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9일 토요일

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입력 : 2018.09.29 06:00:03 수정 : 2018.09.29 14:07:27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출산드라’는 그만 찾으세요
인구절벽에 온 나라가 출산 구호…가임지도까지 
경기 침체가 과연 저출산 탓만인지 따져볼까요
인구 문제는 21세기 한국의 ‘공인’된 공포 중 하나다. 포털 사이트에 인구절벽을 검색하면 이를 언급한 언론보도가 지난 6년간 1만건이 넘는다. 공포스러운 미래는 대개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한국은 8년 후 다섯 명 중 한 명이 고령자(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된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다.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인구(15~64세·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부터 이미 줄고 있다. 곧 내수는 얼어붙는다. 사회보장제도로 부양해야 할 노인 규모가 커 국가재정도 악화한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경기는 침체하고 모두가 신음한다.
그러나 두려울수록 따져봐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상수지만 나머지는 ‘변수’일 수도 있다.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인구절벽이 일본식의 ‘잃어버린 세월’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되곤 하지만, 일본 내에서조차 저출산·인구감소와 ‘잃어버린 세월’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또 ‘65세 이상’을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고령자로 보는 것은 적절할까. 한국이 다민족사회가 된다면 저출산이 정말 재앙일까.
온 국가가 ‘출산’을 외치고 있다. ‘출산력’이라는 단어가 적힌 공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정집에 붙어 있거나, 가임여성지도가 만들어지는 등 여성을 출산기계 취급하는 장면이 종종 매스컴을 탄다. 정책 목표가 태어난 아이의 행복할 권리가 아니라 ‘출산’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잠시라도 ‘출산’이라는 구호는 접어두자. 대신 주어진 인구 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그럭저럭 잘 살아볼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미래 상상에 영감을 줄 만한 역사적 사례, 연구, 통계 등을 모았다. 지금 절실한 건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받아들이고 힘을 합해 잘 헤쳐나가기 위한 ‘건강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경기 침체, 과연 저출산·고령화 탓인가
‘소멸해가는 나라’ ‘출산파업·임신파업·결혼파업’ ‘자기중심 사회’….
2018년 한국 언론보도가 아니다. 2006년 독일의 유력 일간지와 시사주간지들이 앞다퉈 쓴 표현들이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아이 안 낳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차 대전 직후에도 독일에선 인구 문제가 걱정이었다. 
■ 독일 타산지석 삼는 ‘인구감소 생각법’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왜 문제인지 당시 독일인에게 묻는다면 대체로 ‘민족’을 얘기했을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 공개적으로 ‘인구감소’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1년부터다. 1932년엔 인구통계학자인 프리드리히 부르크되르퍼가 <청소년 없는 민족>을 펴냈다. 민족 사멸에 대한 우려가 스며들던 시기였다. 
이후 나치 치하에서 인구학은 우생학과 부적절하게 결합했다. 나치는 “우월한 혈통”(아리아인)에 국한해 대대적인 출산장려책을 펼쳤다. 논문 ‘나치 독일의 가족과 인구정책’(유정희)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은 실형에 처했고 수천명의 매춘부를 체포했다. 이어 ‘결혼 자금대여’ 정책을 시행했는데, 여성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가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대출원금은 자녀를 4명 낳으면 사라진다. 다섯 번째 아이부터는 매달 자녀양육비를 줬고 나중엔 세 번째 아이로까지 확대했다. 여섯 번째 아이를 낳는 여성은 저명인사를 아이의 대부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대출을 받은 부부들은 대개 아이 한 명을 낳고 현금으로 갚았다. “가치 있는” 집단으로 여긴 당 간부의 기혼자조차 평균 자녀 수가 1.1명이었다. 반면 나치는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손의 출산을 금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독일 민족 이외 민족의 출산을 막았다. 205개의 우생학 재판소를 설치해 5만6000건의 강제 불임시술을 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50~1960년대 독일에서도 베이비붐이 일었다. 그러나 이내 출산율은 또 떨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저출산이 도마에 올랐다. 
민족 소멸 우려 돈 주며 출산장려 
이후 국가·미래 불안 내세웠지만
유럽서 가장 아이 안 낳는 나라돼 
현재 독일, 인구정책 없지만 풍요
 
