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2일 토요일

여행을 통한 이런 예술복지 어때요?

4월27~28일 이틀 동안 <시사IN>이 ‘청년 예술가, 지리산 감성여행’을 함께했다.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여행을 만들어 ‘여행을 통한 예술 복지’를 구현하자는 취지였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8년 05월 11일 금요일 제556호

장면 하나. 볕 좋은 어느 봄날 남원 광한루원 완월정에서 가야금 연주자 하소라씨가 창작곡 ‘춘설’을 연주하자 청년 예술가들이 귀를 기울인다.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던 시민들도 난데없는 국악 버스킹 공연에 하나둘 모여든다. 시민들의 호응에 하씨는 앙코르 곡으로 ‘꽃빛’을 연주한다. 연주가 끝나자 동양화가 신은미씨가 전지 두 장을 이어 붙인 큰 도화지를 완월정에 걸고 해금 반주에 맞춰 사군자를 그려나간다. 중심에는 매화를 그린다. 완월정이 선사한 감흥이 신씨에게 춘향전을 떠올리게 했다. 춘향의 지조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우는 매화와 닮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은은한 해금 가락과 신씨의 유려한 붓질이 시민들의 시선을 붙든다.

장면 둘. 지리산 둘레길 중군마을과 장항마을 사이에 있는 수송대 계곡에서 시각예술을 하는 이우광 작가가 물소리·새소리를 들으며 ‘유배’ ‘비움’ ‘멍 때리기’를 실천한다. 대자연이 주는 평온함 속에서 그는 남북 정상회담을 떠올리며 ‘평양 레지던시’ ‘두만강 비엔날레’ ‘백두, 금강 예술가 기행’을 꿈꾼다. 해금 연주자 김신영씨는 무지개다리에 걸터앉아 수송대 계곡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김씨는 흐르는 물에 박자를 맞춘 곡을 즉석에서 작곡하고 이를 휴대전화로 녹음한다.

ⓒ시사IN 고재열
‘청년 예술가, 지리산 감성여행’ 참가자들이 윤용병 인드라망공동체 한생명 운영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의 설명을 듣고 천왕봉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장면 셋. 청년 예술가들을 이끌던 이상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가 선화사 능선의 고갯마루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지리산 반달곰들의 동물 복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지리산에 방생한 반달곰 한 마리가 경북 김천시의 수도산까지 갔다가 잡혀왔는데 과연 이것이 정당한가’ 물었다. 상위 포식자인 육식동물은 행동반경이 넓어서 지리산을 벗어날 수 있는데, 그들의 서식지를 지리산으로 묶는 것이 온당하냐는 질문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조지은씨가 이상윤 이사의 화두에 호응하며 둘은 질문을 주고받는다. 조씨는 이 문답으로 새로운 사유의 틀을 얻었다. 반달곰이 사는 곳에 인간이 와서 오히려 그들이 놀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장면 넷. 지리산이 에둘러 싸고 있어 마치 지리산의 품에 안긴 듯한 느낌을 주는 지리산 길섶마당에서 뮤지컬 배우 황예영씨가 <마리아 마리아>의 주제가 ‘당신이었군요’를 나긋이 읊조린다. 노래 몇 곡을 들려주며 자신을 소개한다. 오랫동안 무대를 떠났던 황씨에게 이날 지리산 무대는 비공식 복귀 무대인 셈이다. 밖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배건웅 셰프와 송보라 셰프는 그들이 칼과 그릇으로 하는 예술, 요리를 한다. 배 셰프는 “모든 예술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요리 또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다”라며 요리가 왜 예술인지 설명한다.

4월27~28일 이틀 동안 <시사IN>이 진행한 ‘청년 예술가, 지리산 감성여행’(이하 감성여행)에서 펼쳐진 장면들이다.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여행을 만들어 ‘여행을 통한 예술 복지’를 구현하자는 취지로 <시사IN>은 지리산 둘레길 10주년에 맞춰 감성여행을 기획했다.

