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쓰·동·시…쓰레기와 동물이 시가 되었다

[커버스토리]쓰·동·시…쓰레기와 동물이 시가 되었다

정리 | 배문규 기자·사진 | 권도현 기자 sobbell@kyunghyang.com
입력 : 2019.07.20 06:00 수정 : 2019.07.20 11:19

일상과 생명의 ‘연결’ 지구를 살리는 글쓰기
작가 11명·시민들 ‘프로젝트’
[커버스토리]쓰·동·시…쓰레기와 동물이 시가 되었다
쓰레기.
못 쓰게 되어 내다버리는 물건을 부르는 말이다. 못 쓸 사람이나 몹쓸 사람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사람들은 날마다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쓰레기는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더러는 태평양에 한반도 7배 크기의 무국적이면서 다국적인 쓰레기섬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닷새는, 바다동물은 쓰레기를 음식으로 착각해 삼키거나 우연히 쓰레기에 걸려 목이 졸리고 상처를 입는다. 끝내는 쓰레기 때문에 질식 혹은 중독되고, 굶어 죽는다.
몇 년 전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낀 거북을 구조하는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최근엔 미국 작가 크리스 조던이 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찍은 사진, 즉 플라스틱 쓰레기로 배 속이 가득 찬 채 죽어 있는 앨버트로스의 모습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잠깐의 연민으로 소모되는 데 그쳤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낯선 동물들이 먼바다에서 죽은 일을 내 일처럼 여기기엔 너무나 멀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떠넘긴 쓰레기가 결국 버려지는 곳은 자연이다. 그리고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쓰레기를 떠안게 되는, 쓰레기의 직접적 피해자가 바로 동물이다. ‘쓰레기’와 ‘동물’과 ‘시’.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세 단어를 묶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쓰레기와 동물과 시’(쓰동시) 프로젝트가 7월 한 달 동안 진행되고 있다. 생명다양성재단·시셰퍼드코리아·동물의사육제 등 환경단체에서 동물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알리기 위해 주최한 이번 프로젝트에선 길거리 플래시몹 등 현장 캠페인, 시낭송과 백일장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벌인다.
어떻게 먼바다의 생명과 나의 일상을 연결할 수 있을까. 쓰동시 프로젝트에선 매개체로 ‘시’를 소환했다. 문단에서 주목받는 11명의 작가와 일반 시민들이 저마다 쓰레기와 동물에 대한 고민과 안타까움을 담아 ‘지구를 살리는 글쓰기’를 한 것이다. 언어를 절제한 시처럼 쓰레기도 줄임의 철학이 필요하다.
지난 11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씨(50)와 박준 시인(36)이 글쓰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표해 ‘쓰동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냉장고 속 포장재에 대한 시를 쓴 박준 시인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쓰레기와 동물을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시적 상상력”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연결되어 있었는데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져 생겨난 문제들을 시를 통해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은 아빠’ 유경근씨는 평소 생명에 대한 관심을 쓰레기 문제로 확장해 절박한 목소리를 보탰다. 그는 플라스틱 빨대로 고통받는 거북이의 모습에 5년 전 바다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생명들을 투영시켰다. 젊은 시인과 세월호 유가족이 쓰레기를 주제로 시 얘기를 하는, 조금은 낯선 이날 만남은 서로 아파하고 때로는 웃고 공감하며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책임 없이 고통 겪는 일들이 떠올라 거북이가 바로 내 딸이라는 생각 들어
세월호 유족 ‘예은 아빠’유경근씨.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세월호 유족 ‘예은 아빠’유경근씨.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두 분은 어떻게 ‘쓰레기’로 시를 쓰게 되었나요.
박준 = 쓰동시 프로젝트에 시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제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라는 노래를 떠올렸는데요.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껍데기들(포장재)을 보니까 어느 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서 도망치거나 벗어날 수 있을까…. 제가 쓰는 스타일의 시는 아닌데 아무튼 쓰고야 말았습니다.
유경근 = 시를 쓰려고 한 건 아니고 제목을 적지 못한 짧은 글 한 편을 썼습니다.
박준 = 시라고 하셔도 충분한데요.
|‘예은 아빠’ 유경근씨
코에 빨대 박힌 거북이를 보며
예전엔 ‘누가 저런 짓 했나’ 생각
이제는 ‘얼마나 억울하고 슬플까’
무심코 한 행위가 남긴 고통 보여
동물이 고통스럽게 사육당한다며
육식 그만둔 예은이 동생을 보며
동물권·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돼
사람·동물이 각자의 삶 선택하고
부당하게 위협받지 않는 사회가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아닐까
유경근 = 시적인 기교가 들어간 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북이가 코에 빨대가 박혀 괴로워하는 사진을 보고 놀랐잖아요. 예전에는 그 장면을 보면서 ‘누가 저렇게 나쁜 짓을 했을까’ ‘왜 저런 일이 벌어진 걸까’를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저 거북이는 얼마나 억울할까’ ‘저 동물들은 얼마나 아프고 슬플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책임이 없는데도 고통을 겪게 되는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제 딸 예은이도 그렇고요. 내가 무심코 하는 행위들이 어디선가 억울한 고통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거북이가, 내 딸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박준 = 기교 없이 적었다고 하셨는데 기교라고 하면 기교를 부린 제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사실 시라는 게 간절하게 말하는 방식이거든요.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걸 간절하게 말하면서 기교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유 선생님은 말하는 간절함 때문에 그대로 시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원고 청탁이 6월3일, 마감은 25일까지였다고 들었습니다. 흔치 않은 주제인 데다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다보니 부담도 됐을 것 같은데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준 =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들으면 분노하실 것 같은데요. 제가 잘 늦는 편인데 이번에는 사흘밖에 안 늦었습니다(웃음). 26일에 독촉 전화를 받고 28일 새벽에 겨우 보냈어요. 사실 쓰는 게 쉽진 않았어요. 시인들은 자유 주제로 쓰는데, 주제가 정해진 시를 쓰는 건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이전에는 세월호 생일시에 참여해 유예은양과 같은 반 장주이양의 생일시를 썼다). 주제 자체도 유희가 아니다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네요.
