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6일 수요일

7.4 공동성명과 유신독재! 박그네-김정은 시나리오의 종착역?


전쟁공포와 극적합의의 불길한 데자뷰
조시형 | 2015-08-27 09:21:2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7.4 공동성명과 유신독재! 박그네-김정은 시나리오의 종착역?
-전쟁공포와 극적합의의 불길한 데자뷰!        

pro-데자뷰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은 반년에 걸친 비밀 회담을 통해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7.4남북공동성명’이 그것이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따라 통일을 실현해가자는 획기적인 발표였다.
7.4성명은 이 밖에도 상호 중상비방과 무력도발의 금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 실시 등에 합의하고 이러한 합의사항의 추진과 남북 사이의 문제 해결, 그리고 통일문제의 해결을 목적으로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ㆍ운영하기로 하였다. 또 전쟁발발을 방지하기 위한 남북직통전화도 가설하였다.
더욱이 남북 간의 전면전 위기로 몰고 갔던 1968년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한 김일성의 사과도 이후락을 통해 전해졌다. 그날 한반도의 온 겨레는 춤을 추며 기뻐했고 이산가족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7.4성명에는 남북의 두 분단권력이 정치적 비밀접촉을 통해 내면적으로는 한반도의 분단을 현실화하고 두 개의 조국을 전착시키려는 속셈이 숨어 있었다. 즉 남북의 독재권력들은 강대국의 전략인 ‘두 개의 한국’에 편승하여 그들의 불안한 독재체제를 안정시켜나가려 하였다. 그 결과 남한의 독재자 박정희와 북조선의 독재자 김일성이 각각 일인통치체제를 서로 인정하는 유신헌법(1972.10.17)과 사회주의헌법(1972.10.27)을 공포하였다.
유신헌법과 사회주의헌법은 각각 남북에서 박정희 독재권력 기반과 김일성 1인 통치체제를 강화하면서 전혀 이질적인 두 체제를 정착시켜 나가는 기틀이 되었다. 이것은 7·4 공동 성명이 밝힌 "이념·사상·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 하는 일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 후로 박정희 사후 전두환 지배 20년 동안 남한 민중은 독재의 철권통치로 고통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광주학살이 대표적이다.
7.4공동성명발표 만 42년 후 그 독재자들의 2세와 3세가 휴전선 접경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을 빌미로 전면전 공포를 불러일으키다 극적 타협을 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합의안을 발표했다. 그 합의안엔 묘한 유감이 들어있어서 72년 이후락이 들었다는 김일성의 구두사과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과연 진짜 사과인가? 2015년 8월25일이었다. 이후 역사는 어찌 굴러갈 것인가? 반복될 것인가? 반전을 불러올 건가?

1.지배세력의 두 가지 통치술과 그 효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민주적인 권력자가 써먹는 대표적 통치술로 두 가지가 있다. 첫째가 디바이드 & 룰이라고 하는 분열지배전략이 하나요. 둘째가 공포감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적대세력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엔 익숙한 영호남 지역주의가 전자의 대표라면 후자로는 전쟁공포를 자극하는 반공반북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영호남 대립으로 대표되는 지역주의가 권력집단에 대한 대중들의 합리적 비판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남북대립의 격화는 대중들을 전쟁공포로 스톡홀름의 포로로 만들어 가장 원초적인 생존본능을 자극하여 이성적 판단자체를 막는다.
이번에 남과 북의 권력자들은 도발응징과 전면전 불사라는 위험한 수사로 한반도 거주민들의 전쟁공포심을 무던히도 자극하려했다. 여기엔 남북 모두 사실상 관영화된 나팔수 언론매체들이 총대를 메고 앞장섰다. 그래서 남북 모두 가공의 허구를 진실인양 각자의 백성들에 주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지적하자면 전쟁이 곧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를 과장했고 그 위기의 원인이 모두 상대방의 선제도발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과연 그러한가?