유럽 국가, 저출산·고령화 대책 
개인 삶 겨냥한 구체적 전략 없고
가족·노동·이민·재정 정책 간 
유기적 결합이 성장 돕는다 인식

<모성애의 발명>의 저자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2006년 당시 언론과 저명인사들이 주도했던 저출산 논란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논쟁을 바라보면 빠진 게 무엇인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21세기 독일의 저출산 논의에서 “국가적 호소”나 “민주주의적 어조”는 적어도 “공식 공간”에서만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세대 간 합의의 파기’ ‘불안한 연금’ ‘사회복지 체계의 과중한 부담’ ‘경기침체’ 같은 표제어가 전형적인 공포의 시나리오가 되었다”고 말한다. 즉 민족이나 국가적 사명 같은 자리를 대신 메운 것은 인간 누구나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전상진 교수는 “무려 100년간 자신들이 없어질까봐 걱정을 했던 독일에서 교훈을 얻자”고 말한다. 지금 독일이 소멸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전 교수는 “인구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인구 종말론자’라고 한다”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사적연금 시장을 키우거나, 세대 간 갈등을 부추겨 특정 세대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정치적 노림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인구학회 학술세미나에서 독일의 인구학자 베른하르트 코펜 교수(코블렌츠대학)는 “인구축소(decline)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개별 시민을 직접 겨냥해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는 인구정책은 현재 독일에 없다”고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일본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해 비교연구한 2010년의 보고서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한 명시적인 성장전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진은 그러면서 “(이들 유럽 국가는) 가족정책, 노동정책, 이민정책, 재정정책 간 유기적 결합이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압축성장에 이어 ‘압축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 대응 자세도 압축적으로 배울 수는 없을까. 
■ 경제는 진짜 망할까 
저출산·고령화와 인구감소의 가장 문제는 ‘경제’라고들 한다. 한창 일할 나이의 인구(생산가능인구)가 곧 ‘노동자’이자 ‘소비자’인데 이들의 인구규모가 움츠러드니 만들어 팔 제품도 줄어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상식은 때로 입증이 어렵다. 
한 나라의 경제적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GDP다. 그동안 경제학계에선 GDP와 인구의 상관관계에 대해 오랜 논쟁을 해왔다. ‘인구감소=GDP 하락’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의 대표적 거시경제학자로 꼽히는 요시카와 히로시 릿쇼대 교수는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인구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망할까>라는 책에서 150년간의 일본 인구추이와 실질 GDP 통계를 제시했다. 일본의 실질 GDP는 1950년 즈음부터 급격히 치솟았다. 그러나 인구는 거의 그 자리를 맴도는 수준으로 천천히 증가했다. 요시카와 교수는 “경제성장과 인구는 거의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괴리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요시카와 교수가 노동력 인구 대신 주목하는 것은 ‘노동생산성’이다. 그는 “노동력 인구가 변함없더라도 (혹은 조금 감소하더라도) 한 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생산물이 증가하면(즉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플러스가 된다”고 말한다. 
노동생산성은 주로 기술이 진보할 때 큰 폭으로 뛴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루기 직전 일본 취업자의 절반 남짓이 농업·임업·수산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했다. 만약 1차 산업 위주로만 국가경제가 돌아간다면 노동력 규모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도’ 성장은 어렵다. 핵심은 공업화였다. 일본에서 ‘신기 3종’이라 불린 흑백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는 초창기엔 가격이 비싸 대중화되기 어려웠지만 기술 발전과 함께 가격이 떨어졌다. 노동자 1인당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이 증가(노동생산성이 상승)한 것이다. 제품이 잘 팔리니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랐다. 고도성장기 일본 ‘노동력 인구’의 증가율은 연평균 1.3%였고 이후 1차 오일쇼크부터 버블이 끝날 때까지(1975~1990년)는 1.2%였다. 거의 변화가 없다. 
한국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 애널리스트 중 한 명인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인구와 투자의 미래>에서 인구절벽 가설을 반박했다. 그는 일본의 1960~2015년의 토지·주식시장을 분석하면서 “‘인구절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90년 이후 일본의 긴 불황이 ‘인구감소에 따른 수요부진’ 때문에 나타났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구가 아니라 자산시장의 거품 그리고 정책의 연이은 실패가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평론가인 이원재 랩2050 대표도 일본의 요시카와 교수처럼 노동력 규모보다 노동생산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21세기의 급격한 기술진보 흐름을 들여다보면 기술이 기존의 인간 노동을 상당 부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투입 노동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따라서 GDP가 인구 때문에 떨어지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앞으로 인간이 책임져야 할 노동으로는 돌봄과 관리노동 등이 남을 텐데 이런 노동은 시니어들도 잘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생산가능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의 인구)를 15~64세로 계속 묶어두는 것이 옳으냐는 지적이다.
노동력 규모보다 노동생산성 중요 
로봇 등 기술진보가 생산성 뒷받침
일본 150년간의 성장·침체기 통해 
‘인구감소 = GDP 하락’ 논리 깨져
 
미래 공포 내세워 출산 강요하는 
‘인구지상주의’는 도움 안돼
‘저인구 시대’ 대응 복잡하지 않아 
보편 복지·노동 정책 재설계를

오히려 문제는 분배와 복지다. 예를 들어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그동안 8시간이 걸렸다가 기계화에 따라 4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기업들이 일자리 총량을 줄여버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노동자들은 타격을 입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앞으로 수량적 노동인구가 생산력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성과를 배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적극적인 분배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오 위원장은 “1차적으로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분배가 필요하고, 2차적으로는 중심부의 노동자들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실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사회수당 등의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복지를 확대할 수 있을까. 오 위원장은 “미래엔 경제를 위해서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수에 어느 정도 의존하려면 대다수 인구에 소비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재 대표 역시 “지금처럼 65세를 기준으로 잘라 그 이전까지는 복지가 거의 없다가 65세부터 연금수령이 시작되니 ‘등산이나 다니라’고 권유하는 식의 정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면서 “새로운 인구구조에선 보편적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 이주민에 빗장 건 한국…앞으로도? 
기술이 진보해도 ‘노동력 인구’의 문제가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령자 비중이 커지면 강도 높은 체력이 요구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3D 업종의 인력난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노인이 많아질수록 간병인 수요도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거론되는 대안이 이민자 유입의 확대다. 경제적 이유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령화 속도를 늦춰 인구구조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였던 호주, 캐나다, 미국, 독일, 스페인에선 그렇지 않았던 일본에 비해 고령화가 완만하게 진행됐다. 특히 독일은 1990년대엔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 심각했으나, 이후 20여년간 이민자를 대규모로 받아들인 이후 고령화 속도를 늦췄다. 1990년 독일의 이주민 비중은 전체 인구의 7.51%였는데, 2015년에는 14.8%에 이르렀다. 스페인도 일본보다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 대비 고령자 인구수) 규모가 컸다. 하지만 25년간 이주민 비중이 6배 늘었고, 2015년 노년부양비는 일본보다 낮은 28명이다(한국은행 2017년 보고서). 대규모 이주민 유입이 이들 국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줄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주민에게 폐쇄적인 국가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정주민’이 되는 건 쉽지 않다. 영주권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는 이들은 이른바 고급인력들뿐이다.
◆이민자에 적대적이던 일본, 초고령사회 이후 “일본어 못해도 오라”
터키 출신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해체공사 전문가 카르타르 바틴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철현 제공
터키 출신으로 일본에서 일하는 해체공사 전문가 카르타르 바틴은 일본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일본은 이주민을 적극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박철현 제공 
1980년대 민족 강조했지만 
인구 줄며 폐쇄주의 사라져
“신속한 이민 시스템 구축” 
아베 총리 2016년 선언
이민자 더 많이 받아들인 
호주·캐나다·미국·독일 등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 더뎌
 
