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8일 월요일

극우의 본질은 반민과 매국

 

민족적 특성이 정체성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정호일  | 등록:2025-07-29 08:18:10 | 최종:2025-07-29 07:57:22


극우의 본질은 반민과 매국

전한길의 국민의힘 입당으로 극우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불붙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극우를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극우는 사실상 반국가 세력이니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까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한길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사실상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철두철미 반민적이고 매국적인 주장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한길은 중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대거 개입해 부정선거가 이뤄지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런 일이 이뤄질 수 없다고 밝히고 있는데도 그것을 믿지 않고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계속 자기주장만 되풀이합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자면 기본적으로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것 자체를 부정해 버리니 사회가 합리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근원을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주장에 그치지 않고 자기 세력을 모아 직접적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으니 바로 이것이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전한길은 한미동맹만이 한국 사회를 구원해 줄 것처럼 믿고서는 자기 뒤에는 미국이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한국보다는 미국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것은 상식인데, 어떻게 한국사를 강의했다는 자가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외면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민의 생명과 재산,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주권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래서 미국과의 불평등한 협정과 조약으로 인해 사실상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면 이를 고치는 것이 당연할 것인데, 어떻게 이를 방해하면서 한미동맹이라는 미명하게 계속 미국의 식민 지배를 계속 받아야 한다고 강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민적이고 매국노적 주장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더욱이 전한길은 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윤석열의 내란 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윤석열의 법적 처벌을 방해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윤석열이 민의 충복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민을 짓밟으면서 군림해야 하는 존재라도 된다는 것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반민적, 반헌법적,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독재 정치의 찬양자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극우의 입장이 한국 사회에서 감히 주장되는 이유와 배경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식민지 같은 나라에서는 등장하지 않으리라고 여겨졌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니고 한국과 같은 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이유와 배경이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이를 정확히 알아야만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2차 세계 대전까지만 해도 일명 극우세력은 몇몇 소수 국가에 불과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였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에 극우세력은 점차 확산되었으며, 심지어 극우의 기치를 내건 세력이 국가 권력까지도 장악하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그 세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사가 자유와 평등을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기 위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시대적 높이로 발전하고 있는 단계에서 역사의 반동 세력이 최후 발악하고자 극우의 기치를 들고 가로막고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선언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 자체를 가지고 탄압하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인류사의 발전에서 큰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을 누리려면 인간 외부 조건의 문제도 풀어야 해결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와 평등은 그저 형식적인 선언에 그쳤습니다.

형식적인 선언에 그쳤다는 것은 사실상 자유와 평등이 무참히 유린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유와 평등이 선언되었음에도 여성과 노동자는 처음에 투표권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에서 확인됩니다. 이렇게 자유와 평등을 유린하면서 자본주의적 억압적 질서를 정당화하자면 나라와 민족적 차원에서의 지배와 억압 질서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오는 것은 주권의 행사이고, 그래서 이 부분이 가장 우선해서 일치되는 부분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왜 제국주의 세력이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하는 길로 나아가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일반적인 모습인데, 중요한 것은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식민지화하는 길로 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약소국들을 침략하여 분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발 국가가 제국주의 길로 가는 방법은 단 하나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식민지를 뺏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책은 철저히 대외 국가와의 관계에서 침략해서 싸워 이겨야 한다는 정책을 극악하게 내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내부 정책도 이와 연계되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도 인정하지 않고 유린하는 정책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다른 제국주의 세력과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대외 침략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애국심을 도용하는 길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이런 파시즘과 군국주의 정책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반인륜적이고 극악한 침략 정책에 대항하여 반파시즘 연합전선과 민족해방전선이 형성됨으로써 이들의 극악한 대외 침략 책동은 파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로써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도 주권은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은 형식적으로만 인정되고 실질적으로 누리고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면 자유와 평등을 인정받지 못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기 위한 투쟁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영역이 제 방면에서 더욱 확장되어 간 것은 이를 반영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도 형식적인 독립을 인정받고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식민지 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외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군사독재 정치를 행하는 세력을 청산하면서 민주화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누리기 위한 운동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쟁이 세계사적으로 벌어진 가운데 이제 자유와 평등의 인정을 더는 부정할 수 없는 단계로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제국주의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미 제국주의는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계기로 세계유일패권을 행사하고자 획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라는 장벽조차도 무력화하면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수탈하는 체계를 구축하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세계적 자본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화 정책이었습니다.

