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3일 월요일

임동원 "미국 결단이 북미 적대관계 해결의 열쇠"

"인내심과 일관성 갖고 평화 프로세스 주도해야"



지난 1991년 냉전 해체 과정에서 채택된 남북 기본합의서 30주년을 맞아 합의서 채택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과 미국 간 적대관계 해소가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며 미국의 결단을 촉구했다.


1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반도평화포럼 및 동아시아문화센터 공동 주관으로 열린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비핵화와 미북 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 과정을 화해‧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로 규정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현 상황을 대입했을 때 남북은 아직도 1단계인 화해‧협력에 머물고 있다면서, 정치적‧법적 통일은 아니지만 경제‧사회‧문화적으로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남북연합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자 평화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여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장관은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30년의 역사는 한반도 문제가 민족 내부 문제인 동시에 미국이 깊이 개입한 국제문제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남북 간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미국이 이와 관련해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1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반도평화포럼 및 동아시아문화센터 공동 주관으로 열린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한반도평화포럼 제공
 

임 전 장관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당시에도 남북 간 경색국면이 있었지만 △1991년 9월 남북 유엔 공동 가입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 선언 △중국의 권고와 북한의 결단 등의 배경으로 협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김일성 주석은 그해 10월 6일 즉각 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여 남북협상을 조속히 타결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나진·선봉 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또 국제 핵사찰을 수용하되, 핵 문제를 미국과 수교를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하기로 하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임 전 장관은 당시 남측도 협상 타결을 위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며 "북핵문제를 기본합의서 채택과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하여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 팀스피리트 한미 연합 훈련도 중지하기로 했다. 북한의 핵사찰 수용을 중시한 미국도 우리 측의 훈련 중지 제의에 동의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당시에는 남북 간 안보 문제에 있어 수용가능한 입장을 제시하고 합의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라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합의서 채택 이후 위기도 있었다. 임 전 장관은 "1993년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재개로 남북고위급회담이 중단됐고 새로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남북관계는 냉각되고 남북기본합의서는 묵살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렇게 냉각됐던 남북관계는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으로 해빙기를 맞게 되고 남북기본합의서도 다시 빛을 보게 됐다"며 "김대중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를 설득하여, 한미 공조로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언급하며 "이 땅의 주인인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제시한 바 남북관계 개선‧발전‧노력을 통해 미북관계 개선을 견인하고,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인내심과 일관성을 갖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1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한반도평화포럼 및 동아시아문화센터 공동 주관으로 열린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3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평화포럼 제공
 

남북기본합의서, 보수 적잖은 반발 있었지만 대승적 합의


 

이날 학술회의를 공동 주최한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저의 선친, 노태우 전 대통령도 가장 가치있는 인생 업적으로 생각하셨던 일"이라며 "한국의 역대 정부도 '남북기본합의서'를 토대로 남북한 관계에 많은 정책을 통한 실천으로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노 원장은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은 남북 간 합의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 내 여야 정치권 및 국민적 합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 추진 당시에도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는 보수의 적지 않은 반발도 있었는데, 당시 정책결정자들은 최종적으로 냉전의 남북관계를 '갈등과 반목'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는 대승적 결론을 냈다"며 "이는 당시 여야 지도자들이 합의를 통해 이룬 대통합의 결과물"이라고 규정했다.


 

노 원장은 "결과적으로 여야의 큰 합의는 국민적 지지를 이끌었고, 국민 통합을 기반으로 남북관계의 역사적 결과물도 창출해냈다"라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정치적 이해와 진영 논리를 초월하여 국민과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그는 "얼마 전 선친을 파주 통일동산에 모셨다"며 "평소의 고인이 가졌던 의지가 작은 불씨가 되어 다시 남북 화해와 교류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노 원장의 이러한 바람을 반영이라도 하듯 여야 대선 주자들이 축사를 통해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남북기본합의서는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하는 과감한 정책이었다"라며 "이러한 대승적 결론에 합의한 정책결정자들과 여야 정치 선배님들의 모습을 지금의 정치인들은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는 반목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라며 "오래된 냉전 구조의 해체라는 국제질서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한 노 전 대통령의 통찰력과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통해 통일을 향한 기틀이 마련됐지만, 지난 30년 동안 남북관계는 많은 부침을 겪어온 게 사실"이라며 "특히 최근 북한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핵무기 재개발과 미사일 실험 등 비상식적인 무력 도발이 연이어 발생하며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고 말해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2131500510161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아내 살해하고 환영 받은 '반공 투사'