애초 외국인 노동자를 받을 때부터 한국은 이들의 정주화를 차단하기 위한 정책을 설계했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3년간 특정사업장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업장 변경은 사업주의 폭행, 상습폭언, 임금체불 등을 정부가 인정한 경우에만 3회 가능하다. 그러나 입증이 쉽지 않아 합법적 이동이 어렵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대한민국은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처럼 외국계 인구가 총인구의 17~18%를 구성하는 이민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가 멀게 느껴진다면 초고령사회 ‘선배’ 국가인 일본을 참고할 수 있다. 일본 역시 한국처럼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국가였다. 1980년대엔 근면, 성실 등 일본 민족 특성 때문에 경제대국이 됐다는 내용의 ‘니혼진론’이 유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폐쇄주의는 사라졌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엔 이주민에 개방적인 나라가 되려 힘쓰고 있다.
일본이 이민정책 변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시점은 2016년 즈음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는 그해에 “세상에서 가장 신속한 이민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요즘 일본은 ‘일본어 못해도 일하러 오라’고 손짓한다. 전문·기술직을 우대했던 그동안과는 달리 단순노동 분야에서도 취업문을 활짝 열기로 했는데, 일본은 이들에게 “300시간 학습하면 도달할 수준”의 쉬운 일본어 시험을 치르게 할 예정이다. 건설, 농업 분야에선 기준을 더 낮췄다. 일본어로 “제초제를 갖고 와 달라”는 말을 듣고 알아맞히는 사진을 고를 수 있으면 된다. 
그 결과 일본 사회의 풍경은 꽤 달라지고 있다. 일본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 박철현씨는 “산업폐기물과 일반쓰레기 처리업에서 일본인을 본 적은 거의 없고 공사장 인부, 빌딩 관리도 점점 외국인이 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외국인과 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사회는 융성하고 폐쇄적인 사회는 쇠락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민자 권리보호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발언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0년 펴낸 ‘다문화 사회 정착과 이민정책’의 한 대목이다. 이 보고서는 다문화·다인종 국가일수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지식기반산업, 첨단산업을 일궈가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을 기존의 연구들을 근거로 주장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 가운데 절반은 이민자가 창업했다고 한다. 당장의 노동력 부족 문제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인 이주민 정책은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얘기다.
저출산·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감소는 분명 ‘충격’에 가까운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적응만 잘한다면 재앙은 아니다. 대응책을 생각해보는 것도 실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무작정 공포스러운 미래를 그린 후 ‘출산’을 강조하는 지금의 인구 지상주의식 공론화는 다양한 상상을 위축시킨다. 인구가 감소해도 꽤 괜찮은 미래, 어쩌면 지금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고 논의하느냐에 달렸다. 
◆시대 따라 구호 달라진 대한민국 인구 캠페인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커버스토리]인구 줄면 경제 망할까? 100년 전부터 ‘사멸’ 걱정한 독일을 보라
 
출산율에 따라 국가의 인구 캠페인 기조는 급격히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두 자녀’(위 사진 첫번째), 80년대에는 ‘한 자녀’(두번째)를 강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출산율 제고가 관건이었다. 한 백화점이 개최한 출산장려 캠페인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한반도 지도 모양 조형물 위에 올랐다(세번째). 2015년 한국생산성본부가 출산장려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한 포스터는 ‘외동이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다(아래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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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검사들은 왜 ‘공익’을 싫어하나