미국이 세계유일패권을 실현하기 위한 세계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억압적 지배 체계가 구축된 국제카르텔이 형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세계유일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세계제국주의 세력을 꼭대기로 하여, 그다음에 미국의 유일패권을 인정하는 속에서의 제국주의적 수탈과 약탈을 추진하려는 제국주의 세력, 그리고 세계유일패권과 제국주의 수탈과 약탈을 허용하는 속에서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매국 세력의 카르텔이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체계로 연관되어 수립된 것입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국제카르텔이 형성되면 언뜻 보았을 때 세계 경제가 잘 돌아갈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세계유일패권을 형성하기 위한 국제카르텔이니만큼 그 기생성과 반동성이 세계적 차원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 경제 질서의 왜곡이고 빈부격차의 극대화입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경제 질서가 왜곡되었다는 것은 국제카르텔 체계에 맞는 방식으로 경제 질서가 수립되어 국내 경제가 망가진다는 것에서 드러납니다. 원래 미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어떤 국가보다도 자립적인 경제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유일패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국제카르텔을 형성하다 보니 제조업은 거의 붕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왔고, 한국에서도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등 몇몇 특화된 부분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에서 확인됩니다.

물론 이렇게 특화된 부분으로 발전되었다고 해도 그렇게 벌어들인 자본을 가지고 사회에 골고루 나눠지도록 분배하고, 또 자국에서 붕괴되어 가는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문제는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국제카르텔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그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일 터인데, 그에 반한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빈익빈 부익부의 극대화입니다. 그것도 세계적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국내적 차원에서도 동시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미국이 세계화 정책을 펴면서 지난날의 그 어떤 시기보다도 세계적 차원에서나 국내적 차원에서의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격화되고 있는 것에서 확인됩니다. 그런데 빈부격차가 확대되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소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생활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중산층의 몰락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회의 불만 세력이 나오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잘못된 사회를 고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한마디로 현 사회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러자면 세계적 차원에서나 국내적 차원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근원인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국제카르텔이니만큼 이 체계를 파기해야 하고, 나아가 각 국가 단위에서 주권을 인정하고, 각국은 주권을 행사하는 속에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유일패권을 형성하는 세력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지배와 억압적 질서 체계가 붕괴되는 것이기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이 행사하고 있는 유일 패권적 힘을 행사하여 풀어가는 방식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수탈하면서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트럼프의 방식은 철저히 세계거대독점자본의 이해와 요구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트럼프의 반민적이고 매국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세계거대독점자본의 이익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것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주되게 미국의 백인 노동자를 상정하면서 복고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전통적 가치를 지키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실상 사회의 지배 통치 세력은 항상 그들 통치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본질이면서도 겉으로는 대다수 사람의 요구인 양 치장해 왔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통치 질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지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런 방식을 취하지도 않고 주되게 백인 노동자로 한정하면서 복고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한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서는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이민자와 성소수자 같은 세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철저히 차별하는 방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트럼프의 정책이 지난날의 어떤 지배 통치 세력보다도 훨씬 더 반민적이고 매국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거대독점자본이 지배하고 통치해야 할 정당성의 근거를 그 어떤 보편적인 원리가 아니라 차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정당성의 근거를 보편적인 원리가 아니라 차별에 근거한 데서 찾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시대의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앞에서 말했듯이 자유와 평등은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것으로 접근해야만 풀어집니다. 그런데 민은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관계로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어느 한 부분만으로 전개되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자면 결국 각 부분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합니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도대체 누구의 권리이기에 인정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영역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자면 개성의 다양한 특성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각각의 개성적 특성이 나타날 수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설사 성소수자라고 해도 그 특성이 명확히 인정되고 그런 속에서 개성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고 주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집단의 권리 실현에 있어서도 각각의 특성에 맞게 정체성이 확립되고 보장되어야 합니다. 예전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나타나고 있는 조건에서 이것은 매우 절실한 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명 플랫폼 노동자라든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은 이들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이들 또한 당연히 집단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권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주권이 확립되자면 그 민족적 특성이 다양할 수 있고, 그런 특성 또한 당연히 인정되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특히 세계유일패권 체제가 형성되면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수탈 체계가 추구되어 나라와 민족의 특성 또한 거의 붕괴되어 왔습니다. 