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1일 화요일

‘만우절 거짓말’보다 더 심한 대통령의 약속

우리가 대통령의 약속을 너무 철석같이 믿었나요?
임병도 | 2015-04-01 09:06:5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오늘은 만우절입니다. 만우절에는 112로 허위 장난전화가 늘어나, 경찰은 며칠 전부터 고심입니다. 경찰청은 112 장난전화에 대해 형법 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나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경찰청은 경찰력 낭비가 심한 만우절 112 허위, 장난전화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만우절, 단순한 장난 전화나 거짓말은 애교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과도한 거짓말은 상대방에 대한 상처는 물론이고, 재산 등의 손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2014년 5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에 가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의 손을 잡고 “마지막까지 우리가 찾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께서 끝내도 된다 하실 때까지 할테니까”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은 사고 19일째가 넘어가는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에 희망을 줬습니다.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실종자를 찾아 준다고 했고, 우리가 끝내야 끝낸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공식적인 세월호 수색 종료 기자회견 ⓒMBN캡처
2014년 11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던 실종자 가족들은 공식적인 ‘세월호 수색작업 종료’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부가 막무가내로 세월호 수중수색을 중단한 것은 아닙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수중수색의 위험성을 알고 오히려 동의해줬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수중수색 작업에는 동의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선체인양은 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실종자 허다윤의 엄마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미디어몽구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일 년이 되고 있지만, 세월호 선체인양 소식은커녕 준비작업 관련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속하고 온전한 선체인양’을 통해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 보내달라’고 외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5월에 했던 약속은 단순히 수중수색만이 아닙니다. 선체인양이라는 방법을 통해서라도 남은 실종자를 찾아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수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하는 모습 ⓒ페이스북 김상호
2015년 3월 31일,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비가 내리는 광화문광장에 비닐을 덮고 누워 쪽잠을 청했습니다. 이들이 노숙하는 이유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지금이라도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생업을 포기하고 다니는 직장에서조차 잘린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이 했던 약속을 기다렸지만, 점점 대통령은 약속한 말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족을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대통령은 최악의 정치를 국민과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정치를 말했다. ⓒSBS 캡처
우리가 대통령의 약속을 너무 철석같이 믿었나요? 아니면 대통령이 만우절 거짓말처럼 거짓말을 했나요?

만우절은 마음대로 거짓말을 하라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만우절을 통해 거짓말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느낄 수 있는 날입니다.
대통령에게는 비록 만우절 거짓말처럼 지키지 않아도 될 약속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만우절을 맞이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했던 약속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77 

시진핑의 ‘일대일로’와 박근혜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초점> 한국 AIIB 가입결정과 남북철도 연결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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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31  18: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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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博鰲)포럼에서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실체를 드러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언명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는 아직 구상 단계에 머물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진핑 주석은 28일 보아오포럼 기조연설에서 “일대일로 구상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이미 6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가 참가하거나 참가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했다”며 “일대일로는 중국의 독주가 아니라 관련국들의 합창곡”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탄력받는 시진핑의 일대일로 구상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2015년 보아오포럼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출처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2013년 9,10월부터 시진핑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 사업은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거쳐 유럽 대륙까지 철로를 연결해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형성하고 해상으로는 중국 연해와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인도양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는 대역사(役事)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18일 중국 저장성 이우(義烏)시에서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까지 운행하는 세계 최장의 1만 3052㎞ 직통열차 ‘이신어우(義新歐)선을 개통한 바 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외교부, 상무부는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보아오포럼이 열리고 있는 28일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공동 건설 추진을 위한 전망과 행동’을 발표했다
특히 일대일로의 중점 사업으로 정책 소통, 인프라 연통(聯通), 무역 창통(暢通), 자금 융통, 민심 상통 등 ‘5대 통(通)’을 제시해 단순한 교통 인프라의 연결은 물론, 자유무역지대 건설, 송유관.가스관 등 에너지 협력, 금융 협력 등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6개국의 참가에 이어 3월말 참가 마감일을 앞두고 한국을 비롯해 호주, 러시아, 브라질 등이 참가의사를 밝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더욱 힘을 얻게 된 형국이다.
일대일로 구상 실현을 위한 자금을 실크로드기금은 물론 AIIB를 통해서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400억달러(약 44조원)를 실크로드기금으로 먼저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참여 결정 과정을 통해 보았듯이 미국은 중국 주도의 AIIB 추진에 경계감을 표했지만 결국 관련국들은 국익 차원에서 AIIB에 참여함으로써 사실상 중국이 ‘뜨는 해’임을 보여줬다.
진척 더딘 박근혜의 '유라시아 이니셔니브' 구상
  
