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제14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뉴시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9일 13명의 후보를 추가로 공천했다. '돈봉투 수수 의혹'이 제기된 정우택 의원 공천에 대한 이의제기는 기각했다.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객관성이 없는, 부족한 것으로 봐서 이의를 기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CCTV 바깥 장소에서 내용물을 확인도 하지 않고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 의원에게 돈 봉투를 건넨 카페 사장 A씨는 “돈 봉투를 직접 건넸고 돌려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A씨는 정 의원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내용까지 공개했다. 대화내용에는 돈봉투 수수 정황이 담겼다.
한편, 이날 확정한 13명의 후보 중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거나, 형이 확정된 인물이 포함돼 공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노원구 갑 후보로 선출된 현경병 후보는 18대 총선에서도 노원구에서 당선됐다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인물이다.
강동구 갑에 공천된 전주혜 후보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강동농협이 과장급 이상 직원 49명에게서 동의 없이 10만 원씩 공제해 전주혜 의원 후원회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먼저 받아야 할 정치기부 신청서도 받지 않고 공제해, 뒤늦게 본점 총무계 직원들이 지점을 돌며 신청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총선 공천을 두고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 그러나 후보 신청자 중 친일, 민주화운동 폄하 발언을 일삼은 것이 드러나 논란이 커진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토히로부미 인재 발언, 성일종 사퇴 촉구', '한동훈 비대위원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 뉴시스
서산·태안에 공천을 받은 성일종 후보자는 인재 육성에 대한 예시로 ‘이토 히로부미’를 언급해 친일 공천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에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9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이토히로부미 인재 발언, 성일종 사퇴 촉구', '한동훈 비대위원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구 달서갑에 공천받은 도태우 후보도 민주화 운동 폄하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도 후보는 “5·18에 북 개입을 조사해야 한다”는 극우적 발언을 일삼고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를 북한의 사주를 받은 반란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이 담긴 영상은 아직도 도 후보의 유튜브 채널에 남아있는 상태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민의힘 당헌에도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도 후보의 경우 당헌을 위반했음에도 여당의 텃밭은 대구에 공천을 받은 셈이다.
이에 대해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후보가 되면 당의 전체 가치를 중요시해서 해나갈 거니까 문제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공천 탈락에 반발해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틀 연속 분신을 시도한 장일 전 국민의힘 서울 노원을 당협위원장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이 도주 위험이 없다고 판단해 구속은 피했지만, 공천 잡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은 '조용한 공천', '시스템 공천'을 자랑해 왔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돈봉투 공천', '친일 공천', '극우 공천', '분신 공천' 등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을 연재 하고 있는 자칭·타칭 '철도 덕후' 사회공공연구원 박흥수 철도 전문위원은 지난 1월 말에서 2월 초까지 태국 철도 답사를 다녀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철도 노선으로 불렸던 시암 – 버마 철도 구간 중 현재 남아 있는 방콕 – 남톡 구간을 달리며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 공영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역사의 한 부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동아공영권의 울타리를 철도로 달린 그 이야기를 <도쿄 야스쿠니에서 칸차나부리 죽음의 철도까지>라는 부제로 몇 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포함한 인도차이나를 장악한 프랑스는 태국에도 욕심을 냈다. 태국은 인도와 버마를 점령한 영국과 인도차이나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 양쪽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오랜 기간 앙숙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태국이 일방적으로 상대국에게 넘어가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태국이 벌인 특유의 외교가 독립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프랑스는 태국과 계속 충돌하면서 동쪽의 태국 영토를 조금씩 손에 넣었다.
제국주의는 거대한 괴물처럼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갉아먹었다. 폭식으로 몸이 터질 듯 했지만 설령 몸이 뒤뚱거릴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탐을 부렸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반도만으로도 숨이 차고 있었다.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차이나반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독립운동을 감당하기에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프랑스는 몇 번씩이나 인도차이나반도를 적당한 가격에 일본에 넘기려다 포기하기도 했다. 2차대전 유럽 전선에서 독일의 프랑스 점령은 일본에 자신감을 주었다. 일본군은 독일의 괴뢰정부가 된 비시 프랑스 관할 동아시아 식민지를 좋은 먹이감으로 삼았다. 인도차이나 북부를 점령한 일본군은 내친김에 인도차이나반도 전체를 점령하기로 했다.