이를 해결하자면 각 나라의 민족적 특성을 형성하는 부분이 정체성으로 확립되어야 하고, 당연히 주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각 부분에서 정체성의 확립이 이뤄져야 하고, 그 권리가 보장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세계유일패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이와 반대되게 그 정체성을 부정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실현하자면 자신들이 규정한 정체성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계거대독점자본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목적에 맞는 정체성을 제외하고는 다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을 인정하면 바로 그때로부터 그 정체성을 가진 세력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세계거대독점자본의 이해와 요구를 추구하는 세계제국주의의 역사적 지위가 밝혀집니다. 한마디로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데 있어서 가장 마지막 단계의 착취와 억압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사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착취와 억압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이 세계거대독점자본 세력은 정체성의 확립을 가로막고자 가장 힘없고 약자인 세력에 차별을 가해 탄압하는 방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가장 힘없고 약자인 세력이 탄압받게 되면 바로 그때로부터 차별적 억압 질서 체계가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세계거대독점자본 세력이 가장 힘없고 약한 세력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또한 민의 단합을 막고 서로 대립, 대결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자면 그 방법은 서로 일치시켜 입체적이고 통일적으로 풀어가야만 합니다.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일치된 지점으로 견지하는 가운데 서로의 차이를 입체적으로 존중하여 서로 모순되거나 혼란스럽지 않게 통일적인 전망성을 세워 풀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려는 인류사의 과제는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으로서만 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으로 풀어가자면 민의 확고한 단합이 이뤄져야만 합니다. 서로 분열하고 대립, 대결을 벌이게 되면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뿐만이 아니라 방해 세력의 책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모두 각개 격파되고 말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민의 단합을 방해하기 위해 차별을 가해 탄압하는 것입니다. 서로 차별이 이루어져 탄압이 가해지면 민의 단합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트럼프의 극우적인 정책은 세계 민이 단합하여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각 부분에서 정체성을 확립하여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사는 것이 인류 역사의 시대적 흐름으로 되고 있는데, 바로 이를 가로막고 오직 세계거대독점자본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철두철미 나라의 주인인 민에 반하는 반민적이고 매국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극우정책이 이런 특성을 가졌다면 세계의 모든 민은 이에 반대하여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국제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그 카르텔에 포획된 세력 또한 각자도생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감히 미국의 세계유일패권 세력을 무시하고 이들과 대결하는 방식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그리한다면 미국의 세계유일패권 세력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제카르텔에 소속해 있는 유럽이나 일본, 다른 여타의 국가에서 극우세력이 90년대 이후 미국이 세계유일패권을 형성하는 때로부터 등장하기는 했으나 큰 세력으로 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유일패권적 지배가 위기에 처하자 미국이 가장 먼저 극우적 정책을 들고나오면서 국제카르텔을 형성하는 세력들도 이 길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트럼프의 극우 정책이 실시되면서 유럽이나 일본, 다른 여타의 나라에서 극우 세력이 세계 도처에서 등장하고 국가 권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국제카르텔 세력이 추구하는 것 또한 자신들의 억압적 지배 질서를 형성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그 큰 틀은 미국의 극우 정책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나라의 주인인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기에 그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자면 각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정체성을 확보하고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바로 그것을 가로막기 위해 자신들의 억압적 지배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정체성에 맞고 나머지는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극우 세력이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거나 재일조선인들과 사회적으로 힘없는 약자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차별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의 극우세력들은 일명 전한길의 예에서 보듯이 민족 전체에 대한 관념도 없습니다. 단지 한미동맹을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반공 이념을 철석같이 믿으면서 무조건 북과 중국, 러시아에 반대하는 것이 민족의 정체성인 것처럼 차별적으로 주장할 뿐입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다 척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극우는 한국 민의 단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차별하고 분열, 대립, 대결을 획책합니다. 그러니 한국의 극우들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와는 달리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과 약탈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오로지 미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계속 지배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보다 더더욱 그 반민성과 매국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극우는 매국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세계유일패권을 형성하는 가운데 확립된 국제카르텔 체계 속에서 극우 정책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반민적이고 매국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극우 주장은 더더욱 반민적이고 매국적인 특성이 명확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국노로 규정해야 극우세력이 그 무슨 민족을 위한 것처럼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을 극복하고 단호히 청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025. 7. 28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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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사과할 일 아냐...산림청이 저지른 일을 보십시오

