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2일 토요일

헤겔이 하이힐을 신어야 했다면 ‘철학자의 길’은 탄생했을까

 등록 :2021-06-12 08:44수정 :2021-06-12 18:05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⑨‘걷기’조차 제한당한 여성들

핀투리키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1509년께, 프레스코(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에 붙임), 영국 내셔널갤러리.
핀투리키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1509년께, 프레스코(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에 붙임), 영국 내셔널갤러리.

2019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여행을 갔다. 그곳의 대표적 관광지는 헤겔이 걸었다던 ‘철학자의 길’. 어렵게 온 김에 철학자의 길도 경험하고 싶어,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길에 들어서자 코스가 예상과 너무 달랐다. 거의 작은 산을 오르는 하이킹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은 단출한 옷에 편한 신발을 신은 사람만 환영하는 곳이었다. 경사진 길을 낑낑대며 걷다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헤겔이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여자였다면, 이 길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하이델베르크뿐 아니라 독일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덴마크 코펜하겐, 일본 교토에도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들은 길을 걸으면서 사색했고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다. 비단 철학자뿐이랴. 평범한 우리들도 종종 거리를 걸으며 활기를 얻고 영감을 수집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의 길’이라는 명칭은 ‘걷기’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옛 여성들은 이 걷기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철학자의 길이 탄생하던 시절 여성들은 폭이 좁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런 조건에서 남성처럼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사색하고, 활력을 얻을 수는 없었으리라. 물론, 하이힐 탓만은 아니었다. <걷기의 인문학>의 작가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즘을 처음 생각한 계기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맘껏 걷고 싶은데, 여성인 자신은 그러기 어렵다는 걸 느꼈던 때”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여자의 걷기를 방해하는 것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

거리, 남성들만의 공간

김수영 시인은 시 ‘거대한 뿌리’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습관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이 시에 등장하는 ‘그녀’는 1894~1897년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다. 비숍은 1898년에 펴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조선의 이 ‘기이한 습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大鐘)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중략) 자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다시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비숍은 더 놀라운 사실이 남아 있다는 듯,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한 양반가의 귀부인은 아직 한 번도 한낮의 서울 거리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김수영과 비숍의 글에 따르면 조선 말 존재했던 한밤중 ‘부녀자의 세계’는 잠깐이나마 여성들이 집 밖에 나올 수 있었던, 숨통 틔워주기 풍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마냥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둠의 힘을 빌려 겨우 거리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장옷을 뒤집어써야 하는 등 여성들은 거리에서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애초부터 길거리는 여성이 침입하면 안 되는, 남성들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온 세계 누빈 오디세우스 부재에
‘빈집’ 몰려든 남자들 물리치고
현명함 칭송받은 아내 페넬로페
‘자기 자리’인 집 벗어났다면
성매매 여성으로 인식됐을 수도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온 세계를 자신의 안방처럼 돌아다닌다. 그가 자의 반 타의 반 여성들의 유혹에 빠지고 자식까지 낳으며 영웅적 모험을 하는 동안 아내 페넬로페는 꿋꿋하게 집에서 남편을 기다릴 뿐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핀투리키오(1454~1513)의 그림 <페넬로페와 구혼자들>을 보자. 그림 속 페넬로페는 남편 없는 집에서 베틀로 옷을 짜고 있다. 그런데 오른쪽을 보면 외간 남자들이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다. 이 집은 다른 남자들 입장에서는 빈집과 마찬가지다. 집주인은 오디세우스이지 페넬로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먼 여행을 떠나자, 이들은 빈집과 그 집의 가구나 다름없는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아버지에게 바칠 옷을 완성하면 결혼하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낮에는 옷을 만들고 밤에는 그 옷을 다시 풀어버리는 식으로 시간을 끌며 청혼을 물리쳤다.