1941년 6월 25일 일본군 수뇌부는 대본영 회의를 통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부 장악을 결정했고 7월 2일 어전회의는 군의 결정을 허가했다. 일본군은 속전속결로 7월 28일 인도차이나 남부를 점령했다. 태평양 전쟁의 트리거가 당겨지는 순간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군이 인도차이나 남부로 진주할 경우 일본에 대해 경제제재를 하기로 합의했었다. 미국은 8월 1일 모든 침략국에 대한 석유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석유 소비량의 80%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던 일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본군 전쟁 수행을 위한 비축 석유는 1년 6개월치에 불과했다. 일본군 수뇌부에서 미국과의 개전론이 급부상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와 태국을 포함하는 1941년 일본군의 점령지를 나타내는 지도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1942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는 일본군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 상공에는 붉은 원을 날개에 새긴 전투기 400여대가 하늘을 뒤덮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실제 전쟁은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먼저 시작됐다. 진주만 공습 1시간 전 일본 남방군 제25군은 말레이반도 코타바루(Kota Bharu)에 상륙했다. 가볍게 영국군 수비대를 제압한 일본군은 12월 25일 홍콩, 1942년 1월 2일 마닐라, 2월 15일 싱가포르, 3월 8일 버마 랑군까지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하자 일본 열도는 승리의 기쁨으로 들썩였다. 태평양 전쟁에 비판적이었던 지식인들조차 싱가포르 점령을 역사적 쾌거라고 주장하며 흥분했다. 조선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대국 미국을 기습해 전과를 올리고 동남아시아를 파죽지세로 평정하는 일본을 보고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은 대일본제국의 천년왕국을 확신했다. 주저하던 이들이 앞다투어 친일의 길로 뛰어들었다. 조선의 주요 도시에서는 동원된 초중학생들을 앞세워 "우리 일본"의 싱가포르 함락 축하 대중 집회가 열렸다.
작가들도 나섰다. 노천명은 재빠르게 시를 지어 일본군의 싱가포르 함락을 칭송했다.
아세아의 세기적인 여명은 왔다
영미(英米)의 독아에서
일본군은 마침내 신가파를 뺏아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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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태양이 한번 밝게 비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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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 공영권이 건설되는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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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 영원히 자유스러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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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날을 유쾌히 기념하자
일본과 그 추종세력의 환호와 달리 싱가포르 곳곳에서는 일본군에 의한 학살이 자행됐다. 항일 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화교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을 모아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1959년 봄 일본 기업이 싱가포르에 공장을 세우는 건설 현장에서 백골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묻혀있던 학살 증거가 드러났다. 공장 조성을 위해 택지를 개발할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백골들은 싱가포르인들에게 지난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떠올리게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62년 4월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5년간의 협상 끝에 1967년 9월, 일본 정부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에 5000만 싱가포르 달러(약 29억엔)을 보상했다. 일본은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 사죄와 보상을 외면하고 식민지 침략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침략이 축복이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싱가포르 점령기 일본의 선전포스터-이미지와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학살이 자행됐다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싱가포르 진격에 사용된 일본군 전차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싱가포르 함락을 다룬 일본의 선전 영화 포스터 - 싱가포르 국립 박물관 ⓒ박흥수
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에릭 로맥스의 <레일웨이 맨>을 다시 펼쳤다. 나는 1942년 태평양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멀쩡해 보이는 군대 조직도 공세를 받게 되면 홍수에 무너지는 둑처럼 속절없이 붕괴된다. 장군들은 우유부단에 빠지고 부대들은 고립되며 전투 의지는 소멸된다. 홍콩,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싱가포르에 주둔하던 수만 명의 영국군, 오스트리아군, 미군들은 고스란히 일본군의 포로가 됐다. 이들 포로들은 아시아 전역에 급조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비교적 운이 좋았던 일부 영국과 오스트리아 군 포로들은 조선으로 이송돼 본소인 경성 포로수용소와 분소인 인천, 흥남의 세 곳으로 분산 수용됐다.