2. 한반도에서 전쟁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문서로 약속했다. 즉 남북한 모두 핵무기와 핵시설을 폐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명박 집권 시기 부시의 미국에 의해서 사실상 9.19 코뮤니케는 파기되었다. 대중국견제의 유력한 무기를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북도 이를 핵 보유확대 기회로 활용했다. 현 단계 미국은 북의 핵 확산방지를 막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이란과의 핵협상타결에서 추론 가능한 것이 북도 핵 확산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더 이상 북과 미국의 의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북미수교와 평화협정도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실상 북은 핵보유국으로서 상호확증파괴이론에 따라 미국의 전쟁대상국이 아닌 것이다. 또한 북도 미국과 남한에 무력도발을 할 수 없다. 남한도 사실상 이미 오래전에 핵무장 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세는 장기교착국면에 빠져들었다.
이런 구조 하에서 미국은 오바마 정부에서 북에 대한 의도적 무시전략으로 일관했고 북은 공언(?)해왔던 세계패권 판가리 전쟁을 위한 선군노선에서(원래부터 빈말이었는지 모르지만) 대내경제 병행발전에 무게를 두어왔다.
진정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조실현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던 김대중-노무현의 노선은 사실상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공히 폐기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핵무장 상황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물론 연평도해전 이상의 교전도 불가능하게 하는 안전판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 정말 중요한 사실은 미국과 북한은 물론 주변 러, 중, 일은 물론 남한의 정치세력 모두가 다 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남과 북의 불쌍한 백성들만 이를 모르고 전쟁공포의 포로가 되어 집단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회적 불만도 남은 북에게 북은 남에게 전가하며 효과적으로 대중적 반발을 누르고 있는 것이다.
전방에서 출처미상의 무인기와 지뢰가 간헐적으로 터지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요것이 아직은 쓸 만한 것 같다.

3. 8월4일 터진 전방의 지뢰는 누구의 작품인가?
세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고의매설이라면 북한 혹은 남한의 작품. 유실된 거라면 미군의 발목 지뢰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괴이한 것이 남과 북 모두 이 문제의 진상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어떠한 타당한 근거도 없이 남은 북이 주체라 하고 북은 남한의 일방적 강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 시비를 가리기 위해 우선 논란이 되고 있는 합의문 제2항을 보자.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어디에도 북이 지뢰폭발의 주체라는 근거로 해석할 표현이 없다. 북으로 돌아가서 평양에서 황병서가 주장한 대로 이 문구만 가지고 북한이 지뢰폭발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는 남측의 주장은 황당하다 못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외교적 관례로 유감이 곧 사과라고? 억지춘향의 방자 같은 궤변이다.
그러나 내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천안함 사건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북한의 대응태도에 있다. 그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북한 소행 발표에 대해 북은 이를 절대적으로 부인하면서 진상을 검증할 공동조사 요구했었다. 현재까지도 그것이 북의 공식적 입장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저 내부선전을 목적으로 한 북한방송에서 남한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할 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부인의 표현이 없다. 왜일까? 둘 중 하나다. 북의 소행이거나 무언가 남측으로부터 반대급부를 받았거나. 나는 판단했다. 여러분도 골라보라.