그런데 이런 지략도 한두번이어야 통하는 법. 그림 속 구혼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표정에 한 치 미동도 없는 그녀는 곧 자신의 처신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밖에 오디세우스를 태운 배가 도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마치 어제 떠난 듯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집과 아내를 되찾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호메로스는 페넬로페의 현명함을 칭송한다. 페넬로페는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알았고, 그 규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페넬로페가 20년이라는 세월에 지쳐 자신의 자리인 집을 이탈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여성의 몸까지 변형시킨 ‘제자리’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저서 <순수와 위험>에서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남성을 위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기에, 거리에 보이는 여자는 ‘더러운 창녀’였다. 이 같은 관념은 단어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거리의 남자(man of the streets)는 거리의 규칙을 따르는 남자일 뿐이지만,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는 성매매 여성(street walker)을 뜻한다. 만약 페넬로페가 집 밖에 나와 오디세우스처럼 돌아다녔으면 성매매 여성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이 같은 사회의 시선은 여성들이 집밖에서 마음껏 거닐 수 없게 한 족쇄였다.


여성을 향해 집 안에서 인형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의 명령은 여성의 복장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남성복을 입었던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는 회고록에서 처음 남장을 했을 때 느낀 해방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은 뒤축에 쇠를 박아서 발을 보도 위에 단단하게 디딜 수 있었다. 나는 파리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세계 일주를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입은 옷도 똑같이 튼튼했다. 나는 날씨에 상관없이 외출했고, 시간에 상관없이 귀가했다.”


그렇다면 남장 전의 상드는 어땠을까. “내 다리는 튼튼하고 베리 지방에서 험한 길 위를 두꺼운 나막신을 신고 걸으며 단련된 발도 믿음직했다. 그런데 파리의 보도 위에서는 내 발이 얼음 위의 배 같았다. 섬세한 신발은 이틀 만에 망가졌고 덧신을 신자니 걷기가 불편한 데다 나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진흙투성이가 되고 지쳐서 콧물이 흐르고 신발과 옷, 작은 벨벳 모자에까지 시궁창 물이 튀었고 옷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보통 여성의 남장은 전복적인 의미를 띠는 사회적 행위로 그려지곤 하지만 상드는 자신이 남장을 선호하는 이유를 실용성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동시대 중국의 경우는 복장도 모자라 아예 신체를 변형시켜 여성의 바깥 이동을 막았다. 중국에는 여성의 발을 천으로 동여매고 작은 신발을 신겼던 전족 문화가 있었다. 4살이 된 여자아이는 엄지를 제외한 네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꺾어 붙여 꽁꽁 싸매야 했다. 이는 발의 정상적 발육을 억제했고 그 결과 천천히 발의 뼈가 구부러지며 기형이 되었다. 이 때문에 전족을 한 여성은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여성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이 악습은 왜 오랫동안 지속됐던 걸까. 여성을 교육할 목적으로 쓴 <여아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어째서 발을 싸매는가? 활처럼 구부러진 모양이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쉽게 출입하지 못하도록 수없이 싸매어 구속하려는 것이다.”

원나라 사람 이세진이 쓴 <랑환기>에도 “듣자하니 여자가 가볍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 발을 싸매어 거주하는 규방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나갈 일이 있어도 장막을 친 가마를 타야 하므로 발을 쓸 필요가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전족은 여성들의 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규방에 가두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실시된 것이다.


스스로 자물쇠를 풀었지만…

이처럼 가부장제는 집요하게 ‘밖에 나다니는 여자는 창녀’라고 세뇌하며 갖은 방법으로 여성의 신체를 집 안에 매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가부장제의 손길을 뿌리치고, 용감히 집 밖으로 나간 여성들은 늘 있었다. 미국의 화가 메리 커샛(1844~1926)도 그중 하나였다. 11살 때 커샛은 파리국제박람회에서 본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일찌감치 화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커샛은 집 밖으로 걸어 나오기까지 험난했던 과정을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여자아이의 첫 번째 의무는 예쁘게 행동하는 것이었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예쁘지 않은 행동을 하면 금방 알아차리곤 한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 아버지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다.”