청년은 시간이 없고, 예술가들은 돈이 없다고 하는데, 여행은 돈과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청년 예술가를 위한 여행을 꾸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이전에 청년들과 함께한 여행이 좋은 기억을 남겼기 때문이다. 2015년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과 함께 진행한 ‘청년 섬 캠프(연홍도·애도·사양도·장도·만대도· 연지도)’, 2016년 강기태 여행대학 총장과 함께 기획한 ‘섬 청년 탐사대(관매도· 문갑도)’, 2017년 이한호 여행주간 디렉터와 함께 만든 ‘원산도 청년 탐험대’, 2018년 김민수(아볼타) 고섬 대표와 함께 다녀온 ‘연홍도 예술섬 원정대’에서 청년들이 여행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직접 느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여행’

섬 여행은 청년들에게 즐거운 ‘유배’를 선물했다. 잠시나마 취업과 생계 걱정을 덜어주었다. 섬에 데려가면 그들은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뇐다. “정말 편안하다. 여기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

육지의 섬인 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기대하며 이번 감성여행을 기획했다. 예술가들을 위한 여행인 만큼 ‘예술적으로’ 만들기 위해 지리산 프로젝트 기획자 중 한 명인 최윤정 큐레이터를 ‘아트디렉터’로 섭외했다. 그녀는 2014년 ‘지리산 프로젝트: 우주예술집’과 2015년 ‘지리산 프로젝트: 우주산책’에 참여했고 2016년과 2017년에는 한센인 요양 시설인 경남 산청 성심원의 역사관 조성하는 일을 맡았다.

최윤정 아트디렉터에게 여행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할 필요는 없다고 주문했다. 지리산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은 계곡, 그들이 바람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한 나무그늘, 그리고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던 언덕에 데려다주면 된다고 부탁했다. 청년 예술가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으니 뭔가를 ‘안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참여한 청년 예술가들에게도 이번 여행이 끝난 뒤 별다른 ‘활동’을 요청하지 않았다. ‘블로그에 후기를 올려달라’거나 ‘SNS에 해시태그를 걸어달라’ 따위의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감성여행이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면 그들의 작품 속에 저절로 스며들어갈 것인데, 굳이 뭘 따로 요구할 이유가 없었다. 지리산이 주는 영감은 오직 그들의 작품 속에 표현될 것이다.

청년 예술가들이 내려온다고 하니, 고맙게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반갑게 맞았다.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지기학 예술감독은 광한루에서 ‘긴 사랑가’를, 해설까지 곁들여 들려주며 일행을 맞았다. 이상윤 이사는 지리산 둘레길 중군마을-장항마을 구간을 함께 걸으며 둘레길의 생명 평화 정신을 들려주었다. 숙소인 ‘지리산 길섶’의 주인인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씨는 술과 음식으로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이튿날은 윤용병 인드라망공동체 한생명 운영위원장과 이한호 양림쌀롱 여행자라운지 대표가 실상사와 광주 양림동의 안내를 맡아주었다.

흔히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지역은 그들의 눈을 빌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들의 감성적인 눈이 지역을 재발견해내고,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블로거 초청 행사도 열고 여행 작가와 기자들도 부르는데, 이런 청년 예술가들도 초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로에게 좋은 ‘발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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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지대 태극기집회, ‘모르는 척’이 상책?

북에서도, 남에서도 기자였던 그녀가 말하는 ‘오늘’

[인터뷰] 최선영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2015년 퇴사 후 최근 재입사…“한반도 대전환기, 다시 기사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8년 05월 12일 토요일

