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4일 월요일

3.15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고발뉴스 브리핑] 3.15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장호준 목사, ‘朴심판 광고’로 여권 반납 당해…박정희때 이어 악연류효상 특파원  |  balnews21@gmail.com
3월 17일 열리는 ‘깐죽’ 콘서트 D - 2
일정, 장소 등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로 확인해 주세요~
https://goo.gl/LMpnto
1. 새누리당의 현역 의원 컷오프 여부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는 비박계 권은희, 홍지만, 주호영 의원 등이 경선에서 배제됐습니다.
이한구 위원장의 '개혁·품위' 대상인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더민주당의 이해찬 공천배제가 힘이 될라나? 거참~
  
▲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제6차 공천결과 브리핑을 마친 후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권은희(대구 북구갑) 홍지만(대구 달서갑) 의원이 14일 공천 탈락했다. 또 서상기(대구 북구을)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의 경우 우선추천지역으로 설정, 전격 컷오프 됐다. <사진제공=뉴시스>
2. 더민주당 전략공천위가 당내 논란이 된 현역 컷오프 지역에 대한 전략공천 권한을 비대위에 넘겼습니다.
갑작스런 컷오프에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 김종인 비대위 대표 등 지도부에서 책임지고 공천을 하는 게 낫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전략공천위가 전략이 없다는 말씀인지 답답합니다~
3.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병 등 23개 단수 공천 지역과 19개 경선지역을 확정했습니다.
김한길 의원의 서울 광진갑과 천정배 대표의 광주서을, 박지원 의원의 전남 목포도 단수 공천됐습니다.
다들 광야로 나오셨네... 어떻게 장열하게 전사할 준비는 되셨는지요?
4. 20대 총선을 30일 앞둔 가운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야권연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선거구의 상당수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는 점에서 야권연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면 뭐하나... 들은 척을 해야지 말야~
5. 성인 3명 중 1명은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이민자를 편견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뜻하는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50점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국 나가서 받은 설움을 그대로 갚아주는 건 아니겠지요? 더불어 함께... 이게 안 되나?
  
▲ 평택 실종 예비 초등생 故신원영군 암매장 사건의 현장검증이 진행된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의 한 야산에서 피의자 친부 신모씨(38)와 계모 김모씨(38)가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경기지방경찰청 제공, 뉴시스>
6. 경찰이 '평택 원영군 사건'을 포함한 잇단 아동학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아동학대 전담경찰관을 1000여 명 규모로 늘릴 계획입니다.
1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아동학대 단속을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아동학대 예산이 2015년도보다 26.5%나 삭감된 건 아시는지? 이러니 믿음이 가냐고~
7. 대한항공의 한 부기장이 SNS에 여객기 조종사들이 비행 전 수행하는 절차를 조목조목 짚어보는 글을 올리자 조양호 회장이 '조종사 업무가 그렇게 힘드냐? 개가 웃는다‘는 댓글을 달아 논란입니다.
이에 조종사 노조는 ‘다수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고발을 검토 중입니다.
회장님 업무는 힘드세요? 월급에 비해서 별루 안 힘들어 보이는데... 혹시 개가 웃을지 모르겠다는~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13일 대한항공 부기장 김모씨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조종사 업무가 그렇게 힘드냐'는 취지의 댓글을 달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미지출처=페이스북>
8. 변호사와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서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절했다가 신고·적발되는 사례가 5년 만에 13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금을 덜 내려고 소득을 숨겨 차명계좌를 통해 비용을 입금받는 등 온갖 꼼수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라 법을 잘 아니 탈법도 잘하는 모양입니다. 부끄러운 건 모르고?
9. 전국의 도심에 양봉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첨가물 없는 천연 벌꿀을 직접 수확하고, 건강도 챙기고, 재테크도 가능하기 때문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작된 양봉이 이제 수원·대전·대구·창원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꿀 따면 좀 나눠 먹었으면 좋겠다는... 그래야 달달한 도시가 되지 않겠어요?
10. 국방부는 전군에서 윗몸 일으키기 방식을 개선한 내용이 포함된 '2016년 군 장병 체력검정'을 시작한다고 밝혔습니다.
군무원을 포함해 전 장병이 참가하는 체력검정은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펴기, 3㎞ 달리기 등 3개 종목으로 진행됩니다.
별 달고 계신 장군님들도 하시는 거죠? 전군 열외없이 집합~
11. 영화 ‘귀향’이 국내외에서 흥행몰이를 하는 가운데 일본의 대표적 보수 월간지가 의도적인 흠집 내기에 나섰습니다.
일본의 월간지 '사피오'는 최근 발행한 4월호에서 영화 '귀향'을 집중 분석하며 ‘최악의 반일영화’로 규정했습니다.
이유는 영화 귀향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겁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긴 이 분위기에 뭔 소린들 못할까~
12. 성인 남성은 점점 뚱뚱해지고 여성은 다리가 점점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남성 35~39세의 비만율이 52%로 가장 높았고, 여성은 20대 이상 전 연령대에서 다리 길이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이 먹어도 배 좀 들어가고 다리가 길어지면 좋을 텐데... 그건 아닌가 봅니다~
13. 새 학기마다 반복되는 반장선거가 일부 초등학교 학부모들 사이의 과열로 이른바 ‘선거 과외’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회당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 상당의 수업료까지 지불하는 등 반장선거에 대한 관심이 4.13 총선 못지않으며,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사교육 난립과 의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학원을 안 다녀서 이 모양인가? 사교육이라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는~
14. 남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군부대 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잇따라 9명의 사망 사고가 일어나 군 기강해이가 또다시 수면위로 부상했습니다.
더 이상의 군내 의문사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억울한 죽음은 이제 그만~
15. 중국내 '송중기 상사병' 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중국 공안부는 수천만 명의 소녀들이 '송중기 상사병'에 걸려 위험할 수도 있다며 법률적인 위험까지 경고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줌마들이 난리라던데... 아무튼 ‘반했지 말입니다’
16. 서울시교육청이 신종 촌지로 사용되는 모바일 상품권 수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촌지에 연루된 교사뿐 아니라 학교장 등 관리자도 처벌할 방침입니다.
카카오톡 기프티콘이 새로운 촌지라네요... 이거야 원~
17. 외국에서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는 신문광고를 게재했다가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여권 반납’이 결정된 이는 고 장준하 선생의 3남인 장호준 목사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장 목사는 신문에 광고를 계속 싣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박정희대 장준하. 박근혜대 장호준. 안이나 밖이나 입 다물라는 얘기인듯...
  