 

[기획 - 바로잡습니다] 수지김 사건

21.12.14 06:17l최종 업데이트 21.12.14 06:17l
언론 불신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권력으로의 편향된 시각과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언론의 과거가 큰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의 과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1987년 1월 8일 한국 신문과 방송에 북한의 납치를 피해 극적으로 탈출한 한 남성의 기사가 대서 특필되었다. 홍콩에 거주하는 윤태식씨가 아내 김옥분(일명 수지 김)씨가 포함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될 뻔했다가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으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큰사진보기동아일보 1면, 북한공작원의 납치를 피해 탈출했다는 윤씨 기사. 1987. 1. 8
▲  동아일보 1면, 북한공작원의 납치를 피해 탈출했다는 윤씨 기사. 1987. 1. 8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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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를 면담한 당시 싱가포르 대사와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현지 주재관은 북한에 납치될 뻔했다는 윤씨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한국의 안기부에 보고했으나 당시 안기부(부장 장세동)는 1987년 1월 8일 제3국인 태국에서 윤태식의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당시 한국 언론은 '미인계를 이용한 북한 여 간첩에게서 가까스로 탈출'한 영웅담이나 활극처럼 기사를 보도했다.
 

홍콩교민 납북 중 극적 탈출

비디오제작업 윤태식 씨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서 보호
동거 여인 등 북괴 공작원 3명이 유고 거쳐 평양행 기도

'홍콩'에 살고 있는 교민 윤태식 씨(28. 비디오제작업)가 동거 여인도 포함된 북괴 공작원 3명에 의해 지난 3일 밤 '싱가포르'까지 유인되어 평양으로 납치될 뻔 하다가 5일 극적으로 탈출, 주 '싱가포르' 한국대사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중략)<br /><br />윤 씨는 이 같은 협박지령을 받은 후 도피를 결심,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5일 오후 '샹그릴라'호텔에서 조금 작은 호텔인 '코크피트'호텔로 옮긴 후 '유고'행 항공편 예약을 위해 이창용(북한공작원)과 함께 시내 여행사에 가서 항공편을 알아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탈출기회를 노리던 중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호텔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한국대사관으로 탈출했다.<br /><br />- 동아일보 1987. 1. 8. 1면
 
큰사진보기사망한 김 씨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1987년 1월 8일 10면
▲  사망한 김 씨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1987년 1월 8일 10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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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분 호스티스 생활...마카오 자주 출입<br /><br />76년 홍콩인과 위장결혼 일 야쿠자와 접촉도<br />윤 씨는 작년 상사 직원으로 홍콩가 개인사업<br /><br />홍콩교민 납북 중 탈출= 김옥분(25세 본적 충주시 ○○○ 999 홍콩 구룡 뉴테라스너스츠포드가 913a)은 지난 76년 7월 20일 홍콩인 양청화와 위장결혼 방식으로 여권을 취득 홍콩에 갔다. 김은 '홍콩'에 도착한 후 84년 1월 양과의 사이에 ○○라는 딸을 낳았다. 김은 '홍콩' 생활 중 한국 술집인 '코리아가든' '리무진' '가림' 등에서 '수지 김'이라는 이름으로 호스티스생활을 했다. 김은 이 생활을 통해 일본인 고객들을 주로 상대하면서 일본어를 습득하고 비교적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br /><br />- 동아일보 12면 1987. 1. 8

윤씨는 귀국 인터뷰에서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것처럼 이야기했다.
 
살아 돌아온 게 꿈만 같다<br /><br />납북탈출 윤태식 씨 어제 귀국<br /><br />납치 당시의 충격으로 심장에 통증을 느낀다며 30여 분간의 회견 도중 계속 가슴을 쓸어내린 윤 씨는 '싱가포르의 북한대사관에 끌려갔을 때는 물론 탈출이후에도 줄곧 공포에 시달렸는데 살아서 서울에 돌아온게 꿈만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 씨는 '탈출을 도와주시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보살펴 준 싱가포르와 방콕 대사관 직원들에게 충심으로 감사한다'며 '지금까지 반공, 반공해도 그 의미를 몰랐으나 우리가 왜 반공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br /><br />- 경향신문 1987. 1. 10 11면
 
