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일요일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대통령은 처음이어서”라는 윤 대통령, 그런 핑계가 통하는 자리인가?

 

  •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 발행 2022-06-20 07:12:01

  • 내가 살다 살다 대통령 입에서 “대통령은 처음 해보는 거여서”라는 핑계를 듣는 날이 올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이도 없어지고, 어처구니도 없어지고, 집 창고에 잘 보관해두었던 맷돌 손잡이도 없어지고, 하여간 없어지는 게 한 묶음이더라.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때 비선 논란이 일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관해 해명하면서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공식, 비공식 이런 걸 어떻게 나눠야 될지”라고 답했다는 게 핑계의 요지였다. 그런데 단임제 국가에서 대통령을 두 번 하는 사람도 있냐? 도대체 뭔 소리냐?

    나는 설마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단임제 국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런 말을 했을 정도로 무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 말은 “정치 초보여서” 정도로 해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후하게 해석을 해줘도 저 말은 대통령으로서 함량 미달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왕초보 운전에 아이도 타고 있어요” 같은 스티커 한 장 유리창에 붙인다고 봐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윤석열 후보 시절부터 이 칼럼을 통해 숱하게 지적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떠나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만 살아온 초보 정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험과 뇌의 발달

    뇌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떨쳤던 UC버클리 대학교 매리언 다이아몬드(Marian Diamond, 1926~2017) 교수의 살아생전 연구를 한 가지 살펴보자. 이 연구는 다양한 경험이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규명한 명연구로 꼽힌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쥐를 A와 B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각각 다른 환경을 제공했다. A집단 쥐들은 동료와 함께 생활했으며 매일 새로운 장난감을 제공받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반면 B집단 쥐들은 혼자 생활했으며 이런 다양한 경험 소재를 전혀 제공받지 못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두 집단 쥐의 뇌를 연구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다양한 경험을 한 쥐들의 뇌 피질이 그렇지 못한 쥐의 그것에 비해 훨씬 발달한 것이다. 피질이 발달할수록 뇌는 학습이나 기억, 감각 등을 더 잘 동원해 보다 고차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 경험을 많이 한 A집단 쥐의 RNA 대 DNA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뇌세포가 훨씬 더 잘 성장한다.

    이뿐이 아니다. 경험이 풍부한 A집단 쥐의 시냅스는 경험이 부족한 B집단 쥐에 비해 50%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시냅스는 뇌 신경세포들의 소통창구 같은 것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뇌의 소통이 훨씬 활발하게 이뤄져 더 다양한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험이 뇌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유아기나 아동기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일생동안 호기심을 유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우리는 늙어서도 뇌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이유다.

    ‘평생 검사’로 산 뇌의 위험성

    내가 후보시절부터 윤석열의 위험성을 누차 강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시 9수에 평생 검사로 산 사람의 뇌는 그야말로 경험이 협소하기 짝이 없다. 만나는 사람도 동료 검사 아니면 피의자다. 여기에 검사의 권력까지 주어지면 뇌는 절대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6.17. ⓒ뉴시스

    “검사 출신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검사가 바로 대통령으로 직행하는 그 과정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뇌는 그 어떤 사람의 뇌보다 창의적이어야 하고,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 능력은 다양한 경험을 통한 뇌의 자극으로 발달한다. 윤 대통령에게는 이 단계가 생략돼 있다.

    생각해보라. 영부인의 비선 논란이 일었는데 대통령이 “우리는 처음이어서 잘 몰라요”라고 답을 한다. 이게 지금 대통령이 할 말인가? 이야기를 적시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이 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적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은 최소한 할 말 안할 말을 가려서 하려는 노력이라도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결정적으로 이게 안 된다.

    단지 그가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이 무식한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뇌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 경직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나라가 좌우되는데, 누가 적어준 연설문이 아니면 금세 말에 펑크가 난다.

    “초보면 초보답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좀 닥치고 있어라”라고 말하고 싶은데, 상대가 일 하라고 뽑아놓은 대통령이라 그러라고도 못 하겠다. 앞으로 5년 동안 정치적 경험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지도자의 경색된 뇌가 이 나라를 이끌 것이다. 나라가 얼마나 삐걱댈지 안 봐도 비디오인데, 이게 내 나라여서 걱정이 앞을 가린다.

김지하, 수난과 구도의 삶을 기억하며

 [김지하를 추도하며] 4

염무웅 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2022.06.20. 07:45:00

돌이켜보면 1960년대 중엽 김지하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반대하며 궐기한 학생운동 속의 모습이었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어느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근무가 끝나면 복학한 친구들을 만나러 동숭동의 농성현장으로 가곤 했었지요. 그때 김지하의 쉰 듯한 목소리가 뿜어내는 뜨거움을 나는 화상(火傷)의 위험처럼 느끼며 외곽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가정교사로 숙식을 해결하며 주로 서구문학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지내온 나 같은 사람의 눈에는 당시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외친 민족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청맹과니였던 거지요.

