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1일 목요일

남북 "개성연락사무소 조속가동"…北 "6·15행사는 南에서"(종합)

남북고위급회담, 판문점 선언 이행 논의
남북고위급회담, 판문점 선언 이행 논의(판문점=연합뉴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두번째)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두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남북, 판문점서 고위급회담 개최…北 "후속 실무회담 일정 확정하자" 
(판문점·서울=연합뉴스) 공동취재단 이정진 백나리 기자 = 남북은 1일 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공단에 설치하기로 하고 조속한 가동에 의견을 같이했다.
북한은 2000년 첫 정상회담을 기념한 6·15공동행사는 남측 지역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남북은 1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오전 전체회의에서 6·15공동행사, 공동연락사무소 설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남측은 회담에서 남북이 신뢰와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판문점 선언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북측에 전하면서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남측은 '4·27 판문점 선언'에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공동연락사무소와 관련, "판문점 선언 이행의 첫 사업으로 개성공단 내에 설치하고 조속히 가동하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북측도 개성공단 내 시설이 상당 기간 사용하지 않아 개보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필요한 사전 준비를 거쳐 최대한 빨리 개소하자고 밝혔다.
6·15 남북공동행사에 대해선 남측이 당국과 민간이 함께 추진해 나가자고 했고, 북측은 "당국, 민간, 정당·사회단체, 의회 등의 참여하에 남측 지역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 밖에 남측은 산림협력도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뜻이 있다는 점을 전달했고, 동해선·경의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한반도 신경제구상과 관련해선 우선 남북 간 공동 연구 및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장성급 군사회담, 적십자·체육회담, 산림, 철도·도로 실무회담 등 분야별 실무회담의 조속한 개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북측에 표명했다.
북측도 분야별 후속 실무회담의 조속한 개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하고, 이날 회담에서 장소와 날짜를 확정하자는 입장을 전해왔다.
북측은 이번 회담이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첫 회담인 만큼 양측이 신뢰와 배려를 통해 판문점 선언의 차질없는 이행을 위해 노력해 나가자는 점을 강조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김남중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등이 대표로 나섰다.
북측에서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윤혁 철도성 부상, 원길우 체육성 부상, 박용일 조평통 부위원장,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부위원장 등 5명이 대표단으로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양측은 진지하게 상호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후 상대측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오전 전체회의를 마쳤다"면서 "이후 회의 일정은 남북 연락관 협의를 통해 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transil@yna.co.kr
nari@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8/06/01 12:24 송고

“약 효과 없으면 죽여버릴거야” 폭언에도…난 “죄송합니다 고객님”

등록 :2018-06-01 05:00수정 :2018-06-01 10:23

[창간30돌 특별기획 - 노동 orz]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② 내 ‘욕받이 값’은 얼마입니까