▲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0월 18일 '유라시아 이니셔티' 구상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를 주창한 시점과 큰 시차 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한.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2013년 10월 18일 “저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으로 만들어 가는 몇 가지 방향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고자 한다”면서 “부산을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SRX 구상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같은해 11월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종단철도(KT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연결’에 인식을 같이하고, 포스코와 현대상선, 코레일(이하 3사)은 ‘라진-하산 프로젝트’ 참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첫 시범사업으로 러시아산 유연탄 4만 5천톤을 실은 중국 국적의 화물선이 북한 라진항을 거쳐 포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3사들은 본격적인 ‘라진-하산 프로젝트’ 사업 참여를 위한 본계약을 미뤄두고 있다. 남북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항구를 거친 물류는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북경제협력을 금지하고 있는 5.24조치는 여전히 엄존하고 있고 남북관계는 갈수록 경색되고 있다.
  
▲ 지난해 11월 27일 러시아산 유연탄을 북한 라진항에서 선적하고 있다. 이 석탄은 12월 1일 포항항에서 하역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같은 상황 탓인지 올해 주요 사업도 외교부가 코레일과 함께 오는 7~8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R) 등을 이용해 러시아·중국·몽골·중앙아시아·유럽을 횡단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이라는 상징적 이벤트 밖에 없다.
국토부는 올해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 “한반도 통일시대를 적극 대비하기 위해서 경원선 철도 단절구간, 문산에서 남방한계선 구간 고속도로 등 남한 내 단절구간 연결을 위한 사전 준비와 조사·설계 등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31일 “첫 출발점을 우리 미연결 구간을 연결하는 것, 두 번째로 북한쪽 통과하는 것, 세 번째가 북한 쪽 속도를 높여 실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가 국제협력 강화”라며 “개성-신의주 철도.도로만 하더라도 30조원 가까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의사결정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당장 남북 철도연결이나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이 실현될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국내 철도 미연결 구간을 연결하면서 ‘통일준비’를 하자는 입장인 셈이다.
당국자 “북한이 어떻게 호응해 나오느냐가 관건”
  
▲ TKR(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되면 중국의 '실크로드 경제벨트'(SRX, TCR)는 물론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MR(몽골 횡단철도)를 통해 유럽까지 달릴 수 있다. [자료제공 - 남북경제협력연구소]

  
▲ 경부선을 연결해 TCR(중국 횡단철도)로 뻗어나가고, 중간 정주에서 라선으로 연결해 TCR(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진출하는 남북 고속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현 정권 인수위 시절부터 제안됐다. [자료제공 - 남북경제협력연구소]

외교부 관계자는 30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유관국별로 협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올해가 실제 사업을 하는 원년”이라며 “유라시아친선특급 사업에 10억원, 한-중앙아협력사무국 추진에 10억원 등 총 27억원 정도의 예산이 처음 책정됐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북한이 어떻게 호응해 나오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AIIB 가입 통보일인 지난 27일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AIIB의 초점은 주로 아세안(동남아)과 서남아에 맞춰져 있다”며 다만 “AIIB 이사회 등에서 ‘북한이 특별한 대상이니 투자하자’고 결정하면 투자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 사업에 ‘신의주-개성’ 구간도 포함돼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신의주-개성’간 철도.도로 건설사업은 중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유라시아 이니셔티’와 상충하는 대목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더디고 중국의 적극적 투자공세가 이어질 경우 중국식 표준설계에 의한 ‘신의주-개성’ 구간 철도.도로 연결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두구두고 남북경제공동체 구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그렇지 않아도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도로 건설 사업이 중국에게 넘어갈 상황이었는데, 일대일로가 힘을 받는 현실이 우려스럽다"며 "당장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장래에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반이 될 이 사업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국제철도협력기구 옵저버 자격도 못 갖춰
  
▲ 지난해 4월 최연혜 코레일 사장(오른쪽 두 번째)이 평양에서 열린  개최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정례회의에 참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같은 상황에서도 정부는 안이한 상황인식에 머물러 있는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SRX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본절차에 해당하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회원국 가입도 아직 실현시키지 못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한국은 러시아, 중국, 북한을 비롯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27개국 국가들의 철도협력기구인 OSJD에 지난해 3월에야 ‘옵저버’ 보다도 한 단계 아래인 ‘제휴회원’ 자격을 얻었고, 오는 5월 27~29일 ‘OSJD 사장단회의 및 제10차 국제철도물류회의’를 서울에 유치했다.
그러나 정작 4월 20~24일 체코에서 열리는 ‘제30차 OSJD 사장단회의’를 거쳐 6월 2~5일 몽골에서 열리는 ‘제43차 OSJD 장관회의’에서 정식 회원국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OSJD는 27개 회원국 전원일치로만 신규 회원 승인이 결정되는데 북한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생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 차례 한국의 회원 가입을 반대해 비토권을 행사한 바 있다.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추진 범정부 기구 필요
  
