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6일 금요일

지난 16년간 보르네오서 오랑우탄 10만마리 사라져

조홍섭 2018. 02. 17
조회수 121 추천수 1
열대림 벌채와 팜유 농장, 사냥 때문 개체수 절반 줄어
남은 집단 절반이 100마리 이하, 35년 뒤 또 5만 줄 것

u1.jpg» 보르네오 숲의 오랑우탄 모습. 벌채와 사냥으로 급박한 멸종 위험에 놓여 있다. 마르크 안크레나스 제공.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의 하나인 오랑우탄이 1999∼2015년 서식지인 보르네오에서 10만마리 이상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전체 개체수의 절반이 사라진 것으로,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35년 사이 현 개체수의 절반가량인 4만5000마리가 추가로 죽을 것으로 예측됐다. 

오랑우탄 감소의 주원인은 산림 벌채와 팜유 농장과 제지용 플랜테이션 등 숲 파괴와 사냥과 밀렵으로 나타났다. 팜유는 과자, 라면, 화장품 등에 널리 쓰여, 우리나라도 이런 감소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u2.jpg» 팜유 농장을 만들면서 조각난 열대 우림. 숲이 얿는 곳에서 오랑우탄은 살 수가 없다. 마르크 안크레나스 제공.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 등 세계 38개 연구소는 1999년부터 16년 동안 보르네오에서 오랑우탄의 둥지를 확인하는 한편 원격탐사로 숲의 변화를 측정하고 모델링을 통해 오랑우탄 개체수 변화를 예측했다. 이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6일 치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런 결과를 보고하면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자연자원 활용이 보르네오 오랑우탄의 극적인 감소를 불러왔다”라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1234㎢ 면적의 현지 조사에서 오랑우탄의 잠자리 수를 통해 서식밀도를 추정했다. 그 결과 모두 3만6555개의 잠자리를 확인했는데, 연구 기간 동안 ㎞당 22.5개가 관찰되던 것이 10.1개로 줄었다. 연구자들은 맨눈으로 확인된 변화를 바탕으로 모두 14만8500마리의 오랑우탄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추정했다.

사라진 오랑우탄 가운데 9%에 해당하는 1만4000마리는 산림 벌채, 산업적인 팜유와 펄프용 플랜테이션 때문으로 연구자들을 분석했다. 오랑우탄은 숲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숲이 사라진 곳에서 밀도가 가장 심하게 줄었다. 그러나 가장 많은 개체수가 줄어든 것은 선택적 벌목과 사냥이 벌어지는 원시림 내부라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u3.jpg» 새끼를 데리고 있는 오랑우탄 암컷. 서식지 파괴 못지않게 밀렵과 사냥이 주요 감소요인으로 밝혀졌다. 마르크 안크레나스 제공.

주 저자인 마리아 보익트 막스 플랑크 연구소 연구자는 “걱정스러운 것은 가장 많은 수의 오랑우탄이 사라진 것은 남아있는 숲에서였다. 이것은 사냥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이 학술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이 오랑우탄의 서식밀도가 가장 높은 칼리만탄 지역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연평균 2256마리가 사냥 또는 사람과의 충돌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랑우탄의 미래와 관련해 우려스러운 것은 남아있는 64개 고립 집단 가운데 38개만 개체수가 100마리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의 개체수를 갖추지 못한 오랑우탄 집단은 장기적으로 근친교배와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능력 부족으로 멸종할 가능성이 크다.