큰사진보기북한의 납치를 피해 한국으로 돌아온 윤 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실은 경향신문 11면 기사(1987. 1. 10)
▲  북한의 납치를 피해 한국으로 돌아온 윤 씨의 기자회견 내용을 실은 경향신문 11면 기사(1987. 1. 10)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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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윤씨는 '북괴 납치'라는 죽음의 시간을 넘어온 반공 투사가 되었다. 그러나 윤씨가 입국한 며칠 뒤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바로 윤씨를 납치하려 했다는 북한공작원이라는 김옥분이 그녀의 아파트에서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큰사진보기김 씨의 사망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1987년 1월 27일 자 보도
▲  김 씨의 사망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1987년 1월 27일 자 보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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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분 여인 아파트서 변시로<br /><br />홍콩 납북미수 사건 윤태식 씨 부인 김옥분 여인 아파트서 변시로<br />홍콩경찰 '지난 10일 이전 피살된 듯'<br /><br />지난 2일 밤 '홍콩' 구룡 '침사추이'가 13a 약복아파트 9층에 있던 집에서 조총련 공작원 2명을 만난 후 행방불명 됐던 김옥분(34 일명 수지김)이 26일 밤 자신의 아파트에서 숨진 변시체로 발견됐다.<br /><br />변시체로 발견된 김 부인의 남편 윤태식 씨(28. 서진통상해외사업부 홍콩본부장)는 지난 4일 '싱가포르'에 가서 '아내가 행방불명됐다'며 자신은 '북한의 납치기도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고 주장, 한국대사관에 보호를 요청했었다.<br /><br />- 동아일보 1987. 1. 27 11면

그러나 이날 이후 더 이상 김씨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신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홍콩 수사당국은 김씨의 사망 시점이 1월 10일 이전이라며 한국 정부에 그녀와 동거했던 윤씨에 대한 조사 협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홍콩 수사당국의 이러한 요청에 한국대사관이나 외무부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결국 윤씨는 어떤 조사도 받지 않게 되었다.  

수지 김 사건을 공안사건으로 규정했던 안기부는 납치 주범 중 한 사람이었다는 김씨의 사망에 대해 당연히 수사해야 했다. 만약 실제 김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원이었다면, 윤씨를 납치하려했던 경위, 과정,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망하게 되었는지를 조사해야 했다.

이때 조사했다면 뒤에 가서 말하겠지만 남편 윤씨의 살해 혐의도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지 김 사건을 공안 정국으로 몰고 갔으며 사망한 김씨의 가족들을 불러 가혹 행위를 포함한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언론 역시 수지 김을 악마화 하는 것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도 정작 이 여인이 죽은 경위에 대해서는 취재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김씨의 시신은 행불자를 처리하는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이름 모를 이들과 함께 묻히게 되었고 이후 그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수사당국의 비인권적 조사를 받고 전과자의 가족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의 전말은 2000년이 되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드러났다. 윤씨가 집에서 다툼 끝에 아내 김옥분씨를 살해했으며, 당시 안기부는 윤씨가 김씨를 살해했고 북에 납치될 뻔했다는 진술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윤씨를 반공투사로 미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안기부는 살해당한 김씨가 북한 간첩이라며 단순 살인사건을 대공사건으로 조작했다.

결국 윤씨는 2001년 11월 13일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재판에서 윤씨는 1987년 1월 2일 홍콩의 자택에서 사업자금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부인 김옥분을 살해한 사실이 인정되어 징역 15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윤씨의 살인을 알고도 방조했던 안기부장 장세동 등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와 직무유기죄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아 처벌을 면했다.

법원은 김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42억여 원의 배상 판결을 결정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일부 금액을 당시 이 사실을 은폐했던 장세동 안기부장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환수 조치 했다(한국 정부가 구상권 행사한 첫 사례이며 이후로도 행사한 사례는 없다).