“유럽 가느니 네가 죽는 게 낫다”
아버지 반대 무릅쓴 미국화가 커샛
마차 운전하는 여성 그림 통해서
삶 능숙하게 운전하는 자신 투영
지금 길거리 여성한테 편한 곳일까


아버지는 “멜로드라마에서 타락하거나 명예롭지 못한 결혼을 한 여자에게 쓰는 말”들을 써가며 “유럽에 혼자 가서 미술 공부를 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네가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라고 딸에게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커샛은 “어쨌든, 나에게 프랑스를 달라”고 선언하며 1872년에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또한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비혼으로 살았다. 보통 여성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집안의 문지기 역할은 아버지와 남편이 맡는다. 커샛은 아버지를 거스름으로써, 또 비혼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자물쇠를 풀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랬던 그녀였기에, 19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운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를 그릴 수 있었으리라. 지붕이 없는 2인용 마차 운전석에 여성이 앉아 있다. 마부는 이 여성에게 고삐를 양보하고 뒤로 돌아앉은 모습이다. 채찍을 들고 고삐를 팽팽하게 당긴 채 마차를 몰고 있는 이 여성은 메리 커샛의 언니 리디아. 무거운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고, 폭 넓은 스커트 차림이긴 하지만 이 모든 방해를 뚫고 당당하게 운전에 몰두하고 있다.


커샛은 리디아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 같다. 실제 커샛은 마차 운전에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갓 개발된 자동차 운전에도 뛰어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커샛은 리디아 옆에서 팔걸이에 손을 댄 채 차분히 앞을 응시하는 소녀도 일부러 그려 넣었다. 아마 여성도 거리에 나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후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 자신이 인생의 운전대를 남성에게 넘겨주는 일 없이, 자신의 삶을 능숙하게 운전한 당사자였으니 말이다.


메리 커샛, &lt;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gt;, 1881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메리 커샛,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 1881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요즘 거리에는 커샛의 후예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적 장벽은 없다. 하지만 남성들만큼 여성들에게 길거리는 편안한 공간일까. 여성들이 남성만큼 한적한 둘레길을 안심하고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성들이 모임을 마친 다음 서로의 귀갓길을 염려하며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라고 인사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운전하는 여성은 종종 남성들로부터 ‘김여사’, ‘솥뚜껑이나 운전하라’고 조롱받는다는 것을 들었는가.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캣콜링’을 당하기도 한다. 캣콜링은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향해 휘파람 소리를 내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모든 게 거리가 여전히 남성이 주도하는 공간이며, 여성인 당신은 지금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가부장 사회의 신호인 셈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된장녀’에 대한 비난과 조롱, 그리고 ‘개똥녀’를 비롯하여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마녀사냥은 여성은 도로나 카페 혹은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한다”라고 적었다. 김현경에 따르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고, 그 자리를 주는 행위가 바로 ‘환대’다. 과연 여성들은 거리에서 ‘환대’받고 있는가. 아니 그 전에 남성과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는가.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3주에 한번 다룬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9079.html?_fr=mt1#csidx8d459a609086dad868353620186bbb3 


13일, 이스라엘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임상훈의 글로벌 리포트] 세계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

21.06.12 19:29최종 업데이트 21.06.12 19:30
이 땅은 나의 것, 하나님이 내게 주셨네<br style="box-sizing: inherit;" />깊은 역사의 멋진 이 땅을<br style="box-sizing: inherit;" />아침 해가 언덕과 평원을 비추니<br style="box-sizing: inherit;" />난 마침내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땅을 보노라

긴 투쟁 끝에 얻은 자의 벅찬 가슴이 느껴진다. 이 감성을 중후함과 미성을 동시에 지닌 가수 팻 분(Pat Boone)의 목소리에 얹으니 세기적 명곡이 탄생했다. 영화 <영광의 탈출(Exodus)>의 주제곡으로 쓰인 '이 땅은 나의 것(This Land Is Mine)'의 앞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41년 동안 주말 저녁 영화광들을 잠 못 들게 한 티브이 프로그램 <주말의 명화> 주제곡으로 쓰였다.
 

