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3일 토요일

<대통령의 7시간> ‘제작하면 징계’ 통보

MBC, <대통령의 7시간> ‘제작하면 징계’ 통보이상호 기자 “목숨 걸고 만들것”.. 트레일러 공개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MBC가 6개월의 추가 징계 후 지난 5일 복귀한 이상호 기자에게 개인 영상물 제작을 이유로 재징계를 예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호 기자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회사에 돌아온 첫날 그러니까 지난 2월 5일, MBC 인사부장 명의의 공문을 받았다”면서 “다큐 영화 <대통령의 7시간> 제작을 계속하면 추가 징계를 내리겠다는 것이었다”고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대통령의 7시간>은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7시간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비밀리에 취재‧제작해오다 지난해 12월 이상호 기자가 SNS를 통해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이 기자는 “언론사라면 당연히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물었어야 했으나 어느 누구도 묻지 않았다”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대통령의 7시간>은 비록 정직 기간임에도 한 사람의 기자로서 피땀을 흘려가며 만든 개인 영상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큐가)완성 되면, 대통령도 스스로 인정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논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기자는 “도대체 이게 추가 징계 운운하며 겁박할 일인가”라고 반문하며 “도대체 회사는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해 눈앞의 진실을 외면한다면 MBC는 과연 언론사 자격이 있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해당글 말미에 이 기자는 “이제 겸허히 묻고자 한다”며 “기자는 무엇입니까. 국민의 방송 MBC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날 이 기자는 다큐 <대통령의 7시간> 제작에 따른 MBC의 재징계 방침에 대한 소회를 밝히면서 영화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했다.
‘목숨 걸고 만들겠습니다’란 글로 끝을 맺는 트레일러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좋아요’와 영상 공유, 댓글 등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페이스북 이용자 ‘김**’는 “국민의 방송사는 죽어도 언론인은 살아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죽어도 국민은 살아 있어야 하듯”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또 다른 이용자 ‘신*’은 “응원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언론이 죽지 않았음을, 그래서 국민이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고 그 불씨에 정의를 향한 외침이 하나둘 모여지길 기도합니다”라며 응원했다.
이밖에도 “거짓말쟁이의 7시간, 몹시 궁금하다”, “영화가 꼭 완성되길 응원합니다”, “그래도 목숨은 지키고 만들어야죠”, “진실을 알려야 하는 게 기자의 본분입니다”, “아직도 이 나라엔 의식 있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힘들지만 끝까지 용기내십시오”, “공영방송 MBC는 죽었다”는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한편, <미디어오늘> 등 언론전문 매체들도 이상호 기자의 영화제작 소식을 속보로 전하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어, 향후 MBC측의 후속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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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 적대행위 핵전쟁 위험” 경고

“평화안정 수호 최우선적 과제는 조미 적대관계 청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2/14 [00:3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조선은 미국의 대북 제재와 적대 정책이 강화할 수록 평화협정에 체결에 나설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조미 대화로 문제 해결을 해야한다는 근본 기조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선이 미국을 향해 시대착오적인 대 조선압살정책에 계속 매어 달릴수록 조선반도에서의 핵전쟁위험은 증대될 것이며 그것은 미국에 대한 세계의 빗발치는 규탄과 함께 미국의 안전보장에도 이롭지 못한 결과들만을 더욱 산더미같이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미동포단체가 운영하는 웹싸이트는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사의 ‘평화와 안전수호를 위한 최우선적 과제는 조미적대관계 청산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인용 이같이 전했다.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오늘 조선과 미국이 정전협정에 따른 단순한 기술적 전쟁이 아니라 사실상 교전관계에 있는 상태에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세계적인 핵전쟁으로 확대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명백하다”면서 “이러한 심각한 사태를 막기 위한 근본적이며 최우선적인 방도는 미국의 적대시정책을 근원적으로 끝장내고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통신 논평은 최근 세계 여러 나라 국제문제전문가들과 주요언론의 주장들을 전하고 그들은 “한결같이 조선반도핵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근원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과 핵 공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미평화협정체결로써 조선반도의 정전상태를 끝장내야 한다는 데로 지향되고 있다.”고 피력했다.

논평은 “미국은 군사력으로 위협하다가 임의의 시각에 조선을 점령하겠다는 언제가도 실현될 수 없는 망상은 버리”라면서 “조미적대관계청산이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은 물론 저들의 안전보장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세계가 바라고 있는 이 초미의 문제해결에 호응해나서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한편 러시아 주재 김형준 조선 대사도 미국의 한국내 사드 배치가 전쟁의 불씨를 당길 수 있다고 경고 했다, 조선의 이같은 대미 압박은 조-미가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조-미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여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핵발전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일당 7만 원에 방사능 피폭, 이런 알바도 있다

16.02.13 20:32l최종 업데이트 16.02.13 20:32l





파랗다는 표현보다는 검푸르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던 죽변의 바다. 6일째 자전거여행 중인 세 명의 청년들을 만났던 고즈넉한 임랑해변,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파랗던 정자해변과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나아해변. 울진, 고리, 월성 핵발전소로 가는 길. 

늘 예상치 못한 풍경들을 마주했다. 발전 방식의 특성상 바닷가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핵발전소. 작은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그 거대한 건물이 보일 즈음 바닷가 앞에 섰을 때 이상하게도 미안했고,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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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할 정도로 평온한 풍경 속 또 하나의 공통점은 늘 그렇듯 송전탑이다. 월성핵발전소와 송전탑이 보이는 나아해변에서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 강언주

2011년 3월 11일,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후쿠시마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우리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인가? 송전탑건설반대를 위한 싸움을 해온 밀양의 할매들은 한국탈핵운동의 핵심이 되었다. 발달장애가 있는 균도의 아빠는 핵발전소가 지역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수원을 상대로 오랜 싸움을 이어왔다. 묻고 싶어졌다. 