연구자들은 장차 35년 동안 현재의 오랑우탄 개체수 가운데 4만5300마리가 추가로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는 숲 면적의 감소만 고려한 것이어서 감소추세는 이보다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u4.jpg» 보르네오 섬의 오랑우탄 서식밀도 변화. 감소 추세는 205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됐다. 마리아 보익트 외(2018)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오랑우탄의 생존을 위해서는 벌목과 팜유 회사 등과의 파트너십과 대중의 인식을 높일 교육이 시급하다고 연구자들은 지적했다. 연구에 참여한 세르저 비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생물학자는 “오랑우탄은 유연해서 플랜테이션, 벌채된 숲, 조각난 숲에서도 어느 정도 살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죽이지 않을 때만 그렇다”며 “숲을 보전하는 것에 나아가 대중의 인식과 교육, 규제 강화, 사람들이 왜 오랑우탄을 죽이는지에 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u5.jpg» 팜유 농장과 벌목으로 조각나는 보르네오 열대림. 만일 사냥을 막을 수 있다면 오랑우탄은 이런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마르크 안크레나스 제공.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팜유 생산국으로 오랑우탄 서식지가 대규모 팜유 농장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팜유는 가공식품과 화장품 등의 원료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과 유럽 등에 수출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팜유 농장 개간과 밀렵 등에 의해 보르네오 오랑우탄의 개체수가 급감하자 2016년 이 종을 멸종이 가장 임박한 ‘위급 종’으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oigt et al., Global Demand for Natural Resources Eliminated More Than 100,000 Bornean Orangutans, Current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시리아, 이스라엘이 또 공격하면 놀랄 만한 반격 단행

시리아, 이스라엘이 또 공격하면 놀랄 만한 반격 단행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8/02/17 [01: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시리아의 대공미사일에 격추된 이스라엘 F-16전투기 잔해  

14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는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또 시리아를 공습하면 놀랄 만한 반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만 수산 시리아 외무차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리아를 공격하면 언제든 더 많은 놀라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은 시리아가 수년간 전쟁에 노출된 탓에 공격에 대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는 기자회견 내용을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이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주장에 따르면 지난 10일 시리아에서 자국 영토로 날려보낸 이란의 정찰드론을 요격하고 그 드론 발진 기지를 공격하기 위해 시리아 영공에 들어갔다가 대공포를 얻어맞고 격추되었다. 
시리아는 이에 대해 드론으로 이스라엘 영공을 침범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자국 영토를 공격하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을 향해 방공체계를 가동하여 최소한 한 대 이상의 F-16전투기를 대공미사일로 격추시켰다는 사실은 확인해주었다. 중동과 유럽의 언론들은 그 과정에 1명의 이스라엘 조종사가 중태에 빠졌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F-16 자국 전투기 격추에 대한 보복으로 즉각 시리아의 4곳의 12개 목표물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시리아인 6명을 죽였다고 밝혔는데 시리아에서는 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경고를 내놓은 상태이다. 

▲ 2015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가는 이란의 s-300급 지대공미사일, 북의 기술로 개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미사일이 시리아 등에 실전배치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주시보

그에 대해 13일 시리아 외무차관이 그런 공격을 가해올 경우 놀랄만한 반격을 가하겠다고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당당히 선언한 것이다. 뭔가 이스라엘에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암시가 아닐 수 없다.

주목할 점은 이런 시리아의 초강경 대응 방침 천명 이후 이스라엘이 매우 조용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란과 시리아에서 이스라엘로 날려보낸 드론을 요격했다고 하면서도 그 잔해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 최고속도 마하 2.05의  F-16전투기 

본지에서는 F-16전투기가 격추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함부로 시리아를 공격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주력 전투기로 이용하고 있는 위력적인 F-16전투기를 한 대 이상 떨어뜨릴 수 있는 무기는 성능이 좋은 대공미사일뿐이다. F-16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투기이며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량하여 지금도 생산 판매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 전투기로 쉽게 음속을 넘나들며 대공포 사거리 밖에서 스마트 폭탄으로 목표물을 1미터 오차 안에 초정밀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공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면 이스라엘의 공중우세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

▲ 레바논 헤즈볼라 지하 미사일 격납고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탄도미사일이 종류별로 차량에 탑재되어 보관되고 있다. 헤즈볼라는 최근 이 미사일을 시리아로 가지고 가 알누스라, IS 등 반군들 기지를 타격하는데 사용한 바 있다. 예멘 후티 반군도 이런 식으로 미사일을 보관하고 있는 것 같다. 헤즈볼라가 이 정도면 이 미사일을 기술을 개발하여 이란 등에 제공한 북은 어떻게 준비해두고 있을 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자주시보

