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 진월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교사가 봉숭아어린이공원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신민철씨 제공
“우리 동네가 깨끗해져서 뿌듯했어요! 그렇지만 쓰레기가 많아서 북극곰이랑 북극에 사는 물고기들이 걱정되기도 했어요. 우리만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다 노력해야 하잖아요.”(12살 김귀태)
“저는 길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쓰레기를 줍다 보니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 사람들이 미웠어요.”(8살 봉세은)
‘동네를 뛴다. 쓰레기를 줍는다. 지구의 미래를 지킨다.’ 귀태와 세은이는 요새 ‘플로깅’에 빠져있다. 플로깅은 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15일까지 진행하는 ‘2050년 어린이날을 지켜라’ 플로깅 챌린지에 아이들과 어른들이 미래의 어린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위해 참여하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집 근처 공원과 학교 주변 쓰레기를 줍는 환경보호 활동을 하자는 취지다.
대구 달서구 진월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봉숭아어린이공원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신민철씨 제공
대구 진월초 3학년3반 학생 17명과 교사 신민철(30)씨는 지난 3일 오전 1시간가량 학교 인근 공원에서 플로깅을 했다. 담배꽁초와 플라스틱컵이 가장 많이 나왔고, 음식물쓰레기와 오래돼 악취가 나는 음료 등도 나와 아이들이 코를 부여잡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담배꽁초가 왜 이렇게 많은지’, ‘어른들은 왜 쓰레기를 그냥 두고 가는지’ 계속 물어봤어요. 색이 들어간 페트병 등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에 대해 설명해주니 ‘쉽게 재활용할 수 있게 만들면 되잖아요. 왜 그렇게 만들어요?’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답하기 어려웠습니다.”진월초 최영은(9)양은 플로깅에 참여해보니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우리 주변의 쓰레기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평소에 엄마랑 자주 가는 공원인데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 줄 몰랐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서다 보면 언젠가는 깨끗한 마을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지난 2일 가족과 함께 경기도 여주에서 플로깅에 참여한 봉서휘(11)양도 “운동도 하면서 아픈 지구를 위해 무언가 해서 마음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대전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과 어린이들이 대전 대덕구 길치근린공원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대전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지난 3일 낮 1시간30분가량 플로깅을 한 대전종합사회복지관 어린이 8명도 저마다 든 20ℓ 봉투를 채우고, 힘들었지만 보람찼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23.3도를 기록해 뛰면 땀이 나는 날씨였다. “목이 엄청 마르고 더워서 숨이 찼어요. 그래도 뿌듯해서 또 하고 싶어요.”(11살 김태희)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셔서 더 기분이 좋았어요.”(12살 방은설) “몰래 길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절대 버리지 않겠다”는 솔직한 ‘고백’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빙하가 녹아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이 불쌍하다”, “우리와 물고기가 먹는 미세 플라스틱이 걱정된다”, “지구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까 봐 두렵다” 고 앞다투어 말하는 아이들은 기후위기에 둔감한 어른들 보다 더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두 아이와 함께 플로깅에 참여한 봉원훈(42)씨는 “미래세대를 위해 어른들도 환경보호에 앞장서야 한다”며 아이들의 노력에 어른들이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구는 ‘우리가 잠시 빌린 것’이라고 하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지구에서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봉서휘(11)·봉세은(8)양 가족이 경기도 여주 강천섬유원지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다. 봉원훈씨 제공
편집자주:인도 코로나19 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공식적인 감염자수가 2천만명, 사망자 수가 22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14억 인구의 인도의 실제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그 50배에 이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사람들이 병원 밖에서 죽고 있고 불타오르는 화장터 장작더미와 시신들이 델리의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대참사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려는 가디언의 기사를 소개한다.
하나가 오는가 하면 또 하나가 오고, 또 하나, 또 하나가 연이어 왔다. 그렇게 시신이 도착했다. 너무 많아서 시신을 실은 응급차와 트럭들이 화장터로 오는 길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4분에 1명씩 코로나19로 죽는 인도 델리 수도권에서는 하루하루가 병상뿐만 아니라, 인간답게 망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델리 동부에 있는 가지푸어 화장터는 하루에 38구의 시체를 처리할 수 있다. 팬데믹 전에는 그렇게 하루에 38구를 처리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2차 파동이 강타한 지금은 이른 아침에 이미 150구의 시신이 도착한 날이 너무 많다. 주차장에서도 시신을 처리 중이지만 역부족이다.