유경근 = 저는 짧게 쓰면 된다고 들어서 그냥 묻어뒀어요. 그러다 마감이 내일이구나 생각나서 15분 만에 썼습니다.
박준 = 헉 천재들이 하는 이야기.
유경근 = 아니 전 시라는 생각을 안 해서…. 사실 이렇게 큰 행사인지도 몰랐고, 아는 사람들 친목모임 정도로 알았어요. 유명한 분들이 쓰는 건 줄 알았으면 못한다고 했을 거예요.
- 대화 주제가 쓰레기와 동물입니다. 혹시 키우는 동물이 있나요.
박준 = 현재 개 두 마리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랑 키우던 단비가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그중에 가장 예쁘게 생긴 달비(4)랑 가장 못생긴 하비(4)를 키우게 됐어요. 원래 달비만 키우려 했는데 하비가 다른 집에 갔다가 파양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요. 못생겼다는 게 외모가 아니라 몸이 약한 애라서.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죠.
유경근 = 우리 집은 예은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데려온 쿠키(11)랑 살고 있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한쪽 눈에 백내장이 와서 여기저기 박고 다니더니 요즘은 적응했는지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어요.
박준 = 이전에 시인들과 반려견을 주제로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라는 시집에 참여했어요. 보통 시를 쓸 때는 강력한 감정을 가지고 쓰는데 그 감정이라는 게 어두운 쪽에 붙어 있거든요. 근데 키우는 개로 쓰려니까 사랑이 넘쳐 어렵더라고요.
유경근 = 어릴 때부터 토끼, 병아리, 닭 같은 걸 수시로 키웠어요. 중학교 때는 진돗개 두 마리를 키웠는데 제가 밥 당번이었습니다.
박준 = 사실 이번에 유경근 선생님이랑 얘기를 한다고 했을 때 고민이 됐어요. 글 쓰는 사람들이랑 문학 얘기를 하면 무슨 얘기든 할 텐데 막막하더라고요. 근데 이 주제는 누구라도 말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와 동물에 대해서는 우선 모르는 상태에서 말을 하고, 말한 것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지킬 수 있는 말만 하자는 결심을 했는데, 이번에는 일단 말로 질러놓고 행동이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왔는데요. 유 선생님은 왜 한다고 하셨나요.
유경근 = 저는 46년을 살다 세월호를 겪었는데 이전까지 모든 삶이 사라졌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최근에는 동물권이나 환경 문제에 대해 딸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은이 동생이 생명에 대한 문제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가 정말 가리지 않고 잘 먹던 아이인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고기를 안 먹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고통스럽게 사육당하고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거예요.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거기에 맞춰 현재도 생활하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실천을 하나하나 전하기도 하고요. 그런 얘기를 재작년에 처음 들었는데 저는 ‘동물권’ 이런 게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누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18세 때 뭐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행동도 변하게 된 거죠(유씨는 평소에도 커다란 텀블러를 상비하고 다닌다. 카페에선 플라스틱 빨대 대신 딸이 선물한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했다).
박준 = 세상을 떠난 예은이와도 관계가 있는 변화일까요.
유경근 = 예은이 죽고 나서 겪은 일은 본인들만 알겠죠. 내색은 안 하는데 종종 집에서 육체적으로 답답함을 호소할 때도 있어요. 근데 본인들이 그런 사건을 겪으면서 다른 생각이나 깊이를 가지게 된 것 같긴 해요. 그러한 과정에서 저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받았고요.
- 사람들은 동물권 이야기를 하면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데 무슨 동물의 권리까지 챙기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십상인데요.
박준 = 저는 뒤늦게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개를 좋아해서 그런가, 특히 개농장 문제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공부를 했는데요. 처음 ‘쓰레기와 동물’이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얘기들이 떠올랐어요. ‘지금 사람도 힘든데 동물이 중요하냐.’ 경제가 중요하고, 노동자가 중요하고, 더 큰 의제들이 많은데 우선순위를 나누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저는 모두가 동등하게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최근 해양쓰레기 문제로 관심을 받은 거북이나 고래도 애니메이션에나 있는 존재죠. 우리가 실제로 바다생태계를 경험해본 건 아니니까요. 근데 동물 문제를 이렇게 동떨어진 문제처럼 대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모른다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그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죠.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마하트마 간디의 말로 알려져 있다). 결국 죽음들로 이어지고 있는 문제라면 모두 중요하게 대해야겠죠.
유경근 =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할 때 ‘인권이 유린당한 참사’라고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 2년 동안 인권이라는 걸 갖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게 왜 인권 문제지?’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습니다. 인권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고 나니 서로 연결된 문제가 맞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선택과 행동 때문에 나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아서는 안된다.’ 그 권리가 인권이라고 생각해요. 단원고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는데 왜 그게 생명을 뺏어갔을까…. 제가 인권 문제를 생각하게 된 해외 영상이 있어요. 오리 엄마가 새끼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는데, 경찰이 길을 막고 보호하면서 무사히 건너도록 하는 영상이에요.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봤어요. ‘우리나라 경찰은 이렇게 못했을 거야. 외국이니까 가능하지’ 이런 반응이 제일 많았고, ‘이렇게 멍청한 사람들이 다 있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냥 오리를 구조해 옮기면 되지 왜 길을 막고, 2차 사고 위험까지 있는데 미련한 짓을 하냐는 거예요.
