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5일 일요일

[인터뷰] 나원준 교수 “미국 관세 위기, ‘소부장 사태’처럼 오히려 기회 삼아야”

 


“트럼프 요구 끝이 없을 것...협상 결렬 선언도 염두해야”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5-10-05 15: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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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0-05 21:36:51

    나원준 경북대 교수(자료사진) ⓒ자주통일평화연대 제공


  • 한미 무역합의의 세부 내용을 다루는 후속 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액을 현금으로 입금할 것을 요구하는 등 도저히 한국이 실행할 수 없는 조건을 무리하게 들이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탄핵감'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일본과 EU(유럽연합)가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한국보다 먼저 자동차 관세 인하를 적용받았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자동차들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면서 한국 정부가 언제까지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다는 듯 "한국으로부터 받는 3,500억달러는 선불"이라며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과감히 협상 결렬까지 염두해야 한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경제학자 중 하나인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협상 시기를 앞당겨 관세 인하를 받아내려는 건 효과적인 협상 전략이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나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어차피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를 한국은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 된다"며 "그렇다면 거꾸로 협상 결렬 선언을 하는 편이 오히려 맞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압박은 점차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의약품 등 한국의 핵심 수출품에 대한 고율의 품목관세를 예고하고 있어 한국에 더 치명적이다.

    나 교수는 미국의 압박에 대해선 "지금 수출 시장은 미국에 지나치게 너무 편중해 의존하고 있다"며 오히려 "미국과의 교역이 줄어드는 것은 2019년 일본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처럼 장차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일본의 소부장 수출 제재 당시 한국의 산업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독자 기술 개발 등 소부장 자립화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성과를 얻기도 했다. 소부장 사태 2년 만인 지난 2021년 기준 소부장 분야 특허 출원 1,570건,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발표 2,171건이 발표되고, 일부 소재에 대해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미 관계에서 한반도 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 만큼 결국 주한미군주둔비(방위비 분담금의 한국 몫), 국방비 인상 등 안보 요구와 함께 압박이 가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나 교수는 "미국이 그렇게 못하게 하려면 한국이 판을 흔들어야 한다"며 정부가 먼저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나 교수는 미국에 의존도가 높은 수출주도의 한국 경제 구조를 내수주도로 변화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내수경제 기반을 지금보다 더 확충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금처럼 외풍에 뿌리가 뽑힐 것"이라며 "경제적 자립의 미덕은 이런 정세에서 발휘되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약속한 대미투자 규모 3,500억달러를 두고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며 강조하며 미국 주도의 현금입금 투자 방식을 받아들일 것을 압박했다. 미국이 한국이 실행할 수 없는 대미 투자 방식을 계속 강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압박의 수위를 계속 끌어올려 상대를 몰아간 다음, 일부 조건을 완화하면서 결정적인 양보를 받아내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단, 자신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가 한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은 쉬운 상대라는 계산은 섰을 것이다. 결국 자기 뜻대로 협상을 이끌 수 있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이 수출에 목매는 나라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미 투자를 잔뜩 부풀려 요구하는 것도 한국만큼 관세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는 나라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인하를 시행했다. EU에 대해서는 한국, 일본에 요구한 현금 입금 방식의 투자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EU는 미국과 합의에 따라 미국산 공산품 관세를 철폐하는 법을 만들었다. 미국 입장에서 EU의 대미투자보다 관세 철폐가 더 이득이라고 본 것일까?


    트럼프가 특별히 유럽의 투자보다 유럽 관세 철폐를 선호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최근 무역협정 결과는 미국은 유럽산 제품에 15% 관세를 부과하고, 반대로 EU는 미국 제품의 관세를 폐지하는 것이어서 향후 EU 수출업체들 중심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EU 내 회원국들 사이에 경제 여건에 차이가 큰데 이와 같은 통상 여건의 변화가 중장기적으로 EU의 구심력 약화로 이어질지 알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유럽과의 교역에서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법하다. 대미 투자의 경우, 재정난을 겪고 있는 유럽 각국 정부들이 직접 나설 형편은 아닐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유럽 정부들이 나서건 유럽 기업들이 나서건 그 차이는 덜 중요할 것이다.