▲ ss-21토치카 미사일을 발사하는 헤즈볼라, 나토명 스캐럽(스크래브)이라는 단거리 탄도 미사일로 한 발에 축구장 몇 배 면적이 초토화되는 위력적인 미사일이다. 고체연료라 신속한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요격도 쉽지 않다. 사진은 그 미사일을 지금 시리아의 정부군을 돕는 헤즈볼가 발사하는 모습이다. 레바논의 반미 민병조직 헤즈볼라는 여느 정규군 못지 않은 것 같다.     ©자주시보

시리아가 성능좋은 대공미사일을 수없이 보유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은 공중폭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로켓탄과 미사일을 주고 받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데 시리아에는 요격회피능력이 탁월한 여러종류의 탄도미사일을 계열별로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다. 시리아를 돕는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보유한 탄도미사일만 해도 이스라엘 대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는다.

이제 미사일이 발전한 현대전에서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평화공존만이 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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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 주필 비리 유죄’ … 조선일보는 ‘침묵 또 침묵’

한겨레만 지면 통해 “조선일보의 깊은 자성이 필요하다”… 검찰, 집행유예 선고에 항소장 제출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8년 02월 16일 금요일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고, 기사 청탁 대가로 골프 접대 등 재산상 이익을 지속적으로 취했던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조선일보는 침묵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김태업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배임수재죄 및 변호사법 위반을 이유로 송 전 주필에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7만 원을 선고했다.  
▲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3일 오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3일 오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재판부는 송 전 주필이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뉴스컴·60·구속기소)로부터 기사 청탁을 대가로 골프 접대 등 재산상 이익을 취했고,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을 청와대에 청탁·알선하고 자신의 처조카를 대우조선에 부당하게 입사시켰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했다.
비록 실형은 피했지만 유력 언론사 최고위 간부가 기사 청탁을 받고 재산상 이득을 취해 징역형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며 “우리 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현저히 손상됐다”고 지적했다. 언론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송 전 주필에 대한 징역형 선고 소식은 신문과 방송 등에선 다뤄지지 않고 있다. 신문 언론 가운데 한겨레만 14·15일치 지면에서 다뤘을 뿐이다.
한겨레는 15일자 사설(“‘송희영 전 주필 유죄’가 언론계에 울리는 경종”)에서 “유력 언론사의 최고위 간부가 기사 청탁을 받고 금품을 챙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송 전 주필의 인사 청탁에 대해 “언론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저버린 행위이자 주필이라는 지위를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한 사례”라며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계 전체가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사회적 공기라는 언론 역할에서 벗어난 적은 없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6년 9월2일자 조선일보 사보. 송희영 전 주필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방상훈 사장은 “조선일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그 역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 2016년 9월2일자 조선일보 사보. 송희영 전 주필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방상훈 사장은 “조선일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그 역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반면, 조선일보는 조용하다. 관련 보도 하나 없을 뿐더러 내부에서도 특별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이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2016년 9월2일자 사보에 “그동안 불거진 의혹에 대해서는 당국에서 엄정하게 수사해주길 바란다”며 “조선일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그 역시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조선일보의 취재, 보도, 평론, 편집 등 업무의 공정성, 청렴성, 객관성 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도 밝혔는데 1심 판단이 나온 만큼 조선일보 차원의 입장이 필요해 보인다. 의혹 제기 직후 송 전 주필은 조선일보를 퇴사했지만 그는 조선일보 영향력’을 활용해 재직 시절 자기 사익을 부정하게 취했다.  
한편, 선고 직후인 지난 14일 검찰은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송 전 주필도 13일 미디어오늘에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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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배 선생 시절, 한글학회 회칙 너무도 민주적”

