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5일 금요일

매혹적인 붉은 아이라인, 홍도평에 돌아온 황새

매혹적인 붉은 아이라인, 홍도평에 돌아온 황새

윤순영 2019. 03. 15
조회수 91 추천수 0
느림 속 빠름, 기품 느껴지는 진객 한강하구 출현

크기변환_YSY_4602.jpg» 텃새는 절멸됐고 겨울 철새로 드물게 찾아오는 황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보호 새이다.

오랜만에 귀한 황새를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필자가 한강하구에서 황새를 만난 일은 처음이다. 2월 11일 땅거미 질 무렵 차량으로 이동하다 홍도평야 상공을 낮게 날아가는 황새를 발견했다. 비행고도가 홍도평에서 날아오른 것으로 보였다. 이튿날 그곳에 가 보았지만 관찰되지 않았다. 홍도평은 경기도 김포시 북변동과 사우동에 위치해 김포를 대표했던 평야다. 재두루미와 큰기러기가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크기변환_YSY_4670.jpg» 수염 같은 앞가슴 깃털에 부리를 숨기는 것은 정상적인 체온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텃새였던 남한의 황새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개체수가 대폭 줄어든 데다 1960년을 전후해 밀렵 등으로 모두 희생되었다. 마지막 번식지였던 충청북도 음성의 1쌍마저 1971년 4월 밀렵으로 수컷이 사살되고 홀로 남은 암컷이 해마다 무정란을 낳았다. 우리나라 마지막 토종 황새였던 이 '과부 황새'는 농약에 중독되어 1983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뒤 1994년까지 살았다. 이제는 겨울철 천수만과 백령도, 금강하구, 해남, 제주도에 5~15마리가 불규칙하게 찾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크기변환_YSY_4606.jpg» 기지개를 펴는 황새.

2월 14일 저 멀리 왜가리, 중대백로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는 황새를 보았다. 그러나 공릉천 탐조 계획을 미룰 수 없어 확인만 하고 자리를 떴다. 황새가 물고기를 사냥하는 곳은 홍도평야에서 사용하던 농업용수를 계양천을 통해 배수하는 관청천으로 아침엔 살얼음이 얼고 오후에는 풀리는 곳이다. 황새는 오후에 이곳의 작은 웅덩이를 찾아와 사냥하고 홍도평야 농경지에서 필요한 먹이를 찾는다. 홍도평야는 특히 재두루미 월동지로 유명한 곳이다.

크기변환_YSY_5319.jpg» 두툼한 부리는 당장 철판이라도 부술 것처럼 단단해 보인다.

크기변환_YSY_4783.jpg» 황새, 왜가리, 중대백로가 나란히 서서 쉬고 있다. 마치 키재기를 하는 것 같다.

재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이 서식할 수 없게 훼손되고 있는 홍도평야에 황새가 날아든 것을 보면, 이곳이 여전히 철새들에게 천혜의 장소임은 분명하다. 황새는 지속해서 보이지만 촬영할 수 있는 조건이 쉽지 않고 접근하기도 까다로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2월 18일 아침, 재두루미를 관찰하러 이동하던 중 홍도평야에서 황새를 다시 목격했다. 북상 길에 당분간은 홍도평야에서 머물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후 3시께 홍도평야에 다시 들렀다. 다행히 황새가 관찰과 촬영을 쉽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40여분이 흘렀을까 농경지로 날아가 낱알을 먹는다.

변환_YSY_5375.jpg» 농경지에서 필요한 먹이를 찾는 황새.

새들은 경계 거리와 위협을 느끼는 거리를 정해 놓는다. 그 선을 넘어 가까이 가려고 하면 예민해진다. 곁을 잘 주지 않고 더 멀리 피하곤 한다. 그러나 황새가 매우 가까운 거리를 허락했다. 30m 앞이다.

그동안 황새를 관찰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예민한 새도 있겠지만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거리를 지켜주어야 친밀한 만남이 이뤄진다. 사진을 충분히 촬영할 시간이 주어져 자세히 관찰할 기회도 생겼다.

크기변환_YSY_4960.jpg» 바람에 날리는 가슴 깃털이 마치 흰 수염을 늘어뜨린 것 같다. 쉴 때는 부리를 항상 이곳에 감춰 체온을 유지한다.

부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두툼한 부리는 강력한 힘이 있어 보인다. 붉은 다리, 붉은 눈 선이 매혹적이다. 먼 거리에서 보던 황새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황새의 가슴 깃털이 부드러운 비단결처럼 보였다.

느림의 미학. 태연한 척하며 진중하게 주변을 살피는 모습에 기품이 느껴졌다. 서두는 법이 없다. 정적이고 느리게 행동하다 부리로 신중하게, 정확하게, 번개처럼 빠르게 사냥하는 것이 황새다.

크기변환_YSY_5385.jpg» 황새가 걸어가는 모습은 서두름이 없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5354.jpg» 몸집이 큰데도 도움닫기 없이 그 자리에서 사뿐히 날아오른다.

황새는 몸길이 100~115㎝, 편 날개 길이는 190~195㎝로 꽤 큰 편이다. 날개를 펴면 날개 윗면에 검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열된 굵은 무늬가 오르간을 연상케 하며 흑백의 미를 더한다.