‘고객과 다투지 말라’ 촘촘 매뉴얼
전화 끊으려면 세번이나 욕먹어야
“죄송하다면 다야?” “귀 먹었어?”
은근한 비하와 인격모독 일상처럼

감정노동·‘닭장’ 노동 대가는 최저시급
밥값 아끼려 도시락에 자판기 커피
월급은 10년 전부터 계속 내리막
못견뎌 떠났다가 다시 ‘전화지옥’으로
?일러스트 이재임
?일러스트 이재임
<한겨레>는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orz’를 통해 낮게 웅크린 우리,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이 되어 낮밤을 바꿔가며 일하는 맞교대 노동자의 삶과 일터가 첫 번째 장면이었습니다.
이번엔 ‘사무직 공장’(White-collar Factory)이라 불리는 노동 현장, 콜센터입니다. 70~80㎝ 간격의 좁은 칸막이 사이에 앉아 종일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의 삶이, 밀려드는 부품을 꾸역꾸역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기 너머 마주하게 되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서울 서남권의 한 홈쇼핑 콜센터가 두 번째 현장입니다.
3월14일, 콜센터로 출근해 한창 전화를 받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십니까 ○○쇼핑 신민정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문하려고.” “네 고객님, 성함과 휴대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십니까?”
“거기 컴퓨터에 뜨지 않아?” “네 고객님, 본인 확인을 위해 한번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고객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사람 피곤하게 왜 그래? 거기 이름 전화번호 뜨는 거 다 아는데 피차 귀찮게 왜 불러달라는 거요? 물건 사러 전화한 사람한테 물건만 팔면 되지 이름이랑 전화번호가 왜 필요해요? 대체 언제부터 고객한테 이름이랑 전화번호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몇 년 전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는지 알아와요!”
팀장에게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언제부터 인입 고객(전화를 건 고객) 이름과 전화번호를 확인했는지 아세요?” 팀장은 ‘고객이 그런 걸 묻냐’고 의아해하면서도 ‘이 홈쇼핑 콜센터 개국 이래 계속해왔다’고 알려줬다. 고객에게 그대로 전했다.
“네 고객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쇼핑에서는 △△△△년 개국 이래 정확한 주문 및 배송을 위해 본인 확인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고객은 잠시 침묵했다. “전에 상담원은 그러지 않았단 말이야. 당신이 잘못 아는 거야!” 전화가 ‘툭’ 끊어졌다.
■ 매뉴얼에는 나오지 않는 ‘진상’들 콜센터에 취직한 직후 만났던 교육 담당자는 자신의 상담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 “처음엔 고객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나중이 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게 돼요. 그냥 ‘이 고객은 화풀이할 데가 없는 사람이구나, 불쌍하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고객의 말에 초연해지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다행히도 콜센터는 상담원이 자신을 다독이며 모든 것을 감내하도록 방치하진 않았다. 기자가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는 고객의 갖은 문의에 상담원이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도록 촘촘한 고객 응대 매뉴얼을 갖고 있었다.
욕설 고객에 대한 응대도 있었다. 매뉴얼에는 고객이 욕설을 할 때 “욕설을 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라며 1차 경고를 하고, 그래도 또 하면 2차 경고, 그래도 또 하면 3차 경고를 한 뒤 전화를 끊을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전화를 끊으려면 세번이나 욕을 먹어야 하다니…’라고 생각하던 차, 매뉴얼 강의를 하던 강사가 말했다. “근데 만약 상담원이 고객님을 짜증 나게 해서 고객님이 욕을 했다고 가정해 봐요. 거기서 ‘욕설을 해서 상담이 어렵다’고 하면 고객님이 뭐라고 생각할까요? 그러면 안 되겠죠?” 어떤 경우에 상담원이 욕먹을 만한 걸까. 몇몇 수강생은 웃었고, 몇몇 수강생은 웃지 않았다.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탓인지 최근엔 콜센터 고객들 가운데 대놓고 욕설이나 성희롱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은근한 비하나 무시, 인격모독은 일상이었다. 홈쇼핑 상담원은 업무 특성상 고객이 불러주는 주소와 카드번호 등을 입력해야 한다. 이를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면 “아가씨 귀먹었어?” “이런 것도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서 어떻게 상담원을 하는 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런 식이다. “경기도 에레스로…” “고객님, ‘애래수로’ 말씀이십니까?” “아니 이 아가씨 귀가 먹었어? 엘!에!스!로! 엘에스 회사도 몰라? 엘!에!스!”
매뉴얼에 나오지 않는 당황스러운 일도 수시로 마주해야 했다. 옷을 주문하는 고객에게 “이 상품은 상표를 제거하시면 교환 및 반품이 어렵습니다”라고 안내했다. “내가 언제 반품한다고 했냐, 왜 사람을 이상하게 몰아가느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고객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매뉴얼에는 없었다. “▽▽신용카드를 쓰면 할인이 되느냐”고 묻기에 “해당 카드는 죄송하지만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죄송하면 다냐”고 화를 내는 고객에겐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영양제를 주문하면서 “이 영양제 효과 없으면 죽여버릴 거다”라고 말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매뉴얼에는 ‘고객과 싸우지 말라’고 돼 있으니, 그저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쩔쩔맸다.
