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6일 토요일

노조가 어떻게 비정규직 가입을 제한하나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⑩]

허환주 기자 2015.12.27 09:06:59

김경욱 씨는 무엇보다 비정규직 조직에 힘썼다. 파업 때 비정규직 노동자를 참여시키지 않았나. 첫 단추를 그렇게 채웠다. 이후부터는 그때 파업에 참여한 세 사람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받아야 했다. 단체협약상 비정규직은 노조 가입을 금지했다. 이에 비밀리에 비정규직을 조직했다. 쉽지 않았다. 정규직 조직보다 백배 천배 어려웠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에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가입하는 사람도 사고를 쳤거나 해고될 위기에 있는 이들이었다. 한 달에 세 명 가입하면 두 명 탈퇴 하는 식이었다. 이게 반복됐다. 이슈가 없다보니 노조 가입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했다. 이슈가 있을 때는 줄기차게 달라붙었다. 2005년 임금협상 때는 주5일제가 이슈였다. 회사는 당연히 주5일제가 임금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노조는 임금문제라며 협상을 요구했다. 당시 노조는 임금이 깎지 않는 주5일제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거부했다. 노사간 평행선을 달렸다. 

그 런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회사가 임금을 그대로 두는 주5일제를 실시했다. 노조 요구안을 받은 것. 대신 노조와 아무런 협의없이 결정했다. 노조로서는 회사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노조의 성과로 가져가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알아보니 정규직만 임금이 그대로인 주5일제였다. 비정규직은 제외됐다. 김경욱 씨는 비정규직도 동등한 주5일제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회사는 들어주지 않았다. 곧바로 간부 파업에 들어갔다. 


ⓒJTBC

하 지만 파업은 쉽지 않았다. '눈물 나는 파업'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참여하는 간부가 거의 없었다. 2명이 참석해 집회를 하는 일도 있었다. 휴가 중인 지부장 몇 명만 나왔다. 그래도 끈덕지게 비정규직 주5일제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비정규직이 주5일제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소식지에 줄기차게 실었다. 까르푸 프랑스 본사와 국제상업연맹에도 이메일을 보내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한 싸움이었다. 그 싸움을 6개월 동안 이어갔다. 그러자 회사가 질려버렸다. 노조가 불법도 안 저지르니 고소도, 징계도 하지 못 했다. 회사가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결국 회사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까르푸 직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 주5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주5일 근무를 위해 파업까지 포함해 6개월 이상 투쟁한 사례는 흔치 않다.  
직원 수당이나 단체보험도 마찬가지였다.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차별을 받았다. 특히 직원들에게는 단체보험이 매우 중요했다. 매장 직원 중에는 일반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반보험 비용이 비싸다보니 쉽게 가입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들을 위해 회사가 단체보험을 들어주도록 노조가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단체보험이 비정규직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것도 적용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조합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지 금이야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 회사와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정규직 조합원의 반발이 김경욱 씨를 힘들게 했다. 정규직 간부들이 노조 회의 때마다 한 말이 '위원장님, 계속 이렇게 할 거예요?'였다. 언제까지 비정규직을 챙길 거냐는 뜻이었다. 비정규직 이슈만을 끌고 오는 김경욱 씨를 질타했다. 김경욱 씨로서는 대의명분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약속한 게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리고 이 사람들을 다 탈퇴시키고 정규직만으로 노조가 갈 수 있겠나. 그렇게 되면 반쪽짜리 노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정규직이라서 비정규직 위해 싸우지 못하겠다고 하면 나도 여러분을 위해 싸우지 못하겠다. 나는 관리자다. 관리자가 평직원들을 위해 왜 싸워야 하나.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여러분이 비정규직을 챙기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노조 안 하겠다." 

이렇게 넘어가고 넘어가고를 반복했다. 김경욱 씨 말 중에 틀린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니 노조 간부들도 할 말이 없었다. 뒤에서는 뭐라고 할지언정 앞에서는 아무 말 못했다. 

내부 반발이 이어졌지만 김경욱 씨는 지속해서 비정규직을 조직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같은 노동자인데 왜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더구나 같은 노동자끼리 차별하는 구조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노조를 시작하며 들은 '노동자란 무엇인가' 강연이 모든 일의 '화근'이었다. 

" 노조, 그리고 노동운동을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비정규직도 싸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모두 같은 노동자 아닌가. 모든 노동자는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은 단체행동권도, 단체교섭권도 가지지 못하나. 그리고 그 권리를 왜 정규직 임의대로 제한해야 하나.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싸울 기회를 주고 그들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JTBC
무 엇보다 비정규직 아주머니 세 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약속이 그를 계속해서 신경 쓰이게 했다. 그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사람이 김경욱 씨였다. 회사가 당장은 불이익을 주지 않지만, 언제 어떻게 해코지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해고할 수 있었다. 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보다 근간에는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밀어내고 대신 노조 위원장을 하게 된 '부채의식'이 컸다. '자존심'과 오기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 내가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날리지 않았나. 그에 대한 부채의식과 책임감이 있었다. 70일 파업 동안 까르푸 중앙노조를 잡고 있는 좌파 정파조직 '미래연대'와 줄기차게 싸웠다. 사실상 중앙노조와 지부가 내부싸움을 한 셈이다. 그 결과, 중앙노조 위원장이 미래연대라는 정파와 함께 물러났다. 그때 함께 파업을 지지했던 학생들도 같이 떠났다. 그때 우리 노조는 무주공산으로 붕 떠버렸다. 민주노총 부천지역협의회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텅 빈 듯했다. 그때 우리를 지지했던 학생들이 떠나면서 했던 말이 늘 뇌리에 남아있다. 