몸무게가 4.4~5㎏으로 제법 무거운데도 제자리에서 사뿐히 날아오른다. 황새는 울대나 울대 근육이 없어 다른 새들처럼 울지 못하고 목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숙이면서 부리를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낸다.

크기변환_YSY_4265.jpg» 비상하는 황새.

즐거워도 슬퍼도 원초적인 몸짓 언어로만 소통하며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동물이다. 황새를 수년 동안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과 친숙하게 지낼 수 있고, 변해 버린 환경에서도 적응이 가능한 새라는 것이다.

황새는 20여일 남짓 홍도평야에서 머물며 김포시 운양동 유수지를 잠자리로 이용했다. 2월 28일 노랑부리저어새와 함께 유수지에서 목격된 이후 황새는 보이지 않았다. 홍도평야를 떠난 황새는 지금쯤 번식지를 향한 2500㎞의 힘찬 대장정을 마쳤을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김응성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들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들
임병도 | 2019-03-15 08:34:49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3년에 벌어졌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조사를 하면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의혹 당사자였던 김학의 전 차관을 3월 15일 서울동부지검으로 소환해 조사합니다.
처음에는 ‘별장 성접대 의혹’이라 불리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은 여성 사업가와 건설회사 대표 간의 성폭행 수사로 시작됐습니다.

성접대 의혹 사건의 시작
2012년 여성 사업가 A씨는 중천건설 윤중천 대표가 자신을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돈을 뜯어냈다며, 윤씨와 지인 B씨를 강간 혐의로 고소합니다.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는 윤씨와 B씨를 체포하고 강원도 원주 별장을 압수수색했지만 증거가 없자, 무혐의 처분을 내립니다. 윤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여성사업가 A씨는 윤씨의 벤츠 승용차를 찾아 달라고 P씨에게 요청합니다.
P씨는 윤씨의 벤츠 승용차에서 성관계 동영상이 담긴 CD 7개를 발견했고,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별장 성접대 리스트에 등장하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
▲별장 성접대가 이루어졌던 윤중천 회장의 강원도 원주 별장. 별장 하나가 아니라 골짜기 전체가 여러 개의 호화 별장으로 이루어졌다. ⓒMBC PD수첩 화면 캡처
윤중천 대표가 고위층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했던 강원도 별장은 민가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별장으로 2000평의 대지 위에 총 6채의 건물과 수영장 2곳,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와 모형 풍차가 있는 이국적인 느낌의 별장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대리석 바닥으로 원목가구와 고급 소파, 찜질방, 당구장, 가라오케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주말마다 벤츠 등 고급 외제차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윤 대표는 주말에 골프를 치고 난 뒤 고위층 인사를 자신의 별장에 초대해 술자리와 성접대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윤 대표가 단순히 즐기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한 로비성 접대라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2013년 별장 성접대 의혹 리스트에 등장했던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말
MBC ‘PD수첩‘은 윤중천 회장의 강원도 별장에서 성접대 의혹을 받은 리스트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김학의(전 법무부 차관), 성○○(전 ○○원 국장), 박○○(일산○○병원 원장), 이○○(○○당 인수위 대변인실), 박○○(○○○건설 대표), 이○○(○○그룹 부회장), 문○○(○○○그룹 회장), 김○○(○○건설 회장), 하○○(○○대 교수), 지○○(○○○피부과 원장), 최○○, 손○○ 등 사회 유력인사
별장 성관계 동영상에는 2013년 3월 13일 박근혜 정권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김학의씨가 등장합니다.
당시 김 차관은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부과된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며 “더 이상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직을 사임한다”라며 6일 만에 차관직에서 사퇴합니다.
김 전 차관은 “확인되지도 않은 언론 보도로 인해 개인의 인격과 가정의 평화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면서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윤중천 회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건설회사가 50억원대의 경찰청 교육원 골프장을 낙찰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과정에서 윤 대표가 경찰 수뇌부에 성접대를 하고 공사를 수주받았다는 의혹도 나왔습니다.
당시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실명이 거론되기도 했는데, 대부분 혐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트위터에 ‘만약 성접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할복자살하겠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동영상 증거가 있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 전 차관을 고소한 여성은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이 본인이라고 진술했다. ⓒPD수첩 화면 캡처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에는 다수의 여성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등장합니다. 동영상에는 김 전 차관이 함께 술을 마시던 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성접대의혹에 대해 SBS와 단독 인터뷰를 했던 여성 사업가 A씨는 윤중천 대표가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이 되면 한번 크게 써먹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라고 밝혔습니다.
동영상에 등장했던 여성들은 영상 속 남자가 김학의 전 차관이라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을 기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2013년 11월에 윤중천 회장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여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립니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들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검사 및 검찰 지휘 라인
2013년 11월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씨 성접대 혐의에 대해 동영상 속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피해여성은 2014년 7월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며 김 전 차관과 윤중천씨를 ‘성폭력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상습 강요)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합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1차 수사에서 김학의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가 다시 수사를 배당받았고, 2차 수사에서도 동영상속의 여성과 고소인이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다시 김 전 차관 등을 무혐의 처분합니다.
1차, 2차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곳은 서울중앙지검입니다. 그런데 당시 수사했던 검찰 지휘 라인을 보면 하나같이 정치 검사들이었습니다.
당시 1차 수사를 맡았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외압 의혹을, 박정식 3차장 부장검사는 BBK 특검 다스 수사팀장이었습니다.
2차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장 김수남은 박근혜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이었고, 유상범 3차장 부장검사는 정윤회 문건 사건 부실 수사 의혹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현장에서 1차 수사를 지휘했던 윤재필 강력부 부장검사는 연예인 도박사건을 담당했고, 2차 수사를 했던 강해운 부장검사는 2017년 여검사 성추행 사건으로 면직됐습니다.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 지휘라인을 보면 도저히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할 수 없는 검사들이었습니다.
<피해 여성이 검사에게 보낸 편지>
검사님, 전 지금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제가 용기를 내어 조사에 임한 만큼 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김학의, 윤중천을 법 앞에 국민들 앞에 심판을 받게 할 것입니다.
검사님, 이 세상에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세요.
그들을 제 힘으로 벌할 수 없어 목숨을 버리려고까지 했던
제 아픔을 느끼신다면 절대 김학의, 윤중천을 세상에 무릎 꿇게 하시고 처벌하여 주세요.
피해 여성은 별장 성접대 사건 이후에도 김학의 전 차관 등으로부터 서울 등지에서 수차례 더 성관계를 요구당했다며 고소했습니다. 피해 여성은 검찰 조사 후 검사에게 장문의 손편지를 보내 김학의, 윤중천이 법의 심판을 받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법은 결코 그녀들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피해여성은 막강한 정치 검찰의 힘 앞에 오히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강한 검찰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검사들이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검찰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번 ‘김학의 전 법무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재조사를 통해 검찰의 가장 썩은 부위가 과감하게 도려내길 기대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757 