▲ ‘장준하선생 아들’ 장호준 목사 <사진제공=뉴시스>
18. 정부가 ‘인공지능 AI 총괄팀’을 새로 만들어 지난주부터 가동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또 민간기업과 함께 ‘AI 개발 콘트롤타워’를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알파고-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 열풍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책’입니다.
K- 알파고 얘기가 나오더니... 역시 기대에 부응하시는 구만요~ 대단해요~
19. 오늘 15일은 세월호 참사 700일입니다.
오늘 오후 2시 광화문 416 광장에서는 2주기 추모의 달(3.15~4.16) 공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저녁 7시에는 참사 700일 기획전시 개관 문화제가 열립니다.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요? 그러게요 저도 빨리 진실이 밝혀졌으면 합니다.
20. 블루베리가 노인의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광주시민대책위가 왜곡·오류 초등6 사회 교과서의 폐기를 촉구했답니다.
안보리 제재 후 북한의 중국 정광 수출이 오히려 늘어났답니다.
세무공무원의 돈 받은 경기2청 경찰간부가 긴급체포됐답니다.
육군이 신병에게 ‘4·19 5·18이 북한 간첩의 폭동’이라고 교육했답니다.
국민의당 후보가 ‘정의당 이정미 부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했답니다.
사학개혁 국민운동본부가 사학비리를 비호한 문제로 현역 의원 세분의 낙천을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분은 여러 시민단체의 낙천자 명단에 계속 오르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누군지 궁금하시다고요?
오늘 11시 반 2차 낙천 촉구 명단과 함께 ‘2016 총선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각 정당의 경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 모양입니다.
귀찮다고 생각지 마시고 적극 참여하세요.
선거는 참여가 꽃입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하루 되시길~
고맙습니다. 
 
류효상 특파원의 다른기사 보기  

'장군의 딸', 결국 괴물이 되는가?


[유라시아 견문] 아웅산 수치 : 장군의 딸
이병한
역사학자
| 2016.03.15 07:04:49



장군의 딸

'황금의 땅(Golden Earth)'에 내렸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거대한 쉐다곤 사원은 더욱 우뚝해졌다. 양곤의 밤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일견 시간이 멈춘 곳 같았다. 남자들은 긴 치마로 몸을 두룬 론지를 입었다. 여자들은 BB크림이라도 되는 양 다나카를 발랐다. 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야 호수로 행진했다. 목적지는 대학로(University Avenue)에 자리한 2층 목조 가옥. 그 앞에서 입을 맞추어 'Lady!, Lady!'를 외쳤다. 

환호에 화답하듯 아웅산 수치가 등장했다. 나무 상자로 만든 연단 위에 올라섰다. 가택 연금 시절 토요일 오후 4시면 이런 식으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자그마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꽃가지를 비녀처럼 꽂은 상징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2015년 11월 7일 총선 전야, 마지막 선거 유세였다. 가까이서 보니 옅은 화장 사이로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1945년생, 벌써 일흔을 넘겼다. 'Lady'가 된지도 어언 30년이다. 

1988년이었다. 20년 넘게 지속된 군사 독재에 맞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궐기했다. 8월 8일이 상징적인 날이다. 그래서 '8888', '88 항쟁'으로 기억된다. 마침 아웅산 수치가 귀국해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곁을 지켜드리기 위해서였다. 근 30년 만에 양곤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곳에서 뜻밖으로 아버지와 조우한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두 돌이 못되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해방 공간, 정적에 의해 암살되었다. 그 아버지의 초상이 양곤 도처에 널려 있었다. 거리를 메운 수천의 학생들과 수만의 시민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것도 아버지의 사진이었다. 그 중 일부는 군홧발에 짓밟히고 총에 맞아 죽어갔다. 아버지의 사진도 찢기고 깨져나갔다.

다급해진 학생들이 수치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간절히 동참을 요구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산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도 인생도 우연으로 점철된다. 그래서 운명이라 할 것이다. 그녀의 삶도 역사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쉐다곤 사원과 양곤 대학에서 대중 연설을 시작한다. 1947년 아버지의 연설을 빼다 박은 내용이었다. '장군'을 환기함으로써, 'Lady'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환생인 듯하였다.

