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일 토요일

핵이 꼭 경제 발목만 잡을까

[정문일침78] 핵이 꼭 경제 발목만 잡을까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6/07/03 [02: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은 29일 열린 제13기 제4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하고 핵경제병진노선에 기초한 경제발전에 주력할 계획을 발표     © 자주시보

▲ 북 국무위원 명단     © 자주시보

최근 조선(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회의를 진행했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김정은 체제의 확립을 운운하면서 “대관식”이라는 표현도 썼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회의가 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 대한 재확인과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이었다.

지난 5월에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5개년 전략을 내놓았을 때 어떤 한국언론은 북 하면 비하부터 하는 습관대로 초라한 설계도라고 비웃었다. 필자의 시각으로는 초라하든 말든 조선이 간만에 경제에 주요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나서는 자체가 중대한 의미를 갖는데 말이다. 5개년 계획은 아니고 5개년 전략이라고 이름지음으로써 일정한 탄성을 남겨두면서 발전을 도모한다는 건 한국인들이 말끝마다 강조하는 북한 민생을 위해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재미언론인 노길남 선생이 금년에 북을 방문해 취재한데 의하면 북은 군사비를 총예산의 30몇%로부터 10분의 1인 3점 몇%로 낮춤으로써 대량 자금을 경제건설에 돌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필자는 조선자료에서 그런 수치들을 보지 못했고, 또 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변수가 하도 많으므로 예산대로 자금들이 투입될 수 있겠느냐도 미지수이지만, 일단 그렇게 예산을 책정했다는 설 자체가 벌써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걸핏하면 “북 도발”을 운운하는 세력들은 믿기부터 싫고 또 북의 경제가 나름대로의 궤도대로 굴러가는 건 더욱 싫겠다만, 북의 경제와 인민들의 살림이 나아가는 추세라는 건 북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바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던가 한국에서 북을 비난하는 고정된 과녁의 하나가 경제발전과 핵무력강화 병진노선이다.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 그리고 보수적인 언론들은 물론이고, 이른바 진보를 자랑하는 야당 가운데서도 북의 병진노선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면서 반대하는 정객들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핵보유국들을 살펴보면 공식적 보유를 인정받은 나라들도, 인정받지 못한 나라들도 핵 보유는 경제발전과 걸음을 같이 해왔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소련과 인도, 파키스탄 등도 경제를 내미는 한편 핵무기를 보유하고 강화했다. 중국은 좀 특수한 사례인데 째지게 가난했던 상황에서 핵무기보유를 경제발전에 앞세웠고(당시 핵시험을 한 번 하려면 전국의 몇 분의 1의 전력을 써야 했고 전국 전화선로의 몇 분의 1을 차지해야 했다) 핵무력이 어느 정도 강화되고 침략당할 위협이 상당히 가셔진 뒤에 1970년대 말부터 경제건설로 주력을 돌렸는데, 그 뒤에도 20년 가까이 핵시험을 진행해 중자탄기술까지 보유한 다음에야 컴퓨터모의실험으로 바꾸었다. 다시 말하여 핵을 갖거나 강화하는 것이 반드시 경제발전과 모순된다는 실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조선은 여러 가지 자원이 제한되고 지정학적 위치가 특수한 상황에서 남들과 직접비교하기 어렵고 또 외부에서 반도의 비핵화를 요구하는데, 조선에서는 집권당이 두 가지 병진을 전략노선으로서 내놓았다는 점이 특별하다. 허나 중국이 덩샤오핑의 큰 전쟁이 당분간 잃어나지 않는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핵무기연구를 비롯한 데 쓰이는 군비를 줄이어 경제건설에 돌림으로써 국민들의 살림이 크게 펴난 사실에 비춰보면 조선이 군비를 줄였다는 노길남 선생의 보도는 신빙성이 있고 그 효력도 직관적일 가능성이 높다. 덩샤오핑의 “군대는 좀 기다리라”는 방침이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서 군대와 과학연구기관들의 자체연구개발진들이 다수 해체되어 뒷날 팀을 다시 꾸리는데 애를 먹었던 중국의 교훈을 조선은 모르지 않을 테니 모의실험을 최대한 늘이는 등 방도를 취하리라 짐작된다.

조선의 병진구호는 남들이 실제로 실행하면서도 말하지 않았거나, 전략적 노선의 높이로 끌어올리지 않았던 걸 높이 내세운 셈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그런 구호를 공식적으로 내놓은 나라는 없으니까 그 점에서 독창성을 띈다. 그리고 내놓은 뒤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았으므로 효과를 단언하기 어렵다.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처음 기선이 만들어졌을 때의 일이라 한다. 돛도 없고 노대도 삿대로 없는 배가 생겨나니 숱한 사람들이 강변에 서서 가지 못한다, 가지 못한다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기선은 유유히 움직였다. 어안이 벙벙해났던 사람들은 뒤이어 가라앉는다, 가라앉는다고 소리쳤다 한다.
글쎄 “타이타닉”호를 비롯하여 가라앉은 기선들은 아주 많다. 그러나 석탄을 때던 데로부터 디젤유나 휘발유를 쓰는 기선이 나오고 지금은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함선들도 대양을 누빈다.

위에 쓰다시피 병진노선은 독창성을 띄는 바, 언제까지 유지하겠는지 어느 정도 효력을 거둘지는 시간과 변화된 현실만이 말해줄 수 있다. 첫 기선을 보고 예단했던 사람들이야 이름을 남기지 못해 망신할 것 없다만, 현대사회에서는 종이기록과 전자기록이 너무나도 잘 되어 있으니 속단했던 사람들은 몇 해 뒤 “족집게 도사”라는 칭찬을 받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엉터리 예언가”라는 조소를 받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자신이 잘 모르는 상대에 대해서는 느긋이 두고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게 여러 모로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