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5일 일요일

주가조작 김건희는 지금이라도 기소해달라고 비는 게 나을 것이다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주가조작 김건희는 지금이라도 기소해달라고 비는 게 나을 것이다

지난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결과가 발표됐다. 주가조작에 돈을 댄 전주(銓注) 중 한 명인 손 모씨에게 유죄판결(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내려진 것이 핵심이다. 왜 이게 핵심이냐면 영부인 김건희 여사도 바로 이런 전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손 씨가 유죄라면 당연히 김건희도 유죄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검찰은 김건희를 기소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를 회피할 명분도 거의 사라졌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무엇이냐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건이 세 개 정도 꼬여 있고 그 과정도 좀 복잡하다. 이런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글보다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그래서 독자분들에게 양해를 부탁드리자면 이번 칼럼에서는 이 사건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다음주 월요일(23일) 유튜브 방송 ‘이완배의 경제의 속살’에서 이 사건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시도해보겠다. 이 와중에 죄송스럽지만 깨알 같은(!) 홍보를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갑자기 존댓말). 제가 지난주부터 민중의소리 채널을 통해 ‘경제의 속살’ 방송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늘(16일) 2회차 ‘이낙연의 잘못된 선택이 남긴 것들(링크)이 업로드 됐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주가조작과 솜방망이 처벌

지난달 말 나는 ‘김건희는 언젠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링크)’이라는 칼럼을 통해 김건희가 반드시 받아들 청구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명품가방 수수, 양평 고속도로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이 그가 언젠가 반드시 받아야 할 주요 청구서들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 칼럼에서 셋 중 하나라도 미리 받는 게 김건희 신상에 훨씬 좋을 것이라고 충고한 바 있다. 제 세 장의 청구서가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김건희가 절대 감당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세 장의 청구서 중 한 장을 미리 지불할 기회가 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항소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전주로서 김건희가 저지른 범죄’를 정리할 절호의 찬스다. 물론 내가 말하는 이 찬스란 김건희가 무죄로 빠져나갈 찬스가 아니라 유죄 판결로 범죄의 대가를 치를 찬스다.

“그게 무슨 찬스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이건 정말 찬스다. 그의 얼굴 속에 있는 것이 우리가 아는 뇌의 일종이라면, 그리고 그의 목 위에 달린 것의 기능이 무게중심 잡는 데 쓰는 게 아니라면 그는 지금 검찰이 자신을 기소해달라고 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는 게 김건희에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결과를 보라. 전주 손 씨가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다. 전과자가 되겠지만 감옥살이는 하지 않는다. 김건희가 재판을 받는다면 비슷한 형량이 예상되는데, 이게 그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왜냐하면 솜방망이 판결에 대해 국민은 분노하겠지만 법조계 관행을 볼 때 이 정도 형량은 시비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주가조작 범죄에 대해 그 동안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에스모라는 회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당시 대표 김 모씨가 라임펀드의 자금을 끌어들여 자기 회사 주가를 조작했다. 이때 김 씨가 얻은 이익이 무려 577억 원이었다는 게 수사 결과였다. 그런데 김 씨의 형량이 얼마였을까? 지난해 7월 대법원 확정 판결 결과 그가 받은 형량은 고작 징역 5년에 벌금 3억 원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백 선물을 받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 모습. ⓒ서울의소리 유튜브 화면


김 씨는 그냥 돈만 댄 전주가 아니다. 무려 회사 대표였다. 그런 그가 직접 나서 허위공시를 발표해 주가를 띄웠다. 환매 중단 사태로 한국 금융역사에 기념비적인 악명을 남긴 라임 펀드를 주가조작에 이용했다. 여기에 횡령, 배임 혐의까지 겹쳤다. 그런데 받은 형이 징역 5년, 벌금 3억 원이다.

더 웃긴 건 2심 판결에서 판사가 김 씨가 한 짓을 “매우 중대한 범죄 행위”라고 명시했다는 점이다. 그래, 매우 중대한 범죄 행위다. 내가 봐도 그렇다. 그런데 왜 2심 재판부는 고작 징역 5년에 벌금 3억 원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했단 말인가?