4. 과연 합의안 제2항외에 나머지 조항들은 준수될까?
살펴보자.
1. 북과 남은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평양 또는 서울에서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나가기로 하였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군인들이 부상 을 당한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3.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산생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일대에서 모든 확성기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한다.
4. 북측은 동시에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
5. 북과 남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9월초에 가지기로 하였다.
6. 북과 남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우선 단기적인 3항과 4항은 2항을 매개로 당일 준수 집행되었다. 5항도 비교적 단기과제로 실현 가능성이 높다. 6항 역시 스포츠와 문화, 학술단체 교류로 한정해서 보면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1항의 총론적 성격의 남북 간의 장기적 관계개선이 실천될 것인가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다시 6항에서 도출되는 5.24조치의 해제가 실현되어 막힌 금강산 루트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구심은 연유가 있다. 막연한 민족적 기대감만으론 남북이 그동안 너무나 많은 합의를 불이행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남한만이 아니라 북도 그랬다. 6.15공동선언에서 김대중과 합의한 김정일의 남한 답방 불이행이 대표적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에 가져올 엄청난 긍정적 역사적 파장을 상상해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실기였다. 부시와 이명박의 반동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현실이 처참하다.
그러므로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이 각축하는 동북아 정세의 구조를 정확히 봐야 한다. 이를 통해서 얻은 논리적 귀결에 대해서 현재 남북의 집권세력의 진정성을 내재적 관점으로 또 한 번 검증해 봐야 한다. 과연 박그네와 김정은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5. 동북아 정세구조를 변화시키는 어떤 추동력이 발생했는가?
소련해체 이후 이 지역 정세의 주체이자 상수(常數)는 미국과 중국이다. 러시아와 북한은 독립변수고 남한과 일본은 2차 대전 이래로 종속변수다. 이 지역은 인구와 생산력, 교역규모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이에 미국은 아시아 회기전략으로 일본을 앞세워 한국을 추동하여 반차이나 전선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에서 나토의 팽창에 맞서고 있는 러시아는 중국과 북한을 동북아의 우군으로 편성 중에 있다.
최근에 이러한 틀을 흔드는 어떠한 동력도 요소도 새로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공포의 핵 균형이 보증하는 상호확증파괴를 타파할 새로운 비대칭 전력의 출현도 없었고 각 상수 국에서 내란에 준하는 소요나 경제파국도 없었다는 거다. 오히려 미-중은 서로 대립갈등하면서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두 기둥으로 한동안 외교와 군사적 포석 전을 넘어서는 충돌은 불가능하다. 중국의 대국굴기는 아직 요원하다.
위에서 언급한 북미 간의 대결을 살펴봐도 세계적 차원의 G2 경쟁의 하위체계에 자리 잡고 있다. 소수 북한 절대 무력론자들이 갈망하는 북의 패권적 상수로의 등극은 신년사와 다종의 공식적 문서에서 북이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북미 간에는 수년째 결정적 충돌을 상호회피하고 현상유지가 지속되는 정체국면이다. 이번에 북의 전면전 엄포 이후 노출된 북의 전력도 지상과 해상에서 발사되는 핵미사일이 최대치였다. 결론적으로 동북아 정세구조를 전변시킬 극강의 무기는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불능이다.
남는 것은 여전히 김대중-김정일-노무현이 추구한 상호공존의 평화적 연방제 방안이다. 그러나 이 역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이 추인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차기대선에서 새로운 인물과 노선의 출현으로 현실화 될 가능성은 물론 있다.