공안검사들은 왜 ‘공익’을 싫어하나

등록 :2018-09-29 15:44수정 :2018-09-29 17:17


다시 도마 오른 검찰 공안부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가 2014년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수사결과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서울시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씨가 2014년 4월1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간첩증거조작 수사결과가 부실하다고 주장하고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검찰 공안부가 다시 개혁 대상에 올랐다. ‘공익부’로 이름을 바꾸고 노동 사건을 분리하겠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공안부 개편 방안이다. 한때 독재정권의 전위대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했던 공안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차 존재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공안부의 55년 ‘흑역사’와 향후 개편 전망을 짚어봤다.
“서울 시내에만 고정 간첩이 수십만명입니다. 국가안보가 정말 중요합니다.” ㄱ부장검사는 몇년 전 후배 검사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고정 간첩 수십만명이라니. 얘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 후배 검사는 소위 ‘정통 공안’으로 분류되는 검사였다. ㄱ검사는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그 아무개가 맞는지 다시 봤다”며 “너무 진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다 보니 자기 생각이 망상에 가깝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같은 검사들 사이에서도 ‘적응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공안검사들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검찰 공안부 개편 논의에 다시 물꼬가 터졌다. 공안부는 검찰 안에서 대공, 선거, 집회·시위, 노동 관련 사건을 다루는 부서다. 대검 공안부를 비롯해 일선 검찰청 12개 공안부(서울중앙지검 3개부, 서울 남부·수원·인천·부산·대구·창원·울산·광주·대전지검 각각 1개부) 등에 100명이 훨씬 넘는 검사들이 포진해 있다. 서울지검에 1963년, 대검에 1973년에 처음 설치돼 특별수사부(특수부)와 함께 검찰 내 ‘양대 산맥’, 에이스 집단으로 불리워 왔다. 법무부와 대검은 최근 검찰 공안부를 ‘공익부’로 바꾸고 노동 사건을 공안부에서 형사부로 이관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현실화할지는 불투명하다. 진보성향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대상’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던 공안부가 이번에는 정말 개혁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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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공안부 개편 추진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출범 직후 당시 성역에 가까웠던 검찰 조직에 칼을 대 대검 공안부장 출신 이건개(77) 대전고검장 등 현직 고검장 3명의 옷을 벗겼다. 하지만 2년 뒤 신군부의 12·12사태와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처리를 맡기며 되레 공안검사들을 중용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도 인권을 중시하는 새로운 공안정책, 즉 ‘신공안’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공안검사 물갈이를 시도하고 조직도 축소했다. 하지만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을 구속했던 ‘성골 공안’ 김원치(2008년 사망)를 검사장으로 승진(1998년)시켰고, 박근혜 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논란을 일으킨 ‘마지막 구공안’ 고영주(2015~2017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69)를 대검 감찰부장으로 중용(2004년)했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한겨레> 자료사진
정권의 ‘탄압’에 맞서 공안검사들은 오히려 더 크게 목소리를 냈다. 1993년 국가보안법의 불고지죄 적용 범위 축소 등이 추진되자,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 부장 등 공안부 소속 검사 5명이 기자실로 우르르 내려와 “간첩 수사의 난관을 초래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03년 송두율 교수에 대한 법무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대해서도 송광수(68) 당시 검찰총장부터 정점식(53) 공안부 평검사까지 사표를 내겠다고 버텨 결국 구속수사를 관철시켰다.
현재 법무부와 대검이 추진하는 공안부 개편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대검은 지난 7월 전국 공안검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선거, 노동 사건을 공안적 시각에서 편향되게 처리한다는 오해와 비판을 불식하겠다”며 ‘공안부’라는 이름을 ‘공익부’로 바꾸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검찰이 파업 등에 업무방해죄를 과도하게 적용하고,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는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등 노동 사건을 공안의 시각으로 처리했다”는 지난 6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노동 사건을 공안부 담당에서 형사부로 이관시키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공안부를 개편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공안검사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이나 국정원·기무사의 불법적 정치개입 행위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 용산 참사·쌍용자동차 파업 진압같은 공권력 남용 사건에 대한 편향적인 처리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검찰 공안부가 보여준 행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공안검사 출신 한 검찰 간부는 “과거 정부에서 공안부가 잘못한 일들을 철저히 분석해서 공안검사들을 재교육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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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존재감
하지만 개편 방안의 각론에는 반대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노동 사건을 형사부로 이관하는 방안과 관련해 “노동 사건을 떼어내면 공안부가 검찰 내 하나의 독자적인 ‘부’로 존립하기 힘든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엿보인다.
역대 공안부는 대공·선거·집회시위 사건보다 노동 사건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다른 사건들은 급감한데 비해 노동 사건은 계속 증가해 그 비중이 커졌다. 지난해 기준 공안부 처리 사건의 89.2%를 차지할 정도다. 최근 들어선 공안부로 매일 꾸준히 사건이 송치되는 유일한 ‘일감’이기도 하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공안부 사건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대공 사건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과거 공안검사에게 간첩 사건 수사는 ‘가문의 영광’이었다. 특수부 검사에게 재벌총수나 유력 정치인·관료를 대상으로 하는 수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 등 정치사회적 환경이 바뀌면서 대공 사건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1997년 한 해 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은 897명에 달했지만, 2017년엔 14명까지 줄었다. 1970∼80년대 맹위를 떨쳤던 공안검사의 ‘무기’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돼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검찰이 재판에 넘긴 대공 사범은 2명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2013년)의 70명이나 지난해 14명과 비교해서도 크게 감소했다.
집회·시위 관련 사건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집회·시위의 권리가 기본권으로 존중되고 있는 추세여서 많이 줄고 있다. 만약 노동 사건을 떼어낸다면 공안부가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검 공안부 관계자는 “과거 공안부의 노동 사건 처리가 잘못됐다면 그걸 바로잡으면 될 일이지, 전문성이 없는 형사부에 노동 사건을 넘기게 되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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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보위’하며 승승장구
지금은 궁지에 몰린 듯한 모습이지만, 공안부는 1963년 서울지검에 설치된 이래 검찰 내 최고 ‘노른자위’였다. 특히 군사독재 정권 시절엔 법의 이름으로 독재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전위대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작곡가 윤이상(1995년 작고) 등을 간첩으로 몰았던 동백림 사건(1967년)을 비롯해 이후 과거사 조사 및 재심 결과 ‘조작사건’으로 드러난 사건들이 모두 공안검사들의 손끝에서 처리됐다.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3과장(현 공안기획과장), 대검 공안과장,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을 거치면 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직으로의 승진은 물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까지 넘볼 수 있는 ‘출세 코스’로 인식됐다. 공안검사들이 특수부 검사들과 달리 정권 교체에 따른 부침이 큰 이유도 출세 지향적 사건 처리에 따른 자승자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시 이런 공안검사의 전형이 바로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대학 3학년 때인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소년 등과’한 김 전 실장은 유신헌법을 제정(1972년)하는데 기여해, 이듬해 부장검사급인 법무부 인권옹호과장으로, 1975년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다. 당시 그는 36살이었다. 1976년 ‘민주구국선언’ 발표로 구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김광일(2010년 작고) 변호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김 전 실장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겠다. 김대중 앞잡이 노릇 집어치워라”라고 김 변호사를 협박했다고 한다. 김기춘은 5공 때 서울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6공 때인 1988년 40대 검찰총장이 됐고 곧바로 법무부 장관(1991년)에 올랐다. 당시 기사를 보면 김기춘은 총장 시절 대검·서울지검 공안 관계자 전원을 총장실로 불러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체제 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특수부와 함께 검찰 내 양대산맥
간첩·선거·집회시위 사건 등 다뤄
독재정권 시절 체제유지 전위대
검사장 등으로 올라가는 승진코스
김기춘, 이건개, 고영주 등 ‘배출’
김대중·노무현 정부선 개혁 제자리
문재인 정부, ‘공익부’로 이름 바꾸고
노동 사건 형사부로 분리 방안 추진
“전문성 없어 누구도 득 안돼” 반발
일각선 “아예 없애야 한다” 주장도
이건개 전 국회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이건개 전 국회의원. <한겨레> 자료 사진.
이건개 전 의원 역시 대표적인 공안검사다. 서른살 때인 1971년 서울시경 국장(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발탁됐고, 5공·6공 때 서울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부장을 맡았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으로 몰아친 공안정국 땐 공안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아 77일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85명을 구속하는 ‘신기’를 보여줬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제1 야당인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에게 불고지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긴 주역들로, 김기춘·이건개·당시 안강민(77)서울지검 공안1부장·이상형(69) 공안1부 검사를 묶어 ‘공안 4인방’이라고 부른다.
출세욕에 눈먼 일부 공안검사들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는 사소한 문제로 치부했다.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김근태(2011년 작고) 전 의원은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조사한 김원치 검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에 얼어버린 채 남영동에서 검찰로 왔을 때, 교양 있는 검사를 끊임없이 짝사랑하게 된다. 그래도 끔찍한 고문을 안 해서 고맙고 감사하고 때로는 슬쩍 가족 얼굴을 보게 해주고 우리의 검사님은 너그러움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올가미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이다.” 당시 김원치 검사는 김 전 의원이 경찰에게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원치 전 검사장. <한겨레> 자료 사진
김원치 전 검사장. <한겨레> 자료 사진
스스로 ‘거악’으로 규정한 반체제사범을 향해 돌진했던 ‘돈키호테 검사’의 후예들은 지금도 검찰 조직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음에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유우성씨를 여전히 간첩이라고 믿는 부류가 ‘정통 공안’들이다. 한 고위 검사는 사석에서 기자들을 만나 “유우성 사건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무죄가 선고됐지, 유우성은 100% 간첩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사 사건 재심 청구로 무죄가 선고돼 수십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은 이들을 향해서도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뿐 간첩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검사’는 일부일 뿐 대다수의 공안부 검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건처리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항변도 나온다. 1980년대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근무했던 한 원로 법조인은 “당시 공안검사를 너무 화려하게 포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다수는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 주느라 월급봉투 한번 제대로 집에 가져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 간부급 검사는 “변호사로 돈을 벌고 싶으면 공안검사보다는 금융·조세·특수 쪽으로 가는 게 맞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공안을 한다고 검사장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공안검사를 하려는 검사들은 정말 공안 관련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꼭 해보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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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안 바뀌면 개편 무의미”
문재인 정부의 공안부 개편도 일선 공안검사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익부로 개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안녕하세요, 대검 공익부장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소집해제는 언제 되나요’라고 할지 모른다”는 비아냥이 돌아다닌다. 공익부를 ‘공익요원’에 빗댄 것이다. 공익부라는 명칭이 수사기관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름에 ‘수사’를 넣자는 의견이 많아, 대검에서는 ‘공익수사부’ 등 수정안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사건 분리에 대한 반발도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이대로 시간을 끌다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선 개편 방안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유우성씨 등 대공 사건 피의자 변호를 전문적으로 맡아온 장경욱 변호사는 “공안부 특유의 극우보수적인 ‘공안적 시각’을 갈아엎지 않는 이상, 공안부 개편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가진 공안검사들 대상 강연 자리에서 “공안부는 아예 없애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공안부가 찾아야 하는 자리는 어디일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양승태, 박근혜 옆으로 보내자" 광화문 채운 '분노의 목소리'

