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19일 중국 선양에서 시작됐다. 김완수 6.15북측위 위원장(왼쪽)이 만찬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 3자가 다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서 좋은 공동문건을 내서 우리 민족 앞에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서로 잘 논의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도록 하자. 우리 북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
김완수 ‘6.16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6.15북측위) 위원장은 19일 중국 선양(심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북해외 공동위원장회의’ 만찬사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후 7시 40분(이하 현지시간, 한국시간 8시 40분)께 선양시 서탑가 모란관에서 열린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에는 6.15남측위 이창복 상임대표의장과 6.15북측위 김완수 위원장, 6.15해외측위 손형근 부위원장(위원장 대행)이 손을 맞잡았다.
만찬을 주최한 6.15북측위 김완수 위원장은 “6.15 북과 남, 해외가 올해 들어와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데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다”며 “여러분들을 열렬히 뜨겁게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또한 “남쪽에서 오신 분들이 큰 마음 먹고 대범하게 여기 다 오시겠는지 좀 걱정이 됐는데 마주앉으니까 '일이 잘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남측 정부가 6.15남측위 대표단의 북한주민접촉 신청을 수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측 대표단이 참석한 점을 평가한 대목이다.
통일부는 하루 전인 18일 오후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태도 변화가 없고, 도발위협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민간교류를 실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여 6.15남측위 및 양대노총의 접촉 신청을 불허했다”면서 “단체 측에서 불법접촉을 강행한다면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완수 위원장은 “올해는 정말 뜻깊은 해고, 또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중대한 시기”라며 “올해를 우리가 어떻게 맞이하고 넘기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북남관계 문제, 통일 문제에서 중요한 계기”라고 말했다.
특히 “얼마 전에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가 성과적으로 결속됐다”면서 “북측의 전체 인민이 역사적인 당대회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에 총 매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어떻게 하나 올해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또 통일문제에서 새로운 전진을 가져오도록 하는 문제”라고 강조하고 “이 상봉이 좋은 결과물을 내서 우리 동포들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지도록 하자”고 건배를 제의했다.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하고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잘 못 만나는데, 앞으로 가능한 대로 자주 만나서 좀더 흉허물 없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이창복 의장은 “우리는 모일 때 민족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며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고, 같은 핏줄이고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적어도 통일 될 때까지는 민족주의를 틀어쥐고 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또한 4.13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언급하고 “우리가 희망하는 통일도 숨통을 틀 수 있는 계기가 오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보면서 열심히 하려고 한다”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우리 다 같이 노력하자”고 건배를 제의했다.
일본에서 출발하기 전 곽동의 6.15해외측위 위원장을 만나고 왔다는 손형근 부위원장은 “곽동의 위원장의 건강이 좀 회복됐고, 말도 잘 하시고 조금 걸어서 이동할 수도 있다”면서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여러분에게 인사 전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완수 6.15북측위 위원장은 “건강하시라고 박수를 쳐주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손형근 부위원장은 “통일을 열망하는 우리 동포, 겨레 모두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이번에 회의를 통해서 반드시 경직 상태에 있는 남북 상태를 개선하고 제2의 6.15 시대를 열기 위해서 3자의 굳은 합의를 내오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만찬을 마친 참가자들 일부는 실무협의를 이어갔고, 20일 오전부터 같은 장소에서 6.15민족공동위 공동위원장회의를 진행, 이날 중으로 공동문건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남측 정부가 민간교류를 차단하고 있어 당장 코앞에 닥친 6.15공동행사 추진부터 난관이 예상되며,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부문별 교류도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사실상 공석이 된 6.15해외측위 위원장 선출 문제를 비롯한 6.15민족공동위 강화를 위한 방안들도 모색될 것으로 알려졌다.
▲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는 20일 회의를 진행한 뒤 공동문건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번 회의에 6.15남측위는 김삼열 상임대표(독립유공자유족회장)와 이승환 공동대표(민화협 공동의장), 한충목 6.15서울본부 상임대표(진보연대 상임대표), 권오희 6.15여성본부 상임대표(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민족화해분과위원장), 박석민 공동집행위원장(민주노총 통일위원장), 최진미 공동집행위원장(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이 함께 했다.
6.15북측위는 양철식 부위원장과 박성일 사무부국장, 김태준,박영철 위원 등이 참석했고, 6.15해외측위에서는 한길수 위원, 조선오 사무국장, 김영희 사무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한편, 2005년 6.15남측위원회와 북측위원회, 해외위원회가 함께 구성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는 6.15 남측위원회와 북측위원회, 해외측위원회 위원장들이 참가하는 ‘남북해외 공동위원장 회의’를 주요한 회의체로 운영하고 있다.