박준 = 경찰들은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셨어요.
유경근 = 오리 엄마는 그 길로 가야 할 이유가 있으니 새끼들을 데리고 그 길로 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경찰은 최대한 그 결정을 존중하고 도와줬던 거죠. 이런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동물권과 인권도 결국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각자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런 선택대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 어떤 선택 때문에 부당하게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 사회. 바로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겠죠.
- 거북이가 ‘불쌍해’라고 하는 것과 ‘억울해’라고 하는 것도 주체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거북이가 억울하다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니까요.
유경근 = 그 생명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에 TV프로그램 <1박2일>에선가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물고기는 고통을 느낄까 안 느낄까’를 얘기하더니 수의사한테 전화해 확인하더라고요. 처음부터 얼마나 잘못된 질문을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은 고통을 느껴서 생명 아닌가요. 아픔에서 오는 고통, 기쁨에서 오는 고통 등등. 모든 걸 나의 입장에서, 인간의 입장에서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면서 남의 고통에는 예민하지 못한 것이죠.
박준 = 눈앞의 사람들이 고통을 느껴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을 많이 보셨죠….
유경근 = 그것도 결국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죠.
박준 = 최근 아이들의 감각을 키워준다는 ‘촉감놀이’라는 걸 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박스에 산낙지를 넣고 아이들이 손을 넣어서 (만져가며 무엇인지) 맞히게 하는 건데. (동물들은 몸부림을 치는데) 그 고통을 손끝에서, 고통의 촉수를 느껴서 아이들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것이잖아요. ‘동물축제’도 비슷하죠.
유경근 = 저는 인권과 동물권으로 나누는 표현 자체도 없애야 한다고 봅니다. 생명이라는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가장 기본은 자신의 선택으로 안전이나 생명을 위협받지 않을 권리라고 생각해요. 이런 데서 사람이나 동물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마음속 말들을 잘 담아내는 게 좋은 시 그 상상력으로 ‘쓰레기’와 ‘동물’을 연결
‘쓰레기와 동물과 시’ 프로젝트에 참여한박준 시인.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쓰레기와 동물과 시’ 프로젝트에 참여한박준 시인.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 최근에 앨버트로스 어미새가 새끼에게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는 사진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미 한국은 지난해 ‘재활용 폐기물 대란’을 겪으면서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실천까지 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준 = 우리에게 일종의 ‘패배주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가장 큰 연례행사가 당대 최고 가수들이 나와서 공연하던 SBS 환경콘서트 ‘내일이면 늦으리’였어요. 최근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미 늦은 거 아니야’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요. 20년 전의 오늘이 된 이제는 정말로 늦어버린 것 아닐까 걱정됩니다. 사실 쓰레기 문제만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도 이미 늦어버린, 되돌릴 수 없게 된 일이잖아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벌어졌고, 사건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 상황에서 일종의 패배의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유경근 = 저는 패배주의라고 하는 걸 없애는 게 소원입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패배주의를 느낄 수 있어요. ‘어차피 안되는 거 아냐, 거대한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겠어’ 하는 생각들이죠. 언젠가 유시민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청와대나 국회 앞에 안될 거 뻔히 알면서도 왜 피켓 들고 사람들이 나와 있는지 아느냐. 안될 거 알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살아야만 스스로 위안이 되고 그래서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대요. 엄청 슬픈 이야기인데 맞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왜 비슷한 사고, 참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멈춰지지 않는 것일까. 사람이 죽을 때마다 법을 바꾸고, 대책 만들어야 한다고 방송에 전문가들 나오고 심포지엄 하고, 논문 쓰고, 책 내고, 온갖 토론회를 해도 계속 반복되잖아요. 제가 생각한 문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 과정에 피해자들이 배제돼 그런 것 같아요.
박준 = 피해자들을 항상 ‘아파요, 슬퍼요’ 피해자의 역할로 가둬놓으려 해요. 피해자들이 의지를 갖고 무언가 얘기하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하죠.
유경근 = 세월호 참사 재발 막자고 유가족들이 얘기하면 무슨 꿍꿍이가 있냐고 해요. 왜 당신이 안전한 사회 이야기를 하냐고요. 유가족들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해서 하는 이야기인데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환경이든 쓰레기든 다른 사회문제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사회에서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당신들이 문제를 잘 아니까 나서보라고 피해자들에게 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준 = 유 선생님은 패배주의와 완강하게 싸우고 계시나요.
유경근 = 전 더 질 게 없잖아요. 잃을 게 없어요.
박준 = 그러한 이유로 패배주의가 생기기도 하잖아요. 너무 많이 잃어서 힘이 드니까요.
유경근 = 저는 예은이 하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이걸 수사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데 저는 정말 완전하게 예은이를 보러 가야 한다는 마음이에요. 근데 어쩔 수 없이 대충 살다가 나이 들어서 가면 예은이가 반겨줄까….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얘기해요. 당신들은 잘 살기 위해 싸우지만, 나는 잘 죽기 위해 싸우는 거다.