18.09.29 19:22l최종 업데이트 18.09.29 19:30l




사법적폐 청산 '분노의 펀치'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사법적폐 청산 '분노의 펀치'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지난겨울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다 끝난 줄 알았더니 더한 놈이 있었다. 우리 국민이 나서서 양승태 꼭 구속시키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사법적폐 청산'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젊은 층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여성, 휠체어를 타고 온 노인 등 다양했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단체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이게 사법부냐! 국민들은 분노한다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가 열렸다. 광화문에서는 처음 진행되는 사법농단 의혹 집회에 시민 700명(경찰 측 추산 인원 400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오후 5시 10분께 보신각부터 오후 6시께 세종문화회관 옆까지 약 1시간 가까이 행진을 하며 "양승태 구속"을 외쳤다.

주최 쪽은 "사법부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고, 이를 바로 잡고자하는 국민 열망에도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사법적폐를 국민이 바로 잡고자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며 "지난 9월 1일 대법원 앞에서 국민대회를 한 뒤 광화문에 진출하자고 해 드디어 오늘 열렸다"라고 집회 목적을 밝혔다.

이어 "검찰이 사법농단을 수사한 지 100일 됐는데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고 있다"라며 "국정농단 청산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다시 사법 적폐청산을 위해 국민이 모였다. 분노한 목소리를 들려주자"라고 외쳤다.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참가자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아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에 줄이 매여있는 피켓 등을 들고 "양승태, 박근혜 옆으로 보내자", "양승태를 구속하라", "적폐법관 파면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종로 거리 행진에 도보를 지나던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행진을 지켜보기도 했다.