남과 북, 그리고 북과 남에서 기자생활을 경험한 전 세계 유일한 인물. 그녀가 다시 언론계로 돌아왔다. 3년만이다. 경영진의 보도탄압으로 2015년 10월 회사를 떠났던 최선영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가 연합뉴스 경영진 교체 이후 최근 재입사했다.
최 기자는 지난 2009년 1월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와 함께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후계자가 3남 김정은’이라고 특종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부 당국보다 먼저 해당 사실을 알았다는 이유로 국정원이 최 기자를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 기자는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없다면 떠나겠다며 사표를 내기도 했지만 동료들이 말렸고, 경영진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 언론탄압을 시작했지만 당시 경영진은 언론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최 기자는 회상했다.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언론탄압이 가속화하는 중에도 보도자율성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지난 2015년 봄 박노황 사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노황 경영진은 첫 인사에서 동료 전문기자인 장 기자를 산업 전문 월간지를 만드는 동북아센터로 발령냈다. 연합뉴스 홈페이지에서 장 기자의 기사가 사라졌다. 혼자 남은 최 기자는 수차례 감사를 받거나 경위서 제출요구를 받았다. 그는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같은해 10월30일자로 사직했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 3월 연합뉴스 새 경영진이 들어섰다. 새 경영진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 기자에게 재입사를 요청했고 그는 지난달 임시로 복귀해 정상회담을 취재했다. 지난 1일 최 기자는 북한을 취재하는 통일외교부 기자로 정식발령을 받았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 연합뉴스에서 최 기자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 기자는 “한반도 비핵화가 논의되고 평화로 가는 대전환 시기에 기사를 쓸 수 있는 게 행복하다”고 다시 펜을 든 소감을 밝혔다.  
MB 정권, 전방위 압박  
“(김정은 후계자 특종은) 당시 청와대·국정원에서 모두 아니라고 했어요. 기사 나갈 때부터 태클이 들어왔고요. 장용훈 기자가 일본을 통해서도 확인했는데… 한국 정부만 몰랐던 거죠.” 정부에서 ‘김정은 후계자 특종’을 전면 부인해 한국기자협회에서 주는 한국기자상은 한해 뒤인 2010년에야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관훈언론상·한국신문상·삼성언론상 등을 휩쓸었다. 

