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사설]불평등에 대하여

[사설]불평등에 대하여

오늘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망과 설렘으로 새해를 맞을까. 이 사회를 이끄는 정계, 종교계, 재계, 문화계 각 부문 지도자들은 신년사를 통해 행복한 세상이 열리기를 기원한다. 보통 시민들도 오늘만은 힘들고 지친 삶에서 벗어나는 새해를 꿈꾸고는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새해 소망은 배신당했다. 2015년 새해 첫날의 꿈이 바로 어제 12월31일 깨졌음을 확인했듯이 2016년 12월31일도 그런 날이 되리라는 불안한 예감을 감출 수 없다.
2016년은 고립된 시간도, 미지의 시간도 아니다. 올해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는 지난해, 그리고 지난 3년에 의해서 좌우될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 이래 8년간 반복된 것을 다시 목격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 더 이상 새해 첫날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희망이 너무 닳아 버렸다.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린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대도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더 멀리는, 민주화 이후 28년간 이 사회를 규율했던 질서도 2016년에 영향을 미친다.
새해에 계속될 고통들은 이렇게 켜켜이 쌓인 과거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새해란 저 깊은 지층 위에 얹혀진 작은 돌멩이와 같은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여러 번의 정권 교체에도 하나의 경로를 따라갔다. 돌멩이 하나 치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랄 것 없다. 새해에 목격될 고통들은 1년 전, 3년 전, 8년 전, 38년 전부터 이중삼중으로 겹쳐지면서 단단히 굳어진 하나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 모순이란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버린 바로 그것, 불평등이다.
불평등은 어떤 지표로도 가릴 수 없는 한국의 실상이다. 최상위층 1%의 부는 전체 부의 18%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30대 그룹 상장사 임원 연봉은 직원 평균 연봉의 10.8배이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25.1%이다. 남녀 임금차, 노인 빈곤율은 OECD 34개국 중 1위이다.
대로에서 남이 버린 박스를 가득 실은 채 위태롭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본 일이 있는가. 그런 이들이 왜 점점 더 자주 눈에 띌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왜 내 주변의 젊은이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내 주변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주변 젊은이들이 대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보고 듣는 일상 경험들이 사실은 지표보다 더 생생하게 불평등한 세상을 증언해 준다.
왜 거리에 가련한 청춘들이 저렇게 넘쳐나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우리는 이미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청년 문제가 아니다. 노인이 가난에 허덕인다고 노인 문제가 아닌 것과 같다. 사회로 처음 진입하는 좁은 문 앞에 저들끼리 부대끼는 청춘들의 아우성이 노인 때문이 아니듯, 노인의 절반이 가난한 것 역시 청년 때문이 아니다. 부자는 부자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낳는 세습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부모의 부를 대물림하지 못한 불운한 이들은 어느 세대에 속하든 사회 밑바닥에서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흔히 세대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과 같은 여러 갈등이 혼재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모두 빈부갈등, 즉 불평등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갈등들이 과잉 부각된 것은 많은 경우 불평등 문제를 가리기 위해 정치적으로 동원한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식으로도 은폐되지 않을 만큼 불평등은 심각해졌다.
불평등은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앗아간다. 불평등은 중소기업 종사자, 여성, 지방 출신,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더 적은 기회를 준다. 희망은 바닥나고 있다.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계층 유동성을 막고, 사회 갈등을 조장,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건강, 인간의 자존감도 해친다. 균형을 잃은 채 늙고 병들어 가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필요한 활력을 빼앗아 간다. 보수적 관점에서도 한국이 비효율적인 사회가 되었다면 그것 역시 불평등 때문이다.