인도 뉴델리에서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이 집단 화장되고 있는 모습.ⓒ뉴시스, AP
델리 수도권에서 코로나19가 꺾일 기미가 전혀 없다. 지난 4월 30일 아침, 델리는 하루 사망자 395명과 신규 확진자 2만4235명으로 또 기록을 갱신했다. 인도 전역에서는 38만669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세계 기록을 갱신했다.
한편 하루 1000구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화장터가 급속히 늘고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 시아파의 장례 의식을 치르는 이곳이 코로나19의 처참함을 가장 사무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입원할 병상이나 산소를 구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산소가 없어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찌는 델리 더위에 개인 보호 장비를 갖춘 라케시 쿠마르(36)가 이마의 땀을 닦아가며 흐느꼈다. 가족이 어머니를 델리와 근방의 노이다에 있는 모든 병원에 모시고 갔다. 하지만 어머니 수미트라 데비(56)는 산소가 부족해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 병상을 끝내 구하지 못한 어머니는 29일 아침에 사망했다.
쿠마르가 울부짖었다. “병원이라는 병원은 다 가 봤다. 그런데 우리는 어머니의 혈중 산소포화도가 40%로 떨어질 때까지도 병상을 구하지 못했다. 가는 병원마다 병상이 남아있는 병원을 가르쳐줬지만, 그 병원에 도착하면 병상은 없었다. 병상만 있었어도, 산소만 구했어도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코로나19를 이겨낼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다른 사람들도, 쿠마르도 분개했다. “정부가 국민들을 저버렸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료 서비스를 왜 줄 수 없었을까?”
가지푸어 화장터의 주인인 수닐 쿠마르 샤르마는 30년 동안 이 일을 했지만 이런 광경을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샤르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델리에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애통해 했다.
코로나19 시신을 다루는 방법은 굉장히 엄격하게 규제된다. 하지만 샤르마는 병원들이 아무것에도 시신을 싸지 않은 채, 화장터 직원들을 코로나19에 노출시킬 것을 알면서도 시신을 그냥 보낼 때도 많다고 했다. 게다가 친척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가족도 있다고 한다.
샤르마는 “이곳의 상황은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 우리는 하루에 20시간씩 일해 왔다. 심신이 모두 지쳤다. 사람들이 시신을 여기에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가 가족들 대신 장례 의식을 치러준다. 망자에게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가지푸어 화장터는 하루에 60톤의 나무를 소진한다. 샤르마의 걱정이 태산이다. “내일이면 또 시신이 도착할 텐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밤마다 걱정한다. 우리가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시신이 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가지푸어 화장터는 수천 구의 시신에서 나온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냄새가 진동했다. 시신들이 처리된 곳에는 전날의 연기가 자욱하고, 일부의 제물과 망고, 석류, 그리고 밝은 주황색 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죽음의 잔재 속에 삶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깊디깊은 슬픔이 그 곳을 감쌌다.
짙은 녹색의 사리를 입은 여자가 아침에 죽은 남편의 시신을 실은 구급차 유리창에 서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시신 위에 빨간 팔찌들을 놓으려고 했지만, 보호복을 입고 시신을 옮기려던 남자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제지했다.
5월 1일 인도 방갈로르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필요한 산소의 리필을 위해 실린더를 스쿠터에 싣고 가고 있다.ⓒ뉴시스
그 옆에는 동생 램의 시신이 도착해 장작더미 위에 놓이자 울부짖기 시작한 에제이 굽타가 있었다. 램은 숨쉬기가 곤란했던 지난주에 드디어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램은 굽타에게 영상전화를 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었다. 그러나 병원의 산소가 떨어졌다. 그리고 램은 죽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원 측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동생이 말이다.
굽타는 동생이 입원한 동안 암시장도 이용했다고 했다. 델리에는 절박한 가족들에게 산소나 렘데리비르 같은 약을 어마어마한 가격에 파는 암시장이 등장한지 오래다. 굽타는 전 재산을 털어서 평소보다 10배 넘게 비싼 렘데리비르를 950만원 주고 샀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치료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약이지만 의사들이 사라고 권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굽타는 다른 여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렌드라 모디 정권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동생의 죽음은 중앙정부의 탓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코로나19 시신을 화장터로 실어 나르는 구급차 운전사 나렌드라 쿠마르(26)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소 부족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쿠마르는 “이건 끔찍한 직업이다. 요즘은 내가 가족을 감염시킬까봐 너무 무서워서 집에 가지도 않는다. 일이 끝나면 병원 밖에 응급차를 주차하고 거기서 잔다”며 두렵다고 했다.