국가 배상 판결이 났지만 이들의 피해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지 김 사건'으로 알려진 후 가족들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언론 보도 이후 이들이 '여 간첩'의 가족으로 받아야 했던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큰사진보기26일 충북 충주시 창룡사에서 열린 수지 김 천도제에서 동생 등 유가족들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2003.8.26 (충주=연합뉴스)
▲  26일 충북 충주시 창룡사에서 열린 수지 김 천도제에서 동생 등 유가족들이 술잔을 올리고 있다. 2003.8.26 (충주=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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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국회의원 그런 거 할 때, 그 문제가 도래가 될 거다. 이제 더 이상 나는 그 그냥 중앙당의 국장 정도로 끝날 사람이지,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못된다. 선거에 나서도 빨갱이로 몰 거고, 지역구로 국회의원 후보도 안 해줄 거다.<br /><br />그래서 형님이 인제 결혼도 안 하시고 그냥, 아주 피곤한 그런 삶을 좀 사셨어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왜냐면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딱 막히면, 그런게 있잖습니까.<br /><br />그래서 결국 94년도에 그 잠수교에서 차가 빠졌어요. 붕 날라갖고. 그 전날에도 내가 형님하고 통화를 했는데, 아 이 세상 뭐하러 사냐, 그런식의 농담, 웃으면서 그러드라구요···. 결국 형이 죽었는데, 죽을 이유가 없어요. 저희 형이, 그러고 형이 운전을 한 지가 십 몇년이 됐는데, 거기서 목격자 얘길 들어보니까, 아무 차도 없는 데서 차가 붕 날랐다는 거예요···. 그 밑에 낚시꾼이 봤을때 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그냥 푹 빠졌다는 거예요.<br />- 1987년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동생 김○○ 당시 29세/전국 국가폭력고문피해실태조사(202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br /><br />나는요 진짜 그 때요. 몇 번 죽을라 그랬어요. 불을 끄고 나면, 누울라고 그러면, 잘라고 그러면 심장 풀락거려서 잠을 못 잘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진짜 이 남의 눈총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건지. 더군다나 세상이 그 떠들썩했던 사건이기 때문에, 여길 가도 나를 손가락질 하는 것 같고, 저길 가도 나를 손가락질 하는 것 같고, 온 세상이 다 우리를 등지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우리를 벼랑에 내몰은 것 같더라구요. 벼랑에. 그냥 밀면 그대로 우리 쓰러질 것 같더라구.<br />- 1987년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동생 김○○, 당시 29세/전국 국가폭력고문피해실태조사(202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br /><br />우리 시누들도요 나도 술집 나가고, 나도 간첩질 해서 그랬다고, 아니 오해 안 하겠어요. 글쎄? 언니랑 같이 그런데 다녀서 같이 살았는데, 아니 동생은 안 했겠냐고 안 그렇겠어요? 우리 시누들이 우리 애기 아빠한테 맨날 그래요. 창연이 엄마도 같이 술집 나갔지 뭘 안 그랬겠냐고. 내가 아무리 해명을 한들 저 사람들이 믿겠냔 말이에요. 응?<br /><br />매스컴에서 다 그렇게 이러구 저러구 다 얘기 까발려 놨지 그 원인이 누가 있겠어. 그 새끼들이 다 조작하고 (진실은) 은폐했기 때문에 그 여파가 아, 매스컴이라는 데야 뭐 뉴스 만들어 내는 데가 오히려 횡재하는 덴데 그거 가만 내비두겠어요? 그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얼씨구나 하고, 대문짝만하게 내 놓고, 이래가지고 우리를 더 못살게 하는 거 아니예요.<br /><br />처음엔 간첩이라 그래서 못 살게 해 놓더니, 낭중에는 술집 나갔다고 해서 못 살게 해 놓고, 응? 우린 또 여형제들이 많잖아요. 뻔 할 거 아니냐, 이거야. 언니가 그랬으니까 동생들도 다 그랬을 거 아니냐는 거야.<br /><br />얼마나 억울해요. 글쎄. 간첩도 억울해. 술집으로 나갔다는 것도 억울해. 언니야 우리 집을 먹여 살리느라고 나갔을 수 있어요. 아니 언니가 나간다고 동생들 다 따라 나가요? 홍콩이라는 데가 작은, 작기 때문에 교민들은 거의 다 아니까. 가서 확인하라 할 수도 없고. 진짜 진짜 나는 이중 삼중으로 고역을 당했어요. 정말.<br />- 1987년 수지김사건 여동생 김○○, 당시 29세/전국 국가폭력고문피해실태조사(202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br /><br />이틀째 되는 날 되니까 우리 시숙하고 시누들이 세 명인데 우리 집에서 시누들이 살았다고요. 갑자기 우리 시누들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지고 이튿날 아침, 한 11시쯤 된 것 같아요. 하얗게 질리더니 오더니만 우리 신랑보고 하는 얘기가, "야 이 자식아 니 뉴스봤나?" 이러더라구요. 우리 신랑 되는 사람이 "야 봤습니더" 이러더라구요. "우얄낀데?" 경상도말 짧잖아요. "아직 이 사람도 잘 모르고 하니까 일단 기다려 봐야 안되겠습니까?" 이러더라구요. "기다려? 너 혼인신고 아직 못 한다. 이 혼사 무효다." 이러면서 우리 시숙이 나가면서 뒤통수에다 딱 돌아서서 하는 말이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집안 망하고 내가 망하느냐 안 망하느냐는 니한테 달렸다." 이러면서 우리 신랑한테 쐐기를 박아주고 나가더라구요.<br /><br />그리고 우리 시누들 둘이는 가만히 버티고 인제 앉아서, "ㅇㅇ 니, 알았나, 몰랐나?" "야들 언니가 간첩인 거 니는 봤다메! 야들 엄마 친정 환갑에 가서 니 얘들 언니 봤다메. 니 알았나, 몰랐나?" 이러더라구. 그러니까 우리 얘들 아빠가 "누야 우리도 아직 모른다. 아직 모르고 이 사람도 아직 친정하고 연락이 안되니까," "니 생각 단단히 해라." 이러면서 저녁에 다시 올라온다 이러더라구요.<br />- 1987년 수지김 간첩조작 사건 여동생 김○○, 당시 25세/전국 국가폭력고문피해실태조사(202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 등에게는 구상권 청구 등을 통해 일부 책임을 물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후 국정원은 '수지 김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대서특필해 사망한 김씨를 악마화 했던 언론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방역패스’ 본격 확대 첫날, 늘어선 주문 행렬...“불편하지만 필요해”