▲ 2007년 12월 11일 문산-봉동 구간 경의선 화물열차가 운행을 개시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북-중 간 철도 연결은 양자간 협력사업이 아니라 다자간 협력사업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최적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면서 북한이 AIIB 참가국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 철도 건설을 위한 투자는 국제적 합의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재원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세금으로 조성된 연간 1조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 그 중에서도 북한 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로는 실제로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에 AIIB 투자를 유치해 남북이 주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안병민 연구위원은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남북 철도.도로를 연결하고 화물열차까지 운행했지만, 지금은 모두 중단되고 유지.보수마저 안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당장 남북 철도 연결을 하자고 하더라도 안전조사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 관련부처들이 참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물론,  현 정부가 실제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적극적인 의사가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겠지만.

‘박종철 고문’ 경찰 단독 인터뷰 “박상옥은…”

‘박종철 고문’ 경찰 단독 인터뷰 “박상옥은…”

등록 :2015-04-01 02:56수정 :2015-04-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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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고문 당사자로 지목된 경찰관 두명이 구속된 1987년 1월 경찰이 이들의 얼굴을 숨기려고 똑같은 복장을 한 경찰관 20명을 서울 서대문구치소로 함께 이동시키는 촌극이 벌어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2명 구속으로 끝낸 것에 대해
“검사들이 우리 말만 믿고
수사했다는 것 말이 안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 때 기소됐던 전직 경찰관 강아무개씨는 <한겨레>와 만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등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범인이 2명뿐이라는) 우리 말만 믿고 수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하려고 했다면 이(박종철씨 조사 주무자)를 확인하는 것은 수사의 기초, 에이비시”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이던 박 후보자와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 등이 박씨를 고문한 주무 경찰관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2명만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1차)를 끝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박 후보자가 당시 공범의 존재를 알았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면서도 “논란이 되는 사람을 왜 추천했느냐”, “(박 후보자는) 왜 자진 사퇴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상옥 후보자는 1987년 1월 1차 수사 당시 강씨를 두 차례 조사하고, 나중에야 공범으로 드러나 추가 기소된 황아무개 경위와 반아무개 경장을 참고인으로 직접 조사했다. 강씨의 발언은 경찰 쪽이 말을 맞추고 공범들이 적극 부인한 탓에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박 후보자 쪽 입장을 반박하는 취지다. 오는 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르는 박 후보자는 “1987년 3월에야 추가 공범의 존재를 알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강씨는 24일 <한겨레>와 1시간 동안 전화 인터뷰를 한 데 이어, 26·29일 두 차례 직접 만나 6시간30분간 단독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강씨와의 일문일답.
박상옥 대법권 후보자.
-박 후보자가 당시 두 차례 당신을 조사했는데?
“그 당시 기억이 잘 안 난다. 자기가 추구하던 이념이 ‘이게 아니다’가 될 때 자포자기하는 것 아닌가. 그때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1987년 1월20일과 23일 조사했다.
“수사하는 입장에서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일 수 있지 않나. 자기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축소·은폐든 뭐든 검사는 검사
참고인 조사 어땠는지 잘 봐라
왜 그런 사람을 대법관 추천했는지…”