6. 과연 박그네와 김정은을 믿을 수 있는가?
국제정세구조의 변화에서 나오는 상수국가의 전략적 원칙이 변한 게 아니라면 남북의 협상은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즉 합의안 1번의 총론인 남북관계 개선의 질적 수준은 결코 국가통합의 수준으로 나아갈 수 없다.
김대중-김정일이 합의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도 미국과 한국의 수구세력은 받아드릴 수 없었다. 하물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친일친미의 정체가 뿌리박힌 박그네가 미국과 국내 수구세력의 동의가 없는 수준의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하다. 냉엄한 현실이다. 지금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상해 임정을 부정하는 건국절 운운하는 친일의 총수가 항일무장빨치산의 정통성을 자랑하는 세력과 손잡는다고? 박근령이 진솔하다. “천황폐하께 누가되는 신사참배와 위안부 문제는 접어야한다.” 박그네의 생각이 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누누이 주장했듯이 이명박그네 연속정권은 다까기마사오의 후예다. 오히려 지난 2년 반 동안 부정을 더 큰 비리로 덮고 의혹을 더 큰 사건으로 묻어왔던 이 정권의 전력으로 볼 때 이번 전쟁몰이와 연속된 극적 합의는 국내용 기획 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 쇼의 막은 내년 총선 직후에 내려질 확률이 높다.
김정은을 믿을 수 있는가? 보편적 인권의 원칙으로 자리 잡은 인신구속절차를 무시하고 단 한 번의 변론기회도 주지 않고 매부를 공식 총살한 철권통치자다. 심지어 2인자 황병서조차 그 앞에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입을 가리고 말을 하더라. 사회주의 지도자의 전범으로 높이 평가되는 호지명은 그 앞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들어 대화가 중단 되도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옮겼다한다. 그래서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호’아저씨라고 애모한다. 카스트로나 체게바라 심지어 악명 높은 차우스세크도 동료와 인민들에 친절했다. 무릇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민본과 위민을 체화해야 하는데 김정은에게서 그런 인격의 풍모를 찾지 못하겠다.
박그네와 김정은 둘 다 봉건왕조체제의 공주와 태자로 살아왔다. 그들에게 제왕의 통치행위 이상의 것을 보지 못했다. 지시와 명령, 복종과 집행 이상의 합리적 의사소통 가능성을 기대하지 못하겠다. 박그네 2년8개월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온몸으로 겪었다. 김정은 4년 동안 북의 인민들은 과연 무엇을 겪었을까? 탈북자들의 증언은 전부 배신자들의 거짓말일까?
그래서다. 이번 지뢰폭파 사건으로 남북의 수장들이 민족과 강토를 두고 저지른 전쟁 놀음의 저의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지뢰도발의 원인도 주체도, 주고받은 포사격의 진상도 밝히지 않은 채 전쟁의 위기를 원칙과 신념으로 자기가 막아냈다고 서로 강변하는 이 낯익은 그림이 스멀스멀 구토가 나려한다. 이 땅의 모든 언론은 남과 북 공히 분단 독재자들의 대변으로 전락했다. 구린내가 날 지경이다.
소규모 국지전도 전면전으로 비화하고 그럼 공멸이라는 걸 그래서 전쟁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을 잘 아는 자들이 전쟁 놀음으로 공포를 조장하여 진실을 감추고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epi
만일 당신이 이번 남북 간 합의에 대해 마냥 기뻐하며 우리가 이겼다고 좋다고 한다면 십중팔구 당신은 잘 길들여진 臣民이다. 승자가 혹시나 남이 아니라 북이라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당신은 10대 미만이거나 60대 고령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 터무니없는 상황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환호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당장의 불벼락을 피했으니 안도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수 있는 건 자연스럽다. 근데 하루 정도가 지난 지금쯤엔 뭔가 좀 찜찜한 느낌이 들어야 정상적인 뇌기능을 가진 사람이다.
더 나아가 진짜 불쌍한 사람들은 남북에 흩어져 서로의 체제를 부정적으로 보던 사람들이다. 전쟁몰이에 휘말려서는 공포에 휩싸여 서로 증오하다가 이제 다시 협상이 타결되니 그렇게 비판하던 권력자를 칭송하고 있다. 흉악범의 인질이 된 자들이 보여주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전형적 증세다. 인질범에 대한 호의와 감사, 복종의 심리에 포섭되어 자발적으로 협조한다는 그 정신 병리적 현상을 여기저기서 목격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그토록 분노했던 부정선거도, 세월호 참사도, 국정원의 온갖 의혹들도 망각하고 불확실한 장밋빛 미래로 환상여행 중이다. 나는 그것이 심히 유감이다.
그래서 남북의 지배자들은 간헐적으로 전쟁공포를 축포처럼 터뜨려왔나 보다. 그들은 심하게 싸우는 것 같지만 아주 유사한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따라 절실히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 그립다.