경성으로 배정된 포로들은 430여 명에 이르렀는데 이중 360여 명은 싱가포르에서 온 군인들이었다. 포로들은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 철길 옆 현재 신광여중고 자리에 마련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포로들은 연합군이 경성 폭격을 시도할 경우 수용소 인근 일본군 사령부를 보호하기 위한 인간방패용 인질이었다. 연합군 포로들은 일본군 육군 창고에서 노역을 하거나 경성(서울)역이나 한강 다리로 불려 나가 강제노동을 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해방은 용산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문도 열었다. 3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친 연합군 수감자들은 해방의 기운이 가득한 경성 거리로 나올 수 있었다.
방콕 주변으로 이송된 연합군 포로들은 운이 나빴던 축에 속한다. 조선과 달리 태국은 남방전선 최전방 지역의 허브였기 때문이었다. 에릭 로맥스의 증언을 들어보자.
"다른 포로 24명과 함께 기차 화물칸에 올랐다. 열린 창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푸른 들판과 진흙탕이 눈에 들어왔다. 이따금 일렬로 심어놓은 고무나무들이 수십 킬로미터씩 질리도록 이어졌다......기차가 잠깐 멈춘 사이 나는 밖으로 얼른 뛰어나가 엔진부터 살펴보았다. C56이었다. 내가 아는 한, 원래 오사카에서 만들어진 기관차지만 말라야-시암 트랙 운행을 위해 더 협소한 미터 게이지로 변경한 게 틀림없다. 기차를 식민지까지 옮겨온 것으로 보아 이곳에 오래 머물 의도가 분명했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기본생리 해결'문제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는 옆 동료에게 마지못해 도움을 청했다. 양동이로 쓸만한 물건도 없어 결국 네 명이 달리는 화차 문간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동안 겨우겨우 일을 볼 수 있었다. 신체 접촉을 꺼리는 나로서는, 더군다나 이 공개적인 '친밀함'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을 내 생애 가장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싱가포르에서 1,600킬로미터 이상 달린 끝에 드디어 반퐁역에 도착했다. 하차 명령을 받고 내려서는 순간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철도노동자가 된 것이다."
싱가포르를 출발해 말레이반도를 종단, 방콕 서쪽 외곽 반풍역까지 이동한 여정이 담겨있다. 연합군 포로들은 반퐁역과 농플라독, 칸차나부리, 남톡 등 버마로 향하는 철도 노선 곳곳에 배치되었다.
한겨울 추위를 뒤로하고 6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방콕의 공기는 방문자를 뜨겁게 감쌌다. 80여 년 전 전략적 요충지였던 태국은 이제 세계적 관광지로 탈바꿈했음을 보여주듯 입국심사대 앞으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줄 세웠다. 공항에서 예약한 유심을 찾아 갈아 끼우고 숙소로 향하는 차량을 기다리는 중에도 세계 곳곳의 언어가 대기를 채웠다. 오후 4시가 안 돼 공항에 착륙했지만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깔렸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콕의 유명한 여행자거리 카오산로드를 목적지로 택시 서비스 그랩을 호출했다.