-박 후보자가 이 사건의 축소·은폐 시도를 밝혀내려고 했는지, 아니면 그런 시도에 동조했는지 궁금하다.
“박상옥 검사가 알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알고도 축소·은폐에 가담했다면) 평생 죄책감이나 양심에…. 그 사람도 굉장히 큰 고통을 받았을 거다.”
-박 후보자가 1차 수사 때 공범 3명이 더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까?
“인지했다면 안상수 검사나 부장검사 등 위에 보고를 안 했겠나? 알았다면 당연히 보고하는 거 아닌가? 그럼 ‘이거 더 해봐’ 지시가 있었을 거 아닌가.”
-박 후보자가 공범 수사에 적극적이었나?
“축소·은폐 동조든 뭐든 검사는 검사다. 그 사람들은 수사·기소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박상옥 검사는 당시 얼마 안 된 검사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걸로 안다.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중대한 사건이라고 자기들도 생각했을 거 아닌가. 만약 (공범의 존재를) 알았다면 안상수 검사, 신창언 부장검사가 더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 박 검사가 알았다면 그 윗분들이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것에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그런 게 없는 사람보다 그런 게 있는 사람이 더 조심하지 않을까. 자기 양심이 있을 거 아닌가. 박 검사도 자신이 알고 그렇게 했다면 양심에 굉장한 짐을 지고 가는 거니, 다음엔 그렇게 안 하려고 더 신경 써서 잘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박 후보자 스스로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당시 검찰은 우리보다 더 알 수 있었다. 조사하다 나오는 걸 자기들끼리 다 얘기했다.”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내가 잘못한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기자나 다른 사람들이 더 몰아치면 그 사람은 결국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아니면 ‘정말 몰랐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그분이 그런 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자기 양심은 알지 않겠나. 누가 알든 모르든 자기 양심은 아는 거다. 자기 자신은….”
-사건 당시는 어땠나?
“굉장히 추웠다. 집이 상도동에 있었다. 아침에 보고를 하러 갔더니 위에서 지원을 가라고 해서 갔다. 내가 서울대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등을 많이 알아서….”
-그때 박종철씨 조사 주무가 누구였나?
“반○○ 경장이었다. 주무관이라고 하지 않나. 담당자가 제일 많이 안다. 미행도 하고…. 난 지원을 하라고 해서 갔다. (만약) 큰 사건을 조사했다, 그럼 공은 누구에게 있겠나? 상을 준다면 누구에게 주겠나?”
-경찰에서 공범 3명을 제외하고 2명만 처벌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나?
“경찰 차원에서 그랬겠나? 안기부, 청와대….”
-반 경장이 주무였다는 것을 박상옥 검사가 알았을 것 아닌가?
“우리만 조사했다면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큰 사건에서 우리만 딱 조사하고, 우리 말만 믿고 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항소심 공판기록을 보면, 박상옥 검사가 1차 수사 때 ‘반○○이 주범인데 왜 당신이 주범으로 돼 있느냐’고 물었다고 당신이 진술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그 질문에 답을 안 했다던데?
“당시에는 다 ‘오더’가 있던 거 아닌가. 박처원 치안감이 ‘너희가 안고 가라’고 했으니까. 그 사람이 대부, 최고, 대공에서는 최고였다.”
-수사받을 때 박상옥 검사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하나?
“기억이 없다. 나는 박상옥 검사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판검사까지 다 책임이 있다고 본다. 공안사건 영장 치면 많이 발부해주고, 돌아서면 다 깨끗한 척하고…. 박상옥 검사가 참고인 조사할 때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한번 봐라.”
-검찰이 수사기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때 (박종철씨를 주로 수사했던) 담당자가 있었을 거 아닌가. 담당자가 왜 빠졌냐는 거다. 반○○ 경장이 주무였다.”
-1차 수사 때 박상옥 검사가 그 사실을 몰랐을 수 있나?
“알았다고 하면 보고를 안 할 수 있었겠나. 안상수 검사나 신창언 검사, 위에까지 다…. 알았는데 박상옥 검사가 혼자 덮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보면 정말 참 못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그때 당시 있었던 판검사들 다….”
-검사가 누가 박씨 조사 주무인지 모를 수가 있나? 정말 몰랐다면 무능한 것 아닌가?
“안상수 검사는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조○○ 경위가 반장이었으니, 누가 주무였는지 물었어야 한다. 당연히 물어야 하는 거다.”
-만약 박 후보자가 알고도 넘어갔다면 위에서 답을 정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인가?
“지금 보면 그렇다.”
“조 경위가 안상수에 ‘공범’ 알리자
수사는 않고 교도소에 둘만 격리
안에서 죽어도 모르는 거 아닌가”