 [최병성 리포트] 산사태·산불 초래하는 벌목과 조림... 산림정책 전면 개선이 시급한 이유

25.07.29 06:58최종 업데이트 25.07.29 06:58

밀려드는 토사에 집이 사라졌다. 콘크리트 바닥만 남았다.최병성

집이 밀려드는 토사와 함께 통째로 사라졌다. 흙더미에 덮인 콘크리트 바닥이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지난 폭우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1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된 경남 산청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2일 산청 산사태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손을 붙잡고 신속한 복구와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산사태 피해 주민들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미안합니다."

산사태 피해가 큰 산청 부리마을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피해 주민들께 미안하다고 사과했다.MBC방송

대통령의 '미안합니다'라는 한 마디를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영상을 수차례 반복 재생하며 대통령의 '미안합니다'라는 사과의 말을 듣고 또 들었다.

대통령의 사과에 피해 주민들은 "하늘이 하는 걸 대통령이 어떻게 막겠습니까?" 라며 이 산사태는 대통령이 책임지거나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맞다. 이번 산사태는 대통령에 당선된 지 이제 2개여 월에 불과한 이재명 대통령이 사과할 일이 아니다.

이번 산사태는 하늘에서 많은 비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늘의 잘못일까? 그것도 아니다. 동일한 비가 쏟아졌지만, 모든 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숲을 건드린 산림청이 문제다

이번 폭우에 산사태가 발생한 곳은 대부분 산림청이 벌목과 조림을 하고, 임도를 만든 곳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사태 피해 주민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 산청 부리마을 역시 2010년 벌목한 곳이다. (관련 기사: 산사태 비교사진에 담긴 진실...이재명 대통령, 꼭 보십시오 https://omn.kr/2eocp)

벌목 전후의 사진을 비교해보자. 2008년 사진에 따르면, 검은 빛은 소나무이고, 초록색은 활엽수로 이곳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어울려 자라던 혼효림이었다. 그러나 2013년 사진엔 소나무뿐 아니라 활엽수까지 사라졌다.

울창했던 숲이 사라졌다. 2010년 산불로 인한 벌목이었지만, 불타지 않는 활엽수까지 싹쓸이 벌목했다.구글어스

이곳은 2010년 경 산불로 인해 싹쓸이 벌목을 했다. 그러나 2008년 사진에서 보듯 산불 피해지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불 타 죽은 소나무만 아니라 불에 잘 타지 않는 살아있는 활엽수까지 모두 싹쓸이 벌목한 것이다.

벌목으로 나무들이 사라진 위치 1번과 2번이 2025년 7월 산사태가 발생한 1번과 2번 사진과 동일한 장소다. 벌목이 산사태 발생의 주요 원인임을 보여준다.

산불 피해지를 복구한다며 벌목하고 조림한 자리와 산사태 발생한 위치가 일치한다.최병성

산사태 피해 주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산청 부리마을 산사태 현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뒤따르던 임상섭 산림청장이다. 해마다 산림청의 벌목과 임도 사업지의 산사태로 많은 국민들이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산림청은 지금까지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지난 2024년 충남 서천과 금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여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24년 08월 28일 자 보도 <사람 죽인 무덤? 더 이상 억울한 죽음 만들지 말라>) 서천과 금산 두 곳 모두 벌목에 의한 산사태였다.

2017년 7월엔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두 건의 산사태가 발생해 주민 두 명이 사망했다. 한 곳은 벌목 후 소나무를 심은 곳이고, 또 다른 곳은 벌목 후 자작나무를 심은 곳에서 산사태가 시작되었다. 이때도 산림청의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많은 비와 연약한 지질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냈을 뿐이다.

2017년 청주에서 두 건의 산사태가 발생해 두 명이 사망했다.이수곤

벌목으로 인한 산사태만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아니다. 벌목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체인톱에 팔다리가 잘리거나 나무에 깔리고, 포클레인이 굴러 사망했다. 산림청이 국회에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이렇게 사망한 이들이 1년 평균 10명이 넘고, 부상자도 500명 이상이다.