    앞서 미국과 EU는 지난 8월21일 발표한 무역협정에 대한 내용을 문서화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은 대미투자와 관련해 '유럽 기업이 2028년까지 6,000억달러를 전략 산업에 투자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명시했다. 한국과 일본에 '투자를 거부할 경우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조건을 건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만약 한국이 달러화를 직접 미국에 입금하는 방식의 대미투자 방식을 받아들일 경우, 일본과 함께 한국이 대량의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놓게 되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기준 금리 인하에도 부정적인 상황이 조성된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화 직접 입금 방식의 투자를 강요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채 이자율이 상승하면 미국에 불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과 일본부터 먼저 더 불리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국채를 매도하는 이유가 달러 현찰을 확보하려는 것인데 국채 매도 가격부터 먼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시장 영향을 관리하면서 매도의 규모와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이 현찰을 직접 입금하는 방식이 제일 좋은 건 당연한 것이다. 대출을 하거나 대출 보증을 서는 정도면 미국으로서는 받을 수 있는 돈 자체가 줄어들 테니 당연하지 않은가. 트럼프가 상대방을 봐가면서 수탈할 사람은 아니지 않나. 뜯어낼 수 있으면 전부 다 뜯어내고, 뜯어냈다 싶은데 나중에 보니 더 뜯어낼 게 남아있다 싶으면 그 남아있는 것까지 몽땅 뜯어내려고 다시 달려들 것이다. 트럼프와 미국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에 이어 EU도 한국보다 먼저 자동차 관세 인하를 적용받으면서 한국 정부에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해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협상 시기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관세 조건에서 한국이 일본이나 EU보다 불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관세 조건과 관련해 지금 제일 큰 문제를 안은 곳은 자동차 완성차 업체, 즉 현대·기아차다. 그런데 현대·기아차는 미국 현지 생산 계획을 이미 다 세웠다. 반대로 (현대·기아차가) 관세율이 일본이나 EU 수준으로 낮아지면 미국 현지 생산 계획을 변경해서 한국 내 생산을 늘린다고 한 적은 없다. 당장은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물량이 줄어드니까 손해를 보겠지만 길게 보면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이다. 이들의 경쟁력과 일자리 공급 능력을 지탱시킬 산업정책의 큰 밑그림이 없는 것이야말로 정작 큰일이다. 협력사들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대체적인 수출 판로를 확보하는 방향, 전기차 등 산업 전환과 관련된 방향 등으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와 업계에서 해결해야 할 몫이다. 그렇다면 협상 시기를 앞당겨 관세 인하를 받아내려는 건 효과적인 협상 전략이 전혀 아니다. 어차피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를 한국은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거꾸로 협상 결렬 선언을 하는 편이 오히려 맞다.


    관세협상 타결이 지연될 경우 트럼프 특성상 반도체 등 한국이 더 치명적인 분야로 공격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당연히 반도체,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올릴 것이다. 미국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런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관세협상을 빨리 타결해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를 다 들어주고 나라가 거덜 나면 되는 것인가. 이런 상황일수록 미국만 바라보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반도체 수출을 미국 아니면 못 하나? 중국과 경제 관계를 회복시키면서 남아시아, 러시아, 중남미 등으로 수출선을 어떻게든 더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에도 미국에도 어느 한쪽에 편중되면 안 된다. 지금 수출 시장을 미국에 지나치게 너무 편중해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과의 교역이 줄어드는 것은 2019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처럼 장차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지난 2019년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던 한국에 대해 소부장 수출 제재를 가했다. 당시 한국의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와 업체가 소부장 기술 자립에 적극 투자하면서 일부 반도체 소재에 대한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등 국내 공급망을 확대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미 관계에서 한반도 안보 문제가 빠질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결국 미국이 주한미군주둔비(방위비 분담금의 한국 몫), 국방비 인상 등 안보 요구를 통상문제와 함께 엮어 한국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된 직후부터 안보와 통상을 함께 엮어 한국 정부를 압박해왔다. 이재명 정부도 국방비를 올리겠다는 입장인데 국방비 인상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주한미군 주둔비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라서 강하게 맞서야 한다. 미국은 안보 관련 요구를 통상 문제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곤 한다. 그렇게 못 하게 하려면 판을 흔들어야 한다. 정부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면 어떨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기존의 자유무역체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정부는 수출시장 다변화 차원에서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검토를 공식화했다. CPTPP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또 일각에서는 미국을 버리고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브릭스, 글로벌 사우스와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변화 차원에서 중국, 러시아,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브릭스 회원국 가입을 왜 검토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명청교체기'다. 어차피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그러나 CPTPP는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해 왔듯이 대안이 될 수 없다. CPTPP는 일본이 주도하는 메가 FTA(자유무역협정)이다. 한일 FTA를 직접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운 분들이 CPTPP부터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CPTPP 가입을 위한 조건으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과 과거사 문제를 덮자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후쿠시마 수산물, 국민들 먹게 하고 싶으신가? 한일 역사 정의 문제는 잊자고 말씀하고 싶으신가? 더욱이 CPTPP에 가입함으로써 정밀기계, 첨단소재 등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 제조업이 보호막 없이 경쟁하면 한국이 입는 타격이 클 텐데 그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는가?