- 쓰레기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도 패배의식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쓰레기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박준 = 전주에 종종 가던 막걸리집이 있었는데 사장님이 업종을 바꾸셨어요. 그 전주에 안주 가득 나오는 가게들 있잖아요. 왜 바꾸셨냐고 물으니 사람들이 가짓수가 많으니까 반씩 남기곤 하는데, 그걸 계속 버리다가 어느 순간 공황이 왔대요. 더 이상은 못 버리겠다…. 그래서 메뉴를 두 개로 줄이셨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경근 = 재활용 분리수거 과정 자체가 쓰레기 문제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를테면 분리수거일을 놓치면 쓰레기를 계속 안고 살아야 하잖아요. 왜 이렇게 많지, 뭘 더 버린 거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제 딴에는 포개고, 씻고, 부피를 줄이려고 노력은 하는데 이게 쓰레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박준 시인
뒤늦게 동물권 관심 갖게 되면서
‘사람도 힘든데 동물이 중요하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고민
동물을 먼 문제로 대하는 태도
사람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아
죽음 이어지는 문제는 모두 중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에
일종의 패배주의 생기고 있어
작가들이 쓴 시의 상상력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길
박준 = 저는 ‘플라스틱포비아’ 비슷한 게 생겼어요. 이전에 살던 집이 재활용 쓰레기를 금요일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만 내놓을 수 있었는데요. 그 시간을 놓치면 베란다에 태평양의 쓰레기섬처럼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게 되더라고요. 사실 쓰레기를 바로바로 치워버리면 그 존재가 의식되지 않는데, 쌓이기 시작하면서 냄새가 나고 공간을 차지하니까 그때부터는 ‘문제’로 느껴졌습니다.
- 쓰레기도 재활용하면 자원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생산과 소비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혹시 쓰레기에 대한 추억 같은 것들이 있나요.
박준 = 저는 개인적으로 쓰레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구청 환경직 공무원이었어요. 난지도가 아직 쓰레기장이던 시절인데,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난지도에 가면 리어카나 수레를 끌고 와 물건을 가져가는 넝마주이들이 있었어요. 당시 넝마주이들이 아버지한테 차를 태워달라고 하고, 감사 표시로 팔 하나가 부러진 것 외에는 멀쩡한 변신로봇을 준다든지 그런 추억들이 있네요.
유경근 = 지금이랑 비교하면 예전이 더 편견 없고 평등한 사회였던 것 같습니다. 청소부 무시하는 것도 없고, 박준 시인 얘기도 넝마주이들이 ‘히치하이킹’을 한 거잖아요. 어른들 말 안 들으면 넝마주이가 잡아간다는 얘기들도 서로 친근하게 지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요즘은 어디 사냐, 몇 평 사냐, 임대 사냐 그런 거 따지는 세상이 됐다고들 하니까요.
- 오늘날 쓰레기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여러 작가분들이 시를 보내왔습니다. 이 중에서 마음이 드는 작품들이 있나요.
박준 = 전문적으로 시를 쓰지 않는 다른 장르 분들도 보내오셨는데요. 흔히 목을 가다듬고 고운 소리를 내는 게 시라고 착각하시는데 그냥 육성을 잘 담아내는 게 시라고 생각해요. 또 어떻게 얘기하냐보다는 무엇을 얘기하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망하는 것 같아요. 근데 시인이 아닌 분들은 무엇을 얘기할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쓰다보니까. (보내온 시를 하나둘 넘겨보더니) 이건 시인들이 지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먹기 싫은 것은 음식물 쓰레기, 먹을 수 없는 것은 일반 쓰레기, 먹으면 큰일 나는 것은 재활용 쓰레기입니다.” 손아람 작가님은 간명하게 정리를 잘하신 것 같아요. 흔히 일반, 비닐, 플라스틱 이런 식으로 쓰레기를 분류하는데 쓰레기를 다르게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작가분들이 쓴 시를 통해 대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은 시도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새들은 입을 벌리고 죽는다. 경이로울 줄 아는 순교자와 같이.” 이 시는 처음에 김연수 작가가 썼다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좋다고만 생각했지. 원래 시를 쓰시다가 소설을 쓰신 건데, 오랜만에 시로 돌아오셨네요. 특히 소설이랑 다르게 굉장한 냉소가 있습니다. 새들의 죽음은 순교인데 인간들은 귀를 막고 눈을 막고 모른 척하잖아요. “새 시대의 건강법을 익혔으니 그들은 오래오래 살아남으리라. 놀랄 일도, 신비한 일도 모두 사라질 내일부터의 지구와 같이.”(김연수 작가는 ‘앨버트로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원고 요청에 ‘저도 도움이 되고 싶네요’라며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유 선생님은 어떤 시가 좋으셨어요.
유경근 = 시를 잘 모르니까. 봐도 잘 못 고르겠어요. 그냥 보고 좋은 거지요.
박준 = 이번 주제에 쓰레기와 동물 사이에 왜 시가 끼었을까. 사실 쓰레기와 동물은 연결되어 있는 문제잖아요. 근데 ‘이거랑 저거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시라고 얘기되는 인간의 상상력이 겨우 쓰레기와 동물을 연결시킬 수 있다고 봐요. 사실 시가 대변하는 상상력은 모두 세상에 있는 것들이거든요. 조기찜이 너무 맛있는데 돌아가신 아버지도 드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현실에 기반한 상상들인데.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깨닫는 데 필요한 생각을 시가 매개해주는 것이죠. 특히 상상은 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시인들이 이번에 쓰레기로 시를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유경근 = 저는 김숨 작가의 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은 새가 날아와 유리에 부딪쳐 죽었다 … 사람들은 유리를 치우는 대신에 새를 땅에 묻어주었다. 이름을 주었다.” 이 시에 나오는 모습이 대다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유리를 치울 생각은 안 하고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특히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무언가 하고 있다는 행동을 과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야’ 양심에 마취제를 놓는 것이 아닌가…. 새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으니까 문제의 본질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 결국 내 일이 아니라 남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가 더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요.