나중에 재판 받으면 후회할 것이다

그게 법조계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나라는 주가조작에 대한 처벌이 정~말 관대한 나라다. 주가조작으로 기소된 사람 중 절반은 집행유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가조작범의 집행유예 비율은 2020년 40.6%, 2021년 61.5%나 됐다.

최근 3년 동안 대법원에서 자본시장법 주가조작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모두 35명이었다. 그런데 그 중 실형을 받은 사람은 고작 5명이었고 나머지는 다 집행유예였다. 가장 많은 벌금액은 고작 20억 원이었다.

미국은 우리와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2012년 미국 헤지펀드 SAC캐피탈이 주가조작에 뛰어들어 약 3,000억 원의 부당 이익을 챙긴 일이 있었다. 이때 미국 법원이 징수한 벌금은 부당이익의 6배가 넘는 1조 9,000억 원이었다. 주가조작을 주도한 펀드매니저에게는 징역 45년형이 선고됐다.

주가조작 같은 금융사기의 피해자는 수많은 소액투자자들이다. 그래서 미국은 이런 범죄를 거의 집단학살에 준하는 시각으로 본다. 폰지 사기라는 금융사기 기법을 역사책에 남긴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은 2009년 무려 150년 형을 선고받고 2021년 감옥에서 죽었다. 2008년 보험 사기로 재판을 받은 노먼 슈미트가 받은 형량은 징역 330년이었고 이 인간 역시 지난해에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느냐? 김건희는 지금 기소돼 재판을 받는 게 최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금 기소가 된다면 유죄 판결은 받아도 실형을 받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이게 한국의 분위기다.

그런데 지금 남편을 졸라 기소를 피했다고 치자. 특검이 실시되건(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 특검에는 그의 주가조작 혐의도 당연히 들어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서 검찰이 다시 기소를 추진하건, 그때에도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것 같은가?

현행법상 주가조작으로 인한 피해액이 50억 원을 넘어가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행은 관행일 뿐 법이 아니다. 여론에 따라 관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증권가에서는 주가조작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특검에 의해, 혹은 차기 정권 검찰에 의해 김건희 주가조작이 사실로 밝혀졌다? 여론이 가만히 있겠나?

“김건희를 구속하라!”라는 목소리를 넘어서서 “지금까지 한국 검찰과 법원은 왜 이렇게 주가조작에 관대했느냐?”라는 폭발적인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때 특검 혹은 검찰과 법원이 “관행상 주가조작은 처벌을 그렇게 강하게 안 했어요”라고 핑계를 대며 솜방망이 처벌을 할 수 있겠나? 웃기는 이야기다. 되레 그런 관행을 완전히 뒤엎고 미국처럼 엄격히 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을 것이다.

그래서 기소가 되려면 지금 되는 게 김건희에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기소가 되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아무리 형량이 낮아도 공정을 앞세운 윤석열 정권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애초에 윤석열은 공정하지도 않았고, 그런 이미지는 지금 쥐뿔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기반이 무너진다는 말은 무너질 기반이 있을 때에나 하는 이야기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에게 기반은 개뿔! 그게 기반이면 우리집 고양이는 드래곤이다. 아무튼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청구서 세 장 중 주가조작 청구서라도 지금 지불해 놓는 게 좋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겠지? 그럼 맘대로 하시던가. 나중에 아주 크게 후회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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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지열 에너지 개발에 한창인 파리의 에너지 혁명

24.09.15 18:29최종 업데이트 24.09.15 18:29

▲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폐회식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일 파리 패럴림픽이 끝나면서 7월 26일 시작된 파리 올림픽 이후 모든 대회가 종료되었다. 7월 초 국내 언론들은 환경올림픽을 표방한 파리 올림픽에서 선수촌 아파트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선수들을 걱정하고 파리올림픽 조직위를 비난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쾌적한 선수 숙소를 위해 에어컨이 필수라 여기는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에어컨 미설치 문제는 참가국 대표단 회의에서 여러차례 다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한발 물러난 조직위는 원하는 선수단에 한해 에어컨 설치를 허용했고 7500개 숙소 가운데 2500개 숙소에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2/3에 해당하는 나머지 선수단 숙소에는 아무런 냉방 시설이 없었는데 선수들이 무더위에 시달렸을까?