일러스트 이재임
일러스트 이재임
■ 아파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고객은 모른다. 전화를 받는 상담원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딸인지. 어떤 고객에게 상담원은 자신의 요구를 빠르게 처리해주는 ‘자판기’일 뿐이었다.
고객의 한마디로 마음에 파도가 이는 기자와 달리 최미영(가명. 이하 모두 가명) 언니는 언제나 고요했다. 점심을 먹으며 “어제 드라마 보고 펑펑 울었잖아”라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인 언니였지만, 일터에서는 맷집이 셌다. 40대 초반인 미영 언니는 이전에 두곳의 홈쇼핑 콜센터에서 13년 정도 일했던 베테랑이다. 아들이 중학교에 막 입학했으니, 언니는 아들이 태어난 직후부터 이 일을 한 셈이다. 언니는 한 홈쇼핑의 재택 상담원으로 10년 남짓 일했다고 한다. 맷집은 세졌지만 그 10년 동안 마음 한구석엔 풀 데 없는 멍울이 생겼다. “맨날 집에 있으니까 옷값 안 들고, 화장품값 들지 않는 건 좋았어. 근데 집에서 벽 보고 전화만 받으니 우울증이 오더라고. 맨날 남편이랑 아들한테 애꿎은 화풀이를 하게 되고….”
미영 언니는 일을 그만두는 대신 출퇴근하는 다른 홈쇼핑 콜센터로 옮겼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목이 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팀장에게 조심스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출근이 어렵다”고 얘기했다. 팀장은 결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면 사무실에서 (목소리 안 써도 되는) 사무라도 보세요.” 언니는 일을 그만뒀다. 아프다는 직원한테 일단 출근부터 하라는 회사에 미련이 없었다. 미영 언니는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한다. “거기가 여기보다 월급이 더 많았거든. 거기 관리자한테 자리 생기면 불러달라고 해뒀어. 거기서 불러주면 여기는 그만둘 거야.”
자식을 키우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중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대학생 아들을 둔 김진숙 언니도 아들을 키우는 내내 맞벌이를 했다. 50대 중반인 진숙 언니는 콜센터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팀장도, 매니저도, 센터장도 언니보다 어렸다. 진숙 언니는 영업왕 출신이다. 보험과 카드 영업을 했다. 언니는 영업에 수완이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진숙 언니는 “어느 순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데에 지쳤다”고 했다. 불확실한 수입도 문제였다. 성과가 좋은 달은 월급을 1000만원까지 받은 적도 있지만 어느 달은 100만원도 벌기 힘들었다. 그래서 진숙 언니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도 기꺼이 받아주는 콜센터 업계로 들어섰다. 정수기회사 콜센터, 은행 콜센터 등을 다녔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정수기회사는 고객 불만이 많았고, 은행은 상담원에게 점점 더 전문 지식을 요구했다. 진숙 언니는 조금이라도 덜 힘든 콜센터를 찾아 옮겨 다녔고 그렇게 이곳에 왔다. 미끄럼틀을 타듯 저임금 일터로 내려온 셈이다. “전이랑 비교하면 월급은 적지만 일은 확실히 편해.” 언니는 만족한 듯 말했다.
그랬던 진숙 언니도 한달 만에 그만뒀다. 진숙 언니는 “동료 상담원들이랑 친해져 봐야 한달만 지나면 거의 다 그만둘 테니 연락처 교환은 안 하겠다”며 누구에게도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진숙 언니가 왜 이곳을 그만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콜센터에 원서를 넣었지만 나이 때문에 이곳에 유일하게 합격했다는 언니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진숙 언니는 줄곧 맞벌이했다고 했으니, 또 다른 일터로 자리를 옮겼을 것이다. 콜센터인지, 아니면 언니가 잘했던 영업인지는 알 수 없었다.
■ 내 욕받이 값은 최저임금 콜센터 일은 힘들고 월급은 너무 짰다. ‘이 돈 벌자고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다.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230원 많았다. 최저시급 기준 주5일 하루 8시간씩 일하면 157만3770원를 받게 되는데, 여기 신입 상담원이 한달 만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57만4000원이었다. 4대 보험과 세금 등을 떼면 143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이 돈으로는 밥 사 먹기가 무서울 수밖에 없다. 콜센터 휴게실에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각각 두 대씩 있다. 냉장고에는 언니들이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로 꽉꽉 채워져 있고, 전자레인지는 늘 바쁘게 돌았다. 언니들은 냉동실에 얼려놓은 밥을 전자레인지로 돌리고, 냉장고에서 오이지, 무말랭이, 김 등을 꺼내 함께 먹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오거나, 컵라면에 날달걀을 넣고 전자레인지로 데웠다. 콜센터가 있는 건물 1층엔 5000원짜리 순두부찌개, 6000원짜리 순댓국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카페의 아메리카노는 1900원이었다. 50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커피까지 마시면 6900원. 한 시간 동안 설움을 견디며 전화를 받은 대가와 맞먹었다. 