-1987년 2월27일 조 경위가 안상수 검사에게 공범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에 왜 검찰이 수사를 안 했다고 생각하나?
“이거는 정권 문제 아닌가.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된 뒤 1, 2층 사동을 다 비우고 1층엔 나, 2층엔 조 경위…. 출입이 극히 통제돼 있었는데 (우리가) 죽어도 모르는 거 아닌가.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월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제청 철회를 촉구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민원실에 제청철회요구서를 제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구속 기소 뒤 박상옥 검사나 안상수 검사가 면회를 온 적이 있나?
“만난 기억이 없다. 5월에 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공범들의 존재를) 폭로한 뒤, 2차 수사 때 왔다.”
-검찰이 공범들의 존재를 알았다면 즉시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 경위가 그걸 검사에게 말했을 때는 조사를 하라고 알려준 거다. 왜 알렸겠나. 그거 알렸다고 우리를 의정부교도소에 딱 둘만 가둬놨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 경위가 얘기한 것은 어느 정도 나와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왜 했겠나? 그런데도 수사를 안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안에 앉아서 뭘 느꼈겠나. 위협을 느꼈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한다는 느낌이 있었나?
“청와대 등 정권 차원에서 하는 거였기 때문에…. 수사할 때 (누가 박종철씨를 조사했는지) 담당자를 아는 건 에이비시다. (우리가) 담당자도 없이 했겠나. 그런데 (검찰 수사가) 안 됐다는 건 이미 위에서 하는 대로…. 뻘밭에서 자꾸 움직이면 더 내려가는 거다. 우리가 아니라고 하면 더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 그 심정을 아는가? 지금까지도 그 멍에를 지고….”
-그래서 ‘검사들도 어쩔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리 살았는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일하며 자식들, 아내 고생시키고…. 자괴감이 들었다.”
-검사가 적극적으로 수사를 했다면?
“당시에는 검사도 그냥 형식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까놓고 서슬이 시퍼런 상황에서 검사가 무슨 힘이 있나? 안기부에서 공안사건, 대공사건은 다 조종했다.”
“나는 죄인이다,
지금도 못 벗어나고 있다”
 

-하려고만 했다면 검사도 역할을 할 수 있었지 않나?
“자기 직분과 보장된 권한이 있는데 양식 있는 검사라면…. 박상옥 검사가 만약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면 평생 죄인으로 사는 거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다? 누구도 모르는 거다. 자기 혼자만 아는 거지. 그런데 참고인 조사도 했다면 누가 담당자인지, 그걸 조사하는 건 기초 아닌가. 당시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검사들에게 그건 에이비시 아닌가. 당시 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라면 하고….”
-박상옥 검사가 대법관이 되려고 한다.
“전에 어느 자리까지 했나? 검사장까지 했다면 나름대로 검증했을 거 아닌가? 검증해서 시킨 사람은 뭔가? (논란이 되고 있다면) 자기가 그만 안 두나? 자진 사퇴 안 하나? 왜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추천했는지…. 나는 죄인이다. 지금도 못 벗어나고 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유가족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세월호 특위는 하나마나… 퇴장했던 새누리당 의견 채택해 예산·권한 대폭 축소
입력 : 2015-03-31  15:51:20   노출 : 2015.03.31  18:44:43
조윤호 기자 | ssain@mediatoday.co.kr 
“성역 없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을 보장하기에는 불충분하고 미흡한 방안.”
4.16 참사 희생자·실종자 가족대책위가 지난해 11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에 대해 내놓은 입장이다. 가족대책위는 당시 여야 합의안을 수용하면서도 여당추천위원이 위원회 인력과 예산에 개입하도록 한 것이 성역 없는 조사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5개월이 지난 현재, 유가족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27일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해 유가족은 물론 이석태 특위 위원장까지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이 특위의 시행령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과 정부의 합작품이다.
인력부터 줄었다. 특위는 특위 사무처에 125명(120+정무직5)을 요구했으나 시행령은 특위 인력을 정무직 5명(위원장 등 상임위원)을 포함해 정원을 90명으로 줄였다. 특위는 사무처에 3국 1관(진상규명국·안전사회국·지원국·기획행정담당관)을 두자고 했으나 시행령은 기획행정담당관을 기획조정실로 격상시키고 안전사회국과 지원국을 과로 격하시켰다. 예산도 특위가 책정한 192억 원에서 130억 정도로 감축될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과 인력 조정은 애초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현재 청와대 정무특보로 활동 중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특위를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했다. 세금도둑 발언의 근거는 특위 조직 구성안이었다. 이 내부 문서는 여당 추천 조대환 특위 부위원장의 지시로 해수부 공무원이 작성했고 조 부위원장이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 협의 없는 단독행동이었다. 
  
▲ 세월호 특위가 제안한 시행령안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시행령안 사이의 인력규모 및 인력구성 비교. 세월호 특위 제공.
 
