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6일 금요일

[분석과전망] 8월위기와 향후 한반도 정세전망

김정은위원장 8월 위기시 전쟁까지도 염두
[분석과전망] 8월위기와 향후 한반도 정세전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11/07 [12: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5년 8.25남북고위급접촉 공동보도문 발표 직후 28일 북은 관련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개최했다고 보도하였다.     © 자주시보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위원장

한반도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관련 정부 부처 관리들에게 있어 정세를 조급하게 보거나 안일하게 보는 편향들이 없지 않다. 한반도 정세는 결국 북과의 의지의 대결, 힘의 대결을 본질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힘과 의지를 객관적으로 살펴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는 것이 정세분석가들의 본분이라고 본다.

최근 북의 의지 부분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북의 당창건70돌최근 북의 의지 부분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되었다 기념행사 당시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조국통일연구원 림용철 부원장이 진행했던 남북관계에 관한 정세해설 강연 영상을 민족TV에서 최근 인터넷에 소개하였다.

강연에서는 8월 의문의 휴전선 지뢰폭발사건은 북이 결코 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제삼아 대북비방방송을 재개하는 등 남측에서 심각하게 도발을 해왔기에 북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북측이 생각하는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 2015년 8월 20일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열고 휴전선지뢰폭발사건으로 촉발된 전쟁위기에 대한 단호한 대응책을 논의하였다.     © 자주시보

8월 위기 정국에 대한 북의 의지

강연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면전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암시도 내놓았다. 북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자 우리의 예비군격에 해당하는 노농적위대, 청년근위대 등에 규정된 무기와 탄약까지도 전국적으로 일제히 지급되었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라의 작은 것도 한없이 소중하게만 느껴진다.”며 어떻게든지 전쟁을 막아내자며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외교관들을 총동원하여 국제사회 여론도 불러일으키고 미국과 국방부에서 함부로 오판할 수 없게 단호한 군사적 조치들을 취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쟁을 막는데서만 멈추지 않고 조성된 극단적인 정세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남북관계 개선의 전환적 국면까지 열어낼 결심으로 미국이 유엔정전위원회 차원의 대화를 제기했을 때 “미국은 끼어들지 말라, 이것 남과 북의 문제다.”라며 미국의 제안을 그대로 무시해버리고 48시간 최후통첩시간을 통해 남과 북의 대화의 물꼬를 터 결국 8.25남북공동보도문을 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림용철 부원장은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배경을 미국이 을지훈련을 위해 한국에 와 있는 조건이라 북이 절대로 전쟁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국방부의 오판이 대북심리전 방송까지 재개하는 무모한 단계까지 가게 했고 북이 준전시상태 초강경 대응으로 나오자 결국 진짜 전쟁이 터질 것을 우려한 미국이 남측정부를 압박하여 8.25합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미국은 남측이 남북관계 개선에까지 합의를 한 것에 대해서는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8.25합의가 나오자마자 게릴라식 작전으로 북의 지휘부를 타격하는 참수작전이요 뭐요 하며 심히 북을 자극하고 있으며 군사훈련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오로지 북측의 시각이기는 하다. 그래서 그의 입장과 향후 움직임을 전망하는데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특히 ‘눈에 띄지 않던 나라의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도 소중하게 느껴졌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발언은 전쟁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감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심리전 확성기 방송을 48시간 안에 중단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찔하다. 남북대화에 응하고 8.25합의를 이끌어낸 남측 정부의 판단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높이 평가하고 싶다.

림용철 부원장은 강연 말미에 가서 남북관계의 전망을 그리 밝게 보지 않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체질적 북에 대한 적대의식, 고질적인 외세의존 정책, 원래 의심성이 많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을 믿지 못하고 있는 점 등 때문에 8.25 이후 대북 적대정책이 계속 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였다.