벌목 현장에서 사망자들이 속출하고 있다.언론보도

대한민국의 벌목과 조림은 경제성이 없다. 오히려 탄소를 배출하고, 산사태를 부르는 재난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 벌목지의 조림 비용 98% 이상을 국가가 지불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벌목은 산림청에 의해 벌어지는 꼴이다.

임도, 산사태 키웠다

지난 2011년 7월, 밀양 상동면 신곡리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4명이 사망했다. 제사를 위해 할머니 집에 온가족이 모였다가 산사태로 68세 할머니와 15살 손자, 4살 손녀,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 한 분이 변을 당했다. 15살 손자는 50m 떨어진 하천변에서 시신을 찾았다. 산사태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2011년 밀양 임도에서 산사태로 4명이 매몰 사망했다.카카오맵

당시 밀양 산사태는 카카오맵과 구글 항공지도를 확인해 보면 임도에서 시작된 산사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산림청은 사과하지 않았다.

지난 2023년 여름에도 경북 예천에서 여러차례 산사태가 발생했다. 산사태 발생 원인은 임도와 벌목이었다. 그러나 산림청은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산사태 발생 원인이 자연재해라는 보고서로 모든 책임에서 빠져나갔다.

지난 2023년 경북 예천에서도 산사태가 발생했다.최병성

지난 2023년 논산 양지 추모원 뒤편 임도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추모객 4명이 매몰되었다가 구조되었으나 두 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의 경우 2024년 7월 19일 자 <산사태 피해지역의 끔찍한 공통점... 산림청 무슨 짓 한 건가>를 통해 임도로 인한 산사태 발생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나 산림청은 사과하지 않았고,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았다.

논산 양지 추모원 산사태다. 3곳의 산사태가 모두 임도에서 발생한 것이 보인다.최병성

산림청의 잘못을 개선하고자 지난 2023년 12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감사원이 이를 받아들여 종합감사를 실시해 1년 5개월만인 지난 5월 19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에 산림청 범죄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1년 5개월만에 감사 결과가 나왔다.감사원

감사원은 논산 양지추모원 산사태도, 예천 산사태도 모두 임도가 원인일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음에도, 이를 누락하거나 왜곡해서 작성했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산사태 원인이 산림청의 임도 때문이라는 지적에도, 민간전문가들의 의견을 왜곡해서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감사원

특히 감사원은 산사태 원인조사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관련자(치산기술협회) 문책을 요구했다. 그런데 치산기술협회는 이전 산림청장이 협회장으로 가는 곳이다. 과연 그 직원만의 문제일까?

산림청이 사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산불

산림청의 대국민 사죄가 필요한 이유가 또 있다. 지난 3월 대형 산불이 산청과 의성에서 발생했다. 30여 명이 사망하고, 약 4000채의 주택이 소실되고, 서울시 면적의 두 배에 이르는 10만ha의 이상의 숲이 사라졌다.

산림 관리와 산불 진화의 모든 책임과 권한은 산림청에 있다. 그러나 산림청은 단 한 번도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가 필요하다며 더 많은 예산을 요구했다.

많은 이들이 의성산불을 괴물산불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왜 괴물 산불이 되었을까? 자연에는 소나무만 살아가는 소나무 단순림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산림청이 오랜 기간 숲가꾸기라는 이름으로 활엽수를 자르고 또 자르기를 반복한 덕에 '소나무 단순림'이라는 기형적인 숲이 되었다. 그 결과 의성에서 영덕까지 모든 것을 불태운 괴물 산불이 된 것이다.

의성 산불의 원인은 산림청이 숲가꾸기로 괴물 가득한 소나무 단순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최병성

숲가꾸기라는 '그린워싱'에 의한 불 폭탄?

산림청은 산불 예방용 숲가꾸기라며 숲에 돈을 퍼붓고 있다. 활엽수를 베어내고 불폭탄인 소나무 단순림을 만드는 일이 전국 산림에 계속 진행되고 있다.

