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 수요일

900인분 급식전쟁과 설거지 사이 조리원들은 10분만에 밥을 삼켰다

등록 :2020-01-02 04:59수정 :2020-01-02 08:35

[2020 노동자의 밥상] ②학교 급식조리원의 식판 밥상

900명의 점심을 차려낸 5명…“오전은 전쟁, 오후는 죽음이야”
식어버린 짬밥을 후루룩 마시고…다시 설거지 무덤 앞으로
학교 급식조리원이 기름이 끓고 있는 솥 앞에서 감자를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학교 급식조리원이 기름이 끓고 있는 솥 앞에서 감자를 튀기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장갑 두 장을 벗자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이 드러났다. 세 시간여 아침 일을 하는 동안 손과 발, 몸이 모두 물에 불어터진 기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손목은 시큰거린다. 식판에 놓인 밥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에도 900인분의 설거지와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어두지 않으면 그 압도적인 양과 압축적인 시간을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습기로 가득 찬 5평(16㎡)짜리 탈의실 겸 휴게실에서, ‘언니들’을 따라 고봉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쿰쿰한 짬밥 냄새가 소독약 냄새와 뒤섞여 혼미했다.
급식조리원들은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자매처럼 호흡을 맞추지 않고선 ‘여자들의 노가다’라고 하는 거친 급식 노동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보건소에서 발급해준 보건증을 들고 지난 12월13일 급식조리원 대체 인력으로 서울 ㄱ초등학교 조리실을 찾았을 때, 대부분 40~50대인 언니들은 26살 ‘막내’를 맞으며 경악했다. “학교 조리실은 다른 일 하다 하다 가장 마지막에 오는 곳이야.” 진경(46·이하 모두 가명) 언니가 유독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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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언니들 5명의 하루는 오로지 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침 8시30분 조리실에 출근해 초등학생 900명의 점심 밥상을 차리고 오후 4시에 퇴근한다. 그러면 가족의 저녁 밥상을 차려야 한다. 그사이에 자신의 끼니는 그저 ‘삼킨다’. 언니들은 급식 일에 견주면 집밥은 ‘소꿉장난’이라고 했다. 조리실은 그야말로 속도 전쟁터다. 7시간30분 동안 5~6명이 900인분의 급식을 마련하고 내일을 위한 설거지·청소까지 마감하려면, 밥을 거르고 일만 해도 빠듯하다. “오전은 전쟁이고 오후는 죽음이야.” 진경 언니의 표현이다.
장비를 갖춰 작업복을 차려입고 이날 아침 9시께 조리실에 들어섰을 때 쌓여 있는 무, 숙주, 배추, 소고기 등 식재료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시장에서도 그렇게 식재료가 쌓여 있는 광경은 본 기억이, 기자는 없었다. 무엇보다 언니들의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채소 껍질을 벗기는 ‘필러’로 무 껍질을 깎아내는데, 서툴다 보니 하나 깎는 데 5분이나 걸렸다. 눈앞에서 20초 만에 무 하나를 다 깎은 진경 언니는, 혀를 차며 무는 그만두고 그것보다 쉬운 느타리버섯 찢는 일을 하라고 했다. 육개장에 들어갈 느타리버섯 하나를 세로로 가늘게 찢어 삼등분하는 일인데, 그마저 900인분을 찢으려니 30분이나 걸렸다. 은색 스테인리스 대야에 산처럼 쌓인 버섯은 아무리 찢어내도 줄지 않았다. “속도를 더 내야지.” 버섯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즈음 진경 언니가 다가와 다그쳤다. 귤 900여개를 씻고 개수대 청소를 할 때도 언니는 다가와서 타박했다. “일을 반도 못 했네.”
어지간한 주방장들과도 견줄 수 있는 숙련된 조리원 언니들이지만, 쌓여 있는 일을 앞에 두고 마음이 급해지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메뉴인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육개장을 담당할 조리원을 나눴지만, 배식 마감이 닥쳐오자 ‘네 일 내 일’을 가릴 수 없었다. 언니들은 무를 깎다가 일손이 달리면 자리를 옮겨 배추를 썬 뒤, 곧바로 멸치와 아몬드를 볶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치울 뿐이었다.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급식에 나온 밥과 육개장,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김치, 귤이 담겨 있다. 김민제 기자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급식에 나온 밥과 육개장, 연어스테이크와 멸치아몬드볶음, 김치, 귤이 담겨 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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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안에 밥을 후루룩 마신다
밥 먹는 일도 언니들에겐 속도전이다. 언니들의 끼니 때는 따로 정해진 시간이랄 게 없다. 낮 12시30분께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 식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언니들이 하나둘 식사를 시작한다. 길게는 30여분의 식사 겸 휴식 시간이 있다지만, 그 시간을 다 쓰는 언니는 없다. 그날 해야 할 일을 앞장서서 하는 ‘당번’ 언니가 10~15분 만에 밥을 먹고 일어서면, 다른 언니들도 자기들만 쉬기 미안하다며 조리실로 나와 쭈뼛쭈뼛 일을 시작한다. 학생들의 급식 반찬이 모자라면 배식 담당자가 호출하기에, 밥 먹는 도중에도 마음 편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목장갑 위에 고무장갑, 고무앞치마와 위생모, 토시와 고무장화를 벗었다가 밥을 먹고 다시 착용한 뒤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오전 내내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하느라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언니들은 그래도, 잠시나마 무거운 장비를 벗을 수 있게 되자 속이 시원한 듯했다.