또 북이 대화판을 깨지 못할 것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오판도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8.25를 통해 북의 기본목적이 대화에 있었구나하고 잘 못 생각하고 있다. 연초부터 우리 김정은 원수님은 남북정상회담도 못할 것 없다며 남북대화를 촉구하였으며 압박도 가했다가 어르고 달래는 등 실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남이 응하지 않자, 북이 정세를 극단적으로 몰아갔다가 타협하는 방법으로 남북대화의 길을 열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고 8.25를 분석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남을 국제적인 대북압박에서 떼어내서 그 압박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북이 남측과 대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나 보구나라고 어리석게 생각하고 있다.
거기다가 북이 올해는 당창건 70돌로 경축스런 분위기에서 보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북이 당분간은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북에 대한 자극과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진단하면서 림용철 부원장은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 북의 조국통일연구원 림용철 부원장의 해외동포대상 강연 모습     © 자주시보


북의 전망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든지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계속되는 남측의 도발에도 참을 대로 참아왔다. 앞으로도 우리는 좀 더 참아보자는 것이다. 
앞으로도 북남관계를 우리민족끼리정신으로 자주적으로 개척하기 위해 주동적으로 더 노력해가겠는데 문제는 남쪽이다. 남쪽이 동족보다 외세의존에 계속 선다면 북남관계는 파국상태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에 대한 인권문제, 핵문제를 거론하면서 대북압박을 가한다면 결국 남북관계는 다시 파산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강연을 할 때는 한미정상회담 전이었다. 그의 우려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북의 인권문제 핵문제를 거론하여 이후 북의 강력한 발발을 샀다.
그럼에도 남북노동자 축구대회와 이산가족상봉행사는 약속한 대로 추진되었다. 아직은 북도 지켜보자는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남측이 북을 자극한다면 북에서도 강경대응으로 나설 우려가 없지 않다.

림용철 부원장이 강연에서 언급했던 강경대응은 핵시험이었다. 특히 이는 이미 계획된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 남측과 미국에게 시비를 걸고 또 제재와 압박을 가해온다면 핵시험으로 응대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여 사실상 한반도는 다시 긴장의 골짜기로 굴러가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내년엔 총선이 있고 그 다음해엔 대선이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남북관계가 악화되어야 종북몰이 등으로 통해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천안함 사건 때처럼 가끔 그 역풍이 불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반도 남북위기는 보수세력 집권에 도움이 되었다.
하기에 총선과 대선을 계기로 한반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북은 누가 집권을 하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자신들의 계획이 있고 짜놓은 조국통일 시간표가 있는 것 같다. 그 계획대로 밀고 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휴전선 지뢰폭발사건과 같은 돌발상황이 발생한다면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점을 8.25국면 림용철 부원장 강연내용을 통해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돌발상황만 없다면 북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북의 지방 곳곳까지 강성대국 이상사회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 지난 9월 중미정상회담 장면, 시진핑 주석은 태평양은 넒어서 중국이 미국과 함께 이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등 강경한 중국의 의지를 가감없이 피력하였다.     © 자주시보

한반도 문제의 바른 해법

김명철 소장이나 여러 정세분석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그것을 이루는 데까지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본격적이고 주동적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대미대결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북은 이미 세계적인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무기, 미국이 북과 대타협이건 전쟁이건 양단간에 하나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할 핵억제력 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아직 공개를 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을 공개하여 미국의 봉쇄망을 깨뜨리고 세계와 북이 전면적으로 교류하는 시대를 만든다고 해도 북 전국 곳곳을 전 세계에 내놓고 이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미국의 패권이 무너져도 국제사회가 큰 혼란을 겪지 않게 할 세계적 차원의 준비의 시간도 아직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면 북은 북 주민들도 모르고 있다는 무진막강한 힘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그 자체로 미국의 패권이 무너질 것이며 그것을 막자면 미국은 북과 전쟁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북과 교류를 위해 줄을 서게 될 것이며 그 자체로 대북봉쇄는 풀리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이 있다고만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북에서 늘 강조해온 무혈승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 전에 미국이 북을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바로 전면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북이 늘 강조해왔던 내용이며 이번 8월 지뢰폭발 전쟁 위기상황에서도 확인되었던 부분이다.

