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4일 일요일

강만수와 한국경제, 그리고 최경환


대우조선·지경부가 바이올시스템즈를 지원한 이유는?전혁수 기자 | 승인 2016.09.05 08:29
여야가 대우조선해양 부실 원인 규명을 위해 합의한 '서별관회의 청문회'가 코앞에 다가왔다.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줄다리기를 이어가던 여야는, 야당이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증인 채택을 포기하면서 오는 8일과 9일 양일에 걸친 청문회 일정에 합의했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에서는 전직 산업은행장들만이 대우조선해양 부실 원인 추궁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서별관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 중 하나는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이 대우조선해양을 압박해,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특정업체에 투자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업체로 지목된 '바이올시스템즈'의 대표는 현재 사기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다.
관심을 끄는 것은 바이올시스템즈가 지식경제부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9년 1월 설립된 벤처기업이라는 것이다. 이 업체는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직을 수행할 당시 150억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기도 했다. 대체 강만수 전 행장과 최경환 의원은 바이올시스템즈와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강만수, 대우조선해양에 바이올시스템즈 지원 강요했나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 측에 바이올시스템즈에 자금을 투자하라고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강 전 행장의 지시에 당시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바이올시스템즈의 사업분야가 대우조선해양과 무관하고 재무구조도 열악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강 전 행장의 요구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연합뉴스)