 박용규, 한글학회 회칙 개정 요구 1인시위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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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6  19: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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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이 한글회관 앞에서 지난 5일부터 '한글학회 회칙 개정안 공개토론회 개최'를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현배 선생이 바로 우리 학회를 1940~60년대 계속 지켜왔다. 최현배 선생 시절에는 한글학회 회칙이 너무도 민주적이었다.”
한글학회가 있는 서울 새문안로 한글회관 앞에서 지난 5일부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은 “우리 민족학회인 한글학회가 더 발전하려면 한글학회 회칙 내용이 너무도 비민주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고쳐야만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첫째, 정회원이 임원 선출권을 가졌다. 지금은 없다. 두 번째로 정회원이 정기총회에서 회칙개정을 발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어졌다. 세 번째는 한글학회 정회원이 되는 자격을 대단히 확대시켰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보급하고 실천하는 사람도 한글학회 정회원이 됐다.” 지금 회칙에는 국어학 논문을 발표한 사람만 정회원이 될 수 있다.
한글학회도 문제점을 인식, ‘한글학회 회칙개정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 12월 7일 회칙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어 올해 1월 23일 ‘한글학회 개혁위원회’가 구성돼 회칙개정위의 ‘한글학회 회칙개정안’ 3월 총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관성의 벽은 두터웠다. “이사회에서 낸 부대의견에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개혁위원회) 회칙개정안 반대 부대의견”이고, “개혁위원회 세 사람이 2월 1일 한글학회 권재일 회장을 면담”했지만 요지부동임을 확인한 것이다.
추석을 앞둔 14일 오전 10시 한글학회 앞에서 1인시위 중인 박용규 한글학회 개혁위원장은 “이렇게 회원 간에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으니까 정식으로 회칙개정안 공개토론회를 열어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이라며, 3월 24일 정기총회 때까지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1인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언제든지 공개토론회를 열어서 충분하게 의견을 나눠서, 거기서 회원 상호간에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최종안을 도출해 내서 3월 24일에는 전회원이 정기총회 때 최종 확정된 한글학회 회칙개정안을 상정해서 박수치면서 통과시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느냐”는 것.
한글학회의 전신은 조선어학회는 일제시기에도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발간(1936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제정(1940년) 등을 완수했고, 1942년 16만 어휘를 수록한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 발간하려다 일제의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일제의 최후의 발악은 1942년(임오년) 만주에서 국교(國敎)인 대종교 지도부를 체포한 ‘임오 교변(敎變)’과 국내에서 국어(國語)단체인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나타났다. 안희제 등 대종교 지도부 10명이 순교하고 윤세복 등은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으며, 조선어학회 이윤재, 한징이 옥사하고 이극로, 최현배 등이 해방후 감옥에서 풀려났다.
박용규 연구위원은 “분단이 72년인데 분단이 안 된 게 있다”며 “우리 남북의 겨레들이 똑같은 말과 글을 쓰고 있어서 말글은 분단이 안 됐다”고 짚고 “말글 연구를 더 힘차게 하고 남북이 서로 교류협력하고 화해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평소의 소신을 펼쳤다.
또한 “영어가 범람해서는 자주국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이런 일들을 우리 민족학회인 한글학회라든지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국어운동 단체에서 활발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말글, 언어도 사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고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14일 오전 10시 한글학회 앞 1인시위 중에 진행한 인터뷰 내용이다.
“정식으로 회칙개정안 공개토론회를 열어달라”
  