▲ 최선영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2010년 1월 관훈언론상을 받는 모습. 사진=최선영 제공
▲ 최선영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2010년 1월 관훈언론상을 받는 모습. 사진=최선영 제공
밖에선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사내에선 오히려 2010년 5월 비취재부서인 데이터베이스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최 기자의 북한발 기사를 불편해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는 게 언론계에 알려졌다. 같은해 7월 최 기자의 남편이 몸담고 있는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 책임자가 한 말은 논란이 됐다. 최 기자 부부가 여행을 위해 보고하자 책임자는 남편에게 ‘최 기자가 국정원 내사를 받고 있어 출국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최 기자는 “당시 일은 사실”이라며 “나와 남편에게 전방위로 압박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신동아 등 당시 보도를 보면 이명박 정권 들어 국정원이 무능하다는 이유로 청와대와 국회의 질타를 받고 있었다. 중요한 정보가 국정원이 아닌 언론보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 기자는 국정원 사찰 사실을 알았을 때 “멘붕”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자들 눈치를 보던 경영진이 있었다.
탄압하는 정권보다 부역하는 경영진이 더 문제 
연합뉴스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박정찬(2009~2013)·송현승(2013~2015) 사장이 거쳐 갔다. 최 기자는 해당 경영진을 ‘엄혹한 시절에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려던 경영진’으로 기억했다. 2015년 3월 취임한 박노황 사장이 기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기 때문이다. 박 전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현충원을 방문하고 사옥 앞 태극기에 국기게양식을 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최 기자는 “정권도 문제지만 경영진에 따라 언론의 본분을 유지할 수도 있다”며 “박노황 사장은 언론인으로서 양심 같은 게 없었다”고 평가했다. 
▲ 2015년 3월30일 오전 박노황 당시 연합뉴스·연합TV 사장(맨 오른쪽)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2015년 3월30일 오전 박노황 당시 연합뉴스·연합TV 사장(맨 오른쪽)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때 사내에 경위서 안 쓴 사람 거의 없을 겁니다. 지방발령 받은 사람도 많고. 박 사장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북한부 기사가 박근혜 정부와 맞지 않는다’, ‘쟤네(최선영·장용훈 기자)는 들어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도 감사를 몇 번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식이었다. 최 기자가 공휴일 근무일을 착각해 편집회의에 참가 못하자 경영진은 ‘고의로 불참했다’며 경위서를 쓰게 했다. 그는 “난 보직에도 관심이 없고 기사를 어떻게 하면 잘 쓸까 고민하며 기사 쓰는 낙으로 살았다”며 “선배들에게 ‘경영진이 몇 사람을 타깃 삼고 있는데 너도 속해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감사 결과 징계거리가 나오지 않자 ‘태도’를 문제 삼았다.  
북한 보도는 망가졌다. 확인 안 된 사실을 인용하거나 찌라시 수준의 방송을 베껴야 했다. 사내외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사내 미디어전략팀에선 이를 담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러자 경영진은 해당 부서 책임자에게 경위서를 쓰게 하고 ‘최 기자와 짜고 만들었다’고 공격했다. 박노황 경영진이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썼다. 사표는 기다렸다는 듯 두 시간 만에 수리됐다.  
“경영진이 바뀌더라도 정권이 그대로 있다면 똑같을 거 아니예요. 그 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대통령을 탄핵해 새 세상이 올 줄 전혀 몰랐어요. 당연히 정권이 연장할 줄 알았어요. 박노황 사장에게 줄섰던 이들은 ‘분단이 있는 한 영원히 집권하니 지금 경영진에 잘 보여야 한다’고 대놓고 말했어요. 희망이 없었죠. 접어야 할 때구나.”  
20년 만에 휴식, 그리고 재입사  
최 기자는 탈북해 1996년 1월 한국에 왔다. 북에서 기자로 일했던 경험 덕에 같은해 가을 내외통신에 입사했다. 1999년 국정원 산하에 있던 내외통신이 연합뉴스에 흡수됐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북한 기자에서 한국 기자로, 내외통신에서 연합뉴스로 이동을 거듭했다.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는 퇴사 당시 동료들에게 “한국에 온지 어언 20년, 참 치열하게 살았다”고 사직인사를 전했다.
퇴사 이후 어떻게 지냈을까.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다녔죠. 엄청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하더라고요. 타사에서 콜도 왔는데 그건 싫더라고요. 아예 접었는데. 2년반 동안 여행 많이 다녔어요. 멍 때리면서 놀고 싶더라고요.”  
새 정권이 들어서고 박 전 사장이 물러났다. 동료들이 ‘다시 돌아오라’고 했지만 ‘뭘 이제 와서 돌아가나’ 싶었다고 했다. 지난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진전됐다.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엄청난 변화가 오겠구나.” 최 기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내려올 때 변화를 예감했다. “토씨하나 안 틀리고 다 듣고 싶은 거거든요. 다른 사람이 오면 일부 거르고 보고할 수도 있잖아요.” 동시에 기사를 쓰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조성부 신임 사장이 지난 3월 취임하자마자 회사에서 최 기자에게 연락을 했다. 4월1일부터 출근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했다. “엄청 고마워요. 기자로 들어온 게 행복하죠. 2년 반동안 놀아서 그런가(웃음).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좋은 기사를 쓰면 여운이 며칠 가네요.” 최 기자는 전문기자를 다시 신청할 계획이다.