박준 = 능력 없는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문제. 사실 인간의 육신을 종합적으로 보면 다른 생명체에 비해 무능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식물은 유능하잖아요. 광합성만 하면 살 수 있고, 여기저기 뻗어나갈 수도 있고요. 근데 인간은 딱히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이 많으니까 여러가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유경근 = 사람들이 불편한 건 못 참는데 부당한 건 잘 참는 것 같아요. 최근에 학교 비정규직의 급식 파업 문제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당연히 불편은 발생하겠지만, 정작 문제의 계기가 된 노동 현실에 대해선 외면하는 태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레기 문제의 경우도 각자 조금만 불편을 참아내면 훨씬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포장재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도 각종 민원 때문이잖아요. 이를테면 식당에선 국물이 조금이라도 새면 난리나니까 지나칠 정도로 꽁꽁 싸매는 거고요. ‘부당함을 인내하지 말고 불편을 참자.’ 이런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커버스토리]쓰·동·시…쓰레기와 동물이 시가 되었다
[커버스토리]쓰·동·시…쓰레기와 동물이 시가 되었다

민주노총 전국서 동시 총파업대회...10개지역 5만여명 참가

노동개악을 저지하자...부산 대구 세종 광주 등 전역서 열려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07/20 [02:41]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가 18일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열렸다. 전국 10개 지역에서 1만 5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파업 대회에 참가했다. 파업 참여는 전국 각 사업장에서 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부산시청 앞 도로에서 1천 2백여 명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총파업 대회를 열었다.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실행할 계획조차 없는 그럴싸한 말만 앞세우는 기만적이고 무능한 정부의 피해자는 결국 조직되지 못한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라며 “우리가 아니면 그 누구도 대변해 주지 않는 노동자들을 위해 멸시와 탄압에도 굴하지 말고 민주노총 답게 싸우자”라는 결의를 밝혔다. 또한 22일째 단식투쟁 중인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지부장도 편지로 부산지역 총파업 대회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정 지부장은 “비정규직의 투쟁에는 반드시 정규직의 연대가 간절히 필요하다”며 “정규직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손 내밀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차별받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사회적 책무이자 노동조합이 나아갈 길”이라고 호소했다.

민주노총 세종충남지역본부
세종충남 지역본부는 천안 야우리 광장에서 총파업 대회를 진행했다. 세종충남지역본부 가맹산하 조합원 약 4천여 명이 모여”노동탄압분쇄!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기본권 확대 쟁취! 노동법 개악 저지! 재벌 독과점 분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과 본대회를 진행했다. 문용민 세종 충남지역본부장은 “문재인 정권의 사전계획대로 진행된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550만 최저임금노동자들의 생존임금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만큼도 안되는 삭감금액”이라고 주장하며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앗아 재벌에게 상납하는 비열하고 악질적인 짓거리를 자행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대구에선 금속노조와 건설노조를 중심으로 1,300여 조합원이 총파업 대회에 결합했다. 대회에선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을 총파업 투쟁으로 돌파하자는 발언이 이어졌다. 총파업 대회를 마친 대오는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이 18일째 고공농성 중인 영남대의료원을 향했다.
이밖에도 전남과 전북, 광주, 경남, 경북지역에서 동시에 총파업대회가 진행됐다.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노동과세계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9-07-20 08:42:23
수정 2019-07-20 10:41:20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사건을 다룬 당시 언론 보도들이다. 당시 국정원을 통해 언론이 보도한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통합진보당 당원이 기자고 있던 폭탄제조법 등은 이후 재판에서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사건을 다룬 당시 언론 보도들이다. 당시 국정원을 통해 언론이 보도한 이석기 의원의 발언과 통합진보당 당원이 기자고 있던 폭탄제조법 등은 이후 재판에서 모두 허위임이 밝혀졌다.ⓒ방송화면 등 캡쳐

2013년 8월 28일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주요 당직자 10명의 자택과 의원실 등 18곳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3명을 체포했다. 국정원이 내민 영장엔 ‘내란음모’라는 죄목이 적혀있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면서 전국에서 촛불이 타오르고 있던 그때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만날 수 있었던 ‘내란음모’가 부활하면서 모든 언론과 방송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도배됐다. 국정원이 내세우는 혐의 내용은 언론을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내란음모죄’ 관련 기사는 신문과 방송을 뒤덮었다. 언론은 “이석기 의원, 총기 마련해 국가시설 파괴 모의” 등 국정원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사실 확인은 생략한 채 국정원이 불러주는 대로 이석기 의원과 관련자들을 ‘내란범’으로 몰아붙였다.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도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했다. 조선일보는 8월 30일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 국정원 입수’를 전했다. 이른바 지하조직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녹취록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단독보도’라며 녹취록 요약본을 실은 데 이어 전문을 공개하기도 했다. 녹취록의 내용은 이후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에도 다시 등장했다. 이후 언론에선 ‘사제폭탄’, ‘기간시설 파괴’ 등 자극적 언어가 넘쳤다. 국정원이 흘린 녹취록에 따라 언론의 보도가 춤을 췄다. 이런 광풍엔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들도 함께했다.