'관료, 어용, 투쟁을 망치고 훼손시키고 조합원을 후진화 하는 자, 연대를 저버리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적나라한 표현을 노조 게시판에 쏟아 부었다. 내겐 굉장한 상처였다. 학생들과 잘 지냈는데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때 학생들이 썼던 글에 답장했다. 

'연대를 배신했다는 말에 가슴이 아프다. 과연 연대가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그 리고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종의 오기였다. 내가 날린 노조 위원장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300일 넘게 파업을 했다.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갓 노조에 가입한 내가 파업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파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지 않겠나. 지금은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업무에 복귀했다고 그를 공격했다.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고 그랬다.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자연히 '니가 밀어냈으니 니가 하라'는 식이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위원장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전처럼 비정규직 배제하고 가야 하나. 노조활동 편하게 해야 하나. 내가 했던 말이 있지 않나. 300일 넘게 싸워서 단협 체결했을 때, 노조가 어떻게 비정규직 가입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 자신이 뱉은 말이 있으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했다."

부채감, 자존심, 자격지심…. 이런 것들이 비정규직 조직화, 그리고 이후 이랜드 싸움을 이어나가는 힘이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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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1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세월호 책임자들 총선출마? 대한민국을 세월호로 만들 셈인가”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11] 단원고 희생자 고 임경빈군 어머니 전인숙씨
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 14~16일까지 3일간 서울 YWCA 대강당에서는 세월호 특조위의 첫 공개 청문회가 열렸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주로 참사 당시 해경 구조의 적절성 문제에 대해 다뤄졌고, 증인으로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출석했다.
하지만 여당측 특조위원 전원은 청문회 참여를 거부했고 증인으로 출석한 고위급 인사들은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겠다’ 등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런가하면 지상파 방송과 종편은 생중계를 하지 않는 등 세월호 청문회를 외면했고, 그나마 한 보도도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부실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토록 기다려왔던 이번 청문회를 어떻게 지켜봤을까. 지난 21일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단원고 희생자 고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씨를 만났다. 다음은 전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세월호 희생자 고 임경빈 학생 어머니 전인숙씨 ⓒ 이영광 기자
“세월호 청문회, ‘기억 안 난다’ 등 모르쇠 답변 난무”
-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세월호 특조위의 청문회가 3일간 명동 YWCA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해지는 건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 같아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는 이번 청문회에서 유행어처럼 도는 말입니다. 이 말이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지키는 리더들 즉, 어른들의 답이었습니다. 이러고도 아직도 어른들 말을 믿고 따르라고 합니다.
이번 청문회로 인해서 책임감 없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 하고 자리만 지키려 하는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권력과 돈의 자리는 끝없는 비리만 만들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고 중요하게 일해야 되는 곳까지 자리 차지하지 마시고 책임감과 청렴한 분이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 이번 청문회는 주로 구조에 대한 것이었는데.
“구조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제대로 구조가 이뤄진 것도 없었습니다. 답변한다고 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구조를 제대로 행하거나 구조로 보이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증언 중에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라는 말도 나왔다.
“그래서 큰소리가 났잖아요. 마이크를 잡고 상황파악을 못 하고 제대로 인지도 못 해놓고서는 아이들이 철이 없다거나 정신이 없었다는 건 절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던 것 같고 책임자로서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는 얘기를 한 것 같아요.”
- 청문회의 성과는 무엇으로 보세요?
“청문회 성과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또 청문회 자리를 만들어서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리고 자세히 모르고 있던 내용과 억울함을 일부 시민들과 국민이 좀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인터넷방송이라 해도 더 열심히 알려야 하겠다고 태그를 해주시거나 이를 알려주시는 분도 많아졌어요. 그래서 저희는 힘을 내서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304명이 죽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니.. 말이 되나?”