수치가 미얀마를 떠난 것이 1959년이다. 14살 때였다. 어머니가 인도 대사로 취임했다. 그래서 10대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도 뉴델리이다. 20대에는 영국으로 유학 간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가 티베트 문학 연구자 마이클 아리스이다. 책벌레였던 그는 동양의 불교 국가에서 온 아리따운 학생에게 금세 빠져들었다.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의 국적은 자연스레 영국(미얀마의 식민 모국)이 되었다. 그것이 반세기 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족쇄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60년대 후반에는 뉴욕에서 생활했다. 유엔(UN)에서 근무하는 영국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당시 미국은 격동기였다. 68 혁명의 한복판이었다. 우드스탁에는 히피들이 집결했고, 유엔 건물 밖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시위가 매일같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그녀의 일상은 당대의 풍조와는 멀찍했다. 가정과 직장을 오고가는 무사한 나날이 이어졌다.

떠들썩한 뉴욕을 떠나 이른 곳은 히말라야의 불교 왕국 부탄이다. 그곳에서 남편은 왕실의 가정교사 노릇을 하며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수치는 영국 대사관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영국으로 돌아간 남편은 교수가 되었고, 수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 역할에 충실했다. 1988년까지 그녀의 삶은 평온하고 평탄했다.

'8888' 이후 수치는 세계적인 명망가가 된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불과 3년 후, 1991년이다. 마침 소련이 해체된 해였다. '역사의 종언'이 선포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만국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동아시아도, 동유럽도 민주화의 궤도에 진입했다. 미얀마도 다르지 않으리라. 순식간에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등극한 것이다.

'군사 정부 대 아웅산 수치'라는 프레임이 널리널리 퍼져갔다. 미국과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버마 민주화' 인사들도 가세했다. 언론 활동과 로비를 통하여 미얀마 군사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가중시켰다.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한 세력은 미국의 네오콘이다.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 기지'라고 지목했다. '악의 축' 이라크 후세인의 운명을 지켜본 미얀마 군부는 2005년 양곤에서 네피도로 천도했다. 양곤과 만달레이 사이, 밀림 깊숙이 자리한 이 행정 수도는 지하 벙커로 점철된 인공 요새이다.

10년 만에 그 행정 수도의 주인공이 바뀌게 되었다. 돌아보면 2015년 총선은 아웅산 수치에게 최적기였다. 그해 2월 13일이 아웅산 장군 탄신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웅산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연중연시 성황이었다. 그 기세에 힘입어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대승이고 낙승이었다. 아웅산에서 아웅산 수치로, 새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아웅산 수치의 마지막 유세. ⓒ이병한

버마식 사회주의 

아웅산과 수치 사이에 네윈(Ne Win)이 있었다.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딸의 정적이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접수한 것이 1962년이다. 1988년까지 장장 26년을 집권했다. 유별난 일만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다. 대만(타이완)도 태국(타이)도 군사 정권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 군사 정변이 일어났다. 필리핀도 독재 정부였다. 

도처에서 군대는 근대의 첨단이었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미국의 암묵적인 지지나 개입이 없었다. 이른바 '근대화' 이론에 기초한 개발 독재를 추진하지 않았다. 네윈이 표방한 것은 '버마식 사회주의'였다. 자력갱생을 주창한 마오쩌둥 사상의 변종이었다.

네윈은 1911년생이다. 수치가 미얀마로 돌아온 1988년에는 이미 노인이었다. 군부 후계자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말년에는 명상과 요가에 전념했다고 한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영성을 갈고 닦았다. 독재자의 최후는 평화로웠다. 침상에서 숨을 거둔 것이 2002년이다. 근 한 세기를 살아낸 것이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때어났을 때부터 조국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대영제국의 식민지 간에도 위계가 있었다. 양곤(당시 랭군)에는 총독이 없었다. 콜카타(당시 캘커타)의 총독이 버마를 대리 통치했다. 영국과 인도의 중층적 식민지였다.

혈기왕성한 민족주의자였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대동아공영권을 세우자는 일본이 접근해온 것이다. 버마 해방을 선도할 최정예 30명을 선발했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 섬으로 데려가 혹독한 군사 훈련을 시켰다. 그곳에서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교육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긴 미얀마의 군부 독재가 일본군의 진도지휘 아래 배양되었다. 

미얀마의 '선군 정치'는 최장수일뿐더러 가장 순수한 형태의 군사 독재이다. 민간 정부 위에 군부가 군림하기보다는 군대 자체가 곧 국가였다. 경제와 행정 등 국가 전 영역이 군대와 일체화되었고, 장교들이 장관으로 국사를 처리했다. 네윈 나름으로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그는 군부가 전권을 쥐지 않으면 미얀마는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여겼다. 근거가 없지도 않았다. 이웃 인도는 파키스탄(1947년)과 방글라데시(1971년)로 차례차례 분할되어 갔다. 동아시아의 분단과 남아시아의 분할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시 상태도 그치지 않았다. 대전이 끝나자 냉전이 닥쳐왔다. 미얀마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대륙에서 공산당에 패배한 국민당 군이 미얀마까지 패주해왔다. 동북부 샨(Shan) 주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윈난성 재탈환의 기회를 노린 것이다. 대만으로 패퇴한 장제스가 무기 공급을 지속했다. 