왜 우리는 방사능에 오염된 고등어나 명태가 수입되는 것은 걱정하면서도 초고압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밀양이 되지 못하냐고. 당장 전기사용의 불편함은 걱정하면서 왜 수 십년간 핵발전소를 끼고 살아야 하는 지역주민들의 고통은 외면하냐고. 핵발전소는 재앙적인 사고의 위험뿐만 아니라 안전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모든 차별의 상징이 집합해 있다.

핵발전소에서 노동하는 '사람'

핵발전이 만드는 수많은 문제 속에서 자꾸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핵발전 노동의 문제였다. 우라늄을 채굴하는 순간부터, 운반하고 성형하는 과정, 발전소를 건설, 가동하고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순간까지 그 과정에는 '노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탈핵을 주장하면서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은 늘 부족했다. 

핵발전 노동을 주제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4년 봄에 시작된 고민으로 9월에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정보공개센터를 중심으로 몇몇 단체가 함께 '한-일 핵발전 노동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일본과 한국의 핵발전노동의 현실은 노동기본권, 다단계하청, 피폭의 문제 등 많이 닮아 있었다. 그동안 관련 조사나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핵발전 노동을 어떻게 규정하고 접근해야 할지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우리는 핵발전소라는 건물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최하층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청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에 초점을 맞췄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최원식의원실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7월 기준 4개의 발전본부(울진, 영광, 고리, 월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만9693명이다. 이중 한수원 정규직이 6771명 (전체의 34%), 비정규직은 1114명(직접고용 81명, 간접고용 1033명으로 6%), 사내 협력업체(하청업체) 노동자는 1만1808명(60%)이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체의 절반이상이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이거나 비정규직노동자라는 것이다. 한수원에서 연도별 협력업체 현황을 관리하고 있지 않아서 이마저도 정확한 데이터라고는 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노동자의 이야기였다.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피폭의 위험은 없는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4개 발전본부(고리, 영광, 울진, 월성)의 방사선안전관리, 청소, 경상정비, 특수경비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만났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숙련 노동자여도 '비정규직'

핵발전소노동자들을 처음 만난 건 2014년 5월이었다. 경북 울진에서 한수원, 한전kps, 비정규직(한전kps 하청), 방사선안전관리 등 다양한 고용형태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사인 한수원이나 사측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한수원과 한전kps 정규직노조에 대한 아쉬움도 큰 듯했다. 

노동조건이 원청사 정규직 직원들보다 열악한 수준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들끼리의 차별로 상대적인 박탈감도 컸다.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의 갈등은 핵발전소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현실이 그러니까 말이다. 불만 섞인 말들도 오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명의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이다. 현재 핵발전 노동의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핵발전소의 안전마저 위협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원자력발전소라는 게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정비업체의 경우, 적재적소에 신속하게 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10년 이상 경험하신 분들이 주르륵 있는데 그런 분들은 숙련도가 더 높은데도 비정규직입니다. 그런 분들이 계속 비정규직으로 남는 것은 잘못된 제도인 거죠. 이런 것은 한수원노조가 함께 싸워줘야 합니다."(2014년 5월 17일 울진 핵발전소 노동자 간담회)

원전사고 발생시, 수습은 누가 합니까

옅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영광핵발전소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 6명은 서울 한수원 본사 앞에 있었다. 원청사인 한수원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했던 13명 중 7명은 광주지법에 '전보발령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원직 복직되었다. 용역업체가 계약만료로 변경되는 시점에서 소송에 참여한 나머지 6명만 고용승계 대상에서 배제됐다. 이들은 지위확인 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상급노조였던 한국노총에서도 제명되었다(그들은 현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비정규직지회 소속이다).

1년 동안 싸움을 하는 중에 한수원에서는 11명의 정규직직원 채용공고를 냈다. 하지만 이 6명의 노동자는 채용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전체 비정규직노동의 정규직화였지 본인들의 고용보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명 중 몇몇은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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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8.21 영광핵발전소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들이 한수원 본사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강언주

"10년 넘게 일하면서 고용승계로 회사가 다섯번 바뀌었어요. 회사입장에서는 원청사에서 내는 용역만 따내면 되기 때문에 고용의 유연화로 이익은 이익대로 취할 수 있죠. 방사선안전관리업무는 직접고용형태로 바뀌어야 해요. 안전관리를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면 숙련노동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세요. 수습작업을 누가 하겠어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에요. 나는 반핵을 주장하지는 않아요. 발전소 문 닫는다고 해서 걱정되지도 않아요. 후쿠시마의 경우도 사고 이후 발전소가 멈췄지만 방사선안전관리인력은 더 늘어났고 우리나라도 발전소를 안전하게 폐로하면 폐로인력은 더 늘어나게 돼있어요. 

문제는 그 전이죠. 좀 더 안전하게 발전소관리를 했더라면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까요? 우리나라 발전소가 안전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겠어요?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탈핵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돼죠" (2014년 8월 21일 울진 핵발전소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 인터뷰)

제염작업을 그냥 걸레질인줄 안다

2015년 5월,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를 지나 임랑마을에 도착했다. 고리1호기 수명연장과 관련한 이슈가 한창이었던 터라 '고리1호기 폐쇄하라'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임랑마을회관에 있는 노조사무실에서 방사선안전관리노동자를 만났다. 평균 근속년수가 10년 이상 된 노동자들이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은 영광과 같았다. 