다른 하나는 시인이자 미학이론가로서의 김지하였습니다. 1964년 5월쯤이던가, 을지로 5가 뒷골목의 어느 술집에서 시화전이 열렸고, 거기서 나는 아마 처음으로 金之夏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그의 시를 보았습니다. 그의 시뿐만 아니라 그 시화전에 나온 시들 대부분은 그동안 내가 읽어오던 우리나라의 시적 관습에서 벗어난 낯설고 실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후일 김지하 본인은 당시 자기가 슈르(초현실주의)풍의 모더니즘 계열 시를 썼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나에게는 친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 나는 그의 논문 발표를 듣게 됐습니다. 박종홍 교수가 늘 철학개론을 강의하던 문리대 대형강의실에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규 강의가 끝난 뒤의 어둑한 분위기가 지금도 아련히 떠오릅니다. 제목은 <추(醜)의 미학>. 칸트와 헤겔로 대표되는 전통미학 바깥을 더듬는 내용이었는데, 미학 이론에 입문조차 못한 나에게는 그의 대담한 이론 탐색이 낯설뿐더러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지하 자신도 후에 고백한 바 있지만, 사실 그 발표는 헤겔의 제자인 19세기 독일 철학자 칼 로젠크란츠(Johann Karl Friedrich Rosenkranz, 1805~79)의 저서 <추의 미학>(Ästhetik des Häßlichen, 1853)에 근거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로젠크란츠라는 서구학자의 이론을 수용하되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지하는 로젠크란츠의 미학을 발판으로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이론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추의 미학’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로젠크란츠와 김지하는 사뭇 다른 내용을 말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지하는 1960년대 중엽부터 서구 모더니즘에 여전히 한발 담그고 있으면서도 조동일 학형과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 탈춤이나 풍물 또는 민요나 판소리 같은 우리의 전통예술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이용희(李用熙, 1917~1997) 교수의 회화사 연구에 자극받아 조선 후기의 풍속화와 실경산수(實景山水)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요약하면 김지하의 ‘추의 미학’은 초현실주의 같은 모더니즘 서구예술로부터 우리 자신의 민족·민중미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론적 초석을 놓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하와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가 입원해 있던 역촌동 병원에도 몇 번 갔었지요. 수색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포수마을(지금의 서부병원 근처)에서 내려 논밭을 지나 산길을 오르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가 퇴원한 뒤에는 소설가 오영수 선생 댁을 여러 번 동행했습니다. 갓 결혼한 나의 셋방이 오선생 댁에서 아주 가까운 쌍문동 우이천변이었던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선생의 장남인 미대 후배 오윤의 남다른 미술적 재능에 지하가 흠뻑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무렵 그는 미학과 선배인 김윤수 선생의 이론적 지도와 오윤 등의 실천적 뒷받침을 조직하여 과감하게 리얼리즘 미술운동에 시동을 걸었고, 알다시피 그것은 지난 반세기 사이 한국미술의 새 역사를 쓰는 데까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1970년은 김지하 개인에게나 한국시의 역사에서나 특별한 해였습니다. 5월에는 담시 <오적>이 폭탄처럼 문단과 정치-사회를 강타했고 연말에는 시집 <황토>가 출간되어 시단을 흔들었지요. 그 어간에는 선배시인 김수영의 모더니즘에 기대어 자신의 시학(詩學)을 천명한 논문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했습니다. <농무>의 시인 신경림이 문단에 복귀한 것도 그해 가을이었고요. 눈을 돌리면 열악한 노동현실에 항의하여 젊은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한 것도 이때였습니다. 1960년대 말 김수영, 신동엽이 잇달아 세상을 떠난 데 이은 김지하의 눈부신 등장과 신경림·이성부·조태일 등의 새로운 활약은 우리 사회와 문학 내부에서 거대한 전환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 전환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의식하고 가장 치열한 언어로 표현한 것은 김지하 자신이었을 겁니다. 시집 <황토>의 후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작은 반도는 원귀(怨鬼)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차 있다. 외침, 전쟁, 폭정, 반란, 악질(惡疾)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숱한 인간들의 곡성(哭聲)으로 가득차 있다. 그 소리의 매체, 그 한(恨)의 전달자, 그 역사적 비극의 예리한 의식. 나는 나의 시가 그러한 것으로 되길 원해왔다. 강신(降神)의 시로." 

여기 표명된 시인으로서의 강렬한 사명감이 전통예술인 판소리의 형식을 빌어 표현된 작품이 담시 <오적>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정치적 파장과 사회적 폭발력 때문에 미학적 성취나 시사적(詩史的) 의의가 충실하게 검토되지 못했습니다. 지하 자신도 그 점을 아쉬워하곤 했지요. 당시 동아일보에 시 월평을 쓰던 나도 다음과 같은 소략한 언급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을 단순한 현실풍자로만 보아넘기는 것은 피상적 판단에 그치기 쉽다. 도리어 그러한 생생한 풍자를 유기적으로 자기 내부에 용해시킨 시형식적 달성이야말로 한국시의 앞날을 밝게 한다."(동아일보 1970.5.30.)

그야말로 단순한 암시에 불과한 촌평입니다. 여기서 내가 말한 ‘시형식적 달성’이란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품 상태의 판소리 형식을 현실비판의 살아 있는 무기로 힘차게 살려낸 업적을 가리킵니다. 후일 김지하 자신도 <담시 전집>(솔 1993)을 간행하면서 "판소리의 현대화와 동학혁명 서사시는 내 꿈"이라고 언명한 바 있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판소리의 현대화는 김지하가 평생에 걸쳐 수행한 여러 고뇌 어린 예술적·이념적 및 실천적 탐색의 일부, 즉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김윤수·오윤 등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현실주의 미술운동이 오늘날 한국 미술의 주류의 위치에 올라섰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국문학자 조동일의 이론적 지도와 창작자 김지하의 실천적 노력이 결합된 결과로 구체적 생기를 얻은 마당극, 마당굿, 탈춤, 풍물, 민요 등의 광범한 민중·민족연행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운동권 자체의 활동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 문화도 달라지지만, 1970년대 이후 30년 동안 한국에서는 거꾸로 대학문화가 사회의 변화를 선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지하가 불붙인 새로운 문화운동이 퍼져나가는 동안 그 자신은 불행히도 1970년대의 많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의 독방은 유례없이 혹독한 감시 속에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온전한 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후일 그는 고백했지요. "어느 날 대낮에 갑자기 네 벽이 좁혀들어오고 천장이 자꾸 내려오며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서 꽥 소리 지르고 싶은 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고개를 흔들어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몸부림, 몸부림을 치고 싶은 것이었다." 

1980년 12월 마침내 그는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집 앞의 감시는 계속되었고, 그리하여 그는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번뇌가 그 무렵에 나를 사로잡고 놓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래 지하는 술을 좋아했어요. 그나마도 왕소금에 깡소주를 마시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애주가는 아니었어요. 출옥 후에는 더 심하게 술에 의존하게 된 듯합니다. 1980년대에는 내가 사는 대구에도 내려와 친교의 시간을 가졌고 그러다가 어느 때엔 우리 집에서 잔 적도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를 상대하기 버거웠어요. 나는 잠을 자러 들어가야 되는데, 그는 소줏잔을 들고 장광설을 그치지 않았으니까요. 새벽에 깨 보면 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당시에 나는 충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회고록에 보면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의한 정신황폐증'이라? 내 병의 최초의 근원은 유년기의 사랑 결핍과 욕구 불만이었고, 최근의 원인은 과도한 알코올 중독인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오늘 나는 40년 가까운 지난날을 돌아보며 한없이 아픈 마음으로 시집 <화개(花開)>((2002)에 실린 그의 시 <횔덜린>을 읽습니다.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인의 뇌 속에 내리는 

내리는 비를 타고 

거꾸로 오르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어둠을 어둠에 맡기고 

두 손을 놓고 거꾸로 오르며 

내리는 빗줄기를 

거꾸로 그리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횔덜린(Friedrich Holderlin, 1770~1843)이 누구인가. '신이 사라지고 자연과의 조화가 무너진 자기 시대'를 탄식하며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고귀한 신성을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소임'이라 보았던 시인, 그러나 바로 그 너무도 순결했던 소임 때문에 도리어 생애의 후반 37년을 정신착란자로 살아야 했던 시인 아닌가. 그 횔덜린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또 다른 시인을 우리는 이제야 봅니다. 

