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9-07-21 10:41:11
수정 2019-07-21 1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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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 열도에서 격렬한 분쟁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일본이 중국 어선의 선장을 나포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런데 이 분쟁은 의외로 싱겁게 막을 내린다. 중국이 보복 차원에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희토류는 열과 전기가 잘 통해서 스마트폰이나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 소재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원소들이다. 문제는 희토류가 매장된 곳은 많은데 추출을 할 때 환경오염 문제가 적지 않아 당시만 해도 중국 외에 이를 생산하는 나라가 없었다. 2010년 당시 중국의 희토류는 세계 생산량의 97%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라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중국은 희토류를 무기로 삼았고, 다른 곳에서 희토류를 구할 수 없었던 일본은 중국 선장을 풀어주며 백기를 들었다. 중국의 자원 갑질이 통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중국의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된통 당한 일본이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 나라도 탈(脫) 중국에 나섰다. 언제든지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와 합작으로 말레이시아에 희토류 제련 공장을 세웠다. 미국도 자국 내에 희토류 광산 개발과 제련 시설을 갖춰 나갔다. 전 세계가 희토류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를 줄이면서 2010년 97%였던 중국의 희토류 점유율은 2012년 지난해 70%까지 하락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갑질 경제학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은 홀드 업(hold up) 연구로 경제학계의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홀드 업은 우리말로 하면 “꼼짝 마!” 혹은 “손들어!” 쯤 되는 표현이다.
총을 든 강도가 일반인을 만나면 강도가 갑이 된다. 강도가 “꼼짝 마!”라고 하면 꼼짝 말아야 하고, “손 들어”라고 하면 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윌리엄슨의 ‘홀드 업’은 강자의 갑질을 상징하는 표현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갑순이와 을돌이 두 사람이 있다. 을돌이는 갑순이를 너무너무 사랑했다. 이때 갑은 사랑을 받는 갑순이고, 을은 사랑에 빠진 을돌이다.
그런데 갑순이가 을돌이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이마에 ‘갑순이만 사랑해’라는 문구를 문신으로 새겨”라는 요구를 했다. 실로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요구인데(이마에 문신을 하다니!) 사랑에 빠진 을돌이는 진짜로 이마에 이 문신을 새기고 말았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경제보복·한반도 평화방해 아베 규탄' 각계 단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이때부터 압도적 갑을관계, 즉 윌리엄슨이 말하는 홀드 업 상황이 시작된다. 이제 을돌이는 100% 갑순이에게 종속된다. 갑순이 외에 다른 이성을 만날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마에 ‘갑순이만 사랑해’라고 새긴 사람에게 마음을 줄 이성은 없다. 그래서 을돌이는 갑순이가 집 청소를 하라면 해야 하고 발 씻을 물을 가져오라면 가져와야 한다.
그렇다면 홀드 업 상황을 이용해 을돌이에게 신나게 갑질을 한 갑순이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갑순이의 갑질이 곧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갑순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인생을 망치기 때문이다.
을돌이도 어떻게든 갑순이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을 것이다. 뛰어난 의사를 찾아 문신을 최대한 흐릿하게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야 홀드 업 상황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갑순이는 갑질 이후 누구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한 명밖에 없었던 ‘노예’ 을돌이마저 떠나는 일을 겪는다. 홀드 업을 이용한 갑질은 결국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일본의 갑질,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다
윌리엄슨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현실 세계에서 홀드 업을 이용한 갑질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희토류로 갑질을 했다가 희토류 시장의 30%를 잃은 중국의 사례가 그런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한국 반도체와 LCD 업체가 사용하는 소재의 대부분을 납품해왔다. 이를 홀드 업 상황으로 간주하고 일본은 한국에 갑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갑질이 일본에 진정으로 해피엔딩을 안겨줄 것 같은가?
생산공정 대부분이 일본 소재에 맞춰져 있던 한국(이마에 ‘갑순이 사랑해’라고 적은 꼴)은 당장 타격을 입기는 한다. 하지만 한국은 결국 일본의 갑질에서 벗어날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평생 갑순이의 노예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배상거부, 경제보복, 주권침해! NO 아베 첫 시민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NO 아베’ 촛불을 들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국뿐이 아니다.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각 나라 역시 “일본이 소재를 무기화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탈(脫) 일본을 추진할 것이다. 이는 소재 분야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장비와 부품 분야에서도 각 나라는 일본의 갑질을 피하기 위해 의존도를 줄이려 할 것이다. 희토류 사태와 아무 상관이 없었던 미국이 희토류 생산에 박차를 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홀드 업 이론의 핵심은 갑질을 당한 을뿐 아니라 갑질을 한 갑도 결국 큰 손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윌리엄슨 교수는 지금도 여든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갑질을 멈추고 신뢰에 바탕을 둔 경제 활동을 하라”고 호소한다. 갑질은 갑과 을 모두를 불행히 만들고 사회적인 비효율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공고히 구축됐던 동북아시아 분업체계에 스스로 큰 흠집을 냈다. 이제 한국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일본이 그 분업체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신뢰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일본의 멍청한 갑질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