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반포 이전 10대 사건 ⑥~⑩ 김슬옹ㆍ김응 글/ 지문ㆍ김희정ㆍ황금혜선 그림 [6대 사건] 1442~1447년(세종 24~29년) 처음으로 한글을 사용한 책 《용비어천가》
1442년에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를 짓고자 경상도 전라도 관찰사에게 자료 수집을 명했다. 그 뒤 집현전 학사 권제, 정인지 등의 노력으로 1445년에 《용비어천가》 초안이 완성되고, 1446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완성되어 이를 바탕으로 1447년에 《용비어천가》가 간행되었다. 책은 총 10권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125장이나 되는 서사시로 조선왕조가 오랫동안 번영하길 바라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를 550권을 인쇄한 뒤 신하들을 비롯해 사대부 양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당시 인쇄 기술로 봐서 굉장히 많은 양을 보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세종대왕은 사대부 양반들을 통해 많은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7대 사건] 1443년(세종 25년) 모든 인류의 꿈이 담긴 위대한 한글 창제
1443년 음력 12월에 세종대왕은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이루어진 한글(언문) 28자를 창제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에는 우리말을 적을 문자가 없어 한자를 빌려 적어야만 했다. 사대부 양반들은 한자를 배울 수 있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반 백성들은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또 죄를 적은 문서들이 한문이나 이두로 되어 있다 보니 죄인을 다스리는 관리들이 문서를 잘못 이해해 그릇된 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대왕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모든 백성에게 공평하게 가르치고, 누구나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우리말과 잘 맞는 문자 한글을 만든 것이다. [8대 사건] 1444년(세종 26년) 한자 발음 사전 《운회》 한글 번역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직후 집현전 교리 최항과 부교리 박팽년, 부수찬 신숙주 등에게 중국의 한자 발음 사전인 《운회》의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중국도 천 년 이상 한자음을 정확히 적지 못했던 일을 우리 새 문자로 적게 된 놀라운 사건이었다. 신하들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한글 번역 일을 차질 없이 해 나갔으며 세종대왕은 한글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넉넉히 내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하기도 전에 신하들에게 《운회》 번역을 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새 문자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며 반포를 위해 실사용에 문제가 없는지 서둘러 실험했다는 뜻이다. 《운회》는 훈민정음 해설서와 《동국정운》을 집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9대 사건] 1444년(세종 26년) 신하들의 한글 반대 상소
1444년에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글 창제는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학문에 정진하는 데 한글이 손해를 끼치며,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것은 죄인을 다루는 관리들이 공정하지 못한 탓이지 죄인들이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중국의 것을 따를 것은 따르되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며 한글 창제는 학문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도 신하들의 비판적 문제 제기로 세종대왕은 더욱더 철저하게 한글 반포를 준비할 수 있었다. [10대 사건] 1445년(세종 27년) 운서 연구를 위해 중국 요동으로 간 신하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이후 백성들에게 새 문자 한글을 하루빨리 보급하고 싶어서 하급 관리들 십여 명을 먼저 가르치고, 기능공 수십 명을 모아 급히 판각을 새겼다. 더불어 제대로 된 한글 운서를 만들기 위해 중국의 한자 발음 책인 운서를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운서들마다 발음이 제각각이다 보니 번역이 쉽지 않았다. 1445년 새해가 밝자 세종대왕은 집현전 부수찬 신숙주와 성균관 주부 성삼문, 동시통역사 손수산 등을 중국 요동으로 보냈다. 당시 요동에는 명나라의 한림학사 황찬이 귀양 와 있었다. 신숙주 일행은 요동까지 열세 번이나 오가며 황찬에게 정확한 음운을 묻고 배웠다. 세종대왕과 신하들의 열정으로 중국의 한자음을 한글 28자로 옮기고 정리하는 데 물꼬가 트였다. <저작권자 ⓒ 세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