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선포한 ‘영남 중진 수도권 험지 출마론’이 연일 화재다. 인 위원장이 콕 집어 거론한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의원은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까진 험지 출마를 선언한 중진 현역이 하태경 의원에 그치고 있다.
과연 이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까? TK‧PK(대구경북‧부산경남) 지역 다선(3선 이상) 의원 물갈이로 이어질까? 아니면 김기현, 주호영 등 상징적 인물에 국한될까?
혁신위는 수도권 험지 출마론이 혁신위 정식 안건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해당 사안은 ‘정치적 권고’라는 설명이다. TK 중진 의원들 역시 수도권 출마설에 반발하면서도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다. 중진들의 수도권 출마가 총선 승률을 높이지 않을 거라는 내부 의견도 적지 않다.
이렇게 볼 때 ‘험지 출마론’은 중진 물갈이를 통한 공천 혁신안이라기보다 특정 지역 후보 교체를 위한 여론몰이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험지 출마론’ 진짜 이유
인 위원장이 혁신위를 맡은 이후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비판은 없고, 여당 중진 특히 영남권 의원에 대한 희생만 강조돼 왔다. 이 때문에 인 위원장이 윤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서은숙 민주당 최고위원은 6일 인 위원장이 용산 대통령실을 비판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 “결국 대통령은 잘하고 있으니, 국민의힘이 대통령을 위해서 충성하고 희생하라는 말이다”라면서, “인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집사 역할과 심부름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서 최고위원은 “당선이 유력한 자리를 비우고 험지로 가라고 강요하고 있는데, 당선이 유력한 그 자리는 윤 대통령 키드와 직계가 차지할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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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하태경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해운대구갑은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출사표를 던졌다.
3선의 하 의원이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석 사무처장의 해운대갑 내정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 이미 석 사무처장으로 기운 이상 괜히 버텨봐야 좋을 것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김기현 대표가 4선을 한 울산 남구을도 사정은 비슷하다.
복두규 대통령비서실 인사기획관이 해당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 중이다. 복 기획관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때 대검찰청 사무국장을 하던 최측근 인사다. 울산 출신에 학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복 기획관이 해당 지역구를 노리고 있으니, 자리를 내놓으란 뜻으로 읽힌다.
김 대표에게 “수도권에 출사표를 던지고 총선을 진두지휘하라”는 압박이 거세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5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을 콕 찍어 험지 출마를 종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주 의원은 대구 수성을에서 내리 4선을 했다. 그런데 21대 총선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에 자리를 내주고 수성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홍 시장이 대구시장이 되자, 2022년 6월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김재원 최고위원, 유영하 변호사 등 10여 명의 예비후보를 제치고 이인선 의원이 수성을 후보로 단수 공천됐다. 공천 이전 여론조사에서 딱히 우위를 점하지 않았는데도 경선 없이 단수공천을 받은 것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TK지역에 몇 안 되는 윤석열 열성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TK지역 선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를 확보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이 때문에 이태원참사 1주기 대신 박정희 추모행사에 참석해 박 전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윤 대통령은 수성구 출마를 희망하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를 이번에는 꼭 공천해야 한다. 그래야 박 전 대통령을 잡아둘 수 있다. 그렇다고 수성을에 이인선 의원을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수성갑에 주호영 의원이 자리를 내놔야 했던 것이다.
한편 용산 대통령실 출신 30여 명이 22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질 전망이다. 이들 중 다수가 당선이 유력한 TK‧PK 지역 출마를 희망한다. 당장 김인규 행정관(부산)과 이창진 선임행정관(부산), 배철순 행정관(경남) 등이 이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 중이다.
결국 윤 대통령 측근의 총선 출마를 위해서는 영남 중진의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가 불가피하다. 만약 이들 중진이 낙선해도 총선 후 장관급 인선에서 재등용하면 될 일이다.
지난 10월 7일 1천400명이 사망한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팔레스타인인 1만여 명이 사망했다. 그중 거의 7천명이 아이들과 여성이다. 그런데도 두 달째에 접어든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전은 끝날 기미가 없다. 유엔 활동가 89명을 잃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지적하듯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 이뤄지고 있다. 전쟁 범죄는 매일 자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기미만 보여도 뭇매를 맞는다. 그것이 과연 10월 7일의 공격과 그에 대한 보복을 둘러싼 의견의 차이 때문일까? 무조건 이스라엘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주류 제도권과 팔레스타인 해방의 정당성을 이해한 대중의 격렬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트루스아웃의 기사를 축약해서 소개한다.