9월 4일 국회 본회의가 열리고, 찬성 258, 반대 14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민주당은 물론 한때 같은 당에 있었던 정의당마저 침묵하며 동조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직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사건은 일주일 만에 언론과 방송 그리고, 정치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침묵과 동조 속에 ‘내란음모’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았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김재연 의원이 2013년 8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음모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언론의 허위사실보도에 대해 강력대처 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김재연 의원이 2013년 8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음모 혐의로 국정원의 압수수색을 받은 이석기 의원에 대한 언론의 허위사실보도에 대해 강력대처 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양지웅 기자
궁지에 몰리던 국정원과 박근혜 정권이 ‘내란음모’를 조작하며 어떻게 일순간에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함께 진보 운동을 했던 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왜 침묵한 것일까? 사회적인 낙인과 함께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당한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고, 왜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일까? 지난 2014년 연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중국 옛 진나라 시절 실권을 장악한 환관 조고가 황제와 조정 신하들 앞에서 사슴을 말이라 우긴 뒤, 여기에 토를 단 사람들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와 십상시 국정개입 논란 등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속이는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사자성어’다. 말을 가리켜 사슴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비판이고, 또 사슴임을 알면서도 무서움에 침묵한 이들을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순 감독은 지난 2013년에도 이런 ‘지록위마’의 상황이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터트리며
사슴(鹿)을 말(馬)이라고 주장하자
함께 싸웠던 진보진영조차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피해버렸다
국정원이 여론재판을 시작했고, 언론과 방송은 마치 배심원이라도 된 것처럼 여론재판을 주도했다. 경순 감독은 “과거 독재정권에선 인혁당 사건 등을 폭력을 앞세워 조작하고, 이를 통해 공포정치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론이 그런 폭력을 대신해준다. 군대를 동원해 총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언론이 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 광장에서 경쟁하듯 나온 보도의 0.1% 정도만이라도 노력했다면 그런 보도는 안 나왔을 것이다. 이석기 의원을 애국가를 안 부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고립시킨 뒤 내란사건으로 확산시켰다. 내란 선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강연해달라고 해서 초청을 받아서 강연한 것뿐인데 앞에 서 있었다고 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언론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신상이 털렸다. 불과 1주일 만에 그렇게 됐다. 사건이 알려지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던 순간에 이 사건은 끝났다. 재판은 시작도 안 했지만, 판결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9월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병윤 원내대표, 김선동, 김미희 의원과 함께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이 의원 체포동의안은 찬성 258, 반대 14로 가결됐다.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처리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2013년 9월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병윤 원내대표, 김선동, 김미희 의원과 함께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이 의원 체포동의안은 찬성 258, 반대 14로 가결됐다.ⓒ양지웅 기자
이런 과정 속엔 수많은 침묵과 동조가 있었다. 국정원이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터트리며 사슴(鹿)을 말(馬)이라고 주장하자 함께 싸웠던 진보진영조차도 사슴이 말이라는 주장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피해버렸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013년 당시 한겨레신문에서 일했던 허재현 기자는 이른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2012년 총선 직후 통합진보당은 내부 경선과 관련한 논란으로 인해 당내 분란을 겪었다.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해 당시 당내 다수를 이루고 있던 세력이 부정선거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오며 검찰수사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당이 갈라지는 결과를 맞게 됐다. 이후 재판과정에서 당시 논란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엔 ‘부정’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허 기자는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두고 ‘해도 너무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선거를 통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정당을 없애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적극적으로 통합진보당의 목소리를 취재하지는 않았다. 기자들도 다른 사건과 비교해 솔직히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에 따른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극적으로 통합진보당의 목소리를 취재하지는 않았다.
기자들도 다른 사건과 비교해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에 따른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향을 미친 것”
‘이카로스의 감옥’의 저자인 문영심 작가도 “201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종북낙인 찍기는 진보진영 내부에서 시작됐고, 진보당 내부 경선 사태를 악용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종북몰이가 본격화됐다. 제도권 보수야당은 수수방관했으며, 보기 드물게도 수구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종북몰이에 가세했다. 그 결과 대중과 여론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통합진보당은 종북마녀사냥과 해산이라는 화형식을 당해야 했고, 그 불쏘시개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활용됐다”고 당시를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문 작가조차도 이석기 내란 사건 관련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는 “요즘 세상에 사제폭탄을 만들고 총기를 구입해서 폭동을 일으켜?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유류저장고를 습격해?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로 국정원과 언론에 의해 찍힌 낙인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후 재판과정에선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흘러나온 내용 대부분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통합진보당에 호전적 낙인을 찍었던 근거가 된 녹취록은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를 “전쟁을 준비하자”로 조작하는 등 수백 곳 넘게 오류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내란음모를 실행한 조직으로 지목받은 이른바 ‘RO’는 재판과정에서 실체가 없음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2015년 1월 22일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지만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은 ‘유죄’로 판결했다. 선동 즉 부추기는 언행이 유죄가 되려면, 그로 인해 유발되는 ‘구체적 행위’가 전제되어야 함에도 구체적 행위 없이 ‘말’ 한마디로 중형이 선고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두달 전인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이미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이러한 진보당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판결과
이를 기초로 이뤄진 통합진보당 해산의 중심에
박근혜 정권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보수세력에 의해 여전히 소환되는 두 사건