비좁은 휴게실에 밥상을 펼치고 여섯 명이 무릎과 무릎을 포개어 앉았다. 위생모를 벗자 땀에 짓눌린 언니들의 머리칼은 떡진 채 아무렇게나 눌려 있었다. 밥상에 올라온 음식은 학생과 교사가 남긴 밥과 국, 잔반이다. 식은 국과 떡진 밥, 기름이 뭉친 연어스테이크, 눅눅해진 멸치아몬드볶음. 오전 내내 짬밥 냄새에 질린데다 식어빠진 음식을 보니 영 입맛이 돌지 않는다. 허나 허기는 식욕에 비례하지 않았다. 격하게 몸 쓰는 일을 한 뒤라서인지 밥은 꿀떡꿀떡 넘어갔다. 날마다 격하게 몸을 쓰는 데 익숙해진 언니들은 제맛을 잃은 찬거리들을 해치우는 저마다의 ‘노하우’가 있었다. 진경 언니는 밥에 멸치볶음을 크게 떠넣더니 비비기 시작했다. 경미 언니는 육개장에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듯 들이켰다. 그렇게 언니들은 고봉밥을 10여분 만에 해치웠다.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김민제 기자
급식조리원들의 식판 밥상. 김민제 기자
끼니를 때우느라 바쁜 와중에도 언니들은 사는 얘기를 몇 마디씩 주고받았다. 대개 궁박한 처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달엔 일주일이 비네.” 진경 언니의 푸념에 밥을 밀어넣던 모두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급식조리원들은 방학이면 돈을 벌 수 없다. “일주일을 어디서 메꾸지?”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일주일만 나와서 일해달라’는 곳이 있을 리 없다.
한 언니가 소은 언니를 쳐다보며 “소은 언니, 나도 줄 좀 서자”라고 말했다. 소은 언니는 방학이면 웨딩홀 조리실에서 일한다. 소은 언니는 미안한 듯 웃으며 “웨딩홀 조리 일도 경력직을 선호해”라고 답했다. 그러자 수다스러운 진경 언니는 화제를 바꿔 조선소에서 ‘노가다’를 시작한 형부 이야기를 꺼낸다. 다른 언니들이 말을 받아 “조선소는 한물갔다”며 혀를 찼다. “아들이 정비직에 취직했는데 엄마 마음으론 사무직이 못돼 속상하다”는 언니도 있었다. 언니들 사는 얘기는 들을수록 갑갑해, 방금 삼킨 밥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린 것만 같았다.
쌓여 있는 반찬통과 조리 도구 등을 설거지하는 급식조리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쌓여 있는 반찬통과 조리 도구 등을 설거지하는 급식조리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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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수 없는 ‘요통주의’ ‘끼임주의’ ‘화상주의’
오후 조리실은 설거지 무덤이다. 낮 12시45분께, 배식을 마친 것도 아닌데 조리실은 식판과 수저 등 설거짓거리로 가득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지만 눌어붙은 반찬 찌꺼기를 짧은 시간 안에 떼어내기 위한 초벌 설거지가 필수다. 뜨거운 물에 식기를 불린 뒤 수세미로 문질러 물에 헹궜다. 세제 냄새와 잔반 냄새가 엉켜 조리실이 매캐했다.
출입문 옆에 붙은 온습도계는 온도 10도, 습도 32%를 가리켰지만, 체감 습도는 80%를 넘는 듯했다. 조리실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방수가 되지 않는 휴대전화는 수증기 탓에 고장 날 수 있다고 언니들이 경고했다. 금세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올라와 흘러내리면서 온몸이 찐득해졌다. 몸에는 수시로 기름과 물이 튀었다. 허리도, 손목도 떨어져나갈 듯했다. “설거지에 파묻혀 죽겠네.” 끝없이 식판을 받아내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력이 바닥나자 수시로 산업재해, 안전사고의 위협을 느꼈다. 조리실 벽 곳곳에는 ‘요통주의’ ‘미끄럼주의’ ‘화상주의’ ‘끼임주의’ ‘산업재해 예방’ 안내판이 붙어 있다. 문제는 그걸 피할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요통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리원은 대개 일어서서 종일 허리를 숙인 채 일한다. 식판을 들어 올리고 몸을 숙여 재료를 다듬으면 오후엔 필연적으로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이 밀려온다. ‘끼임’ 사고도 피할 수 없다. 식판과 식판 사이에, 식기와 개수대 사이에 여러 차례 손가락이 끼였다.
‘미끄럼’ 역시 주의할 수 없다. 설거지를 할 때 조리실 바닥은 물과 세제로 범벅된다. 곳곳엔 식기와 조리 도구가 널려 있다. 뒷정리할 때는 바닥에 양동이로 물을 끼얹으며 음식물 찌꺼기를 씻어낸다. 무거운 고무장화가 끼얹은 물에 치이면서 휘청인 적이 여러 번이다. 언니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히고 얼굴에 물을 튀기며 “미안” “죄송해요”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청소할 때는 ‘약품’으로 바닥을 닦고 물을 뿌리는데, 진경 언니가 “절대 얼굴에 묻으면 안 되는 독한 약”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급하게 일하다 보니 얼굴과 목, 눈과 옷 속으로 약품이 튀지 않을 수가 없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그렇게 약품이 묻어도 곧 무감해졌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화상이었다. 조리실 곳곳에선 대형 솥에 기름과 물이 펄펄 끓는다. 뜨거운 설거지물은 고무장갑 안을 파고들어 목장갑까지 적셨다. 김이 나는 솥 안쪽으로 몸을 숙여 불린 식기를 건져낼 때는 끓는 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실제로 2014년 3월,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조리원으로 일한 김아무개(56)씨가 설거지하려고 대야에 받아놓은 뜨거운 물 위로 넘어져 두 달 뒤 세상을 등진 일도 있다.
학교 급식조리실에 설거짓거리로 쌓인 숟가락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학교 급식조리실에 설거짓거리로 쌓인 숟가락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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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조리실은 병 안고 떠나는 곳”
“여기 와서 일하면 병들어. 급식조리실은 병 안고 떠나는 곳이야.” 일을 시작하기 전 진경 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말렸다. 다른 언니는 더 단호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나는 반대야. 젊은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야. 너네 엄마가 알면 화낸다. 오늘만 해보고 다신 오지 마.” 다그치던 언니들이 귤을 까서 내게 먹였다.
언니들은 몸담고 있으면서 유독 나를 말리는 이유를, 언니들과 밥상을 마주한 뒤에야, 일을 마친 뒤에야 알게 됐다. ‘나는 힘들어도 괜찮지만 너는 그러지 마.’ 그것은 아마 언니들이 가족에게, 학생들에게 차려주는 밥상에 담은 그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식어빠진 찬밥을 삼키고도 가족의 밥은 온돌 아랫목에 묻어두던 엄마의 그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중고생 여러분 고마워요, 새해 첫날 소녀상 찾아줘서

