴욕 타임스> 4월 17일자. "바이러스 관련 트럼프에 맞선 빌 게이츠 우파의 타깃되다." ⓒ 뉴욕타임스 캡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보건기구(WHO)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이 발표된 후 게이츠 이사장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게이츠 이사장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음해는 이때를 기해 더욱 심해진다. 지난 4월 17일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미국 언론들은 일부 우파 세력과 음모론자들에게 게이츠 이사장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코로나19와 관련한 모든 거짓 정보들 가운데 게이츠 이사장과 관련한 것들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백신 이기주의에 맞선 문재인-빌 게이츠 파트너십
백신과 관련한 음모론을 넘어서고 나면 백신 생산을 둘러싼 국가 간의 과열된 경쟁이 나타난다. 7월 26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게이츠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낸 사실을 전하면서 자국민을 보호할 백신 개발에 세계가 경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통신은 게이츠 이사장이 전 세계의 백신 개발 회사들에 투자해야 미국 이외의 지역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면서 한국이 코로나 19 백신 생산 가능국 중 하나임을 암시했다. 무슨 의미일까?
다수의 외신들은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경쟁 체제로 접어들었다면서, 앞으로 자국민을 위한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3상 임상실험까지 접근하고 있는 네 나라가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다. 문제는 이들 네 나라가 과연 백신 개발 후 자국민이 아닌 모든 지구촌 국가들을 위한 공평한 생산과 배분을 보장하겠느냐는 것. 그렇지 않다면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안보 차원 수준의 심각한 국가 간 분쟁이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 ⓒ 연합뉴스
결국 미국의 백신 이기주의 가능성을 경고해온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이 지구촌 국가들을 위한 공평한 백신 생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지원을 목표로 하는 민간국제기구 GAVI, 전염병대비혁신연합 CEPI 등이 백신의 국가 간 공정한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코벡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이하 코벡스)라는 백신 공급 시스템을 설치, 운영 중이다. 또한 국제백신연구소(IVI)가 CEPI와 상호협력 협약을 맺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IVI 한국 지원위원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로서는 코벡스가 국가 간 백신 이기주의와 백신 안보 경쟁을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은 백신 개발 가능국 가운데 코벡스 시스템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이 시스템에 큰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다.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이사장은 서로 국제사회의 공평한 백신 공급을 위해 재정 지원과 기술 지원을 분담할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주 미국 <뉴스위크>는 빌 게이츠 이사장이 문 대통령에게 서신을 전달한 사실을 전하면서 게이츠 재단의 지원을 받는 제약사인 SK 바이오사이언스가 내년 6월부터 매년 2억 개의 코로나19 백신 키트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시사지는 그러면서 게이츠 이사장은 문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한국 정부와 협력해 전 세계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역시 백신 민주주의를 향한 문재인 대통령과 빌 게이츠 이사장의 협력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 <뉴스위크> 7월 마지막주 기사. "빌 게이츠 지원받는 SK, 코로나 백신 1년에 2억 키트 생산 가능" ⓒ 뉴스위크 화면 캡처
<뉴스위크>는 현재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에 가장 근접해 있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와 함께 한국을 소개하면서 현재의 백신 개발 상황을 전했다. 빌 게이츠 이사장이 서신에서 "한국이 백신 개발의 선두권"이라고 표현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앞선 네 나라와 같은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닌 듯하다. 공정한 백신 배분을 위한 파트너인 한국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실제 임상 3상까지 가 있거나 조만간 그럴 것으로 보이는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연구진보다 한국의 연구진은 한 발 뒤처져 있지만, 게이츠 이사장이 지구촌 백신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적, 정치적 파트너로 한국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터뷰 내내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던 이가 내게 질문을 돌렸다. 병환이 깊어도, 치매가 걸려도 네 부모를 집에서 돌볼 수 있겠니? 머뭇거렸다. 상대가 무심히 묻는 말에도 내가 가진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내가 믿고 있던 것은 2000여 개 요양원, 2만여 개의 노인장기요양 기관일지도 모르겠다.