미국 대학과 직장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보복성 대량 학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후 커리어, 평판, 사생활에서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10월 7일 하마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상당수가 민간인인 1천400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복수에 혈안이 된 이스라엘은 극단적인 살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3천700명 이상의 아이들을 포함해 9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지구 공습으로 살해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집단 학살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많은 사람이 괴롭힘, 비방, 블랙리스트 등재, 해고 등 사회의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학자와 학생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연대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며 이런 처사에 항의했고, 주요 인사들의 집단 공개서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담론적 투쟁은 정치의 최고위층까지 파장을 가져와 국가 지도자와 상원 등이 비난과 검열로 맞싸우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배층의 선전에 넘어가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동안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길고 느린 학살이 자행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새로운 만행을 저지를 때마다 제도권의 선전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있고, 내러티브를 둘러싼 투쟁이 격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한 시위를 둘러싸고도 당국과의 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지배적이던 ‘현실 부정’이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이스라엘 비판을 둘러싼 투쟁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미국에서 절대 할 수 없는 유일한 얘기이자 마지막 금기였지만, 현재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이제는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2024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을 자주 볼 수 있고,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지칭하는 것이 어느 정도 주류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라엘 옹호자들은 싸움 없이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편집진이 마지막 순간에 철회해 가디언에 실리지 못하고 n+1에 실린 딜런 사바의 글이 지적했듯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 전혀 과장하지 않고 ‘매카시즘적’이라 일컬을 만한 심각한 보복을 당한다. 역사학자이자 n+1 편집국장인 찰스 피터슨도 이에 동의하며 ‘적어도 50년 만에 정치적 이유로 인한 해고가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나 매카시즘 시대로 돌아가야 이보다 더 큰 규모의 해고 물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10월 7일 이후 법률 단체 ‘팔레스타인 리걸’에 접수된 탄압 신고가 200건이 넘는다.
600개 이상의 법률 단체와 전문가는 정치 지도자와 기관장에게 이런 탄압을 막을 조치를 즉각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예로 든 탄압에는 SNS 및 뉴스의 검열, 개인 정보 누출, 온라인 및 캠퍼스에서의 차별과 괴롭힘, 해고와 강등, 조직 활동 금지 또는 방해, 비자 및 이민과 관련된 인종차별적 법안 발의, 감시, 법집행기관의 조사, 노골적인 폭력 등이 있다.
학계와 대학 캠퍼스의 반응
10월 7일 이후 대학 당국과 여러 학계 지도자가 수많은 성명을 발표해 맥락을 뺀 채 하마스의 공격을 비난했다.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정당하지 않다고 치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이런 암묵적인 지지는 논란을 일으키지도, 공격이나 반발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학생 단체와 다양한 좌파 성향의 캠퍼스 내 목소리도 성명을 냈다.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뉴욕대 법대생이자 (현재 해체된) 학생 변호사 협회의 전 회장이었던 라이나 워크맨이 학장의 비난, 온라인에서의 괴롭힘, 우익 언론의 공격을 받은 사례는 널리 보도됐다. 이번 전쟁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는 성명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법률회사 ‘윈스턴 앤 스트로우’는 그에게 한 취업 제안도 취소해버렸다. 다른 법률회사들도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한 학생들을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한 기업법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내 반유대주의 학생들을 고용하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버드대 학생들도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묻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에 빠졌다. 이들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개인 정보가 누출됐고 괴롭힘을 당했다. 월가 경영진은 하버드대에 고용 금지를 위해 서명 학생의 명단을 요구했고, 보수단체가 동원한 전광판 트럭이 ‘하버드의 대표적인 반유대인주의자들’이라는 제목 아래 서명 학생의 사진과 이름을 보여주며 학교 앞 번화가인 하버드 광장을 돌았다. 전광판 트럭은 콜롬비아대에서도 등장해 같은 일을 벌였다.
코넬대의 러셀 릭퍼드 흑인학 교수는 ‘하마스가 인종분리 장벽을 뚫은 것은 저항의 상징처럼 보였다’고 했다가 하마스의 공격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며 엄청난 분노를 사고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콜롬비아대의 조렙 마사드 교수도 10월 7일 공격을 모호하게 표현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 요구와 살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보스턴대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수업 거부가 이뤄지자 학교 당국이 교수들에게 암묵적인 함구령을 내려 학문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생각한 교수들의 반발을 샀다. 하지만 교수회의에서 학생들을 두둔했다가 학교 당국에 수차례 불려가 심문을 당한 교수의 일을 잘 알고 있고 노조도 없는 교수들이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사립대학들이 자기 학생과 교수를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힘센 기부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월가 억만장자 케네스 그리핀은 하버드에 6,500억 원을 기부하며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옹호하라’고 당부했고, 하버드대, 팬실베니아대, 뉴욕대, 스탠퍼드대, 코넬대 등에서는 기부자들이 학교 측이 하마스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즉시 발표하지 않았다거나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에게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없애거나 기부를 철회했다.