민주화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 자유의 뒤에 도사리던 불평등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주기적인 선거, 정권 교체 가능성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국가가 후원하는 시장의 자유가 이 사회에 소득 격차, 사회 양극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불러낼 때도 우리는 방심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불평등해졌고 이제 그 불평등이 자유까지 제약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곳일 수 없다. 이제 한국은 호모 사피엔스가 서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 되었다.
이런 절망감은 불평등이란 지층의 무게에 짓눌린 한국 사회를 하루아침에 구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깊어진다. 이게 한국 사회 앞에 가로 놓인 진짜 현실이다. 불평등의 정도가 너무 심하면 불평등에 대한 인내심도 커진다. 절망과 체념 때문이다. 불평등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야 불평등을 관용하는 정도 또한 낮아진다. 불평등의 역설이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요즘 시민들은 각자도생하고 있다. 불평등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서로 경쟁한다. 정부는 탈규제, 민영화, 감세, 재벌 중심 성장과 같은 불평등 확대 정책을 지속한다. 기우뚱한 이 사회를 바로잡을 분배 정책과 재분배 제도에 무관심하다. 정치는 거대 양당 체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안주한 채 소외된 서민의 목소리를 배제한다.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이 말해주듯 시민들도 점차 정치로부터 떠나고 있다. 체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15년은 헬조선이니 금수저 흙수저니 하는 우울한 언어가 횡행한 해였다.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는 사회 현실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청년 실업,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시민들이 다 포기한 채 무조건 참고 견디기로 마음먹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념과 거부의 경계선에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정치가 다시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불평등은 정치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냐에 따라 불평등 완화의 길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지금 한국 정치가 바로 그런 갈림길에 있다. 낙관적이지는 않다. 그동안 정치는 불평등 해소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불평등 체제를 재생산했다. 이런 체제는 민주주의라기보다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 체제라 해야 옳다.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평등의 원리에 기반을 둔다. 반면 시장은 1원 1표의 논리를 따른다. 가진 만큼 권리가 부가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을 우상화할 경우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막는 게 정치의 과업이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시장이 초래하는 불균형을 바로잡는 능동적 역할을 해야 할 주체가 바로 정치이고, 정당이고 정부다.
4월 총선을 한다. 총선은 불평등을 바로잡고 모두 승리하는 길로 갈지 시험하는 무대다. 오랜 시간 축적된 불평등은 어느 한쪽의 역량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난적이다. 만일 이 싸움에서 진다면 패자는 우리 모두가 될 것이다. 총선이 정치의 실패를 확인하는 마당이 아니라, 정치의 비전을 펼치는 장이 되려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모두의 노력과 힘이 필요하다. 특히 집권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 집권세력은 광복 70년을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인식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승리자의 관점을 반영하려고 한다. 집권세력이 70년의 역사를 이끈 주체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70년이 남긴 그늘인 불평등 체제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래리 바텔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수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투표한 보수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불평등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이 공화당 정권 때 더 불평등해진 사실을 규명, 보수의 각성을 촉구했다.
불 평등에서 탈출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 다음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자세, 불평등이 초래한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는 열정,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이 불평등에 패배하는 위기의 순간은 불평등이 해소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퍼질 때이다. 불평등에 익숙해지고 그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때이다. 불평등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삶을 억압하는 명백한 실체이다.