한때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로 유명했던 카오산로드는 밤이면 뜨거운 유흥가로 변신하는 곳이다.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 방콕의 밤을 압축해놨다. 마사지샾, 기념품점, 주점이 들어서 있고 길을 따라 온갖 물건과 음식을 파는 노점 수레가 이어져있다. 길을 걷다 보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가 태국어와 뒤섞여 돌림노래처럼 울린다. 아마도 이토록 짧은 거리에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모아 놓은 국제적 용광로는 전 세계를 통틀어 몇 군데 되지 않을 듯싶다. 어쩌면 태국의 근대사를 생각하며 걷기에 적합한 장소는 국제거리 카오산로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세계 최강 미국 군대와 싸워 이겼다는 자부심을 갖는다면 태국은 역사상 한 번도 외세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는 긍지를 갖고 있다. 태국이 자랑하는 독립의 역사는 고도로 복잡한 국제정치가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 태국의 외교는 밤부(Bamboo) 외교, 즉 대나무 외교로 불린다. 태국은 국제 정치 역학에 따라 대나무처럼 극단적으로 휘어지는 외교전략을 펼쳤다. 물론 전략의 기준은 국익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린 파리의 승전 퍼레이드에 시암 정부가 파병한 태국군 병사들도 참가했다. 영국과 프랑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시암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프랑스와 함께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싸웠다. 덕분에 베르사유 평화회의의 한 자리를 차지한 시암 정부는 시암의 완전한 주권 회복을 주장했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1939년 국호를 시암에서 태국으로 바꾼 정부는 1942년 12월 그동안의 중립 정책을 포기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말레이반도를 장악하자 태국 정부는 일본을 선택했다. 태국은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음으로서 2차 대전 추축국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일본은 말레이반도와 버마 침략의 근거지로 삼을 태국이 필요했다. 일본군은 태국 곳곳에 군사 기지를 두고 버마로 향하는 태국 서부 종단 철도 건설에 나섰다. 태국은 자국 내 일본군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설치된 가미가제 특공용사 동상과 같은 포즈로 서있는 전투기 조종사를 표지로한 애창가요집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박흥수
일본이 무너지자 태국은 미국을 선택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제2차대전 이후 벌어진 대규모 국제전이 되었다. 태국은 재빨리 남한에 파병을 했다. 파시즘 대 반파시즘이었던 세계의 전선은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싸움으로 변했다. 태국은 향후 국제정치를 주도할 미국의 편에 서는 길을 택했다.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에 대응하는 하위 전략 파트너로 삼았고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과 태국을 선택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에 차례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핵심 국가가 되었다.
태국의 대나무 외교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과시하면서도 중국과의 협력도 놓지지 않고 있다. 미중대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일방적으로 미국의 어깨에 기대지 않고 있다. 2023년 7월에도 태국은 자국으로 중국군을 초청해 합동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항일 투쟁을 벌였고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물었지만 태국만큼은 일본과 갈등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 이전에도 태국은 일본에 우호적이었다. 프랑스의 영토 분쟁에서 일본이 태국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1931년 관동군이 전격작전을 벌여 만주를 장악한 만주사변 당시에도 태국은 일본 편에 섰다. 1933년 만주사변에 관한 국제연맹 총회의 장에서 태국 정부는 일본 규탄 안에 홀로 기권표를 던지고 1941년 8월에는 만주국을 정식 승인했다.
일본이 버리고 간 C5631호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던 태국 정부가 일본으로 기관차를 보낸 것은 태국-일본 우호의 증표였다. 전후 경제 부흥기에 일본은 태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 결과 C56계열 증기기관차 대신 도요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산 자동차가 태국 땅을 달린다. 인프라, 전자 회사들이 태국에 깊게 뿌리 내렸다. 현재도 태국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동아시아 국가는 일본이다. 2023년 U17 아시안컵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만났다. 두 팀은 공방을 벌였지만 전반전 막판 태국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한국 선수가 퇴장을 당했고 승패의 추는 급격히 일본으로 기울었다. 일본은 아시아의 강팀으로 여겨지는 호주와 우주벡과의 경기에도 태국 심판이 배정됐고 이때도 판정 논란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축구 국가대항전이 열릴 때 태국 심판이 선정된다면 한국 선수들은 훨씬 더 열심히 뛸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C5623호 기관차가 견인하는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모여선 연합군 포로들 - 야스쿠니 전쟁박물관 ⓒ박흥수
▲칸차나부리 콰이강의 다리 역에 전시되어 있는 연합군 포로 수송에 쓰인 C5623호 증기기관차 ⓒ박흥수
전국민중행동, 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전국비상시국회의,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 등이 망라되어 진행한 서울 대회에서는 "퇴행정치에 고통받는 국민들의 아우성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회 참가자들은 "윤석열 당선 2년, 국민들에게는 좌절과 비극의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고금리 물가폭등, 전세사기 피해, 복지예산 및 최저임금 삭감, 부자감세, 각종 부동산규제 완화 등 민생파탄 △양곡법, 간호법, 노조법 2.3조(노조할권리), 방송3법, 쌍특검,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남발과 검찰독재 행태 등 민주파괴 △북한 붕괴정책 선언, 한미연합군사훈련 강화, 대북전단살포 등 접경지역 충돌 조장을 비롯한 전쟁위협과 평화파괴 행위 △한미일 3각동맹을 앞세워 중러 적대정책 전면화, 강제동원 제3자변제안,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 승소판결 무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방조,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 등 역사왜곡, 굴욕외교 △KBS 세월호 10주기 다큐방영 폐지, 국민생명과 안전 무시 등 참사외면 등을 열거하고는 "퇴행의 정치, 역주행 정치, 거부권 통지 2년에 맞서 결연히 싸우자"고 밝혔다.