미얀마 군부로서는 응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개의 중국'이 자국 내에서 경합하는 상황을 종식시켜야 했다. 자연스레 군부에 힘이 실렸다. 성과도 거두었다. 1961년 국민당 잔군을 완전히 국경 밖으로 몰아낸다. 라오스와 태국으로 밀어낸 것이다. 작년(2015년) 이맘때 소개했던 태국 고산 지대의 화교 마을이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종식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샨 주의 소수 민족들이 준독립에 해당하는 자치를 요구했다. 동부서는 카렌 족이 북부서는 카친 족이 일어섰다. 실제로 미얀마는 30개가 넘는 다민족, 다인종, 다언어, 다문화, 다종교 국가이다. 일종의 '미니 제국'이다. 영토도 영국과 프랑스를 합한 것보다 크다. 그 영토의 절반이 고산 지역이다. 그래서 소수 민족들이 5000만 인구의 4할을 점한다. 인문 지리에서 윈난성과 흡사한 것이다.

네윈은 협상으로 타결될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고 여겼다. 우격다짐 소제국의 실상을 국민국가의 틀 속으로 우겨넣어야 했다. 무릇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듬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근다. 자발적 쇄국 정책, 주체 노선이었다.

따라서 1988년의 민주화 운동을 88 항쟁으로만 기억해서는 미진하겠다. 다른 민주화 요구도 있었다. 평야에서 (버마족이 절대 다수인) 시민들이 봉기하자, 산악 지대의 소수 민족들도 덩달아 궐기했던 것이다. 중국과 태국의 국경선을 따라 소수 민족들이 재집결 했다. 윈난 성의 와(Wa) 족들과 생활 세계를 공유하는 미얀마의 70만 와족 들이 가장 먼저 이탈해갔다. 전체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최대 소수 민족 샨 족 역시 태국으로 솔깃했다. 이들도 혈통으로 따지자면 버마 족보다는 타이 족에 더 가깝다. 살림살이 형편도 태국 쪽이 더 나아보였다. 

그리하여 1989년 전격적으로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수정한다. '버마 족 패권'에 저항하는 소수 민족들의 불만을 일부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실은 '버마'라는 이름부터가 영국이 부여한 것이다. 식민지 이전의 마지막 왕조가 '미얀마'였다. 수도의 이름을 '랭군'에서 '양곤'으로 바꾼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종의 '역사 바로 세우기'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해외로 망명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버마'를 고수하고 있음을 일방으로 편들기가 힘들어진다. 버마 족이 중심이 된 '영국식 민주주의로의 이행'만이 8888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제국의 실제에 부합하는 연방제형 국가로의 전환 또한 88 항쟁의 자명한 요구였다. 

실제로 1989년과 1990년 사이에 미얀마 군부와 소수 민족 간의 다양한 정전 협정이 체결된다. 무려 17개의 반군 조직과 평화 협상을 체결했다. 1960년대부터 봉기하여 가장 강경하던 카친 독립군을 비롯하여, 카렌 민족군과도 화해했다. 독립 이후 근 반세기 만에 항상적이었던 내전 상태가 (일시적으로) 종식된 것이다. 

고산 지역에 살아가는 수백만의 소수 민족도 비로소 일상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비록 불완전했을망정 적지 않은 성과였다. 그럼에도 외부에서는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다. 오로지 '민주 대 독재'라는 프레임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늘 아웅산 수치로만 향해있었다. 
▲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2015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이병한

미얀마식 자본주의 

내전 상태를 봉합함으로써 미얀마 군부는 개발 독재형 군사 정부로 이행했다. 왕년의 한국, 태국, 대만, 필리핀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를 지향했다. 문제는 미국이 더 이상 '개발 독재' 정권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이 '근대화'에서 '민주화'로 옮아갔기 때문이다. 민주 정권 아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시킴으로써 개발 독재 정권이 축적했던 국부를 회수해가는 것이 세계화의 목표였다. 이를 거부하는 미얀마에는 봉쇄와 제제를 강화했다. 스스로 자폐를 선택했던 나라를 더 고립시키는 설상가상의 전략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 옆에는 중국이 있었다. 선교의 전통이 없는 이 나라는 남들 내정에는 무심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중국을 우회하여 개발 독재를 실시할 수 있었다. 차츰 중국의 번영이 미얀마 변경까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이웃 태국의 정책도 바뀌었다. 냉전기 CIA의 지원 하에 미얀마의 소수 민족을 무장시켜 군정의 전복을 꾀했던 태국 역시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실리를 선택했다. 미얀마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하는 데 군사 정권의 지속이 나쁘지 않았다. 태국의 민주 정부와 미얀마의 군사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곧이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등도 군사정부를 승인했다. 1997년에는 아세안에도 가입했다. 명실상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것이다. 자연스레 '버마식 사회주의'가 '미얀마식 자본주의'로 전환되어갔다. 동유럽과는 상이한 동남아식 탈냉전이었다.

당장 양곤의 번화가부터 변화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부티크 호텔로 재개장하거나 레스토랑과 바로 변신했다. 미얀마 중산층들은 반세기만에 소비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10대들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을 수 있었고, 장군들은 명품 골프장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때마침 동북아에서는 한류도 불어왔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TV에서는 온종일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었다. 그 덕을 톡톡히 누렸다. 아웅산 박물관의 관장이 몹시 환대해준 것이다. 손자가 <주몽>의 열렬한 팬이란다. 박물관 안내를 자청하여 아웅산 장군의 일대기를 설명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산간의 소수 민족도 이익을 취하는 쪽으로 달라졌다. 미얀마와 중국 간 국경 무역이 재개되자 그들이 가장 먼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한 손에는 미얀마의 자원을 들고, 다른 손에는 중국의 산업혁명이 생산하는 상품을 쥐었다. 중국식 개혁 개방을 미얀마에 전파하는 전위부대가 된 것이다. 윈난 성에 사는 소수민족들과 핏줄로 연결된 '꽌시' 또한 주효한 전략이 되었다. 