1980년 5월 21일 시민들이 전날 도청 앞 저지선을 뚫으려다 멈춘 버스를 바리케이드로 이용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다.5·18기념재단(황종건) 제공
1995년 ‘5공 재판’ 기록 보니
“용기 잃지 말고 분발하라” 중앙정보부장 서리 명의로 당시 정석환 전남지부장 통해 최웅 여단장에 100만원 전달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금남로 집단 발포로 시민 수십명을 사살한 공수부대 지휘관에게 발포 다음날 “용기를 잃지 말고 분발하라”며 격려금 100만원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월19일 재경 전남 출신 유력인사 8명을 광주에 보낸 뒤 이들에게 따로따로 50만원씩 모두 400만원의 돈봉투를 챙겨주며 계엄군에 대한 우호 여론 조성에도 나섰다.
이는 80년 5월 당시 전 전 대통령이 군과 민간 영역을 장악한 채 5·18 관련 상황을 통제·관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안사령관은 정보·수사 책임자요”라며 “광주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라고 했던 그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판 기록을 보면,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는 80년 5월21일 계엄군 집단 발포 다음날 해당 공수부대장에게 격려금을 전달했다. 정석환 전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는 1995년 12월 검찰 조사에서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80년 5월22일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11공수여단장인 최웅에게 격려금 100만원을 전달하도록 했다”고 진술했다.
11공수여단은 80년 5월21일 오후 1시부터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해 시민 34명이 숨졌다. 정 전 지부장은 “그날(5.22) (전화 통화한) 전두환 부장 서리가 11여단장인 최웅 장군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어 있을 터이니 ‘용기를 잃지 말고 분발하라’고 전해달라. 중앙정보부장 명의로 격려금 100만원을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통화하고 1시간 뒤 정 전 지부장은 최 장군을 지부장실에서 만나 ‘중앙정보부장 서리 전두환’ 명의로 100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정 전 지부장은 최웅 장군에게 전두환 부장 서리와 전화 통화를 연결해줬더니 최 장군이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초기 광주의 ‘민심순화를 위한 선무활동’을 직접 지휘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정 전 지부장은 80년 5월19일 오후 5시께 전두환 부장 서리와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검찰에서 말했다. 그는 “당시 전 부장이 ‘광주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같아 특별민심순화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재경 전남 출신 유력인사 8명이 헬기 편으로 오늘 저녁 7시에 광주비행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들을 급히 내려보내느라 여비도 못 줬으니 지부 예산 중에서 활동비를 마련해 이들에게 지급하라’고 하더라”고 진술했다.
정 전 지부장은 “당시 밤 10시께 전남도청 도지사실로 가서 설득 대상자들의 명단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현금 50만원씩이 든 돈봉투를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명의로 각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1. 2014년 4월 22일, 그림 –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그림입니다 생때같은 자식 살려내라는 부모 심정이 종북이면 나도 종북이요. 일주일이 다되도록 우왕자왕, 정부가 한게 뭐냐 따지는게 빨갱이면 나는 새빨간 빨갱이요… 참사 1주일,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유가족들을 이렇게 봤습니다.
2. 그리고 참 많은 일이 있었죠. 2014년 9월 14일 망원동 어느 가게 앞입니다.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란 문구로 시민들의 마음은 이어졌습니다.
3. 하지만 2014년 11월 22일 서울시청 분향소가 철거됐습니다. 시민들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결국 공간을 돌려줘야 한다는 일부 여론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분향소가 철거됐습니다.
4. 해가 바뀌었습니다. 2015년 2월 26일 모진 바람이 부는 청와대에서 미수습자 허다윤 양의 부모가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윤이를 찾아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5. 2015년 4월 2일…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는 안되는 날입니다. 참사 1년, 모진 4월이 돌아온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광화문에서 유가족들이 삭발을 했습니다. 기자도, 현장의 시민들도, 유가족도 모두 통곡한 날입니다.
6. 2015년 4월 4일 삭발을 한 가족들이 내린 결정은 무엇일까요. 바로 안산에서부터 광화문까지 희생된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도보행진하는 것이었습니다 .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해도 해도 안되니, 국민들께…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 뿐이었습니다. 그날의 1박 2일을 함께 걸으며 찍었던 몇 장의 기록입니다.