- 청문회에 나온 증인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얘기 중 하나는 그렇게 큰 배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시는 모든 분들은 아파서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세월호는 5~6백 명 타는 배잖아요. 여객선이 위험하다고 상황 접수를 받아놓고도 그렇게 큰 배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하고도 그런 생각 때문에 세월호는 침몰했고 그 안에 304명의 승객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뻔뻔한 얼굴로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런 최선을 다할 것 같으면 아무리 못 배운 저도 그 자리 가서 할 수 있어요. 자꾸 예전에 배가 안 넘어갔다는 말을 하는데 왜 자꾸 그런 상황만 설정하고 얘기하는지 납득이 안가는 피해자들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얘기하는 자체가 이해 안 가요.
그런 자리 오면 최대한 양심적으로 변명이라도 하는 게 최대한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겠대요. 그건 저희에게 하라고 해도 해요. 저희도 할 수 있는 얘기를 그 자리에 나와서 하는지 이해 안 되거든요.
아직도 저희는 4월 16일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민간잠수사들과 당시 사고를 겪은 분들은 4월 16일에 산다는 얘기를 해요. 그 의미는 생생히 기억하고 앞으로도 잊혀 지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정작 책임 있고 구했어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지났다고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겠다는 말을 유행어처럼 해요. 지금 304명을 죽이고도 말이 되나요?”
▲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3일차인 16일 오후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참고인 증언에 참석한 김관홍(오른쪽) 민간잠수사가 증언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국가는 나 몰라라, 희생자 가족들만 진실투쟁 전전긍긍”
- 가장 분노한 건 뭔가요?
“그것은 피해자들이 겪지 말아야 할 상황을 겪고 있다는 자체가 저는 분노해요.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거나 다 밝혀졌다고 하는데 가족으로 인해 밝혀지는 것은 늦게나마 하나씩 밝혀지고 있어요. 그런데 모든 자리를 지금 경찰이든 검찰이든 변호사든 정치인이든 변호사든 하나 나서서 뛰는 사람이 없죠. 가족들로 인해 다 밝혀지는 거잖아요. 밝혀졌다 해도 크나큰 게 밝혀지지 않았고 소소하게 작은 것이 밝혀지는 거예요. 그걸 가족들이 한다는 자체가 억울하고 분노스럽고 국민으로 이 나라에 사는 우리가 너무 억울한 것 같아요.”
- 청문회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고 정동수 군의 아버지인 정성욱씨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했는데.
“저는 못 봤어요. 차마 못 보겠더라고요. 그 모습을 부모님은 다 보셨을 거예요. 250명의 아이가 다 똑같아요. 그래서 차마 고개를 들고 볼 수가 없어서 못 봤어요. 그런데 오죽하면 그 사진을 보여줬겠냐고요. 아이들의 억울함과 진실을 풀기 위해서는 그 아픔을 감수하고도 동수 아빠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님은 아픈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밝힐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동수 아빠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가 아이들 진실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거보다 더한 것도 충분히 할 것으로 보거든요. 끝까지 감추려는 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저희는 끝까지 할 거라구요.”
-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특조위원들도 우셨지만, 답변자들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고 힘겨웠던 건 부모들이었던 것 같아요. 온몸에 힘이 빠져서 나가신 분도 계셨고 힘든 과정을 밟고 있는 건 오로지 가족들이었던 것 같아요.”
“국민 알권리 보장 않는 종편, 존재 이유 없다”
- 청문회에 지상파와 종편 등 방송은 생중계하지 않았고 인터넷 언론에서만 중계한 것은 어떻게 보세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종편방송들 존재해야 하나요? 국민의 알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TV를 보시는 분들이 아무리 적다해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방송의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본분을 잊는다면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일 거예요. 그런 상황인데도 굳이 존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이번 청문회도 그나마 인터넷 방송이라도 있어서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줘서 너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이미지출처=민주언론시민연합>
“세월호 왜곡‧매도하는 공영방송, 이런데도 수신료 내야하나”
- 청문회 보도는 어떻게 보셨어요?
“지상파나 종편은 저희를 매도하며 방송했잖아요. 그리고 제대로 알린 건 여지없이 인터넷 방송이에요. 우리가 수신료를 이러려고 내는 건 아니잖아요. 이 방송 보는 사람은 방송 끊어야 할까요? 그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지켜야 할 게 있듯이 그분들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잖아요. 서로를 존중해야지만 대한민국이 충분히 나갈 것 같은데 왜 그 사람들은 무조건 우리를 무시하고 왜 이런 식으로 하는지 이해 안 가요.
그런데도 꿋꿋이 방송 안 내보내야 할 방송은 내보내고 내보내야 할 방송은 정작 인터넷 방송에서 내보내요. 그건 관심 있는 사람만 보는 방송을 보고 있어요. 근데 자기 돈 내고 보는 사람들이 행사를 못 하게 하는지 이해 안 가요.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느끼지 못해요. 그냥 보는 게 맞는 줄 아는 사람이 대다수예요.
반대에서 소리를 내시는 분들에게 중간입장에서 보고 생각하라고 하는데 이게 중간에서 보는 입장에서도 세월호 얘기는 이래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으로 중간에서 본다고 하면 모든 방송에서 틀어주는 게 맞다고 봐요.
왜 세월호라고 해서 거기에 정치를 입히고 또 세월호는 노란색을 입혀서 노란색이 보이기만 하면 태클을 걸더라고요. 그럼 노란색은 존재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러나 노란색이 좋아 입는 사람도 있고 노란색이 좋아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은 다 정치인이고 옷을 입지 말아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데 왜 자꾸 세월호라고 해서 매도를 하고 색을 입히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이라도 제발 좀 중심의 자리로 돌아오면 좋겠어요.”