▲ 한글회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자신을 소개해 달라.
■ 박용규 교수 :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박용규다. 한글학회 연구위원이기도 하다.
□ 언제부터 1인시위를 시작했고, 언제까지 할 작정인가?
■ 지난 2월 5일부터 시작했다. 오는 3월 24일 한글학회 정기총회 전까지는 계속할 예정이다. 1인시위 시간대는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다.
□ 1인시위는 혼자서 하나 여러 명이 돌아가며 하나?
■ 아직까지는 혼자하고 있다. 내가 한글학회 개혁위원회 운영위원장이다. 우리 민족학회인 한글학회가 더 발전하려면 한글학회 회칙 내용이 너무도 비민주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고쳐야만 한다.
□ 한글학회 개혁위원회는 언제 어떤 취지로 발족했나?
■ 지난 1월 23일 개혁위원회가 발족됐다. 개혁위원회가 등장한 배경은 한글학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현행 회칙을 가지고서는 발전할 수 없다. 그래서 작년에 이미 한글학회 회칙개정위원회가 출범이 돼서 12월 7일 개정안을 만들어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 그러면 회칙 개정안은 3월 정기총회에서 통과되나?
■ 3월 24일 정기총회에서 하게 된다. 그런데 회칙 개정안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의견이 지금 갈리고 있다. 그래서 개혁위원회 세 사람이 2월 1일 한글학회 권재일 회장을 면담했다.
우리가 회칙개정안 원안을 그대로 상정해주고, 다른 이사들의 의견은 첨부돼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회원 간에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으니까 정식으로 회칙개정안 공개토론회를 열어달라”고 건의를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2월 2일에 답변이 왔다. 권재일 회장은 공개토론회를 거부했다.
우리 학회가 학술단체고 또 우리 학회는 1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하에 강당도 있다. 그래서 언제든지 공개토론회를 열어서 충분하게 의견을 나눠서, 거기서 회원 상호간에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다시 최종안을 도출해 내서 3월 24일에는 전회원이 정기총회 때 최종 확정된 한글학회 회칙개정안을 상정해서 박수치면서 통과시키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공개토론회를 주장했고, 또 당연히 학회는 학술단체이기 때문에 열어야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글학회의 현재 11명의 이사는 전부 대학의 현직교수들, 제 말로 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이 이런 토론회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선어학회는 3가지의 큰 업적을 남겼다”
  
▲ 조선어학회 표준어사정위원들의 1935년 현충사 방문 기념 사진.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한글학회’ 하면 일제시대인 1942년 임오년 조선어학회 탄압사건이 떠오르는데, 그 역사적 맥을 잇고 있다고 봐도 되나?
■ 그렇다. 한글학회는 1949년에 전신인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이름만 바뀌었다. 한글학회 역사를 간단히 말하면, 1908년에 주시경 선생이 국어연구학회를 만들었다. 주시경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그의 제자들이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를 발족했다. 이 조선어연구회의 이름이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개명이 됐다.
조선어학회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조선어학회가 왜 일제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결국은 처벌을 받고 옥고를 치르게 됐느냐? 그것은 바로 일제가 우리 민족을 영구히 말살하기 위해서 우리 말글 말살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선어학회가 대항을 했다.
조선어학회는 3가지의 큰 업적을 남겼다. 첫째,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33년에 제정했다. 두 번째는 1936년에 표준말을 사정해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펴냈다. ‘표준말 사정’이란 표준말을 뽑아서 제정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투리가 너무 많아지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또 하나의 큰 업적은 나라 없는 시절, 1940년에 외래어 표기법도 통일안을 냈다.
더 중요한 것은 1942년에는 16만 어휘를 뜻풀이하는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했다. 세종대왕께서 우리 민족의 문자 한글을 만들었고, 그 이후에 우리 민족이 우리말을 쓰면서 어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말 사전은 없었다. 조선어학회에서는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해냈다. 이 사전이 발간되려 하자 일제는 굉장히 당혹했다.
조선어학회의 3가지 업적과 ‘조선말 큰사전’의 편찬을 막아야겠다. 그래서 일제가 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켰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키게 된 배경은 조선어학회가 단순한 국어운동 단체가 아니고 언어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가 이를 간파해서 탄압한 것이다.
그래서 두 분이 옥사를 했고 간사장이었던 이극로 선생은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함흥형무소에서 45년 8월 17일 들것에 실려서 풀려났다.