결국 미국은 북과의 대화를 서두르는 것만이 가장 좋은 답이라고 본다. 조금이라도 빨리 북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것만이 미국의 체면을 그래도 좀 살리면서 한반도 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미국의 앞날을 건설적으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방도도 찾게 될 것이다. 북과 전쟁을 하거나 북이 전면적인 공세를 펴는 과정에 굴복하여 대화마당에 나선다면 미국의 체면이 얼마나 처참하게 구겨질 것인가.

지금도 미국의 권위가 많이 실추되었다. 미국의 혈맹이라던 유럽도 미국 말을 잘 듣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내놓고 미국에게 덤비고 있다. 여기서 더 미국의 권위가 실추된다는 것은 그 앞날이 끔찍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뭔가. 

[함께사는길] 세계 자연재난지역 아동들의 현실

아이는 내게 물 한 컵을 건넸다
[함께사는길] 세계 자연재난지역 아동들의 현실



방글라데시, 아이티, 에티오피아, 캄보디아 그리고 필리핀의 공통점이 뭘까? 기후변화, 물 부족 혹은 재난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 범죄에서는 가해자(원인을 제공한 자)와 피해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막대한 소비와 탄소배출은 도시에서 이루어지지만 정작 자연과 격리되어 사는 도시의 사람들은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는 무감각하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고 전기나 자동차를 사용할 일도 별로 없을 만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 그리고 재난 지역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여성이나 아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극심한 물 부족이나 지진 같은 재난 지역에서 물을 긷는 것은 여성이나 아이들 몫이다. 미래를 위해 학업에 투자할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가벼운 질병에 걸리더라도 몇십 센트의 약을 구입하지 못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재난은 아이들의 교육, 보건 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빈곤의 나락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 에디오피아. ⓒ강제욱

▲ 에디오피아. ⓒ강제욱

▲ 방글라데시. ⓒ강제욱

에티오피아 같은 극심한 물 부족 국가의 아이들은 몇 시간을 걸어 물을 길어 오거나, 혹은 구걸이 고사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아이티 같은 대지진 피해지역의 조금 큰 아이들은 무너진 건물의 더미에서 전선을 주워 모아 전선 피복을 태워 얻은 구리를 고물상에 팔기도 한다.

기온 상승으로 뎅기열이나 말라리아 같은 매개성 질병이 캄보디아, 필리핀 그리고 몽골에서 급격하게 많아지고 있다. 캄보디아의 시골에서는 모기장이 이 아이들의 목숨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물을 마시고 잠을 자는 아주 일상적인 순간도 전쟁터처럼 위험천만한 시간이다. 비위생적인 하천 근처에 주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슈퍼 태풍 욜란다가 지나간 필리핀 타클로반에서는 모기장도 사치다. 하천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악취가 진동한다. 창문도 벽도 태풍으로 잃었다. 대충 주어온 나뭇조각이나 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는 정도다.

재난 경험이 없는 지역의 도시에서 살던 어른이라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이 열악한 환경에서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상황을 초월한다. 아이들은 꿈을 꾸기 때문이다. 폐허 위에서도 아이들은 생존을 배우고 이방인에게 물 한 컵을 건네는 여유가 있다. 아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빛이 나는 보석들이다. 그러기에 어른의 스승이다.

▲ 캄보디아. ⓒ강제욱

▲ 아이티. ⓒ강제욱

▲ 아이티. ⓒ강제욱

▲ 아이티. ⓒ강제욱

▲ 필리핀. ⓒ강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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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회담 예비접촉 3차례 제의...북, 사실상 거부