20.01.01 18:28l최종 업데이트 20.01.01 18:47l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 참석자가 평화의 소녀상 발에 신겨진 양말을 어루만지고 있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 참석자가 평화의 소녀상 발에 신겨진 양말을 어루만지고 있다.
ⓒ 소중한
 
털목도리를 하고 털양말을 신은 '평화의 소녀상' 앞에 두터운 겉옷을 입은 두 학생이 나란히 앉았다. 자신들의 2020년 새해 첫날을 '수요시위'로 채우기 위해서였다. 올해 고3이 되는 김지원(19, 여)양과 한 살 어린 한서연(18, 여)양은 "2020년 첫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기억도 해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들께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도 수요시위에 올 때마다 힘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새해도 힘차게 시작하기 위해 오늘 이곳에 왔어요."

"수요일에 하다 보니 학기 중엔 (수요시위에) 나오기가 힘들어요. 방학 중에도 학원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요. 휴일인 새해 첫날이 마침 수요일이어서 오늘은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소중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420차 정기 수요시위'가 1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약 1시간 동안 열렸다. 새해 첫날 한파 속에서도 200여 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주최 측 추산)했고, 특히 앞서 두 학생처럼 휴일을 맞아 수요시위를 찾은 중·고교생들이 많았다. 인천 연수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모은 기부금을 수요시위를 주최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에 전달했다.

곳곳에서 외국인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일본인 두 사람이 한글과 일본어로 "할머니의 슬픔은 우리의 슬픔이다. 일본사람은 사실에 의한 역사를 배워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인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인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소중한
 
"2020년, 정대협 30주년... '김복동의 희망' 이뤄지길"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마이크를 잡고 2020년의 의미를 힘주어 말했다. 그는 "2020년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의기억연대 전신) 30주년의 해이고 다음 주면 수요시위를 시작한 지 만 28년이 된다"라며 "2020년 첫날, 김복동 할머니가 말한 희망이 이뤄질 거란 생각을 해본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죄, 배상, 역사교육,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회복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러한 목소리를 폄훼·방해하는 '문희상안(기억·화해·미래재단법안,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나와 있는 상황이다"라며 "지난 시절 청산되지 않는 역사에서 발생한 문제를 그대로 안은 채 2020년을 맞이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이사장은 "오늘 아침 93세 길원옥 할머니께서 '잘못한 걸 뉘우쳐야 사람이지'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새해 소망으론 남북통일을 이야기하시기도 했다. 이 땅에 평화가 와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그 위협을 우리가 물리쳐서 다시는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소망이 우리가 꿈꿔야 할 새 소망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소중한

이날 수요시위에선 2010년 1월 2일 세상을 떠난 고 김순악 할머니를 기억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7세 때 일할 사람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공장에 갔다가 만주로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 1945년 해방 후, 밤낮없이 걷는 등 고난 끝에 서울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미제 장사, 식모살이, 냉면 장사, 농사일 등을 하며 살다가 2000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1월 1일은 무언가 다짐하기 좋은 날이잖나"라며 "이제 (생존 할머니들이) 스무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의 과거를 잊지 말고 할머님들의 정신을 잊지 말자'라는 다짐으로 한해를 시작하고 싶어 오늘 수요시위에 참석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2020년은 정대협 30주년의 해이다. 그동안 이 문제를 개인의 불운 혹은 숨겨야 할 수치스러운 역사가 아닌 과거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전쟁범죄, 여성인권 침해범죄라고 전 세계에 알린 성취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한편으론 30년 동안 피해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문제를 환기하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했음에도 가해자가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은 너무도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소중한

이날 수요시위를 주관한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와 참가자들은 성명을 통해 "지난 2019년 다섯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 피해 생존자 수는 단 스무 분이다"라며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 없이 문제는 결코 정의롭게 해결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끝까지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라고 밝혔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부터 주한 일본대사관 앞(2011년 12월, 정대협이 이곳에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서 매주 수요일 정오에 열리고 있다.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고 서울 평화나비 네트워크가 주관한 "제1420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됐다.
ⓒ 소중한