“기획조정실장이 운영하는 세월호 특별조사위”
정부 시행령에서 가장 눈여겨 볼 대목은 기획조정실이다. 공무원이 임명될 기획조정실장은 위원회 업무를 종합·조정하고 각 소위원회 업무 분야를 종합 기획·조정할 수 있는 기능과 권한이 주어진다. 나아가 기획조정실장에게는 조사신청의 접수 및 처리를 총괄할 기능과 권한까지 주어진다. 
권영빈 특위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이 29일 기자회견에서 “기획조정실장이 운영하는 특별조사위”라고 비판한 이유다. 파견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의 권한이 워낙 막강해 특위 위원장과 각 소위원회 위원장인 상임위원의 권한이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위원회 업무와 사무를 구분하자는 조항도 삭제됐다. 특위는 각 소위원회 위원장이 해당 국 업무를 지휘 및 감독하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업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상호 배제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삭제되면서 공무원들이 대거 포진한 사무부서가 특위 업무 기능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기획조정실장 외에도 주요 요직에 공무원들이 배정된다. 기획총괄담당관, 운영지원담당관, 조사1과장, 안전사회과장 등등. 특위는 파견 공무원 대 민간비율을 50대 70으로 설정해 독립적인 조사활동을 보장받으려 했으나 시행령은 이 비율을 42:43으로 구성했다. 비서, 기사업무를 수행하는 민간인원을 제외하면 42:39로 공무원 숫자가 더 많다. 실무를 맡을 6~7급 공무원 중 공무원은 6급, 민간 인원은 7급으로 민간인원을 하급직위로 배치시킨 것도 문제다.
정부가 파견한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조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특히 공무원 파견인력 중 해수부가 가장 많은 9명(21.4%)이다. 해경이 소속된 국민안전처는 8명(19.0%)이다. 세월호 참사의 주무부서인 해수부와 구조를 담당한 해경이 속한 국민안전처 공무원들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맡기는 셈이다.
  
▲ 세월호 특위가 제안한 시행령안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시행령안 사이의 조직구성 비교. 세월호 특위 제공.
 
정부, 새누리당 추천 위원의 제안을 ‘초이스’했다?
정부의 시행령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 추천 특위 위원 5명은 지난 2월 12일 특위 전체위원 간담회에서 특위의 시행령안을 표결할 당시 이에 반대해 퇴장했다. 그리고 2월 14일 정부에 별도의 시행령안과 예산 관련 의견을 전달했다.
이 소수안의 내용 다수가 정부 시행령에 포함됐다. 사무차장을 신설하자는 의견은 ‘기획조정실장’으로 반영됐고, 실무자 중심으로 진상조사 인력을 확충하자는 의견은 ‘3국의 1국 2과 축소’로 이어졌다. 특위 독립성의 핵심 조항인 ‘업무·사무 분리’ 삭제도 여당 추천 위원들 의견이었다.
이석태 위원장은 29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우리 안(특위)과 5인 소수안이 있는데 5인 소수안을 ‘초이스’(선택)했다고 표현했다”고 밝혔다. 3월 10일 정부와 특위 위원들 간의 첫 비공식 협의 자리에서 정부 쪽 인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 이 위원장은 “정부가 공식 기구인 특위 안과 소수의견을 동등하게 보고 선택했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특위를 뭘로 보는지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당 위원들은 세월호 특위가 운영되는 내내 특위를 안팎에서 흔들었다. 조대환 부위원장은 공무원에 내부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거나 파견 공무원들의 철수를 지시하는 등 공무원들을 기획·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황전원 위원은 특위 설립준비단 해체를 주장하고, 반대 기자회견을 하면서 분란을 만들어냈고 차기환 위원 등은 특위 회의 중에 반대 의견을 내거나 퇴장하는 식으로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다.
  
▲ 30일 오후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 농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세월호 특별법까지 무시한 정부 시행령?
정부 시행령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목적과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점이다. 특별법 제1조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해·재난의 에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하여 안전한 사회를 건설·확립하며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을 입법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 제5조는 세월호 특위의 조사대상을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 및 구조구난 작업에 대한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라고 한정짓고 있다. 조사대상을 정부조사 결과 또는 자료에 한정시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기존 정부조사에 면죄를 부여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안전사회의 범위도 축소됐다. 특별법 5조는 특위 업무로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제시한다. 하지만 시행령 6조에서는 그 업무가 ‘4.16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재해·재난 예방’ ‘4.16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고재발 방지’ 등으로, 즉 세월호 참사에 관한 사항으로 축소됐다.
박종운 세월호 특위 상임위원이 시행령의 국무회의 통과 이후 “위법 무효 확인소송 및 각종 여러 가지 법적 절차들을 밟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30일 오후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16시간 농성을 선포했다.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단식과 농성을 반복했던 유가족들에게 또다시 잔인한 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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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넴초프 암살현장을 가다①

