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요구 끝이 없을 것...협상 결렬 선언도 염두해야”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5-10-05 15:43:27
- 수정 2025-10-05 21:36:51

나원준 경북대 교수(자료사진) ⓒ자주통일평화연대 제공 한미 무역합의의 세부 내용을 다루는 후속 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액을 현금으로 입금할 것을 요구하는 등 도저히 한국이 실행할 수 없는 조건을 무리하게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탄핵감'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일본과 EU(유럽연합)가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한국보다 먼저 자동차 관세 인하를 적용받았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들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한국 정부가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다는 듯 "한국으로부터 받는 3,500억달러는 선불"이라며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과감히 협상 결렬까지 염두해야 한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경제학자 중 하나인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협상 시기를 앞당겨 관세 인하를 받아내려는 건 효과적인 협상 전략이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나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어차피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를 한국은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 된다"며 "그렇다면 거꾸로 협상 결렬 선언을 하는 편이 오히려 맞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압박은 점차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의약품 등 한국의 핵심 수출품에 대한 고율의 품목관세를 예고하고 있어 한국에 더 치명적이다.
나 교수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선 "지금 수출 시장은 미국에 지나치게 너무 편중해 의존하고 있다"며 오히려 "미국과의 교역이 줄어드는 것은 2019년 일본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처럼 장차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일본의 소부장 수출 제재 당시 한국의 산업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독자 기술 개발 등 소부장 자립화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성과를 얻기도 했다. 소부장 사태 2년 만인 지난 2021년 기준 소부장 분야 특허 출원 1,570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발표 2,171건이 발표되고, 일부 소재에 대해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미 관계에서 한반도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 만큼 결국 주한미군주둔비(방위비 분담금의 한국 몫), 국방비 인상 등 안보 요구와 함께 압박이 가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나 교수는 "미국이 그렇게 못하게 하려면 한국이 판을 흔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먼저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나 교수는 미국에 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의 한국 경제 구조를 내수주도로 변화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수경제 기반을 지금보다 더 확충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금처럼 외풍에 뿌리가 뽑힐 것"이라며 "경제적 자립의 미덕은 이런 정세에서 발휘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약속한 대미투자 규모 3,500억달러를 두고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며 강조하며 미국 주도의 현금입금 투자 방식을 받아들일 것을 압박했다. 미국이 한국이 실행할 수 없는 대미 투자 방식을 계속 강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압박의 수위를 계속 끌어올려 상대를 몰아간 다음, 일부 조건을 완화하면서 결정적인 양보를 받아내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단, 자신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가 한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은 쉬운 상대라는 계산은 섰을 것이다. 결국 자기 뜻대로 협상을 이끌 수 있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이 수출에 목매는 나라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미 투자를 잔뜩 부풀려 요구하는 것도 한국만큼 관세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는 나라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를 시행했다. EU에 대해서는 한국, 일본에 요구한 현금 입금 방식의 투자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EU는 미국과 합의에 따라 미국산 공산품 관세를 철폐하는 법을 만들었다. 미국 입장에서 EU의 대미투자보다 관세 철폐가 더 이득이라고 본 것일까?
트럼프가 특별히 유럽의 투자보다 유럽 관세 철폐를 선호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최근 무역협정 결과는 미국은 유럽산 제품에 15% 관세를 부과하고, 반대로 EU는 미국 제품의 관세를 폐지하는 것이어서 향후 EU 수출업체들 중심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EU 내 회원국들 사이에 경제 여건에 차이가 큰데 이와 같은 통상 여건의 변화가 중장기적으로 EU의 구심력 약화로 이어질지 알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유럽과의 교역에서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법하다. 대미 투자의 경우, 재정난을 겪고 있는 유럽 각국 정부들이 직접 나설 형편은 아닐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유럽 정부들이 나서건 유럽 기업들이 나서건 그 차이는 덜 중요할 것이다.
앞서 미국과 EU는 지난 8월21일 발표한 무역협정에 대한 내용을 문서화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대미투자와 관련해 '유럽 기업이 2028년까지 6,000억달러를 전략 산업에 투자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명시했다. 한국과 일본에 '투자를 거부할 경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조건을 건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만약 한국이 달러화를 직접 미국에 입금하는 방식의 대미투자 방식을 받아들일 경우, 일본과 함께 한국이 대량의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놓게 되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기준 금리 인하에도 부정적인 상황이 조성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화 직접 입금 방식의 투자를 강요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일본에 이어 EU도 한국보다 먼저 자동차 관세 인하를 적용받으면서 한국 정부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해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협상 시기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관세협상 타결이 지연될 경우 트럼프 특성상 반도체 등 한국이 더 치명적인 분야로 공격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연히 반도체,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올릴 것이다. 미국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런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관세협상을 빨리 타결해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를 다 들어주고 나라가 거덜 나면 되는 것인가. 이런 상황일수록 미국만 바라보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반도체 수출을 미국 아니면 못 하나? 중국과 경제 관계를 회복시키면서 남아시아, 러시아, 중남미 등으로 수출선을 어떻게든 더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에도 미국에도 어느 한쪽에 편중되면 안 된다. 지금 수출 시장을 미국에 지나치게 너무 편중해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과의 교역이 줄어드는 것은 2019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처럼 장차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지난 2019년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던 한국에 대해 소부장 수출 제재를 가했다. 당시 한국의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와 업체가 소부장 기술 자립에 적극 투자하면서 일부 반도체 소재에 대한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등 국내 공급망을 확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미 관계에서 한반도 안보 문제가 빠질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결국 미국이 주한미군주둔비(방위비 분담금의 한국 몫), 국방비 인상 등 안보 요구를 통상문제와 함께 엮어 한국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된 직후부터 안보와 통상을 함께 엮어 한국 정부를 압박해왔다. 이재명 정부도 국방비를 올리겠다는 입장인데 국방비 인상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주한미군 주둔비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라서 강하게 맞서야 한다. 미국은 안보 관련 요구를 통상 문제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곤 한다. 그렇게 못 하게 하려면 판을 흔들어야 한다.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면 어떨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기존의 자유무역체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수출시장 다변화 차원에서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검토를 공식화했다. CPTPP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또 일각에서는 미국을 버리고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안에서는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 체제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과도한 세계화로 미국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깔려있다.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붕괴가 일어났고,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의 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조하는 것은 또다른 트럼프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관세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미중에 편중된 무역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경제 구조를 수출주도에서 내수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국민들 안에서는 미국의 경제보복이나, 미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이탈할 경우, IMF 외환위기 사태 이상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 내수경제 확대가 대안이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