산림청은 일명 '사다리론'에 의거, 키 작은 나무들을 잘라내 숲의 연료를 줄이면 키 큰 소나무로 불이 옮겨 붙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까맣게 불탄 소나무 숲은 산림청의 주장이 잘못임을 보여준다. 산림청이 숲가꾸기를 실시해 키 큰 소나무들만 남겨진 곳은 수관화로 모두 불타 죽었다. 반면,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가득한 숲은 산불이 지표화가 되며 저절로 꺼졌다.

산불 현장에서 왜 산림청의 숲가꾸기 이론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산림청의 지난 10년간의 산불 발생량 통계에 답이 숨어 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1년 중 3~4월이 산불 발생 건수의 46%를 차지하고, 심지어 산불 피해 면적으로 따지면 3~4월은 무려 80%에 이른다.

산림청 통계자료들에 의하면 3월과 4월에 산불 피해가 크다. 그러나 이때는 활엽수에 물이 오르는 때이다.산림청

바로 여기에 산림청이 간과한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고로쇠 수액은 1월 말부터 나온다. 고로쇠 수액이란 활엽수인 고로쇠나무가 뿌리를 통해 빨아올린 물이다.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3~4월엔 활엽수는 나무에 물이 올라 산불을 막아주는 수도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산림청은 불을 막아 주는 활엽수를 불이 타고 오르는 연료라며 잘라내 소나무 단순림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활엽수가 잘려나가고 소나무만 남겨진 기형적인 숲이 된 결과, 모든 것을 불태운 괴물 산불이 된 것이다.

눈 쌓인 1월 말 지리산 산청 인근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모습이다.최백림

산사태·산불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나라 만들려면

벌목과 조림, 임도와 숲가꾸기 등은 산림청의 핵심 사업이다. 이 사업들로 인해 해마다 산사태와 산불이 발생하며 국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럼에도 산림청은 더 많은 벌목과 조림, 임도 조성과 숲가꾸기를 강조하고 있다. 왜일까?

지난 5월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에 정답이 잘 나와 있다.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5년간 산림사업 예산 중 조림으로 지출된 돈이 무려 1조 1716억 원이다. 숲가꾸기는 2조 246억 원, 임도 1조 1545억 원 등 엄청난 국가 예산이 산림조합과 사업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자료에 기록된 산림사업 예산들감사원

대한민국은 산림 예산이 너무 많다. 순수 산림청 예산만 1년 2조 8천억 원이다. 감사원 자료처럼 각 지자체의 산림과에서 지불되는 산림 예산을 합하면 대한민국은 산림을 파괴하기 위해 국가가 사용하는 예산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각종 사업을 자꾸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숲 면적은 대한민국 숲 면적의 약 4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 임야청의 1년 예산은 약 2조 8천억 원으로 대한민국 산림청 1년 예산 2조 8천억 원과 비슷하다. 산림 면적당으로 비교하면 대한민국이 일본에 비해 산림 예산이 무려 4배나 많은 꼴이다.

일본은 80살, 100살의 큰 나무를 키워 수확하지만, 우리는 30살의 젓가락 같은 나무를 늙었다며 자꾸 베어내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의 산림청은 숲에 큰 나무를 키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벌목과 조림과 임도 등의 사업 자체가 목적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로 인해 우리 숲은 산사태로 국민 생명을 위협하고, 탄소를 배출하며 기후재난을 부추기고, 언제든 불이 잘 나는 불 폭탄이 되었다.

이는 지난 5월 발표한 감사원 감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 감사원은 '임도 부실시공의 원인 분석 및 대안 모색'에서 '산림청의 물량 위주의 임도 확대 정책'이 문제라며 산림청이 평가를 통해 목표를 달성한 지방산림청 등엔 포상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주었기에 결국 물량 위주의 부실시공이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임도뿐만 아니라 조림과 숲가꾸기 등 산림청의 모든 사업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숲은 필요와 타당성이 있어서 '숲가꾸기'가 이뤄진 게 아니다.감사원

산사태와 산불로부터 안전하고, 건강한 숲이 되는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산불진화권은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하고, 산림청의 나머지 기능은 환경부로 통합하고, 예산을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대폭 삭감하면 된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산림청의 잘못된 산림정책을 전면 개혁해 산사태와 산불로부터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산불, 산사태로 부터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 산림청 범죄에 대한 기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벌목, 임도, 산사태, 산불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cbs5012@hanmail.net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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