물론 지하는 1980년 석방 이후 30여 년 동안 괴로움과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횔덜린처럼 정신착란의 감옥에 유폐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지독한 고통 자체가 동력이 되어 김지하 특유의 사상적 모색이 더욱 심오한 깊이를 얻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남긴 책들을 읽어보면 그는 젊은 날부터의 수많은 지적·현실적 자극들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종합하고 극복하여 어떤 사상적 화엄의 통일체, 그 자신의 용어로 '움직이는 무(無)'의 상태에 이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짓밟히고 학대받은 땅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노래했던 첫시집 <황토>부터, 원주중학 동창(윤노빈)과 함께 읽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대학의 미학과에서 습득한 다채로운 서구의 예술이론들, 박정희 정권과의 목숨을 건 투쟁, 수운과 해월의 동학사상, 장일순 선생•지학순 주교와 함께했던 '원주 캠프'의 뜨거운 경험들, 정지용부터 이용악을 거쳐 김수영까지의 수많은 선배 시인들... 이 모든 자양분을 빨아들여 그는 '김지하'가 되었습니다. 

물론 생애의 마지막 10여 년에 보인 그의 정치적 행보는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고 비판했습니다. 그 비난•비판의 일정한 정당성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병고에 시달리다 노년에 들어선 김지하는 지난날처럼 그 비난과 비판 안에 들어 있는 합리적 핵심을 붙잡아 자신의 인간적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삼을 힘을 이미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점이 김지하를 사랑했던 동료와 후배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생각건대 김지하는 아직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의 80년 생애와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들은 제대로 검토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선 필요한 것은 그의 삶과 죽음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하 시인 ⓒ연합뉴스

박지원의 경고 "쉽게 된 윤 대통령, 사정 정국 갔다가 YS 전철 밟을 수도"

[인터뷰①] "전방위 수사 바람직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미중 갈등으로 세계경제 무너져"

22.06.20 05:56l최종 업데이트 22.06.20 08:19l
 

이희훈 님의 방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이희훈입니다.

www.ohmynews.com

▲ 박지원 전 국정원장 ⓒ 이희훈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상 초유로 쉽게 대통령이 됐습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쉽게"라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재차 묻자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된 분이 어디 있나"라고 답하며 "쉽게 선출된 정치인들이 승승장구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은 쉽게 됐지만 대통령 업무는 어렵게 수행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박 전 원장은 "(국정원장을 맡는 동안) 정치를 떠나 2년 정도 바라보니 (세상이) 보이더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만 80세의 그는 2년 전 총선 낙선 직후를 거론하자 "왜 남의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냐"며 너털웃음을 지었고, 인터뷰 중간중간 "내가 괜히 정치 9단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라며 넉살을 피우기도 했다.
 
다만 인터뷰 주제가 '검찰'로 넘어가자 사뭇 표정이 달라졌다. 박 전 원장은 인터뷰 내내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권 초반 정치보복 논란이 벌어지는 것에 "지긋지긋"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고개를 내저었고, 심지어 김영삼 정부의 IMF 사태를 거론하며 "그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박 전 원장은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저축은행 사건'을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떠올리며 "검찰이 이런 식으로 가면 절대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건 정치보복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내용을 두고도 "죄가 있으면 수사해야 하지만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여러 곳에서 수사를 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는 매일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중략)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무얼 부르짖고 있습니까. 적폐청산? 처벌? 그렇지 않습니다. 김대중·만델라가 왜 존경받습니까. 용서하고 국민통합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박 전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윤석열 비교적 쉽게 대통령 당선... 문재인 정부 반성 필요"
 
▲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사무실 벽면에는 사진액자가 진열되어 있다. 국정원장 임명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 함께한 사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재임 시절,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 모습 등 이다. ⓒ 이희훈

- <오마이뉴스>와의 마지막 인터뷰가 2020년 총선 낙선 직후였습니다.
 
"왜 남의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요(웃음)."
 
- 국정원장으로 지명되기 직전 당시 인터뷰에서 '시든 꽃도 봄이 오면 다시 피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2년이 흘렀는데 그 동안 봄이 왔나요.
 
"국정원장을 맡은 2년은 제게 참으로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저를 임명해주신 문재인 전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문 전 대통령은 저를 임명하면서 '서훈 전 국정원장이 3년 간 국내정보 수집·분석 부서를 해편하고 정치개입을 하지 않았으니 이걸 법과 제도로 완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받들어 국정원을 완전히 개혁했습니다. 과거 국정원장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지만 이젠 제가 걸어간다 해도 새가 안 날아갑니다.  
 
지난 5년 간 어떤 정당이, 어떤 언론이, 어떤 시민단체가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관련해 지적했습니까? (정치개입을) 안했기 때문에 (지적이) 없는 겁니다. 이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2년 간 보람 있게 일했습니다. 저는 국정원을 존경합니다. 특히 애국심과 헌신을 기조로 일하는 국정원 직원들을 사랑합니다. 단, 2년 간 선글라스는 한 번도 못 쓰고 마스크만 쓰고 있었습니다(웃음). 마스크 때문에 말을 못해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지만 잘 해냈습니다. 이제 마스크도 벗고 말하고 사니까 지금은 지금대로 또 행복합니다."
 
- '검사 윤석열'이 퇴임 후 1년 여 만에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무엇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입으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성은 필요합니다. 어찌됐든 국민들의 요구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사이익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상 초유로 최단기간에, 어떤 의미에선 비교적 쉽게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 '쉽게'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된 분이 어디 있습니까. 혁명하지 않고 그렇게 갑자기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쉬우면 안 되더군요. 쉽게 선출된 정치인들이 승승장구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때문에 (윤 대통령은) 정말 잘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쉽게 됐지만 대통령 업무는 어렵게 수행해야 합니다."
 
- 과거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 실세에게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는데, 그 사이 많은 부침이 있었고 결국 윤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문 전 대통령과 (2014년) 당대표 경선 때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습니까. 또한 제가 민주당을 떠나 안철수 신당(국민의당)에서 (2017년) 대선 때 '문모닝'으로 얼마나 (문재인 후보를) 많이 비난했습니까. 하지만 대선 후에는 '선거 땐 치열하게 싸워도 당선되면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는 철학을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게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IMF 아닙니까. 대통령이 성공하면 나라가 삽니다. 그게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IMF 극복 아닙니까.
 