    CPTPP는 가장 극단까지 치달은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과가 트럼프 같은 괴물 아닌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안에서는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 체제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과도한 세계화로 미국이 불이익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깔려있다.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붕괴가 일어났고,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의 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조하는 것은 또다른 트럼프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관세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미중에 편중된 무역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경제 구조를 수출주도에서 내수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국민들 안에서는 미국의 경제보복이나, 미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이탈할 경우, IMF 외환위기 사태 이상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 내수경제 확대가 대안이 될까?


    상황을 관리하면서 변화 속도를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히 어려운 길이다. 내수경제 확대가 대안이지만 그렇다고 수출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고립되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국제적으로 지금보다 넓게, 브릭스든, 이북이든, 미국이든 모두 포함해 더 많은 나라들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다만 내수경제 기반을 지금보다 더 확충해야 한다. 안 그러면 지금처럼 외풍에 뿌리가 뽑힌다. 경제적 자립의 미덕은 이런 정세에서 발휘되는 법이다. 한국경제는 내수경제 기반으로 정상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그 사실은 이미 여러 실증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내수경제를 확대하려면 다수 대중의 구매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불평등을 완화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향의 사회대개혁이 필요하다. 진보 정치가 아니면 그 역할을 할 주체가 없는데 참으로 걱정이다.

    중장기적으로 경제 구조를 전환해가야 한다. 체제 전환의 경제적 상을 정립해야 한다. 과거 소득주도성장처럼 한두 해 소란만 피우다가 접는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트럼프 사태를 계기로 그런 문제의식이 확산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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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내인생 황금기", 90세 장금이의 도전은 계속된다

 [현장] 종로노인복지회관의 '장체험관 및 장카페', 노인 일자리의 미래와 가능성을 엿보다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공동체사업단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용숙(90)·구문임(76) 어르신(사진 왼쪽부터). 구문임 어르신이 장금이들이 만든 전통된장을 용기에 담는 모습을 보여주신 후 활짝 웃고 있다. ⓒ 유창재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보기에는 '인생 다 살았지'라고 할 거다. 나도 그땐 그랬으니까. 하지만 (노인일자리에 참여한)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너무 좋다."

추석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9월 3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구문임(76)씨는 우리 전통 식문화인 '장 담그기'를 통해 인생 2막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30년간 국무총리실에서 공직자로 일하며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니, 은퇴 후 쉬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2~3년 지나니 좋았던 마음도 시들해졌고, 소개를 받아 노인복지관을 찾게 됐다. 처음 참여한 노인일자리가 '종로&(앤)장금이'다.

이 일자리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2013년 노인자원봉사단으로 처음 시작했다. 어르신의 전통장에 대한 지혜와 경험을 다양한 세대에 전승하고 확산하는 공동체사업단 사업이다. 2017년 복지관 증축 때 현재 장체험관과 카페 공간이 마련되면서 본격적인 일자리사업에 진입했다. 2023년부터 시장형 일자리로 확대하고 있다.

현재 20명의 장금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하루 4시간 일주일에 이틀을 기본으로 한다. 바쁠 때는 시간을 넘겨 일하기도 한다. 임금은 시급 1만300원을 기준으로, 최저 35만 원에서 시간을 초과할 경우 40만 원 전후를 받는다.

"자식들도 커서 (독립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총리실에서 일할 때 너무 많은 일로 고생했다. 직장 다닌다고 친정 엄마가 다 해줘서 먹을 줄만 알았다. 처음엔 장 담그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주 잘하고 있다. 장 담글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서 죄송하다."

구씨의 말에선 '은퇴가 인생의 끝'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일할 의지만 있다면, 자신에게 맞는 일을 배우고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체 인구 20% 고령인구... 노인일자리 성공사례 된 '종로&장금이'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공동체사업단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용숙(90)·구문임(76) 어르신(사진 왼쪽부터). '종로&장금이'의 주무대인 복지관 5층 장독대에서 전통장이 담긴 장독 등을 설명하고 있다. ⓒ 유창재

통계청이 전날(29일) '2025 고령자 통계'를 발표했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3%에 달하는 1051만4000명이라고 한다. 이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음을 확인하는 결과다. 달리 생각하면 새로운 '노년' 노동 자원이 배출되는 것이다.

'장 담그기'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2013년 김장문화에 이어 두 번째다. 노년이 잘할 수 있는 '종로&장금이'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새 길을 제시하는 성공사례가 됐다.