점차 산골의 시골마을이 국제무역도시가 되어갔다. 내가 이틀 밤을 보낸 망라(Mang La)라는 국경 마을은 '작은 중국'에 방불했다. 양곤이나 만달레이보다 더 흥청망청이었다. 24시간 ATM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밤새 문을 여는 술집도 적지 않았다. 쿤밍에서 미처 사용하지 못한 위안화를 마저 사용할 수도 있었다. EXO의 히트곡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북조선의 나진 선봉도 이러할 것인가 잠시 상상해보았다.

인구 이동의 방향 또한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특히 1988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들이 대거 북진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위하여 국경 지대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부작용도 없지 않다. 향락과 부패도 스며들고 있다. 혼자 앉아 있노라니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lady boy'라고 불리는 트렌스젠더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성들까지 섹스 산업이 활황이다. 주 고객은 중국 남부에서 온 사업가들이나 미얀마의 화교 자본가들이라 한다. 그들은 위한 카지노와 보신용 야생동물 식당도 성업 중이다. 

시진핑이 반부패 칼날을 휘두르면서 마카오 출입이 어려워진 부호들이 이곳을 부쩍 찾는다고도 했다. 이 지하경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푸젠 성과 광둥 성 출신의 조폭들도 진출하고 있었다. 미얀마의 동북부는 확연히 대중화경제권에 편입된 모양새다. 숙소 직원들도 영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중국어는 곧잘 말했다. 

상부 구조가 하부 구조와 무연할 수 없겠다. '미얀마식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군부 또한 헌법 개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참조했다는 후문이다. 군부가 의회에서 일정한 지분을 확보하는 술책을 강구했다. 

양곤에서 만난 BBC 특파원은 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1920~30년대 영국의 버마 통치를 참고했을 것이란다. 당시 대영 제국은 버마의 의회에 가능한 천천히 권력을 이양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과연 미얀마 군부는 '미얀마식 민주주의'로 가는 7단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2003년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군부와 수치 간의 비밀 협상도 개시되었을 것이란다. 군정에서 민정으로의 '점진적 이행'에 양 세력이 합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싸한 견해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그가 쓴 기사를 찾아보니 이런 얘기는 한 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추론'에 내가 보탠 것은 중국과의 관계였다. 이미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선거에 앞서 아웅산 수치가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과 리커창은 그녀를 '국빈'으로 예우하며 연쇄 회동을 가졌다. 중국이 군부뿐 아니라 야당의 대표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중국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는 책임대국으로서의 풍모를 과시했고,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최대 투자국인 중국이 자신을 승인했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내부적으로는 군부와,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일정한 조율을 마친 끝에 11월 총선이 열렸던 것이다. '관리된 민주화'였다. 

역사의 단층 

선거 사흘 후 NLD 당사를 찾았다. 도로 가에 자리한 허름한 건물이었다. 정문이랄 것도 마땅히 없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외국인들이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가운데 말쑥한 양복 차림의 백발 백인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두 팔 벌려 맞아준다. 자기 자리로 안내하여 차까지 대접했다. 나는 <프레시안>에서 파준 명함을 건네고 저널리스트 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다. 군복을 벗고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로 돌아왔다. 총 대신에 성경을 든 것이다. 비록 전쟁에서 졌을망정 복음을 전파해야한다는 사명감마저 저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수단을 바꾸어 공산주의와의 성전을 지속한 것이다.

그의 삶도 고단했다. 베트남에서는 추방되었고, 캄보디아에서는 비자 발급이 중단되었다. 마지막 선교지가 미얀마였다. 주로 고산 지역의 소수 민족에게 선교 활동을 했다. 평야에 내려와서는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다. 그 일념으로 미얀마에서 산 지 20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기독교를 믿는 소수 민족인 카렌 족 여인과 새 가정을 꾸렸다. 딸은 13살이다.

그는 시종일관 들떠 있었다. 수치의 승리로 말미암아 청년 시절의 회한을 비로소 만회한 듯 보였다. 그녀에게 동지애 혹은 전우애를 느끼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일흔을 넘긴 어르신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집권 여당을 목전에 둔 NLD 당사 안에서 말이다. 

내 생각은 좀 나르다. 낙관을 금한다. 도리어 걱정이다. 이미 필리핀과 캄보디아를 둘러보고 난 차였다. 이웃나라 태국은 민주화 이후의 혼돈 끝에 군사 정부로 돌아간 상태이다. 더 불길한 것은 '폭정' 이후의 나라들 때문이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의 발칸이 떠오른다. 2000년대 후세인 제거 이후의 이라크가 연상된다. 2010년대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도 비슷하다. 

인종 학살과 종족 간 폭력이 분출했다. 미얀마는 건국 이래 70년 가까이 내전 상태를 지속해온 나라이다. 그 내분을 억지로 억눌렀던 군부가 약화되고 다수결로 운영하는 선거제가 가동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 '민주 내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련이 떠나고 난 아프가니스탄도 '민주주의 국가'였다. 