파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지열에너지 건물로 여름에 에어컨이나 겨울에 히터가 따로 필요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2020년 1월부터 3년 6개월에 걸쳐 건설된 지열에너지 발전소와 연결되어 선수촌 내 모든 공간은 80미터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이 바깥 기온보다 6도가량 낮은 상태로 실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파리의 7월 평균 최고 기온이 26.5도이고 각 숙소에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에어컨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조직위가 판단한 것이다.

일부 선수단의 에어컨 반입 결정에 대해 40개 에너지전환단체 연합인 '에너지전환 네트워크(CLER)의 다니엘 드브뢰일 대변인은 "지열에너지에 대한 정보와 신뢰가 부족했던 탓"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결정은 선수촌 내에 에어컨이 방출하는 열기를 통한 열섬 현상을 초래하여 다른 입주자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면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평했다.

파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는 올림픽이 끝난 후 지역 주민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 활용된다. 선수촌 아파트를 위해 지어진 지열에너지 발전소는 선수촌뿐 아니라 인근 지역에 냉난방을 공급하게 된다. 시공사인 엔지 솔루션(Engie Solutions)은 지열 발전소 건설과 네트워크 공사에 2900만 유로(약 428억 원)가 소요되었고 별도의 냉난방 시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시스템으로 연간 5만 60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파리의 지열 에너지

▲ 프랑스 최초의 지열에너지 건물 '라디오 프랑스' ⓒ 위키미디어 공용

파리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가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을 해결한 최초의 시도는 아니다. 1973~74년 석유 파동 당시 파리 동쪽 외곽 지역인 발드마른(Val de Marne)에서 지하 온수가 발견되면서 프랑스 지열 에너지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발드마른은 지자체 차원에서 수십 개의 지열발전소를 건설하고 난방 네트워크를 설치해 현재 세계에서 지열 발전소가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다가 원자력이 등장하면서 지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일부 기업은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그르넬환경협정과 2009년 지열발전기금 창립이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에너지 자원 감소와 기후 변화라는 지구적 과제가 지열에너지를 다시 주목받게 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 최초의 지열 에너지 건물은 파리 16구에 위치한 라디오 프랑스(La Maison de la Radio France)다. 석유 파동이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지기 10년이나 전인 1963년,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앙리 베르나르의 결정에 따라 라디오 프랑스는 설립 초부터 재생에너지 냉난방 시스템을 갖췄다.

여러 공영 방송사와 음악 공연장, 상설 오케스트라 등이 입주한 10만m²의 거대한 공간은 지하 600m에서 끌어올린 물을 통해 쾌적한 실내 온도를 유지해 왔다. 겨울에는 스튜디오 활동에서 발생하는 열을 회수해 시스템을 백업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냉방을 위해 찬물을 순환시켜 왔다. 60여 년 동안 이 건물을 덥히고 식혀온 물은 센강으로 방류되어 바다로 흘러가며 지속적으로 순환되는 효과적 재생에너지임을 입증해 왔다.

항공 여행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파리의 두 공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온 대표적 기관이기도 하다. 파리의 오를리 공항은 2010년부터 자체적인 지력 발전소를 갖추고 1800미터 지하의 물을 이용해 에너지를 공급해 왔다.