“최현배 선생 시절에는 한글학회 회칙이 너무도 민주적이었다”​
  
▲ 박용규 연구위원은 현행 한글학회 회칙을 ‘비민주의 극치’라고 비판하고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숭고한 역사를 가졌는데, 정작 지금에 와서 한글학회가 내홍을 겪고 있다니 안타깝다.
■ 최현배 선생이 바로 우리 학회를 1940~60년대 계속 지켜왔다. 최현배 선생 시절에는 한글학회 회칙이 너무도 민주적이었다. 첫째, 정회원이 임원 선출권을 가졌다. 지금은 없다. 두 번째로 정회원이 정기총회에서 회칙개정을 발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어졌다. 세 번째는 한글학회 정회원이 되는 자격을 대단히 확대시켰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보급하고 실천하는 사람도 한글학회 정회원이 됐다.
그런데 2006년에 이 한글학회 회칙이 개악이 됐다. 국어학 논문을 발표한 사람만 정회원이 되게 축소를 시켰다. 그리고 2011년에는 가장 비민주적인 조항이 들어갔다. 한글학회 회칙개정 발의는 이사회만 할 수 있다고 정했다. 이사와 평의원, 정회원이 똑같이 회비를 내는데 왜 이사회만 회칙개정 발의권을 가질 수 있느냐. 이건 대단히 비민주적이다.
그래서 이번 회칙 개정안에 20명 이상의 정회원이면 언제든지 회칙개정을 발의할 수 있도록 했고, 또 임원 선출권도 정회원이 갖도록 했다. 예를 들면 현재 있는 평의원들을 이름을 운영위원으로 바꾸었는데, 정회원이 운영위원을 선출할 수 있고, 회장 부회장도 정기총회에서 정회원이 선출하도록 했다. 그리고 정회원 자격도 원래대로 최현배 시대 회칙으로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회에서 낸 부대의견에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 회칙개정안 반대 부대의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 이렇게 찬반의견이 갈릴 때는 학회이기 때문에 토론회를 열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일하게도 분단이 안 된 게 있다”
  
▲ 2004년부터 남북이 합의해 시작된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사업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실상 중단됐다. [자료사진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회]
□ 남북 간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해오다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안다. 우리말과 글을 중심으로 한 남북교류나 협력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소개해 달라.
■ 우리 민족이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이미 노무현 정권에서 진행됐다. 그것이 바로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이다. 그런데 이 민족적인 사업이 결국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의해서 대단히 위축됐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한다. 올해가 민족이 분단된 지 72년이 된다. 우리는 광복 72주년이라고 하는데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분단 72년이다. 분단이 72년인데 분단이 안 된 게 있다.
45년은 국토가 분단되고, 48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돼 국가가 분단됐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53년 이후에는 민족이 분단됐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분단이 안 된 게 있다. 그것은 우리 남북의 겨레들이 똑같은 말과 글을 쓰고 있어서 말글은 분단이 안 됐다. 그래서 말글 연구를 더 힘차게 하고 남북이 서로 교류협력하고 화해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는 평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영어가 범람해서는 자주국이라고 볼 수 없다”
  
▲ 중국 연변자치주 연길 시내 간판들. 한글을 위에, 중국어 간자체를 아래에 적는 방식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우리사회가 서구화되면서 한글 사용이 많이 왜곡되거나 위축돼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의 풍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 그렇다. 과거에는 한자, 한자말이 우리말을 대단히 괴롭혔다. 그런데 20세기말, 21세기에 들어와서 한자는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정말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범람하고 있다. 길거리 간판, 방송 용어를 보라. 전부 영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영어와 영문에 의해서 우리말과 한글은 죽어버릴 수밖에 없다. 하나만 들어보겠다. 지금 아나운서들이 ‘씽크홀(sinkhole)’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내가 그래서 어느 글에 이것은 ‘땅꺼짐 현상’이라고 이야기하면 된다고 했다.
영어가 범람해서는 자주국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이런 일들을 우리 민족학회인 한글학회라든지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국어운동 단체에서 활발하게 대처해야 한다.
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연변에 있는 어느 교수에게 연변의 길거리 간판을 문의하자 이메일로 사진을 보내왔다. 연변의 간판은 제일 윗부분이 한글로 씌여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중국어로 씌여 있다. 한자 간자체다. 조선족자치주이기 때문에 자치주에서 어문규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 연변이 오히려 더 잘하고 있구나’ 놀랐다.
우리도 길거리 간판은 사기업체까지도 반드시 한글로 쓰도록 해야 한다. 사기업체도 전부 우리 한반도 내에서 기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문으로 그냥 ‘POSCO’만 쓰면 안 되고 ‘포항제철’ 이렇게 쓰고 그 다음에 영문으로 ‘POSCO’라고 쓰면 된다. 이건 최소한의 요구다.
우리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 아무런 표기가 없다. 예를 들면 그냥 기호로만 남자표시, 여자표시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MAN’ ‘WOMAN’으로 돼 있다. 이래서는 안 되고 그냥 ‘남자’ ‘여자’, 서비스 차원에서 ‘MAN’ ‘WOMAN’ 이렇게 밑으로 표기해줘야 된다고 본다. 그래서 말글, 언어도 사실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고 인권이라고 볼 수 있다.