당국자, “남북관계개선 계기 이어가고 싶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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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6  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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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25합의 이후 정부가 당국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접촉을 세 차례 제의했으나 북측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6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지난달 30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북측에 예비접촉을 제의하는 전통문을 보내려고 했으나 북측은 ‘아직 받으라는 이야기가 없다’며 수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 9월 21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당국회담 개최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10월 2일 예비접촉을 갖자는 제의를 했으며, 이에 대한 북측의 부정적 반응을 확인한 후 24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날짜를 명시하지 않고 재차 예비접촉을 갖자는 촉구 전통문을 보냈으나 북측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 8.25 공동보도문 1항에 합의된 당국회담의 개최를 위해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북측에 예비접촉을 제의했으나 북측은 첫 번째 제의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이후 제의에 대해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수령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지난 9월 21일 정부의 제의에 대해 당시 북측은 이틀 후인 9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남북고위당국자 접촉합의가 성실히 이행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예비접촉 제의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북측은 또한 “대북전단 살포, 북한인권법 제정 논의, 북한 도발설 확산 등과 관련해서 통일부 당국자들이 남북대결을 선동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며, “통일부는 공동보도문의 이행에 역행하는 불미스런 행위를 하지 말고 책임적으로 행동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정부는 9월 24일 판문점을 통해 8.25 남북고위당국자접촉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측이 심사숙고해서 예비접촉 제의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했으나 지금까지 북측의 답이 없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9월 23일 북측의 반응으로 봤을 때 10월 2일 예비접촉은 조금 어렵겠구나 하는 판단이 들어서 24일 다시 전통문을 보내 추후에라도 호응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며, 이때는 예비 접촉일을 2일로 명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서 9월 정부의 예비접촉 제의에 대한 북측의 거듭된 부정적 반응이 뒤늦게 알려진 것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와 계기를 유지하려는 정부 당국의 보도자제 요청을 통일부 기자단이 수용했다가 북측의 당 창건 70돌(10.10.) 및 10월 하순에 개최된 이산가족상봉행사가 모두 끝난 상황에서 보도자제가 의미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다른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관계의 모멘텀을 잘 이어가는 차원에서 엠바고(보조자제)가 좀더 유지되기를 바란다”며, 당국회담 개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북측에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남북간 현안은 당국회담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며 “북측이 8.25 고위당국자 접촉시 합의사항에 대해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당국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제의를 수용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앞서 정부의 예비접촉 제의는 모두 통일부 장관 명의로 북측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앞으로 보냈으며, 북측은 지난 9월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명의로 통일부 앞으로 보내왔다.
9월 예비접촉 제의에는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을 대표로 총 3명의 대표가 나간다는 내용 외에 회담 의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는데, 당국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의 성격상 회담 의제 등은 다루지 않고 당국회담에 누가 나올 것인지, 일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실무적인 논의가 이뤄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당국회담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는 당국회담이 개최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며, “다만, 아직까지 남북 간에 합의가 되거나 진전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당국회담과 관련해 남북간에 서로 제안이 오고 간 내용을 묻는 질문이 이어지자 “‘지금 노력하고 있는 단계이다’라고만 말씀드리고 적절한 시간에 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우성 "보름 만에 10kg 빠져, 목숨 끊으려 했다"


15.11.07 11:00l최종 업데이트 15.11.07 11:0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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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종호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조작으로 간첩 혐의를 받았던 유우성씨가 지난 10월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0월 29일 대법원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고와 자신이 중국 국적을 가진 채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감추고 남한 정부의 정착지원금을 받은 혐의 등(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추징금 2565여만 원)에 대한 유씨의 상고 모두 기각했다.

유씨가 대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여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소감과 함께 국정원 수사관에게 체포된 2013년 1월 이후, 2년 9개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들어보았다. 다음은 유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사과는커녕 강제추방을 검토한다고..."

- 지난달 29일 간첩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셨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없던 일을 있던 일처럼 만들어서 괴롭혔던 시간이 3년이잖아요. 너무 오래 걸려서 대법원 판결 순간에 옛날에 아팠던 일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요.

사실 대법원 판결이 나긴 했지만, 형사재판이 끝난 건 아닙니다.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조작을 밝혀낸 것에 대한 보복으로, 검찰이 2014년 5월 추가사건으로 또다시 기소해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형사재판이 안 끝나고 남아 있어서 마냥 기뻐할 수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본전'인 거잖아요. 1심과 2심 시간이 너무 힘들었어요. 제 동생을 6개월 동안 불법으로 독방에 가두고 폭행과 고문을 한 부분도 대법원이 다 인정했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그동안 항소심을 하면서 간첩으로 조작되었던 분들을 만나봤어요. 저의 경우 짧은 시간에 간첩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졌잖아요. 그런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몇십 년씩 교도소에서 살고 나오고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잖아요.