[종합] 北 “미국, ‘황금 같은’ 기회 날렸다... 핵·미사일 시험 재개 여부도 곧 결정”

최선희 평양서 기자회견, “미국과 양보도 이런 식의 협상도 할 생각 없다”... 북미협상 중단 고려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9-03-15 16:47:22
수정 2019-03-15 16: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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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북측 관계자들이 15일, 평양에서 각국 외교관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북측 관계자들이 15일, 평양에서 각국 외교관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뉴시스/AP


북한이 미국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와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를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 조만간 결정을 내리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AP통신과 타스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현지 시간) 평양에서 평양 주재 외교관들과 외신 기자들을 초청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미국과 타협할 의도는 결코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최 부상은 또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며 “짧은 기간 안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김 위원장이 북한의 추가 행동에 관한 결정을 공식 성명을 통해 내놓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최 부상은 특히,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타협하거나 대화를 계속할 의향이 없다”면서 “미국은 지난 15개월 동안 북한의 발사 및 실험 중단에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계산’을 바꿨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미국의 기이한(eccentric) 협상 태도에 곤혹스러워했다”고 전하면서,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그들 스스로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바빴지, 결과를 내기 위한 진실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하노이 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좀 더 대화할 용의가 있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여줬다”면서 두 사람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정상회담에서) 적대감과 불신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면서 “그 결과 정상회담이 의미 있는 결과 없이 끝나게 된 것”이라며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책임을 돌렸다.
최 부상은 “(하노이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국무위원장은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다시 이런 기차 여행을 해야 하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한 뒤 “미국의 강도 같은(gangster-like)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경고했다.
북미관계·한반도 난기류 전망... 미국의 향후 대응 내용에 관심 집중
하지만 최 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에 관해서는 비핵화 대화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서 “두 지도자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는 여전히 좋고 궁합(chemistry)은 신비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묘사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최 부상은 또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모든 제재를 해제하려 했다’고 밝힌 대목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북한은 단지 민간 경제를 옥죄는 제재에 대해서만 해제를 요구했다며, “미국이 왜 이렇게 다른 설명을 내놓는지 그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다”면서 “우리는 이번에 미국이 우리와 매우 다른 계산법을 갖고 있음을 아주 분명히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평양 주재 외신 기자들도 일부 참석했으나,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참석한 한 외교관이 북한이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를 준비 중이라는 언론 보도에 관해 질문했으나, 최 부상은 직접적인 언급을 거부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북한이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공식적으로 미국을 비난하고, 핵·미사일 시험 재개는 물론 북미협상의 중단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힘에 따라 향후 북미관계 및 한반도 상황에 복잡한 난기류가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최 부상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좋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자제하고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의 원인을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에 돌린 것은 주목할 대목으로 보인다. 
즉. 양 지도자의 친분을 강조하고 신뢰를 해치지 않음으로써 향후 ‘톱다운’ 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또 미국의 대북정책에 관한 전면적인 자세 전환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번 최 부상의 공식 기자회견에 관해 미국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가 향후 북미관계 진행에 일차적인 관건이 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원식 전문기자

국제전문 기자입니다. 외교, 안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딱 하나 남은 성냥공장, 이대로 보내야 할까요

19.03.15 20:34l최종 업데이트 19.03.15 20:34l




 성광성냥이 2013년 11월 조업을 중지하면서 59년 동안의 성냥 생산이 종지부를 찍었다. 빈 공장에 남아 있는 생산의 흔적인 성냥개비.
▲  성광성냥이 2013년 11월 조업을 중지하면서 59년 동안의 성냥 생산이 종지부를 찍었다. 빈 공장에 남아 있는 생산의 흔적인 성냥개비.
ⓒ 장호철
 