계측제어 쪽 노동자는 기술등급이 초급-중급-고급 기능사, 고급기술자 등의 단계로 점점 상향되어 왔다. 기술등급에 따라서 입찰이나 임금조건이 달라지는데 방사선안전관리는 기술등급이 20년 넘게 오르지 않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처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핵발전소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방사선안전관리를 단순 업무로 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리와 신고리 핵발전소 전체의 방사선안전관리용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노동자가 350여 명 정도이다. 3년마다 업체가 바뀌기 때문에 조금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근속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 근속년수를 인정받지 못하니 근속수당이나 은행대출도 어렵다. 불안정노동은 그들의 삶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수원 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차이가 두배 이상입니다. 발전소마다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10년을 일해도 연봉이 3000만 원이 안 돼요. 하청업체 입찰시 최저가 입찰을 하기 때문인데 이런 업계의 관행 문제가 정말 큽니다. 하청업체나 원청사인 한수원이 우리를 기술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예요...걸레질하는 걸 제염작업으로 보지 않고 그냥 걸레질하는 건 줄 알아요... 고리1호기를 폐쇄하면 폐로산업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것에 대한 걱정이 있어요. 만약 지금처럼 무분별한 경쟁입찰 문제나 노동조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자리만 생기겠죠. 폐로산업에 대한 기대는 사실 없어요."(2015년 4월 24일 고리 핵발전소 방사선안전관리 노동자 인터뷰)

지역경제 활성화? 몇몇만 배불리는 시스템

월성에서 만난 비정규직노동자는 청소, 경상정비, 특수경비 업무를 하는 노동자였다. 월성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90%가 지역주민들이고 공공비정규직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가 370여 명이다. 노조에 가입되어 활동하기까지는 고용승계도 되지 않았고 임금수준도 현저히 낮았다. 그나마 노조가 생기고 임단협을 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동자 대부분이 1년마다 업체가 바뀐다. 

배불리는 것은 지역업체들이다. 한수원이나 정부는 지역경제를 위해서 지역우선입찰제를 적용한다는데 여기서 업체들끼리의 담합문제가 발생한다. 이름만 다르지 업체끼리 서로 가족관계인 경우가 허다하다. 입찰뿐만 아니라 발전소에서 쓰이는 자재납품도 독점하고 있다. 핵발전소가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지만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거의 없고 몇 명의 토호세력들이 배불리는 구조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전국입찰을 하는 방식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계획예방정비시기에는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뽑는다. 방사능 피폭이 심한 곳은 일당 7만 원, 피폭의 위험이 좀 덜한 곳은 6만 원 정도다. 

건설현장 막노동보다는 덜 힘들고 일급은 높은 편이라 청년들도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계획예방정비 일을 해본 사람들이 지역하청업체에 노동자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위험하고 질 나쁜 노동이 이어지고 있다. 

"하청을 없애고 직고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정부나 한수원은 지역경제 활성화한다고 지역 업체를 우선적으로 입찰한다고 하지만 실제 지역주민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하나도 없어요. 몇몇 업체들끼리만 담합하는 게 심각해요. A업체의 사장이 B업체 사장과 부부관계이거나 C업체와는 사촌관계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족끼리 갈라먹는 시스템이에요. 

구조적인 문제는 비정규직에 대한 설계가 전혀 잡혀있지 않다는 거예요. 고용승계자체가 안되니까 1년에 한 번씩 업체가 바뀌는 노동자들도 있어요. 상여금이란 걸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상여금 좀 달라고 했더니 참기름 두 병을 주겠다더라구요. 그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2015년 6월 6일 월성 비정규직 노동자 인터뷰)

노동의 정상화 없이 핵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2014년부터 현재까지 핵발전소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도 차별은 존재했다. 같은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지만 원청사의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장례절차나 보상처리는 달랐다.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만났던 비정규직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차별'과 '안전'이었다. 

원청사의 퇴직자들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하청업체, 입찰과정에서부터 정당하지 못한 시스템, 임금과 복지 등 노동조건의 차별, 제대로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없는 노동환경, 대체 인력이 없어 안전교육도 받을 수 없고 장시간 고위험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핵발전소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탈핵까지는 아니더라도 핵발전소가 안전하게 유지,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고는 어떤 이유로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핵발전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주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복잡하고 거대한 건물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수백 수 천명이 피폭의 위험을 감수하고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의 안전을 필요로 하는 핵발전소를 비정규노동에 맡기는 것이 옳은가? 어떤 이는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정규직이 아니었냐며, 고임금을 받으면서 안전하게 일하는 게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이 존재하는지, 노동기본권이 보장은 되고 있는지, 안전의 위험은 없는지, 현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제 우리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우연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노동의 정상화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탈핵을 주장하기 위해 그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 핵 발전도, 탈핵도 결국 노동 없인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

상지대도 울고 갈 사학비리의 끝판왕을 고발합니다

등록 :2016-02-12 21:21수정 :2016-02-13 17:04
수원대 이인수 총장. <한겨레> 자료사진
수원대 이인수 총장.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커버스토리 / 수원대 총장 이인수 이야기
사망한 아버지가 판공비 쓰고 임대차 계약을 하다