그분들의 억울한 심정을 저에게 빗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간첩 조작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는 끊이지 않고 '이슈몰이'처럼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 정부가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법안이나 환경을 만들기 바라는 마음은 그분들과 마찬가지예요. 정부가 더 이상은 재일동포 또는 탈북자들 등의 사회 약자를 상대로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그래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가정보원의 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 등이 공개되면서 탈북자의 실상이 알려진 건 성과인 듯해요. 
"맞아요. 그전까진 국민이 합신센터에 대해 몰랐죠. 영장도 없이 사람을 구금하고 독방에 가두는 건 몰랐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합신센터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어떤 방식으로 구금하고 간첩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낱낱이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 판결문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대법원에서 조작된 부분과 일련의 있었던 사건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있는 사실 그대로 판결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매우 존경을 표합니다." 

- 판결 직후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시던데 혹시 검찰이나 국정원에서 의견이 나온 게 있나요? 
"전혀 사과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오히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판결 당일 법무부가 강제추방을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간첩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밖에 못 봤는데, 내가 간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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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 이종호
- 2013년 1월부터라서 2년 9개월 정도 걸렸어요. 

"저 혼자 큰 사건을 밝혀낼 수 있었던 건 아니고 3년 동안 무료로 변호한 민변의 천낙붕, 장경욱, 양승봉, 김용민, 김진형, 김유정 변호사님 덕분이에요. 이분들은 자기 시간을 쪼개가면서 3년 동안 무료로 저를 변호해 주셨어요. 증거 찾으러 중국도 다녀오시고... 그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이분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종교인들도 계셨고, 특히 많은 기자님들이 정확한 사실을 보도해준 덕분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게 돼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혔음에도 그 누구로부터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한테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보복 재기소 및 괴롭힘이었습니다. 2007~2010년 사이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리한 사건을 재기소했습니다. 3년 내내 형사 재판 때문에 아르바이트 한번 제대로 못했는데 재기소 사건 1심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았어요. 그리고 29일에 난 대법원 판결에서도 추징금 약 2500만 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조작 간첩사건 피해자로서 현재 제게 남은 건 빚과 추가 보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얼마 전에 결혼했고,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강제추방 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일부 보수언론에서 들립니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을 하기는커녕 얼마나 더 괴롭히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빨리 형사 재판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요. 
"제가 1심 때는 8개월 동안 구치소 독방에서 살았어요. 조사받는 과정이 너무 억울해서, 심장 쇼크로 쓰러져서 실려 나가기도 했어요. 죽을 고비도 많이 넘었지만, 변호사님들과 사회에 계신 종교인들이 면회를 많이 와주셨어요. 또 편지도 수백 통 받았고요.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와 동생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지금도 국정원 얘기만 들으면 너무 힘들어하세요. 아버지는 3년 내내 마음고생이 심하셔서 종양까지 생겼고, 얼마 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옛날보다 더 많이 늙으셨고... 너무 가슴 아픈 부분인데 이젠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인 것 같아요." 

- 2004년 탈북할 때는 이런 일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처음 체포될 때 기분이 어땠나요? 
"낮엔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었고 밤에는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공부해서 남북한 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작은 꿈을 갖고 사회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정원 직원이 저희집에 와서, 그 자리에서 특수간첩죄 혐의가 있다며 가택 수색을 하고 저를 체포해갔거든요. 

국정원에 조사받으러 들어갔을 때는 제가 변호사님들도 못 만났어요. 변호사를 불러 달라고 해도 국선 변호사들은 국정원이 무서워서 안 왔어요. 10일 동안 저 혼자 조사를 받았어요, 밤에 울며 잠도 못 자고... 그때 너무 아팠던 심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제 몸무게가 15일 만에 10kg 정도 빠졌어요. 

밥은 물론 물도 안 마셨어요. 입은 트고 눈은 충혈됐죠.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른 채 들어갔잖아요. 간첩이라는 건 드라마나 영화로밖에 못 봤는데 하루아침에 간첩이라고 몰아가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수십 번 했어요. 