하지만 자사 대주주인 산업은행 수장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던 대우조선해양은 결국 바이올시스템즈에 투자를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기 위해, 5억 원을 넘지 않도록 2000원을 빼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5억 원을 초과하는 신규투자나 출자 참여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9월 4억9999만8000원, 대우조선의 자회사인 부산국제물류가 2011년 11월 4억9999만8000원을 투자형식으로 바이올시스템즈에 지원했다. 2012년 2월에는 바이올시스템즈와 50억 원 규모의 용역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바이올시스템즈에 대한 지원은 강만수 전 행장이 퇴임하기 전까지 이뤄졌고, 실제 지원한 총액은 약 44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강 전 행장이 퇴임한 2013년 4월 이후 바이올시스템즈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강만수의 무리한 바이올시스템즈 투자, 이유는?
그렇다면 강만수 전 행장은 왜 바이올시스템즈에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했던 것일까. 바이올시스템즈의 대표이사가 강 전 행장과 아주 가까운 지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현재로썬 가장 유력하다.
바이올시스템즈는 2009년 1월 설립된 업체로 당시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이 중소기업특별법에 의한 신기술 창업 전문회사의 형태로 설립한 회사다. 생기원이 본격적 파일럿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위해 만든 이 회사의 초대 대표는 김경수 생기원 그린오션사업단장이 맡았다. 2009년 6월에는 금호석유화학과, 9월에는 전남 고흥군과 각각 바이오에탄올 상용화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에 위치한 해조류 바이오에탄올 연구센터. '해조류 바이오에탄올 파일럿 플랜트'는 2013년 당시 150억 원 규모의 국가전략과제로 선정돼 연면적 3362㎡의 공장을 신축해 설비도입·시운전을 거쳐 상용 플랜트용 시설을 갖췄다. (연합뉴스)
그런데 지난 2010년 10월부터 바이올시스템즈에 벤처업체가 가져야 할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기자 출신의 인물이 부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기자 출신의 대표는 부사장이 된지 1달여 만인 2010년 11월부터 대표이사가 돼 바이올시스템즈를 직접 운영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인물은 한국경제 기자 출신의 김 모 대표다.
바이올시스템즈 홈페이지는 김 모 대표를 경남 진주 출신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14년 4개월 간 경제정책·금융·증권·정치·법조 등의 분야에서 일선 기자로 활동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김 모 대표와 강만수 전 행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인데, CEO소개에서 보듯 관가와 금융계를 넘나들며 취재활동을 이어가던 김 모 대표가 재경부 주요 공직자였던 강만수 전 행장과 친분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로 보인다. 강만수 전 행장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경제에서 '다산칼럼'을 연재한 경력도 있기에 둘 사이가 가까운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또한 바이올시스템즈의 상당 지분을 강만수 전 행장의 지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김 모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의 지원 건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구속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바이오에탄올을 상용화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과 능력이 없음에도, 상용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남상태 전 사장과 대우조선해양을 속여 투자를 받았다는 혐의다.
한국경제의 수상한 강만수 감싸기
한국경제는 지난달 8일 강만수 전 행장과의 인터뷰를 전했다. 해당 인터뷰에서 강 전 행장은 "청와대를 업고 있는 슈퍼갑이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었고, 그걸 자른 것이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경제가 강만수 전 행장과 구속된 김 모 대표를 감싸는 듯한 칼럼을 내놨다. 현재 바이올시스템즈 김 모 대표는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데, 대우조선해양이 바이올시스템즈에 투자한 것이 옳았는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이다.
한국경제 정 모 주필이 작성한 '구속된 벤처인 김인식의 경우'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는 "(바이올시스템즈는) 해조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뽑아내는 원천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험실에서의 기술이었을 뿐 상업용 양산기술은 없었다는 점, 필리핀에 10만ha의 우뭇가사리 양식장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확보된 면적은 55ha에 불과했다는 점, 매일 20t의 해조가 필요하지만 실제 이 회사가 실험에 사용한 해조는 모두 합쳐 44t에 그친 점 등이 사기였다는 것"이라며 "검찰 발표를 들으며 이 회사가 '꽤 앞으로 나아갔었구나'라는 정반대 생각을 갖게 됐다. 1%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것이 기술벤처라는 것을 생각하면 회사를 설립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놀라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 모 주필은 "이 투자가 사기의 결과였는지 논란거리"라고까지 평가한다. 대체 있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투자를 유치한 것을 사기가 아니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한다는 말일까.
또 정 모 주필은 "남상태가 강만수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했다고 주장한다면 김 모씨의 사기죄는 무죄가 되고, 사기로 결론이 난다면 이번에는 강만수의 강압 혐의가 무죄가 된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검찰의 수사를 "짜 맞추는 수사"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강만수 전 행장과 김인식 대표가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대우조선해양에 투자를 강요한 것으로 드러나면 이는 '업무상 배임'으로 처벌받게 된다. 어찌됐건 혐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한국경제에 몸담았던 두 인물을 옹호하는 뉘앙스의 기사를 내면 낼수록 한국경제가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자사에 몸담았던 이들을 비호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한국경제 출신, 최경환
이번 서별관 청문회에는 빠져있는 또 하나의 한국경제 출신 주요인물이 있다. 바로 이번 청문회 증인출석을 가까스로 면한 최경환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최 의원은 재무관료 출신으로 퇴임 후 한국경제에서 논설위원,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최경환 의원은 1999년 5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한국경제에서 논설위원을 지냈고,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경제특보로 들어갔다가 2002년 다시 한국경제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는 한국경제 편집국 부국장으로 임명돼 6개월 동안 근무했다. 복귀 당시 한국경제 노동조합은 정치색을 띤 최경환 의원의 한국경제 복귀를 반대했지만, 사측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며 최 의원을 채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이후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한 최경환 의원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바이올시스템즈의 설립 당시 이를 주도한 생기원이 바로 지식경제부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생기원은 1989년 10월에 설립된 생기원은 2004년 과학기술부, 2008년 지식경제부로 이관된 후 2013년 3월 이후 박근혜 정부의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직간접적으로 최경환 의원이 바이올시스템즈에 관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바이올시스템즈에 대한 지식경제부의 본격적인 투자는 최경환 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 이뤄졌다.
바이올시스템즈의 '해조류 바이오에탄올'사업은 최경환 의원이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인 2009년 12월 지식경제부의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사업으로 선정돼 3년에 걸쳐 총 15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김 모 대표와 같은 시기에 한국경제에서 근무했던 최경환 의원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일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밀어주기식 투자와 더불어 지식경제부의 바이올시스템즈 투자 역시 그 배경을 가려낼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최경환 의원이 서별관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됐다. 
전혁수 기자  wjsgurt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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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순방 중 ‘전자결재’는 박근혜의 만능열쇠

‘한두 번도 아닌 대통령의 임명 강행’
임병도 | 2016-09-05 09:34:05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철성신임경찰청장임명-min
▲야당의 반대에도 지난 8월 25일 이철성 신임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청문 보고서 ‘부적격’ 의견을 받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공식 임명했습니다.
누구나 예상은 했었습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인사청문회에서 음주운전 교통사고 전력이 있어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이철성 신임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기 때문입니다.
음주운전 경력을 가진 경찰청장 후보도 임명했는데, ‘부동산 투기 의혹’, ‘교통법규 과다 위반’, ‘소득 대비 지출 의혹’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부동산 특혜 및 부실 대출 의혹 알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닌가 봅니다.