"자식들 마음에 모신다는 생각이 있어도, 그게 세상 살다 보면 내 생각하고는 다르게 가죠."
옆에서 듣던 사람이 거든다.
"사람 나이 들면 누구나 요양원에 와요."
이들은 최근까지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누구나 요양원에 가서, 누구든 이들에게 돌봄을 받는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부산시청 앞 농성장에 있다.
왜 농성을 하냐는 물음에 한 이가 말한다.
"우리가 지금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 안 된다고 보니까요." (김병옥)
처음에는 농성장 자리를 말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사회에서 요양보호사들이 놓인 위치를 가리키는 게였다. 이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들이야말로 '누구나'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저숙련 노동이란 명칭이 따라왔다. 그 '누구나'가 저임금과 만나면 '아무나'가 된다. 그런데 실제론 아무개가 아닌 여자들만 가는 곳. 그 돈 받고 일할 사람이 여자밖에 없다. 세상 시선에 요양보호사는 나이 든 여성 일자리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요양보호사에게 내준 자리이다. 그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이들을 만났다.
▲ 부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효림원 요양보호사들. ⓒ민주노총 부산본부
먼저 지치길 바라니까요
"65세까지 여기 다니고 이후엔 놀려 다니려고 했지. 아, 생각하면 혈압이‧"
자신을 정리해고한 직장을 떠올리며 열을 내는 게다. 이채연 씨는 50대 초반으로 요양보호사 중에선 젊은 축에 속한다. '효림원'에서 요양보호사로 3년간 일했다. 부산 효림원은 사회복지법인 화엄도량 소속으로, 100여 명 입소 대상자(어르신)를 둔 노인요양시설이다. 그러나 올해 초 운영을 멈췄다. 세금 횡령(부당수급)이 발각돼 영업정지 50일을 받은 것이다. 그때 직원들을 해고했다.
"나는 진짜 이 일이 잘 맞았거든요."
요양보호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일은 맞아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나랑 맞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고되다. 채연 씨의 교육원 동기 중 요양보호사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고 했다. 보통 3-4년 차에 그만둔다.
"아무리 노인이지만 남자 어르신 기저귀 케어 하는 게 그렇잖아요. 치매 있는 분들은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그래도 다 이해해요. 나한텐 이 일이 맞아. 인지력이 있는 분은 수고가 많다고 말도 해주시고. 오고 가는 게 있으니까. 교감 같은 거?"
사람 만나 눈 마주치는 직업이라 더 좋았다. 그러나 요양원은 영업정지(휴업)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요구했다. 다른 시설로 옮겨가며 어르신들은 "내 곧 올꾸마. 그때 보자" 인사를 했다. 사직서 쓰기를 거부한 5명은 정리해고 당한다.
그런데 1월에 휴업을 한 요양원이 여태껏 개원을 하지 않고 있다. 50일 하고도 130일이 지났다. 왜 문을 다시 열지 않나? 그와 동료들의 대답은 간명했다.
"노조가 먼저 지쳐 뿔뿔이 흩어지길 바라니까요."
망설이다가 들어야겠다
효림원에 노동조합이 세워진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처음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는 지금의 분회장, 추임호 씨다.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면) 민주노총으로 연락하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내가 그 문자를 종일 몇 번을 봤어요. 가야 하나. 결국 전화를 했어요. 내가 이리 억울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그는 노동조합 가입서를 쓸 때의 심정을 이리 말했다.
"망설이다가, 들어야겠다. (가입서를) 작성하는데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노조까지 들어야 하나."
노동조합 가입에 '이렇게까지'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사회다. 가입서를 쓰던 당시 추임호 씨의 나이가 63세. 그가 이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를 들었다.
"효림원에서 7년을 근무하는 동안, 무탈하게 우리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랑 언니동생 하며 잘 지냈어요. 재작년 4월, 새 원장 스님이 부임해 오기까지."