제1회-새로 찾아낸 그의 놀라운 능력
수원대 이인수(64) 총장은 3년 동안 총장 판공비 1억6900여만원을 증빙도 없이 현금으로 썼다. 1억5800여만원은 아버지인 이종욱 전 총장이 2007~2009년에 썼다고 했지만 그 시기 전임 총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2009년 2월25일에도 259만원의 판공비를 현금으로 썼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5일 전인 2월20일에 이미 사망했다. 아들은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 불필요한 학교시설을 들여 7년 동안 4억여원의 임대료를 챙긴 것도 아버지가 2009년 3월1일께 계약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숨진 상태였다. 재학한 사실이 없는 자신의 장남에게 허위 졸업장을 발급하고 학교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한도를 초과해 포상금 1억원을 주기도 했다. 모두 감사원과 교육부 감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사항들이다. 업무상 배임과 횡령, 배임수재,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뇌물공여, 사립학교법 위반 등 40건의 혐의로 고발돼 지난해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총장이 구속된 비리사학 상지대와의 결정적 차이다. 그에게는 어떤 신묘한 능력이 있는 걸까? <한겨레> 토요판은 2회에 걸쳐 이인수 총장의 비리와 그를 비호하는 정계·언론계·법조계의 내부자들을 고발한다.
이인수 총장의 비리 의혹으로 수원대의 명운이 기울고 있다. 수원대는 지난해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2년 연속 5개 등급 중 4번째 순위인 d등급(d-)을 받아 재정지원 제한 대상이 됐다. 입시전문가들은 한때 경원대, 경기대, 가천대와 비슷했던 학교 위상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추락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 봉담읍 소재 수원대 정문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인수 총장의 비리 의혹으로 수원대의 명운이 기울고 있다. 수원대는 지난해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2년 연속 5개 등급 중 4번째 순위인 d등급(d-)을 받아 재정지원 제한 대상이 됐다. 입시전문가들은 한때 경원대, 경기대, 가천대와 비슷했던 학교 위상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추락했다고 말한다. 사진은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 봉담읍 소재 수원대 정문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총장의, 총장에 의한, 총장을 위한 대학.’
죽은 총장이 판공비를 쓰고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대학이 있다. 이 대학에선 죽은 이사장도 부활해 이사회를 주재한다. 재학한 사실이 없는 총장의 장남에게 허위 졸업장을 발급하고 총장이 자기 자신에게 포상금 1억원을 주기도 했다. 총장이 쓴 박사학위 논문은 해당 대학으로부터 표절이라고 판명을 받았다. 3년 동안 총장 판공비 3억2000만원을 증빙도 없이 현금으로 쓰고 총장이 대주주인 건물에 불필요한 학교시설을 들여 7년 동안 4억여원의 임차료를 낸 일도 있다. 학교발전기금으로 받은 50억원을 총장의 사돈 기업인 종편 채널 ‘티브이조선’에 투자해 10억여원의 손실(2013년)을 보기도 했다.
총장은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 이사로 있으면서 대학에는 1주일에 2~3일만 출근해 3~4시간 근무했다. 학교 계약직 직원을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서 일을 시키고 학교 돈으로 월급을 줬다. 총장이 소유한 회사가 자본금 2억여원에 불과함에도 은행들로부터 360억원대의 대출을 받았다. 대학은 고가의 미술품들을 구입한 뒤 총장 소유 미술품으로 관리했다. 총장은 해외출장 시 판공비 일부를 개인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출장비를 초과해 받았다. 내연관계에 있던 한 여성에게 돈과 아파트 등을 선물했던 총장은 학교 돈 7500만원을 빼돌려 소송비용 등으로 쓴 혐의로 지난해 검찰에서 약식기소됐다. 학교법인 이사장을 총장과 그의 아내가 연이어 맡았던 이 대학에선 총장의 비리를 폭로했다고 4명의 교수를 절차 없이 파면했다. 이후 복직 소송에서 법원은 모두 해직 교수들의 손을 들어줬다.
수원대학교라는 이름의 이 대학에선 나열하기도 힘든 부조리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40건의 비리 혐의에 휘말려 있는 이인수(64) 총장에 대한 숱한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놀랍게도 이 총장은 현재까지 그 어떤 사법적 처벌 대상도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비리사학인 상지대의 김문기 총장이 부정입학 등의 혐의로 1993년 구속된 것에 비춰도 매우 이례적이다. 우리가 다시 이인수 총장과 수원대 비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수원대 설립자인 이종욱 전 총장(앞줄 오른쪽 둘째)의 가족사진. 이씨의 차남인 이인수 현 총장(뒷줄 왼쪽 셋째)과 이창수 전 삼익건설 대표(뒷줄 오른쪽 둘째)가 보인다. 1979년 9월 촬영. <고운 이종욱 박사 고희기념문집>
수원대 설립자인 이종욱 전 총장(앞줄 오른쪽 둘째)의 가족사진. 이씨의 차남인 이인수 현 총장(뒷줄 왼쪽 셋째)과 이창수 전 삼익건설 대표(뒷줄 오른쪽 둘째)가 보인다. 1979년 9월 촬영. <고운 이종욱 박사 고희기념문집>
무덤에서 쓴 현금 판공비 259만원
지난 2011년 7월 경기도 화성시 수원대학교는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다. 감사 결과, 총장의 판공비 명목으로 2006년도부터 2010년도까지 76차례에 걸쳐 3억2800여만원을 증빙도 없이 현금으로 사용한 점 등이 적발됐다. 이사장 및 학교의 장은 회계처리를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와 증거에 의하여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돼 있는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에 대한 특례규정’(교육과학기술부령) 등을 위반한 것이다. 수원대 이인수 총장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였다.
<한겨레>는 지난 1월부터 수원대 이 총장과 학교법인 고운학원의 최서원 전 이사장(이 총장의 아내) 등이 2011년 7월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대외비)’를 입수해 분석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위법사항 6건에 대한 소명과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이 확인서에서 이인수 총장은 총 76건의 증빙 없는 판공비 집행 가운데 본인이 집행한 판공비는 41건(1억6900여만원)이고 나머지 35건(1억5800여만원)은 전임 총장이 집행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의 직인이 찍힌 ‘2007~2010년 판공비 내역’ 중에는 전임 총장이 2007년 12월26일부터 2009년 2월25일까지 35차례나 판공비를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마지막 사용일인 2009년 2월25일에는 259만4000원을 현금으로 사용(4면 사진)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2월25일, 전임 총장은 애당초 판공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닷새 전(2월20일) 숙환으로 별세했기 때문이다. 확인서대로라면 죽은 지 닷새나 지난 전 총장이 무덤에서 살아나와 판공비를 썼다는 얘기가 된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가 되어 판공비를 결제했다는 전임 총장은 수원대의 학교법인인 고운학원 설립자 고 이종욱씨로, 이인수 총장은 그의 차남이다. 결국 아버지의 기일을 모르지 않을 아들이 부적절한 판공비 사용의 책임을 아버지에게 떠넘긴 꼴이다. 수원대가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에서 허위기재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대 사태 일지