제1대 장금이로 13년째 참여 중인 조용숙(90)씨에게 더 이상 노년은 잿빛 미래가 아님을 볼 수 있었다.

"음식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해 참여하게 됐다. 장 담그는 법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 받았다. 복지관에 와서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봉사도 하고, 수업도 받고, 안 해본 게 없다.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그의 도전은 놀라웠다. "지금 나이가 있지만 드럼도 배우고 있다. 치매도 안 오고 너무 즐겁다. 마음 자체가 즐거우니, 활력도 생긴다"며 "실버(시니어) 모델도 한다. 내 주변에 복지관이 있는 게 '노인들의 천국'이다. 마음도 젊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아흔인 그가 '드럼', '모델'이란 단어를 말할 때 눈빛은 반짝였고 표정은 밝았다. 끊임 없는 도전의 삶이 주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는 "구현동화도 5~6년 했다. 당시 나이가 70대였는데, 어린이집 사업이 없어지면서 봉사 활동을 해왔다"며 "우리 애들이 그런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하세요'라고 하지만, 복지관에 오는 게 너무 즐겁다. 여기 아니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라고 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함께 만들고 나누는 '장 담그기'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공동체사업단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용숙(90)·구문임(76) 어르신이 전통장을 보여주고 있다. ⓒ 유창재

인생 1막을 끝낸 노년을 능력 있는 노동자로 빛나는 제2 인생으로 살게 하는 노인일자리 기획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더구나 서울 도심 속에서 전통장을 만드는 일을 생각해냈을까.

정수란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과장은 "종로구 특징은 문화재가 많아 전통미가 있고, 대기업도 밀집해서 현대적인 모습도 갖추고 있다"며 "두 가지가 공존하는 역사 도시 종로 한가운데서, 우리가 전통문화를 직접 전수해보자,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취지에서 장금이 사업이 처음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안내를 받아 장금이들의 주무대인 복지관 5층 장마당을 둘러봤다. 눈에 들어온 것은 100여 개의 윤기 흐르는 장독들이었다.

정 과장에 따르면 50년간 장을 담아온 어르신들이 전통 방식을 고집해서 장을 담근다. 이 때문에 대량 생산이 아닌 1년간 천천히 숙성시킨 한정판 장을 생산한다. 음식의 뿌리인 '장'을 어르신들이 직접 후손들에게 전수한다는 가치 또한 담겼다. 처음에는 어르신들마다 손맛이 달라 장맛의 표준화를 위해 장 전문가 등과 함께 종로&장금이만의 레시피도 만들었다고 귀띔해줬다.

올해 목표는 인재육성 시스템을 통한 신노년 일자리 확대라고 한다. 2023년 처음 문을 연 취업교육인 '장금이학교'를 통해 전문성과 역량을 강화 교육을 한다. 첫해 15명, 다음해 20명의 장금이를 양성했다. 올해 11월에 세 번째 교육 예정이다. 또 장체험 요리클래스 신규 코스를 개발하고, 어린이집 대상으로 찾아가는 장금이, 서울시민 대상 장독분양사업 등을 진행한다. 현재까지 전통장 프로그램에 4423명이 참여했다. 이 모델을 4곳에서 배워갔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 등을 판매해 상당한 매출도 올렸다. 전통된장 1통(500g) 가격은 9000원, 찹쌀고추장은 1만2500원이다. 2023년 디지털 커머스 사업에 도전해 연 180만 원의 매출을 냈다. 이후 홍보 활동을 적극 한 결과, 지난해 약 1억1000만 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월 100~400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번 추석 때 4000만 원 정도의 선물세트 주문이 들어와 완판 되는 등 지난해 연매출을 웃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노하우를 담은 <장금이의 장맛>이란 책도 내놨다.

이는 시니어 장금이들이 고령화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바꿔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능력 있는 노동자로 인생 후반기를 정체기로 보내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인생 황금기의 연속이다.

한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정관 스님(관장)을 비롯해 46명이 종사하고 있다. 노인맞춤돌봄 생활지원사 40명도 있다. 등록 회원수는 1만3971명이며, 60세 이상 종로구민의 33.4%가 등록돼 있다. 여성(62.4%)이 남성(37.6%)보다 많다. 70대(41.3%)와 80대(32.7%)가 주로 활동한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 5층에 있는 장카페. 이곳에서 '종로&장금이' 노인일자리를 통해 1년간 숙성시켜 만들어진 전통된장, 찹쌀고추장 등이 판매되고 있다. 현재 진열장에 있는 상품은 이번 추석 명절 선물로 예약 주문이 완료된 제품들. ⓒ 유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