그래서 언니들은 콜센터 휴게실에서 밥을 먹고 콜센터에서 마련해준 공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콜센터 저임금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통계청의 서비스업 조사와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정책자료를 보면, 콜센터 상담원 상용종사자의 1인 평균 연간 급여액은 2014년 기준 2084만원이다. 2007년 1950만원에서 그다음 해 2151만원까지 올랐다가 이후 다시 지속해서 감소해 2014년 2084만원이 된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도 콜센터 임금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콜센터 종사자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회사도 낮은 급여 수준을 다소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콜센터에 지원할 때 본 채용공고에는 ‘월평균 190만/일 쉬움’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확한 급여를 알게 된 것은 5일간의 교육이 끝나던 3월2일이었다. 교육장 맨 앞 스크린에 월급표를 띄운 센터장은 숫자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입사 후 6개월까지는 이 금액(약 157만원)’을 받게 되고, 1년이 지나면 ‘이 금액(약 162만원)’을 받게 된다”고 레이저 포인터로 화면을 짚었다. “식대를 따로 주느냐”는 진숙 언니의 질문에 “포함된 금액”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둘러 이어진 ‘성과급’ 파트에선 센터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센터장은 “상담원의 콜 수와 콜 품질 평가에 따라 적게는 5만원, 많게는 3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조금만 열심히 해도 최소 5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전 150만원대 월급을 받는 상담원에게 30만원의 인센티브는 월급의 20%에 해당했다.
■ 1등이 되면 잘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센터장은 콜센터에서 3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상담원 200여명 가운데 단 한명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단 한명만이 ‘전화 지옥’의 실적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3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30만원을 손에 쥐려면 얼마나 전화를 받아야 할까. 회사에서 나눠준 성과표를 보니, 센터 상위권인 상담원의 시간당 콜 수는 14.2에 달했다. 기자의 거의 두배(7.5)였다.
다른 콜센터에서 성과급 제도를 경험해본 진숙 언니는 기자에게 “욕심내지 말라”고 했다. “돈 몇 푼 더 받겠다고 욕심부리면 나만 괴로워져. 화장실 안 가고 식사시간 줄여 전화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아? 기본급은 정해져 있으니까 딱 그만큼 일해서 그만큼만 가져간다고 생각해야지, 욕심부리면 병나.” 한 보험사 콜센터에서 반년 정도 일했다는 박인선 언니도 “그때 내 입사 동기가 센터에서 딱 두명이 받는 에스(S) 등급을 몇 번 받았거든.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니,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밥 먹는 시간 아껴 전화 받았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전화 스트레스를 하도 받아서 퇴근할 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대”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조언은 조언일 뿐이었다. ‘이왕 고생하는 거 좀더 고생하고 많이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입사 동기 미영 언니가 그랬다. 언니는 콜 수에 민감했다. 늘 자신의 콜 수와 동료의 콜 수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언니는 “오늘 유정씨가 나보다 한 콜 더 받았던데?”, “오늘 내가 졌어. 언니가 나보다 더 많이 받았어” 같은 농담을 하곤 했다. 미영 언니는 신입치고 나쁘지 않은 시간당 콜 수(10)였지만 상위권이 되기엔 한참 모자랐다.
미영 언니뿐 아니라 대부분 언니들은 전화를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애썼다. 전화를 끊고 처리해야 하는 후처리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고, 휴게실에서 밥을 허겁지겁 입에 넣은 뒤 다시 워크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전화가 들어오고, 끊으면 숨돌릴 틈 없이 다시 벨이 울리는 ‘전화 지옥’에 자리 잡기를 자처했다. 그렇게 버텨서 몇만원이라도 더 받으면 아이들 반찬이, 교복 브랜드가, 학원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버티다가 몸이나 마음이 아파서 더 견딜 수 없으면 떠났다. 미영 언니가 우울증으로 10년 일했던 홈쇼핑 콜센터를 그만두고 다른 콜센터를 찾은 것처럼, 진숙 언니가 은행 콜센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에 왔다가 다시 떠난 것처럼 말이다.
언니들은 그렇게 그만두고 나서도 “이 나이에 받아주는 곳이 없다”, “당장 취직해 돈 벌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다”면서 다른 콜센터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언니들이 떠난 자리는 또 다른 언니들이 채웠다. 기자에게 콜센터는 퇴근할 때까지 전화가 끊이지 않는 ‘전화 지옥’이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일자리를 찾는 언니들에게는 기꺼이 손을 내미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연재[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노동 orz
  • 1부 노동OTL 10년, 다시 찾은 제조업 현장
  • 2부 ‘샌드위치’ 노동자, 콜센터 상담원