[진실의길. 기고 글&기사제보 dolce4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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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삽질하기 전, 모래섬은 눈부셨다




독자들의 성원으로 '김종술 투명카약 선물하기' 프로젝트 목표액이 달성됐지만 모금은 계속합니다. 31일까지 모인 후원금은 김종술 기자의 4대강 취재비로 전달합니다. 김종술 기자가 낙동강을 지키는 정수근 기자에게 카약을 선물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투명 카약 2대'로 진화했습니다. 두 기자는 8월 24일부터 2박 3일 동안 낙동강을 취재했습니다. 이 기사로 현장 탐사 취재 보도를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과 대안 기획 기사는 계속됩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 공동 프로젝트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절벽 위에 서니 숨이 탁 멈췄다. 시야가 확 트였다.

"아, 이게 강이다."

입 밖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흐름을 멈춘 침묵의 강, 녹조가 끼고 큰빗이끼벌레가 우글거리던 그간의 낙동강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강의 아랫물과 윗물이 마구 섞여 뒹굴면서 산소를 물속에 주입하는 은빛 여울, 금빛 모래톱 위에 선 풀들은 싱싱했다.

심지어 아래쪽 물속 모래도 훤히 내비쳤다. 삼강 주막에서 내려온 낙동강 물이 휘돌아가는 곳이다. MB의 삽질이 가해졌던 곳이다. 상처 난 낙동강에 새살이 돋는 곳이다.

수장된 경천대 비경, 사라진 백사장... MB가 한 일이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이 공동기획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지난 26일 오후 낙동강 상류인 경북 예천군 삼각주막 하류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희훈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이 공동기획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지난 26일 오후 낙동강 상류인 경북 예천군 삼각주막 하류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희훈
지난 26일 오후 낙동강 상류인 경북 예천군 삼강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 권우성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 취재의 마지막 종착지인 삼강 전망대에 선 금강 종술과 낙동 수근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이 비경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예정에도 없던 물놀이를 강행했다.

"우리 투명 카약 내립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4대강 투캅스'는 의기투합했다. 아래쪽에 보이는 경북 문경의 용궁마을로 내려갔다. 거대한 모래톱 한쪽 구석에 자동차를 세우고 국민 성금으로 마련한 투명카약을 내렸다. 노를 저었다. 투명카약 바닥으로 모래가 흐르는 게 훤히 보였다. 카약을 타고 강물 중간에 형성된 얕은 물 속 모래톱 위에 내려서 물장구도 쳤다. 4대강 공사 전에 낙동강에서 흔히 보던 풍경처럼. 그사이 붉은 석양이 강물 위에 떴다. 눈이 부셨다.

4대강 공사 전에 상주 경천대의 모습도 이랬다. 하지만 MB는 상주의 상징이자, 낙동강 제1경이었던 경천대 비경을 수장시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경북 상주시를 알리는 대형 광고판을 볼 수 있다. 이 간판의 배경이 바로 경천대와 앞 회상리 마을이다. 물길이 휘돌아가는 곳에 큼지막한 금빛 백사장이 형성돼 있던 곳이다.

4대강 사업 3년 뒤인 2015년 그곳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은 삼강에 가기 전에 그곳에 들렀다.

백사장은 남아있지 않았다. 물속에 잠겨버렸다. 강물은 힘차게 휘돌아가지 않았다. 상주보로 막혔기 때문이다. 수천 년 쌓이고 쌓인 자연경관이 불과 3년 만에... 하늘이 놀라고 땅을 뒤흔들, '경천동지'할 일이다. 믿기지 않는가? 아래 비교 사진을 보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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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낙동강 제1경'으로 꼽힌다는 경북 상주시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이 4대강사업으로 인해 크게 변했다. (사진 왼쪽) 2009년 9월 최병성 시민기자 촬영.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바닥의 고운 모래가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사진 오른쪽) 2015년 8월 26일 권우성 기자 촬영. 모래밭은 사라졌고, 준설작업으로 강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고, 멀지않은 하류에 상주보를 건설해서 물이 가둬지면서 물이 가득하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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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낙동강 제1경'으로 꼽힌다는 경북 상주시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이 4대강사업으로 인해 크게 변했다. (사진 왼쪽) 2009년 9월 최병성 시민기자 촬영.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바닥의 고운 모래가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사진 오른쪽) 2015년 8월 26일 권우성 기자 촬영. 모래밭은 사라졌고, 준설작업으로 강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고, 멀지않은 하류에 상주보를 건설해서 물이 가둬지면서 물이 가득하다.ⓒ 권우성
지난 26일 오후 경북 상주시 경천대 부근에서 찍은 낙동강의 모습. 4대강사업 이전에 보이던 넓은 모래밭은 모두 사라지고 준설작업으로 인해 깊고 넓어진 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은 5장의 사진을 이어 붙인 파노라마 사진이다. ⓒ 이희훈
그 많던 모래톱이 3년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수박을 먹으며 강 수욕을 즐겼던 사람들도 당연히 사라졌다. 1급수였던 이곳에 요즘은 녹조가 낀단다.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을 맑게 하겠다던 MB가 한 일이다. 녹색 성장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MB가 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영상을 소개한다. 탐사 취재 마지막 날(26일) 오전에 갔던 감천 합수부에서 찍은 영상이다.