UCLA의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딜런 쿠프쉬는 학생들이 수업거부, 세미나, 촛불 집회, 수천 명이 모이는 LA 시위 참여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행사가 성공적일수록 돌아오는 비난과 육체적 폭행 정도는 심해진다고 했다. 학교 당국은 폭행을 목격해도 못 본 체하고, 폭행이나 개인 컴퓨터 등의 파손을 신고해도 학교 당국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학교 신문은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 공고 요청은 거절하고 이스라엘 지지 집회만 공고한다.
미 상원까지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에 대한 탄압에 나섰다. 대규모 수업 거부가 있은지 하루 만에 상원이 ‘반이스라엘, 친하마스’ 학생 단체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만장일치였다.
공립 대학교 교수진의 반발
캘리포니아 교수협회(CFA) 노조원인 블랑카 미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불문학과 교수는 노조원 모두가 합세해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교수진, 특히 노조 가입 교수진의 공동행동은 지배권의 서술과 학문적 자유의 제한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다. 교수협의회에서 300여 명이 캘리포니아대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학교 당국이 팔레스타인 지지 단체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한 것을 철회하고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반대할 것을 촉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컬럼비아대와 바너드대 교수진의 공개서한, 3천500여 명의 흑인 교수 활동가, 예술가, 학생과 100여 개의 단체가 서명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흑인’ 성명서, 페미니즘, 동성애, 트랜스 연구 학자들의 공동서한, 유대인 작가들의 공동성명 등 다른 학자와 단체도 조직적으로 노력했다.
공립대학은 사립대학이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과 교수진을 탄압하는 주된 이유가 서로 다르다. 공립대학은 투쟁의 한 수단으로 소송을 이용하는 시오니스트 유대 단체와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주립대는 작년에 학교 관리자들이 친이스라엘 발언을 억압하거나 유대인 학생 단체를 교내 행사에서 배제하려 했다는 두 학생과 합의로 소송을 해결했다. 1심 재판관은 근거 없다고 소송을 기각했지만, 두 학생이 항고하자 학교 측이 ‘시오니즘은 유대인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라는 성명 발표, 시오니즘적 관점을 담은 교내 벽화 제작 등을 해 주기로 하고 합의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제도권의 몸부림은 보이콧, 투자철회 및 제재 운동(BDS)의 확산 이후 더 거세졌다. BDS 운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전쟁 범죄를 비판하며 이스라엘 상품 불매, 이스라엘과의 경제 및 문화 교류 금지, 투자 금지, 국제적 제재 등을 통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전쟁 범죄를 종식하려는 국제적인 운동으로 2005년 등장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돼 이스라엘이 2017년부터 이 운동 가담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로비력을 지닌 미국에서도 BDS 운동과 이를 지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가 50개 중 35개에 이른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목소리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로버트 홀든 뉴욕 시의원(민주당)은 한 NGO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가자지구 민간인 학살 반대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수백만 달러의 지원금을 모두 박탈하려고 하는 등 사소한 형태의 억압이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예외주의가 깨지고 있다
이스라엘 로비의 막강한 영향력과 그들이 가진 미국 법조계, 언론계, 시민사회 인프라 덕분에 이스라엘을 비판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옹호한 사람에 대해 학계를 넘어선 굉장한 범위의 보복이 이뤄지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SNS에서 지난 몇 주 동안 직장에서 해고나 다른 불이익을 당한 피해자의 계정을 추적한 사람들에 따르면 그 직업 범위는 지하철 기사부터 스포츠 작가, 탤런트 에이전트, 기술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피해 범위는 주요 콘퍼런스, 출판물, 언론 인터뷰 취소부터 폭탄 테러 위협까지 넓었으며,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를 가리지 않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이를 공유한 사람들에 대한 보복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인의 기본 인권을 옹호하고 인종차별 체제의 종식을 촉구하며 수천 명을 넘어 끝없이 이뤄지는 보복 살인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사람들이 이런 극심한 보복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은 분노할 일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담론의 공간이 여전히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스라엘이 생산하고 미국이 증폭시킨 수십 년간의 효과적인 선전 때문에 올바른 변화를 위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길고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세를 반전시키는 일은 아직 요원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 및 외교 당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옹호하며 재무장하는 데 막대한 전략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미국 주류 언론이 이들을 감시하기는커녕 이들의 애완견처럼 굴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언론은 팔레스타인만 예외적으로 취급하는 문화를 지적하지 않는다. 미국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비난을 철저하게 금기로 만든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합의가 마침내 깨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완전히 와해될 때까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부터 미국 캠퍼스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인과 그 지지자는 어떤 수사보다 훨씬 더 전면적이고, 어떤 캠퍼스 소동보다 훨씬 더 중대한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기 전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이 중단되기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보수성향 종편·언론단체 선거방송심의위원 추천키로 한 방통심의위, 한겨레 “공정성 누가 인정”
더불어민주당에서 ‘내년 총선 200석 압승’ 이야기가 나오면서 ‘혁신 없는 민주당이 더 위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이후 민주당은 오히려 존재감이 사라졌고 최근 국민의힘이 내놓은 의제들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7일 아침신문에선 민주당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실렸다.