행진에 참가한 강아무개(26)씨는 "촛불시위 이후 광화문 집회에 처음 참석한다"라며 "사법개혁은 국정농단 적폐청산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촛불 들기 전에 사법적폐 청산돼야"

행진을 마친 뒤에는 세종로 공원에서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사법부 전면 개혁이 거론됐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먼저 발언에 나섰다. 박 상임대표는 "지금 사법부가 하고 있는 짓거리가 가관"이라며 "이렇게 됐으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데 지금 자기들 동료들 범죄를 감춰주느라 법을 깔아뭉개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판사들이 90% 영장을 기각하고 있으니 국민이 나서서 특별재판부 설치를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참에 사법부 전면 개혁을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 "양승태 구속하라!"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주최로 열린 ‘사법적폐 청산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권우성
또, 양동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은 "양승태 사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판거래로 아직 우리 노동자들이 땅을 치고 있다"라며 "김명수 사법부는 사법농단 척결의 주역이 돼야 하고, 국회는 헌정질서 파괴를 바로잡을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행정권력은 피해 보상 응급조치에 나서라"라고 요구사항을 밝혔다.

참가자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피켓과 휴대폰 플래시를 켜며 응했다. 주최 쪽은 "오는 10월 20일에도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있다. 그때는 촛불을 들 것"이라며 "그전까지 사법적폐가 청산된다고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귀결될까?

[기고]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귀결될까?
이채언(전남대 명예교수, 경제학) 
기사입력: 2018/09/29 [18: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미국이 했던 약속; 핵무장의 해제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4. 세계비핵화로의 길

1. 미국이 했던 약속핵무장의 해제
미국은 지난 1970년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다음과 같이 약속한 바 있다“NPT 4: (2) 핵무장의 해제와 핵개발경쟁의 조기중단을 위한 효과적 조치에 관한 국제협상과전반적이고도 완전한 (general and complete) 무장해제를 엄밀하고도 효과적인 국제적 관리통제 하에 이루기 위한 조약에 관한 국제협상을본 조약당사국은 각자 선의를 갖고 모색하기로 약속한다.”
이 약속은 적어도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핵보유국의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미국이 1970년 NPT를 맺으면서 핵무장해제를 위한 협상을 모색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는데 북한도 마찬가지로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하였다.
미국이 NPT에서 약속한 핵무장의 해제는 조약당사국들이 핵무장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을 각자 알아서 준비하기로만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약속이었다.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으니 아직 그것을 모색하는 중이라고만 답하면 그만이다그래서 아무도 미국더러 아직도 그것을 가시적으로 모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도 않고 있다.
북한이 서명한 북미공동성명의 제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는 약속은 48년 전에 미국을 비롯한 핵강대국들이 한 약속의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있다북한도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한다는 약속이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한다.”고만 약속하였다.
지금 북한은 미국이 핵개발의 중단과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모색하기로’ 약속했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강제하게 될 것이다미국은 아직도 핵협상 방안을 모색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만 북한은 핵무장의 해제를 위한 국제협상에 미국보다 한발 앞서 이미 착수했다핵보유국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명과 책임을 솔선수범하는 쪽은 오히려 북한이다.
원래 법률적 문서에서 ‘A를 재확인한다.’고 했으면 나중에 가서 난 A에 관해서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발뺌할 수가 없다북미공동성명에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했으면북미 두 나라는 나중에라도 판문점선언의 내용에 대해 모른 척하면 안 된다.
미국도 판문점선언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판문점선언의 내용 가운데 꼭 알아둘 것이 3가지 있다.
(1) 남과 북은 앞으로 상대방에 대해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미국은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한에서는 함부로 허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2) 남과 북은 금년 중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미 3자 또는 남···중 4자회담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미국도 금년 중에 정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북의 핵무기와 핵시설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될 수 없다한반도에 미지상군이 존재하는 한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언제라도 한반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주한미군을 그대로 존치하려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해야 한다).
2. 비핵화는 핵 없던 나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다.
북미공동성명 제3항에 명시된 비핵화노력의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미국은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지지해주기만 하면 된다물론 비핵화를 지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니어도 많이 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만 공개적으로 이번에 북미공동성명에 새겨놓은 한반도비핵화약속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다자칫하면 그것이 미본토의 핵무기와 핵시설까지도 제거하는 걸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반도비핵화과정을 전략적으로 주도하는 북한이 세계비핵화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아래 표는 비핵화된 나라와 원래부터 핵이 없는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핵보유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있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있지만비핵화국은 핵으로 타국을 위협할 수도 없고 타국의 핵위협에 핵으로 맞설 수도 없다.
그러나 몰래 감추어둔 핵이 있을 수 있고 다시 핵무장을 할 능력도 있기 때문에 핵으로 보복할 능력도 있다그래서 비핵화국은 핵으로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은 못하지만 다른 나라의 핵공격을 핵으로 보복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핵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는 타국의 핵위협에 대응해서는 다른 핵보유국의 핵우산 아래에 들어가야만 한다그 대가로 핵우산을 제공해준 나라에 종속되고 그들의 패권적 지배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이에 비해 비핵화국은 핵우산도 필요하지 않고 타국에 대해 핵우산도 제공하지 않는다.

 
핵 보유국
핵 미개발국
비핵화국
세계비핵화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가능
 
불가
 
불가
 
불가
타국의 핵공격위협
핵 방어 가능
핵우산 이용
(숨긴 핵으로)
핵 방어가능
필요 없음.
 