'그동안 무탈하게'라던 시절에도 장시간 노동, 저임금은 여전했지만 여기서는 원장이 새로 부임한 2018년 이후 이야기를 하려 한다. 추임호 분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갑질이 시작됐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새로 부임해 의욕을 보이던 원장은 직원들을 탈의실에 모아놓고 훈계하길 즐겼다. (후에 노조 결성 사실이 밝혀지자 그곳에서 아주 긴 설교를 하기도 했다. 부당노동행위다.) 정문에서부터 반듯하게 깔린 잔디, 층수를 올린 건물, 물리치료실 확장. 원장의 설교에는 장미빛 미래가 자주 등장했다. 이야기는 종종 건물 수리비에 운영비, 당신들에게 들어가는 돈까지, 요양원이 어렵다는 한탄으로 끝났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최저임금이 장밋빛에 얼룩을 묻힌다는 부채감을 가져야 했다.
그해 가을, 원장은 요양보호사 근무시간을 바꾸겠다고 했다. 당시 효림원 요양보호사들은 20여 명씩 주‧야간 근무를 했다. 늘 사람이 빠듯했다. 108명 정원에 요양보호사 40여 명. 노인복지법에 따라 대상자(어르신) 2.5명 당 요양보호사 1명을 배치한 수다. 하지만 누가 연차라도 쓰면 이 균형은 무너진다. 주어진 인원으로 24시간 케어를 하려면 주야간 맞교대를 해야 했다. 효림원 야간 근무자는 15시간을 일했다. (2019년 한 조사에서 돌봄노동자들의 60.7%가 사실상 1인당 5명 이상을 돌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력 증원 없는 3교대는 불가능했다. 4조 3교대는 고사하고 3조 3교대도 불가능한 인원이었다. 원장은 이유도 말하지 않고 강행했지만, 예상은 한다. "돈 아끼려고. 3교대 하면 우리한테 주는 월급이 줄잖아요." 그러나 현실성 없는 3교대 시행은 무산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효율적'으로 운영을 하겠다고 했다. 요양보호사 업무 형태를 바꾼다는 통보가 왔다. 층별로 근무하던 요양보호사를 팀으로 나눴다. '목욕팀', '기저귀팀' 등. 근무 내내 어르신 목욕만 시키는 사람, 기저귀만 가는 사람 등 세부 업무로 사람을 나눈 것이다.
이런 업무 변경은 요양보호사들에게 모욕이었다. 요양보호 업무를 목욕, 양치질, 기저귀 갈이 정도밖에 여기지 않는 원장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마저 현실성 없었고,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됐다.
기저귀 가는 일로만 생각하는
"우리는 한 가지 일만 하는 거 아니에요." (엄복희)
요양보호 일을 두고 한 이가 말했다. "우리는 늘 귀가 열려 있어요." 어르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귀를 열어두고 산다는 말이었다. 살피는 일은 이들의 기본 업무다.
"항상 관찰하거든요. 어르신들은 하루하루가 틀려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증세가 있으면 (다음날 근무자와) 인수인계할 때 소통을 잘 해야 하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이 일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나 하나 잘났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요양보호사 일의 특징인 것 같아요." (이미경)
살피고 감지하고 판단하고 소통한다. 경험을 통해 이 또한 숙련되는 능력이다. 그러나 세상은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 자격증까지 부여해놓고 비숙련, 단순노동으로 묶어둔다. '여자라면' 다 하는 일이라? 앞서 자신들은 한 가지 일만 하지 않는다고 한 이는 다음 말을 덧붙였다.
"사람들이 요양보호사라고 하면 기저귀 가는 일만 생각하는 거 알아요."
이런 식의 폄하가 일터의 최고 결정권자에게서 나온다면 비극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효림원은 컨베이어벨트 나누듯 요양보호 업무를 나누려 했다. 일터를 컨베이어벨트 취급하면 따라오는 게 있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거대한 톱니바퀴 기계만큼 자주 등장하는 것은 CCTV 카메라 화면이다. 요양원에 카메라가 급증했다.