수원대 사태 일지
수원대는 “2009년 1월29일에 지출결의서를 통하여 이미 경비집행 결제가 이뤄진 사안을 오인한 것”이라고 <한겨레>에 해명했지만 석연치 않은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들이 밝힌 내역에는 아버지 이종욱 총장이 지출했다는 35차례 판공비 가운데 2009년 2월16일과 18일에 각각 460만원과 900만원을 현금으로 사용했다고 나온다. 날짜로 보면 이종욱 총장이 숨지기 나흘과 이틀 전에 해당한다. 이종욱 총장은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2000년 초반부터 숨진 2009년까지 삼성서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오랜 병상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인서가 사실이라면 이종욱 총장이 병상에서 숨지기 직전까지 14개월 동안 판공비를 하루에 최고 1000만원가량이나 사용했다는 얘기다.
수원대에서 교무처장을 지낸 배재흠 교수는 “2007년 가을께 영동(강남)세브란스에 입원해 있던 이종욱 총장을 병문안 간 적이 있다. 그때 이미 총장님은 사람을 알아볼 수 없는 식물인간 상태셨다. 그런 이종욱 총장이 판공비를 하루에 몇백만원씩 썼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상훈 전 공대 교수는 “아버지 이종욱 총장의 와병으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했던 1998~2009년 동안 아들 이씨가 학원장이라는 직책으로 학교 업무를 총괄했다는 건 대부분의 수원대 구성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자신이 지출증빙 없이 부적절하게 사용한 판공비를 병상에 있던 아버지가 사용했다고 떠넘긴 것이 아니겠냐”고 씁쓸해했다.
“향후에는 지출증빙 없이 현금으로 판공비를 집행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확인서에 약속을 한 이인수 총장이 결과적으로 허위로 확인서를 작성해 감사원에 제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당시 감사를 총괄하던 감사원 관계자는 지난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피감기관이 제출한 확인서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데 당시 수원대학교에서 제출한 확인서에 대해서도 그 사실 여부를 따져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상 배임과 횡령, 배임수재 등
무려 40건 비리혐의 고발당해
검찰수사 받았지만 대부분 불기소
3년 연속 국감증인 채택도 무산
막강 인맥이 작용했다는 분석
‘한겨레’는 이 총장 등이 2011년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 입수했다
증빙 없는 판공비 76건 지출 중
35건을 숨진 아버지에게 떠넘겼다
사망 뒤 지출한 판공비조차 있다
임대계약 비리도 아버지한테 떠넘겨
이 총장이 죽은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다고 떠넘긴 대목은 또 있다. 단순한 행정상의 실수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이인수 총장은 업무상 배임과 횡령, 배임수재,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뇌물공여, 사립학교법 위반 등 무려 40건의 혐의로 고발돼 지난해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참여연대와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등 고발인들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이인수 총장이 “자신이 대주주(42.32%)로 있는 ㈜한국산업개발에 임대 수익을 주기 위해 한국산업개발 소유의 서울 역삼동 소재의 올림피아빌딩 4층 5층 일부를 수원대가 3년간 보증금 10억, 연 임대료 6400여만원에 ‘조형연구소’로 임대하게 한 뒤 2011년 9월30일까지 31개월 동안 임대료 1억5800여만원을 지급하여 학교에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대학 총장 자신이 소유한 건물의 임대계약을 학교와 맺도록 한 뒤 임대료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2011년 7월, 이인수 총장은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에서 자신의 아버지인 이종욱 전 총장이 2009년 2월25일 259만여원의 판공비를 현금으로 썼다고 했다. 그러나 이종욱 전 총장은 2월20일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2011년 7월, 이인수 총장은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에서 자신의 아버지인 이종욱 전 총장이 2009년 2월25일 259만여원의 판공비를 현금으로 썼다고 했다. 그러나 이종욱 전 총장은 2월20일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앞선 2011년 감사원에 제출한 확인서에서 이 총장은 이러한 지적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검찰 수사 과정에선 사뭇 달라진다. 그는 “위 임대차 계약은 2004년 7월1일 1차 계약을 체결한 이후 2009년 3월1일께 선친인 고 이종욱 총장이 4차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자신이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대로 이종욱 총장은 4차 계약일(3월1일) 전인 2월20일에 사망했다.
수원지검은 인터넷 검색만 했어도 알 수 있는 이종욱 총장의 사망일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또 검찰은 교비 100억원을 펀드 투자해 학교에 손실을 안겼다는 혐의와 와병 중인 이종욱 총장의 급여를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2007년 6월 이뤄진 펀드 가입은 전임 총장 때의 일이고, 전임 총장은 사망하기 전 25일밖에 입원하지 않았다는 이인수 쪽의 해명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총장의 해명이 명백한 허위였고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다는 점이 확인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수원대 교수협의회는 “2007년은 고 이종욱 전 총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10년이 되는 해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못하는 이 총장을 대신해 아들인 피고발인이 학원장이라는 직책으로 수원대의 모든 사무를 총괄하던 때였는데 검찰이 이를 눈감았다”고 비난했다. 40건의 비리 혐의에 대해 지난해 수원지검은 학교 돈 7500만원을 빼돌려 소송비용 등으로 쓴 혐의에 대해서만 200만원으로 약식기소하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리고 불기소했다. 그러나 수원지법은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이례적으로 이인수 총장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 첫 공판이 오는 15일(월)에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이인수 총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수원대는 “40건의 고발 혐의에 대해 단 한 건을 제외하고 검찰은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총장은 앞으로 진행될 재판을 성실히 임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밝혀왔다.