▲ 영화 <엑소더스>(영광의 탈출, 1960) 포스터 ⓒ 오토 프레밍거

 
아마도 30대 이상의 한국 사람이면 이 곡을 모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영화 <영광의 탈출>을 끝까지 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려 3시간 28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도 대단하지만 대부분의 극적인 장면은 영화의 전반부에 모여 있다. 이 영화 관계자들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뒷부분 2시간 정도는 관객에 따라 지루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관리하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몰려온다.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키프로스 섬에 집단 수용소를 설치한 후 모여드는 유대인들을 그 곳으로 이끈다. 수만리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온 유대인들은 정작 팔레스타인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수용소에서 하염없는 시간을 보낸다. 이때 나타난 주인공 아리 벤 캐이넌(Ari Ben Canaan)은 유대인들을 탈출시켜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끈다.

이 영화의 원작인 같은 제목(Exodus)의 레온 유리스(Leon Uris) 소설처럼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그린다. 역사적 사실 또한 영화나 소설 못지않게 극적이다. 그러니 위 노래의 가사가 이스라엘인들에게 특히 각별하지 않겠는가. 애국심과 공동체 정신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에 경의를 표할 만하다. 다만 한 국가의 건국이 예술의 소재만이 아니라 역사의 일부분이라면, 건국이라는 사실관계는 역사 자체에 대한 인식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역사관에 따라 진실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은 누구 것?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역사학자 카(Edward Carr)의 말이 있지만, 동시대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균형 잡힌 인식을 함께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복수의 사실관계 주장도 인정해야 한다. 나(또는 우리)의 진실만큼 그(또는 그들)의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진실들은 상호 모순되기도 한다. 그래서 진실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유대인들의 민족정신을 높이 살 만하지만 '이 땅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한 보증이 '신이 주셨기 때문'만이라면 곤란하다. 왜냐면 그 땅을 거쳐 간, 또는 지금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른 민족들도 똑같이 그 땅을 '신이 주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상대로 이중 계약이라도 한 걸까?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 위키커먼스

 
천상의 세계 또는 예술의 세계라면 모를까 세속적 현실에서는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국제문제에서는 국제법이나 국제관계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도 신과 함께 살기 원한다면 철학을, 인간과 더불어 살기 원한다면 수사학을 가르치라는 금언을 새겼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이 점유하고 있거나 팔레스타인이 점유하고 있거나 혹은 두 정치세력이 분쟁 중에 있는 팔레스타인 지방은 역사 속에서도 가나안,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그리스, 로마, 아랍, 오스만, 영국 등 수많은 세력들이 점유해 왔다. 물론 역사 속의 모든 점유 세력 또는 그들의 후예(있다고 가정하면)들이 모두 해당 지역의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토의 점유권 인정을 위한 합의된 보편적 국제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점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통상 중요하게 고려되는 세 요소는 분쟁자들 가운데 누가 더 먼저 점유를 시작했느냐, 누가 더 긴 시간 지배했느냐, 그리고 현재 누가 점유하고 있느냐다. 보통 실효적 지배라고 부르는 조건의 요소들이다. 그 조건을 통해 현재 점유권 다툼을 벌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보면 둘의 입장이 비슷하다. 실효적 지배 조건으로도 쉽지 않은 문제임은 분명하다.

비교적 근래의 역사만 놓고 봐도 쉽지 않다. 13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이 지역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연히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은 피지배자 입장이었고, 그나마 다수의 유대인들은 해외를 떠돌았다. 이스라엘은 오스만 지배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해당 지역의 땅을 구매해 왔다며 이를 점유 정당성의 하나로 삼지만 법적 효력은 미약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줄곧 살아왔다.

사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체성을 말하자면 유대인과의 관계가 애매한 점도 있다. 다수가 무슬림이고 기독교와 유대교를 실천하는 이들은 소수지만 생물학적으로 이들은 아랍인보다 유대인에 가깝다. 이들의 변별적 정체성을 위해 인종적 구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수천 년에 걸친 유대인과의 지역 라이벌 관계가 19세기 이후 전 세계에 들불처럼 번진 민족국가(Nation-State) 이념과 함께 고착화된 결과의 피해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중동 분쟁을 낳은 영국의 사기 계약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을 상대하는 영국은 제국의 피지배자들을 이용해 전 방위적 전선을 펴는 전략을 구사한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들을 일제히 봉기하도록 한 것이다. 치밀하고 기발한 아이디어 같지만 실상은 허술하고 치명적 오류를 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전략이었다.