청년 농부들의 주경야독

조현 2018. 05. 31
조회수 747 추천수 0

-공부 융합 씨앗 뿌려, ‘신세대 농부’  틔운다
충남 홍성군 오미마을 젊은협업농장

1농장-.JPG» 함께하면 농사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같은 또래들끼리 하면 더욱 그런다는 젊은협동조합 청년들. 정민철 농장 대표(윗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연구위원(윗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와 농장 식구들이 체험활동을 온 학생들과 함께 했다.

청년 10여명과 견학생들 어울려
4천평 빌려 쌈채소 비닐하우스 8

아침 6  시작해 오후 4 마치고 
강의실에 모여 다양한 강좌 
유기농·마을만들기·철학·여행 

농업전문대 선생이던 정민철 대표
농사는 현장이라는 생각으로 설립

수십명 한달에서 1 넘게 머물며 
공감하고상처 치유   모색
농사일과 마을살이 익히면 독립

인근 갓골은 활기찬 문화지대
도서관도 있고 협동조합 30여개 

2-.jpg» 매일 오후4시면 손을 털고 강좌를 듣는 청년들.

충남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2 오미마을엔 여느 농촌과는 달리 온통 청년들뿐이다. 8동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젊은협업농장 청년들 10명과 견학  학생들도 상추만큼이나 푸릇푸릇하다비닐하우스 속에서 어울려 일하는 청년들의 얼굴엔 찌든 기색이 없다친구들과  얘기  얘기 주고받고 농담하며 웃다 보면 언제 시간이 가는  모른다고 한다 어른들이  공동 노동조직인 두레를 만들고품앗이를 해서 ‘함께’ 일을 했는지  만하다.

 이들은 마을에서 각자 기거하면서 아침 6시면 이곳에  일을 시작한다아침은 건너뛰거나 간식으로 때우고 일하다  12시에 공동 식사를 한다다시 1시에 일을 재개하고 오후 4시가 되면 일을 마친다오후 4시면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때다마을 어르신들은 젊디나 젊은 것들이 ‘바짝 조여서’ 수확을  하지 않고 일찍 손을 턴다고 못마땅해한다.

농장1-.JPG 

그렇게 벌어 어떻게 사나” 눈치도
 그도 그럴 것이 젊은협업농장 4천평은 모두  마을 임응철 이장이 빌려준 것이다열명이 농사를 지어 쌈채소를 팔아 얻은 소득이 12천만원 정도다거기다 농촌 체험 프로그램  교육을 맡아 올린 수입 등을  합쳐도  소득은 14천만~15천만원에 불과하다점심값에 드는  2천만원에 임대료·운영비를 빼고 나면 1 미만의 인턴들은  50만원, 1년이 넘은 고참들은  100만원을 가져간다그러니 마을 어르신들은 “그렇게 벌어 어떻게   있겠느냐 “돈도 벌고 땅도 사려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해야   아니냐 채근한다

 그러나 이곳 청년들은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손을 씻고 강의실에 모인다강좌는 유기농업이나 마을 만들기 강좌뿐 아니라 글쓰기철학예술여행 강좌까지 다양하다홍성 일대는 귀촌자들이 많아 특별히 외부에서  들여 모시지 않아도  만큼 강사 인력이 풍부하다.