2011년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두고 총장은 앞으로는 지출 증빙을 통해 판공비를 집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 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2월 교육부 특별감사에서 지출 증빙 없이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다 또다시 적발된 것이다. 교육부 감사에서는 이인수 총장의 장남 주한(38)씨가 수원대에 입학해 학교를 다닌 사실이 없는데도 수원대 졸업증명서 등 학적서류를 발급받아 미국에 있는 대학에 편입했다는 의혹도 지적됐다. 교육부가 33건의 지적사항 가운데 유일하게 이 총장을 △사문서 위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한 사안이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검찰은 허위 졸업장 의혹과 관련해 “해외 대학에 공조를 요청했으나 답을 받지 못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한다는 황당한 처분을 내렸다.
검찰 출신 변호사들조차 검찰이 수사 의지가 있었는지 회의적이라는 반응을 보인 검찰 수사 결과의 배경에는 정계·언론계·법조계를 망라한 이 총장의 막강 인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례로 새누리당의 결사반대로 3년 연속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무산된 인물이 바로 이인수 총장이다. 결과만 보면 가히 삼성 이건희 회장급이다.
한편, 참여연대 등 고발인들은 허위 졸업장 의혹과 더불어 장남 주한씨의 병역기피 의혹도 제기한다. 주한씨는 신체등위 4등급으로 2004년 8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아이큐브’(iCube)라는 병역특례업체에서 대체복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큐브사는 1995년 전자분야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되었고 다음해 정보처리분야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소재하고 있던 아이큐브는 주한씨가 입대하기 직전인 2003년 5월, 이인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서울 역삼동 올림피아빌딩으로 이전했다. 아버지 소유 건물에서 아들이 군복무를 했다는 얘기다. 아이큐브는 통신장비 및 방송장비, 방송 자동화 소프트웨어, 아이피(IP)티브이 등을 업종으로 하는 전형적인 정보통신기술 회사다. 이 총장의 장남 주한씨는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주한씨가 아이큐브에서 병역법에 명시된 ‘지정업무’에 종사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주한씨가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병역특례업체에 들어갔으며 어떤 지정업무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 병역비리와 ‘셀프 1억 포상’
가수 싸이는 비슷한 시기인 2003년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병역특례업체에서 36개월을 근무한 뒤 지정업무인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해 수행한 업무량과 소요시간이 미미하다는 점이 드러나 재입대 처분을 받았다.
검찰의 어이없는 불기소 처분과는 별개로 교육부 감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총장 일가가 대학을 어떻게 사유화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2년 11월 수원대는 ‘2012년 자랑스런 수원대인 포상’을 하면서 객관적인 공적 심사와 평가 없이 총장에게 한도(2000만원)를 초과하여 포상금 1억원을 지급했다. 학교 운영의 모든 권한을 장악한 총장이 자기 자신에게 ‘셀프 포상’을 한 셈이다. 또 △사망한 이사장이 이사회 회의를 주재했다고 회의록 허위 작성 △총장 내외의 해외출장비를 초과·중복 지급받고 출장시 개인 여행 △100억원의 학교 공사를 수의계약이나 지명경쟁계약 형태로 계약하거나 무면허 업체와 계약 등 무려 33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 교육부는 △장남 허위 졸업증명서 발급 △교육용 기본재산의 부당 임대로 8억여원 횡령 등 4건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의뢰했다.
이에 대해 수원대 관계자는 “2014년 교육부 감사 결과 지적된 사항은 규정 미비와 착오에 따른 것으로 이후 규정 보완을 마쳐서 지금은 회계처리를 투명하게 하고 있다. 이인수 총장은 고의로 인한 잘못은 결코 아니지만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 자체에 대해 수원대 구성원들에게 여러차례 유감을 밝혔다”고 했다.
수원대 역사는 고 이종욱씨가 1977년 학교법인 고운학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같은 해 고운학원은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 수원과학대의 전신인 수원공업전문학교를 개교했다. 1981년 수원과학대와 3㎞ 떨어진 화성시 봉담읍에 세워진 수원대는 1988년에 지금의 종합대학으로 개편됐다. 이종욱씨는 1989년부터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초대 총장을 지냈다.
1921년생인 이종욱씨는 1940년에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고운 이종욱 박사 고희기념문집>을 보면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침략이 전면’화하던 그 시기 그는 보성전문에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고 스스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의식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1943년 조선총독부 경성철도사무소 서기로 부임했다.
“나는 1943년 10월6일 드디어 조선총독부 경성철도사무소 서기로 부임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당시 직급은 판임관 9급으로서, 조선인 학생은 나를 포함하여 한두명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그해만 7, 8명씩이나 많은 인원을 뽑았으나 전해까지만 해도 1, 2명 정도만 채용되었다고 한다.”
출세의 발판을 만들어줬기 때문일까.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나의 갈 길 다 가도록’(나의 길)이라는 글에서 그가 밝힌 일종의 ‘취업 후기’는 자부심으로 또렷하다. 해방 후 부산철도국 국장과 철도청 운수국 국장을 지낸 그는 1970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주식회사 동성판유리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집안 어른으로부터 삼익건설을 인수해 1974년 회장에 올랐다.
학교 돈 7500만원 빼돌려 소송 쓴
혐의만 수원지검에서 약식기소
수원지법은 사안 중대하다고 보고
이례적으로 이 총장 정식재판 회부
오는 15일에 첫 공판이 열린다
아버지 이종욱이 1977년 설립한
고운학원에서 수원대 역사 시작
차남 인수씨는 2006년 학원장으로
실세 노릇 하다 2009년 총장 취임
이사장인 부인과 함께 학교 지배
수원대 입장
“재판 성실히 임하고 결과 승복
2014년 교육부 감사 지적사항은
규정미비와 착오에 따른 것
지금은 회계처리 투명하게 해
이인수 총장도 유감 표명”
장남 창수와 차남 인수의 엇갈린 길
이종욱씨는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두 명의 아들 중에 1942년생으로 경기고에 서울대를 나온 장남 창수씨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나의 길’이라는 글에는 차남 이인수에 대한 언급은 없는 반면 장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장남 창수는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본인이 전공을 살려 정치인이나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에서 재력 없는 정치인은 국가사회에 별로 기여할 수 없다고 하여 (…) 삼익건설의 인수와 함께 이 일에 전념토록 하였다.”