지난달 26일 검찰이 경향신문 전현직 기자를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입장을 냈다. 검찰이 문제 삼은 지난 2021년 10월 경향신문의 ‘대검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대출 부실수사 의혹’ 등 기사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검증했는데 당시 취재윤리를 어긴 사실이 없고 검찰 수사에 흠결이 있다는 주장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꾸리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보수 성향 종합편성채널과 언론단체 등에 심의위원 추천을 의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겨레가 이를 비판했다. 친정부 성향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면 심의 잣대가 여권에 유리하게 굽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다.
▲ 7일 아침신문 1면 모음
민주당 강서구청장 압승, 독이 되나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기반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기 위해 (야권) 연합 200석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란 법도 없다”고 거들었다. 민주당이 잘해서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아닌데도 자만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이해찬 전 대표가 ‘20년 집권론’을 꺼낸 것이 소환됐다.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내놨다.
경향신문은 사설 <혁신도 실정 견제도 무른 민주당, 총선 200석 운운할 땐가>에서 “강처구청장 보선 압승 후 민주당을 보는 정치권 평가는 다시 매섭다”며 “혁신 에너지를 느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국정감사·예산국회에서 윤석열 정부 실정을 파헤치고 민생예산 증액을 주도하는 정치력과 결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국민의힘이 출범시킨 ‘인요한표 혁신위’와 ‘서울 확장론’에 이슈 주도력도 밀린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6일 총선기획단 첫 회의에서 현역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지수’ 폭을 넓히기로 한 ‘김은경 혁신안’을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이미 친명 일색이라는 평이 나온 기획단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을지 의문이란 시선도 있다.
경향신문은 “중진 용퇴, 험지 출마론도 혁신 공천의 불씨가 될 수 있지만 현재로선 박병석·우상호 의원의 불출마 선언밖에 없다”며 “좋은 게 좋은 것이란 ‘평온한’ 분위기로 총선 승리를 바랄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궐선거 승리라는 ‘반짝 효과’에 취해 지금 ‘200석 압승론’을 운운할 때인가”라며 “제대로 혁신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정권심판론마저도 ‘이준석 신당’과 다툴 수 있다는 걸 민주당은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비슷한 지적은 다른 신문도 내놨다. 한국일보는 사설 <혁신에 손 안 대는 민주당, 200석 운운할 때인가>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내준 가장 큰 이유는 오만”이라며 “국민들은 몸집 큰 제1야당이 기득권 내려놓기에 주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다.
▲ 국민의힘이 총선승리를 위해 노력 중인 가운데 민주당이 별 노력없이 총선에 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7일자 한국일보 만평
보수 성향 신문은 다소 다른 맥락에서 민주당을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사설 <민주당, 혁신 외면하고 구태정치 반복하면 역풍 맞을 것>에서 “민주당이 작은 승리에 취해 자체 혁신을 외면하고 다수 의석을 앞세운 국무위원 탄핵이나 쟁점 법안 강행처리 같은 구태정치를 되풀이한다면 민심의 매서운 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모레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발의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3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를 예고한 것을 말한다.
중앙일보도 사설 <강처구청장 선거의 착시에 빠진 민주당>에서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이슈의 흐름을 끊겠다며 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의 본회의 강행 처리를 들고 나왔다”며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권을 사실상 무력화한 법안 등을 의석 수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중앙일보가 민주당을 ‘오만하다’고 평가하는 지점은 경향신문과 다소 달랐지만 중앙일보 역시 “여당에선 공천 물갈이 논란이 뜨겁지만 민주당은 침묵의 바다”라며 “자기 혁신에 눈 감은 채 힘자랑만 하다가는 이번엔 심판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하게 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 민주당 200석 발언을 비판적으로 다룬 7일자 중앙일보 만평
경향 “검찰 압색 ‘용산’ 하명 외엔 설명할 길 없어”
경향신문은 전현직 자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벌어진 검찰의 압수수색 관련 자세한 경위와 비판 입장을 사설에서 밝혔다.