고미경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회에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양회선 양회동 열사 유가족 △강성원 언론노조 KBS본부 비상대책위원장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등이 각계를 대표해 규탄 연설에 나섰고 △이재희 6.15남측위 고양파주본부 집행위원장 △김종기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영상 발언을 보내왔다.
안상미 위원장은 "피해자가 되기 전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 때는 뉴스에서 알려주는 텍스트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래도 전문가들이니 잘 알아서 최선을 다하겠지 했다. 이렇게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상식적이지 않은 불평등한 상황들이 만연한 줄 몰랐다"며, "소리내지 않으면 당할 수 밖에 없고, 소리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하며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알았다. 국민이 없이는 대통령이 없다는 것을, 정부가 없다는 것을 새길 수 있도록 같이 소리치겠다"고 말했다.
양회선 님은 "윤석열 정권의 조기종식이 우리의 노동권, 생존권을 회복하는 길이고 동생의 명예회복을 앞당기는 길일 것이다. 동지들과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했다.
전쟁반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야할 대통령의 자리를 본인과 본인의 가족을 위해 그 권력을 행사하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대통령, 국민의 눈에 피눈물을 쏟게 하고도 반성 한번 없는 뻔뻔한 대통령, 우리는 이렇듯 무도하고 악랄한 윤석역정부에 반드시 회초리를 들어야 하며 대통령이 국민위에 군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을 통해 뼛속깊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대회 이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10.29이태원 참사 500일 추모제 '진실을 찾아 다시 떠나는 길-3월에 태어난 별들을 기억하며'를 개최했다.
이재희 집행위원장은 "탈북자단체들이 대북전단을 날리고 유튜브 생중계까지 하며 북한은 물론 파주시민들까지 자극하고 있다. 며칠전부터 시작된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포사격금지구역인 임진강 민통선 안까지 자주포 전차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모든 걸 뒤엎어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평화적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접경지역 주민들은 한마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세월호참사 가족들이 지난 10년간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힘은 시민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라며 "이 개탄스러운 현실도 우리가 손잡고 함께 한다면 반드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다짐을 밝혔다.
오는 16일에는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진실 책임 생명 안전을 위한 전국시민행진과 기억과 약속의 달 선포 기억문화제'가 경기도 광명시청을 출발해 서울시의회에서 진행된다.
이수진 가수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쟁을 부르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결의문] (전문)
윤석열 당선 2 년, 국민들에게는 좌절과 비극의 시간이었다.
오늘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끝없는 퇴행정치에 맞서 심판의 결의를 다진다.
1. 민생파탄!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고금리 물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생계는 한계에 다다랐다. 전국 곳곳에서 전세사기 피해 등 민생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윤석열 정권은 복지예산은 삭감시키고 부자감세를 추진하고 있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저임금은 물가상승 대비 삭감 수준이 되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권은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며 집값 정상화보다투기를 부추기는 등 재벌과 자본에 퍼주기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집권 초기부터 건설노조를 탄압하고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더니, 노조할 권리가 담긴 노조법 2.3 조 개정안을 끝내 거부했다. 덩달아 노동자의 핏값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완화하겠다며 기승을 부리는 것이 바로 윤석열 정권이다.