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2)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입력 : 2020.01.02 06:00
1심 판결문으로 본 ‘부당노동행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4년 3월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부 협력센터의 잇따른 폐업이 노조 탄압용 ‘위장폐업’이라며 항의했다.  김기남 기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2014년 3월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일부 협력센터의 잇따른 폐업이 노조 탄압용 ‘위장폐업’이라며 항의했다. 김기남 기자
“ ‘그룹 노사 전략’은 상정하던 실제 상황(삼성노조 결성 시도)이 발생하자 그 세부 실행 계획이 담긴 ‘에버랜드 대책’으로 구현돼 그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실행됐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는 ‘그룹 노사 전략’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의 관계를 판결문에 이렇게 정의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노조 설립에 대비해 세운 전략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이하 삼성전자서비스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이하 에버랜드 사건)에서 실행됐다. 삼성의 노조 파괴 범행은 기획폐업, 어용노조 설립, 사찰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일 경향신문은 두 사건 1심 재판부가 인용한 문건을 중심으로 부당노동행위를 분석했다. 
■ “가능한 경우 입원하라” 
삼성은 강성노조가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로 분류된 해운대·아산·동래외근 협력사를 폐업시켜 노조 조직·운영에 지배·개입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를 받는다. 삼성 측은 “협력업체 폐업은 사장들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이뤄졌다”는 주장을 폈다. 다음은 지난달 17일 선고된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1심 판결문에 인용된 ‘폐업 실행 시나리오’ 문건 일부다.
2·2(월) 폐업사유 입증자료 준비 : 전년 대비 매출 감소, 영업이익 감소, 고객항의 급증 등
 
건강악화 증빙자료 준비(1차) :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서 확보(가능한 경우 입원)
 
2·17(월) 건강악화 증빙자료 추가 검토 : 스트레스 관련 추가검진 실시 및 진료기록 확보
 
2·26(수) 협력사 사장은 2월 말 경영상 사유로 폐업함을 공표함: 지치고 미련이 없다. 다 버리고 폐업하겠다. 

2·28(금) 폐업절차 진행

삼성은 폐업 목표일까지 정해놓고 날짜·시간대별로 ‘폐업 시나리오’를 촘촘히 짰다. 협력사 사장들은 재판에서 ‘건강 악화’라는 폐업 사유를 내세웠지만, 삼성은 협력사 사장들에게 “스트레스성 질환 진단서를 확보(가능한 경우 입원)”하라고 지시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은 폐업 당일 시간대별로 실행계획을 세웠다. 해운대 협력사 사례를 보면, 2014년 2월27일 오전 9시 폐업에 대한 직원 설명회를 실시하고, 오전 10시 삼성이 준비해놓은 폐업 공고문, 고객 안내문, 직원 대상 사장 소회문을 게시하고, 오전 11시 구청·세무서에 폐업 신고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문건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실행됐다”며 “삼성전자서비스 측에서 유도하고 기획한 폐업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 페이퍼 노조 
삼성은 에버랜드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하려고 하자 어용노조(에버랜드 노조)를 만들어 노조 활동을 방해한 혐의(노동조합법 위반)를 받는다. 삼성 측은 어용노조 설립에 지배·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어용노조 설립에 도움을 준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지난달 13일 선고된 에버랜드 사건 1심 판결문에 인용된 문건을 보면, 삼성 스스로도 에버랜드 노조를 ‘PU(Paper Union·페이퍼 유니온)’라고 기재했다. 미전실에서 작성한 문건을 보면, “어용노조 시비를 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노조를 한국노총에 가입시키겠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의 전말](2)삼성, 협력사 사장들에 “진단서 떼놔라”…치밀했던 기획폐업
■ “전향적 판결” 
기획폐업과 어용노조 설립은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다. 노동조합법 81조는 노동자가 노조를 조직·운영하는 것을 사용자가 지배·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원청업체일 뿐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협력업체 사장들만 범죄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삼성전자서비스 사건 1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는 소속 수리기사들에게 근로자 파견 관계에 해당할 정도로 실질적·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했으므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를 폐업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2010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사건’ 상고를 기각하면서 “근로자의 노동조건 등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면 구제명령을 이행해야 할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판례를 헌법·노동조합법 입법 목적에 비춰보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사용자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원청을 부당노동행위 범행 주체인 사용자로 인정하고 형사처벌한 첫 하급심 판결이다. 지난해 8월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현대차 임직원이 부품사인 유성기업 임직원과 공모해 유성기업 노조 파괴에 관여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이 사건의 경우 현대차 임직원은 ‘공범’으로 인정돼 처벌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동부도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수사 시에는 원청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도록 수사매뉴얼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와 판단의 필요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어용노조의 임모 1기 위원장, 김모 2기 위원장도 자신들은 노동자일 뿐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지만 에버랜드 사건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분관계로 인해 성립될 범죄에 가공한 행위는 신분관계가 없는 자에게도 ‘전3조(공동정범, 교사범, 종범)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형법 33조를 근거로 들었다. 어용노조 위원장들은 범행 주체가 ‘사용자’ 신분이어야만 범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조항을 들어 사용자가 아니어도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어용노조 위원장들까지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어용노조 간부들도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책임을 지웠다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에버랜드에서는 현재까지도 이 어용노조가 교섭대표노조라며 금속노조 삼성지회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법원 판결에도 기존의 노조파괴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꼼꼼하게, 단디 챙겨라” 
“전체적으로 꼼꼼하게, 단디 챙겨라.” 강경훈 당시 삼성그룹 미전실 노사파트 총괄 임원(부사장)이 에버랜드 상황실로부터 노조원을 사찰한 내용을 보고받으면서 했던 말이다. 삼성 미전실은 각 계열사로부터 소위 ‘문제인력’의 개인정보를 매일같이 무단 수집(개인정보보호법 위반)했다. 삼성에버랜드 상황실은 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동자들을 차량을 이용해 감시하는 일명 ‘패트롤’ 방식으로 이들의 사생활을 ‘일일동향문건’에 정리했다. 문건을 보면, “절대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2인1조로 운영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장희 부지회장, 박원우 지회장 등 문제인력을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문제인력’의 가족까지 사찰해 부당 징계에 활용했다. 삼성은 ‘문제인력’으로 분류된 ㄱ씨 배우자의 금융정보, 건강 같은 ‘민감정보’까지 수집했다. ‘일일동향문건’에는 “2011년 11월16일 사내 기금 담당에게 대출신청서 제출” “2012년 3월8일 오전 10시40분 아주대병원에서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휴식”이라고 적혀 있다. 재판부는 “ㄱ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정을 파악한 후 ㄱ씨를 무급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주효한 압박 수단이라고 판단해 징계수위를 ‘정직’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도 사찰했다. 2012년 7월16일자 ‘일일동향문건’에는 “조장희·박원우·백승진이 7월13일 11:30~12:30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실시”했다고 적혀 있다. 에버랜드 사건 1심 재판부는 “사용자 측은 처음부터 조장희 등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그들을 감시하고 미행해 동향을 파악하는 등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징계사유를 적극적으로 탐색했다”고 지적했다.