외부에서는 이번 총선을 군부와 수치의 대결로 묘사하지만, 실제로 총선에 참여한 정당은 양당만이 아니었다. 무려 100개에 육박한다. 산간 지역에서 소수 민족을 대변하는 지방 정당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회에서 이들이 차지한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상의 이유로, 안보상의 이유로 참정권이 원천 봉쇄되었다. 그 비중이 20%에 달한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선거는 '버마족 패권주의'의 압승일지 모른다.

의회를 장악한 버마 족들이 군부와 타협하여 장기 집권을 획책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전혀 허황한 전망만도 아니지 싶다. 수치는 선거를 전후하여 서북부 아라칸 주에서 발생한 무슬림 난민 사태에 시종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들이 정착한 곳은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이다. 실제로 로힝야 족은 버마 족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없다. 차라리 인도양 건너 오만과 더 연결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글로벌 무슬림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이다.

미얀마의 60%를 점하는 버마 족은 독실한 소승 불교 신자들이다. 군사 정부와 결탁해 왔던 불교계에서는 '불교 근본주의'라 할법한 현상마저 불거지고 있다. 스님들이 무슬림에 가장 적대적이다. 버마를 복원하여 불교 정토를 만들자고 한다. 때문에 이슬람과 기독교계 소수 민족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긁어 부스럼이기 십상이다. 수치 또한 표를 먹고 살아야하는 현실 정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치를 대신할 대통령이 누구이냐에 온통 관심이 집중된 사이에도, 내가 더 주목한 소식은 카렌 족의 일부가 재무장을 시작했다는 뉴스이다. 부디 그녀만은 아버지의 운명을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미얀마에 가기 전, '중국과 인도 사이'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가보니 영국풍이 여실했다. 쇄국 정책 탓에 더더욱 영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양곤이 그러하다. '랭군'이야말로 대영제국이 만들어낸 '신도시'였기 때문이다. 벵골 만을 사이로 콜카타와 마주하고 있는 개항장으로 최적의 위치에 자리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와의 연결망으로서도 제격이었다. 즉, 영국으로 말미암아 미얀마의 중심이 만달레이에서 양곤으로 옮아간 것이다.

나라 이름도 다수 민족의 이름을 따서 버마라고 불렀다. 나아가 영국령 인도의 일부로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시종 미얀마의 지리적-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식민 통치가 관철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미얀마'와 무관한 '근대적 버마'가 들어섰던 것이다. 1886년을 기점으로 옛것과 새것 사이에 현격한 낙차가 생겨났다. 미얀마가 싹둑 버마로 동강나서 근대 세계로 내던져진 것이다. 

하여 오늘날 미얀마가 직면하고 있는 산적한 과제 또한 대영제국 시절로 거슬러 오르지 않고서는 그 전모를 온전히 살피기가 힘들다. 물론 '유라시아 견문'에서 미얀마 근대사를 통으로 훑어갈 여력은 없겠다. 하더라도 작금 '민주 내전'의 기운을 되 지피고 있는 분열의 기원만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는 대영제국만큼이나 대일본제국도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과 서의 두 제국이 충돌했던 역사적 유산이 지금껏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실상은 실로 복잡다단했다. 대일본제국과 대영제국이 최후를 다투었던 임팔 전투를 복기해 본다.  

휑한 위안부 피해자 묘지, 주변엔 '복수초'만 피었다


16.03.14 21:06l최종 업데이트 16.03.14 21:06l





할머니께서는 1943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돼 만주 봉천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고 해방 후에도 온갖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 2007년 3월 12일 여든아홉 인생을 마감하셨다. 

김우명달 할머니 묘지 앞에 10년 만에 다시 섰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에 파묻혀 할머니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 <귀향> 개봉 소식을 들었지만, 그 절절한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를 다시 목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주저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터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서부경남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던 언니가 우리 부부가 진주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운을 띄웠다. 

"이번 주말(3월 12일)이 김우명달 할머니의 기일이니, 산소에 같이 가자." 

기억 넘어 잊고 있던 사람들이 흑백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게다가 요즘 영화 <귀향> 상영관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얼굴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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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운 할머니 공개강연 포스터 진주 지역의 젊은 청년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어 준비했다. 정서운 할머니의 마지막 증언이 이날 이뤄졌다.
ⓒ 밥과 민들레

20대 시절, 할머니들에게 애정이 있는 선배·친구들과 함께 '밥과 민들레'라는 이름으로 서부경남 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다. 우리의 활동은 2003년 3·8 세계여성의 날 즈음해 하동 악양의 정서운 할머니를 경상대에 모시면서 시작됐다. 

"조국이 힘이 없어 끌려간 것인데, 부끄럽다면 조국이 부끄러워야지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던 정서운 할머니의 강단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외로워 보이는 무덤 그리고 노란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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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작은 무덤 그 흔한 조화 한송이 없어 얼핏 보면 무덤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할머니의 이름 석자 세길 묘비도 찾을 수 없으며, 찾아온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처연한 시간이 묻어난다.
ⓒ 박보현

지난 13일. 묘비석도 없고, 그 흔한 조화 하나 없이 덩그러니 잠들어 계신 김우명달 할머니 묘지 앞에 섰다. 죽어서도 서럽고 외로움에 시간을 쓸쓸히 견뎌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생각하니 할머니의 삶이 더욱 가엾다. 

함께 간 언니는 김우명달 할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라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다며 평소 좋아하시던 식혜와 곶감을 올려 조촐한 상을 차렸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지요'라고 두 번의 절을 올리고는 뒤를 돌아보니 노오란 복수초들이 환하게 할머니의 삶을 비추는 촛불처럼 묘지 주변으로 피어있다. 