사람이 죽어도, 경제가 어려워도
꿈쩍도 않는 '불가사의한' 지지율

15.03.31 21:06l최종 업데이트 15.03.31 21:44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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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의 상징이 된 붉은 광장의 성 바실 대성당. 오른 쪽에 크렘린 궁의 담장과 탑이 보인다.
ⓒ 강인규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최고'나 '제일'이라는 단어를 쉽게 붙인다. 하지만 이 주관적 평가어는 대상의 실체를 보여주기보다, 말하는 이의 편견이나 취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여기서 내 편견을 하나 드러내자면, 나는 모스크바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는다. 동의하지 않을 분들이 많을지 모르나, 애인이나 배우자가 '가장 예쁘'거나 '가장 멋진' 사람이 되는 상황을 납득한다면, 큰 반발 없이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인구 수많큼 많을 수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도시 수만큼 많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도시는 아무리 예쁘다고 칭찬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 '모스크바 콩깍지'를 합리화하기 위해 꽤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나는 이 글에서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전혀 아름답지 않은' 사건을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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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붉은 광장 끝에 위치한 볼쇼이 모스크보레츠키 다리.
ⓒ 강인규

2월 27일 자정 무렵, 모스크바 시내에서 남녀 한 쌍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저녁을 먹고, 붉은 광장을 지나 남자 집 방향으로 걷는 중이었다. 연인은 크렘린궁의 붉은 벽돌담을 지나, 모스크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접어들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산책하던 길은 그리 으슥한 장소가 아니었다. 환한 오렌지 빛 가로등이 다리 위를 비추고 있었고, 가로등 사이로 치렁치렁 드리운 (러시아를 상징하는) 흰색, 파란색, 빨간색 조명은 거의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11시 40분쯤, 정체 불명의 사내가 이들 뒤에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총을 겨눴고, 일고여덟 번의 총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등과 머리에 네 발을 맞고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죽었다. 총알은 뇌, 심장, 간, 위를 관통했다. 범인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도망쳤다.

누가 넴초프를 쏘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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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스 넴초프가 살해된 다리 위의 모습. 오른 쪽에 크렘린 궁이 보이고, 다리 오른쪽 난간을 따라 조화가 늘어서 있다.
ⓒ 강인규

이 사건은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살해당한 남자는 보리스 넴초프로, 현 러시아 정부를 공공연히 비판해온 야권 지도자였다. 그런 탓에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을 거라고 단언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 상황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기에,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넴초프가 저격당한 곳은 말 그대로 '대로변'이었다. 이들이 걷던 인도 옆으로는 왕복 6차선 넓은 도로가 놓여 있어, 늦은 시간에도 꽤 많은 차가 다닌다. 범인은 목격되기 쉬운 곳을 범행장소로 택한 것이다. 더구나 다리 앞쪽에는 러시아의 상징인 붉은 광장과 바실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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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객들이 다리 위에 가져다 놓은 사진과 꽃.
ⓒ 강인규

무엇보다 사건현장은 크렘린 궁을 지척에서 마주보는 곳이다. 설사 정부가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는다 해도, 그런 장소를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궁 앞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눈이 어디로 쏠리겠는가? 게다가 국제적 관광지에서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은, 그 잔혹한 행위를 전 세계로 생중계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영국 보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이 사건을 '그림엽서 살인'이라고 조롱한 것을 보라.

현재 러시아의 대외관계는 냉전 이래 최악의 상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무력 개입한 후 유럽과 미국 모두 등을 돌렸고, 갖가지 경제제재로 러시아를 옥죄고 있다. 여기에 주요 수출품인 원유 가격이 폭락하면서,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1년 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고, 그로 인해 러시아 국민들은 치솟는 물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러시아의 2월 물가상승률은 무려 17%에 달했다. 식료품 가격도 가파르게 올라, 양파와 당근 가격은 12월에 비해 30% 이상 올랐고, 양배추 가격은 거의 50% 가까이 폭등했다. 이런 살인적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것이고, 푸틴의 굳건한 지지율에도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멈추지 않는 추모 행렬, 계속되는 푸틴의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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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넴초프가 총격을 받고 쓰러진 자리에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무덤처럼 쌓여 있다.
ⓒ 강인규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대외 관계 개선에 꽤 공을 들여왔다. 푸틴은 이미 작년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관계 회복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정적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는 것은 자해행위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넴초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은 푸틴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오바마는 2009년 모스크바 방문 당시 그를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이 시점에서 사건의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러시아 내에서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정보 교환의 자유 등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과 자유가 과거보다 훨씬 악화되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넴초프 암살 이후 많은 러시아 국민들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다. 그가 살해된 자리에는 꽃 무덤이 솟아올랐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한 송이 두 송이 가져다 놓은 꽃이 어른 키만큼 쌓인 것이다. 그가 쓰러진 곳만이 아니다. 다리 전체에 긴 '꽃길'이 생겨났고, 그를 기리는 촛불도 다리 난간을 따라 끝없이 늘어섰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추도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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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넴초프가 사망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애도는 계속되고 있다. 비 오는 날에 추도객이 꽃을 가져다 놓고 있다.
ⓒ 강인규