 

QR코드 ‘먹통’으로 혼란...스마트폰 익숙치 않은 노년층 ‘불편’ 호소

13일 종로의 한 식당 입구에 방역패스를 홍보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민중의소리

 "접종완료 후 14일이 경과됐습니다."

방역패스가 식당·카페까지 확대 적용된 첫날인 13일 오전 11시, 종로구 'ㅅ' 한식당의 입구에서 대기하던 손님이 단말기에 QR코드를 인증하자 접종여부를 알려주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뒤이어서 있던 대여섯명의 손님들도 QR코드를 인증하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식당 입구에서도 QR코드를 찍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선 대열이 늘어서 있었다.

방역당국은 지난 6일부터 방역패스를 식당, 카페, 학원, 도서관 등 실내 다중이용시설까지 확대 적용하고 일주일간 계도기간을 거쳤다. 계도기간이 끝난 이날부터 식당, 카페 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방역패스가 필수다.

방역패스 없이 해당 시설들을 출입할 경우, 이용자는 위반 횟수별로 1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해당 시설의 방역 관리자나 운영자에 대해서는 1차 위반사항 적발 시 150만원, 2차 이후로는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전까지 방문시 작성하던 수기명부는 제한되고, 안심콜을 이용하더라도 백신접종 여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 '쿠브(COOV)'나 네이버, 카카오톡 QR코드에 접종기록을 연동하면 예전과 같이 QR코드 인증만으로 접종여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중년, 노인들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종로3가역 인근의 'M'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입구에서 노인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인들이 QR코드 대신 일일이 수기로 방문병부를 작성하고, 주머니에서 백신접종증명서나 백신접종 스티커가 붙은 신분증을 꺼내 직원에게 확인을 받고 있었다.

M 패스트푸드 식당은 지난 6일부터 계도기간에도 전담 직원을 입구에 배치해 방역패스 인증을 안내하고 있다. 기다리기 힘든 노인들 몇명이 줄을 빠져나와 가게로 들어오려고 하자 직원이 제지하고 백신접종여부를 확인했다. 한 직원은 "시간이 걸려도 일일이 확인을 하고 있고 확인되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한다고 안내 중"이라고 설명했다.