이날 나와 함께 김우명달 할머니 묘소를 찾았던 남편은 할머니 장례를 치를 때 마을 뒷산에 피어 있었던 복수초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복수초 꽃잎 하나 하나에 할머니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 너거도 산다고 바빴제, 그래 정신없었을 끼다. 잘왔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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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곁에 활짝 핀 복수초 쓸쓸한 할머니곁에서 피고 지는 복수초를 보며 할머니가 우리에게 보내 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며,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그들에게 복수의 마음을 품었다.
ⓒ 박보현

정대협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8명 중 2016년 2월 20일 기준으로 마흔네 분이 살아계시다고 한다. 현재 진주를 포함한 서부경남 지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모두 소천하셨다. 

할머니들의 명예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은 실험본 교과서에 '전쟁터의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진 제목과 함께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다"라는 사진 설명이 서술됐으나, 최종본 교과서에는 사진이 삭제되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라고 서술했다.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구체성이 결여된 서술로 바뀐 것이다. 할머니들의 아픈 삶이 아이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는 정부, 우리에게 요구되는 건 지금 저 산 속에서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복수초처럼, 할머니들 곁을 지켜 한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타이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의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됐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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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명달 할머니가 사셨던 집 대문의 모습 금낭화를 예쁘게 가꾸시던 할머니 꽃밭이 그리워 찾아갔다. 소박하지만 너무도 정갈하고 깔끔하던 할머니의 손떼가 묻어 나던 집이었으나, 주인을 잃고 집은 창고로 변해 있었다.
ⓒ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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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김우명달 할머니,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그곳에서는 고통없이 편히 쉬세요. 밥과 민들레에서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과 찍은 사진.
ⓒ 박보현

부산평통사, "스테니스 핵 항모는 돌아가라!"

부산 해작사 앞에서 기자회견,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 (전문)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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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4  17: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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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평통사는 13일 스테니스 미 항공모함이 입항한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사진제공 - 부산평통사]
한미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이 한창인 가운데 미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스테니스가 부산항에 입항하자 부산평통사 회원 등이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부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부산평통사)는 13일 오후 3시 해군작전사령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스테니스 핵 항공모함 전단의 입항과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포항 상륙훈련 반대 실천에 참가했다가 부산을 방문한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은 “어제 포항에서도 확인했지만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 연습은 북한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미국은 선제공격무기들을 한반도에 보내고 있는데 지금 여기 입항한 핵 항공모함이야말로 한반도 유사시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아무런 위기관리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북‧미, 남북 간 벌어지는 극한 대결은 민족의 생존과 민중의 삶을 더욱 벼랑끝으로 내몰 것”이라고 주장했다.
  
▲ 스테니스 원자로 항공모함은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사진제공 - 부산평통사]
미국 미시시피 정치가 존 C. 스테니스의 이름을 따온 ‘USS 존 C. 스테니스(CVN-74)’는 니미츠급 원자로 항공모함으로서 배수량 10만 3,300톤, 전장 332.8m, 폭 76.8m에 달한다. 비행갑판 면적이 축구장의 3배에 달해 항공기 80여대를 탑재할 수 있는 그야말로 ‘떠다니는 군사기지’인 셈이다.
스테니스 항공모함 전단은 9천200t급 구축함인 스톡데일(DDG-106)함, 정훈(DDG-93)함, 윌리엄 P. 로런스(DDG-110)함, 9천800t급 순양함인 모바일베이(CG-53)함, 제9항공단, 제21구축함전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테니스 함은 미군이 동아시아 지역에 항모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지난 1월 15일 모항인 워싱턴 주 브리머틴 킷샙 해군기지를 출발하여 7개월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다. 이로써 미군은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두 척의 항공모함을 운영하게 된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스테니스 핵 항모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 - 부산평통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오늘 부산에 입항한 핵 항공모함이야말로 한반도 유사시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이라며 “스테니스 항모와 같은 선제타격전력이 참여하는 한미연합연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에게는 엄청난 군사적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미일 3국의 동북아MD 작전 지휘부와 전력을 갖춘 레이건 항공모함에 더하여 스테니스 항모까지 동아시아에서 운영된다는 것은 북한 뿐 아니라 남중국해 분쟁 도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중국 당국과 중국군의 경계와 대응작전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동북아의 긴장과 대결을 가일층 높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미중간 긴장 격화는 미국과 공동으로 대북 선제공격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호시탐탐 대 한반도 군사적 개입을 노리고 있는 일본의 군사 개입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들은 “핵항모와 핵잠수함 등 미국의 핵추진 전력들이 부산을 이용하여 전쟁연습을 벌이는 것은 부산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우리는 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담보로 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의 즉각 중단과 스테니스 핵 항모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북한 핵실험과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동시에 중단하고 대화를 재개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실현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유일한 평화의 길”이라고 제시했다.