▲ <사진제공=뉴시스>
“세월호 책임자들 총선출마? 대한민국을 세월호로 만들 셈인가”
- 여당 측 특조위원은 모두 청문회에 불참했고 그중에 몇 명은 내년 총선 선거운동을 했는데.
“총선에 출마하겠다고요?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의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일 처리도 못하고 사고대책, 수습도 못 하고 책임감 또한 없는 것 같았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어른들의 무능함을 확고하게 보여줬습니다. 지금 현재도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모르겠다고 하는 일관된 답을 내놓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총선에 출마해서 일하겠다고 하는데 일할 수 있을까요? 국민을 세월호도 부족해서 대한민국 국민호를 만들어서 진도 앞바다로 나갈 것 같아요. 그들에겐 생명의 소중함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겠다고 하는 의지도 못 느꼈습니다. 아직도 국민의 생명을 아무 생각 없이 이들에게 맡겨야 할까요?
투표하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대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선거를 하는데 회사원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투표하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럼 젊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힘들어서 투표를 제대로 못 할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 외국은 하루 일당을 주면서 투표하고 결과까지 지켜보도록 하는 국민의식을 갖게 한대요. 물론 우리는 투표하라고 시간을 줘도 놀러 가는 분도 있겠죠. 근데 이런 현실을 사는 분들은 새벽같이 투표를 하시고 개인 볼일을 보실 거 같아요. 그런 의식을 믿어보려고 노력하고 저 조차도 제대로 된 사람을 알아가며 투표를 반드시 할 거 같고.
물론 투표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공약만 보고 했거든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세세히 알아가며 투표할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권리를 우리가 제대로 해가면서 큰소리를 치는 국민이 되길 바래요.”
“아이들 다 살 수 있었는데…사고현장 보는 게 가장 힘들다”
- 600일이 어느덧 지났는데 어떻게 보내셨어요?
“가족들은 정신없고 미친 듯이 살았던 거 같아요. 서명운동도 다니고 분향소와 광화문을 지키는 상황에서 청운동, 국회, 진도까지 갔고 하물며 동거차도까지 지키잖아요. 가족들이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힘들어도 자식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죠. 그래서 600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600일 즈음 순범이 엄마, 웅기 엄마 그리고 제가 동거차도를 들어갔다 나왔는데 제일 가슴 아팠던 게 현장을 보는 거 같아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사고 현장이 있었어요. 청문회에서 마이크 잡은 사람이 현장에 있을 당시에는 최선이었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나 밖에서 봤다면 최선이었단 자체가 이해 안 가거든요
어장 같은 게 많아서 뛰어내리기만 했어도 그 아이들 다 살았거든요. 구조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다 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어요. 그런 아이들을 거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배 안에 들어가라고 했는지 아직도 의문스럽고 그걸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600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거 같아요.”
▲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 go발뉴스
“단원고 교실, 안전사회 건설 위한 상징적 의미 커…존치해야”
- 단원고 교실 존치 논란이 있는데.
“모든 곳곳에 있는 아이들 흔적의 자리는 다 아파요. 물론 단원고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정말 힘드신 분들은 혼자 못 가서 여러 명이 함께 가는 자리예요. 하지만 가면 아이들이 거기 있는 것 같고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단원고에는 시민 3천 분도 넘게 단원고를 다녀오셨어요. 근데 모든 분이 암울하거나 칙칙한 장소가 아니라 너무 아이들이 느껴지는 장소래요. 그래서 오히려 부모들보다도 시민이 단원고 교실 존치를 주장하세요.
저 개인적으로 분향소, 광화문, 진도를 다 다녀봤어도 학교를 아이와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 같고 아이들의 시야에서 학교와 아이의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아이들 친구들 또한 교실에 찾아와서 아이와 얘기하거나 편지 쓰는 자리예요. 또한 저희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위치에서는 교실은 꼭 있어야 한다고 보거든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잖아요. 마음에서 멀어지면 잊혀지잖아요, 그렇지 않으려고 기억하겠다고 하잖아요. 그렇기 위해서는 존치를 해야 한다고 보고 저희가 편하게 아이를 만나러 가는 자리는 여기라고 생각해요. 추모관도 아닌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저희는 그곳을 갈 것 같고 존치를 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봐요.”
- 올해는 어차피 그 아이들이 3학년 올라갔을 것이기 때문에 존치할 수 있었겠지만, 내년엔 단원고도 신입생을 받아야 하잖아요 존치하면 신입생 교실이 부족할 텐데.
“그 문제는 충분히 방법에 대한 답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미 2월부터 이런 얘기가 있었단 말이에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단지 그걸 빨리 시행해서 아이들이 불편을 겪지 않게 미리 마련해줬으면 논란이 될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자꾸 부모들에게 얘기하잖아요. 부모들이 학교에 대해 관여를 하고 부모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 안 돼요. 그것은 교육청과 학교가 협의하고 부모들에게 얘기해줘야 맞는 것 아닌가요? 이러면 정부와 뭐가 달라요.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경기도 안산에서 일어났잖아요. 이것만큼이라도 교육청이 부모님들의 편이 돼서 경기도에 선물을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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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지