목숨을 끊으면 편해질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죽으면 몸은 편할 수 있는데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억울하게 간첩죄를 쓰고 죽은 사람으로만 기억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악착같이 이 악물고 수사기관에서 버텼어요. 제가 검찰과 국정원 합쳐서 50일 동안 수사를 받았거든요. 동생과 대질시켜 달라는 제 요청은 하나도 안 들어주고...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간첩으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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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가 2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이영광 시민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종호

의사 신분 포기하고 탈북,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아

- 탈북한다고 대한민국을 꼭 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에 온 걸 후회했을 법도 한데 어때요?
"제가 북한에서 의학 공부를 했어요.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며 의학을 더 많이 배우고자 한국을 오게 됐어요. 북한에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게 싫어서 한국까지 왔는데, 제가 이런 일을 당하면서 '한국의 인권'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여긴 언론의 자유가 있긴 한데 언론의 자유라는 게 왜곡돼 있어요. 검찰에서 뿌리는 내용이 진짜인 것처럼 보도가 될 때 너무 힘들어서, 과연 목숨 걸고 한국에 온 게 잘한 건가란 고민을 했어요. 

그러나 지금 후회하진 않아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저를 변호했던 김자연씨와 결혼도 하게 됐고, 한국엔 나쁜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고 정의로운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졌고 사회에서 당당히 살고 있어요." 

- 의학 공부 때문에 한국에 오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유학인데, 그러면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제가 북한에서 한글로 초, 중, 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합니다(웃음). 한국에 와서 의대를 못 간 것도 영어시험을 통과 못해서예요. 전 한국은 한글로 시험 보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2007년 연세대 중문과에 입학해서 2011년에 졸업했고 탈북자 1호로 서울시 공무원이 됐죠. 그런데 '1호'가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사건에 휘말릴 줄은 몰랐죠." 

- 북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북한 사람들은 한국이 잘산다는 걸 TV나 라디오를 통해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을 동경하는 사람도 많아요. 북한 언론을 통해선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나가고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안 믿어요." 

- 탈북자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힘들 것 같은데. 
"한국에 사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북한에선 의학 공부를 해서 의사였지만 한국은 그런 부분을 인정 안 해줘서 막노동을 했어요. 그렇게 돈을 모아 학원에 다니면서 의대 준비를 했어요. 결국 의대를 못 갔지만, 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저같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덕에, 이런 엄청난 사건을 당하고서도 오늘 인터뷰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든 부분은 있지만, 좋은 분들이 계셔서 꿋꿋이 버티며 살고 있어요. 탈북자들은 한국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거나 정착금을 날리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정착금을 날렸고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며 배우는 거 같아요." 

- 본의 아니게 유명인이 되셨는데. 
"제가 유명인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고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유명해지게 됐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재북화교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추방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4대째 북한에서 살았어요.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다 돌아가셨거든요. 

저희 조상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오긴 했지만 한반도에 저희 조상님들 피가 묻혀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한반도를 더 사랑하게 됐고 뼈를 묻으려고 한국까지 왔어요. 언론에선 여려 안 좋은 얘기를 하지만 저에겐 저를 지켜줄 좋은 분들과 가족이 있어요. 굳건하게 대한민국에서 좋은 일 하며 사는 게 꿈이죠."

- 만약 통일된다면 어딜 가장 가고 싶어요?
"고향이죠. 회령이에요. 고향엔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있어요. 그들도 보고 싶고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향기도 느끼고 싶고, 한국의 선진 기술을 고향에 가서 나눠주고도 싶어요. 언젠가는 통일이 돼서 자동차로 고향을 방문할 날이 올 것으로 믿어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겪은 일처럼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어지려면 많은 분이 억울한 사람들에 대해 귀를 기울여 주셔야 합니다. 한 명의 목소리는 호락호락하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면, 결코 국가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제 사건을 응원해 주시고 관심을 두신 분들이 계셨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좋은 일 하면서 살게요. 그리고 다 같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게요." 
기사 관련 사진
▲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유씨 뒤의 사진은 14년 4월 무죄판결을 받기전 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 이종호


○ 편집ㅣ박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