7. 2015년 4월 15일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모진 그날이 왔습니다. 참사 전날, 엄마들은 꽃 한 송이 들고 그날 그곳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아무말도 못하고 다들 울기만 했습니다.
8. 그리고 2015년 4월 16일 참사 1주기 미국 방문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갑자기 팽목을 찾았습니다. 문제는 현장에 유가족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왜 유가족 하나 없는 현장을 찾았을까요? 유가족들은 왜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했을까요? 이유는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9. 2015년 4월 19일 대통령이 팽목까지 찾았지만 달라진게 있을까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거짓 희망의 모욕감만 줬죠.
가족들은 광화문 72시간 연좌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엄마들은 연행됐고, 연대하려는 시민들은 경찰 차벽에 막혀 물포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농성은 거의 두달 내내 지속됐습니다. 당시 찍은 사진도 함께 보시겠습니다.
10. 2015년 4월 30일입니다 그렇다면 특조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석태 위원장 등 특조위원들이 ‘일 좀 하게 해달라’며 청와대에 항의 방문을 하고 광화문에서 연좌 농성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11. 2015년 5월 2일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경찰이 시민들과 유가족에 맞서 소화전 이용에 물대포용 물차 채우는 장면입니다. 특조위의 농성이 이어지고 가족들의 집회가 계속되던 작년 5월 2일 자정무렵의 안국동 풍경입니다.
12. 그리고 5월 2일 아침입니다. 안국동에서 밤을 샌 유가족들은 청와대로 향하던 중 결국 목줄을 감습니다. 가족들이 어쩌다 목줄까지 감아야할 상황이 됐을까요?
13.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아이들 떠난 자리는 그대로였습니다. 작년 어버이날,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정예진 양의 방입니다.
14. 5월 18일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아는 걸까요? 작년 5.18일입니다. 광주 어머니, 세월호 부모를 안아주시더라고요. 잘 버티라고, 함께 이겨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15 5월 20일 경… 이런 가운데, 우리 다윤 부모님은 세월호 인양 피켓팅을 청와대에 이어 홍대까지 늘렸습니다. 오전엔 청와대, 오후엔 홍대… 이렇게라도 해야만 다윤이가 빨리 올라오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에 선 겁니다. 작년 5월 20일의 풍경입니다.
16. 6월 12일 한편 승현아빠 이호진씨는 100일의 시간동안 팽목에서부터 광화문을 ‘삼보일배’로 절을 하며 올라왔습니다. 그의 가슴엔 ‘반면교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가르침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17. 그리고 2015년 6월 28일 416연대가 창립합니다. 이유는요? 아픈 사람들, 아직 진실규명 밝히지 못했다 생각하는 시민들이 모여 처음 그 약속 대로 잘해보자는 의미로 보입니다.
18. 하지만 현실은… 진실규명을 바라는 국민들의 서명조차 전달이 제한됐습니다. 2015년 6월 30일 청와대 앞 풍경입니다.
19. 이렇게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2015년 9월 14일 미수습자 9인을 위한 세월호 버킷리스트 공연이 홍대에서 열렸습니다. 다윤 엄마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딸을 찾지 못했다는 죄스러움 때문이라 했습니다.
20.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2월까지 총 4번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과정 속에 시민들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을 외치며 맞섰지만 물포에 맞아 쓰려졌습니다. 1차 민중총궐기 때 물포에 맞아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는 6개월이 넘는 지금까지 쓰려져 있습니다. 경찰과 당국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21. 2016년 겨울 하지만 절망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가슴에 품고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딸과 함께 나온 시민 김재진 선생님과 부산 서면에서 700일 넘게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을 위해 힘쓰는 국민티비 조합원들입니다. 시민들은 잊지 않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22. 그리고 지난 4월 16일 세월호 2주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만의 시민이 광화문에 모여 외쳤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상규명하라” 이날 부천에서 올라온 고3 학생은 자세 한 번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23. 5월 5일부터 14일 단원고 기억교실 협약식과 아이들 ‘제적’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가족들은 다시 거리에서 밤샘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단원고 기억교실을 비워주는 협약식이 지난 9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학교와 교육당국이 희생된 아이들을 제적처리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제적처리 했냐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이 정말로 궁금했던 건, 그 사실을 세달 넘게, 왜 감춰왔냐는 점입니다. 단원고 교장은 끝내 몰랐다는 말로 일축했습니다. 그리고 제적 처리는 큰 논란이 발생하자 취소됐습니다.