사법부가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증거도 드러났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에 따르면,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청와대와 협상할 사안이 담긴 문건에는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등이 언급돼 있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4년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을 ‘2대 과제’로 삼고 법조계는 물론 국정 전체를 움직인 사실도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드러났다.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판결과 이를 기초로 이뤄진 통합진보당 해산의 중심에 박근혜 정권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찍힌 커다란 낙인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강제로 해산 된 지 4년이 되던 지난 2018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당원들 시민들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과 의원직 박탈은 박근혜 정권이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한 최악의 사법농단 사건으로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강제로 해산 된 지 4년이 되던 지난 2018년 1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당원들 시민들이 통합진보당 강제해산과 의원직 박탈은 박근혜 정권이 헌법재판소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한 최악의 사법농단 사건으로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의원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서면질의를 통해 이석기 전 의원 내란 관련 대법원 판결과 통합진보당 해산과 관련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지난 5일 윤 후보자는 서면답변을 통해 “원칙적으로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고,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견해’에 대해선 “헌재의 (해산)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두 사건과 관련한 많은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이 두 가지 질문을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렇게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자주 소환한다. 지난해 11월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건 당시 이석기 전 의원을 거론한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에서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은 KT 아현지사 화재에 대해 “RO(혁명조직)가 혜화전화국을 공격하자고 했었던 것과 오버랩 된다”며 “통신시설에 대한 습격, 공격 등의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매체들은 “‘혜화전화국 습격 준비하라’ 다시 주목받는 이석기 발언”(중앙일보), “‘KT 혜화전화국 습격’ 이석기 내란 선동 다시 주목”(조선일보) 등 자극적인 제목을 뽑으며 위기감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미 재판과정에서 RO라는 조직은 실체가 없음이 드러났고, 전화국 폭파 등의 발언을 이석기 전 의원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가짜뉴스’까지 유포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내란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훈장처럼 자랑하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정점식 의원
아울러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은 공격의 수단인 동시에 ‘훈장’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올해 1월 22일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영남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여투쟁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사람이 누구냐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1월 22일 세종시를 방문해선 “통합진보당 해산의 주역”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황교안 대표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자신의 추진력과 투쟁력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경남 통영·고성에서 당선된 정점식 의원도 자신의 최대 치적 가운데 하나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꼽고 있다.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인 정점식 의원은 2014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재직 중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바 있다. 정 의원은 2017년 6월 검찰을 떠나면서 이임사를 통해 “거칠고 힘들더라도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편하게 처리하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올바른 결정을 찾으며 숱한 밤을 지새웠다”면서 “그중에서도 송두율 교수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당시 정 의원은 자신의 공안경력을 내세우며 “지난 70여 년 공안부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역사적 소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국가와 국민이 있는 한, 공안의 기능은 변함없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014년 11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심판 최종변론을 위해 들어가고 있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가운데)과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 팀장(왼쪽). 두 사람은 현재 각각 자유한국당 대표와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11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심판 최종변론을 위해 들어가고 있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가운데)과 정점식 법무부 위헌정당·단체 관련 대책 티에프 팀장(왼쪽). 두 사람은 현재 각각 자유한국당 대표와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자유한국당과 보수세력들이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을 자신들의 위기 탈출을 위한 ‘무기’로, 또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훈장’으로,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찍힌 ‘종북’이라는 커다란 낙인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영심 작가는 “사람들은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부정적 시각이 여전히 많은 건 언론의 책임이 크다. 잘못 보도된 것에 대해 아무런 정정 보도가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처음 보도 나온 그대로 믿고 있다. 심지어 지금도 보수언론 등을 통해 이미 법원에 의해 이석기 전 의원이 발언이 아니라고 밝혀진 발언들과 RO라는 법원조차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조직이 언급된다”고 꼬집었다.
침묵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 기자들
여전히 진실에 눈을 감은 건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들은 여전히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찍힌 낙인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고,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지만, 이석기 전 의원은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고, 침묵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침묵의 상황을 바꾸고,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고, 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 셜록프레스의 이명선 기자는 지난해 10월 ‘통진당 해산 결정은 틀렸다’(https://www.neosherlock.com/archives/2081)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다른 사람이 돌을 던질 때, 같이 돌을 드는 건 쉽다. 하지만 남들이 다 손가락질할 때, 홀로 용기 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일은 어렵다. 통진당은 그렇게 ‘죽일놈’이 됐다. 2013년 8월, 당시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내란음모 관련 기사가 나오자마자 진보와 보수는 하나가 되어 ‘통진당 죽이기’에 나섰다”면서 통합진보당을 판결의 부당성을 고발했다. 이 기자는 2013년 당시 채널A 소속 기자로 활동했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는 지난 4월 ‘누가 이석기를 악마로 만들었나’(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7742)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정원발 의혹을 기정사실로 해 보도한 당시 언론을 비판했다.