2. 민주파괴, 거부권 남발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윤석열의 총 아홉번째거부권남발중가장맨앞에서 피해를 입은건바로이 땅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이다. 윤석열 정권은 농민들의 최소한의 쌀값 보장을 위한 양곡법을 시작으로 간호법, 노조법, 방송 3 법, 쌍특검,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거부했다. 국회의 입법권한을 침해함과 동시에 국민의 뜻을 무시한 것이다. 이런 정권이 어떻게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인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빈곤계층은 무려 25 만 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경제위기 속에 불법이란 이름의 낙인으로 생계를 탄압하면서 어불성설로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재벌들과 민생을 돌보겠다며 시장에 가서 떡볶이 먹방쇼를 하며 총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진정성도, 신뢰성도 없는 빈 껍데기 뿐인 말에 정녕 국민들이 속아주리라 생각하는 것인가.
이 뿐인가. 윤석열 정권은 각 행정부처, 공직에 검찰인사들을 앉히는 검찰독재 행태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비판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온갖 색깔론과 이념갈등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 게다가 방통위원장 마저 검사로 앉히고 공영방송 이사진을 물갈이하며 방송언론을 장악하려는 행태 역시 벌어지고 있다. 21 세기에 도저히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전쟁위협! 평화파괴!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에서의 전쟁이 절대 남의 일같지 않다. 윤석열 정권은 북한 붕괴정책을 선언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작년 한 해만 수백차례 전개했다. 대북전단 살포 등 접경지역 충돌을 조장하는 행동도 일삼고 있다.
남북은 더 이상의 대화도, 협상도, 합작도 이룰 수 없는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언제까지 국민들은 평생 전쟁의 불안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가.
4. 역사왜곡! 굴욕외교! 윤석열정권 심판하자!
윤석열 정권은 미국이 바라는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중,러에 대한 대결구도를 부추기는 적대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한미일동맹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강제동원 제 3 자 변제안은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면책하는 도구가 되었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30 여년 투장 끝에 쟁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승소 판결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또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해양투기를 방조하여 국민의 건강과 생명안전의 권리마저 위험에 빠뜨렸다. 국민 80%가 반대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일본 정부가 제시한거짓 자료를 옹호하며 한일관계의 가장 큰 현안들을 굴욕적으로 처리하는 사대매국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멀쩡히 있는 홍범도장군 흉상 철거로 철지난 색깔론 이념전쟁을 부추기는가 하면 3.1 절기념사에서는 '자위대' 앞에서 버젓이 한일수교60 주년 정상화를 언급하며 새로운 을사늑약 체결을 암시하고 있다.
5. 참사외면! 국민 갈라치는 윤석열 정권 심판하자!
세월호 참사이후 10년이란시간이 흘렀음에도사회적 재난참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KBS 세월호 10 주기 다큐 방영 폐지와 같이 참사를 지우려는 시도는 지금도 판박이처럼 계속되고 있다. 그 아픔을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이, 오송 참사의 유가족, 이 땅의 국민들에게만 떠안기며 국민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똑똑히 기억해야할 것이다.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정쟁법안이라며 국민을 갈라치고 왜곡하고 호도할 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대통령 면담요청마저 외면하는 윤석열 정권의 비양심적 행태에 국민들은 개탄스러울 뿐이다.
6. 극악무도한 윤석열 정권에 맞서 우리는 결의한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단2년 만에 처참히 망가져가는 한국사회를 두 눈으로 지켜봐 왔다.
윤석열 정권이 지속될수록 국민들은 도탄에 더 깊게 빠질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하다.
이제는 퇴행의 정치, 역주행 정치, 거부권 통치2 년에 맞서 결연히 싸우자.우리는 2024년 올해, 반드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지난 암흑에서 벗어나는 해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