또 어디서 지켜보고 있나
원장은 사무실에서 CCTV화면을 지켜보며 전화로 사사로이 지시를 내렸다. 공기청정기 꺼라, 앉아 있지 마라. 업무 지시가 일상이 될수록 요양보호사들은 이 생각을 해야 했다. 또 어디서 지켜보고 있나. 고용주에게 노동자의 긴장은 기계의 기름칠이겠지만, 일하는 사람에게는 인권침해다.
"우리를 감시하듯이 하니까. 인권이 뭉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우리 일이 이런 취급받을 일인가 싶은 게. 못 참겠다." (김병옥)
야간 근무자가 조는 모습을 담은 CCTV 화면 사진이 조회시간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생각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해야겠구나.
이때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람이 어떻게 야간에, 주야간 맞교대로, 15시간 근무를 하면서 한시도 졸지 않을 수 있나'였다. 4조 3교대와 같은 현실적 인원 배치를 생각할 법도 한데, 요양원은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았다. 요양보호사들의 나이였다.
"원장은 나이 많은 사람 나가라고. 만날 직원들 집합 시켜 놓고 말하고. 원장은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고 생각하는 거야."
항변도 해봤다. "젊은 사람이 더 힘을 잘 쓴다고 하지만, 우리 일은 힘으로 하면 안 돼요. 요령을 써야 해. 힘으로 하면 몸만 다쳐요."(곽복임)
소용없었다. 윽박만 돌아왔다. 2018년에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효림원은 모든 요양보호사의 시급을 최저임금에 맞췄다. 10년을 일해도 무조건이다. 최저임금, 맞교대, 15시간 근무, 감시통제. 젊은 사람은 가지 않는다는 노동조건을 만들어놓고, 나이 든 사람만 남았다고 화를 낸다. 무슨 심보인가?
또 3개월이다
원래 바라는 게 있어야 심보도 부리고 그런다. 효림원은 예순이 넘은 요양보호사들에게 3개월짜리(또는 6개월)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이전까진 60세가 넘으면 계약직으로 전환해 1년 단위 계약을 했다. 법이 닿지 않는 나이가 되면, 바로 계약직 신세다. 이마저 기간을 줄여 3개월짜리 한시 일자리로 만들었다. 3개월 뒤에 '하는 것 봐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이보다 굵고 치사한 목줄이 있을까.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재계약이 되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노조에 가입하면 계약 연장은 없다는 사실이다. 추임호 분회장은 그해 6월 해고된다. 재계약 한 달 전인 2019년 5월 노동조합(효림원분회)이 결성됐기 때문이다.
"갑질이 심해지니까 다른 선생님들도 견딜 수가 없고. 혼자 노조에 들은 것으로 하다가 5월 3일에 밝힌 거죠."
노동조합에 가입한 계약직 모두에게 재계약은 없었다. 해고를 안겨준 노동조합인지라 후회할 만도 한데, 다들 고개를 젓는다. 몸은 농성장에서 고되나 마음은 편하단다.
"불안한 게 없어졌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항상 불안했거든. 원장이 우리 나이 많다고 입에 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언제 잘릴지 모른다. 또 3개월이다. 이젠 갑집을 해도 그냥 당하고 있진 않는다."(강말인)
가만 앉아 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방노동위원회로 가 '부당해고'를 다퉜다. 법은 이들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다. 효림원은 휴업상태다.
▲ 부산시청 앞에서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효림원 요양보호사들. ⓒ민주노총 부산본부
돈은 자기네가 받아 놓고
5억 3000만 원이라 했다. 효림원이 부정수급을 한 돈이. 새 원장이 온 후 노사 갈등이 커졌다고 했지만,전 원장들은 출근도 하지 않았다. 출근하지 않고 고액의 임금을 받아 갔다. "출근 도장만 찍는, 대리인들이 찍어주는 것 있잖아요." 이를 적발한 건강보험공단은 횡령금 5억 3000만 원 환수와 영업정지 50일 명령을 내렸다. 미비하다. 라면 훔치면 징역형, 36억 원 뇌물은 집행유예인 세상을 살고 있다지만 5억 원은 큰돈이다.