문 전 대통령 당선 후 두 번 청와대에서 뵈었습니다. 저에게 '방송을 다 보고 있다. 내가 못 보면 보고를 받는다. 잘 도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과거 문모닝 한 것을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라고 하니, 문 전 대통령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지적해주면 잘 참고하겠습니다'라고 그러셨습니다. 한참 후 문 전 대통령이 저를 국정원장으로 임명하니까 청와대 기자실에서 '아!' 하는 소리가 났고 일부 언론에선 '문 전 대통령의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측근이나 검사만 (주요 자리에) 임명하지 말고, 인사의 폭을 더 넓혀야 합니다."
 
- 안철수, 김한길, 박주선 등 함께 국민의당을 만들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윤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습니다. DJ의 비서실장으로서 그들의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가 김 전 대통령의 혼이 박혀 있는 민주당을 탈당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고 국민들께 사과드립니다. 제 정치 인생에서 가장 잘못한 일입니다. 정치인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질문한 분들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성공하도록 잘 돕길 바랄 뿐이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 6.25, 4.19, 5.18, 6.10 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의 시기를 거쳤는데 이들과 저는 정체성이 확실히 다릅니다. 저는 정체성에서 일탈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해야"
 
▲ 박지원 전 국정원장 ⓒ 이희훈
  
- 대북송금 특검, 저축은행 사건 등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경험했고 '한명숙 사건'에 대해서도 '조작수사'란 표현까지 써가며 검찰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최근 검찰의 움직임과 정치보복이란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축은행 사건은 가장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지시해 '박지원이 검찰 수사를 무마해준다는 조건으로 망한 저축은행으로부터 3000만 원을 받았다'고 기소해 얼마나 곤혹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당시 법조계, 특히 검찰 출신 인사들이 '이건 무죕니다. 걱정하지 마십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2013년) 1심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당시 권력 실세가 역할을 해 항소심에서 유죄가 나왔습니다.

이후 그 실세는 대법원 관계자를 만나 '2심을 유지해 달라'고 했지만 결국 전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것은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에 나와 있는 이야깁니다. 이렇게 검찰이 권력과 결탁해 나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4선 중 3선, 12년 동안 법제사법위원을 한 사람으로 검찰의 이런 행위에 대해 꾸준히 지적해왔습니다. 검찰이 이런 식으로 가면 절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 정치보복 수사라는 지적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중대한 범죄를 수사하는 걸 정치보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민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최근 야당을 향한 전방위적 수사를 보고 '아, 윤석열 정부도 결국 사정으로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장관의 말씀이 맞습니다. 죄가 있으면 수사 받아야죠. 그러나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30년 간 우리는 많은 적폐수사, 과거사진상규명 등 여러 개혁을 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제는 매일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니 윤석열 정부가 가장 잘 하는 것이 그것(수사)이겠죠. 그러나 지금 국민은 개혁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가 사정 정국으로 갔다간 김영삼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임기 초반 사정 정국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다가 결국 경제가 망해 IMF를 불러왔잖습니까. 윤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과거보다 미래로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검찰의 전 정권 수사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합니까.
 
"검찰은 과거에 삽니다. 과거에 잘못한 사람을 수사해 처벌을 요구하는 조직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간 과거에 집착해 살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입니다. 죄가 있으면 수사해야 하지만 그렇게 전방위적으로 여러 곳에서 수사를 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만큼은 대탕평을 부르짖고 미래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면 국민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것입니다. 이거(사정 정국) 이제 지긋지긋해요. 그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국민 대다수의 의견입니다."
 
-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의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까.
 
"저는 제일 먼저 박근혜·이명박·이재용 이런 분들을 상징적으로 빨리 사면하자고 주장했었습니다. 국정원장에 재임하면서도 과거 국내파트 사건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직원들에게 다시 기회를 줬습니다. 당시 민주당에선 '원장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국정원에 함몰됐냐'고 항의했지만 저는 진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상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정치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무얼 부르짖고 있습니까. 적폐청산? 처벌? 그렇지 않습니다. 김대중·만델라가 왜 존경받습니까. 용서하고 국민통합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나토 정상회의 참석, 아쉬워... 국익 우선한 인도 보라"  
 
▲ 박지원 전 국정원장 ⓒ 이희훈

-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된 시기에 국정원장으로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가 친북·친중정권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 한미일 정보동맹을 통해 협력과 공조의 시대를 위해 노력했고 중국 외교 관계자들과 경제협력, 대북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이 이상을 이야기하면 국정원법에 걸립니다."
 
- 시진핑과 트럼프의 연이은 등장으로 미중 데탕트의가 사실상 깨진 이후 한국에서도 부쩍 반중정서가 강화된 모습입니다. 특히 2030세대 사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중국이 중화사상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을 진정한 협력 국가로 인정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BTS 공연을 불허하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경제보복도 보세요. 얼마나 가혹하게 해버립니까. 그러니 존경받을 수 없죠. 저는 중국이 넓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 반중정서가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때그때 마다 다릅니다. 과거 반미정서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불식됐잖습니까. 중국도 그런 과정을 거칠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이슈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수세적,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공세적입니다.
 
"외교를 잘해야 세계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중된 외교보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줄타기 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결국 국익이 우선 아닙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젠가 끝납니다. 그러면 우린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재개해야 하죠. 러시아에 진출한 조선3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 SK 등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오일, 곡물, 심지어 우크라이나가 전 세계에 50%를 수출하는 해바라기씨유 때문에 치킨과 화장품 가격까지 올라가지 않습니까.
 
국익과 경제를 위한 외교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아쉽습니다. 인도 보세요. 자주적으로 하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보잖아요. 우리가 인도처럼 하긴 어렵겠지만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윤석열 정부 초기 행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제가 맨 먼저 윤석열 정부의 두 곳에서 큰 실수가 나올 거라고 했죠. 하나는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입니다. 신선하고 보기 좋지만 대통령의 언어는 참모의 검토를 거쳐 정제돼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늘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겁니다. 지금까진 다행히 외교와 관련된 실수는 없었지만 (도어스테핑에서) 여러 실언이 나왔잖아요. (윤 대통령이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했는데) 그럼 대통령을 한 번 하지, 두 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영국 총리와 미국 대통령도 매일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기자간담회로 소통하는 걸 검토해 볼만 합니다.
 
그 다음이 김건희 여사입니다.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외교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제1외교를 대통령이 한다면 제2외교는 영부인이 합니다. 영부인 외부 활동을 하지 않던 사회주의 국가도 달라졌습니다. 시진핑도 펑리위안과, 김정은도 이설주와 밖으로 다닙니다. 그런데 영부인이 집에서 내조만 한다? 이건 아니죠. 대통령과 영부인은 사생활이 없어요. 그 자체가 상징이고 그 자체가 국격입니다. 그래서 제2부속실을 다시 만들어 공적 관리를 해야 합니다. 계속 (김 여사가) 사고를 치잖아요. 저는 이러한 조언으로 윤 대통령을 돕고 있습니다. 제 말이 맞잖아요. 괜히 정치 9단 소리 듣는 것 아닙니다(웃음)."