김정은식 경제성장 들여다 보고싶어  
앞으로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 걸까. 최 기자는 최근 정세변화와 북한 경제 발전모습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일단 북미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 제일 궁금해요. 북미관계를 해결하면 IMF 등 세계금융체제 지원을 받고 한국·중국·일본 나아가 유럽의 자본이 들어가 경제성장을 할 수 있겠죠.” 
그는 김정은의 리더십이 아버지와 전혀 다르다고 분석했다. “김정일은 좋게 보면 신중하지만 나쁘게 보면 꼼수를 쓰죠. 미국과 잘해보고 싶지만 이해관계만 챙기는. 김정은은 다릅니다. 현재까지는 전향적이죠.” 그는 경제성장 의지가 강하다고 판단한다. “박정희식 개발독재로 경제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 보어요. 박정희 향수가 있듯 북한도 성공한다면 김정은이 영웅이 되지 않을까요.”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앞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앞에서 국군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취재단
최 기자는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이 아닌 평화와 화해를 추구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또한 열심히 공부하되 모르는 내용을 섣불리 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그랬죠. 북한은 보안이 철저해 자기가 일하던 분야 말고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그분도 그랬는데 다른 탈북자의 말을 너무 신뢰해선 안 되죠. 몇 년 전만해도 김정은 이복누나 김설송이 김정은 체제에서 실세로 활약하고 있다는 보도가 많았어요. 북한 권력층을 조금만 알아도 터무니없다는 걸 알 수 있죠. 엄마가 다른 자식은 배제당하거든요.” 북한 전문기자를 양성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 기자, 북한 기사  
최 기자는 북에서도 7년 간 기자생활을 했다. 평양에 있는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신문, 현대조선문학 등에서 일했다. 캠퍼스커플로 만난 남편은 북 외무성에서 일하다 최 기자와 함께 한국에 왔다. 
▲ 4월27일 일산 킨텍스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생중계되는 남북정상회담 화면. 북측 사진기자가 '기자'라고 써있는 빨간색 띠를 두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월27일 일산 킨텍스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생중계되는 남북정상회담 화면. 북측 사진기자가 '기자'라고 써있는 빨간색 띠를 두르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북한에선 어떻게 기자가 될까. 전공에 맞게 입사시험을 보는지, 인기는 있는지 등을 물었다. 최 기자는 손을 휘저었다. “노동당에서 배치하는 겁니다. 사회인문대는 김일성대 밖에 없으니까 기자들이 많이 배출되긴 하죠. 노동당 간부들이 김일성대 학생들을 나누죠. 중앙당에서 일할 사람, 지방으로 가는 사람, 중앙언론사로 갈 사람을 구분해요. 지망을 써내긴 하지만.” 당의 판단이 개인의 선호를 우선했다.
“여자들에겐 기자가 인기가 있었는데 남자들에겐 인기가 없었어요. 우리 나이 대는 여자들이 갈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았어요. 기득권층은 남자들이 주로 가니까. 그래서 제 또래는 여기자가 굉장히 많아요.” 
당시 당 기관지·내각 기관지 등 중앙 언론 몇몇을 제외하곤 출판사 내부에 신문사가 있었다. 최 기자는 작가를 취재하는 등 신문 업무를 하다가 이후엔 출판 편집 업무를 했다. 적성에 맞았느냐고 물었다. “그냥 했어요. 그때는 모르고 했어요. 즐거움이나 성취감이 있어야 하는데 적성에 맞는다는 것도 모르고 당에서 배치를 하니까 한거죠.”
한국에서 기자가 된 뒤 새로운 난관에 가로막혔다. 기사체가 완전히 달랐다. “한국은 보통 핵심을 처음에 쓰고 뒤로 가며 덜 필요한 걸 쓰는데 북한은 처음은 서론, 핵심은 마지막에 있어요. 설명 중복도 많고 미사여구를 많이 써요. 문학신문에서 일했으니 미사여구가 더 많죠. 지금도 북한 중앙언론을 보면 복합문장이 많고 한 문장에 네줄도 기본이죠.” 
유난히 문장이 길고 미사여구가 많은 북한 문학신문에서 일하던 그가 한국에서도 가장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기사를 쓰는 연합뉴스에 온 것이다. “새롭게 정착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고. 주변에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어요. 오죽하면 광우병 소고기 파동이 뭔지도 몰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도 그날 아침에 알았으니까.”  
정치는 자신과 관련 없는 줄 알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선 그래도 괜찮았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국정원이 왜 자신을 사찰했는지, 한국사회가 왜 북한 보도를 악용하는지 공부하게 됐다. 최 기자는 “전에는 북한 싫어서 왔으면 보수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며 “이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내겐 필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산전수전 겪었으니 이젠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않았을까. “한번은 운전하고 가다가 술취한 사람이 앞에서 차를 막고 안가는 거예요. 그 옆에 경찰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했죠. 그랬더니 술취한 사람이 제 말투를 듣고 ‘조선족이네, 불법체류자 경찰이 데려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탈북자를 향한 삐딱한 시선이 불편해요.” 적응해야 하는 사람은 탈북자가 아니라 이들을 맞이하는 한국인이다.  
최 기자는 주요 언론사에 입사한 첫 탈북자다. 그는 “계약직 기자로 일하는 탈북자가 있다고 들었다”며 “앞으론 탈북자들이 보직도 받고 제대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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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MB의 저주... 오늘도 강에선 사체가 발견됐다