타국의 재래식공격
핵사용 가능
핵우산 이용불가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핵 우산
 
동맹국에 제공
 
동맹국에 구걸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패권주의
 
패권으로 지배
 
패권에 피지배
 
불가
 
불가
 
<표 1> 핵 미개발국과 비핵화국의 차이 
 
이 차이는 세계질서의 새로운 재편을 의미한다비핵화국은 핵을 몰래 보유할 수는 있어도 핵으로 남을 위협하거나 남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패권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그러나 타국의 핵공격 시에는 언제 (숨긴핵으로 보복 공격할지 모른다는 암묵적 위협은 줄 수 있다따라서 비핵화국에 대해서는 핵보유국도 함부로 핵공격을 할 수 없다그러나 세계비핵화가 이루어지면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할 수가 없기 때문에 타국의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숨긴)핵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핵우산 같은 패권놀음도 없어지고 패권국가의 갑질도 사라진다.
북한이 한 비핵화약속은 앞으로 이웃나라나 지역에 대해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지핵이 없던 옛날의 북한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약속이 아니다미국을 제외한 다른 핵보유국들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도 사실은 공표를 안 했을 뿐이지 사실은 이미 비핵화과정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다른 나라에 대해 핵으로 위협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에 대해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미국을 제외하곤 다른 어느 나라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런 단순논리도 이해하지 못해 비핵화 프로그램의 제출(이것까지는 가능하다), 핵 신고핵 반출핵 해체의 검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도를 넘은 망발이다미국이 NPT에서 핵무장의 해제를 약속한 것도 이런 방식의 무장해제는 아니기 때문이다북한도 미국처럼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하기만 하면서 고주알미주알 말싸움만 하면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면 어쩔 셈인가?
3. 북미정상회담의 성격
북미공동성명에 명시된 쌍방의 의무사항은 비대칭적이다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노력을 약속한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의무조항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그러한 약속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즉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대전환과 한반도의 공고한 항구적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한 북미 간의 공동노력 등을 북미공동성명에서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판문점선언의 이행에 대해 남북한의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이러한 비대칭관계를 가려주고 마치 북한이 굴복한 것 같은 외관을 던져주는 것이 바로 트럼프대통령이 구두로 확인해준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어느 정도 비가역적 지점에 이를 때까지는 유엔의 대북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언급이다
그의 이 언급은 북미공동성명을 아예 뒤엎어 버리는 매우 모순적인 발언이다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려면 미국도 동시에 북미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수립도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한다
미국이 경제제재를 계속하면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될 리 없고 북미관계가 그때까지 개선되지 않으면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노력을 어느 누구도 다그칠 명분도자격도능력도 없다이런 식이면 북한의 대응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미국에 대한 단계적 접근보다는 일괄해결이 효과적이다.
북한이 평소 요구해온 경제제재의 해제주한미군의 철수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 같은 사안에 대해 북의 언론매체가 일체 언급을 않는 것에 대해 트럼프는 속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을 협상의 천재로 치켜세우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트럼프가 자진해서 북미관계를 전환하기 위해 주동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떠밀려 억지로 실천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북미정상회담은 무슨 협상을 통해 결론을 내린 회담이 아니다협상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bottom-up) 방식으로 하나씩 밀고 당기면서 결정된다그런데 이번은 정상회담의 날짜부터 먼저 정한 뒤에 시작되었으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top-down) 방식으로 기본원칙이 먼저 정해지고 세부실천계획만 나중에 협의된다양쪽 정상이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다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회담결과가 한반도비핵화라는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쪽이 결의한 공동의 약속을 천명한 공동성명에서 드러났다그러나 미국에서는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탑다운 방식이 아닌 마치 바텀업 방식이나 되는 것처럼 미행정부의 하부단위에서 시비를 걸고 아예 뒤집어버리려는 사태가 일어났다
비핵화약속에 대한 세부프로그램이 없고핵 리스트가 없으므로 무효라는 것이다어쩌란 말인가자기들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으니 무효로 돌리자는 소리인가그러면 왜 하필 정상회담을 했단 말인가국무장관 아니면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 같은 맨날 그런 급의 사람이나 파견해서 일일이 따지며 세월을 보낼 일이지?
미국의 그런 시비질은 북미정상회담의 성격을 몰라서거나 아예 모르는 척하기에 나온 것이다이미 북한은 핵 무력의 완성을 선포하여 더 이상 핵·미사일의 시험발사는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마치 총이나 대포는 이미 완성된 무력이므로 더 이상 시험발사를 필요로 하지 않듯이북한의 핵·미사일도 더 이상 시험발사는 필요 없고 앞으로는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만 태평양을 무대로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동해상에서 재개한다면 북한은 미국의 핵전략자산(핵전투기)에 대응하여 괌 인근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밝혔다북한이 태평양을 무대로 핵·미사일훈련을 한다면 미국은 그때마다 북한이 군사훈련을 핑계로 미국을 불시에 핵·미사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간과할 수 없으므로 초비상경계태세를 취해야 한다
사실은 그동안 북한도 한미합동군사훈련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바람에 그에 걸맞는 초비상경계태세로 곤혹을 겪었고 특히 농번기에는 그 때문에 늘 농촌일손이 부족하여 농사에도 많은 애로를 겪었다.
북한이 태평양상에서 핵·미사일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1년 내내 쉼 없이 이어간다면태평양을 오가는 해상무역이 1년 내내 통제될 수밖에 없고 미국은 미국대로 늘 초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가야 하며 해상무역의 잦은 중단으로 늘 수입물자의 부족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이미 그것을 트럼프도 알고 있었기에 금년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군사적 대립관계의 해소를 미국의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다그러나 당시 북미 간에는 모든 대화통로가 막혀 있었다북한은 미국의 대화요청을 거부하며 미국이 먼저 대북적대행위부터 중단해야 북미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답해왔다
남북대화가 신년 초에 재개된 것을 누구보다 반가와 한 사람은 바로 트럼프였다남북대화를 축복한다고까지 말했다미리 2월에 있을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도 도리어 우리에게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관계를 이대로 둔 채로는 남북관계를 한 걸음도 진척시킬 수 없다.’는 남측특사의 간곡한 권유에 민족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면 무언들 못 하겠는가라는 취지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본다이번에 한국의 중재가 없었다면 4월의 한미합동군사훈련 때부터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태평양상에서 전개되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비핵화약속에 대한 세부프로그램을 따지고 핵 리스트를 제출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금 미국이 과연 할 때인가그러면 미국은 왜 1970년의 NPT조약에서 한 약속을 4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프로그램조차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가핵무장의 해제는 당사국의 선의에 맡길 일이지 남의 나라가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전쟁에서 패한 패전국이라면 당연히 승전국으로서 각종사찰까지나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패전국이 아니지 않은가북한의 언론보도가 그런 시비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는 것은 미국의 그런 어리석은 짓이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4. 세계비핵화로의 길
북한의 갈 길은 아직 멀다종전선언평화협정주한미군철수나 기다리며 비핵화과정을 무작정 뒤로 미루면 자칫 세월만 낭비한다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북한에서 눈감아 주기로 한 것은 북이 비핵화를 완료하기 이전까지는 미국의 핵우산을 필요로 하는 남쪽 사람들의 심리를 감안한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모순이 개재되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첫째주한미군의 계속주둔 여부에 대한 결정권이 남쪽이나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 있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이 다 같이 인정했다는 점이다이런 식이면 앞으로 주한미군의 계속주둔도 북한의 허락 없이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한반도의 비핵화는 주한미군의 비핵화까지도 포함된다그러나 주한미군의 비핵화는 미국본토가 비핵화 되지 않는 한 아예 불가능하다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미국본토의 비핵화가 필요하고 이는 곧 세계비핵화까지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본토의 비핵화만은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라면 주한미군부터 미리 철수시킬 각오를 해야 한다한국 국민들의 대북 심리적 불안을 달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면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라도 미국이 먼저 세계비핵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셋째미국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아예 포기하고 핵을 가진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택하면 어찌 되는가주한미군이 있는 한 북의 완전한 비핵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북의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신고반출점검감추어 둔 핵을 핑계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계속 고집하면 어찌 될까
북한의 목표는 100%의 완전한 한반도비핵화에 있기 때문에 당분간 주한미군철수문제는 건너뛴 채 미국을 과녁으로 한 장거리 핵미사일만 제외하고 다른 모든 비핵화과정을 조속히 밟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장거리 핵미사일의 해체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맞바꾸는 미국과의 일괄해법을 모색할 때까지 시간을 그대로 계속 끄는 것이다아직은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다고 해서 한반도비핵화과정의 장애로까지는 되지 않는다
주한미군철수문제만 건너뛰면 다른 수순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다미국만 제외하면세계의 다른 핵보유국들은 이미 사실상 비핵화의 문턱에 거의 다 왔다그들은 핵을 보유하고 있어도 타국에 대해 핵으로 공격할 것처럼 위협하지도 않고다른 나라에 핵우산을 제공하지도 않으며패권국가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외적으로 비핵화를 선언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나 마찬가지이다문제는 미국이다미국만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고 있고 미국만 핵우산을 제공하여 그것을 근거로 패권을 행사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가 지금 세계비핵화를 선언하기만 한다면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할 나라는 미국 외에는 안 남아 있다그러면 구태여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핵 없는 나라들이 모여들어 미국의 패권적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핵우산이 불필요하면 미국의 패권이 저절로 와해된다미국이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미국이 남게 되었을 때 그것이 미국에게 무슨 이점이 있을까아래 표는 맨 앞에서 제시한 핵보유국핵미개발국비핵화국의 비교를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때의 상황에 맞추어 다시 비교해 본 것이다맨 아래 줄부터 읽어나가자.
 