"알 거 없잖아요."

" 경찰이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의 집 골목 앞에 30여 명의 무리와 함께 선 이가 한 말이다. 26일 정 회장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총 세 단계의 저지벽에 가로 막혔다. 한 벽은 경찰 병력, 나머지 두 벽은 '경찰이 아닌' 사복 차림의 무리들이었다. 

가로 막힌 이들은 오는 27일로 비정규직 투쟁 고공 농성 200일째를 맞는 기아차 사내 하청 최정명·한규협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에 희망버스에 오른 이들이다. 정몽구 회장 집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길 입구 인도에 모인 300여 명(경찰 추산 200명)의 참가자들은 "정몽구 나와라" "불법 파견 진짜 사장 정몽구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 중 일부는 "현대 기아차 = 불법파견" "박근혜 노동악법 = 평생비정규직 시대" 등이 적힌 스티커를 전봇대 등에 붙이기도 했다.

최정명·한규협씨는 모든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지난 6월 11일 서울 광장 옆 국가인권위원회 옛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랐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9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근로자 소송을 제기한 비정규직 모두가 불법파견 됐으므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4864명 중 465명 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을 뿐, 제대로 된 법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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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 막힌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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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입구부터 겹겹이 막혀... 희망버스 참가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

"집회, 행진이 아닙니다. 정몽구 회장을 만나 직접 묻고자 왔습니다. 왜 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습니까."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사전 집회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희망버스 기획단은 "경찰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라면서 "흩어져서 최대한 (정몽구 회장의 집에) 가까이 가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 지만 인도 주변에 배치된 경찰 병력 300여 명은 사전 집회가 끝날 무렵 참가자들이 모인 인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참가자들의 보행을 저지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은 참가자들이 두 세 걸음을 떼자마자 다급히 "촘촘히 서" "행진 시작합니다"라고 외치며 길을 막았다. 경찰 병력에 가로막힌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시민 보행권 무슨 권리로 막나"라고 항의했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사 전 집회 전 먼저 정 회장의 집으로 향하던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이 아닌 이'들에게 가로 막혔다. 이 무리는 골목 중앙과 정 회장의 집 바로 앞 골목 두 군데로 나뉘어 길을 지키고 섰다. 2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진입을 시도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기 위해 스크럼을 짜는 손에는 핫팩이 한 개씩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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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 횡단보도 앞에 배치된 경찰 병력 50여 명이 정 회장에게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이행을 요구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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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자택 입구를 막고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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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은 어깨에 "집회시위 과도소음 쾌적한 주거 환경 파괴한다"라고 적힌 띠를 두르고 있었다. 지난 9월 12일 희망버스 당시 정몽구 회장 앞을 지키고 섰던 30명의 현대·기아차 관계자들이 두르고 있던 띠와 같은 문구였다(관련 기사 : "쇠파이프 운운 김무성, 집안 단속이나 잘해라").

정 몽구 회장의 집 입구를 지키고 선 30여 명의 무리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아니다, 집회 신고를 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집회를 신고한 단체의 이름이 뭐냐고 묻자 "확인이 안 된다, 회사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어떤 회사인지는 모른다"라고 답했다.

"여긴 그냥 도로잖아요. 정몽구 회장이 한남동 전체를 전세낸 것도 아니고, 개인 사유지도 아닌데 길을 막으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입니다."

도 로 중앙에서 보행이 저지된 한 희망버스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무리를 향해 "왜 보행을 막느냐"고 소리치자 무리 중 한 사람은 귀를 막고 "아아아"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이따금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길을 열고 닫았다. 이 과정에서 차와 함께 골목으로 들어가려는 희망버스 참가자를 붙잡아 고성이 오가는 등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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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 자택 앞 입구에서 한 사람이 길을 열어달라고 항의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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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 중 한 사람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참가자의 얼굴을 찍는 행동을 하자 한 희망버스 참가자가 경찰에 신고해 용산구 내 지구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오후 3시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버스에 오르자 이들도 해산을 시작했다. 무리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B조는 여기 남아계시고, 일단 A조만 이동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일행에게 "A, B조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런 걸 왜 기억하나, 기억에서 지워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에게 "여기 몇 번째냐"라고 물었다. 기자가 처음 왔다고 하자 "그럼 내가 고참이다, 난 두 번째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동네 곳곳에 붙인 스티커들을 뜯어 쓰레기 봉투에 담은 뒤 "수고했습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등의 대화를 나누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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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정몽구 회장 자택 앞 곳곳에 배치된 사람들이 희망 버스 참가자들의 항의 방문 길을 막았다. 저지에 항의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말에 한 사람이 귀를 막고 뒤돌아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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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탑에 오른 두 노동자 "언론마저 외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틸 것"

이 날 정몽구 회장의 집을 찾은 장아무개 기아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는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무리가 선 전봇대 옆에  항의 스티커를 붙였다. 그는 연말 연휴에 희망버스에 참가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사회가 잘못돼 가는데 가족과 연말을 보내는 게 중요하냐"라면서 "(최정명·한규협씨에게) 전날 통화해서 힘내라고 했다"라고 전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고공 농성 200일이 다 돼가는데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인다, 어려운 요구가 아니라 정당한 법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이라면서 "불법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의 힘만으로는 맞서기 힘들다, 연말 연초 사랑하는 가족과 있어야 함에도 (투쟁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있는 두 사람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참가했다"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아직 고립돼 있습니다, 찾아와주세요).

한 편, 70m위 광고탑에서 199일을 보낸 한규협씨와 최정명씨는 영하 8도에 가까운 한겨울 날씨 속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한규협씨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어 옷을 여러 겹 입고 침낭에 핫팩을 넣어 잠을 잔다"라고 전했다. 발뒤꿈치는 동상에 걸린 상태다. 그는 "지난 25일 의사 두분이 진료를 하고 가셨는데 두 사람 다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들었다"라면서 "울화로 인한 가슴 답답함 때문에 약을 지어 보내주시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노조 조합원들은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지 못한 두 사람을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눈썰 매장을 가기도 했다. 한씨는 "지금 (투쟁) 6개월이 넘었지만 가족들이 담담하게 지지를 잘해줘 크게 마음 고생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테니 힘을 보태주시라, 싸움에 이겨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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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 자택 인근 전봇대에 희망버스 참가자가 붙인 항의 방문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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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명씨는 "정말 할 것 다해봤다"라면서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직접적인 책임자 정몽구 회장에게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고공 농성에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법앞에 평등하다'는 가치가 (이뤄지는) 출발이 여기서부터였으면 좋겠다"라면서 "언론마저 노동자의 목소리와 몸부림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심에 호소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영하 날씨 뜨겁게 달군 기아차 고공농성 200일 연대한마당