인도 시민권법 개정안, 인도주의 포장한 인종주의

[아시아생각] 미얀마 로힝야 족 시민권 박탈 과정과 유사



지난 12월 25일, 인도 중남부 텔랑가나 주의 주도 하이더라바드에서는 흰색 상의와 황토색 바지(간혹 검정바지)를 차려 입은 남성 약 8000명이 한 손엔 긴 막대기를 높이 세워 들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시내를 행진했다. 힌두극단주의 조직인 ‘라슈트리아 스와이암세박 상’(Rashtriya Swayamsevak Sangh, 이하 RSS) 대원들이다(하얀 상의와 황토색 하의는 RSS 유니폼 색).

하루 전날 인도 언론 <인디안 익스프레스>는 텔랑가나 주 RSS 지부의 한 간부가 ‘오는 2024년까지 이 주의 1만개 마을로 대원 확장을 꾀하고 2025년 맞이하겠다’는 말을 인용 보도했다. 2025년은 RSS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RSS는 힌두 우월주의와 힌두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삼고, 두 이념이 만나 현실에서 작동하는 힌두 커뮤널리즘(Hindu Communalism)은 소수커뮤니티, 특히 무슬림들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의 원천으로 활용해왔다.  

RSS를 중추조직으로 하는 힌두 극단주의 세력의 정치조직이 바로 인도국민당(이하 BJP)이다. RSS출신이자 현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는 BJP 정치로 지난 4~5월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5년마다 약 한 달간 13억 인구가 거르지 않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질의 문제로 가면 달라진다. 모디 정부 1기(2014~20019) 동안 무슬림을 향한 소자경단들의 거리 ‘린치’가 횡행하면서 인도는 집권세력의 은혜를 입은 다수커뮤니티가 소수를 향해 근육 자랑을 하는 파시스트 사회로 치달아왔다. 

▲인도 집권세력의 토대인 힌두극단주의 조직 RSS 신입대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

지난 5월 출범한 모디 정부 2기는 그 경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8월 5일 엄연히 ‘국제적 분쟁 영토’인 잠무와 카슈미르 주의 자치권을 대통령령 발동으로 하루아침에 박탈하는가 하면, 같은 달 동북부 아쌈 주에서는 시민등록절차(National Register of Citizens 이하 NRC)를 시행하여 하루아침에 190만 명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NRC에 따르면 1971년 3월 24일 이전 본인 혹은 조상의 거주를 증명해 보여야 시민권을 유지할 수 있다. 엠네스티는 이름의 오기나, 나이 혼돈과 같은 행정적 실수로 증명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모디 정부는 아쌈 주가 미얀마 북부와 서부, 그리고 방글라데시와 부탄 등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댄 변방지역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불법 이민자" 색출을 내걸고 NRC를 도입한 것이다. 이어 지난 12월초 양원 의회를 통과한 시민권법 개정안(Citizenship Amendment Act, 이하 CAA)을 통해 무슬림 배제를 노골적으로 내세웠다.  

CAA에 따르면, 인도 주변 3개국 즉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2015년 이전에 도착한 힌두, 기독교도, 파르시(조로아스터교), 자인교, 시크교도들에게는 인도 시민권 신청자격이 부여된다. 인도는 CAA에서 무슬림만 콕 집어 배제함으로써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  
첫째, 인도주의를 가장한 안티 무슬림 인종주의 메시지다. 인도는 CAA를 통해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주변국에서 무슬림 이외 커뮤니티가 박해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들 국가들이 무슬림 다수의 권력을 휘두르는데 반해 인도는 소수자를 보듬는 것처럼 교묘히 대비시키기도 했다.  

인도주의 원칙하에 이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말 포장을 하고 있지만 포장일 뿐이다. CAA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주변국 소수자들에게 인도사회로 진입하는 인도주의의 열쇠가 되지 못한다. 이는 개정안이 특정한 몇 가지 사실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CAA, ‘종교적 박해를 피해온 이들 구제’ 운운했으나...  

우선 개정안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적용 대상을 무슬림 주류 3개국으로 제한함으로써 인도에 오랜 세월 거주해온 스리랑카 타밀 난민들을 자동 배제시켰다. ‘인도주의’ 동기였다면 당연히 포함시켜야 했을 커뮤니티를 배제한 건 CAA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말해준다.  