‘한두 번도 아닌 대통령의 임명 강행’

국회경과보고서채택없이임명강행
▲정권별 국회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횟수 (국회 표결이 필요한 청문회 대상자 및 임명철회, 자진 사퇴자 제외)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국회사무처 자료집을 보면 국회의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횟수만 이미 9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3건보다 월등히 높고, 전임 MB보다는 약간 적습니다.
국회 보고서 채택과 상관없이 MB와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 강행 횟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권분립이 있는 나라에서 여러 차례 국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협치를 무시한 ‘오만과 독재’의 결과입니다. 헌법에 나온 ‘권력 분립과 견제, 균형’이라는 정신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낡은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해외순방 중 전자결재는 박근혜의 만능열쇠’
국민은 설마 했습니다.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을 강행했으니 최소한 이번에는 국회의 눈치(?)도 보고 어떤 대화나 타협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전자결재라’는 최첨단 시스템을 통해 임명을 밀어붙였습니다.
박근혜해외순방전자결재사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이루어진 주요 전자결재 사례

박근혜 대통령이 전자결재를 통해 사안을 결정한 주요 사례만 이번에만 세 번째입니다. 2013년 서유럽 순방 당시 통합진보당의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도 전자결재로 처리했습니다. 2016년 5월 아프리카-유럽 순방 중에 상시청문회법이 포함된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요구안을 전자결재했습니다.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나, 국회법 개정안 등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에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에 관심이 쏟아질 때 은근슬쩍 처리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꼼수 정치”라며 “나라를 정직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는 ‘해외순방 중 전자결재’가 껄끄러운 사안을 처리하는 ‘만능열쇠’처럼 보일지 몰라도, 국민에게는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독재의 상징’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37 

‘강제종료’돼야할 청와대 ‘갈라파고스 쇼’

2일 끝난 세월호참사 특조위 3차 청문회를 돌아보며
▲ 사진 416연대 제공
9월1~2일 이틀에 걸친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3차 청문회가 ‘강제종료’란 난관을 뚫고 일정한 성과를 남기며 끝을 맺었다. 먼저 특조위원과 조사관들이 인력과 재정난의 악조건 속에서 진행한 청문회 준비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7월부터 직원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고 청문회 장소대관에까지 외압이 작용했다. 심지어 지난달 23일 해양수산부는 ‘특조위 조사활동은 지난 6월30일로 끝났기에 청문회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보도자료를 뿌려댔다. ‘불출석 면죄부’와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정부가 관료들에게 청문회에 불참할 명분을 공개적으로 제공하며 전·현직 정부 관료들은 한 명도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는 조사과정에서 새로 발굴한 증거들을 이번 청문회에서 공개했는데 특히 해경의 세월호 구조작업이 ‘청와대 보여주기쇼’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더 조사해야 할 다수의 의혹사항을 제기하며 ‘존재의 이유’를 입증해 보였다. 사고 당시 해경은 생존자가 있을 가망성이 큰 3층 식당 칸 에어포켓에 성공적으로 공기주입을 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특조위가 해경의 TRS교신 음성 파일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해경은 식당 칸이 아닌 접근이 용이한 조타실 근처에 공기를 주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조위는 “해경이 보유한 TRS 파일이 100만여 개가 있는데 이 중 7164개만 넘겨받아 분석을 했을 뿐인데도 해경의 거짓말을 밝혀낼 수 있었다”며 “TRS 교신내용들은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의 비밀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조위측은 또 “특조위가 해산되더라도 특검이 실시돼 나머지 TRS 파일들도 낱낱이 조사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경은 또 ‘청와대 보여주기쇼’를 생중계하기 위해 1000t급 함정 4척을 동원했다. 무인수중탐사로봇(ROV)이 선체에 진입했다는 발표 역시 거짓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선내 CCTV 영상이 켜져 있던 시간과 DVR(디지털영상저장장치. digital video recording)에 저장된 기록이 불일치해 기록조작의 의혹도 제기됐다. 청문회 첫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길환영 전 KBS 사장의 보도개입을 뒷받침하는 문자메시지를 폭로해 주목 받았다.
또 청문회에서 비공개로 증언한 한 선체인양 전문가는 “해수부가 선체바닥에 추가로 34개의 구멍을 뚫겠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작업이며 이 경우 이동 과정에서 배가 아예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특조위는 최근 정부가 밝힌 인양 후 객실부분을 절단해 미수습자를 수습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심각한 증거 훼손과 인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온전한 선체 인양 약속에 배반함”을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부터 책임져야 할 증인들이 거의 전원 불참한 청문회를 보며 무책임, 무능력, 무관심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 윤리 참사의 현장이 다른 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이 고통이 무뎌지고 기억이 흐려지길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청문회 진행을 위해 참사 당시 영상이 상영되거나 음성이 나올 때면 방청석에 앉은 수많은 가족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참사의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통은 아직 생생하다. 그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이를 증언한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건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 그리고 “다시는 우리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단식을 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사생결단식’이 시작되고 일주일에 2-3번씩 가족들을 만났다. 첫 주엔 잘 몰랐는데 일주일이 지나며 점점 이들이 입고 있는 옷이 헐렁해지고 몸이 확연히 말라가는 게 보였다. 31일 광화문에서 8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2학년5반 ‘준영 엄마’ 임영애씨가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가 내리던 이날 오전 좋지 않은 안색으로 이불을 덮고 앉아 있던 임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4일 현재 이들의 단식농성은 19일째 이어지고 있다.
세상과는 ‘분리’돼 있는 듯한 청와대를 ‘갈라파고스’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평범한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 세상이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받는 곳이기 위해서라도 청와대의 ‘갈라파고스 쇼’는 ‘강제종료’돼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특조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특조위가 이달 말 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법을 개정할 골든타임의 열쇠는 국회에 있다.
이명주 기자  ana.myungju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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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물대포 디지털 조작 아닌 발로 쐈다”…백남기 딸 “이게 적법인가”