 2012  농장을 설립한 정민철 대표는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풀무학교의 전공부 교사였다전공부는 전문적인 농부를 길러내는 2년제 전문대학이다그런데 전공부 졸업생들이 실제 농사를 지으러 마을에 들어가면  적응하지 못했다그래서 농사는 학교가 아니라 현장 마을 안에 들어가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설립한  젊은협업농장이다따라서 농장이긴 하지만 교육을 목표로 한다어느 정도 농사일과 마을살이를 익히면 이곳을 떠나 독립해 마을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농장인 셈이다.  

 5--.jpg 7--.jpg 8--.JPG 공부--.jpg

 돈벌이 외에 다양한 욕구 충족돼야
  대표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온다고 농사일만 하라는 법은 없다 생각한다교사 출신인 자신이 교육과 농업을 결합했듯이 ‘아이티’(IT) 업계에 종사했으면 아이티와 농업을 연계하고염색을  사람은 염색 작물을 키우고장사에 소질이 있으면 농업과 경영을 결합한 융합 지점을 찾아 일을   있다는 것이다이곳 청년들이 일만 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하는 것은 ‘새로운 농부 길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농장에서  푼도 받아 가지 않으면서 이런 독특한 실험을 하는  대표야말로 새로운 인간형이 아닐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48)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홍성 일대 농업을 연구해오다 안식월을 맞아 3개월째  농장에 머물고 있다그는 “돈만   있으면 젊은이들이 농촌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청년들에겐 돈벌이 외에도 문화와 교육과 의료  삶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곳처럼 청년들이 농사와 마을을 배우며 농촌 문화를 창출해갈 새로운 농민을 길러내는 일이 필요하다 설명했다.

 농장에서 멀지 않은 풀무농고와 전공부가 있는 홍동면 갓골은 농촌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화지대다풀무농고 설립자인 이찬갑 선생의 호를  밝맑도서관이 있고마을활력소도 있다또한 흙건축얼렁뚱땅조합을 비롯해 만홧가게술집  협동조합만 30여개가 활동하고 있다 단위임에도 의료생협에 의사까지 있다풀무농고 출신으로  농장 시작  합류한 정영환(36) 스태프는 집에서 따로 농사를 짓는 부인과 5, 8 아이와 부모님과 귀농해 함께 살고 있다그는 “농촌 현실이 어렵고농장에서 청년들이 모두 나가 2주 동안 혼자 일한 적도 있을 만큼 녹록지 않지만협업농장도 농촌도 떠날 생각이 없다 말했다또 그는 “시골이지만 교육과 문화를 누리며 아이를 키우기 좋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 했다.

주형로정영환-.JPG» 젊은협동농장 정영환 스태프가 홍성군 홍농 문당리 이장이나 정농회 회장인 주형로 선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밝맑도서관--.JPG 활력발전소-.JPG 
갓골에서 지역활동의 촉매 구실을 하는 밝맑도서관(왼쪽)과 마을활력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일만 하면 짐승
 지금까지  농장에서 한달 이상 머문 청년들은 모두 35명이었다. 1 이상 머문 이도 16명이었다이들은 이곳에서 앞으로 살아갈 길을 고민하면서 주경야독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났다이곳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받고 찌든 청년들이 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또래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이아무개(35)씨는 영업실적 때문에 스트레스에 힘들어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12 이곳에 왔다그는 “사람에게 치여 점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이곳에서 같이 일하니 힘도  들고 재미가 있다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박아무개(25)씨는 대학 졸업 뒤 6개월간 방황하다가 취업을 포기하고 같은  이곳에 왔다그는 “학교만 다니며 머리만 쓰고 살던 것과 180 다른 삶이지만  벌더라도  치이는 시골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말했다.

 유아무개(15)군은 홈스쿨로 중학까지 마쳤는데사람이 두려워 고교 진학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들과 함께 지내보면 어떠냐 주위의 권유로 이곳에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함께 어울리다 보니 학교도   있을  같고친구가 필요한 것도 알았다 “학교를 마친 뒤엔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다 말했다.