타밀족들은 1983년 스리랑카 내전이래 긴 세월간 인도 남부 타밀나두로 피난을 왔고 타밀나두와 남부를 중심으로 대략 15만 명이 미등록 상태로 체류 중이다. 로힝야 난민들은 또 어떤가? 인도에는 로힝야 난민 약 4만 명이 체류 중이다. 필자는 지난 4월 인도 수도 델리와 하리아나 주 등지의 로힝야 캠프를 취재하며 짧게는 2~3년, 길게는 25년 이상 인도로 피난 온 ‘보호받지 못하는' 난민 로힝야들을 여럿 만났다. 미얀마는 CAA가 특정한 3개국이 아닌데다, 무슬림 배제 조건까지 있는 탓에 그들이 직면한 박해수준이 제노사이드에 이르러도 보호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CAA가 특정한 3개국에는 박해 받는 무슬림이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파키스탄에서 이단으로 간주돼온 ‘아흐메디아(Ahmediyya)’ 무슬림들은 차별과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는 난민 그룹 중 하나다. 1974년 이슬람 공화국 파키스탄이 개정한 헌법에 따르면 아흐메디아는 ‘무슬림이 아니’다. 그야말로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이다. 아흐메디야 난민 다수는 태국 등 주변국으로 피난와서 도심 난민(Urban Refugee, 캠프와 같은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도심 속에서 익명성을 유지하며 조용히 체류하는 난민들을 일컬음. 상시적 단속과 구금의 위협에 시달린다)의 다수를 구성해왔다.  

감옥보다 열악하다는 방콕 이민성 구금소에 영구적으로 갇힌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필자의 오랜 친구 S처럼 난민보호가 되지 않는 태국 환경을 견디다 못해 본국으로 돌아간 뒤 고립된 시골에서 가족을 피해 숨어사는 이도 있다. 아흐메디야 외에도 주변국의 시아 커뮤니티 역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도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운운하고 싶다면 최소한 아흐메디아를 비롯하여 박해 받는 무슬림 현실을 고려했어야 한다. 따라서 CAA의 무슬림 배제 메시지는 선명하다. 그건 인도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증오를 토대로 밀어붙인 인종주의 법안이다.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증오가 기반  
CAA의 두 번째 메시지는 2억에 달하는 인도 무슬림들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CAA는 아쌈 주에서 지난 8월 우선 시행한 NRC와 맞물려 이해할 필요가 있다. BJP 대표 출신으로 모디 정부 2기의 첫 내무부장관에 오른 아밋 샤(Amit Shah)는 무슬림 배제를 노골화 한 ’안티 무슬림' 정책의 브레인이다. 그와 모디 총리가 이른바 ‘모디-샤’ 팀워크로 한 인간의 존재와 기본권을 위협하면서까지 안티 무슬림, 힌두 민족주의 어젠다를 전례 없는 수위로 밀어붙이는 전술적 도구가 바로 NRC, CAA다. 인도 세속주의 헌법 정신에 정면 위배되는 정책들을 총리와 내무부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게 오늘 인도의 현실이다. 

세속주의 위배로 직격탄을 맞는 건 우선 인도의 2억 무슬림들이다. 인도 전역으로 확산중인 CAA-NRC 반대 시위와 그에 대한 공권력의 무력진압 그리고 시위와 상관없이 무슬림을 타깃으로 휘둘러지는 공권력의 폭력은 이를 잘 반영한다. 우선 사상자 현황을 보자. 이 법이 양원 의회를 통과한 이래 12월 28일 오전 기준 총 27명이 사망했다. 이중 19명이 우타프라데쉬주(이하 UP)에서 발생했고 이중 최소 17명이 무슬림이다. 나머지 사망자는 아쌈 주와 카르나타카 주에서 각각 5명, 2명이 사망했다. 사망자가 발생한 세 개의 주는 모두 BJP 출신 주 장관들이 통치하는 지역이다. 경찰력 지휘체계의 총괄 부서이자 전 BJP 대표가 장관으로 있는 내무부, BJP가 통치하는 주정부, 그리고 해당 주의 공권력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와 같이 편향적인 피해자 통계로 이어지는지 짐작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북부 우타프라데쉬주, 무슬림 가옥 침탈 “공권력이 폭도였다" 

힌두 사제 요기 아디뜨나야뜨(Yogi Aditnayath)가 주 장관으로 있는 우타프라데쉬 상황은 특히 심각해 보인다. 최근 진상조사팀을 꾸려 우타프라데쉬 현황을 조사한 ‘전인도진보여성연합’(All India Progressive Women’s Association, AIPWA) 사무총장인 카비타 크리슈난(Kavita Krishnan)은 조사 현장을 영상으로 공유하며 “주 경찰과 신속대응부대(Rapid Action Force, RAF/폭동진압 전문병력) 그리고 지방경찰보안대(Provincial Armed Constabulary) 그들이 바로 폭도들(rioters)이었다” 고 전했다.  