▲ 경향신문은 지면 기준 7일자 사설을 6일 오후 누리집 첫 화면에 걸어놨다. 사진=경향신문 누리집 갈무리
이 신문은 <‘정권 친위대’ 검찰, 윤 대통령 아니면 명예훼손 수사했겠나>에서 자신들이 윤 대통령에 대한 의혹제기 내용을 상세히 밝혔다. 지난 2009년부터 대장동 개발사업을 추진한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은 1100억 원대에 이르는 사업 자금을 부산저축은행에서 끌어왔는데 부산저축은행 회장 인척인 조우형씨가 그 대출을 알선하고 10억3000만 원을 받았다. 대검 중수부는 2011년 이 사건을 수사하며 조씨의 알선수재 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당시 조씨는 김만배씨 소개로 ‘50억 클럽’ 중 한명인 박영수 전 특별검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4년 뒤 수원지검이 조씨를 기소했고 조씨는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경향신문은 “경향신문 보도는 지극히 합리적인 문제제기였다”며 “제보받은 사항을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이중·삼중으로 확인했고 누차 밝히지만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를 취재·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윤리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검찰은 경향신문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며 2011년 중수부 수사에 ‘셀프 면죄부’를 주고, 기사를 작성한 기자 자택을 최근 압수수색했다”고 비판했다.
▲ 검찰 수사가 불공정하고 무리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7일자 경향신문 만평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향신문은 “검찰 수사는 절차적으로 중대한 흠결이 있다”며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명예훼손 사건은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이 아닌데도 검찰은 자신이 만든 하위 법규인 대검 예규를 적용해 경향신문 보도를 수사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에 “단순히 꼼수 수준을 넘어 검찰권을 오남용한 위법행위”라며 “검찰은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 사이의 돈거래 의혹과 경향신문 검증 보도가 관련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명예훼손 혐의는 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신문은 “이번 수사는 ‘용산’의 하명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며 “검찰이야말로 이번 수사가 언론 자유를 짓밟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여타 언론의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해, 10여명의 특수부 검사를 동원해 2개월 넘게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중립성을 상실하고 ‘정권 친위부대’로 전락한 검찰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며 “검찰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대한 편법·과잉 수사를 즉각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겨레, 선거방송심의위 편향 구성 비판
지난 6일 한겨레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정필모 민주당 의원실에서 받은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원회 구성 현황’를 공개했는데 방통심의위는 방송사 몫(1명) 심의위원을 TV조선·JTBC·채널A·MBN 등 종편 4사와 한국방송협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추천해달라고 의뢰했다.
한겨레는 7일 사설 <‘내 편’으로만 선거방송심의위 꾸리겠다는 방심위>에서 “방송학계 몫 심의위원은 한국언론학회와 같은 권위 있는 학술단체들을 제치고 한국미디어정책학회라는 신생 학회에 추천권이 돌아갔다”며 “이 학회는 윤석열 정부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천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어 편향성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 7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또 “그동안 방송기자연합회나 한국기자협회가 추천해온 언론인단체 몫도 일부 방송사 간부급 기자들의 모임인 한국방송기자클럽에, 시민단체 몫은 설립된지 1년 된 보수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에 추천권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거방송심의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은 ‘심의위원 추천을 의뢰할 때 추천 단체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방통심의위의 추천 단체 선정이 이런 규정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선거방송심의위는) 선거방송 내용이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방송법에 따른 제재 조치를 의결할 수도 있다”며 “심의위가 친정부 인사 위주로 꾸려질 경우, 정부·여당이 불편해하는 보도물이 제재의 타깃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심의위 편향적인 추천 의뢰가 선거를 앞두고 여권에 유리한 여론 지형을 만들이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정부가 없다>(정혜승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는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 1주년에 발간됐다.
전직 기자 출신이자 청와대와 기업에서 홍보를 담당했던 정혜승 작가가 이 사건에 천착하게 된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동년배인 자녀를 뒀기 때문이다. 참사가 일어난 당일 대학생인 아들이 밤늦도록 연락이 안 됐고, 불안한 마음에 이태원 참사 현장을 남편과 함께 찾았다.
아들과 뒤늦게 연락이 닿았지만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마음을 졸이던 정 작가는 "우리 아이만 안전하고 안녕하다는 게 이렇게 끔찍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수많은 '왜?'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니, '정부가 없다'는 책 제목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정 작가를 지난 3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정부가 없다>(메디치미디어 펴냄)를 낸 정혜승 작가. ⓒ프레시안(이명선)
"내 아들만, 우리 아이만 안전하다는 게 끔찍했다"
프레시안 : 책의 첫 문장이 "나는 용산구 주민이다"다. 언론인, 청와대 비서관 등의 직함 다 떼고, 용산구 주민이 기록한 '10월 29일 그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정부가 없다>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정혜승 : 2022년 10월 29일 밤, 집에 있는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주변이 혼잡하니 오지 말라'는 재난 경보 메시지가 계속 왔다. '사고가 난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카카오톡 대화방에 '집단 실신 사태'라는 속보가 떴다. 트위터(현 'X')에는 이미 엄청난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심상치 않았다. 그날 아들이 늦는다고 했었다. 전화하고 카톡 남기고, 또 몇 분 있다 다시 하고… 전화는 받지 않았고 카톡 메시지 숫자 1은 없어지지 않았다. 피가 말랐다.