의성에 마지막 성냥공장이 남아 있다는 얘길 들은 게 몇 해 전이다. 2000년대 초반, 읍내의 여고에서 이태나 근무한 적도 있는데도 그걸 왜 몰랐을까, 고갤 갸웃하면서도 이내 잊어버렸다. 두 번째 소식은 그 공장이 마침내 문을 닫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게 2015년께라고 생각했는데, 의성 현지에 가보고 나서야 공장이 문은 닫은 게 그보다 이른 2013년 11월이었다는 걸 알았다. 문을 닫은 이유야 뻔하다. 국내의 다른 성냥공장과 마찬가지로 값싼 중국산 성냥의 공세 앞에 손을 든 것이다. 

결국 문을 닫기까지

중국산 제품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는 회사야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65살 이상 인구가 2만567명(38.7%)에 이르러 고령화 지수는 전국 1위, 20~39살 가임여성 수가 고령자 수의 절반이 안 되는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소멸 대상 지자체 1순위'로 꼽히는 지역인 의성 이야기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1960년대 후반에 20만이 넘었던 대읍(大邑) 의성 인구는 2019년 2월 5만2799명(의성군 누리집)로 집계됐다. 군 지역으로선 인구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꼽히게 된 인구 구성이 문제다. 변변한 제조업체도 없는 의성에 한때 가장 잘 나가는 회사였던 성광성냥의 휴업이 현재 시점에서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광성냥공장 정문이 닫혀 있다.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것 그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이다.
▲  성광성냥공장 정문이 닫혀 있다.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것 그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 안내판이다.
ⓒ 장호철
   
 성광성냥은 2013년 5월에 경상북도 산업유산과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공장은 문을 닫았다.
▲  성광성냥은 2013년 5월에 경상북도 산업유산과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공장은 문을 닫았다.
ⓒ 장호철
 
의성과 군위에 사는 두 벗과 함께 닫힌 공장 문 앞에 닿은 것은 오후 4시께였다. 의성읍 향교길 57-4번지, 의성향교 앞에 있는 성광성냥공업사가 문을 연 때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2월이다. 2013년 11월 가동을 중지할 때까지 59년 동안 인근은 물론 전국 가정에 성냥을 공급했다. 

굳게 닫힌 정문 왼쪽에 회사 상호를 새긴 철제 간판 아래로 2013년 5월에 경상북도에서 지정한 '경상북도 산업유산', '향토 뿌리 기업' 명패가 걸렸다. 그러나 공장은 여섯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조업 중지에 들어갔다. 산업유산도 향토기업도 가격 경쟁력 앞에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했다. 

미리 전화로 약속한 손진국(83) 대표는 이내 골목 저편에서 나타났다. 여든이 넘은 분인데도 혈색도 좋고 건강해 보이는 그는 잠긴 문을 따고 우릴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대문 안으로 들자 양옆으로 여러 동의 건물이 나타났는데, 터가 무척 넓었다. 손 대표는 공장 전체 터가 2300평에 이른다고 했다.
  
 성광성냥공업사의 공장 부지는 모두 2300평이 이른다. 국내에 성냥 생산의 일괄공정 설비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공장이다.
▲  성광성냥공업사의 공장 부지는 모두 2300평이 이른다. 국내에 성냥 생산의 일괄공정 설비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공장이다.
ⓒ 장호철
   
 성냥개비가 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포플러 원목. 한때 이런 원목이 잔뜩 쟁여 있었을 것이다. 이 원목은 지름 2mm의 성냥개비로 가공된다.
▲  성냥개비가 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포플러 원목. 한때 이런 원목이 잔뜩 쟁여 있었을 것이다. 이 원목은 지름 2mm의 성냥개비로 가공된다.
ⓒ 장호철
 
성냥을 국내에 처음 들여온 이는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승려 이동인이다. 부산과 인천, 원산항으로 수입되던 성냥이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17년 인천 송림동에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였다. '인촌(燐寸)'은 일본에서 성냥을 이르는 이름이다. 병사들이 즐겨 부른 저속한 노래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가 생긴 배경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영세 성냥공장이 200여 개소(자료 대부분이 300여 개소로 기록하고 있지만, 손 대표는 실제 200여 개소 정도였다고 한다)에 이르렀다. 성광성냥공업사는 1954년 2월, 월남한 실향민과 의성지역 유지 몇 명이 뜻을 모아 창업한 회사였다. 

관련 업계도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적잖이 있었을 때, 민생의 재건에 따른 성냥의 수요가 필요할 때를 노린 창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당시 큰 트럭에 성냥을 가득 싣고 통영과 부산 등 남해안과 영덕·울진·속초 등 동해안으로 팔러 다닐 때를 회고했다. 

성광성냥은 남해안과 동해안 지역에서 품질을 인정받았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도 잘 켜지고 잘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성냥갑에 새겨진 오리 상표 덕도 보았다. 뱃사람들은 '물에 빠지지 않는 오리'처럼 배도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오리 상표에 자신들의 소망을 부여한 것이다. 