영하 날씨 뜨겁게 달군 기아차 고공농성 200일 연대한마당

“기아차 불법파견 정몽구가 해결하라”

동족 대결과 체제 전복 노리는 ‘북한인권법안’


<기고>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권오헌  |  tongil@tongilnew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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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6  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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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최근 언론들에서 자주 다루는 기사에 ‘대통령 관심법안’이란 말이 있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 하게 국회에 대고 법안 처리를 재촉하는가 하면 입법부의 수장에게까지 ‘직권상정’을 강압하고 있는 법안들을 두고 한 말이다. 여당지도부를 불러 세우고선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느냐”며 “뭘 했느냐! 도대체!”라고 따져댔고, 분명 야당을 겨냥해선 (일도 하지 않고) 립 서비스만 하는 “위선”이라고 몰아세웠다.
‘관심법안’이라는 이름의 박 대통령의 끝없는 집착
마침내는 정무수석을 국회의장에게 보내어 “선거법만 처리한다는 것은 국회의원들 밥그릇에만 관심 있는 것 아니냐”며 참으로 ‘상식에 맞지 않고’‘아주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 않게’삼권분립의 한축인 입법부 수장을 심하게 모독, 압박했다.
국회의장에겐 특별한 법률안에 대한 직권상정 할 권한이 있지만(국회법 85조), 그 권한 행사를 하기 위해선 ‘국회선진화법’에서 규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바로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그리고 각 교섭단체들과의 합의를 했을 경우이다.
국회의장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아니 그래서 분명히 밝혔다.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그러나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막무가내였다. 대통령은 법안 처리가 되지 않아 ‘잠을 못 잔다’고 했고, 새누리당은 의원총회 결의로 직권상정을 촉구했다. 어떤 대통령 충직의원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으면 ‘불신임안’을 내겠다 했으며,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긴급재정명령’발동설까지 내왔다.
대통령이 얼마나 이른바 ‘관심법안’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의도 쪽 풍경들이다. 그렇다. 언론에서 ‘관심법안’이라고 붙인 말은 오히려 얌전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집착’이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잘 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제 구실을 하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테러 위험이 놓여 있으며, ‘북한주민’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법안만 통과시키면 경제는 활성화될 수 있고, 테러위험도 ‘북한주민’의 인권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노동5법’이고 ‘테러방지법’이며, ‘북한인권법’이다. 그밖에 서비스 산업발전 기본법과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도 있다.
법을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정말 국민의 입장에서 아주 절박한 법률안을 늦추고만 있다면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어떤 법률안은 그것에 제정, 개정, 폐기시켜서 좋을 수도 있는 반면 더 나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우산장수와 소금장수 아들을 둔 부모님의 심정처럼 한쪽이 이로운 것이라면 다른 한쪽은 해로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관계법은 노·사·정에서 오랫동안 머리를 맞대고 심의했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법안이다. 특히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쉬운 해고’‘임금 삭감’‘비정규직 전면화’등 우려로 노동단체들의 거센 반대, 바로 지난 11.14 민중 총궐기 대회의 주요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또한 테러방지법은 대선개입, 내란음모조작, 간첩사건 조작 등 권력 남용과 인권침해의 대명사로 되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권한을 더 강화시켜 준다는 사회 각계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으며, ‘북한인권법’은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 때문에 시민사회가 반대하고 있는 법안들이다.
10년 넘게 북한인권법 제정에 집착해온 새누리당
여기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이 집착하고 있는 법안 가운데 이른바 ‘북한인권법안’만을 대상으로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왜 폐기처분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지난 12월 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3+3) 회동을 갖고 위에서 말한 법안들을 19대 마지막 정기 국회에서 아니면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연내 합의처리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물론 ‘북한인권법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합의후 처리’의 의미는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안’(김영우 의원 대표발의)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심재권 의원 대표발의) 등 두 법안을 하나로 조율하여 처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두 법안은 이름과 내용이 다르지만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를 법으로 만들어 그 어떤 영향력을 노린다는 점에서 내정 간섭이고 주권침해이며 다른 나라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발의자들이 그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법안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김영우 의원 대표 발의 ‘북한인권법’안을 다루기로 한다.
오늘의 새누리당이 이른바 ‘북한인권법’에 집착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해 온 미국이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대북 압살정책 말고도 2004년엔 인권을 빌미로 한 체제 붕괴를 노린 이른바 ‘북한인권법’(North Korea Human Act of 2004)을 만들자 곧 이어 일본이 뒤따랐고(2006년 제정), 이에 뒤질세라 2005년, 17대 국회에서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 등 29명 이름으로 똑같은 ‘북한인권법’을 발의했었다. 이 대결법안은 끝내 국회에서 자동 폐기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황우여 의원 등 23명이 낸 ‘북한 인권법안’(2008.7.4)을 비롯하여 황진하 의원 등의 ‘북한인권 증진법’(2008.7.21), 홍익표 의원 등의 ‘북한인권재단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2008.11.11), 윤상현 의원 등의 ‘북한 인권법안’(2008.11.12) 등이 잇달아 발의되어, 국회외교통상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들 법안 역시 발의시효가 지나자 새누리당의 윤상현 의원(2012년 6월), 황진하 의원(2012년 6월), 이인제 의원(2012년 8월), 조명철 의원(2012년 9월) 등이 잇달아 ‘북한인권법안’을 대표발의했고, 2013년 3월 29일 심윤조 의원이 16명 다른 의원과 함께 같은 법안을 발의했었다. 그리고 2014년 11월 21일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34명이 함께 하여 위 다섯 개 법안을 하나로 묶어 ‘북한인권법안’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회부시켰다.