 함석헌의 스승 유영모는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되고일만 하면 짐승이 된다 ‘일학병진 권했다일하고 공부하면서 청년들이 치유되고 깨어나고 있다이렇게 전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농부들이 자라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더 많이 아픈가?

[6.13선거, '건강불평등'을 말하다] 건강불평등, 무엇이 문제일까?
2018.06.01 09:34:34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613 지방선거에서 건강불평등이 주요한 정책이슈로 다루어지기를 희망하며 건강불평등 정책의제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시민들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이해를 돕고,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네 종류의 카드뉴스를 제작하였습니다. 각각의 카드뉴스 주제는 "건강불평등, 무엇이 문제일까", "대한민국 건강불평등 현주소", "건강불평등 어떻게 해결할까", "지방자치시대의 건강불평등, 지방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나?"입니다.

6월 13일 지방선거일 전까지 한국건강형평성학회는 건강세상네트워크와 함께 각 주제별 카드뉴스 내용에 대한 간략한 기사를 게재합니다. 기사는 한국건강형평성학회에서 작성하며, 카드뉴스 주제별로 네 차례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소득수준에 따른 기대수명의 차이, 불평등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3월 2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국민을 소득 수준별로 5개 집단으로 나누어 각 집단별로 기대수명을 구했을 때, 가장 소득이 높은 집단과 가장 소득이 낮은 집단 간의 기대수명 차이는 6.6년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6.6년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된 것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충격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을 겁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담배 안피고, 술 적게 마시고, 꼬박꼬박 건강검진 받고, 조금만 아파도 재깍재깍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데 가난한 사람들보다 오래 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한국건강형평성학회에는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거냐고.  

실제로 이 발표 자료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들 중에 저런 반응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되묻고 싶습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 먹지 않고, 규칙적인 운동을 안하고, 담배를 끊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고, 아파도 제때 병원에 가지 않는 걸까요, 혹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건강수준이 단지 생활 습관과 의료 서비스 이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건강불평등은 피할 수 있고, 불필요하며, 불공정한 차이 

건강불평등은 건강수준 차이가 회피가능한 불필요한 차이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에서 시작합니다. 사소한 질병에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강 결과들에서 인구집단들 간에 건강수준 차이가 발생합니다. 개중에는 피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어떤 차이들은 사회적 개입을 통해 회피가 가능합니다. 

열대 지방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보다 말라리아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을 불평등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열대지방에 말라리아 모기가 더 많으니까요. 그러나 간단한 모기장을 설치할 돈이 없어서 예방을 못한다면,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면 불공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건강불평등은 개인 간의 건강수준이 단순히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이 차이는 피할 수 있고, 불필요하며, 불공정한 차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건강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인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뿐 아니라 소득, 주거환경, 근로환경, 사회적 연결망 같은 사회적 요인도 중요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개인의 생활 습관과 건강의 관계에 집중하느라 정부가 상수도 관리를 통해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각종 규제를 시행하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안전한 의약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산업을 통제하고, 감염병 유행을 막기 위해 질병 감시 체계를 가동하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간과하기도 합니다.  

건강불평등은 생물학적 요인부터 사회구조적 요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자원과 건강에 해를 미치는 요인들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건강불평등이 생겨납니다.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위험에 대한 노출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노출로 인한 취약성에서도 차이가 발생합니다. 개인의 선택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자신이 위치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이 상대적으로 더 나쁜 것을 우연이나 개인의 선택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흡연을 시작하는 계기, 폭음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 질병에 걸렸을 때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 유형 등을 고려할 때, 즉 건강과 관련된 행동이 사회적인 배경을 갖는다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설명이 가능합니다.  
  
건강은 권리입니다 

건강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2조는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하고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건강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야마티야 센의 표현대로 “건강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잠재력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건강불평등의 발생은 인권과 인간 잠재력의 근원으로서 건강이 갖는 가치를 훼손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건강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고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회가 불평등한 건강을 낳습니다. 건강불평등은 사회불평등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mendrami@pressian.com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