종로에서 살고 있는 조 모씨(70)는 "핸드폰을 흔들면 된다는데 그것도 어려워서 백신접종증명서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보여준다"며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힘드니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백신을 접종한 사람만 받을 수 있으니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이다. 손님 없이 텅 빈 식당을 지키고 있던 'ㅁ' 식당 사장은 "보다시피 손님이 없어서 아직 개시도 못 했다"면서 "손님이 오면 철저하게 방역패스를 확인하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손님이 더 줄어들 것 같아 막막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인근의 'ㄷ'식당 주인도 "손님들이 (방역패스 확인에) 거부감은 없는데, 핸드폰을 안 가져와서 다시 나가는 경우는 있었다"면서 "손님은 확실이 떨어진 듯하다. 전보다 2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편함와 우려가 있지만 백신패스는 필요하다고 상인과 손님들은 입을 모았다. 'ㄷ'식당 주인은 "그래도 방역패스는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필요하다"면서 "백신을 안 맞아서 혹시나 우리 식당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더 손해"라고 말했다.

종로 식당가에서 만난 박 모(40대) 씨도 "방역을 위해서는 다 같이 뜻을 모아 한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면서 방역패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카페를 들른 50대 남성 손님도 "주문하는 속도가 많이 느려졌지만 방역패스는 필요하다"면서 방역패스가 아니면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다주택 양도세 완화에 “환심 사기” 혹은 “민심 잡기”

 

  • 기자명 노지민 기자
  •  입력 2021.12.14 07:45
  •  댓글 0
    

양도세 중과 유예, 종부세 완화…박정희, 전두환 성과 언급도
문재인 대통령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검토 안해’ 평가 엇갈려
조선일보, TV조선 기자에 대한 공수처 통신기록 조회 맹비난


14일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우클릭’ 행보에 주목했다. 이재명 후보는 양도세 중과 유예, 종부세 완화 등 현 정부의 부동산 공약 기조와 다른 방향을 시사한 가운데, 지역 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성과를 언급하고 나섰다.

먼저 부동산 정책에 대해 경향신문은 1면 ‘정책 혼선 부르는 이재명발 ‘부동산 감세’’ 제목의 기사에서 “당과 정부, 후보 간 이견이 큰 데다 조세 안정성에도 역효과를 낼 수 있어 ‘세(稅)퓰리즘’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방안은 당이 검토했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일 ‘정부에서 논의된 바 없고 추진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면서 “재산세 부담 완화 방안의 경우는 이 후보가 주장하는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조만간 보유세 부담 완화로 돌아설 거란 전망도 있다. 서울신문 기사(이재명표 감세 이르면 이번 주 확정 “양도세 완화 이유 없다” 당내 반발)는 “민주당은 보유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이르면 이번 주 중에 확정한다. 조만간 표준지 공시가격이 발표되는데, 내년 3월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발표되기 전부터 민심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 조절, 공정시장 가액비율 조정 등 법을 개정하지 않고 조정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12월14일 9개 종합일간지 1면 모음
▲12월14일 9개 종합일간지 1면 모음

한겨레는 ‘이재명의 부동산 조급증…‘다주택자 양도세’ 혼란만 키워’ 제목의 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앞서나가며 민주당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일관적이지 못한 행보를 보이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보도했다. 사설(실효성 없고 혼란만 키우는 ‘다주택 양도세 중과 유예’)에선 “시장에서는 다주택자들이 내년 3월 대선 이후를 바라보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만약 이 후보가 다주택 보유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안한 것이라면, 선거에서 꼭 득이 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신뢰도 하락 뿐 아니라 집값을 다시 불안에 빠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반면 중앙일보 기사(“현정부서 다주택 양도세 완화” 당 색깔과 달리 가는 이재명)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 마지노선으로 꼽히던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세제’에 대해서도 이 후보가 직접 수정할 뜻을 피력하자 당내에선 ‘서울 민심을 잡기 위한 승부수’(선대위 관계자)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전했다. 당내 비판은 “변수”로 표현했다.

박정희, 전두환 언급한 이재명 대구·경북 일정

한편 이 후보의 대구·경북 방문 일정’도 이날 신문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 후보는 13일 경북 포항 포스택 내에서 열린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10주기 추모행사에서 “우리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선 박태준 회장의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으로 1968년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현재 포스코 전신인 포항제철을 설립한 인물이다.