영국은 오스만제국이 패망하면 이 지역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아랍세계와 밀약을 한다(맥마흔 각서, 1915~16).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프랑스와 만나 지도 위에 줄을 그어가며 전후 함께 나눠먹을 파이를 협상한다(사이크스-피코 협정, 1916). 그리고 이듬해 유대인들에게 역시 같은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벨푸어선언, 1917).

이 일련의 사기 계약의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중동 분쟁 문제들이다.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이번에는 인간계에서 확실한 이중 계약 사기를 당한 셈이다.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에 분노하는 아랍 세계는 영국에 따지는 대신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수적 열세인 이스라엘은 그러나 미국의 전폭적 지지와 지원을 등에 업고 첨단무기를 갖춰 수차례의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을 물리친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 건국은 기정사실화됐고 어느 국가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한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서안지구로 내몰렸다. 그나마 이마저도 점점 위태로워졌다. 2000년대 들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 극단화되어가는 정치지형에 대화와 타협의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사이 언젠가 있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자 이스라엘 정부는 쉴 새 없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간다.
  

▲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서 6월 4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에 폐허로 변한 주택가에 임시로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가자지구는 많은 주택과 건물은 물론 전력과 상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마저 망가져 재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연합뉴스

 
인구, 영토, 경제, 군사력, 외교력 등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열세에 있는 팔레스타인은 종말의 위기감 속에서 역시 극단적 저항에만 절망적으로 의지한다. 끝 모를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집권 속에서 팔레스타인 역시 평화적 협상의 희망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국제사회는 '양측의 자제'만 점잖게 타이르는 중이다. 청년과 유년이 싸우는 것을 지나가다 발견한 성인이 양측의 자제를 당부하고 서있는 게 적절할까?

그러던 이 지역에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 하나 생겼다. 내각제 체제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최근 2년째 과반 의석 연정에 실패하던 중 드디어 '반 네타냐후'를 내건 8개의 야당이 과반 의석의 연정 구상에 합의한 것. 만약 이들의 구상이 의회의 승인을 얻게 되면 12년 연속 (지금까지 모든 임기를 합하면 15년) 집권 중인 네타냐후 총리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개인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그로서는 자택이 아닌 '더 큰 집'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변화 조짐, 지푸라기 같은 희망

오는 13일 이스라엘은 새로운 연정 구성을 승인하는 의회 투표를 하게 된다. 과연 새 정부 구성은 가능하며,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은 변할 것인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지만 승인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총리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개인 비리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남은 변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연정 구성 세력의 정치적 폭이 너무 넓다는 것. 이들 가운데에는 보수 정당도 포함돼 있고, 네타냐후에 반감이 없는 국회의원들도 있다. 과연 이들 가운데 반란세력이 얼마만큼 나오느냐에 새 정부 구성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 네타냐후 총리도 새 연정을 대국민 사기라고 비난하면서 '의원 빼오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만약 새 정부 구성이 실패한다면 최대 의석 정당인 리쿠드당의 네타냐후 현 총리가 다시 과반 확보를 위한 교섭 주도권을 쥐게 된다.
 

▲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연합뉴스

 
새 정부 구성 가능성 못지않게 만약 구성이 된다면 얼마나 이스라엘 대외 정책이, 특히 팔레스타인과의 관계가 달라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새 연정 파트너들의 정치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지난 3월 23일 총선 결과 리쿠드(30석)에 이어 제2당이 된 예시 아티드(17석)를 비롯 중도로 분류될 수 있는 의원 수가 23명 정도다. 이들은 주로 팔레스타인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건국부터 29년간 7명의 총리를 연거푸 배출하며 장기집권을 하던 노동당은 현재 7석을 보유한 채 과거의 영광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6석의 다른 진보정당 메레츠(Meretz)와 함께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개의 별도 독립국가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좌우 스펙트럼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4석을 보유한 아랍연합명부(United Arab List)도 이번 연정에 참여했다.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들, 그리고 남부의 베두인(Bedouin)족의 권익을 주장한다.