18.05.12 19:48l최종 업데이트 18.05.12 19:48l
글·사진: 김종술(e-2580)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세종보 잔디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세종보 잔디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김종술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세종보 잔디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김대건 베드로 신부가 세종보 잔디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김종술

세종보 현장에서 특별한 미사가 봉헌됐다. 4대강 사업으로 죽어간 생명들을 위로하고 강의 아픈 현실을 바로알기 위한 자리다. 죽어간 생명들의 넋을 위로하듯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내렸다.

12일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세종보 잔디광장에서 천주교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주최로 미사가 열렸다. 미사는 김대건 베드로 신부를 비롯한 신도들과 양준혁 대전충남녹색연합 활동가가 참석했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이날 미사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지난 10년간 금강을 기록하고 있는 기자가 안내를 맡았다. 

김대건 베드로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생태환경위원으로 활동을 하면서도 현장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울림이 됐다. 4대강 사업은 예초부터 시작되지 않았어야 할 사업이다. 지나간 일이라 되돌릴 수 없지만, 하루빨리 자연 본연의 모습대로 복원하기 위해서 콘크리트를 걷어내야 한다. 오늘 참석한 분들이 돌아가서 강의 현실을 주변에 알렸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 찾을 때는 혼자가 아닌 다른 분들을 모시고 강을 찾기 바란다." 

10년 금강의 기록
 기자가 참석자들에게 세종보 입구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  기자가 참석자들에게 세종보 입구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 김종술

2008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라는 발표가 나왔다. MB 정부는 강변 둔치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농약과 비료를 뿌려서 강물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매도했다. 수질이 개선되고 홍수를 예방할 수 있으며,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달콤한 환상을 제시했다. 수많은 국민은 4대강 사업으로 강의 파괴가 불 보듯 뻔한 결과라면서 반대했다. 

강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쫓겨났다.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손에 쥔 사람들은 대토농지를 구하지 못하고 도시로 사라졌다. 평생을 농사만 짓던 사람들은 공사장 노동자, 박스를 줍는 도시빈민으로 전락했다. 

반대 여론에도 이명박 정부는 수백 년간 물속에 잠들어 있던 모래들을 파내어 검사도 없이 뭍으로 올렸다. 대형트럭들은 줄지어 모래를 실어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모래 산을 쌓았다. 비산먼지가 발생하고 비닐하우스는 흙먼지에 덮였다. 햇빛이 줄어든 농작물은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갔다. 마당에 빨래를 널었던 사람들은 피부병에 걸리고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4대강 준공과 함께 대형 사고가 터졌다. 2012년 10월 백제보 상류 왕진교 인근에서 발생한 물고기 떼죽음이다. 당시 기자가 현장에서 10일간 한 마리 두 마리 헤아린 숫자만 60만 마리가 넘는다. 단군 이래 최악의 사고였다. 매일같이 100여 명의 인력이 동원돼 물고기 수거에 나섰다. 깨끗하게 수거를 끝내고 돌아서면 다음 날 하얗게 떠올랐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물고기, 야생동물에 찢긴 사체, 죽어서 썩어가는 사체, 젓갈 국물로 변해가는 강물,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정부는 단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축소하고 은폐했다. 물고기 떼죽음에 대한 원인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고 선 긋기에만 치중했다. 언론은 침묵했고, 학자들은 입을 닫았다. 4대강 동조자들은 화를 냈다. 물고기 몇 마리 죽은 게 무슨 대수냐고 비아냥거렸다. 