▲12월14일 경향신문 4면 기사
▲12월14일 경향신문 4면 기사

중앙일보는 기사(이재명, 박태준 10주기 추모식 찾아 “산업화 토대 만드신 분”)에서 “이 후보의 추모행사 참여는 3박4일간의 대구·경북(TK) 매타버스(매주 가는 민생 버스) 일정에서 ‘박정희’를 주요 화두로 이어 온 우클릭 행보의 연장선상”이라며 “그는 ‘대구·경북이 낳은, 평가는 갈리지만 매우 눈에 띄는 정치인’(11일), ‘박 전 대통령이 대대적인 산업 대전환을 만들어냈던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12일) 등 주말 내내 박정희 관련 발언을 쏟아냈다. 선대위 한 인사는 ‘박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의 실행력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부각한 모양새’라며 ‘추모행사 참석도 이 후보의 아이디어’라고 전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이 후보는 11일 경북 칠곡군 방문 당시 “전두환도 공과가 공존한다. 전두환이 3저호황을 잘 활용해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 게 맞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보다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역사평가까지 냉탕온탕…도마 오른 이재명의 실용주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후보 발언이 득표 유불리만을 의식한 표퓰리즘, 지역주를 부추기는 행보라는 비판이 나온다. 광주·전남에선 역사왜곡처벌법까지 만들겠다며 전씨를 학살자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했지만, 보수 성향이 강한 TK에선 전씨 성과를 언급하며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검토 안해”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관련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3일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지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로 이를 다뤘다. ‘文대통령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검토 안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미·중 갈등 속에서 반중 노선을 걷고 있는 호주는 이미 미국의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 ‘한국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고 했다.

▲12월14일 한국일보 사설
▲12월14일 한국일보 사설

이런 문 대통령 대응에 중앙일보 사설(“올림픽 보이콧 검토 않는다”는 대통령의 섣부른 발언)은 “섣부른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중 갈등 와중에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하면 우리 정부로선 외교적 보이콧이 곤혹스럽다. 그럴수록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실리적인 대처가 필요한데, 문 대통령 스스로 외교적 카드를 일찍 보여준 셈”이라며 “임기 말인 문 대통령은 대북 해법과 관련해 무리한 성과를 내려 해선 곤란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겨레 사설(“올림픽 보이콧 검토 안 한다”는 문 대통령의 선택)은 “우리나라의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2024년 올림픽 개최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외교적 보이콧’이 ‘상징적’일 뿐이라며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은 장관급이 아닌 대표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올림픽 정부 대표단에 누가 참가할지, 어떤 메시지를 낼지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조선일보 ‘공수처 언론 사찰’ 독자의견 게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TV조선을 비롯한 일부 기자들 통신조회를 했다고 알려졌다. 조선일보 ‘공수처, 신문기자들·변호사 통신자료도 뒤졌다’ 제목의 기사는 “공수처는 ‘조국 흑서’ 저자 김경율 회계사, TV조선 기자 6명 외에도 문화일보 기자 3명, 민변 출신 변호사에 대한 통신 자료도 조회한 것으로 이날 전해졌다”며 “공수처는 지난 6월 이른바 ‘이성윤 황제 조사’의 보도 경위를 공수처 수사관이 뒷조사했다는 TV조선 보도가 나온 이후, 6·7·8월과 10월 TV조선 사회부장과 법조팀 기자 등 6명에 대해 15회에 걸쳐 통신 자료 조회를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독자의견란에도 ‘언론 사찰 의혹 묵과해선 안 돼’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공수처는 ‘수사 대상자와 통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인들을 사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번 언론사 사찰 의혹의 진실을 밝혀 책임자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지원, '미국의 담대한 대북 백신지원 제안으로 대화열자'

 

국가안보전략연구원 '2021 GIS'서..'민생분야 제재해제'도 요구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1.12.1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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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13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2021GIS 축사를 통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위해 대북백신지원과  민생분야 제재해제에 나서 줄 것을 제안했다. [사진제공-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13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2021GIS 축사를 통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위해 대북백신지원과  민생분야 제재해제에 나서 줄 것을 제안했다. [사진제공-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13일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위해 미국이 먼저 자국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당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반대급부로 요구했던 민생분야 제재 해제에 대해 미국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사실상 요구했다.

박지원 원장은 13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2021 글로벌 인텔리전스 서밋(Global Intelligence Summit, GIS)' 축사를 통해 단절된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의 △대북 백신지원 △민생분야 제재해제 카드를 제시했다.