그가 “폭도들"이라고 묘사한 공권력은 우타프라데쉬주의 무자파르나가르(Muzaffarnagar)지역 무슬림 가옥에 무단 침입하여 집안을 쑥대밭으로 뒤집어 놨다. 또, 12월 27일에는 마찬가지로 우타프라데쉬 서부지역 미랏(Meerut)에서는 이 지역 경찰서장 아킬레슈 나야완 싱 (Akhilesh Narayan Singh)이 무슬림 거주 구역에서 시위와 무관해 보이는 주민들을 향해 “파키스탄으로 꺼지라”고 폭언을 내뱉는 장면이 소설미디어상 바이럴 영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미랏 지역은 최근 언론보도에 또 다른 이유로 등장한 바 있다. 바로 RSS가 운영하는 중등과정(한국의 중고교)의 첫 사관학교를 내년 4월 개교할 계획인데 그 학교가 세워질 예정 부지가 바로 미랏 지역이라는 보도였다. 이 글 서두에 언급한 RSS 행진이 심상치 않은 것도, 또 RSS가 운영할 중등사관학교가 곧 개교할 거라는 사실도 암울한 전조다.

로힝야 시민권 박탈한 미얀마 사례에서 교훈 찾아야 

한편, 인도의 시민권법을 둘러싼 논란과 국가 폭력 양상은 옆 나라 미얀마 사례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두 사례에선 기시감이 교차하는 대목이 적잖다. 미얀마 로힝야들이 40여년에 걸쳐 제노사이드 프로세스에 노출되는 동안 이들의 기본권을 박탈한 대표적 제도 하나가 바로 시민권 이슈다. 1982년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권자였던 로힝야들은 그러나 그 해 시민권법이 개정되면서부터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권을 서서히 상실해갔다. 로힝야들이 시민권을 전면 상실하는 과정은 총 10년에 걸쳐 진행됐다. 이제 시민권법 개정 초기에 도입한 인도사회가 더 늦기 전에 미얀마 사례를 학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로힝야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10년의 과정을 축약해 보자. 

우선, 1982년 시민권법이 개정됐다. 당시 군부 최고권력기구인 <버마사회주의 프로그램당>(BSPP)은 1824년 이전 조상의 거주 증명을 해야 온전한 시민권자로 규정하는 극단적 제노포비아 시민권법을 만들어놨다. 1824년을 기준으로 한 건 영국이 오늘날의 미얀마 영토를 식민화하기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한 셈인데 그 시절을 증명할 문서를 보관한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실상 이 법이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자명하다. 인도 CAA가 무슬림을 겨냥했듯 미얀마의 1982시민권법은 (방글라데시 및 인도 동북부와 국경이 인접한) 미얀마 서부 변방지대의 무슬림 커뮤니티 즉, 로힝야와 그리고 일부 버마 무슬림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상대대로 오늘날 라까잉 주(혹은 아라칸 주)에 거주해온 로힝야들을 향해 군부가 70년대부터 씌운 프레임은 방글라데시에서 불법으로 이주해온 “벵갈리” 프레임이다. 

둘째, 1982 시민권법이 1988년 이후에서야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도 주목해봐야 한다. 이른바 '랑군의 봄'으로 알려진 전국적 규모의 시민항쟁은 종교와 종족을 초월하여 전방위적으로 군부독재를 압박했다. 시민권법이 적용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항쟁의 후속타다. 88항쟁 후 들어선 신군부 <국가평화개발평의회>(SPDC)는 시민항쟁에 대한 처방전으로 종족과 종교로 시민들을 가르는 분열 통치 카드를 내밀었다.  

SPDC 통치하 80년대 후반부터 시민권증 교체 작업이 시작되면서 시민들은 기존 시민권인 ‘국민등록카드(NRC, 일명 ‘녹색카드’ - 종족과 종교가 기록되지 않음)를 의무적으로 반납한 뒤 새 시민권증인 ‘국민감시카드’(NSC, 일명 '핑크카드‘ - 종족과 종교가 기록돼 있음)를 발급받았다. 그러나 로힝야들은 새 카드를 발급받지 못해 ‘미등록 시민'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마지막 완성 조치가 1991년 감행됐다. 그 해 군부는 135개 ‘공식 인종'을 발표하면서 ‘로힝야’를 배제했다. 이로써 로힝야는 서류상 존재가 사라진 세계 최대 무국적자 커뮤니티가 됐다. 

물론 인도는 미얀마와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동일하지는 않다. 오랜 세월 커뮤널리즘의 갈등과 폭력이 뿌리 깊었던 만큼 인도 시민사회는 이에 대한 경고를 빠르게 인지하고 있다. 극단주의와, 커뮤널리즘에 맞서온 저항 전통도 강한 사회다. 대학가가 선도적으로 나선 이번 CAA 반대 시위 역시 교수, 예술가, 언론인, 다양한 직군의 시민들이 전방위적으로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12월 22일에는 뭄바이에 있는 아시아 최대 슬럼가 다라비(Dharavi)에서도 2만5000~3만 명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거리를 빈틈없이 메우고 평화적으로 행진을 벌였을 정도다.  

인도 일간지 <더 힌두> 12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슬럼가의 주민들은 CAA 반대는 물론 카슈미르 자치권 조항인 370조의 폐기 등 BJP정부가 벌이는 일련의 반헌법적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힌두극우정치 세력들이 파시즘을 불러들이는 작금의 시국에서 인도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저항하는 전통과, 저항하는 오늘일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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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 천명