<기자회견문(전문)>
한반도 핵전쟁위기 불러오고 동북아 대결 격화시키는 존 C. 스테니스 핵 항모는 돌아가라!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인 존 C. 스테니스호(CVN-74) 항모강습단이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 참가를 위해 부산에 입항했다.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위기를 가속화하고 대결을 격화시킬 핵 항공모함 부산 입항을 규탄하며 즉각 돌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은 대북 선제공격과 체제 붕괴까지를 상정한 ‘작전계획 5015’에 따라 사상 최대규모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징후만 보여도 선제공격한다는 초공세적 ‘4D’(억제→교란→파괴→방어) 작전개념이 처음 적용된다. 동원되는 한미 양국군의 전력과 훈련도 대북 선제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늘 부산에 입항한 핵 항공모함이야말로 한반도 유사시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선제공격 전력이다.
존 C. 스테니스 항모 강습단은 존 C. 스테니스(CVN-74)호를 비롯해 9천200t급 구축함인 스톡데일(DDG-106)함, 정훈(DDG-93)함, 윌리엄 P. 로런스(DDG-110)함, 9천800t급 순양함인 모바일베이(CG-53)함, 제9항공단, 제21구축함전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행갑판 면적이 축구장의 3배에 달해 미 해군 호넷(F/A-18) 전투기, 프라울러(EA-6B) 전자전기, 호크아이(E-2C) 조기경보기 등 항공기 80여대를 탑재한다. 그야말로 '떠다니는 군사기지'다.
스테니스 항모와 같은 선제타격전력이 참여하는 한미연합연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에게는 엄청난 군사적 압박이다.
이에 북한도 “군사적 대응 방식을 선제공격적인 방식으로 모두 전환시킬 것” 이라며 한미 양국군의 전력과 장비 등에 대한 선제타격과 청와대 및 아태 지역 미군과 미군기지, 미 본토에 대한 보복전을 공언했다. 북한은 신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진행했으며 핵탄두 경량화를 언급하면서 핵탄두들을 언제든 쏠 수 있게 항시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급기야 부산, 평택, 광양등 유사시 미국 증원 전력을 한반도에 투입, 전개하는 주요 항구를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협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북미, 남북 간 극한 대결과 위기관리 체계 부재는 사소한 군사적 충돌조차 걷잡을 수 없게 확전되어 2013년 봄의 한반도 핵전쟁위기를 능가하는 위기를 불러오거나 실제핵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스테니스 함은 미군이 동아시아 지역에 항모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지난 1월 15일 모항인 워싱턴 주 브리머틴 킷샙 해군기지를 출발하여 7개월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작전을 펼친다. 이로써 미군은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두 척의 항공모함을 운영하게 된다.
레이건 항공모함은 동북아 MD 작전의 (선제)공격작전을 임무로 하는 주력이다. 레이건 항공모함 선단을 이루는 이지스 순양함 사이로(CG-67)는 항모 선단의 BMD 사령관이자 7함대 BMD 사령관으로, 사이로함뿐 아니라 타함의 MD 작전도 지휘한다. 한미일 3국의 동북아MD 작전 지휘부와 전력을 갖춘 레이건 항공모함에 더하여 스테니스 항모까지 동아시아에서 운영된다는 것은 북한 뿐 아니라 남중국해 분쟁 도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의 핵심 축”이라며 한국이 미국의 대중 포위망의 첨병, 전초기지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존 스테니스 호의 한국 영해 진입과 연합훈련 참가는 반접근과 지역거부 전략으로 제1, 2도련선 내의 대미 제해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당국과 중국군의 경계와 대응작전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동북아의 긴장과 대결을 가일층 높이게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5일 중국은 존 스테니스호가 남중국해에 들어오자 함대를 바로 투입, 미 항모 전단 주위에 근접해 감시작전(포위)을 펼쳤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직후에도 당시 요코스카에 배치되었던 핵항모 조지 워싱턴호가 대북 무력시위를 위해 서해로 진입했다가 중국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으며, 중국은 북경군구와 선양군구를 동원해 대응 작전을 펼친 일이 있다.
미중간 긴장 격화는 미국과 공동으로 대북 선제공격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호시탐탐 대 한반도 군사적 개입을 노리고 있는 일본의 군사 개입 빌미를 제공할 것이다.
일본 합참의장은 지난 달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에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전폭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세적으로 전개되는 한미연합연습에 따라 한반도 위기가 조성될 경우 일본의 개입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렇듯 존 스테니스 호의 부산 입항은 남북, 미중, 일중 간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고 전쟁위기를 불러온다. 또한 이 틈을 비집고 일본군이 호시탐탐 한반도에 재출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이어 한미 당국이 각각 개별적인 제재를 결정하는 등 힘에 의한 대북 압박과 흡수통일 의도가 전면화되고 있다. 남북, 북미관계가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핵 항모의 부산 입항은 한반도를 전쟁 전야로 몰아갈 수도 있다.
핵항모와 핵잠수함 등 미국의 핵추진 전력들이 부산을 이용하여 전쟁연습을 벌이는 것은 부산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다. 최근 주한 미해군사령부가 해군작전사령부로 이전하면서 한미 해군 간 공조가 훨씬 강화되는 상황이 부산을 더욱 위험한 지역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북한이 핵실험 재개를 언급한 것처럼 공세적 전쟁연습은 북핵 폐기는커녕 도리어 북한 핵전력 강화로 귀결될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길은 대북 군사적 압박이 아니라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중단하는 데 있다. 최소한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공세적 성격을 방어적 성격으로 전환해 북한에 대한 안보 위협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는 민족의 생명과 한반도, 동북아 평화를 담보로 한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의 즉각 중단과 스테니스 핵 항모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한다.
북한 핵실험과 키 리졸브/독수리연습을 동시에 중단하고 대화를 재개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함께 실현하는 한반도 평화협을 체결하는 것만이 우리가 선택할 유일한 평화의 길이다.
2016년 3월 13일
부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