금강에 녹조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녹색 페인트를 깔아 놓은 듯 수면을 뒤덮었다. 녹조라떼·녹조잔디구장·녹조카펫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간간이 생명을 이어가던 물고기는 또다시 집단으로 죽어갔다. 호주의 국영방송이 녹조 취재를 오면서 국격은 무너져 내렸다. 강물로 농사짓는 농민들의 한숨은 이어졌고 한탄했다. 기준치 이하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정부는 국민을 속였다. 

죽어가는 생명들 뒤로 나타난 '낯선 생명체들'
 충남 공주시 백제큰다리 밑 교각보호공 밑에 큰빗이끼벌레가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다.
▲  충남 공주시 백제큰다리 밑 교각보호공 밑에 큰빗이끼벌레가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다(2017년 6월 19일 촬영).
ⓒ 김종술

 물 빠진 세종보 상류 펄밭을 손으로 파헤치자 최악의 수질오염 지표종인 붉은깔따구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  물 빠진 세종보 상류 펄밭을 손으로 파헤치자 최악의 수질오염 지표종인 붉은깔따구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2017년 11월 13일 촬영).
ⓒ 김종술

낯선 생명체가 발견됐다. 담수호에서 서식하며 2~3급수에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진 태형동물인 '큰빗이끼벌레'다. 세종보부터 공주보·백제보를 넘어서 물속을 뒤덮었다. 작은 축구공 크기부터 3m50cm가 넘는 세계최대 크기가 금강에서 발견됐다. 정부 돈에 눈먼 학자들은 큰빗이끼벌레는 녹조를 먹이로 하기 때문에 수질이 정화된다고 또다시 국민을 속였다.  

금강의 수질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갇힌 강물이 썩기 시작했다.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부유물은 보에 유속이 느려진 틈을 타고 바닥에 쌓였다. 강바닥에 쌓인 펄들이 썩으면서 물속 용존산소를 고갈시켰다. 켜켜이 썩은 펄들은 기온이 상승하면서 메탄가스를 내뿜었다. 바닥은 화산 분화구로 변해갔다. 

2016년부터는 2~3급수에 산다고 알려진 '큰빗이끼벌레'도 다 사라졌다. 어둡고 캄캄한 수면 아래에서 잠자던 잊혀진 생명체가 고개를 들었다. 환경부가 수 생태 최악의 4급수 오염 지표종으로 지정한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다. 한두 마리 눈에 띄던 마릿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파헤쳐도 수십 마리가 따라 올라올 지경까지 치달았다.

4대강 사업은 단순히 환경파괴만을 말할 수 없다. 강과 더불어 살아가던 사람들. 강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평생을 일구던 농토는 사라지고 지역공동체는 파괴됐다. 

기자는 지난 10년간 4대강 현장에서 보고 만지며 느꼈던 이야기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4대강 수문개방 지시에도 4대강 관피아들의 저항 때문에 수문이 열리지 못한다는 내용까지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탄식과 한숨 등 눈물을 글썽이며 강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

오늘도 왜가리가 죽었다
 세종보 수력발전소 입구에 왜가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죽어있다(동물 사체 사진이므로 모자이크처리 했음을 밝힙니다).
▲  세종보 수력발전소 입구에 왜가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죽어있다(동물 사체 사진이므로 모자이크처리 했음을 밝힙니다).
ⓒ 김종술

기자는 일행들을 인솔해 한국수자원공사 세종보 선착장으로 향했다. 입구엔 붉은 글씨의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판이 보였다. 수문개방으로 세종보가 살아나고 있다는 언론 보도와는 다르게 강은 여전히 상처를 기록하고 있다. 보 건설과 함께 강물이 갇히면서 쌓인 펄층이 깊어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판이다.  

수력발전소 아래쪽으로 이동하자 죽은 새 한 마리가 발견됐다. 커다란 물고기를 입에 물고서 죽은 왜가리였다. 4대강 보가 생기면서 강물이 썩고 물고기가 죽었으며, 물고기를 먹은 새들과 야생동물이 죽어간다는 것 외에는 무슨 이유로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참석자는 "방송에서는 수문개방으로 많이 좋아졌다고 하던데 막상 현장은 다른 모습이다. 여전히 물고기가 죽고, 새들이 죽어가고 있다. 모래가 쌓여야 할 강바닥엔 씻겨 내리지 못한 펄층이 쌓여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장덕봉씨는 "우리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방관 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서 강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더 빨리 강이 회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양준혁 활동가는 "아무리 잘못된 일이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바꾸기 힘들다. 관심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오늘 찾아주신 여러분의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분들이 강을 찾아 현실을 알아갔으면 한다. 기회가 된다면 한달에 한번정도라도 금강으로 소풍을 가자"라고 제안했다.