한때는 지역 경제의 기둥

성광성냥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 호롱불을 켜려고 해도 어두컴컴해서 성냥조차 보이지 않는 시골에서 눈에 잘 뜨이게 성냥갑에 야광 염료를 칠한 것이다. 이처럼 바닷가와 시골을 겨냥한 제품으로 성광성냥은 호황을 누렸다.

손 대표는 열일곱 살 때 직공으로 성광성냥에 입사했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2년 뒤에 공장장이 되었고, 스물한 살 때 상무로 승진하고 지분을 갖게 되었다. 공장도 발전을 거듭해 한때 종업원을 162명까지 두었고, 가히 의성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원목을 성냥개비로 바꾸어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괄 자동화공정을 갖춘 공장이었다. 공정별로 별도의 건물이 따로 서 있다.
▲  성광성냥공업사는 원목을 성냥개비로 바꾸어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괄 자동화공정을 갖춘 공장이었다. 공정별로 별도의 건물이 따로 서 있다.
ⓒ 장호철
 
성냥공장에서는 기계 운전이나 원목을 다루는 등 힘쓰는 일은 남자 직공들이 맡지만 만들어진 성냥 낱알을 수작업으로 성냥갑에 넣는 일 등은 여자 직공의 몫이었다. 마땅한 일자리도 없던 그 시절, 향토기업 성광성냥 공장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로 나온 여성들로 넘쳤다.

하루 평균 1만5000갑(550개피 기준)을 생산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을 때는 2대의 통근버스를 운행하여 직공들에게 출퇴근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읍내에 하도급업체를 만들어 거기서 제작한 목곽(木槨) 성냥갑을 납품받을 정도였다. 일종의 외주였던 셈인데, 외부에서 목곽을 제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200여 명에 이르렀다.

200여 개에 이르렀던 성냥공장은 1970년대 들면서 50여 개로 재편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일회용 가스라이터가 출시되면서 성냥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2000년에 들어서는 성광성냥을 비롯하여 돈표(경북 영주 영화인촌산업), 기린표(김해 경남산업공사), 공작표(광주광역시 공작화학공업) 등 4곳만이 남았다. 

살아남은 공장도 몇 년 더 견디지 못했다. 공작표와 돈표가 각각 2001년과 2002년에 문을 닫으면서 국내 성냥공장의 맥은 성광성냥공업사와 경남산업공사 두 곳만이 힘겹게 이어가야 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경남산업공사도 주요 설비를 동남아시아에 처분하고 수입하여 포장과 판매만 하게 되면서 완제품 생산공장은 결국 성광성냥 한 곳만 남게 된 것이었다.

결국, 2013년 11월에 성광성냥이 조업을 중지했고, 4년 후인 2017년 8월에는 경남산업공사가 문을 닫았다. 1948년에 문을 연 경남산업공사가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마침내 국내에는 성냥공장이 한 군데도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재활의 길을 찾는 성광성냥

손 대표를 따라 공장을 한 바퀴 도는 데 반 시간쯤 걸렸다. 성냥을 만드는 데 공정이 그 정도로 복잡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름드리 포플러 원목이 2mm 남짓한 성냥개비로 바뀌는 데 드는 공정의 수도 만만찮았다.

원목이 입고되면 이를 40cm로 절단해 껍질을 벗긴 뒤 축목(縮木)부에서 2.2mm 합판으로 만들고 채를 썰 듯 42·48mm 등 두 종류 성냥개비를 만든다. 이는 다시 건조기를 지나면 수분을 없앤 뒤에 성냥개비에 화약을 묻힌다. 이 낱낱의 성냥개비를 수작업으로 성냥갑에 넣고 옆면에 적린(赤燐 : 낮은 온도에서도 불이 잘 붙는 성질을 가진 붉은 인)을 붙이는 일까지 마치면 한 통의 성냥이 완성되는 것이다.

꽤 긴 공정에 드는 기계설비도 만만찮았다. 거대한 규모의 철제 설비를 갖춘 작업장이 윤전부, 축목부, 건조부, 소갑부, 대갑부, 배합실 등 13개 동이나 되는 이유다. 손 대표는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다 보니 공정이 길고 설비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성냥갑에 담기기 직전의 공정을 거쳐 나온 성냥개비들. 이 역시 공장이 남긴 흔적이다.
▲  성냥갑에 담기기 직전의 공정을 거쳐 나온 성냥개비들. 이 역시 공장이 남긴 흔적이다.
ⓒ 장호철
   
 빈 성냥갑만 남기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멈춘 기계 설비 위에 성냥갑만 빼곡하게 남았다.
▲  빈 성냥갑만 남기고 공장은 문을 닫았다. 멈춘 기계 설비 위에 성냥갑만 빼곡하게 남았다.
ⓒ 장호철

그러나 그게 역설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결정적 이유는 아닐까 싶었다. 상대적으로 긴 공정이 인건비와 제조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은 값싼 인건비를 무기 삼아 밀려드는 중국산의 공격 앞에 손을 들고 만 것이 아닌가 말이다.

조업을 중지하게 된 2013년에 성광성냥은 하루 생산량을 1만5천 갑에서 1500갑까지 줄였다. 그러나 그것도 역부족이었다. 그 전해에 경상북도와 의성군이 성광성냥을 예비 사회적기업과 일자리 창출 사업장으로 지정했으나 2013년 8월에 요건 미달로 재지정되지 못했다. 2013년 5월, 경상북도 지정 '경상북도 산업유산', '향토 뿌리 기업'으로 지정된 것도 힘이 되지 못했다.