이번 연정의 결정적 승부수는 3개의 보수정당 야미나(Yamina, 7석), 이스라엘 베이테누(Israel Beytenou 이스라엘은 우리의 집, 7석), 새희망(Tikva Hadasha, 6석)의 합류다. 보수주의 노선인 이들 3개 정당 중에는 한때 현 집권세력 리쿠드와 연정을 꾸린 세력도 있지만 이번엔 반 네타냐후 전선에 합류했다. '새희망'은 중도에 가까운 우파세력이지만 '야미나'의 경우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이 지역 전체를 이스라엘 영토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정당이다. 이들은 네타냐후를 거부하고 새 정부를 꾸리겠다는 공동 목표 외에 다른 연정파트너들과 접점을 찾기 어렵다.

이 이유 때문에 연정이 구성된다 해도 조기 붕괴될 것으로 예상하는 목소리도 많다. 13일 국회에서 새 정부 승인이 결정되면 4년 임기 가운데 전반기 2년은 보수 정당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 대표가, 그리고 후반기 2년은 중도 정당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 대표가 총리를 맡게 된다.

과연 이들은 연정 구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구성한다면 안정적 집권과 변화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에 더 회의적 전망과 불안감이 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평화는 물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끊어진 혈맥’ 잇는 6.15민족선언 발표

 박한균 기자 | 기사입력 2021/06/13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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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전진(준)은 12일 오후 5시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6.15민족선언대회’를 열었다.  © 박한균 기자

 

▲ 박준의 촛불전진 준비위원장(왼쪽)과 김지영 민주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위원장이 6.15민족선언을 낭독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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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모습. 2018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도로연결 작업 중 남북한 장병이 만나 악수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 ‘백두, 한라의 물’을 서로에게 부어 분단의 아픔을 씻어내고 있다.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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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DMZ) 7km 남쪽 파주 임진각 망배단 앞, ‘홀로 아리랑’ 노래가 울려 퍼지고 남북한 군인이 웃으며 서로 악수를 한다. 둘은 ‘백두, 한라의 물’을 서로에게 부어 분단의 아픔을 씻어낸다. 끊어진 혈맥을 잇듯 다시 손을 움켜쥐고, 기쁨의 포옹을 한다.”

 

촛불전진(준)은 12일 오후 5시 임진각 망배단 앞 ‘6.15민족선언대회’에서 2018년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도로연결 작업 중 남북한 장병이 만나 악수한 그 때의 감동을 재현했다.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중 서로에게 물을 부어 얼굴을 씻는 장면에 한 참가자는 눈물을 흘렸다.

 

대회에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현장, 줌(ZOOM)으로 참가했으며, 대회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화상 참가자들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독도 지키기, 남북공동훈련 실시,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철도 연결’ 등의 팻말을 든 카드섹션 상징의식으로 ‘6.15민족선언’ 발표를 축하했다. 

 

이날 김지영 민주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위원장과 박준의 촛불전진 준비위원장이 대표로 낭독한 6.15민족선언에는 “한국 정부는 8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대용단을 내려야 하며, 그러면 남북 양측이 독도 지키기 남북공동훈련,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철도 즉시 연결을 위해 9월 중으로 고위급 회담을 열자. 그리고 고위급회담에 성과에 기초해 정상회담을 바로 추진하자. 우리는 남과 북이 힘과 지혜, 용기를 합쳐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평화 번영 통일의 대로를 활짝 열어나갈 것을 절절히 호소한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권오민 강북노동권리찾기모임 대표는 “6월 12일 현재 2,000여 명의 사람들과 200여 개의 단체가 6.15민족선언에 함께 하고 있다”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6월에 용단을 내릴 수 있도록 더 큰 결단을 촉구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평화, 번영,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라는 말로 대회의 의의를 전했다.

 

정연진 AOK한국 상임대표는 “촛불의 힘을 전진시켜서 분단의 장벽을 넘어가고자 하는 오늘, ‘그냥 선언은 선언일 뿐이다’는 선언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나가자”라고 전했다.