표창원, 종편 앵커가 말장난 하자 ‘면도칼 일침’

표창원, 종편 앵커가 말장난 하자 ‘면도칼 일침’

등록 :2015-12-31 09:16수정 :2015-12-31 17:57
MBN 화면 갈무리
MBN 화면 갈무리
‘사무실 인질극 문재인 대표 뭘 잘못?’ 질문에
‘면도칼 공격 당한 박근혜는 뭘 잘못했나’ 되물어
누리꾼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고 깔끔한 설명”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종합편성채널(종편)에 출연해 앵커의 황당한 질문에 돌직구 답변을 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를 낳고 있다. 표 소장은 30일 방송된 MBN ‘뉴스 BIG5’에 직접 출연해 이 프로그램 김형오 앵커와 1대1 대담을 나눴다.(▶관련 동영상) 김 앵커는 이 자리에서 이날 오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산 지역구 사무실에서 벌어진 인질극 사건을 언급한 뒤 “야당을 비판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질문을 드리겠다”며 “문재인 대표 부산 사무실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는데, 이유야 어찌됐든 제1야당의 대표 사무실에 국민이 들어가서 인질극을 벌이면서 제1야당 대표에게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게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래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 대표가 뭘 잘못했을까?”라고 물었다. 표 소장은 이 질문에 대해 “역으로 한 번 질문을 드리고 싶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많다”며 “그 질문을 하신 앵커 입장에서 그게 정말로 문 대표에 대한 문제 혹은 책임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김 앵커는 “글쎄요, 제가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저 분(인질범)의 이상한 행동이라고 그냥 몰아붙이기에는…”이라고 답했다. 표 소장은 이에 대해 “그러니까 책임이나 문제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라며 “그렇다면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선거 유세 중에 면도칼 공격을 당하셨다. 박근혜 대표의 잘못인가? 똑같은 대답을 한 번 해보라”라고 되물었다. 김 앵커는 “아… 그때 그분은 정신이상이었잖아요”라고 말했고, 표 소장은 다시 “지금 이분도 정신이상으로 나오고 있다. 어떤가, 사람에 따라 다른가? 상황에 따라 다른가?”라며 “지금 계속해서 여러 종합편성채널에서 유사한 형태의 공격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 사무실에 누가 들어가서 인질극을 벌인 걸 보니 문 대표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2006년 그 사건도 똑같이 취급을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표 소장은 이어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사망하고 우리 정부가 주적임에도 불구하고 애도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같은 나라의 야당 대표가 이런 피습을 당했는데 어떤 의사 표시하셨나? 위로나?”라며 “여당이나 정부나 방송의 태도 자체가 상당히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 소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공격을 할 때가 아니라 범죄나 테러 행위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같이 규탄을 할 때”라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방송 영상을 공유하며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튜브에 올라온 방송 영상은 31일 오전 8시50분 현재 31만회에 이르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율마러브’는 “와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다. 저 상황에서 저렇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했고, ‘앵두양 1030’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설명”이라며 “편향적인 종편들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아리랑’은 “종편에서 표창원은 인터뷰 기피 대상이 되겠다”고 했고, ‘gooood’는 “이 나라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잘 보여준다”고 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중·고등학생들

"경찰에 잡혀간다고? 2학년 8반 내가 시켰다고 해"

[올해의 인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중·고등학생들
15.12.31 14:02l최종 업데이트 15.12.31 14:02l글: 선대식(sundaisik) 편집: 김지현(diediedie)

<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인물'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나선 중·고등학생들입니다. 많은 독자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백남기씨를 올해의 인물로 추천하는 독자도 많았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집회가 억압받는 시대에, 백씨는 당당하게 거리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때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아직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날 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몰아갔습니다. 훗날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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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청소년들이 12월 26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에 모여 올해 마지막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집회를 열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학생들은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거부한다.'

지 난 10월 11일 오후 중·고등학생 10여 명이 거리에 나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뜻을 담은 팻말을 들고 인사동에서 정부서울청사까지 행진했다. 쌀쌀한 날씨에 시민들은 잠시 눈길을 줄 뿐,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 언론사는 <오마이뉴스>를 포함해 몇 군데 되지 않았다(관련 기사 : 청소년들도 국정교과서 논쟁에 '뿔났다').

이 튿날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혔다. 국정교과서를 '올바른 교과서'라고 포장했다. 10월 17일 다시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70여 명의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인사동 거리를 걸었다. 근조 표시가 된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습니다'라는 펼침막을 앞세웠다.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어른들에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고등학교 3학년생 전혜린양은 이날 2차 거리행동에 참여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나는 그저 역사다운 역사를 원한다'는 손팻말로 1인 시위에 나섰다.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혜린양의 말이다.

"제 게 다가와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데,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저를 안아줬고, 저도 하염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물을 건네주는 분도 계셨고, 외국인도 응원했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역 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어른들도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인데도, 학생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다. 어른들은 다시 한 번 학생들의 외침을 마주하며 부끄러워했고, 이를 계기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행동에 나선 중·고등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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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서울 구로고등학교 2학년생 이찬진군이 교내에서 선후배와 친구들을 상대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이찬진 제공