이처럼 오늘의 새누리당은 10년 넘게 북한인권법 제정에 집착해왔다. 그리고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그 중심에 있었다. 박 대통령은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있을 때 ‘북한 주민 인권 보장을 위한 입법토론회’(2005.5.12)에서 “악화되고 있는 북한 인권을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며 ‘북한인권법’제정을 촉구했다. 당시엔 남북 사이 화해와 단합 행사가 이어지고 교류, 협력 등 한 해 동안 수십 만 명이 남북으로 오고갈 때였다. 그리고 2014년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는 ‘북한인권법’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미 다른 나라들은 제정이 됐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10년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며 “관련 부처에서는 앞으로 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해 주시고, 국제사회와 함께 (유엔) 북한인권조사 위원회 권고사항 등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미·일 등의 주권 침해, 내정간섭, 체제 붕괴 행패를 따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모습이며, 외세 동조, 동족대결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66돌 기념 영상에서는 “북한 인권이 표현 못할 만큼 열악하다”며 ‘북한인권법’제정을 촉구했다.
‘북한인권법’의 몇 가지 문제점들
이처럼 대통령이 법 제정에 집착하고 있는 ‘북한인권법’(김영우 의원 발의)에는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그 문제점 몇 가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북한 인권재단 설립’이다. 이는 이른바 ‘북한 인권증진’을 명분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사업을 규정하면서 ‘북한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바로 대북비방 전단살포 등 반북단체들에 나라의 세금을 주어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한 문제점이다. 이 법안과 관련 향후 5년간 전체 예산 1361억 원 가운데 ‘인권재단’의 예산만 131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관련자들이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반북단체 지원비로 지출될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에서 북측의 체제 붕괴를 노린 반북단체들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는 범죄 행패를 원용한 모습이다.
다음으로 ‘북한 인권기록 보존소 설치’문제이다. 이는 ‘북한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관련자료를 수집, 기록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이 법안 발의자가 강조했듯이 ‘북한의 과거 청산’‘북한인권 책임자의 형사책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체제붕괴를 대비한 전형적인 대결정책 조항이다. 특히 새누리당에서 ‘기록’보존소를 법무부에 설치하려는 데서 더욱 분명하다. 미국이 저들의 민주주의 방식, 저들의 가치관에 따르지 않는 수많은 나라와 정부에게 ‘인권’을 명분으로 파상 공격하여 정권을 붕괴시켰던 또 다른 사례의 우려 사항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북한 인권 대외직명대사’를 설치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른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 협력’등 명분이지만, 이 또한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면서 국무부에 그 무슨 ‘대북인권특사’라는 것을 임명하고 대북인권공세의 국제여론조장, 반북단체 지원, 탈북자 보호, 북에 외부정보 유입을 위한 <자유아시아방송>(RFA) 지원 등을 주도해 오고 있음을 연상시킨다.
비록 오늘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 속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통일되어 함께 살아갈 한겨레이다. 북에 대한 인권대사를 두어 국제사회와 협의 협력한다는 자체가 동족에 대한 존엄성의 모독이다. 인권을 빌미로 한 대북체제 전복을 노린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도구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판 인권특사가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또한 ‘북한인권법’에는 대북인도적 지원이라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에서 강조한 ‘대북 인도적지원’을 받아 안은 모양새지만, 이 또한 실제로는 인도적 지원의 걸림돌 역할을 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바로 인도적 지원이란 이름 아래 ‘전달’, ‘분배’등을 감시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간단체들의 인도적 협력사업이 전달, 분배 등 까다로운 모니터링을 요청하고 있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의 몇 가지 문제점을 알아보았다. 법안 발의자들을 비롯한 정부, 여당 인사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은 일찍이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시행(대북인권 공세)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왜 미루어지고 있는가’라고 불평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났듯이, 이 법의 전체 흐름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대북체제 전환 시도의 한국적 반영이다.
또한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인도적 개입입법’이라고 하지만, 인권 개념 또는 구성원들의 인식 범주는 나라와 민족마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편차가 있음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권 침해의 가장 큰 범죄 행위는 대량살육의 전쟁 행위이고, 합법적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전복과 주권 침탈행위이다. 수십만, 수백만 명에 대한 살육과 파괴가 뒤따르고, 수백만 명의 전쟁고아 난민이 발생하며 나라를 잃어 식민지 지배를 받거나 나라 밖을 떠돌면서 온갖 고통과 설움을 겪게 된다. 일제 강도에게 국권을 빼앗겼던 식민지 시대가 그 사례이다. 따라서 나라의 주권, 바로 자주권 없는 인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떤 특정 국가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데는 현지 조사에 의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입증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인권 문제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인권 차원에서 국제 전문기구가 조사연구하여 제도말살 같은 공격이 아닌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권고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다. 예로써,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의 조사연구 권고가 그렇고,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직접 현지를 방문조사하여 문제점의 해결책을 권고하는 사례들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남의 나라 인권 문제를 어떤 특정인의 편향된 증언만으로 상대를 악마화시켜 특정국가 이름을 가진 법을 만들어 체제 전복 시도 등 공격하는 것 자체가 내정간섭이고 주권 침해 행위이다.