일단 이태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녹사평역 부근에 경찰 통제선이 있었지만, 어영부영 들어갔다. '아이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까 경찰도 당황한 눈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해밀턴 호텔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헤매던 중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같이 간 남편이 아들에게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밤 아들을 찾아 이태원 일대를 헤매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면,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혹시 혹시 내가 내일 이 거리를 다르게 보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혹시 일이 생긴다면 그 다음 일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데 아들이 괜찮다는 걸 알고는 더 끔찍해졌다. 공포가 한층 더 크게 밀려오면서 내 아들만, 우리 아이만 안전하고 안녕하다는 게 이렇게 끔찍할 수 있구나.(눈물)
프레시안 : 10월 29일 밤 현장은 '이태원 압사 사고' 해시태그를 타고 트위터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날 것' 그대로 유통됐다. 그로 인한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정혜승 : SNS와 TV 등으로 속보를 계속 지켜봤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멘탈도 점점 안 좋아졌다. 그래도 사망자가 159명에 달하는 큰, 대형 압사 사고라는 생각은 못 했다. 날이 밝으면서 멘탈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일요일이었다. 그렇게 화요일이 됐고, 관련 보도가 하나둘 전해지면서 이것은 명백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고통과 절망이 분노로 바뀌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 2022년 10월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현장. ⓒ연합뉴스
"정치가 망가지니 정부도 같이 망가졌다"
프레시안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2022년 10월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 결과 브리핑)는 말은, 그야말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정혜승 : 청와대 비서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해봤는데, 한국 공무원들은 일을 정말 잘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정부는 진짜 일을 잘한다. 공무원들이 최고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이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일 잘하던 '일잘러'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이상민 장관의 말처럼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면, '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거지? 정부의 역할은 뭐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만큼 10월 29일 그날의 일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프레시안 : 대통령실에서 새 정부 출범 초기 때부터 일한 L, 서울시 어느 구청에서 일했던 '어공' N, 이상민 장관 판사 시절 동료, 이진석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정상황실장), 여준성 전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혜승 :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정치가 망가지니까 정부도 같이 망가지는구나'였다. 정치와 정부의 상관관계, 그 시너지가 엄청났다.
지난 대선은 국론 분열이 가속화된 와중에 치러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0.73%포인트 차로 당선된 이후 국론 분열은 더 심화했다. 말하자면, 공무원 입장에서는 지난 몇 년은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다. 공직에 있든 기업에 있든 기자를 하던 사람은 다 똑같다. 사회에, 또는 조직에 좋은 변화를 가져올 때 신이 난다. 신이 나서 일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것, 그게 리더십이다. 내 일이 쓸모없고 가치가 없다면, 그냥 대충 일하게 된다.
청와대에서는 아침마다 '현안 점검 회의'라는 걸 했다. 국정상황실장이 회의에서 현안 하나하나를 점검한 뒤,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맞는 핼러윈 축제였고, 사람들이 몰릴 것이 뻔히 예상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응 방안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이진석 두 사람 얘기는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진석 전 실장도 '내가 지금 국정상황실장이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핼러윈 축제가 대통령 보고 사항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첫 축제이기 때문에 현안 회의에서 점검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상황실 혹은 비서실장 아니면 하다못해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장 중 한 명이라도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어?'라고, 묻기만 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질문하지 않고,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윤건영·이진석 두 사람 모두 공무원들은 매뉴얼대로 하는 일상 업무를 굉장히 잘한다는 했다. 위에서 점검만 하면,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대응 매뉴얼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였다. 그랬더니 두 사람은 '리더의 관심사의 문제'라고 했다.
▲ 159명이 압사당한 현장은 폭 3m 남짓의 좁고 가파른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현장 CCTV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해당 골목의 군중 밀도는 오후 10시 15분께 ㎡당 7.72∼8.39명에서 5분 뒤 ㎡당 8.06∼9.40명으로 증가했다. 오후 10시25분께는 ㎡당 9.07∼10.74명까지 늘었다. ⓒ연합뉴스
"리더의 관심사에 정부의 말초신경까지 달라진다"
프레시안 : 당시 대통령의 관심 사안은 '마약'이었다. 주말 핼러윈 축제를 앞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에서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적 리스크로 확산되기 전에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혜승 :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 대응과 '마약과의 전쟁', 이 두 개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다.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리더의 관심사가 실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리더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따라 정부의 말초신경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경찰서 '핼러윈 축제 클럽 마약류 집중단속 계획 추진 개요'에 따르면, 용산서는 10월 28~30일까지 이태원 유흥업소 밀집 지역 마약 단속을 계획하고 용산서 강력 4개팀, 형사 1개팀, 생활질서계 수사관들이 마약 단속을 위해 배치됐다.