2013년 당시 ‘한겨레’ 기자로 활동했던 허재현 리포액트 대표기자도 최근 이석기 전 의원 내란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허 기자는 리포액트 홈페이지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협력자 이성윤을 도웁시다’(http://repoact.com/bbs/board.php?bo_table=free&wr_id=2)라는 글을 올리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실 밝히기에 뛰어들었다. 이성윤은 민주노동당 후보로 선거에 나선 적이 있는 통합진보당 소속 정치인이었지만, 2013년 당시 국정원 협력자로 등장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증언에 나섰던 인물이다. 국정원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꾸준하게 돈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그는 그날 이후 자취를 감췄다. 허 기자는 그에게 공개적으로 나서 이번 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협력자
이성윤을 도웁시다”
허 기자는 “예전에 문영심 작가가 ‘이카로스의 감옥’을 발간한 뒤 토크 콘서트를 할 때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에 ‘이 사건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꼭 진실을 찾고, 밝혀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계속 고민했지만, 돌파구가 안 보였다. 국정원이 일으킨 이 사건을 당시의 수사관이 양심선언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른바 국정원 협력자였던 이성윤 씨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차원으로 글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허 기자는 “저는 수년 전 서울시공무원간첩증거조작 사건의 실체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변호사들과 함께 밝혀낸 적 있다. 그때 결정적 증거와 증언은 국정원의 부탁을 받고 증거 조작을 실행한 김원하 씨의 양심고백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김원하 씨는 비록 증거를 조작하는 나쁜 짓을 저지른 범죄자이지만 결국에는 저를 만나 조작 사실을 털어놓았다”면서 “저는 그를 추궁 비난하기보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역사적 피해자의 범주에서 이성윤 씨를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경순 감독
“수많은 이유를 듣는다. 그것이 ‘빌미론’이든,
그들의 구석기 사고를 운운하는 변명이든
여전히 회피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문영심 작가도 지난 3년 동안 전국을 돌며 북콘서트를 여는 등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경순 감독과 함께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제목의 이석기 내란음모 조작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함께 2년째 제작하고 있는 것도 사슴이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침묵했던 모두에게 이제는 제발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거부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문영심 작가는 “이 전 의원을 제외한 모든 내란 음모 사건 관련자들이 만기 출소했다. 이 전 의원마저 결국 계속 갇혀있다 만기 출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며 “여론이 움직여야 하는데 진보언론조차 소극적이어서 안타깝다. 대부분 사람이 이 전 의원을 비롯해 이들이 법적으로 처벌받을 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심이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감옥에 있어도 무감각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만 유독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영심 작가가 2016년 12월 21일 오후 인천 구월동에서 이카로스의 감옥 북콘서트를 갖고 있다.
문영심 작가가 2016년 12월 21일 오후 인천 구월동에서 이카로스의 감옥 북콘서트를 갖고 있다.ⓒ양지웅 기자
영화 지록위마를 제작 중인 경순 감독
영화 지록위마를 제작 중인 경순 감독ⓒ양지웅 기자
지난 2년여 동안 다큐멘터리 ‘지록위마’를 찍으며 언론인과 진보진영의 여러 인사, 그리고 내란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왔던 경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찍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정보에 휘둘려 왔는지 확실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현실도 만날 수 있었다. 한번 침묵하면 다음부터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말하기 힘들어지고,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당시에도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사실과 진실들이 진보진영 내부의 얽힌 감정과 입장 차이로 인해 묻혀 있었다.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수많은 이유를 듣는다. 그것이 ‘빌미론’이든, 그들의 구석기 사고를 운운하는 변명이든 여전히 회피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팩트는, 진실은 언제나 하나였다. 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가을에 ‘지록위마’를 완성해 공개할 예정이라는 경순 감독은 “이 영화가 진실을 찾고 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내란사건 재심 변호인단 단장
최병모 변호사
“이번 재심 청구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사법농단,
사법부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수단으로 사용한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임은 법원에도 있다. 내란음모 등 혐의로 징역 9년을 확정받은 이석기 전 의원 측은 지난 6월 5일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은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법원행정처 문건 등을 통해 드러났다. 그러나 사법농단 수사에서 관련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전 의원 측이 재심청구를 하게 된 이유다. 재심 전망과 관련해 ‘사법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청구 변호인단’ 단장인 최병모 변호사는 “재심을 법원이 받아들였으면 하고, 법리적으로만 놓고 보면 충분히 재심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아직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사법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조작사건 재심청구변호인단이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 앞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2019.06.05.
사법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조작사건 재심청구변호인단이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 앞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2019.06.05.ⓒ뉴시스
최 변호사는 “이석기 전 의원과 통합진보당에 대해 여론이 아직 비우호적이지 않냐”는 질문에 “여론이 비우호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다. 이건 여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국가보안법과 70년 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냉전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어떻게 여론이 우호적일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먼저 달라져야 할 것은 여론이 아니라, 체제이고, 법치이고, 법원이고, 정치라는 것이다.
재심 제도는 유죄 확정판결이 난 사건 중 법에서 규정한 예외 사유에 해당할 경우 다시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소송법은 재심 이유로 ‘형의 면제 또는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등을 꼽고 있다. 그런데 법원에선 자신들이 이미 판단한 사건에 대해 재심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런 법원의 분위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다른 일반적인 재심 사건과는 다르다는 것에 있다. 최 변호사는 “본래 재심제도는 기본적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사가 양심에 따라서 제대로 재판을 한다는 걸 전제로 이뤄진 제도다. 그런 전제 속에 판사도 실수를 할 수 있다고 봐서 문제가 있으면 다시 심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비롯해 공안사건은 판사들이 처음부터 죄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유죄를 준 것이다. 제대로 된 법률가라면 누구나 판단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 내린 판결이다. 이번 재심 청구는 단순한 재심청구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사법농단, 사법부가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사법제도를 수단으로 사용한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기회”라고 강조했다.
13일 오전 10시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이석기 의원 석방 촉구 도보행진 발대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13일 오전 10시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이석기 의원 석방 촉구 도보행진 발대식 기자회견이 열렸다.ⓒ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법원은 재심청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번엔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 감옥에 갇힌 이석기 전 의원은 풀려날 수 있을까?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진실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 많은 시민이 함께하고 있다. 지난 13일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 9년 형을 확정받고 7년째 수형생활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수감 중인 대전교도소 정문 앞에 모인 시민들은 “함께 걷자 함께 열자, 이석기 전 의원 석방하라”고 외쳤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촉구 도보행진 발대식 기자회견에 함께한 시민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광화문까지 걸으며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하루 약 30km씩 총 224km를 걸어온 이들은 오는 20일 서울 광화문에 도착한다. 20일 행진을 마친 뒤에는 광화문에서 이석기 의원 석방대회를 열 예정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