박 원장은 "오히려 미국이 더 담대하게 자국의 백신을 주겠다고 제안한다면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모멘텀이 조성될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완전 봉쇄한 이후 대화는 물론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데, 북한은 백신접종 계획도 없고 코백스 백신도 거절하고 있으니 국제사회와 협력을 통해 현 상황을 해결해 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하노이 회담 당시 북이 요구한 '정제유 수입, 석탄 및 광물질 수출, 생필품 수입' 등 반대급부에 대해 검토해 보자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단계적 실천을 통한 신뢰회복 조치'를 믿고 하노이에서 비핵화 프로그램인 '영변폐기'를 제시했지만 '자신은 지난 4년동안 ICBM발사 중단 등 핵 모라토리엄을 실천해 왔는데, 미국으로부터 받은 것이 무엇이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제재 해제에 대해)관심을 표명하는 것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 재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에 대해서도 "이제 열린 자세로 대화의 장에 나와 한·미가 검토 중인 종전선언을 비롯해 상호 주요 관심사를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북이 선결조건으로 말해 온 "'적대시 정책 및 이중기준 철회' 문제도 주요 관심사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고 하면서 조건없이 대화 재개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왼쪽부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 안드레이 체르네츠키 주한 벨라루스 대사, 앤드류 김 전 CIA코리아매션센터 센터장. 그레고리 트레버턴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의장과 청샤오허 중국 런민대학교 교수, 아나꾼 첨몽콘 태국 국가안전보장회의 고문은 온라인 화상회의로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 안드레이 체르네츠키 주한 벨라루스 대사, 앤드류 김 전 CIA코리아매션센터 센터장. 그레고리 트레버턴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 의장과 청샤오허 중국 런민대학교 교수, 아나꾼 첨몽콘 태국 국가안전보장회의 고문은 온라인 화상회의로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개회식에 이어 '정보와 지역평화'를 주제로 미국과 중국의 전직 정보기관장 및 외교안보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스페셜 세션에서는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이해관계국들의 입장이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의장인 그레고리 트레버턴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75년이 지났으면 이제 과거로 넘겨야 할 일이다.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를 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좀 더 대규모적인 평화절차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한국정부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미국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이 회의적,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제안 의도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 과정에 직접 관여했던 앤드류 김 전 CIA코리아미션센터 센터장은 "종전선언이라는 주제가 지난 몇 달동안 한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현안이 되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이에 대해 언급했을 때는 북이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 같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북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선언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과의 협상 과정에서 협상의제였고, 그때는 북이 분명히 원하는 바였다"고 하면서도, "지금은 한미 당국간에 온도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당시에는 한국정부와도 협력하면서 합의서에 대해 하나 하나 아이템별로 정리가 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한국정부의 입장에서는 거의 현실에 가까워지는 상황으로 기억할텐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잘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회의적일 수 있다"는 것.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과정에서 종전선언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미국내에서 냉소적인 태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와 인내심을 갖고 협상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참여했던 6자회담에서도 평화체제 추진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하면서 종전선언으로부터 시작해 평화프로세스로 이어가는 구상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프로세스 추진을 위한 하나의 방안인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협상가들이 정할 일이지만, EU나 나토와 같은 기구와 담당자가 있는 유럽과 달리 동북아시아의 다자주의는 기구도 담당자도 없다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청 샤오허 중국 런민대학교 교수는 "과거에는 북핵 미사일 프로그램이 가장 큰 위협이었으나 최근 지속되는 미중 전략경쟁은 동북아시아 역내 1차적인 위협이고 가장 큰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중경쟁이 지속되면서 특히 역내 국가들의 외교적 공간이 줄어들고 선택을 압박받는 분위기에서 지역의 도전과제 중 하나인 북한 이슈를 다루는 것도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그 전에는 '비핵화 관련 제재문제'를 같은 입장에서 봤지만 이제 서로 의견이 달라졌고, 북핵, 미사일 프로그램이 지난 2년과 같은 잠잠한 상황을 유지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현 시점에서 북핵,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의 일환"이며, "종전선언에 서명을 하더라도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징성은 있고 동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보낼 수는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정부가 계속 평화프로세스 실현에 중요 행위자가 되겠지만 "인간안보 문제에 먼저 집중하고 그후 다른 사안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 벨라루스 국가보안회 위원장인 안드레이 체르네츠키 주한 벨라루스 대사는 종전선언-평화협정에 대한 전적인 지지의사를 표시했고, 아누꾼 첨몽콘 태국 국가안전보장회의 고문은 북핵 및 미사일 활동이 지속될 것이라고 점치면서 내년 한국 대선에서 새로 출범할 정부의 대북입장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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