2014년에는 의성군이 중기지방재정계획에 총사업비 40억 원 규모의 성냥박물관 건립을 포함하여 추진했으나 2015년 경상북도의 관광 자원화 투자사업 심사에서 탈락했다. 기업으로서든 기념사업으로서든 성광성냥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잇따라 수포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문화재로서도 관광자원으로서도 성냥공장의 가치는 섣불리 무시할 처지가 아니다. 의성군에서 이의 활용방안을 찾는 용역을 두 차례나 거친 이유다. 그러나 두 차례 용역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온 건 이게 만만하게 접근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증빙한다.

흔치 않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성광성냥을 버려두거나 사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는 모두의 의견이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박물관이든 체험전시관이든 간에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발목을 잡는 것이다. 사업 시행의 결과 관리 비용만 쏟아부어야 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의성군에서는 성광성냥이 원목을 가공하여 마지막 완성품인 성냥갑까지 만들어지는 일괄공정 설비를 갖추고 있는 국내의 유일한 공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현재 중국이나 베트남의 성냥공장은 공정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일괄공정을 갖추는 게 비용이나 운영 면에서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냥공장과 관련한 의성군의 계획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성광성냥 공장을 전통시장과 연계한 테마형 마을을 조성하여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추진한다"로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그 구체적 청사진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무엇으로든 되살려야 한다

의성군에서는 성냥공장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 내용 면에서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갖추고 있는 성냥공장은 도 지정문화재인 의성향교 바로 앞에 있어서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의성군에서는 현재 관련 용역이 진행 중인데, '도심 재생 프로젝트'와 '마을 미술 프로젝트' 등을 결합하여 공장에서 성냥을 생산하고 전시 체험시설을 세워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성광성냥에서 퇴직한 60대 숙련공들이 주변에 사니까, 이분들에게 다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진행 중인 용역의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국비를 받아서 본격적으로 테마형 마을인 '희망마을'이 꾸려지는 것은 언제쯤일까. 현재까지 그 구체적 일정이 나오지 않고 있음에 손진국 대표는 초조함과 아쉬움을 내비쳤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성냥공장인 만큼 이를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바라는 것은 없다. 공장이 지역의 관광자원이든 문화유산이든 하루바삐 활용되어 지역에 보탬이 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시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
 
 전 생애를 성냥공장에 바친 손진국 대표(83). 그는 열일곱 살에 공장에 들어와 일흔여덟 살까지 공장을 운영했다.
▲  전 생애를 성냥공장에 바친 손진국 대표(83). 그는 열일곱 살에 공장에 들어와 일흔여덟 살까지 공장을 운영했다.
ⓒ 장호철
   
 성광성넝에서 생산하였던 향로성냥. 오리표로 바닷가 마을에서 인기가 높았다.
▲  성광성넝에서 생산하였던 향로성냥. 오리표로 바닷가 마을에서 인기가 높았다.
ⓒ 장호철

열일곱에 시작한 일을 일흔여덟까지 놓지 않았던 손 대표에게 성냥공장은 전 생애를 바친 일터였고 사업이었고, 그의 보람이었다. 이미 문을 닫은 자신의 일터가 한때는 향토기업으로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일터였다는 사실을 그는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인근 금성면으로 귀촌하여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벗도 의견을 보탰다. 귀촌 8년차, 그도 의성사람이 다 된 걸까.
 
"'나만의 성냥' 만들기 체험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지. 텔레비전이 나오고도 신문과 책은 살아남았고,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는 아련한 추억이야. 주 소비계층 3, 40대 이상과 베이비붐 세대를 고려해 보면 이런 사업의 전망은 있지 않을까?

굳이 거액을 들여 박물관과 체험관을 짓지 않아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공장을 돌리며 주 2회 정도라도 공정을 공개하고 체험 공간으로 개방하여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거, 반드시 힘들기만 할까?"

일본의 성냥공장도 중국산에 대응해서 고급화와 관광 상품화 전략으로 재활의 길을 찾았다고 한다. '성냥'을 단순히 불붙이는 도구가 아니라 '시대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로서 의미를 부여하는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우리는 손 대표에게 머지않은 장래에 소망하시는 대로 성광성냥이 거듭나리라고 위로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글쎄, 시답잖은 방문객이라도 그에겐 우리의 관심과 공감이 위안이 되었을까. 이곳을 다시 찾는 날에는 향굣길 근처가 외지의 방문객으로 북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친일후예 적폐세력의 ‘끝판왕’ 자유한국당

친일후예 적폐세력의 ‘끝판왕’ 자유한국당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기사입력: 2019/03/16 [09: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나오라는 개구리 대신 튀어나온 친일 토착왜구 

친일 친일 친일이 노래를 한다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친일 친일 친일이 노래를 한다친일 친일 친일이 목청도 좋다.”