장남에 대한 각별한 신임은 이종욱씨가 1979년에 37살인 장남을 이미 삼익건설 대표로 앉히고 자신은 교육사업에 전념했던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1952년생인 이인수씨는 서울 양정고를 졸업한 뒤 71학번으로 고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고교 시절 아이스하키부 소속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대학신문에서 제공하는 총장 프로필을 보면 이인수씨는 1983~86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을 지낸 걸로 나온다.
10살 터울의 형이 아버지와 함께 삼익건설을 운영하던 1975년에 동생은 동양화재해상보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익건설의 감사를 거쳐 1983년에 아버지가 설립자로 있던 수원대에서 기획실장을 맡았다. 이후 수원대가 교세를 확장하는 사이 삼익건설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중견업체로 성장해오던 삼익건설은 1995년부터 건설사 간 출혈경쟁으로 공사 수주가 어려워지고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1998년 11월 부도가 났다. 이듬해 화의인가가 결정됐으나 2000년 11월 청산 대상 기업으로 선정돼 퇴출되는 불운을 겪었다. 2003년 9월에는 장남 이창수씨가 8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을 빌리고 회삿돈 46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구속되기도 했다.
형이 건설회사를 물려받을 때, 기획실장으로 학교에 남아 있던 이인수씨는 1997년 고운학원 이사장에 오른 뒤 1998년 아버지가 쓰러지자 그를 대신해 학원장이라는 직책을 만들어 학교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망한 2009년 2대 총장에 취임했다. 고운학원 이사장직은 2014년 6월까지 남편을 대신해 이 총장의 부인인 최서원씨가 맡아왔다. 수원대가 끊임없이 비리 의혹에 휩싸이는 건 고운학원이 이처럼 이 총장 일가 지배 아래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 총장과 최 전 이사장은 현재까지도 고운학원 이사로 있다. 사실상 이들 부부가 고운학원의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 운영의 전반적인 사항을 결정하는 학교법인 이사회가 설립자의 일가족 등 특정한 인사를 중심으로 구성될 경우 대학이 사실상 사유화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그동안 줄곧 제기돼왔다.
고운학원과 수원대학교 총장 일가 개인기업과의 관계도
고운학원과 수원대학교 총장 일가 개인기업과의 관계도
이 총장 일가가 소유한 개인기업체와 수원대의 관계를 보면 수원대는 지배구조의 주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수원과학대학교, 학교법인 고운학원, 학술·장학 목적의 공익법인인 고운문화재단 등과 연결돼 있다. 이들 법인은 이인수 총장이 소유하고 있는 ㈜한국산업개발과 최서원 전 이사장이 대표이사를 지낸 ㈜라비돌, 이 총장의 딸이 사내이사인 ㈜이한센트라, 이 총장의 아들딸이 주주로 있는 ㈜서주와 지분으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다(그래픽 참조). 문제는 이러한 지분 관계가 학교에 대한 지배권 행사로만 그치지 않고 이 총장 소유의 개인기업체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 총장이 교내에서 총수처럼 군림한다는 이야기는 학교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이 총장이 학교에 출근하는 날이면 보직교수들과 직원들은 대학본부 앞에 도열한 채 이 총장을 ‘영접’(?)하는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보직을 맡았던 교수들은 퇴근하는 총장을 배웅할 때도 차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다고 증언했다. 이 총장을 옆에서 봐온 ㄷ 교수는 “출근하는 날이 일정치 않은데다 총장이 출근한다는 연락이 오면 몇몇 보직교수들은 하던 수업도 째고 총장 영접을 위해 속칭 버선발로 뛰어나간다. 수업이라고 마중 안 나오면 총장이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아래 직원들도 ‘총장님이 오셨는데 어찌~’라는 분위기다”라고 했다. 수원대 관계자는 “인사는 시간이 되는 보직교수들이 나와서 인간적인 마중과 배웅을 하는 거지 결코 강요에 의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전국 최초로 등록금 반환 소송
이 총장 일가가 장악한 수원대에서 총장에게 반기를 드는 건 보복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배재흠 교수 등 교수 4명은 2013년 수원대 교수협의회(교협)를 통해 총장의 교비 유용 의혹 등을 제기했다가 이듬해 1월 학교로부터 파면됐다.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이유였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이들의 파면 처분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학교는 절차를 다시 밟아 그해 8월 이들을 다시 파면했다. 그 뒤 해직교수들은 학교법인을 상대로 파면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내 1·2심에서 승소했으며,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총장은 2013년 10월에 이어 지난달 자신의 비리 의혹을 제기해 파면했던 배재흠·이상훈 교수 등 5명을 또다시 명예훼손 혐의로 수원지검에 고소했다. 이러한 보복을 지켜보면서 동료 교수들은 깊은 침묵과 굴종을 강요받고 있다. 사학 비리의 경우 학생들이 들고일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먼저 문제제기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비리사학인 상지대에서 교수들이 줄기차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과 연대하는 학생운동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 수원대에는 교협을 지지할 학생들의 ‘세력’이 없다. 수원대 교협의 싸움이 외롭고 더 힘든 이유다.
공식적인 지표들은 수원대의 현재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준다. 수원대는 등록금을 쓰지 않고 학교 돈으로 적립하는 대학 적립금이 모두 4310억원(2013년)으로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을 이어 전국 4등이다. 그러나 교육부 감사 결과 2010년부터 2012년 기준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 비율은 수도권 종합대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1.23%와 8.98%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수원대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2015)에서 2년 연속 5개 등급 중 4번째 순위인 d등급(d-)을 받아 재정지원 제한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학생들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한 학교가 2011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합계 34건 110억9000여만원 상당에 이르는 공사 및 용역을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참다못한 수원대 재학생들은 전국대학 최초로 등록금 반환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심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이 총장은 현재 수원대를 졸업한 한 여성과 민형사 소송에 휘말려 있다. 1988년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내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당시 이 총장은 수원대 기획실장으로 자식 둘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이 총장은 이 여성에게 아파트와 돈을 선물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11월18일 이재익 수원대 교수 등이 수원대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파면무효확인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민사2부(재판장 김대웅)가 내린 판결로 확인됐다. 