2019년 감사로 적발된 노인요양기관은 836곳. 152억 원 착복이 드러났다. 이 중 구속으로 죗값을 치른 경영자는 3명뿐이다. 2만여 요양기관 중 한 해 5% 정도를 선별해 감사를 한다고 하니 실제 횡령액은 얼마나 될지 모른다.
그래도 억울했는지 효림원은 노조 원망을 했다. 노조 때문에 '경영상의 위기'가 왔다고 했다. 제 손으로 사직서를 쓴 비조합원들은 노조 탓에 직장을 잃었다고 원망하며 떠났다. 퇴사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조합원 5명은 정리해고 당했다. 경영 위기는 정리해고의 요건이다.
"5억 3천을 환수해간다면서요. 그 화풀이를 우리한테 하는 거죠. 돈은 자기네가 받아 놓고는. 이제 와서 경영위기. 그동안 번 돈은 다 어디 갔겠어요. 법인으로 안 갔겠어요?"
노조 때문에 직원들 '입막음' 할 수 없던 게 원망스러웠을까. 몇 억 원쯤 꿀꺽해도 티 안 나던 좋은 시절은 끝났다. 원래 노동조합이 생기면 법대로 하지 않던 것들을 멈춰야 한다. 위법행위는 보통 수익과 연관이 있다. 그러니 찔리는 것이 많을수록 노동조합 탄압이 거세다. 아예 문을 닫기도 한다. 세비앙실버홈, 월정사요양원, 일산수요양원…. 노조가 생기자 폐업을 하거나 시도한 요양원들이다. 여기에 효림원 이름도 더해질 참이다.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라
효림원 해고자들은 폐업을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부산시에 효림원을 폐업 조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효림원을 즉각 폐쇄 조치하고,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라.' 이것이 노동조합의 요구이다.
효림원은 리모델링을 한다, 어르신 대상자가 없다, 여러 변명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 현행 법으로는 1년 정도 개원 유예가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효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너무 긴 시간이다.
지자체에 직접 운영을 요구하는 데는 근거가 있다. 노인요양기관 운영비의 80%가 세금으로 지원된다. 중앙 정부와 부산시는 효림원 건물을 짓는 데 30억 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안 요양보호사들은 분개했다.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요양원이었다.
"우리가 속았던 거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요양원 수리하는 데 천만 원이 들면, 효림원에서 부담하는 건 10%밖에 안 된다면서요?"
나머지는 나라에서 부담한다. 노인장기요양은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공공서비스니까. 그런데도 지자체는 "시청으로 검찰청으로 진구청으로 가도, 너그는 너그고" 태도로 군다. 요양보호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 작년 말, 부산시청 앞에 농성장을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지난 십 년 간 노인돌봄(장기요양보험)는 이렇게 운영됐다. 재정은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데, 운영은 민간(위탁)이 한다. 2만 개가 넘는 노인장기요양 기관 중 1~2%만이 공공설립 기관이다. 애초 정부가 '수익 보장'을 내걸고 민간시설을 모았다. 그리고 방치했다. 한 해에만 150억 원이 넘는 횡령액은 그 실패를 말해준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체불임금은 한 해 40억 원이 넘는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발표, 2018. 효림원도 1억 600만 원의 체불임금이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효림원 요양보호사들은 "여기가 내 미래를 결정한다"고 했다. 이것이 거리에서 버티는 이유라 했다. 이들에게 미래란 코앞의 복직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나이 들면 갈 어느 요양원 침상을 의미했다. 타인의 몸을 통해 매일 세월을 보고 만지는 사람들이라서일까.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돌보는 노인들과 자주 겹쳤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누구나'의 일이라는 것은 공공의 문제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노인돌봄의 현실은 돌봄노동자의 저임금과 '집안의 노동자(여성)'의 무임금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는 형편이다. 노동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시설의 비용 계산은 일하는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있다.
사람 몸을 시장에 맡겨놓고 비용 논리가 아닌 공공의 정신으로 대하길 바라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러니 효림원 노동자들은 당당히 말한다. 오늘 돌봄 노동자가 받는 처우가 내일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가 받게 될 대우라고. 그러니 요양보호사의 요구는 분명하다. 노인돌봄은 공공돌봄이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라.