박주민 “액셀 밟아 살수, 위해 폭력 명백”…SNS “반드시 처벌해야”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씨와 관련 수압을 정교하게 조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당시 살수차의 살수방식은 디지털 기기를 조작해 수치를 맞추고 살수하는 방법과, 차량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살수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는데 백남기씨에게 살수한 방식은 후자”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경찰은 물의 압력을 조작하는 디지털 기기를 갖추고도 이를 사용하지 않고 차량의 액셀을 밟아 살수한 것으로 나타나 규정의 무색해진다”며 “실제로 지난해 경찰은 20m 거리의 백남기 농민에게 규정을 초과한 2,800rpm으로 쐈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측은 지난 2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있었던 동일한 살수차의 시연회에서도 경찰은 표적에 살수를 하며 디지털 기기판에 의한 수작업이 아닌 발로 액셀을 밟아 살수했다고 밝혔다.
시연 현장을 지켜본 박 의원측은 “목표치보다 500rpm 가량 초과했다”며 “혼란한 집회 현장이자 야간이라면 정교한 조작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박 의원은 “조이스틱으로 방향을 조정하면서 동시에 rpm까지 조작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지켜 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이 명백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 <자료출처=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 <자료출처=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편 백남기 농민 사건 청문회는 오는 12일 10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열린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주요 인물 15여명이 출석할 예정이다.
참고인으로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백남씨의 두 딸, 구급차운전자 등 18명도 참석해 진술한다.

경찰의 살수 방식에 백남기씨의 딸 백민주화씨는 페이스북에서 “이래놓고 지금 정당, 적법, 불가피 라는 소리가 나오는가”라고 분노했다.
또 12일 예정된 청문회와 관련 백씨는 “여러분들의 관심과 연대로 청문회가 진짜 현실로 다가왔다”며 “철저하게 잘 진행될 수 있게 여러분 끝까지 많은 응원 부탁한다.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SNS에서는 “무식하게 풀 악셀 밟아서 사람이 뒤로 넘어져서 뇌진탕 일으키게 하고 식물인간 만들다니..”,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 계시는 분과 그의 가족에게 누구 하나도 사과하지 않는 정부와 경찰 총장. 진짜 나쁜 대통령”, “규정을 어긴 경찰과 책임자를 철저히 조사해 처벌받게 해라”, “완전 살인할려고 한 거네 병원차에 실려갈 때까지 규정보다 거리 대비 훨 초과한 압력으로 사람에게 쐈으니 그게 죽이려고 한 거 아니면 뭔가”, “발로 조작한 놈보다 그렇게 하게 한 세력들에게 분노하고 단죄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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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낯선 간판, 북한이 달라졌다