교육자를 자처하는 이 총장에게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학 총장으로서 민망한 일은 또 있다. 과거 경희대 대학원 행정학과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한 것으로 2014년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해 11월 경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이 총장이 제출한 논문 ‘정부간 갈등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 환경문제를 중심으로’에서 “특정 부분을 인용표기 없이 서술한 것은 논문 표절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1998년 2월에 제출된 이 논문의 120쪽에서 128쪽까지 총 8쪽 분량 가운데 7곳에서 다른 사람이 연구한 내용을 인용표기 없이 연구사례로 실었다는 것이다.
‘권력의 우산’을 누가 들었나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사학개혁운동을 하면서 웬만한 사학비리의 유형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교육부 감사 결과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수원대 비리는 모든 ‘사학비리의 백화점’이다. 대표적인 비리사학으로 꼽히는 상지대도 수원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히 비리의 끝판왕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탄식했다.
40건의 비리 혐의에 휘말려 있지만, 놀랍게도 이인수 총장은 현재까지 약식기소를 제외하고 그 어떤 사법적 처벌 대상도 되지 않았다. 그에게 ‘권력의 우산’이 돼주는 막강 인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인수와 내부자들’이다. 2회에선 그 검은 커넥션을 다룬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달랐다니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달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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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14  01: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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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사태를 두고 남북관계가 김대중 정부 시기인 6.15공동선언 이전으로 돌아갔다느니,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88년 7.7선언 이전으로 회귀했다느니 하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전으로 역주행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남북관계가 경색기로 들어간 게 아니라 꽁꽁 얼어붙은 빙하기로 접어든 것입니다.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과 로켓(위성) 발사 두 방으로 박근혜 정부가 취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재, 사드 도입 그리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으로 급기야 한반도에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사실 대북 강경론자인 이명박 정부 때도 개성공단만은 건재했습니다. 당시에도 북한의 핵실험과 위성 발사가 있었으며, 특히 천안함 사건이 발생해 5.24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면서도 개성공단만은 예외로 뒀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두고 4월 총선을 앞둔 북풍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개성공단이 어찌해서 사실상 문을 닫게 되었는가요? 개성공단의 폐쇄 과정을 목도하면서 왜 이리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크게는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과 북의 시각차에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남측 각 정부에서의 시각차 때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이자 경제협력의 주요 사업으로 시작돼,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4년 12월에 첫 제품이 생산됐고 이후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개성공단이 평화의 지대이자 남북 경협의 현주소였던 셈입니다.
북측의 경우, 개성공단 조성을 위해 전략적 군사요충지인 이 지역의 부대를 뒤로 물러서게 할 정도였으니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도 비슷합니다. 북측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1일 성명에서 남측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에 대해 “북남관계의 마지막 명줄을 끊어놓는 파탄선언이고 역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에 대한 전면 부정이며 조선반도 정세를 대결과 전쟁의 최극단으로 몰아가는 위험천만한 선전포고”라고 주장했으니까요.
문제는 남측에 민족화해 정부가 아닌 민족대결 정부가 들어서면서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시 북측의 핵실험과 위성 발사 그리고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도 그나마 개성공단만은 건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경제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래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애환을 알아서인지 개성공단만은 노터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박근혜 대통령은 인정사정없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개성공단에 대한 시각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하면서 그 이유로 개성공단 자금을 북측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제조에 들어가는 ‘돈줄’로 파악한 것입니다. 개성공단을 남북화해의 상징이 아닌 북측의 돈줄이라는 일방적이고도 천박한 인식을 한 것입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면 박 대통령의 남북관계와 관련된 이제까지의 모든 언사들은 재고돼야 마땅합니다. 박 대통령은 2013년에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제1항에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했음에도 이번에 이를 어겼기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로 그 정체를 드러냈으며, 남북관계의 완전 단절을 자초했기에 ‘통일 대박론’은 ‘통일 쪽박론’으로 전변되었습니다.
엄중한 것은 박 대통령의 그간 언사 중에 바뀌어 질 게 아직 많다는 점보다는, 이는 이제 사소한 게 되었기에 그보다는 한반도가 신냉전 시대로 접어들었고 남북관계가 40여 년 전인 박 대통령의 부친 시대로 회귀했기에 남북대결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