 

조천호 대동세상연구회 부회장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고 없이 평양 순안공항에 직접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비행기 트랩 바로 앞에서 영접하여 두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38선을 넘어가는 모습도 잊을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평양 시민 15만 명에게 육성 연설한 것은 아마 평생 영원히 잊지 못할 장면일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평화가 경제다는 말처럼 DMZ에 개성공단만 한 거 10개 만들어 청년 실업문제 해결하는 거다”라며 “남과 북이 함께 누리는 대동세상, 더불어 사는 대동세상, 평화통일 대동세상을 만들어 가자”라고 말했다.

 

김영학 대학생도 “한미연합훈련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훈련으로 꼽혀왔다. 평화와 번영을 논의했던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해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군사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를 떨쳐내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방해에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한반도 민족자주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역사적인 선언을 조속히 이행해 한반도 통일은 당사자인 남과 북 한민족의 힘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대회에서는 6.15민족선언을 지지하는 단체와 인사의 목소리가 영상과 발언, 공연으로 소개되었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빛나는 청춘’도 ‘달려가자 미래로’ 춤 공연과 ‘통일이 오면’, ‘통일할래요’, ‘철망앞에서’ 노래공연으로 선언 발표를 축하했다.

 

한편 촛불전진(준)은 ‘6.15민족선언’에 모인 국민들의 뜻을 전달하고 정부의 용단을 호소하기 위해 6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6월 15일 오전 10시로 면담 제안) 면담 요청은 등기 우편, 이메일과 팩스, 온라인 민원 신청의 방법으로 이뤄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도 면담 요청서를 보냈다.

 

촛불전진(준)은 ‘6.15민족선언’ 연명 운동은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고 남북대화가 재개될 때까지 해 내외로 더욱 확대해서 전민족적 운동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권오민 강북노동권리찾기모임 대표.  © 박한균 기자

 

▲ 정연진 AOK한국 상임대표.  © 박한균 기자

 

▲ 조천호 대동세상연구회 부회장.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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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회 참가자들이 ‘6.15민족선언’ 발표를 축하하고 있다.   © 박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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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경험과 상상’의 공연 모습.     ©박한균 기자

 

© 박한균 기자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빛나는 청춘’이 ‘달려가자 미래로’ 춤 공연을 펼치고 있다.     ©박한균 기자

 

▲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예술단 ‘빛나는 청춘’의 ‘통일이 오면’, ‘통일할래요’, ‘철망앞에서’ 노래공연 모습.     ©박한균 기자


다음은 6.15민족선언 전문이다.

 


 

8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6.15민족선언

 

2018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온 겨레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드디어 전쟁과 대결, 분단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번영통일의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라는 환희가 넘쳐났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남북관계는 단절되었고 교착상태가 지속되어 지금은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에 놓여 있다. 외부 환경도 복잡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나라들 사이에 대립이 커지고 긴장이 높아가고 있으며, 어느 나라도 우리 민족의 운명과 장래를 진정으로 걱정하고 도와주지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할 때다. 남북이 결단하고 손을 잡으면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남북 정상은 온 겨레의 뜨거운 열망에 기초해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평화번영통일을 향해 나아가자고 약속했다. 그 선언은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 민족의 평화와 안전, 번영은 과거 냉전시대의 낡은 틀과 관행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구태의연한 상호 적대정책에 기초한 한미연합훈련은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과 대결을 조장하고 위험천만한 전쟁위기를 불러오는 한반도 안보의 재앙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남북이 신뢰에 기초해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면 우리 민족의 앞에는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또한 우리는 민족우선, 국익우선의 당당한 외교를 통해 동북아와 세계를 선도하는 민족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우리는 전민족의 염원을 담아 남북 정부에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한국 정부는 8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대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면 남북 양측이 <독도지키기 남북공동훈련>,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철도 즉시 연결>을 위해 9월 중으로 고위급회담을 열자. 그리고 고위급회담의 성과에 기초해 정상회담을 바로 추진하자. 

 

우리는 남과 북이 힘과 지혜, 용기를 합쳐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평화번영통일의 대로를 활짝 열어갈 것을 절절히 호소한다.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과 장애를 돌파하고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판문점선언으로 희망 가득했던 4월의 봄을, 이제 2021년 새로운 전진의 가을로 이어가자.

오랜 분단의 굴레를 과감하게 걷어내고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를 기어이 현실로 만들어내자.

 

2021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