잘 알려진 동요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에서 개굴을 친일로 바꿔 봤는데 제법 들어맞는다. 3월 6일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절기인 경칩이었는데정작 개구리는 보이지 않고 자유한국당이 한껏 친일의 기지개를 펴고 있는 현실을 풍자해본 것이다최근 유행하는 신조어 토착왜구의 뜻은 이 땅에 오래 정착해 현지화한 왜구(일본놈)인데공개 친일 행보를 당당히 이어가고 있는 자한당을 이르는 대명사로 정착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다. 1997년 11월 21일 창당한 한나라당과 2011년 등장한 새누리당의 계보를 이어 2017년 2월 13일 간판을 바꿔단 자유한국당에 적용하기 딱 좋은 속담이 아닐 수 없다이들은 여론의 비판에도 변함없이 친일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신인 새누리당이 국정농단 주범 박근혜 정권의 둥지였던 만큼 촛불항쟁의 여파를 비껴가고자 새로운 간판을 단 것인데꾸준히 비판받아온 친일의 정체성만큼은 전혀 바뀌지 않은 듯하다신장개업한지 채 3년도 되지 않았는데 대놓고 친일에 앞장서 매달리는 역대 급 몽니를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 3월 7일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회의 모습     © 자주시보

무엇보다 여의도와 영등포를 점거하고는 끝없이 친일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한당의 활약상(?)이 범상치 않다날마다 스스로 토착왜구가 맞다며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거리낌 없는 이들의 어마어마한 친일 이력을 하나하나 따져봤다.

최근 나경원은 나베(나경원+아베)” “나경원은 아베 수석대변인라는 말이 당연한 듯 여론을 휩쓸고 있다. 3월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수석대변인이라는 막말을 쏟아내자 자한당 의원들이 호응하며 크게 박수를 쳤다이에 친일을 넘어 아베 정권과 입장이 정확히 일치하는 반민족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한 존칭은 이하 생략한다)

당장 민중당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 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들이 나경원과 자한당에 대한 전격 규탄에 나섰다서울 동작구에 있는 나경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 위의 구호가 담긴 팻말이 덕지덕지 붙었다현장에서는 자유한국당 규탄한다자유한국당 해체하라는 구호도 울려 퍼졌다이밖에 정의당민주평화당더불어민주당 등 정당들도 자한당에 대한 공세에 나서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자한당의 친일행보가 사면초가에 빠져있음이 잘 드러난다실제로 한국 국민 대다수는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인식에 동감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월 1~8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인식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친일잔재가청산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80.1%에 달했다.

그럼에도 자한당은 국민을 위해라며 감히 뻔뻔한 낯짝을 들이밀고 있다여론의 비판에도 꼼짝 않고 버티는 이들의 친일관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주자인 나경원의 친일 이력서만 봐도 정말 엄청나다.

나경원과 그 동료들의 친일 이력

자민당인 줄 알았다.” “자한당여의도의 중심에서 자민당을 외치다!”

▲ 나경원과 아베 합성이미지     © 적폐의 모든 것 페이스북

인터넷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2018년 9월 20일 당시 나경원 자한당 의원이 주최한 <일본 자민당의 정권복귀와 아베 총리 중심의 자민당 우위체제 구축>란 제목의 강연에 대한 반응이다이에 대해 당시 논란의 장본인인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친일행위로 매도돼 안타깝다고 적었다.

글쎄… 안타깝다는 나경원의 말이 맞는 것 같다국회의원1야당 원내대표라는 명함을 갖고 있는 그의 행보는 단순한 친일이 아니라 엄연한 친일반민족행위이기 때문이다. 2014년 초선의원 시절부터 원내대표로 이 높아진 2019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나경원의 초지일관을 들여다보니 다음의 결과가 나왔다.

초선의원 시절 2004년 일본 자위대 창립 50주년 행사 참가, 2018년 9월 20일 <일본 자민당의 정권복귀와 아베 총리 중심의 자민당 우위체제 구축>이라는 제목의 공개간담회 주최, 2019년 1월 14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당시 정부가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했다”, 2019년 124일 초계기 사건우방인 일본을 외통수로 몰지 말라”, 2019년 1월 29일 평화 여성인권운동가 고(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을 찾은 자리에서 “(한일 위안부합의는)외교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당장 국민은 나경원 원내대표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다인터넷 게시판 등 여기저기에서 나베라는 신조어가 전파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어쩌면 그렇게 아베하고 입장이 똑같냐’ ‘왜 그렇게 남북·북미대화 싫어하는 아베처럼 우리 민족에 해만 되는 일만 골라서 하냐는 취지로 누리꾼들이 붙인 별명이다.

평가하자면 자한당은 자유민주당(일본 자민당)의 한국 지부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닌듯하다자한당은 위안부 합의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자위대 초계기 도발 등 우리와 일본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우방인 일본을 외통수로 몰지 말라라며 일본의 편을 들었으니 말이다.