​(수정, 23:16)

두 아시아계 노벨상 작가, 공통점은 '이것'

18.02.16 20:20l최종 업데이트 18.02.16 20:20l



2017년도 노벨 문학상은 전년의 파격(밥 딜런 수상)을 깨고 다시 일반적인 '작가'에게로 돌아갔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인물로, 어린 시절 영국으로 건너가 쭉 그곳에서 살아가며 작품 활동을 전개해 온 일본계 영국인이다.

그의 작품은 살아온 공간에 맞추어 자연스레 영어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그가 순수한 일본 혈통이라는 점과 작품 내에 일본과 관련된 내용들이 종종 배어있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 소식은 일본 본토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는 1994년 오예 겐자부로가 문학상을 거머쥔 뒤 13년 만에 나온 일본계 문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한편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0년대 들어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두 번째 아시아계이기도 하다. 그 이전의 수상자는 2012년 수상의 영광을 거머쥔 중국인 소설가 모옌이다. 모옌은 '관모예'라는 본명을 가진 중국의 원로 작가로서, 이미 중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중국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붉은 수수밭>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미디어화 되고 국제적 찬사를 받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나온 아시아계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이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같은 아시아계이지만 국적은 물론이고 삶의 경로와 작품 세계, 문체까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대표작의 비교를 통해 두 작가 각각의 특징과 더불어 아시아 문학의 현황에 대해서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즈오 이시구로, 전쟁 세대의 '반성'을 촉구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 민음사

가즈오 이시구로에 수상의 영광을 안겨다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소설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의 고전'을 출판한다는 목적 아래에 간행되고 있는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세트의 일환으로 근래에 새로 간행된 바 있다.

이 책의 원본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1989년 초본이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출판 첫 해에 부커상을 수상하였고, 4년 뒤에는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기까지 했을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세간의 주목은 상당했다.

그러나 현대의, 그것도 한국의 독자가 읽기에 <남아 있는 나날>의 내용은 그 명성에 비해 시시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문학은 자극적인 소재나 서사구조를 채택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도리어 그 정반대의 길, 담담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서술자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 역시 초반부에는 빠르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영국의 한 고급 저택에서 살아온 노년의 '집사'가 들려주는 '품위'나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 따위의 논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책 읽기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라면 낯선 소재와 지리한 전개로 지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가 드러나며 <남아 있는 나날>이 주목받은 이유를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자신이 평생 존경하며 섬겨온 주인이, 자신의 삶의 자부심의 주축이 되어온 바로 그 인물이 실은 한낱 무능하게 이용된 '나치 부역자'였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 그것이 이 책의 주인공이 서서히 깨닫게 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인식의 과정이 이 작품의 소재이다.