16.09.04 15:51l최종 업데이트 16.09.04 18:13l
글·사진: 신은미(eunmishin)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과연 박 교수는 인민복을 입을까

오늘(2015년 7월 6일)은 황해도 구월산에 가는 날이다. 단군이 수도를 평양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임꺽정의 이야기도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내가 구월산에 가보고 싶은 이유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북한의 5대 명산인 백두산, 금강산, 칠보산, 묘향산, 구월산 중 유일하게 못 가본 산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 나를 낳아준 조국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다 보고싶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호텔 로비에 내려오니 아직 약속 시각보다 일러서인지 우리 안내원 김혜영 선생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박 교수의 안내원 송영혜 선생이 초조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송 선생, 어디 아파요? 얼굴 빛이 안 좋네." 
"선생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긴데 박 교수님은 함께 식사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놀란 얼굴로 묻는다. 

"아니요. 식사하러 안 왔는데…. 아니, 송 선생, 무슨 일 있어요?" 
"사실은 어젯밤 내내 박 교수님이 인민복 구해 입고 머리에 꽃 달고 오늘 나올 거라는 말이 자꾸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요. 자는 둥 마는 둥하고 내려와 박 교수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머있고 화통한 박 교수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나도 걱정이다. 인민복 상의 단추를 몇 개쯤 풀어헤치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위에 꽃을 달고 나타날 상상을 하니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안심시켰다. 

"사람들이 그냥 외국 관광객이 그러고 다니나 보다 생각하면서 지나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곳 사람들의 정서를 잘 아는 나는 이렇게 위로할 수밖에. 송 선생은 여전히 초조해하며 안절부절 못한다. 송 선생을 안심시키려고 말을 건네는 중 승강기 쪽에서 박 교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나는 이곳에서 처음 보는 박 교수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둘둘 말아 핀을 꽂아 단정히 올려붙인 머리와 정장 옷차림이 마치 내게 학부 시절 교양과목을 가르쳤던 엄숙하신 한 교수님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걸음걸이마저도 그 교수님을 쏙 빼닮았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송 선생이 박 교수에게 겨우 말문을 연다. 

"아니, 인민복에 머리에 꽃은 어쩌시고…."

박 교수가 미소를 지으면서 송 선생을 바라보면서 다정스럽게 말한다. 

"이곳 아이들이 풀어헤친 내 머리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니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밤새 잠을 못 이뤘어요. 오늘은 아이들이 내게 안기도록 변장을 좀 해봤어요."

두 사람 다 같은 일로, 그러나 다른 이유로 잠을 설친 것이다. 송 선생이 말없이 내게 눈인사를 건네며 박 교수와 함께 호텔을 나선다. 

'소유'는 가장 큰 인센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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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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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교통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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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사리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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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지난다. 원산과 개성의 방향을 일러주는 교통표지판이 나오고 한 30~40분 달리니 눈에 익은 사리원시에 들어선다. 이곳도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애육원을 비롯해 어린이들을 위한 공사가 최우선이란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농촌길을 달리던 중 놀라운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나의 포전'이라고 적혀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포전담당제'라는 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구호가 이를 실감케 한다. 

'포전담당제'란 한마디로 말해 협동농장을 작은 단위로 나눠 한두 가정이 경작해 일부를 국가에 내고 남은 수확량을 경작자가 소유하는 제도다. 마치 경작지가 개인 소유의 땅인 양 수확량의 일부만 세금 납부하듯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조치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 '포전담당제'를 적극 찬성한다. 왜냐하면 소유보다 더 큰 인센티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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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땅'임을 강조하는 농촌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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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농가의 텃밭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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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가는 길 주변 협동농장의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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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농촌을 여행하다 보면 텃밭 옥수수 키가 협동농장의 옥수수 키보다 훨씬 크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텃밭이란 자기 집 앞마당을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100% 자신의 소유물이다.

그러니 나 같아도 협동농장보다 내 집 마당 텃밭에 더 신경을 쓸 것이다. 협동농장에서 있는 힘껏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내게 돌아오는 게 적다고 생각된다면, 아무리 사상교육을 받고 당원들이 깃발을 흔들어대면서 생산을 독려한다고 해도 근로의욕을 고취시키지 못할 것이다. 