올해 구체신청을 한 효림원 요양보호사 15명이 모두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압박을 받은 부산시도 최근 문제해결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잡을 데가 없더라고요. 산꼭대기에 내려오는 길에 빛도 없이 헤매는 기분. 그래도 지금은 조금 빛이 보이네요." (추임호 분회장)
어둠 속에서 옆 동료를 더듬으며 여기까지 왔다. 우리 싸움이 당당하다는 생각 없이는 못 왔다고 했다. 작은 빛에 의지해 또 한 번 길을 나서보려 한다.
* 효림원 분회가 속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는 부산시에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부문 사회서비스를 지자체가 직접 제공하고 운영하는 기관인 사회서비스원은 현재 서울, 대구, 경남 등에서 시범사업 중이다. (여기에 속한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교사, 장애인활동지원사는 시에서 직접 고용한다.) 그러나 부산시는 2020년 시범사업 신청을 거부했다.
‘부동산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억울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기 딱 좋은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14년 가을부터 시작된 서울 아파트 시장의 대세상승은 무려 7년째 진행 중이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의 어지간한 아파트들은 가격이 두배 이상 뛰었으니 말이다. 부동산 시장에 붙은 불을 끄지 못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6.17대책과 7.10대책에 이어 공급대책을 서둘러 마련하는 중이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도 자자하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탓일까? 정부 정책의 효과라는 것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뒤에 발휘된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면 전임 정부들의 부동산 정책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뉴시스
방화 하려다 실패한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의 모토는 ABC(Anything But Roh)였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피투성이 싸움 끝에 힘겹게 이룬 성취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는데, 그 중 으뜸이 부동산 정책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는, IMF체제를 최대한 일찍 졸업하려는 욕심에 부동산에 관한 규제를 전부 푼 국민의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책에 더해 초유의 유동성 과잉이 겹치면서 온 산에 투기 불길이 붙은 상황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투기불길을 잡기 위해서 종부세로 대표되는 투기억제책, LTV 및 DTI 등 대출관리정책, 2기 신도시로 상징되는 공급확대정책을 사용했고, 임기 말에 가까스로 투기라는 괴물을 우리 안으로 잡아넣을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사투 끝에 우리 안에 가둔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을 푸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표1]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투기괴물을 우리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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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대책 ⓒ민중의소리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최대 성과라 할 보유세를 무력화시켰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사실상 폐지시켰으며, 노무현 정부가 2017년까지 보유세가 강화되도록 설계해놓은 제도도 중단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를 세대별 합산을 개인별 합산으로 변경하고, 1주택자의 경우는 기준 금액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렸으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도입하여 과세표준 현실화율 상향을 중단시켰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및 투기지역, 주택거래신고지역을 해제했으며,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취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는가 하면, 양도세 비과세 요건도 완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는 임대사업자에게 많은 특혜를 부여했고, 분양권 전매제한을 완화했으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유예시켰고, 민영주택 재당첨 제한도 폐지시켰다. 한 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투기에 올인한 정부였으며,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민주화 이후 역대 최악의 정부였다.
아이러니한 건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가격 상승에 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시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택가격은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 때문이었다. 비유컨대 이명박 정부가 산에 불을 지르기 위해 연신 방화를 했는데 폭우가 연이어 몰려오는 바람에 불이 꺼진 격이다. 이명박 정부는 방화미수범이었던 것이다.
방화에 성공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표 2]에서 고스란히 증명되듯 전임 정부였던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고스란히 계승한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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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대책 ⓒ민중의소리
박근혜 정부는 보유세 강화에 극히 미온적이었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사실상 폐지했다. 박근혜 정부는 연이은 투기조장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이 움직이지 않자 ‘빚내서 집사라’며 LTV 및 DTI를 공격적으로 완화하기까지 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하하며 박근혜 정부의 투기부양책에 적극 호응했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정책은 대성공(?)을 거뒀다. 은행 기준 2014년 12월 말 460조 원이었던 주택담보대출잔액이 2019년 11월 말 648조 원으로 폭증했고, 2012년 23.2조 원이던 전세자금 대출잔액이 2019년 4월 말 102조 원으로 급증했으니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 가계부채의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인데 물경 850조원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가 대출까지 확 풀자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서울 아파트 시장은 2014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출 확대 정책이 서울 아파트 시장의 변곡을 이끈 트리거였던 것이다.