상처 회복한 감천 합수부, 낙동강은 위대했다



낙동강은 위대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감천 합수부는 모래가 사라진 상주 경천대와 다른 모습이었다. 감천은 수천 년 동안 자기 몸속에 품어왔던 모래 내장을 낙동강에 부어버렸다. 하늘에서 본 감천 합수부는 물속의 활화산이었다. 용암이 아니라 모래를 뿜어대는... 무인기에서 영상을 찍는 순간에도 모래는 꿈틀거리며, 때론 소용돌이치면서 낙동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자연은 MB가 만든 생채기, 수심 6m를 메워버렸다. 3년 만에 낙동강 본류 4분의 3을... 물만 있던 곳에 은빛 모래섬이 생겼고, 그 위에는 고라니 발자국이 나 있다. 풀이 자랐다. 물속 모래 위에선 송사리 떼들이 놀고 있었다. MB가 삽질하기 전, 1300만 명의 식수원인 낙동강은 원래 이랬었다. 눈부신 감천 모래섬에서 선 '낙동에 살어리랏다' 투명카약 탐사보도팀은 모처럼 강다운 강을 만나 반가웠지만, 한없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게 바로 희망이었다. 5년짜리 권력과 엄청난 자본도 결국 대자연의 놀라운 기억력 앞에서 어쩔 수 없었다. 4대강은 막을 수 없다. 4대강은 쉼 없이 흘러야 한다. 

태풍 맞고 도랑에 빠지고 무인기 추락하고...
[현장 탐사 보도를 마치며] 금강과 낙동강으로 돌아간 '4대강 투캅스'

2박 3일간의 탐사보도는 끝이 났다. '김종술 투명카약 선물하기' 캠페인 후속 기획으로 마련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취재팀은 모두 집에 가지 못하고 경북 문경의 한 모텔에서 새벽까지 기사를 마무리 했다. 사건도 많았다. 첫째 날은 도동서원 앞 녹조밭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MB의 4대강을 고발했지만, 둘째 날은 태풍 고니의 비바람에 제대로 취재를 할 수가 없어서 애를 태웠다. 


마지막 날인 26일 최종 취재 포인트에서는 탐사보도팀이 좌초될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삼강에 투명카약을 띄우려다가 낙동 수근의 차가 도랑에 빠져 뒤집힐 뻔했다.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해는 지는데, 견인차는 안 오고... 투명카약 '뱃놀이'의 마지막 신을 찍고 모래톱으로 귀환하던 무인기가 벼랑 끝 나뭇가지에 걸려 추락했다. 금강 종술이 맨발로 80도 깎아지른 절벽으로 올라가 무인기를 구출했다. 