델리에서 인도의 인기 많은 간식인 파니푸리를 팔던 크리시난 팔(48)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숨을 쉬지 못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사촌 칼리 카샤프는 델리에 있는 모든 병원에 갔지만 병상을 구하지 못해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있는 아그라까지 갔다고 했다. 아그라에는 병상이 있었다. 그러나 산소가 있는 병원이 하나도 없었다. 팔은 그들이 다시 차를 돌려 바레일리 시로 향하는 중 숨이 끊어졌다. 카샤프는 “사람들이 숨을 못 쉬어서 말 그대로 길에서 죽고 있다. 인도는 지금 산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산소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부에게 묻는다”며 울먹였다.
23일(현지시간) 인도 카슈미르주 잠무의 화장터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의 장례식이 진행되는가운데 방호복을 입은 가족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2021.04.24.ⓒ잠무(인도)=AP/뉴시스
코로나19 2차 파동이 모디 정권에게 정치적인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모디의 지지도는 67%로 여전히 매우 높지만, 이는 지난주보다 6%p가 갑자기 떨어진 수치로 모디의 역대 최저 지지율이다.
인도가 코로나19 위기에서 장기적으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 백신접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공급량 부족으로 5월 1일부터 18세 이상에게 백신을 접종할 것이라는 델리의 계획이 무기한 연기됐다. 인도의 다른 지역도 비슷한 처지다. 델리 주정부는 “최대한 빨리” 백신 접종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델리의 여러 개인 병원에 따르면 최소한 한 달, 길면 두 달이 있어야 백신이 공급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은 델리의 화장터와 장지들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죽음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해가 지고 있는 가지푸어 화장터에서는 드디어 모든 장작더미와 시신들이 준비됐다. 직원들이 한꺼번에 모든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모든 장작더미가 활활 타올랐다. 그러나 높이 치솟은 불길들도 남은 유족들의 절망을 가져가 주지 못했다.
▲ 가족 동반을 허락하지 않는 대한민국 외국인력정책은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들이 통계에 잡힐 가능성을 배제해버린다. 매해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를 하는 통계청 자료 역시 15세 이상 국내 상주인구를 기준으로 하므로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
1991년 대한민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며 국적·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국내 거주하는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정한 기본적 권리들을 보장받고 있을까요?
지난 4월 19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민조사과가 발표한 '장기체류 외국인 아동에게 조건부 체류자격 부여' 제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주아동, 정확한 통계가 없다
이 제도는 국내에서 출생한 후 15년 이상 국내에 계속 체류하면서 대한민국 중‧고교 교육과정을 받고 있거나 고교를 졸업한 외국인 아동을 대상으로 학교 재학, 법 위반 여부 등 일정한 심사를 거쳐 학업 등을 위한 체류자격을 부여합니다. 법무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 중 하나로 체류 자격 때문에 미등록 이주아동의 학습권 보장이 되지 않는 현실은 1991년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내용과 정신에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중 학습권 관련 부분만 살펴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2조 제1항.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후견인의 (중략) 사회적 출신, 재산, 무능력,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에 관계없이 (중략)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br /><br />제28조 제1항. 당사국은 아동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며, 점진적으로 그리고 기회균등의 기초 위에서 이 권리를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2021년 3월 말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백만 명이고, 그중 미등록자는 39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에서 미등록이주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족 동반을 허락하지 않는 대한민국 외국인력정책은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동들이 통계에 잡힐 가능성을 배제해버립니다. 매해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를 하는 통계청 자료 역시 15세 이상 국내 상주인구를 기준으로 하므로 어떤 통계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출입국 통계월보, 교육부 학생 통계, 국내 주재 각국 대사관에 등록된 국내 출생 아동, 부모를 따라 입국했다가 체류 기간을 넘긴 아동, 대한의사협회에 집계돼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등을 참고할 수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여 통계를 내기가 불가능합니다. 결국 2~3만 명 정도로 관련 단체들이 추산할 뿐입니다.
