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한 언어학자가 집필한 책에서 한국의 ‘곽’씨 성을 영어로 표기하는 방법이 60여 개가 된다는 내용을 보았다. 곰곰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굳이 ‘곽’씨가 아니더라도 내 성씨는 영어로 표기되는 순간 아주 이상하게 된다. 유학을 앞두고 여권 발급을 위해 영문명을 써야 할 때, 나는 주저 없이 아버지가 쓰시던 영문표기 ‘choi’를 그대로 따라 썼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초이’지 ‘최’는 아닌 것 같다.
더구나 문제는 내가 유학을 간 곳이 영어권이 아닌 독일이라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대뜸 내 성을 보고 ‘코이’로 읽어버렸다. 영어와 다른 발음체계를 가진 독일에서 내 성은 졸지에 ‘코이’가 된다. 이름이라고 자유로울 수 없으니, 여기에 이름까지 보태면 나도 낯선 내 이름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내가 처음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를 알파벳으로 보았을 때 단박에 ‘추커베르크’로 읽으면서, 독일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이상 추커(설탕)베르크(산), 즉 ‘당산(糖山)’이라는 나름의 작명까지 곁들였다. 그러고 보니 독일어와 영어의 읽기 방식 차이 때문에 바그너는 와그너가 되고, 함부르거(함부르크 사람)는 햄버거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모차르트·모짜르트·모짤트도 있고, 바흐와 바하도 있다. 동일인인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필하모니는 ‘비엔나 필하모니’가 아니라, ‘빈 필하모니’다. ‘빈~’은 독일어 국가인 오스트리아 수도의 독일어 발음이다.
내 가족 이야기로 돌아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남편과 아들의 성이 영문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표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남편은 여권에 쓰일 성을 영문 ‘Ju’로 표기했는데, 훗날 한국에서 군대에 가게 된 아들은 다른 알파벳 조합으로 성을 표기하다 보니, 가족관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 성의 영문표기를 독일식으로 발음 하면 ‘유(Ju)’씨가 되는데, 아들은 이를 피하려 흔한 영문표기로 동물원과 발음이 같은 ‘주(Joo)’를 택했지만, 이를 다시 독일식으로 발음하면 ‘요’씨가 되는 요상한 일들이 생긴다. 현재 아들은 다시 ‘Ju’로 영문표기를 한다. 이렇게 되면 군대는 다른 사람이 다녀온 것이 되나? 같은 ‘박’씨라도 ‘박(Pak)세리’와 ‘박(Park)찬호’의 영문 표기가 다른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우리나라 고유 명칭의 표기법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가 ‘Chechu’에서 ‘Cheju’로, 그리고 지금은 ‘Jeju’로 쓴다. 되도록 우리말 소리체계로 표현하려는 국어학자들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고유 명칭을 더 이상 영어 표기법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발음에 맞도록 표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들어 뉴스를 장식한 터키가 바로 그 한 예인데, 터키는 칠면조의 영어 발음과 같기에 보다 자국의 명칭에 가까운 ‘튀르키에’로 바꾸어 국가명을 표기하고 있다. 조금만 찾아보면 세계 곳곳에서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제주도만 문제이겠는가. 우리 학교 명칭의 영문 표기는 ‘Sungkyunkwan’인데, 학교 인근 꽃집이 ‘Seounggyungwan 꽃집’인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둘러보니 도로명 표지판 하단의 영문표기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두 가지 모두가 쓰이고 있어, 같은 ‘성균관로’가 서로 다른 모양새로 표기되어 있다. 그래도 뭐가 문제이겠는가. 한국어 발음만 같다면야. 정말 그런가? 어느새 우리나라 ‘김’씨는 ‘(킴)Kim’도 ‘(김)Gim’도 있고, ‘이’씨는 ‘(리)Lee’도 ‘(이)Yi’도 있다.
우리는 “영어가 한국에 와서 고생한다”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우리말도 외국에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다. 내 성을 ‘코이’로 발음하는 독일 친구들에게 ‘tschoe’로 표기해 주면, 정확하게 ‘최’로 발음한다. 무엇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 별생각 없이 관례대로 영어 표기법으로 만들어 놓은 이름은 거의 개명 수준이 되어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내 정체성마저도 혼란스럽게 한다.
누군가 이렇게 따져 묻겠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지금은 다양한 국적과 언어권의 저자들이 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때문에 생소해 보이는 많은 이름을 대하면서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지기도 한다.
어떤 답을 내야 할지 유보한 채, 우리 고유의 이름들이 영어식 표기에 휘둘려 세상 다시 없는 요상한 이름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름마저 영어의 노예가 되어 엉뚱한 소리로 불리지 않아야겠기에.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