작가는 <남아 있는 나날>을 통해서 30년대 영국의 역사 속 어두운 면을 끌어내고, 동시에 시간이 많이 흐른 상황(노년의 주인공)에서라도 그것을 바로 인식하고 '남아 있는 나날'에서는 새롭게 바뀐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남아 있는 나날>을 감성적인 필체로 그려낸 역사소설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는 보다 확실하게 동일한 소재를 다룬 바 있다. 이 작품은 제국주의 일본에 부역했던 화가의 반성적 회고담을 다룬다. 이처럼 그의 글들은 늘 섬세하고 은은하나, 그것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그 어느 작가의 것보다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모옌, 환상을 통해 억압된 현실을 꼬집다 
 모옌 <열세 걸음>
▲  모옌 <열세 걸음>
ⓒ 문학동네

그렇다면 모옌의 경우는 어떨까. <열세 걸음>을 그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이시구로보다 모옌의 작품은 국내에 훨씬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붉은 수수밭>을 비롯해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문학동네,2009), <풀 먹는 가족>(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열세 걸음>을 비롯한 이들 작품은 모두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바로 환상적 형식이다. 앞서 말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서술 방식이 여러 작가들에게서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옌의 서술 방식은 보다 파격적이다. '중국의 마르케스'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중국의 민담과 설화를 끌어다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러하듯,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옌 역시 환상적 이야기들을 현실 곳곳에 삽입해 둘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기법을 즐겨 사용한다. 여기에 더해 <열세 걸음>에서 독자들은 초반부에 서술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명시되지 않은 채 서로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서술되기 때문이다. 서술자의 지위 역시 비전통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기법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즈오 이시구로와 마찬가지로 모옌 역시 어디까지나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학을 보여준다. <열세 걸음>의 경우, 70~80년대 중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던 여러가지 모순적인 상황들과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되어도 좋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작품의 후반부, 주인공인 물리 교사 장즈추가 죽은 상황에서 그를 추모하는 학교 연설이 이루어진다. 이때 교장은 선생의 죽음을 계기삼아 더욱 공부에 매진할 것만을 강조한다. 얼마나 '개인'이 지니는 가치가 사라진 사회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교장이 선창했다. "대학 합격!"
"대-학-합-격!"
교장이 선창했다. "대입 실패는 살아도 죽느니만 못한 것!"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이 지나온 역사 속 잘못된 유산들을 꼬집는다면, 모옌은 지금 '당장'의 중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아시아계 작가들의 위상과 미래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발표하는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발표하는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 노벨위원회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지만, 아시아계 인물들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아시아인으로서 문학상을 받은 인물은 앞의 두 사람과 더불어 총 네 명 뿐이다.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유럽-아시아 사이에서 정체성의 논란이 있는 '터키' 소속의 오르한 파묵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본인의 국적을 버리면서 조국을 강하게 성토하며 귀화, 서구권에 편입된 반체제 중국인 작가 '가오싱젠'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실국적이 영국이라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아시아 작가들의 국제무대에서의 주목도는 여전히 전통 서구권 뿐 아니라 남미 및 동유럽계 문학에 비해서도 저조한 편인 셈이다. 이미 아시아가 국제무대에서 정치경제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찮아진 지 오래인 상황에서, 이러한 문화적 약세는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문학 역시 중일 양국의 문학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 훨씬 더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 두 노벨상 작가를 비교해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 보편적 감성을 그려내는지가 해당 작가 및 문단의 역량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와 모옌의 서술 방식은 매우 상이하고 소재 역시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문제 - 2차 세계대전의 정신적 극복, 전체주의(또는 공산주의) 사회의 내재적 모순 - 를 뛰어난 표현력으로 소설화 해냈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소설이나 시가 아시아권에서 정착한 지는 서구에 비해 오래되지 않았다. 또한 아시아의 선진 국가들조차도 이미 국제무대의 주류인 서구권에서는 한 세대 전 지나간 이데올로기 문학이나 민족 문학에 불과 최근까지도 강하게 빠져있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국제적 보편성이나 뛰어난 표현력 등이 확보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수록 이러한 장애 요소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다양한 세계 문학들이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부디 멀지 않은 시일에 새로운 아시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새롭게 탄생해 아시아 문학의 더욱 발전된,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