존재 자체가 불법인 아이들
미등록, 또 다른 말로 불법체류자인 이주아동들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자마자 존재 자체가 불법이 돼버립니다. 아동이지만 당연히 누려야 할 생존권, 학습권, 보건 의료권, 문화 여가를 즐길 권리, 사회권 등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려서부터 장기체류하고 있는 아동과 그 부모들은 언어적 문화적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주아동 지원 활동을 하는 단체들도 똑같은 주장을 합니다. 제발 대한민국에 살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아서 말입니다.법무부 역시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배경 중 하나로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장기간 거주하며 공교육까지 이수한 외국인 아동은 언어・문화적으로 사실상 우리 국민에 준하는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고 있으니 그런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법무부 발표를 듣고 기뻐하는 마리아도 같은 말을 합니다.
"한국에서 살고 싶어. 내 친구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한국말밖에 하지 못하는데 왜 필리핀에 가야 해?"
마리아가 오랜 미등록 생활에 지쳐 귀국하려고 했을 때 아들이 한 말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울고불고하는 아들의 마음을 모른 체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자신의 불찰이라는 마리아는 아들에게 더 어렸을 때부터 모국에 대해 가르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법무부 발표 전에 출입국 단속에 걸렸다가 보증금 1200만 원을 내고 보호일시해제된 마리아는 그간 사연을 적어 출입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일하러 왔고 사장님께 인정도 받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제 아들은 외모는 필리핀 사람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필리핀에 간 적도 없고, 필리핀 사람들과 어울린 적도 없어 필리핀 말도, 음식도 먹을 줄 모릅니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아들이 자라가면서 제 비자는 만료됐고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국적 정체성 때문에 아동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반외국인 정서를 가진 국민을 설득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청주지방법원은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이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내린 강제퇴거명령 취소를 명하며 판결문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사실상 오직 대한민국만을 그 지역적·사회적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사람을 무작정 다른 나라로 나가라고 내쫓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하여야 할 문명국가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 <br />(...) 대한민국에서 초·중·고 정규교과과정을 모두 이수한 원고를 강제로 내쫓는 것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경제적·인적 피해를 입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즉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2년의 정규교육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성장한 원고를 이제 와서 내보내는 것은 그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감안할 때 큰 손실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정부에 촉구하면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말하는 권리보다 대한민국에 얼마만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방점을 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작 중요한 아동의 기본권적 권리를 외면할 수 있습니다. 아동의 권리는 그 정체성과 관계없이 '아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장받아야 합니다. 아동은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니라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동은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모든 형태의 위험, 차별, 학대와 방임, 차별, 과도한 노동, 약물과 성폭력 등 아동에게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교육을 받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여가를 즐기며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의견을 말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권리 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내용과 정신에 따르면 미등록 이주아동의 경우 합법체류로 봐야 함이 타당합니다.
마리아가 한국에 더 있고자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아들 때문입니다. 청소년기에 있는 아들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여느 한국 부모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린이날에 부모의 마음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 네 가지 원칙을 함께 살펴봤으면 합니다.
무차별의 원칙 : 모든 아동은 부모님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인종이든,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부자든 가난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br /><br />아동 최선 이익의 원칙 :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결정할 때에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br /><br />생존과 발달의 원칙 : 아동은 특별히 생존과 발달을 위해 다양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br /><br />아동 의견 존중의 원칙 : 아동은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적절한 사회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갖고,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의견을 존중 받아야 합니다.
최근 들어 주린이, 등린이, 헬린이 등 '○린이'라는 표현을 여러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린이'라는 말은 '어린이'에서 뒷부분을 따와, 어떤 일이나 분야에서 초보자나 막 시작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린이'라는 말은 이전에도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사용되어 온 말이지만, 2020년부터 각종 언론사에서 서슴없이 사용하며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언론사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시민청이 어린이날 이벤트에서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문제 제기 받은 뒤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이라는 제목의 책이 올라 있다.
○린이, 누군가의 호칭을 빌려오는 순간에 대해
'다들 많이 사용하는 말인데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린이'가 주로 사용되는 맥락을 살펴보면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읽어낼 수 있다. '○린이'라는 표현은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나 취미의 첫 글자와 '어린이'가 합쳐진 것이다. 왜 새롭게 시작하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용어인 '입문자'나 '초보자'를 대신해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먼저 질문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바라보기보다 모든 영역에서 '초보자'라 생각하기에 이런 호칭이 문제없이 사용되는 것 아닐까. 어린이는 곧 미성숙하고 서툰 존재라는 편견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린이'라는 표현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상황에서 흔하게 쓰이곤 한다.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사람은 '어른'으로,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사람은 '어린이'로 상정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가르침에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가르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어린이를 낮춰 보는 인식이 녹아 있다.