아마 북한 당국도 이를 이해해 '포전담당제'를 도입한 것이 아닌가 예상해본다. 요즘 들어 북한의 식량 문제가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분명 이 제도가 한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협동농장 옥수수의 키가 텃밭 옥수수의 키와 같아지는 날, 이 제도는 완전한 성공을 이룬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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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르 익어가는 협동농장의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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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협동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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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개인의 상행위, 국가에 속해 있지만 자율적 경영과 이윤이 보장되는 기업활동, 농촌의 포전담당제 등의 변화는 북한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덧붙여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경제발전으로 인해 생기는 소득의 격차다. 생산수단의 소유가 불가능한 북한에서 원천적인 빈부의 차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소득의 격차는 분명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관료주의와 함께 생성될 수 있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다. 이를 잘 극복한다면 이러한 변화들과 함께 북한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북한 5대 명산' 구월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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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과일군과 사리원을 오가는 북한의 지방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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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차는 황해도의 지방도로를 따라 구월산으로 향한다. 도로에는 버스들이 종종 눈에 띈다. 지방과 지방 또는 지방과 평양을 연결하는 시외버스들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2011년 10월, 첫 북한관광을 왔을 때는 시외버스를 거의 보지 못했다. 

버스 안에는 승객뿐만 아니라 짐도 상당히 많이 실려있다. 아마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활발한 상업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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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이용하는 북한의 지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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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이용하는 북한의 지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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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북한의 지방에서는 자전거가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엄청난 양의 짐을 싣고 자전거를 끌며 언덕을 걸어 오르는 모습은 보기에도 힘겹지만, 곡예하듯 꼬부랑 내리막 언덕길을 흙먼지 일으키며 빠르게 내려오는 모습엔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황해도 재령군, 신천군, 삼천군을 지나 멀리 구월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구월산 20km'라고 적힌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 도로가 말끔히 포장돼 있다. 산 정상까지 모두 포장도로를 만들어놨다고 한다. 내가 본 북한의 산 중 도로를 가장 잘 닦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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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안에서 바라본 구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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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월정사를 찾은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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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현지 해설원의 설명을 들은 후 안내도를 보니 구월산을 하루에 다 보기란 불가능하다. 더구나 오늘 저녁 평양으로 돌아가야 하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둘러보는 수밖에. 입구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월정사를 먼저 찾는다. 

경내에 들어서자 한 외국인이 사진 촬영을 하다말고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말을 붙인다. 이럴 때 "남한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씁쓸한 마음으로 미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러면 그렇지, 북한 사람의 모습은 아닌데 코리안 언어를 사용해서 의아해했다"라고 말한다. 

이 외국인의 눈에는 내가 북한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 말을 한다 해도 내가 이곳에 속해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나는 그에게 답해줬다. "겉모습은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한 가족"이라고. 

그는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남과 북은 하나라고 덧붙인다. 그는 "코리아의 문화에 심취해 있다, 그래서 머나먼 극동의 산 속 절을 찾아왔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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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절모를 쓴 구월산 월정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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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성불사를 찾았을 때 주지 스님은 노란 가죽구두를 신고 있었다. 웃음을 참으면서 <성불사의 밤>을 함께 부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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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님께서 종종걸음으로 반갑게 다가온다. 그런데 스님이 쓰고 계신 중절모를 보고 웃음이 나와 표정 관리가 잘 안 된다. 2013년 8월의 성불사가 생각난다. 샛노란 가죽구두를 신고 <성불사의 밤>을 부르던 주지스님 때문에 웃음을 참아가며 함께 노래 불렀던 내 모습이. 

중절모를 쓰신 주지스님이 월정사의 유래에 대해 말씀해주신다. 우리의 역사와 종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나 수도하는 스님 같진 않다. 원래는 공학을 전공했는데 역사에 관심이 많아 다시 대학에 입학해 조선 역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스님께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절의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신다. 그러나 스님의 관심은 안내보다 남편과 내게 있었다. 지난번 평양의 경흥관 대동강맥줏집에서 만난 동포들처럼 신상에 대한 온갖 질문을 퍼붓는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사는지, 무얼 하는지 등등.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되레 동포의 정만 가득 느낀다. 묻지도 않은 것까지 말해드리면서 월정사 누각 '만세루' 마룻바닥에 걸터 앉아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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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월정사 주지 스님이 주신 살구를 받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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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스님께서 1분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잠시 후 호박잎 비슷한 큰 잎사귀에 살구를 잔뜩 담아 건네주신다. 방금 따 오셨단다. 가슴이 뭉클하다. 사찰 관람을 온 게 아니라 시골 친척집에 다녀가는 기분으로 절을 떠난다. 