결국, 무사히 2박 3일간의 탐사보도 일정을 마쳤다. 이로써 '김종술 투명카약 선물하기'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낙동에 살어리랏다' 현장 취재는 끝났다. 김종술 기자는 이제부터 금강을 홀로 걸으며 금강을 지킬 것이다. 정수근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으로서 지역의 환경 지킴이 역할을 하면서 낙동강의 재자연화를 위해 힘쓸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간 현장 취재팀에 보내주신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이후에도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김종술 기자에게 '투명카약' 후원하기 
☞[투명카약①] "밤길 조심해" 협박·폭행당하고... 취재수첩 놓지 않았다 
☞[투명카약②] 국토개조 아닌 '국토개판'... 시궁창이 따로 없습니다
☞[투명카약③] "궁상떨지 말고 계좌번호"...댓글 하나에 쏟아진 '군자금'
☞[투명카약④] "여러분 고맙습니다" MB에 맞설 '비밀병기' 제작 돌입
☞[투명카약⑤] 96년식 봉고 타고 4대강에... MB 고가 자전거보다 낫다
☞[투명카약⑥] MB가 파냈던 모래, 강 스스로 회복했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탐사 기획보도 바로가기
☞<김종술, 금강에 산다> 10만인리포트 연재 기사 바로가기
☞ EBS 하나뿐인 지구 : 금강에 가보셨나요 

[영상으로 보는 최신북한9] 21일 전쟁위기 속의 평양 모습

[영상으로 보는 최신북한9] 21일 전쟁위기 속의 평양 모습
nk투데이 김혜민 기자 
기사입력: 2015/08/27 [02:43]  최종편집: ⓒ 자주시보

 

8월 20일부터 휴전선 일대의 포 사격, 준전시상태 선포 등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높았습니다.

이 때 평양은 어땠을까요?
일본 교도통신이 21일 당시 평양의 거리를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 자막 번역
남북간에 20일 포격을 주고 받았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준전시상태'를 선언하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전선지대에서 떨어진 평양 시내에는 21일에도 시민들이 평소처럼 왕래하고 있으며 '준전시'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판문점 합의의 진짜 주인공은 펜타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박근혜 정부, 유연하게 대처한 진짜 이유


8.25 판문점 합의로 일단 전쟁 위기를 넘겼다. 참 잘 된 일이다. 남북 당국 모두가 진지하게 노력했다.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을 일이다. 판문점-서울과 판문점-평양 사이의 핫라인은 지난 22일과 23일, 그리고 24일 몹시 붐볐을 것이다.

그런데, 서울-판문점-평양만 바빴을까. 미국 발 뉴스는 워싱턴도 덩달아 몹시 바빴음을 알려준다. 물론 워싱턴이 동맹국 남한을 지원하기 위해서만 바빴던 건 아닌 것 같다.

"확실히 그들(북한)은 하와이나 태평양의 미국 시설물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a missile)을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걱정하는 바다."

마크 웰시 미국 공군참모총장이 미국 공군 주간지 <에어 포스 타임즈 Air Force Times>에 말한 내용이다. 기사에서 웰시 총장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걱정하는데, 물론 남한이 아닌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이다.

인터넷 기사가 올라간 시간은 워싱턴 시각으로 8월 24일(월요일) 저녁 9시 16분, 서울 시각 8월 25일(화요일) 아침 10시16분이었다. 9시간 전인 한국 시간 25일(화요일) 새벽 0시 55분, 워싱턴 시간 8월 24일(월요일) 오전 11시 55분에 판문점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미국 군부의 걱정은 남북 합의로 상황이 종료된 이후 아홉 시간 동안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지난주부터 이어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상태, 특히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인공위성과 첩보망을 통해 확인하면서 생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매체 <CNN>의 펜타곤 (미국 국방부) 담당기자 바바라 스타의 기사도 흥미롭다. 기사는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부분적인 병력 동원이 펜타곤을 깜짝 놀라게 했고, 그 결과 미국의 고위 지휘관들은 북한의 전쟁 개시 징후가 있을 경우 남한 방어를 위한 미국의 전쟁 계획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전했다.