*<인터뷰 ② - "이준석·박지현 80점... 박지원의 쓰임새는 정권교체 초석" >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나도 조작수사 경험... 한명숙 사건, 검찰이 그림 그린 것" http://omn.kr/1nr3r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해야... 시대요구가 그렇다" http://omn.kr/1nr4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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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자주·평화·통일 세상 이룩하자"

 

서울광장서 3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개최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입력 2022.06.19 22:38
  •  수정 2022.06.19 2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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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2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열사의 염원이다.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이룩하자!'

6월 19일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올해로 31회를 맞이하는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범국민추모제)에 모신 646위의 영정과 함께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자주평화통일 세상'에 대한 열사들의 염원이 나부꼈다.

범국민추모제를 주최한 3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 명예 추모위원장(김중배, 박중기, 신학철, 이규재, 이선종, 이창복, 이해동, 최병모, 청화, 함세웅)을 대표하여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열사, 희생자들의 뜻을 기리는 것은 오늘날 민중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세력들에 맞서 싸우고, 민중이 주인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길에 있음을 안다"며 "모두 함께 적폐의 굴레를 박차고 자주, 민주, 평화, 통일의 길로 힘차게 나가자"고 추도사를 했다. 

왼쪽부터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김재하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결의문을 통해 '반노동, 반농민, 반민중, 반민주, 반평화 윤석열 정부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자'고 다짐했다.

또 "이땅의 분단과 전쟁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패권 이익을 실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강대국들의 부당한 패권정책, 이를 추종하며 주권을 포기하는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반드시 저지해 나가자"고 동참을 호소했다.

특별히 누구도 더 이상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할 수 없도록 강력한 법 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그 시작으로 '민주유공자법'의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국민추모제를 주관한 전국민중행동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는 △노동(노동해방 세상 쟁취/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반노동정책 폐기) △농민(개방농정철폐 식량주권 실현/ CPTPP 가입저지/ 농민기본법 쟁취) △빈민(노점상 생계보호특별법 제정/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 개발 시행) △여성(성평등 세상, 성평등 민주주의 완수/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장애(장이인권리보장법,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중증장애인 노동권 쟁취) △사회(민중총궐기로 불평등 타파/ 차별금지법 제정) △통일(주한미군 몰아내고 조국통일 완수) △과거청산(과거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역사정의 실현/ 민주유공자법 제정) 등의 요구와 결의를 제시했다.

왼쪽부터 강선순(권희정 열사 모친), 조인식(박종만 열사 부인), 정정원(김윤기 열사 모친), △강종학(강상철 열사 부친), 김석진(김학수 열사 부친), 박종부(박종철 열사 형). 앞줄 장남수(장현구 열사 부친) 유가협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인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장은 지난 10일 6월항쟁 기념식장인 성공회성당에서 삭발식을 단행한 장남수 회장을 비롯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민주유공자들이 격에 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정치권이 나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987년 학생운동 전력자들에 대한 녹화 선도공작으로 인해 희생당한 최우혁 열사의 큰형인 최종순씨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서도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강제수사가 가능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겠다며 25년만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왼쪽부터 장현일 민주유공자법제정추진단장(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의장), 최우역 열사 큰형 최종순씨, 박세희 전국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박재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윤헌주 민주노련 노량진 수산시장 지역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재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과 강선희 전국양파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 윤헌주 민주노련 노량진 수산시장 지역장은 민족민주열사들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전체 민중을 위해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세희 전국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대표는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염원하며 살아가셨던 열사들이 남긴 발자국을 이정표 삼아, 나중에 열사들 앞에 섰을 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삶을 살도록 계속해서 움직이며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범국민추모제는 지난해 10월 7일부터 시작한 국회앞 천막농성장에서 출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자전거 국민 대행진'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으로 입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앞서 원불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종교인들이 주재한 종교의식이 사전행사로 진행됐다.

이현주 박종철열사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범국민추모제는 추모영상과 프로젝트팀 '잇다'의 추모공연에 이어 참가자들의 헌화로 마무리되었다. 

김윤기 열사 어머니인 정정원 여사가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한열 열사의 영정에 헌화하고 어루만지며 애통해 하는 유가족.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프로젝트팀 '잇다'의 추모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회앞 천막농성장에서 출발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자전거 국민 대행진'이 범국민추모제 사전행사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올해 범국민추모제에는 1969년~1990년, 1990년~1999년, 1999년~2009년, 2009년~2021년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총 646위의 영정이 모셔졌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는 지난 1990년 6월 10일 성균관대학교에서 국민연합 주최로 '민중민주열사 희생자 합동 추모제 및 6월항쟁계승 국민결의대회'를 개최하면서 처음 시작되어 올해까지 31년을 이어왔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추모제를 개최하지 못했고 2020년 29회 추모제는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온라인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다.

처음 모신 181명의 영령은 31년이 지난 올해 646위로 늘어났다.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사법 사형자와 옥중희생자, 장기수 등 116분의 명단은 따로 자료집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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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기자 shlee@tongilnews.com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개벽예감 496]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2/06/20 [08:00]



<차례>
1. 다급한 심정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
2.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
3.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
4. 미국의 핵정책은 어떻게 변천되었나?
5.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1. 다급한 심정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


2022년 6월 12일부터 16일까지 박진 외교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방문기간에 그는 토니 블링컨(Antony J. Blinken) 국무장관을 만나 회담을 진행하고,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동기자회견 발언내용 중에서 중요한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블링컨 - “우리는 조선의 7차 핵시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우리는 비상사태에 대비하면서, 장단기적 군사태세를 적절히 조절할 준비를 갖추었다. 조선이 방향을 전환할 때까지 압박을 유지하고 증대시킬 것이다.”


박진 - “조선은 핵시험준비를 완료했고,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황이다. 핵시험을 포함한 조선의 도발은 단합되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다. 조선의 도발은 더 많은 억제와 제재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이른 시일 안에 재가동하기로 했다. 필요한 경우, 이 협의체에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블링컨 - “몇 주 안에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가동될 것이다. 미국은 (조선에 대한) 확장억제에 힘쓰고 있으므로,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아주 이른 시일 안에 작동하게 될 것이다.”