유일한 핵 보유국
핵 미개발국
비핵화국
세계비핵화
 
타국에 대한 핵공격위협
가능
불가
불가
불가
 
타국의 핵공격위협
소멸
소멸
소멸
소멸
 
타국의 재래식공격
()테러전쟁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재래식 방어
 
핵우산
무용지물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필요 없음
 
패권주의
불가
불가
불가
불가
<표 2> 미국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았을 경우
미국이 아직도 세계유일의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지만 핵보유국의 패권주의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미국 외에는 핵공격을 할 나라가 없으니까 미국의 핵우산을 필요로 않고미국의 핵우산이 불필요하니 미국의 패권적 지배도 불필요하다
이제 국제간의 분쟁이 일어나면 미국 외에는 전부 재래식 무기로만 싸울 것인데 핵을 가진 미국과 재래식 무기로 싸울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그러나 자기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재래식 무기를 갖고도 미국과 전쟁을 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이 바로 테러전쟁이다테러전쟁에는 아직 대응방법이 없다테러와 반()테러 사이의 전쟁방법만 날로 지능화되고 현대화되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초비상경계태세를 1년 365일 쉴 틈 없이 이어가고 있다.
미국도 미국 이외에는 다른 어느 나라도 핵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핵공격의 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비핵화국도 핵공격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미국과 같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처음부터 핵을 보유한 적 없는 나라들은 미국으로부터의 핵공격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진다이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
세계비핵화는 이를테면 총기소지가 불문율에 의해 금기시된 사회와 같다불문율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금기를 깨트리고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누가 총기를 몰래 갖고 있다가 강도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 총기를 난사해도 그것이 정당방위였느냐 아니었느냐만 문제되지 총기사용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는다
같은 원리에 의해 비록 세계비핵화의 문턱에 들어섰더라도 유독 미국만 끝까지 핵을 가지겠다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미국은 총기소지가 금기시된 사회에서 유독 혼자 총기를 공개적으로 지니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러나 혼자 공개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깡패노릇을 한다면 같은 깡패노릇이라도 더 주목을 받고 더 나쁜 사람으로 지탄을 받는다그것이 쌓이면 결국엔 주변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
같은 원리로 세계비핵화흐름을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만 남아 아직 핵무기 개발의 근처에도 못 가본 약한 나라들만 골라가며 국제분쟁을 일으킨다면 정말로 미국을 불로 다스릴 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한국이 주한미군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미국을 불로 다스릴 때 한국도 유감스럽지만 미국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한국의 민초들이 한 목소리로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요구하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구원하자고 나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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