기존 전쟁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말은 새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갖고 있는 계획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새 것을 만들려는 욕구가 생긴다. 8월 25일 새벽 1시에 이뤄진 판문점 합의 전에 미국 국방부가 이미 한반도 전쟁 계획 재검토에 나선 것은 전시 작전 지휘권을 청와대가 아닌 백악관이 보유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판문점 합의 직후인 홍콩 시간 8월 25일 02시 46분(한국 시간 03시 46분)에 보강된 바바라 스타의 <CNN> 기사에 따르면,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김정은이 남한의 선전용(propaganda) 확성기 중단의 최종 시한을 정한 이후 북한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고 밝혔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방식의 군사력 증강에 놀란 미국 군부는 자신들끼리 긴급 논의를 연이어 진행했으며, 남한 군부와도 전쟁 계획을 상의했다. 또한 남한 정부를 향해 위기를 고조시키지 말고 상황을 진정시키라고 요구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 미사일의 타격 능력과 더불어 미국을 특히 놀라게 한 것은 북한 해군 함정과 잠수함의 움직임이었다. 미국 국방부의 한 관리는 "전례가 없다는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이것은 그들(북한) 해군에게서 지금껏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고 <CNN>에 말했다.

미국 군부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B-52 폭격기를 출격시키려던 계획을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신호를 평양에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8.25 합의 이전에 한미연합훈련은 이미 중단됐던 것이다.

22일부터 25일까지 43시간 동안 진행된 남북 회담의 주인공이 김관진-홍용표 팀을 지휘한 박근혜 대통령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외신이 들려주는 펜타곤의 급박한 움직임은 또 다른 주인공, 즉 오바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8.25 판문점 합의의 실질적 배후였음을 암시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남한 정부, 그리고 서청원 의원 등 새누리당의 친박 핵심들이 북한이 표명한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인다면서 재발방지 문구가 없는 데도 '전례 없이' 유연하게 대처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음 달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또한 유엔 창립 70주년이자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9월 28일 오마바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유엔총회에서 연설한다. 이들이 논의할 '신형대국 관계'에 한반도 정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장기판에서 8.25 판문점 합의를 전후한 한반도 정세는 어떤 의미를 차지하게 될까.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고위급 합의 후 남북관계, "동시다발·다방면 전개" 예상


통일부, 5.24해제 "대화로써 다뤄질 수 있는 문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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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6  14: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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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이 26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향후 남북대화 구상을 설명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정부는 지난 24일 남북 고위급 당국자 접촉 합의에 따라 공동보도문 1, 5, 6항에 명시된 당국자회담,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 적십자 실무접촉, 민간교류가 순서와 관계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다방면에서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26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 일일이 예단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순서와 관계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다방면에서 전개될 것”이라며, 그렇지만 “정부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따라 일관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언제 어떤 급으로 당국회담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준비·검토 중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공동보도문에 명시된 각급 회담과 접촉은 남측뿐만 아니라 북측에서도 제안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5.24 대북제재조치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5.24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국 간 회담이 열리고 그 밑에 하부 여러 가지 회담들이 제기가 되면 거기에서 관심이 있는 북쪽이 제기할 수 있는 사항일 것”이라며, “그때 가서 충분히 대화로써 다뤄질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5.24조치 해제를 위해 정부가 내걸었던 조건이었던 북측의 사과에 대해 이번 공동보도문 수준으로 이루어진다면 수용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추가적인 회담에서 다뤄질 사항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통일부는 사후 "천안함 폭침 관련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가 있어야 5.24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또한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 될 시급한 현안 중에 하나”라며, “정부는 차근히 준비해서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이 무사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대한 원칙과 방향을 제시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번 고위급 접촉 합의에 이산가족상봉 문제가 포함된 배경으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해 생사확인부터 시작해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한 수시 상봉이 가능하도록 하자고 제시한 바 있다.
생사확인을 위해서는 6만여 명의 남측 이산가족 명단을 북측에 일괄 전달하고 북측도 이에 동참해 남북 이산가족 명단교환이 연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