<해설> 북 노동당 전원회의, ‘정면돌파전’ 결정서 채택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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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1  17: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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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주재로 지난 연말 28~31일 나흘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개최돼 결정서를 채택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지난 연말 이례적으로 나흘 간이나 진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결의하고 경제적 자력갱생과 군사적 전략무기개발을 양대 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당규약 개정이나 전략노선 수정, ‘새로운 길’을 명명하지 않았고, 북미협상 종결을 선언하지도 않았다. 남북관계는 언급조차 나오지 않았다. 북미협상의 판을 깨지는 않되 자력갱생의 길을 가며 ‘조건부 핵무기보유국’의 길을 걷겠다는 천명인 셈이다.
우리 정부는 1일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중단을 선언하지 않은 것을 평가”했다. 아울러 “북한이 “곧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주목하고,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 북한의 선택 ‘정면 돌파’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보고에서 “조미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세기를 이어온 조미(북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여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있다”고 전제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말시한을 제시했던 북미협상이 미국의 ‘시간벌이’로 해를 넘기게 된데 따른 결론인 셈이다. 나아가 “핵문제가 아니고라도 미국은 우리에게 또 다른 그 무엇을 표적으로 정하고 접어들것이고 미국의 군사정치적위협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대미 불신론을 펴기도 했다.
결론은 “적대세력들의 제재압박을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활기를 열기 위한 정면돌파전을 강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제출한 투쟁구호가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외부환경이 병진의 길을 걸을 때에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한 투쟁을 벌리고있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해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으로의 복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전략노선 수정 없이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을 선언한 것이다.
정창현 북한경제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경제건설 총력노선에서 과거 병진노선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며 “전원회의 결정서의 순서도 경제 분야부터 제시돼 있다”고 짚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은 “북한이 굉장히 신중한 입장을 취한 것 같다”며 “‘레드 라인’을 철회하는 급격한 방향전환 보다는 기존의 입장을 좀더 강화하는 선에서 대미 경고를 하면서도 대화 여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 천명
  
▲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전원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들이 참가했고, 관계자들이 방청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제재속에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제기했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지만 아무래도 관심은 군사분야로 쏠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먼저 자신들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유예 등 중대조치를 취했지만 미국은 합동군사연습과 단독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하고 “지켜주는 (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나가는것은 우리 당의 드팀없는 국방건설목표”이라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것”이라고 확언했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전략무기’라는 표현에 대해 “핵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고 절제된 표현을 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전략무기는 지난 12월 동창리 엔진실험장에서 실시한 엔진 시험과 연관된 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고체엔진 ICBM, 다탄두 ICBM, 전략미사일 탑재 신형잠수함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관측하고 “새로운 전략무기의 등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명시적으로는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 2018년 4월 20일 3차전원회의 에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한 모라토리엄 선언 중 ICBM 시험발사는 파기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비핵화는 영원히 없을것이라는 것, 미국의 대조선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을 단호히 선언했다.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와 지난해 6.12싱가포르 북미정상공동성명에 따라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등이 진전되지 않을 경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역시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다. 즉 북한은 그때까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달리 표현하면 ‘조건부(가역적) 핵무기보유국’ 선언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에서 “핵 억제력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언급해 수위를 조절하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국문에는 ‘상향조정’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영문에는 ‘적절히 조정’(properly coordinate)으로 표기”됐다며, 대미 메시지로 판단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자력부강‧자력번영 성공할까?
  
▲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들이 주석단에 자리잡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7시간에 걸쳐 ‘역사적인 보고’를 통해 각 분야에 걸친 평가와 방향제시를 했지만 “정면돌파전에서 기본전선은 경제전선”임을 분명히 했고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에 필요한 수요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을 현시기 경제부문앞에 나서는 당면과업”으로 제시했다.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지도와 전략적관리”를 위해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를 강화”할 것과 “국가상업체계‧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할 것,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타격방향” 등이 주요한 내용이다. 또한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현상”을 쓸어버리고 “전사회적으로 도덕기강을 강하게”세우는 문제도 제기됐다.
특히 김 위원장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신념”이라고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초반인 2012년 태양절(4.15) 100주년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다.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뜻이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재작년부터 지난해 하노이까지 ‘탑 다운’ 방식으로 끌어온 상황이 어려움에 봉착한 것을 전원회의 형식을 통해서 결의를 다지는 형태”라며 “일방적 신년사가 아니라 전원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지지를 토대로 인민들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민간 전문가는 “국제적 대북제재에 중국까지 동참하고 있어 북한 내부 사정이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안다”며 “결국 자력갱생이 북한경제에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에 따라 시간은 누구편이었는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렬 자문위원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이 불명확한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도 놓여 있어 당분간 교착상태가 예상된다”며 “미국 대선 이전까지는 ‘현상동결 합의’(stand still agreement)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동엽 교수는 “2020년 북한이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제시한 경제발전 등 내부적인 고민을 해소하고 조선로동당창건 75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해 2021년 어느 봄날 제8차 당대회를 개최한다면 미국 대선이 끝나고 2021년 전반기 새 정부의 진용이 갖추어진 이후 북미협상의 2라운드 시작이 가능할 수도 있다”며 “문제는 영변과 동창리가 살아 있는 북한의 핵 몸값은 지금과 다를 것이란 점”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북한은 ‘본의 아니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력부강의 길을 걸어야 하고, 이와 병행해 ‘조건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강화하는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병진노선으로 복귀라는 평가가 나올법한 상황이다.
다만, 이전에 비해 미국의 무성의한 ‘노딜(no deal)’ 협상태도로 인해 핵무기보유국 지위 강화의 명분을 얻었고, 그간 더욱 강화된 국가핵무력을 구축을 통해 ‘몸값’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2018년 ‘53년 정전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남북, 북미관계가 진전되다가 2019년 ‘하노이 노딜’이후 정체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2020년 북한의 ‘정면돌파전’으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중앙과 지방의 핵심 간부들을 평양에 모아놓고 무려 4일간 북한의 안보 및 생존전략에 대해 설명했다”며 “만약 한국의 외교․안보․대북 라인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면 너무 늦기 전에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