이런 점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공공기관, 언론에서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를 함부로 단정 짓는 태도, 어린이 차별적인 우리 사회의 문화를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나를 호칭하는 이름이 되기 싫을 때
'○린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는 것을 목격하며, 어린이라는 호칭이 지금까지 어떻게 쓰여 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한국 사회에서 어린 존재를 지칭하는 말들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는 생일이 일러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간, 흔히 말하는 "빠른년생"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주변 친구들로부터 본인을 언니라고 부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나도 늘 '언니'가 되고 싶었다. 나이가 한 살 적은 것뿐이었지만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무시해도 되는 위치에 놓이곤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위축되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나는 특히 나를 어리다고 지칭하는 말들이 싫었다. '어린이'라는 호칭은 언제든 벗어나고 싶은, 들을 때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게끔 하는 말이었다. 스스로 어린이임을 드러내기보다는 부정해야 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라고 불릴 때는 내가 배제되거나 무시당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정체성에 붙여지는 이름을 부정하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린이'라는 표현은 '결정 장애'와 같은 표현과도 닮아 있다. '결정 장애'라는 표현도 우유부단한 태도를 장애에 빗대어 사용하는 점에서 장애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담긴 말이다. '○린이', '결정 장애'와 같은 표현을 특정 상황에 쓰는 것은 존재에 대한 편견임과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의 특성을 극복해야 되는 무언가로 여기게끔 한다. 이런 식의 표현은 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순간에 놓이고 사회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현실을 드러낸다.
어린이 해방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어린이임을 부정하다가도 어린이임을 강조하게 되는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었다. 그것도 그냥 어린이가 아닌, '착하고 귀엽고 말 잘 듣는 어린이'로 자신을 드러내야 했다.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어른들이 원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여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소 내가 싫어했던 모습들을 마구 보여주며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어쩌면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본연의 모습보다는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날, 어린이의 부자유함과 우리 사회의 어린이 혐오를 목격하기 쉬운 날인지도 모른다.
현재 어린이날은 어린이들과 놀아주거나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취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1922년 첫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에게 경어를 써 달라"고 하며 어린이의 권리를 보장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것을 요구했던 역사가 있다. '어린이'라는 호칭 자체에도 너무도 하찮아서 지칭하는 말조차 없었던 나이 어린 존재에게 이름을 붙인 어린이해방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다. 어른과 동등한 존재이자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로서 '어린이'라는 호칭을 요구했지만 현재는 이러한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호칭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부족함이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길 바라며
'○린이' 표현 속에 있는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면, "어린이는 아직 부족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맞고, 어른들이 자신을 그렇게 지칭하는 게 왜 문제냐"라는 말이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린이'라는 표현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 바로 어른들의 권력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배워야만 하는 존재,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온전한 삶을 지우는 일이다. 언제나 배워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지는 어린이·청소년들은 '○린이'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이 나처럼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불리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취미로 무엇을 배울지 고민하며 배움을 정할 수 있는 이들, 그렇게 삶이 지워지지 않는 이들에게 '○린이'라는 표현이 쉽고 재미있는 것이다.
한편, '○린이'라는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어린이 중에도 똑똑한 어린이도 있고 부족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린이도 부족하지 않고, 배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TV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흔히 '영재'로 여기지는 어린이를 예시로 들며 어른보다 뛰어난 순간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 세상과 뛰어남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어른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어른스러운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를 다시 나누는 기준밖에 되지 않는다.
'○린이' 속에 담긴 어린이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것은 어른들의 시선에 들어맞는 어린이만 인정받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나 누군가가 부족하다고 전제하더라도 그들의 언행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는 것을 바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바랐던 것은 "빠른년생이면 친구지."라는 말이 아니라, 나이가 달라도 그 속에서 위축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린이 말고 초보자라는 말을 쓰세요."라는 말보다 "부족하면 늘 배워야만 해?", "자격과 조건이 미달하면 차별받아야 돼?"라고 되묻고 싶다. '○린이'라는 표현으로 어린이의 삶을 납작하게 만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