위에 인용한 박진-블링컨 공동기자회견 발언기록을 읽어보면, 그 두 사람이 얼마나 다급한 지경에 처했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 그 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잔뜩 다급해진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대책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이른 시일 안에 재가동하는 것이다. 2022년 5월 21일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 발표된 한미정상공동성명에는 “가장 이른 시일 안에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재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는 문장이 들어있는데, 위의 인용문에서 블링컨 국무장관은 확장억제전략협의체가 앞으로 몇 주 안에 가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위에 인용한 박진-블링컨 공동기자회견 발언기록에서 나타난 것처럼,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조선이 7차 핵시험 준비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이번에 처음으로 핵시험을 실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시험 이후 2017년 9월 3일 열핵탄두기폭시험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실시했다. 그래서 이제는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조선의 핵시험에 어지간히 적응되었을 만한데,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그들이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까닭은, 조선이 준비한 7차 핵시험이 이전의 다른 핵시험들과 달리, 전술핵무기에 장착되는 전술핵탄을 기폭시키는 핵시험으로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조선인민군은 전술핵무기를 무려 10종이나 보유했다. 모두 최첨단 전술핵무기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엄청나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소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 4관 탑재형 장거리순항미사일 
- 4관 탑재형 변칙비행미사일 
- 2관 탑재형 변칙비행미사일
- 2발 탑재형 변칙비행미사일 
- 원뿔첨두형 극초음속미사일 
- 2발 탑재형 철도기동미사일 
- 이중궁형 변곡비행미사일 
- 5관 탑재형 610mm 조종방사포 
- 4관 탑재형 지능핵로켓탄 


위에 열거한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는 적의 미사일방공망을 뚫고 들어갈 수 있고,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은 적의 미사일방공망을 무력화시키고 타격정밀도가 매우 높은 전술핵무기를 10종이나 보유한 것이다. 머지않아 조선이 실시할 7차 핵시험은 위에 열거한 10종의 전술핵무기에 장착될 극소형 전술핵탄을 기폭하는 핵시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극소형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무려 10종이나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조선밖에 없다. 초정밀 전술핵무기를 비교하면, 조선은 미국, 로씨야, 중국을 제치고 급기야 최정상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조선, 미국, 로씨야, 중국이 각각 보유한 초정밀 전술핵무기를 비교해보면, 조선의 초정밀 전술핵무기가 질량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드러난다. 


조선인민군이 보유한 초정밀 전술핵무기는 전시용이 아니라 실전용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한미련합군은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 속에 빠져든 것이 분명하다. 지금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다급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유난히 우왕좌왕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2.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


한미련합군이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에서 빠져나올 출구는 미국의 확장억제전략(Extended Deterrence Strategy)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확장억제전략은 미국식 이핵응핵(以核應核)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핵은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기의 확장억제전략을 한반도 상황에 적용할 실행방도를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기구가 확장억제전략협의체(Extended Deterrence Strategy and Consultation Group, EDSCG)다. 이 협의체는 한반도 상황에 적용할 확장억제전략의 실행방도를 논의한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 1차 회의는 2016년 12월 20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진행되었다. 


2016년 12월 20일 1차 회의를 마친 확장억제전략협의체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는 “미국이 조선의 핵위협 및 미사일위협에 대응하여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자산(strategic assets)을 정기적으로(regularly) 배치하고, 억제를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 또는 추가적 조치를 확인했고, 그런 조치를 향상시키기로 한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문장이 들어있다. 이 인용문에 들어있는, 미국이 전략자산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치한다는 문구는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치한다는 뜻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핵전략자산을 상시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상시적으로 배치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오바마 정부는 그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정기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미국은 핵전략자산을 한국에 정기적으로 배치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6개월에 한 번 배치하는지 아니면 1년에 한 번 배치하는지 구체적인 약속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미국의 꿍꿍이속은 핵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출동시켜 잠깐 보여주기만 하고 곧바로 복귀시키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16년에 핵전략자산인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를 다섯 차례나 한반도에 출동시켰지만, 그 전략폭격기들은 한반도 중부 상공을 한 바퀴 도는 순회비행만 하더니 부리나케 돌아가 버렸다. 언론매체들이 보도하지 않았으면, 전략폭격기들이 언제 왔다가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허겁지겁 지나가곤 했다.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괌의 앤더슨공군기지에서 이륙해서 한반도 중부 상공을 한 바퀴 도는 순회비행을 하고 돌아가면 많은 출동경비를 지출해야 한다. 많은 출동경비를 지출하는 판에 이왕이면 오산미공군기지에 1~2개월 동안 내려앉았다가 앤더슨공군기지로 돌아가면 억제효과도 대폭 증대될 것이고, 출동경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의 전략폭격기들은 순회비행만 살짝 하고 황급히 돌아가는 행동을 반복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박근혜 정부는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 순회비행을 반복한 까닭은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가 사실은 핵전략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를 핵전략자산으로 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탑재하지 않은 전략폭격기는 확장억제전략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오바마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 약속한 확장억제공약은 속이 텅 비어있는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미국이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전략폭격기에 탑재하지 않은 까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 미국에 한 발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2020년까지 전량 폐기했고, 지금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게 될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개발하는 중이다. 미국이 신형 전술핵탄두와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각각 개발하고, 그것을 실전배치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긴 시간이 요구되는지 알 수 없지만, 미국 국방부는 전술핵탄두를 장착하는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2027년에서 2030년 사이에 실전배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조선은 전략폭격기에 탑재할,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아직 보유하지 못한 미국이 알맹이 없는 깡통 같은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켜 순회비행이나 하고 황급히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은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현해도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군사행동으로 대응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조선의 언론매체들은 미국의 전략폭격기 출동을 날강도 같은 핵위협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아메리카핵제국의 침략야망을 지적, 폭로하지만, 그것은 반미선전이다. 조선인민군은 그냥 무시해버린다. 


이런 내막을 살펴보면, 미국이 알맹이 없는 깡통 같은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중부 상공에 출동시키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진짜 목적은 조선을 핵위협으로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핵공포증에 걸린 종미우익정권을 그런 행동으로 안심시키려는 것이다. 미국이 확장억제전략을 운운하면서,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출동시킨 것은, 좀 거칠게 표현하면, 종미우익정권을 위한 위안공연이었다.  
    