한편, 세종보는 지난 2009년 5월 착공한 세종보는 217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건설했다. 총 길이 348m(고정보 125m, 가동보 223m), 높이 2.8~4m의 저수량 425㎥의 '전도식 가동보'다. 지난 2012년 6월 20일 준공했고, 정부는 시공사인 대우건설에 훈·포장을 수여한 바 있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바라본 세종보 전경.
▲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바라본 세종보 전경.
ⓒ 김종술

북 비핵화 의지, 북부핵시험장 23~25일 완전폐쇄

북 비핵화 의지, 북부핵시험장 23~25일 완전폐쇄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8/05/13 [00: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워싱턴포스트는 10일(현지시간) 위성 사진을 인용해 북이 핵 시험장 폐기 선언한 이후 핵 시험장 풍계리에 실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지난 달 남북 정상 회담 이후 찍힌 위성 사진들은 북의 풍계리(함경북도 길주리 풍계리 핵시험장) 산 아래에 지어진 핵시험 장소 주변의 건물의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어쩌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은 북부핵시험장 폐기절차를 23~25일 공개적으로 진행할 것을 12일 밝혔다. 

외무성 공보를 통해 “핵시험장페기는 핵시험장의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들을 완전히 페쇄한 다음 지상에 있는 모든 관측설비들과 연구소들,경비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을 철거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핵시험장페기와 동시에 경비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시험장주변을 완전페쇄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북은 ‘국제기자단 현지 취재활동 허용’을 비롯해 ‘베이징-원산항로 이용할 수 있는 저용기 보장’, ‘숙소와 기자센터 설치’, ‘원산-북부핵시험장 특별전용열차 편성’ 등의 실무적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북 외무성 전문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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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공보 (전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연구소를 비롯한 해당 기관들에서는 핵시험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핵시험장을 페기(폐기)하기 위한 실무적대책을 세우고있다.

핵시험장을 페기하는 의식은 5월 23일부터 25일사이에 일기조건을 고려하면서 진행하는것으로 예정되여있다.

핵시험장페기는 핵시험장의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입구들을 완전히 페쇄한 다음 지상에 있는 모든 관측설비들과 연구소들,경비구분대들의 구조물들을 철거하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핵시험장페기와 동시에 경비인원들과 연구사들을 철수시키며 핵시험장주변을 완전페쇄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은 위임에 따라 다음과 같은 결정사항들을 공보한다.

첫째,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진행되는 북부핵시험장페기를 투명성있게 보여주기 위하여 국내언론기관들은 물론 국제기자단의 현지취재활동을 허용할 용의가 있다.

핵시험장이 협소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을 중국,로씨야,미국,영국,남조선에서 오는 기자들로 한정시킨다.

둘째,국제기자단 성원들의 방문 및 취재활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실무적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1)모든 국제기자단 성원들이 베이징-원산항로를 리용할수 있도록 전용기를 보장하며 령공개방 등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

2)국제기자단 성원들을 위하여 원산에 특별히 준비된 숙소를 보장하며 기자쎈터를 설치하여 리용하도록 한다.

3)원산으로부터 북부핵시험장까지 국제기자단 성원들을 위한 특별전용렬차를 편성한다.

4)핵시험장이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 성원들이 특별전용렬차에서 숙식하도록 하며 해당한 편의를 제공한다.

5)국제기자단 성원들이 핵시험장페기상황을 현지에서 취재촬영한 다음 기자쎈터에서 통신할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보장하고 협조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앞으로도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련계와 대화를 적극화해나갈것이다.

주체107(2018)년 5월 12일

평 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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