일제침탈의 장본인 ‘A급 전범인 자신의 조상들이 벌인 과거의 원죄에 대해 이미 해결된 일” “유감이라며 진정한 반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길 없는 것이 오늘날 자민당의 현주소다아베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의 대다수 의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한일병합의 정당성부터 위안부합의 규탄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자위대 초계기에 대한 한국군의 도발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자한당은 자민당의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으니자한당이 자민당을 대신해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민당 한국지부라는 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물론 이런 망언이 주로 나경원의 입을 통해 돋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한당 전체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다그러나 워낙에 나경원이 주목받고 있어서 그렇지 자한당 출신 누구나 화려한 친일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홍카콜라로 유명한 홍준표는 당 대표시절이던 2017년 12월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에 연거푸 고개를 숙여 힘차게 악수했다이 방일결과를 받아들고 2018년 1월에는 심지어 문재인 정부처럼 청년을 현혹시키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 일본은 깨어있는 나라라고 열렬히 아베 정권을 칭송하기까지 했다자국 대통령을 깎아내리면서까지 과거사 미화-극우행보에 나서고 있는 아베를 본받아야 한다는 인식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날마다 태극기 부대를 몰고 다니며 지난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3등을 기록한 김진태의 친일반민족행위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11월 김진태는 페이스북에 이게 나라냐라고 개탄했다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에 묻혀있는 총 63명의 친일행위자 묘지를 이장해야 한다는 움직임에 대한 맞대응이었다김진태는 다음번 총선에서 우파가 폭망하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싸우자!”라고도 적었다.

이밖에도 자유한국당은 하나로 똘똘 뭉쳐 화해치유재단 해산은 한일 관계를 고려해 신중해야한다며 위안부 피해자의 지원예산 증액도 가로막았다자한당의 본국은 아무리 살펴봐도 일본인 것 같다자한당이 자민당 지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친일반민족의 결정체 자한당을 보고 있노라면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려 한다(화를 자청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려 한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동시에 공고하게 다진 제 권력과 부를 굳게 믿으니 그런 막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으리라는 분노와 탄식도 터지게 된다.

국회의원-고위공직자 등 높은 감투라는 무대와 환경이 갖춰져 있으니 현대판 친일파들에게 여론은 우습기 짝이 없을 것이다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근본적 원인은 아주 간략히 말하자면 해방 이래 행정조직을 장악한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이승만 정권에 의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무력화, “천황폐하께 충성을 혈서로 맹세한 일제 관동군 장교 출신 박정희 유신세력의 장기독재박정희를 이은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그 결과 오늘도 굽힘 없는 반민족·친일부역’ 정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을 하찮게 여기는 행위들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 9월에 공개적으로 천황폐하 만세를 말한 뒤 정직 2개월의 솜방망이 징계를 마치고 스리슬쩍 복귀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이정호 전 센터장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일왕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는 공공기관장이어서 일본 정부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내가 장관도 아닌데 문제인가라며 얼토당토 않는 답변을 내놓은 황현탁 도박문제관리센터 원장 등이러한 고위공직계의 친일반민족행위도 모두 자한당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반민족·친일부역 자한당 해체 위해 싸울 때

▲ 3월 매주 토요일 열리는 자유한국당 규탄대회 선전물     © 자주시보

반민족·친일부역의 기세는 여전히 꺾일 줄 모른다무엇보다 촛불항쟁의 상징인 광화문광장에는 자한당과 대한애국당이 가세한 태극기 부대가 주말마다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지난 3.1독립운동 100주년에는 태극기 부대가 도쿄로 진출해 일본 극우세력과 함꼐 태극기일장기성조기를 나란히 휘두르는 경악할 태극기집회 일본판을 벌이기까지 했다합의가 무산된 2차 북미정상회담을 반기며 남북대화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하는 연호가 일본의 상징 도쿄역 근처에서 벌어진 것이다거리상 일왕이 거주하는 고쿄(皇居)하고도 무척 가까운 장소이기도 했다.

혐한 여론이 들끓는 일본의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나경원의 국회연설에 대해 친일 인증이라며 반색하고 있다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우리나라와 민족에 엄청난 해악을 끼칠 뿐인 자한당의 존재는 더 이상 방치되어선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사례들은 반민족·친일부역의 풍경을 알고 있다고 해도마땅히 청산되어야 한다는 인식만으로는 현대판 친일파들을 깔끔히 뿌리 뽑을 수 없다는 점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때때로 이정호 같은 이들이 슬쩍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가도 아무 일 없이 돌아와 높은 자리를 꿰차는 것처럼자한당이 구심점이 되어 민족의 얼을 붕괴시키는 반민족과 친일부역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몇 발짝 더 나아가 자한당을 비롯한 친일세력을 말끔히 청산하기 위한 직접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총선은 약 1년이나 남았다설령내년에 국회에서 자한당 의원들이 싹 물갈이될지라도 고위공직계에 붙박이마냥 박힌 이들은 청산할 수 없다하지만 친일잔재 청산을 소망하는 여론의 방향은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국민이 주도한 세계사적인 촛불항쟁으로 박근혜도 굽힘없이 끌어내렸는데 반민족·친일부역 청산-자한당 해체라고 못해낼 이유가 없다애초 자한당은 국정농단 주범 박근혜와 함께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졌어야 할 집단이었다. ”국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혁신하겠습니다라며 언제나 국민을 기만하고평화통일번영을 간절히 소망하는 8천만 겨레를 짓밟는 악행을 더 이상 좌시할 수가 없다.

마침 앞으로 주말마다 자유한국당 규탄집회가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자한당의 완전한 소멸을 원한다면 헬조선을 끊어내고 싶다면 스스로 쟁취하는 방법뿐이다. 99%의 민초가 한줌도 되지 않는 반민족 친일부역세력들을 깡그리 불태우기 위해 앞장서는 명장면또다시 촛불은 맹렬히 타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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