29일 참사 당일 이태원에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지만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137명에 불과했다. 인파를 관리하는 '혼잡경비' 업무를 맡은 경찰도 없었다. 저녁 6시 34분부터 해밀턴 호텔 주변에서 11건의 위험 신고가 접수됐지만, 현장을 통제한 경찰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 이날 대통령실 경호를 위한 집회 대응에 62개 부대(51개 경찰관기동대·3개 의경부대·지방청 8개 기동대)가 배치됐다.
프레시안 : 정부의 수사본부 설치와 국회의 국정조사 합의는 비교적 빨리 이뤄졌다.
정혜승 : 사건 발생 사흘 만에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가 시작됐지만, 경찰과 소방관이 서로 거짓말 했다고 책임을 떠넘기느라 급급했다. 수사는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기 때문에, 참사와 재난을 수사로 단죄한다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다.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겪어봤지만, 정말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그리고는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잡아 하위직이 처벌된다. 따라서 수사로는, 그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는다.
국정조사는 수사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시작부터 '파행'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내년 예산안을 먼저 처리한다며 골든타임을 놓쳤고, 정부와 여당은 책임회피와 비협조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이 책임자들에게 '왜 그런 지시를 했느냐?'라고 묻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공청회에서 발언 기회를 얻는 게 고작이었다.
"참사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레시안 :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사 발생 사흘 만에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지만, 오 시장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정혜승 : 결국 이태원 참사는 각각의 책임에 구멍이 생기면서 벌어진 일이다. 국정상황실 혹은 서울시에서 대응 회의를 했다면? 경찰이 일선 구청과 한 번이라도 대응을 논의했으면?
재난과 참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 이후 이런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세월호 때 그 생떼 같은 아이들을 보낸 것이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데 우리는 그 힘든 일을 또 반복하고 있다. 그 다음에, 피해자들. '피해자 우선주의' 굉장히 중요한데,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구제하고 살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 중 하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이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참사와 재난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누군가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며 희생자를 함께 애도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사회적 태도가 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처음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세월호 때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희생자 애도는커녕 유가족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 자체를 '반정부 행위'로 규정했다.
▲ 지난해 11월 5일 시청역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정부 규탄 촛불집회. ⓒ연합뉴스
"참사를 쫓아가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이다"
프레시안 : 정부여당은 이태원 참사 이후 야권과 시민단체를 향해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참사의 정치화)고 비난했다. 그런데 참사 1주기에 윤 대통령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봤다. 정부가 참사의 정치화를 몸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정혜승 : 윤 대통령은 1주기 시민추모대회를 '정치 집회'라며 불참을 선언하더니, 오히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됐다. 어떻게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한 명 안 오나. '내가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고 너희들이 하는 것은 정치다'라는 논리인데, 정치를 피하고자 하는 행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다.
'참사를, 재난을 쫓아가는 과정은 정치적인 과정이다'라는 학자의 얘기를 책에도 썼다. 참사가 왜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인지, 그리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국가의 재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다 정치적인 결정이다.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치를 무슨 오물 대하듯 하면서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미루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하고 추모하는 일, 원인을 규명하는 일 자체를 마치 정치적 행위 또는 반정부 행위인 것처럼 비난하지만, 정부가 진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려면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위로를 해야 한다.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탄 배가 가라앉은 걸 실시간으로 보고, 축제에서 사람들이 압사당하는 걸 여과 없이 접했다. 이런 집단 트라우마를 위로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 지난 10월 3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미사. ⓒ연합뉴스
'검찰 정부'의 '공포 통치'에 최선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
프레시안 : 정치가 오히려 참사의 문제 해결을 막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혜승 : 한국 사회가 분열됐다고 하지만, 양극단을 제외하면 60% 정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고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극단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극단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국민 대다수는 극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은 시민 100명 중 한두 명을 빼고는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해 준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고민해 주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면, 그 과업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프레시안 : 책에서 '검찰 정부'의 한계를 지적했다. 사실 검찰이 제일 많이 대하는 사람은 죄지은 사람들이다. 죄지은 사람을 잡는 일이 업인데, 노동자나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민을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정혜승 :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했던 사람이 '검찰 정부'에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최근 만난 몇몇 사람들도 '검찰 정부가 무서워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더라. 감사원에 털리고 검찰에 털리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검찰 엘리트들은 적을 선별해 타깃으로 만들고 '때려잡자'는 식이다. 국정 운영을 하는데 온갖 '카르텔'을 언급하며 때려잡자는 식인데,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검찰이 검찰 방식으로 정부를 운영하며 '공포 통치'가 되면, 책임은 회피하고 복지부동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이 정부의 또다른 특징이라고 하면, '곳간지기의 전성시대'를 들 수 있다. 기획재정부, 그중에서도 예산실에서만 일하던 사람들이 대통령 비서실장(김대기)도 복지부 장관(조규홍)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건전 재정'을 얘기하는데, 예산을 줄이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해 8월 3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회의 후 한 유가족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프레시안 :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고, 이상민 장관은 여전히 건재하다.