1, 2차 제국주의 전쟁을 겪은 세계는 그 대량살육과 파괴의 참상을 반성하며 ‘국제연합’기구를 만들었고, 잇달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절대성을 공유하며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그리하여 오늘 세계는 국제사회의 정의 평화를 위하여 국경과 인종, 체제와 제도의 차이를 넘어 인권의 보편가치를 일반화시켰다.
또한 오늘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독립된 나라들이 있다.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 국가도 있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도 있다. 전근대적 입헌군주제 국가와 종교적 교의를 통치 이념으로 하는 나라도 있다. 때문에 각기 정치 형태나 제도,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상대 체제를 공격 말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인되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사유와 국가의 정체, 신앙과 양심의 자유 등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다.
순수 인권만을 따진다 해도 상대를 공격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어떤 나라는 이른바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임하며 세계의 모든 문제를 간섭하고 있다.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 국가의 제도와 가치만을 절대시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악마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연합정신과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왜곡,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정의·평화·인권의 이름으로 묻게 된다.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칭해온 미국은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미국의 하는 일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한국은 인권문제에서 얼마나 떳떳한가? 말을 넘어 간섭과 제도 전복을 시도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미국은 수천만 원주민을 학살하고 수천만 노예무역과 살인적 강제 노동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어 세계 최초의 원자탄을 투하하여 수십만 명을 죽이고 수백만 명에게 불치의 상처를 입혔다. 수많은 진보적이고 합법적인 민주정부를 뒤엎고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시리아 등을 침략하여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다치게 했으며, 난민으로 세계를 떠돌게 했다. 전쟁포로에 대한 잔혹한 고문과 학대가 이어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 총기난사, 빈부격차가 격심했다. 한국전쟁에서 정전협정이 된지 6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전쟁종식의 평화협정을 거부하며 살인, 강도 폭력 등 미군 범죄에 한국인은 치를 떨고 있다.
굳이 법을 만들어 동족을 흠집 내며 남북관계를 악화시켜야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11월 14일 서울에서는 노동관련법 개악반대, 농민들의 쌀값 생산비 보장,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보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민중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공안당국은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수백 대의 차량으로 차벽을 쌓았으며, 집회장소를 행진하는 시민들에게 고압물대포를 직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쓰러진 사람에게도 계속 물대포를 쏘아대어 백남기 농민은 혼절하여 오늘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공안권력은 적반하장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폭력시위 주동자로 구속기소하면서 소요죄까지 적용하는가 하면, 집회 참가 1200 여명을 구속 또는 소환조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고 이른바 ‘이석기내란음모사건’조작을 비롯하여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조작,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전국 규모 대탄압, 코리아연대에 대한 이적단체 규정과 회원들 구속 기소, 성직자·노동자 간첩조작 시도, 수많은 사이버공간에서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견 제시를 이적 동조로 몰아 탄압했다. 2015년에만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양심적 병역거부자,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등으로 80명이 넘게 구속되었으며, 국가보안법 적용 구속자만도 20명이 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압수수색당하고 소환조사 받았으며,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법정에 세워졌다. 개인 이익이 아닌 공동선을 위하여 양심에 따른 활동으로 이 같은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상이 국제인권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권(정치적·시민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침해 사례라면 사회권(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 침해 상황은 어떠했나.
우선 소득불평등이 심각하다. 김낙연 교수의 ‘한국소득집중 추이와 국제비교’(2012년 발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소득 상위 0.01%(3895명)의 평균소득은 27억 3084만원으로 전체주민(20살 이상 성인) 평균소득 1639만 원의 167배였다. 20세 이상 인구 3797명 중 상위 10%의 총소득이 48.05%이고 상위 20%의 총소득은 69.29%였다. 최상위 1%의 소득점유율은 12.97%이다. 반면에 최하위층 40%의 총소득은 2.05%였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소득불평등이 격심한 상태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날(영국) 발표 녟. 세계노인복지 지표’에 따르면 OECD회원국 65세 이상 인구 빈곤율에서 한국은 48.6%로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이 19.4%, 미국이 19%로 그 뒤를 따랐다.
통계청 발표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868만 명(임금노동자의 45%)이었다. 그러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발표에서는 이보다 10%가 넘는다고 했다. 바로 ‘비정규직규모와 실체’에서 김유선 소장은 “사내하청이 정규직으로 잘못 분류되고 특수고용이 자영업자로 역시 잘못 분류되었기 때문이며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어설 것 ”이라고 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문제가 바로 빈부격차, 사회양극화의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법은 규범으로서의 타당성과 사실상의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집행의 주체자와 대상자 사이의 문제나 목적에서 전혀 타당성이 없고 당연히 실효성도 없다. 따라서 동족으로서의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할 상대에 대해 인권문제를 비롯한 어떤 현안이 있다 해도 최근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인권대화’등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 없는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 인도적 지원에 마음이 있다면, 적십자사를 통해 이제까지 있어왔던 경로를 실천할 수 있다. 굳이 법을 만들고 국제협력이란 이름으로 세계에 대해 동족을 흠집 내며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일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