유능하지 못한 소방수, 문재인 정부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토부와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9년 내내 부동산 가격 상승에 올인했다. 이명박 정부가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방화 미수에 그친데 반해, 박근혜 정부는 방화에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9년 동안 지른 불이 사방에 붙은 상태에서 집권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전임 정부들이 저지른 투기부양책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정확히 간파하는데 실패했고, 확 바뀐 시장과 시장참여자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집권 초기에 집중적으로 투사했으면 효과를 발휘했을지도 모르는 대책들을 축차적으로 투입해 시장의 대세상승 흐름을 꺾지 못했다. 한 마디로 문재인 정부는 유능하지 못한 소방수인 셈이다. 소방수가 무능하다고 해서 방화미수범이나 방화범 보다 더 큰 비난을 받아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7월 30일 <한국소설가협회> 김호운 이사장과 회원들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공개 사과’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한국소설가협회>는 추 장관이 27일 법사위에서 “소설 쓰시네”라고 했던 발언을 문제삼았습니다.
<한국소설가협회>는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소설가들은 놀라움을 넘어 자괴감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소설가들의 인격을 짓밟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김호운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정치적으로 휘말리기 싫어서 그동안 참아왔는데 우리문학을 융성하는데 힘을 합쳐야 할 분이 소설을 폄훼해선 안 된다”라며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소설을 허접하다는 뜻으로 써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소설(을) 쓰다’를 보면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화면 캡처
<한국소설가협회>의 주장이 합당한 지 알기 위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소설’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명사에 관한 설명 말고 관용구/속담 항목을 보면 ‘소설(을) 쓰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설명을 보면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추미애 장관이 통합당 의원들의 질의 내용을 가리켜 “소설을 쓰다”라고 했던 발언의 뜻과 비슷합니다. “수사관은 범인에게 소설 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라는 사례와도 매우 흡사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다는 것은 ‘소설 쓰다’라는 표현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으로 ‘지어내어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소설가협회>의 주장처럼 소설가를 무시하거나 폄하, 인격적으로 짓밟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설 쓰고 있네’는 널리 쓰이는 말에 불과했다
▲’소설 쓰고 있네’에 관련한 다양한 사례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거나 없는 말을 지어낼 때 상대방을 향해 사용합니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은 소설가 공지영씨를 향해 비판할 때도 ‘3류 소설을 쓰고’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가수 은지원씨가 박근혜-최태민의 아들이라는 루머에 대해서도 “아주 소설을 쓰고 있네”라는 트윗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2016년 교보문고는 ‘소설 쓰고 있네’라는 타이틀을 걸고 ‘스토리 공모전’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소설을 쓰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한국소설가협회>가 추미애 장관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자, 온라인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나경원 전 의원의 과거 발언 이미지와 함께 “소설가 협회 또 소설 쓰고 있네. 저 때는 뭐했냐”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돈 못 버는 직업 3위 소설가
▲ ’2018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 보고서에 나온 평균소득 낮은 직업 50개. 소설가는 연봉 1,283만원으로 3위 ⓒ한국고용정보원
사실 <한국소설가협회>가 지금 고민해야 할 부분은 추미애 장관에 대한 공개 사과가 아닙니다.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한 낮은 처우와 환경에 대한 개선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펴낸 ‘2018 한국의 직업정보’연구 보고서를 보면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으로 1위가 자연 및 문화해설사, 2위가 시인, 3위가 소설가였습니다. 소설가의 연봉은 평뉸 1,283만원으로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국소설가협회>는 소설가의 권익옹호와 창작여건 조성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습니다. 하지만 소설가들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소설가협회>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빈곤한 소설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는 ‘예술인 복지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