3.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


2022년 3월 28일 미국 연방의회는 두 종의 국가기밀문서를 접수했다. 그것은 미국 국방부가 제출한 ‘2022년 핵태세검토(2022 Nuclear Posture Review)’와 ‘미사일방어검토(Missile Defense Review)’였다. 미국 국방부가 2022년 1월 중에 연방의회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2022년 핵태세검토’를 3월 말에 가서야 뒤늦게 제출한 것을 보면,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관들이 최근 복잡하게 변화되고 있는 국제정세에 대처할 핵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참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2022년 핵태세검토’와 ‘미사일방어검토’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 두 문서에 관한 언론설명회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고작 ‘사실통보문(Fact Sheet)' 한 장만 달랑 내놓았다. 바이든 정부는 이전 정부들의 관행과 달리 핵정책을 철저히 비밀로 감추고 있는 것이다. 비밀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바이든 정부는 왜 새로운 핵정책을 비밀로 감추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는 몇 글자 되지 않는 짤막한 사실통보문에 들어있다. 사실통보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이 “극단적인 상황(extreme circumstances)에서 미국 또는 동맹국과 우호국의 사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의 사용을 고려(consider)할 것”이라는 문장이다. 바이든 정부가 수립했다는 새로운 핵정책의 핵심내용은 바로 이 문장 속에 살짝 비껴있다. 그 문장을 축자적으로 해석하면, 미국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동맹국과 우호국의 사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2020년 4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가 작성한, ‘핵억제: 미국의 국가방위를 위한 기초와 보강(Nuclear Deterrence: America's Foundation and Backstop for National Defense)’이라는 제목의 기밀문서에도 “미국은 가장 극단적인 상황(the most extreme circumstances)에서 우리의 사활적 이익과 우리 동맹국 및 우호국들의 사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는 문장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내용이 2020년 4월 미국군 합동참모본부의 기밀문서에도 들어갔고, 2022년 3월 미국 국방부의 기밀문서에도 들어갔다. 이런 흥미로운 정황은,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미국 군부가 이미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해놓았고, 바이든 정부가 그것을 인수하여 새로운 핵정책을 수립한 것처럼 발표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언하였다는 사실이다. 미국 군부가 새로운 핵정책에서 말한 ‘극단적인 상황’은 전시상황이 아니라, 무력충돌위기가 고조된 준전시상황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은 그들이 준전시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언제라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동맹국들과 우호국들이 적국의 핵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핵공격으로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국의 핵공격위험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선제핵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은 2020년에 이르러 자기의 핵정책기조를 보복핵타격(retaliatory nuclear strike)에서 선제핵타격(preemptive nuclear strike)으로 변경시킨 것이다. 




4. 미국의 핵정책은 어떻게 변천되었나?


2020년에 미국의 핵정책기조가 바뀐 배경이 무엇인지 알려면, 미국의 핵정책이 지난 70년 동안 어떻게 변천되어왔는지 훑어볼 필요가 있다. 1953년 10월 30일 아이젠하워 정부는 ‘새로운 용모(New Look)'라는 이름의 핵정책을 채택했다. 이 핵정책의 기조는 다량보복(massive retaliation)이다. 그들이 말한 다량보복은 적국이 재래식 무기로 친미동맹국을 공격하는 경우 미국은 핵공격으로 적국을 초토화한다는 뜻이다. 아이젠하워 정부가 다량보복 핵정책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이 크고 무거운 핵탄을 소형-경량화하는 핵무기제조기술을 개발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새로 개발한 전술핵탄을 퍼부어 적국을 초토화하겠다는 광기를 드러냈던 것이다. 


아이젠하워 정부의 다량보복 핵정책에 따르면, 미국의 주적인 소련과의 전쟁은 유럽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각종 전술핵탄을 개발하여 유럽의 친미동맹국들에 집중적으로 배치했고, 한국과 일본에도 배치했다. 이런 상황은 1950년대 후반기에 미국이 압도적인 핵무력으로 비핵국가들인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 그리고 중국과 조선을 위협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만일 미국의 적국이 재래식 무기로 친미동맹국을 공격하면, 미국은 유럽과 동북아시아에 각각 배치해둔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소련과 그 동맹국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핵무력을 보유하게 되자, 국제정세가 급변했다. 미국은 ‘새로운 용모’라는 이름의 다량보복 핵정책을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전술핵탄으로 소련을 공격하는 경우, 소련도 전략핵탄으로 보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소련의 사회주의핵무력이 미국의 제국주의핵위협을 억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소련의 핵무력 보유로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기존 핵정책인 ‘새로운 용모’를 폐기하고, 새로운 핵정책을 채택하였는데 그것이 '유연대응(Flexible Response)'이라는 이름의 핵정책이다. 1961년 3월 케네디 정부가 이 새로운 핵정책을 채택했다. ‘유연대응’은 다량보복이 아니라 단계적 대응에 기초한 핵정책이었는데, 대응단계는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정해졌다.


1단계는 적국이 친미동맹국을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는 경우, 미국도 그에 대응하여 재래식 무기로 적국을 공격하는 단계다. 2단계는 적국의 재래식 공격을 받은 친미동맹국들이 패전상황에 몰리는 경우, 미국이 전술핵탄을 사용하여 적국의 군사전략거점을 파괴하는 단계다. 미국은 이것을 제한적 핵공격이라고 했다. 3단계는 소련이 보복핵공격을 하는 경우, 미국은 소련의 산업시설 50%와 인구 20%를 핵공격으로 제거하는 이른바 ‘확증파괴(Assured Destruction)’를 감행하는 단계다. 미국은 이것을 전면적 핵공격이라고 했다.   


위에 서술한 내용 가운데서 중요한 것은, 2단계에 해당하는 제한적 핵공격이다. 미국은 자기의 제한적 핵공격으로 적국의 군사거점들을 모조리 파괴할 수 있을 것처럼 핵공갈을 늘어놓으면서 국제정세를 긴장시켰다. 그러나 당시 미국이 떠들어댄 제한적 핵공격은 공허한 핵공갈이었고, 실제로는 제한적 핵공격을 감행할 능력이 없었다. 미국의 핵공갈은 제국주의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인 허장성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은폐되었지만, 비밀문서에서 드러났다. 


케네디 정부 집권기에 미국 국방부 산하에는 자기의 핵무력을 평가하는 실제판정위원회(Net Assessment Committee)가 있었는데, 그 위원회 위원장인 미국 공군 중장 토머스 힉키(Thomas J. Hickey)가 1961년 12월 당시 국방장관 로벗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에게 ‘미국 전략체계의 요구에 관한 연구: 최종 보고(A Study of Requirements for US Strategic Systems: Final Report)'라는 제목의 비밀문서를 제출했다. 비밀문서에는 미국이 핵무기제조기술의 한계 때문에 아무리 일러도 1960년대 말까지 제한적 핵공격능력을 보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적시되었다. 실제로 케네디 정부와 존슨 정부는 핵무기제조기술의 한계를 넘지 못해 미국의 새로운 핵정책을 완성하지 못했고, 기존 핵정책에 약간의 변동사항만 첨가했을 뿐이다. 케네디 정부와 존슨 정부가 제한적 핵공격능력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발목은 잡은 핵무기제조기술의 한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1960년대 당시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개발하지 못하는 기술공학적 한계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개발하기까지 긴 세월이 흘렀다.  


