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2일 화요일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사용’이다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사용’이다 기자명 유영만 칼럼니스트 입력 2022.02.23 07:05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 [사진출처=Pixabay] [사진출처=Pixabay] [한국강사신문 유영만 칼럼니스트] 언어의 유일한 기능은 어떤 대상을 지시 혹은 서술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한 언어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일치한다.<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 언어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을 그림처럼 1 대 1의 대응 관계로 정확하게 재현(representation)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언어철학을 언어그림 이론이라고 합니다. 언어그림 이론은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 그러니까 세계는 물이나 나무처럼 사물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른다’ 또는 ‘나무가 흔들린다’처럼 사물이 만들어가는 사실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는 낱말이 아니라 문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차가 달린다”는 문장은 실제로 차가 달리는 모습을 그림처럼 지시하거나 묘사하고 있습니다. 언어그림 이론은 언어가 세계를 구성하는 사실들을 그림처럼 분명하게 반영할 때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언어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1 대 1로 일치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언어그림 이론은 지시하는 대상이 없거나 지시하는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언어는 무의미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인 셈이지요. 이런 주장에 따르면 “철수가 밥을 먹는다”거나 “영자가 글을 쓰고 있다”와 같은 말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현실을 고스란히 묘사해주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언어로 그림처럼 묘사할 수 없는 대상은 철학적 탐구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죠. 언어는 세계를 구성하는 사실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그림처럼 묘사해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효용가치가 달라진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쓰는 모든 언어를 그림처럼 표현할 수 있을까요? 비트겐슈타인도 이런 자신의 생각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철학적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케임브리지를 떠나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에서 약 6년간 교사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는 자신의 언어가 시골 아이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경험적으로 터득한 언어의 세계와 시골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세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함을 알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일상 언어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점을 깨닫고 자신의 언어그림 이론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전까지 고수해온 자신의 개념을 폐기 처분합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개념을 물색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림’이라는 개념에서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언어철학적 사고를 전환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물먹지 말고 물처럼 살아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지시하거나 서술하는 게 아니라 어떤 교훈을 다의적 의미로 전달하고 있지요. 언어그림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고 있다”는 문장은 지시하는 대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지만 “물먹지 말고”의 ‘물’은 “물이 흐르고 있다”는 문장에 쓰인 ‘물’과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일한 ‘물’이지만 그 말이 쓰이고 있는 콘텍스트, 즉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새로운 개념을 물색한 끝에 발표한 작품이 『철학적 탐구』입니다. 그의 후기 철학의 핵심은 “언어에 관해서 알려거든 의미를 묻지 말고 사용을 물어라”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전기 철학에서는 언어를 안다는 것을 언어가 지시하는 사실적 대상을 그림처럼 동일하게 그려내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으로 정의했다면, 후기 철학에서는 게임처럼 어떤 맥락에서 어떤 규칙과 용법으로 쓰이고 있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이 언어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을 ‘언어게임 이론’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한 낱말의 의미는 그것의 쓰임새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그 언어가 어떤 맥락에서 쓰이고 있는지 용도를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잘한다”는 말은 남다른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할 때는 칭찬이지만 기대 밖의 예상치 못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할 때는 비난하는 말입니다. 즉 ‘잘한다’는 언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문맥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죠.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사용이 결정합니다. ※ 참고자료 : 『아이러니스트: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EBS BOOKS, 2021)』 칼럼니스트 프로필/ 작품활동 유영만 칼럼니스트는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석사, 플로리다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삶으로 앎을 만드는 과정에서 철학자의 주장보다 문제의식이 주는 긴장감에 전율하는 경험을 사랑한다. 오늘도 삶의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상에서 비상하는 상상력을 배우며 격전의 현장에서 현실을 매개로 진실을 캐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러니스트』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한 줄의 글이 위로가 된다면』 『독서의 발견』 『지식생태학』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외 다수가 있다. 관련기사 도발적인 질문, 음표 없는 악보 출처 : 한국강사신문(http://www.lecture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