정혜승 : 굉장히 안 좋은 시그널이다. 책을 감싼 띠에 쓰인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유가족의 말이다.
재난과 참사가 일어나면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라고 생각해서, 대개는 장관 하나 정도는 물러난다.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목을 거는 일이다. '꼭 그렇게 사람을 자르고 가야 해? 그러면 살아남을 장관이 누가 있어?'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만큼 무거운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하기 때문에 사퇴로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묻고 지나가는 방식이 된다. 그게 어떤 건지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들었는데, 지난 8월 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할 때 이상민 장관은 바로 옆에 있는 유가족을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지나쳤다고 한다. 유가족 중에는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도 있을 텐데, 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아서 국회의원들이 이상민 장관 탄핵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한 헌법학자가 장관 탄핵소추가 아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되는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헌법 정신 위배로 소를 제기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더라.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태원 추모비, 행안부 건물에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올해 핼러윈 데이는 정말 조용하게 지나갔다. 정치권은 외면하고 있지만, 온 국민은 이렇게 애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혜승 : 조용하게 넘어간 것도 공감하고 위로를 전하는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애도가 필요하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유가족 요구사항 중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 △진정한 사과, △성역 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 등. 이와 함께 유가족들이 국회 통과를 원하는 특별법의 핵심은 독립적 조사기구다.
지금 시청 앞 서울광장 한편에 있는 분향소는 점거 형태다. 지인의 초등학생 딸이 지나가다가 보고, '엄마 분향소는 원래 임시 건물이야? 천막으로만 돼 있어? 그렇게 만들게 되어 있어?'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분향소가 천막 치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인가. 그게 자연스러운 건 이상한 일 아닌가.
유가족 중 한 분이 '어디에 추모비가 들어가면 좋겠느냐?'고 물어서 '이태원이요?'라고 했더니, '이태원에도 필요하겠지만 희생자 이름으로 벽 한 면을 가득 채워야 할 곳은 행안부 건물'이라고 하더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일할 때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더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한다'는 얘기다. 너무 와 닿았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를 맞은 10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무기력해진 1년, 무엇을 해야 할까
프레시안 : 정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1년이었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더욱 무기력해진 1년이다.
정혜승 : 1년이 지나고 보니, 구멍은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인지 알면서도 바꿀 수 없어 무기력해진다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과정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한 명 한 명 개인은 무기력하지만, 모이면 무기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혹자는 이걸 '정치'라고 말하겠지만,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가 반복되지 않고 아이들에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남겨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민이라면, 같이 고민하고 떠들어야 한다. 뉴스를 멀리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을 얘기하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떤 일도 저절로 해결되거나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는 법은 없다. 불신한다고 외면할 일은 아니다.
최근 MBC에서 이태원 참사 수사기관의 보고서 161건, 169명의 진술조서 등 모두 1만2000쪽 분량을 공개했다.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수사한 결과인데, 공개가 맞는 것 아닌가. 그러나 수사 기록은 조사 기간이 끝나면 대게 그냥 캐비넷에 들어간다. 경험이 자산이 돼야 하는데, 자산은커녕 수사 한 번에 기록 공개도 없이 정치권 공방으로 끝난다. 그럼,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따라서 민간에서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고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펜박(FENVAC)' 같은 단체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본다. 펜박은 프랑스 재난 참사 테러 피해자 협회로, 재난이 계속 발생하면서 생긴 피해자와 유가족 연대체다. 이 연대체가 법적 기구로 인정받으면서 조사 권한까지 갖게 됐다. 이런 게 가능하더라.
왜 다정함인가
프레시안 : 책 마지막에 '다정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의미인가.
정혜승 : '왜 다정함이 결론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채질하는 정치적 위기도 외로움 탓이다. 외로움이 우파 포퓰리즘과 긴밀하고 광범위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분노와 절망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소통과 공감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앳원스>의 여주인공은 "혼란스럽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때일수록, 서로에게 다정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기왕이면 정부가 또 우리 모두가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