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정부를 비난하거나 푸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영미언론들은 사건 이후 추모 인파와 시위, 비판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는 러시아의 지배적 정서와 거리가 멀다. 사건 직후 현장에 가본 사람들은 적막에 가까울 정도로 평온한 모스크바 모습에 놀랐을 것이다.

모스크바의 '평화로움'은 푸틴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반영한다. 3월 말 현재, 푸틴의 지지율은 80%를 넘어선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가졌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같은 시기에 '회복'했다는 지지율이 40%임을 생각하면, 러시아에서 푸틴이 누리는 엄청난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박 대통령처럼 '중동 효과' 같은 호재에 힘입은 것도 아니고, 깊어지는 경제난과 넴초프 사건과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는 가운데 얻어낸 지지도다.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넴초프 사태 이전의 지지율은 더 높은 86%였다. 그의 인기는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임 기간 60%를 넘긴 것은 단 한 번(2014년 4월 첫 주)뿐이었다. 반면에 푸틴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수상으로서든, 대통령으로서든 지지율이 단 한 번도 60% 중반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불가사의한 푸틴의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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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브릭스(BRICS)' 5개국 정상. 푸틴은 대외적으로 여러 비판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 Roberto Stuckert Filho

이 가공할 지지율은 넴초프 암살의 '푸틴 배후설'을 반박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한마디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넴초프가 멀쩡히 살아 정부를 비판해도, 푸틴에 대한 국민의 성원이 하늘을 찌르는데, 무엇 때문에 위험하고 골치 아픈 일을 벌이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정부를 의심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자, 대통령 공보비서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성명을 발표했다. "넴초프는 결코 푸틴 정부를 위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의 인기에 비하면, 보리스 넴초프의 영향력은 보통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지의 숀 워커 모스크바 특파원은 이를 언급하며, "정부 관계자가 (망자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놀랍기는 하지만,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썼다. 넴초프가 푸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것은 사실이나, 그의 영향권은 소수 진보진영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워커는 비판자를 공공연히 살해하는 것이 "푸틴 정부가 정적을 다뤄온 방식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고소·고발 남발, 가택연금, 구금 등으로 괴롭히고 귀찮게 해 힘을 빼는 것이 훨씬 러시아 정부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정부가 해온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비판세력을 억눌러온 것이다.

러시아 전문가로, 미 정부 정책자문 역을 지낸 폴 스트론스키 역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고문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협박하거나, 가두거나, 완력으로 괴롭히거나, '간첩' 딱지를 붙여 나라를 떠나게 만드는 게 인사를 다루는 일반적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넴초프는 누가, 왜 죽인 것일까?

죽어서도 편히 잠들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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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넴초프 기념물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사람. 사건 후 시간이 지나면서 넴초프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공공연히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 Gosha Tarasevich

지금으로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명백히 밝혀지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권력의 실세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나, 범인의 정체나 살해 동기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정부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지난주 초, 넴초프 추모 기념물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추모객이 설치한 '넴초프 다리' 표지판을 누군가 떼내어 검은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표지판을 쪼개 꽃 위에 던지고, 영정 사진 위에는 '러시아의 이익을 좀먹는 반역자'라고 써놓았다.

놀라운 일은, 이런 일을 몰래 하기는커녕,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놓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넴초프 다리' 안내판은 얼마 뒤 제자리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화가 봉변을 당했다. 쓰레기 봉투를 든 사람이 몰려들어 꽃과 사진을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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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가진 '넴초프 다리' 표지판. 기념물을 훼손한 사람들이 사진 위에 "러시아의 이익을 해치는 역적"이라고 쓴 종이를 붙여놓았다. 이들은 추모물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자랑스레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 Gosha Tarasevich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세월호 유족 모욕, 추모 리본과 현수막 훼손, 신은미 시민기자에 대한 폭탄 테러, 주한 미대사 피격으로 드러난 폭력적 민족주의, 경제난 속에서도 여전히 견고한 대통령의 지지율. 러시아와 한국을 면밀히 관찰하면, 다른 역사, 문화, 경제적 배경을 지닌 두 나라 사이에 놀랄 만한 공통점이 드러난다.

러시아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시사점을 줄까?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