5월 17일 녹화일 기준으로 현재까지 세월호 참사 763일의 기록입니다. (국민TV 김종훈 기자)
▲ 한 손엔 꽃, 한 손에 촛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 "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손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촛불이 하나둘 켜졌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촛불을 들었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돌아가며 한국 사회에 넓게 퍼진 여성 혐오·차별을 고발했다.
17일 새벽에 벌어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이 여성 혐오에 따른 범죄인 것으로 알려진 후,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쪽지가 나붙고 국화가 쌓였다. 이곳은 어느새 거대한 '추모의 벽'으로 변했다.
추모를 넘어 한국사회에 널리 퍼진 여성 혐오·차별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들 역시 이 같이 외쳤다.
"어쩌면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자신을 스물세 살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사건을 다룬 기사를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강남역 10번 출구는 정말 번화한 곳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였다, 이후 피해자를 조롱하며 '잘됐다'라고 쓴 기사 댓글을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여성이 당하는 성희롱·성폭력은 빈번하고 흔한 경험"이라고 토로했다.
김정민(22)씨는 "어젯밤에 나 역시 강남역에 있었다, 내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또한 혐오범죄이기 때문에 그냥 길가다 여자로 태어난 게 재수 없어서 온몸을 칼로 난자당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오원춘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멀쩡히 잘 살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여자인 게 재수 없어서 토막살인을 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화성 살인 사건이나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이나 트렁크 살인사건 같은 걸 볼 때마다, 나는 여자라서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녀'라는 낙인과 함께 죽음마저 조롱당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저절로 깨달았다."
그는 "이번 참사로 인해 여성혐오범죄에 대해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만은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너무 늦었다"면서 "이제야 묻지마 살인이라는 워딩이 너무나도 손쉽게 젠더폭력을 은폐했다는 것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어쩌면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다, 존엄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멸시, 혐오, 비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다"면서 "여성으로서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존엄하고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은 피의자를 두고 목사를 꿈꾼 청년이라고 소개한 기사를 비판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내 꿈이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녀'가 될 것이다, 화장실에서 죽었다고 어떻게 '화장실녀'라고 할 수 있느냐"면서 "정말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피해자다,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사회가 이번 사건의 공범이다"
▲ 강남역 밝힌 초의 '붉은 눈물'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 끊임 없이 늘어나는 추모의 글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이날 촛불문화제를 처음 제안한 양지원(30)씨는 "(이번 범죄에는) 사회저변에 넓고 깊게 깔린 여성혐오 혹은 여성멸시라는 기제가 있었다, 언론은 이 사건을 자꾸 정신에 이상이 있는 한 개인의 일탈쯤으로 보도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사건의 책임을 우리 사회 전체에 묻고 싶다,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들이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권력과 국가는 이에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단순한 개별적인 사건으로 치부해왔다"고 꼬집었다.
"'이 범죄의 희생자가 나일 수 있었다', '다음 범죄의 타깃이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여성들을 휩쓸고 있다. 사회 전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이번 사건의 공범이다. 약자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범죄를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시민들이 직접 해내야 한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남성들도 많았다. 마이크를 잡은 최황씨는 "'남자로서 부끄럽다',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면서 "이 태도는 중요하다, 이 사회에서 여성혐오를 없애고 유리천장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성들 스스로 인정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나와 관계없으니 남자 전체로 확대시키지 말라'는 태도를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여성 혐오·차별을 고발하는 자리가 많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일 오후 신촌에서 '여성폭력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나는 □□□에 있었습니다'를 열 예정이다. 또한 21일 오후에는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추모 집회가 열린다.
▲ 강남역, 애도의 꽃을 든 남자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가 17일 벌어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변한 가운데, 19일 늦은 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추모 열기를 조롱하는 화환을 이곳에 보냈다. 화환에는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 ’일간베스트저장소 노무현 외 일동‘이라고 쓰여 있다. 이후 시민들은 이 화환에 '부끄러운 줄 아세요' 등의 포스트잇을 붙여 문구가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안홍기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가 17일 벌어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변한 가운데, 19일 늦은 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추모 열기를 조롱하는 화환을 이곳에 보냈다. 화환에는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맙시다‘, ’일간베스트저장소 노무현 외 일동‘이라고 쓰여 있다. 이후 시민들은 이 화환에 '부끄러운 줄 아세요' 등의 포스트잇을 붙여 문구가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안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