서 울 구로고등학교 2학년생 이찬진(17)군은 3차 거리행동부터 지난 12월 26일 열린 12차 거리행동까지 빠짐없이 거리로 나섰다. 고2면 한창 공부해야 할 때다. 학업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찬진군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에게 떳떳한 모습으로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라면서 "교육은 정치인이 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자의 딸인데, 누가 보더라도 속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누군가는 찬진군의 말을 두고 좌편향됐다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찬진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다른 대통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다면 역시 거리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찬 진군은 교내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전교생의 절반가량인 4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는 "서명운동을 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국정화에 찬성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서 명운동을 하면서 선·후배와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찬진군은 "(경찰에) '잡혀가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라면서 "겁먹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잡혀가면 2학년 8반 이찬진이 시켜서 했다고 하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경 기도 광주시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생 이한수(18)군은 아는 동생에 이끌려 우연히 3차 거리행동에 참여했다가, 이후 12차 거리행동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한수군은 "사실 역사교과서 국정화든 아니든 상관없었다"라면서 "청소년이 이렇게 입장을 내고 거리에 나서는데도, 정부는 듣지는 않고 계속 국정화를 강행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중학교 2학년생 권혁주(14)군은 집 인근 중학교 앞에서 3주가량 1인 시위에 나섰다. 혁주군은 "저랑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이 음료수를 사다줬다, 비가 온 날에는 어떤 형이 비닐 우산을 사와서 건넸다"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세상이) 바뀔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교과서가 계속 나와도, '송곳' 같은 학생과 시민이 튀어나와서 국정화 반대 물꼬를 틀 것"이라고 덧붙였다.

4.19혁명도 고등학생의 시위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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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7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에 참여한 초중고생들이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평화행진을 하는 가운데, 한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행사에 불만을 표시하며 갑자기 현수막에 발길질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학 생들의 외침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이끌어냈지만, 이를 비판하는 어른도 적지 않다. 지난 10월 <오마이뉴스> 기자와 인터뷰했던 한 학생은 학교의 우려와 부모님의 반대에 기사화 포기를 요청했고, 또 다른 학생은 기사가 나간 뒤 "부모님이 알게 됐다"라면서 기사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2차 거리행진 때는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너희가 역사교과서를 아느냐"고 펼침막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혁주군은 "거리행동 때 박수나 격려를 받기보다는 욕을 더 많이 먹었다"라면서 "학생들의 말을 무시하고 '니들이 뭘 알아서 말하냐'고 하는 건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무모한 외침일까. <오마이뉴스>는 2008년 올해의 인물로 '촛불 소녀'를 선정했다. 그해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한 여중·고생들은 당당하게 최고 권력자를 비판했다. 어른들은 여중·고생들 앞에서 부끄러워했다. 이후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리에 나왔다.  

제4대 대통령선거를 보름 앞둔 1960년 2월 28일 오후, 대구의 고등학생 1200여 명은 "학원의 정치 도구화 반대" 등을 외치며 교문을 나서 경북도청까지 시위를 벌였다. 학교가 민주당 장면 후보 강연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인데도 등교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곧 경찰이 출동했고, 2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후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3월 15일 대통령선거일에 마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실종됐다. 한 달 뒤 바다에서 이 학생의 시체가 떠올랐다. 마산을 포함해 전국이 들끓었고, 이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중·고등학생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또한 다양한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혁주군은 "앞으로 국정화가 철회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면서 "학생들도 충분히 이 사회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존재며, 자신의 의견을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존재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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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거리행진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청소년 2차 거리행동이 17일 오후 종로구 인사동거리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교과서반대청소년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 2000년 <오마이뉴스> 창간 이후 '올해의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0년 문정현 신부(매향리 공대위 활동)
2001년 화덕헌(이문열 도서 반환운동)·박경석(장애인이동권연대 상임공동대표)·덕성여대 총학생회 및 교수협의회
2002년 행동하는 누리꾼
2003년 문규현 신부(새만금 및 부안핵폐기장 투쟁)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여의도 천막농성단 1000명
2005년 노충국 부자
2006년 평택 대추리 사람들
2007년 참언론실천 시사기자단(전 <시사저널> 기자들)
2008년 촛불 소녀
2009년 용산참사 유가족
2010년 천안함 북풍 이겨낸 6·2 지방선거 유권자들
2011년 송경동 시인
2012년 김효원(왕복 40시간 버스 타고 투표 참여)
2013년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2014년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 부모들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중·고등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