현재 오를리 공항에서 사용되는 냉·난방에너지의 50%를 공급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0을 목표로 한다. 오를리 공항은 1996년부터 빗물을 모아 매년 올림픽 수영장 1.5개에 해당하는 물을 절약하고, 기내에서 사용하지 않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등 에너지 재생과 관련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파리 북부에 있는 샤를 드골 공항도 2026년 지열을 통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다. 이 공사가 끝나면 샤를 드골 공항은 냉난방 수요의 32%를 지열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파리 뤽상부르그 공원 옆에 자리한 상원도 2017년부터 지열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해 냉난방의 70%를 지열에 의존하고 있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도 이 대열에 합류해 2024년 가을부터 기존의 화석 연료 대신 냉난방의 87%를 지열 에너지로부터 공급받게 된다.

▲ 프랑스 일드 프랑스 지역의 지열에너지 보급 현황을 보면 30만 이상의 가구가 지열에너지로 난방을 하고 있다. 발드마른 지역엔 18개의 발전소가 있어 가장 지열에너지 보급율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 프랑스지열에너지협회

프랑스의 수도권인 일드 프랑스(Ile de France)는 프랑스 지열 에너지 생산량의 82%를 차지하는 선도적인 지역이다. 약 50개의 네트워크를 통해 현재 약 100만 명(일드프랑스 인구의 8%)의 주민들에게 지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일드 프랑스 지자체는 2016년부터 지열 에너지 확대를 위해 1억 5000만 유로(약 2212억 원)를 투자해 왔고 장기적으로 생산량을 두배로 늘리고자 한다.

파리-일드프랑스 지역 에너지 소비량의 69%가 교통수단이 아닌 주택과 건물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지역의 탈탄소화를 위한 주요 과제는 주택·건물에서의 에너지 전환인 셈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도 지열 에너지로 난방 시스템을 교체하려는 가정에 최대 1만 1000유로(약 1622만 원)를 지원하면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 년 내내 생산되고 순환... 완벽히 재생 가능 에너지

▲ 2023년 12월 22일(현지시간) 파리 올림픽 선수촌에 전력을 공급할 프랑스 생드니의 지열 에너지 발전소 안으로 작업자가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미국, 뉴질랜드, 멕시코, 러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케냐 등 전 세계 20여 개 나라가 지열 에너지를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이슬란드와 필리핀이 가장 선도적인 국가로 꼽힌다. 나라 전체가 화산섬인 아이슬란드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고 난방의 90%를 지열로 공급한다. 화산 활동으로 발생하는 풍부한 지열에너지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전력의 28%를 지열 발전으로 생산하는 최대 소비국으로 꼽히기도 한다. 화산 지형이라는 특징을 가진 나라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특별한 지형적 이점을 갖지 않은 나라들도 안전하고 풍부한 재생에너지인 지열 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열 에너지는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고 경관을 해치지도 않으며 지면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다. 또한 지하에 있는 유한한 자원을 채취해 고갈시키지도 않는다. 지하수가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 년 내내 생산되고 순환되기 때문에 완벽히 재생 가능한 에너지다. 도심에 열섬 현상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여름엔 실내를 냉각시키고 겨울엔 실내를 덥힌다.

라디오 프랑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원자력처럼 처리 난감한 쓰레기를 배출하지도 않는다. 현시점에서 지적되는 기술적 제약은 시추공을 서로 가까운 곳에 뚫을 수는 없다는 점 정도다. 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 올려야만 한다. 지열 발전소를 짓고 네트워크를 건설하려는 지자체의 경우 초기 비용이 상당히 소요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미래를 위한 후회 없는 투자가 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지열 에너지가 약속할 수 있는 냉방의 수준은 바깥 기온보다 최대 6~8도까지 실내 기온을 내려주는 데 머물러 있다. 이는 현재까지 도달한 기술의 한계일 수도 있고 프랑스인들이 판단하는 적정선일 수도 있다. 여름에 실내 기온을 더 낮게 맞춰놓고 살아온 우리에게 이 정도의 냉방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여름 기온이 프랑스보다 높고 습도도 상당한 수준인 우리나라가 직면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하지만 에어컨의 가장 사악한 단점인 '안을 식히기 위해 밖을 덥히는 일'은 피할 수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기록적으로 더워지는 여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내 방안을 식히기 위해 지구를 더 뜨겁게 달구는 모순을 중단하는 길에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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