점심식사를 위해 계곡을 찾아 평평한 바위 위에 앉는다. 생수병을 반으로 잘라 잔을 만들어 대동강맥주를 채운다. 이 시간을 서로 축복하며 건배한다. 같은 정서와 같은 행동들…. 남이든 북이든 우리는 같은 DNA임을 수시로 확인한다. 펼쳐놓은 도시락과 살구 그리고 우리들의 대화가 한 폭의 그림으로 남는 느낌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흥얼거리던 남편이 돌아와 불평을 늘어놓는다. 

"야아~, 여기서 도시락을 먹다니. 여보, 물 속에 가재가 득실 거리고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녀. 저거 잡아다 매운탕 끓이고 나뭇잎 주워서 연기 피우면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데... 아!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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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계곡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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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김혜영 선생이 웃으며 말한다.

"하하,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잘 아시는군요." 

우리는 구월산 정상을 향해 달려간다. 겉에서 보기에 구월산은 그리 험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산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면 오를수록 숲이 장엄하게 우거져 있다. 산길따라 탐스럽게 영글은 산열매는 가던 길을 멈추도록 유혹한다. 참으로 깊고도 풍요로운 산이다. 잘 닦아놓은 산길 사이사이에 묵묵히 자리잡고 있는 우람한 바위들이 역사 속 선조들의 채취를 묵언으로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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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월산 정상을 등지고. 좌측 중앙이 황해도 안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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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정상 가까이 다다르자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가 나타난다. 헌병으로 보이는 한 병사가 다가오더니 "이곳은 군사지역이라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다"고 한다. 김혜영 선생이 간청을 해보지만 "보고 받지 못했다"면서 통과를 불허한다. 우리는 구월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하산한다. 차를 근처 전망대에 세운다. 

전망대 아래로 평야와 함께 낮은 동산들이 펼쳐져 있다. 안악군이라고 한다. 아!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고구려의 안악 고분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갑자기 시각이 수천 년 전으로 돌아간다.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산에는 열매가 풍성하고 산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는 곡식이 가득하다. 기름진 평야 옆 바다에는 온갖 물고기가 득실거린다. 단군이 선조들을 이끌고 인간에게 이로운 세상을 펼치며 만세를 누릴만 하다. 고구려의 고분들이 이곳에 남아 있으니 필시 여기서 자손만대를 이어갔으리. 산도, 하늘도, 구름도, 유구한 우리의 역사를 나에게 읊어주는 듯하다. 나는 미어지는 가슴으로 부끄러운 후손의 삶을 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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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용호 운전기사가 따다준 북녘의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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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1/100도 둘러보지 못했지만, 어느새 구월산 정기를 듬뿍 받으며 하산한다. 차가 재령평야를 가로질러 평양으로 향한다. 길가엔 울긋불긋 들꽃들이 피어있다. 리용호 운전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꽃을 꺾어다 내게 안겨준다. 북녘땅 들판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풀 한포기도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화사하게 피어난 들꽃송이를 어찌 온실에서 자란 백만 송이의 장미에 비할까. 

평양으로 돌아온 나는 구월산의 풍취를 담아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 사진을 올렸다. 통일을 염원하는 댓글들이 순식간에 달린다. 어떤 페이스북 친구는 아버님을 그리면서 글을 남기기도 했다. 

"구월산 아래 황해도 신천군이 저희 아버님의 고향입니다. 한국 전쟁 때 신천대학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아버님 생전에도 구월산 이야기를 하시곤 했답니다. 아버님 고향인데...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눈을 감지 못하셨을 그분의 아버님을 생각하니 북녘땅을 한가로이 관광이나 하고 다니는 나는 이내 죄책감에 휩싸인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수양손자 의성이의 유치원에 간다. 의성이를 볼 마음에 한껏 기쁘다가도 석별의 정을 나눌 생각에 이내 슬픔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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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북한 아이가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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