1974년 1월 닉슨 정부의 국방장관 제임스 슐레진저(James R. Schlesinger)가 ‘슐레진저 교리(Schlesinger Doctrine)’를 발표했다. 이것은 미국이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개발함으로써 새로운 핵정책을 확정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슐레진저 교리에 따르면, 미국은 전술핵탄으로 파괴해야 할 대상과 전술핵탄으로 파괴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술핵공격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군사지역에 대한 피해도 감소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슐레진저 교리에 따라 확정된 새로운 핵정책은 1976년에 실시된, ‘단일통합작전계획(Single Integrated Operation Plan)-5’라는 명칭의 핵전쟁연습에 처음 적용되었다. 한미련합군이 ‘팀스피릿(Team Spirit)’이라는 북침전쟁연습을 1976년에 시작한 것은,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으로 조선을 공격하려는 제한적 핵전쟁을 바로 그 해부터 연습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후 미국은 정밀타격능력을 가진 전술핵탄을 지속적으로 개량하여, 사거리가 더 길어지고, 정밀타격도가 더 향상된 신형 전술핵탄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다. 5킬로톤급 전술핵탄두가 장착된 이 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2,400km에 이르렀다. 1982년 미국 공군은 B-52H 장거리전략폭격기와 B-1B 초음속전략폭격기에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을 각각 탑재했다. 


그런 추세에 따라, 1983년에 미국 육군은 퍼싱(Pershing)-2 미사일을 실전배치했고, 미국 해군도 같은 해에 토마호크순항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이 두 종의 미사일도 사거리가 길고, 타격정밀도가 높으며, 저위력 전술핵탄두를 장착했다. 이렇게 되어 미국은 적국의 군사전략거점을 전술핵공격으로 정밀타격할 수 있는 고도의 작전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압도적인 핵무력을 틀어쥐게 된 미국의 제국주의핵광기는 그때부터 극에 달했고, 인류는 미국의 핵위협 앞에서 공포와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한때 압도적인 핵무력을 틀어쥐고 핵광기를 부리던 미국은 자기의 전술핵탄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줄줄이 폐기해야 했다. 이를테면, 미국 육군이 실전배치한,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퍼싱-2 중거리탄도미사일은 1987년 12월 8일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중거리미사일감축협정’에 따라 폐기되기 시작하여 1991년 5월까지 전량 폐기되었다. 미국 해군이 실전배치한 여러 종의 토마호크지상공격미사일들 가운데서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토마호크지상공격미사일(TLAM-N)은 2010년부터 2013년 사이에 전량 폐기되었다. 미국 공군이 실전배치한,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은 2020년에 작전수명이 끝나면서 전량 폐기되었다. 


미국이 2020년에 자기의 핵정책기조를 보복핵타격에서 선제핵타격으로 변경시킨 배경에는 바로 그 해에 전술핵탄을 전량 폐기한 무력감에서 벗어나보려는 체면치레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5. 미국의 공허한 핵공갈과 조선의 새로운 핵정책 


2018년 10월 20일 당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미국이 1987년 소련과 체결했던 중거리핵미사일감축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다고 선포했다. 트럼프는 로씨야가 그 협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탈퇴한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미국이 마지막까지 보유하고 있었던 전술핵무기인 AGM-86 공중발사순항미사일이 2020년에 작전수명이 끝나면서 전량 폐기되어 미국은 신형 전술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트럼프 정부는 중거리핵미사일감축협정을 서둘러 파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정부는 2018년 2월 2일에 발표한 ‘2018년 핵태세검토(NPR)’에서 미국 해군이 사용할, 전술핵탄을 장착한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지난 시기 미국 해군이 실전배치했던 W-80 전술핵탄을 장착한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은 작전수명이 끝나는 바람에 2013년에 폐기되었는데, 트럼프 정부는 신형 전술핵탄을 장착한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앞으로 약 10년 동안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2월 22일 미국 온라인 군사매체 <디펜스 뉴스(Defense News)>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조선, 중국, 로씨야를 공격할 수 있는, 신형 전술핵탄을 장착한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앞으로 7~10년 안에 실전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것은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이 2027년에서 2030년 사이에 실전배치될 것으로 예고한 것이다.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장착하게 될 신형 공중발사순항미사일과 신형 해상발사순항미사일을 아직 개발하는 중이다. 이런 사정을 보면, 전술핵무기가 없는 미국이 그 무슨 확장억제전략을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핵공갈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5월 21일 서울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 발표된 한미정상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핵, 재래식 및 미사일방어능력을 포함하여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력량을 사용하여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공약을 확인하였다”고 적시되었지만, 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전술핵무기를 갖지 못한 미국이 내뱉은 공허한 핵공갈에 불과하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핵공포증에 걸린 윤석열 정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공허한 핵공갈이라도 줄창 늘어놓아야 할 만큼 한반도 군사상황이 한미련합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이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보유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최근 <자주시보>에 발표한 여러 글들에서 조선인민군이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다.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쉬쉬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조선인민군은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10종이나 보유했는데, 그에 맞선 한미련합군은 최첨단 전술핵무기는 고사하고 구식 전술핵무기마저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러니 양측의 무력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다종다양한 전술핵무기를 가진 조선인민군은 한미련합군을 압도한다. 조선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들인 화성포-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대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쐐기첨두형 극초음속미사일을 개발한 데 이어, 한미련합군과 서태평양작전지대에 있는 미일동맹군을 초토화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 10종을 개발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돐 경축열병식 연설에서 “우리의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보리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 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명하였다. 2022년 4월 4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에서 “(조선인민군이 핵전투무력을 동원하는) 상황에까지 간다면 남조선군은 괴멸, 전멸에 가까운 참담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술핵무기를 개발 중인 미국은 확장억제전략을 가지고 공허한 핵공갈을 늘어놓고 있지만, 10종의 최첨단 전술핵무기를 보유한 조선은 새로운 핵정책을 가지고 엄포를 놓는 게 아니다. 예상컨대, 전시상황이 오면, 조선인민군은 10종의 초정밀 전술핵무기를 일제히 발사할 것이다. 달빛도 없는 깊은 밤에 발사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채, 더도 말고 딱 1시간 동안만 다종배합련사방식으로 집중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한미련합군은 그런 절묘한 전술핵공격을 예상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에 조선인민군이 결행할 절묘한 전술핵공격은 비군사지역에 피해를 주지 않고, 미국이 증원부대를 편성하기도 전에 그들이 말하는 ‘남조선해방작전’을 번개처럼 끝낼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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