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대체복무제 도입, 다음은 평화군축

개인의 권리 보장을 넘어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으로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6.29 08:34
‘양심적 병역거부’가 논란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10여 년 전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인 기억이 생생하다. 45명이 참여하는 토론 수업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2명은 판단을 유보했고 나머지 42명은 반대 입장에 섰다. 수업 참가자의 대다수는 예비역 남성이었다.
당시의 논변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현실적 문제 대부분은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국방의 의무를 군사훈련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대다수의 반대론자들은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대체복무 대상의 종류와 기간을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반론하였다. 실제 대체복무제를 운영하는 해외의 사례는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군사훈련 그 자체를 신성시하며 대체복무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도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오로지 국가의 필요에 의해 군사훈련을 강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의무 이행의 방법이라는 것은 국가주의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참여정부 초기로 집단주의에서 벗어난 탈권위에 대한 열망이 부풀어 오르던 때였다.
1시간 내내 치열한 토론을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판단 유보를 선택한 2명이 수업이 끝난 후에 악수를 청해왔을 뿐이다. 단단한 벽을 실제로 체감하니 막막하고 난감하였다. 스스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볼까 고민했으나 여러 사회적 관계의 변화가 걱정돼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입으로 떠드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과 달리 끝내 병역거부를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있다. 사법부는 이들의 의사를 존중해 고맙게도(?) 1년 6개월의 에누리 없는 실형을 빠짐없이 선고해왔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들의 수가 계속 늘어가자 하급심에서나마 무죄 선고가 나오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침내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병역을 기피하는 자를 처벌하도록 한 것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라는 선택지가 없는 현행 법률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법적 정비를 마쳐야 한다. 국방의 의무 이행 자체에 대한 거부와 군사훈련을 거부할 권리를 구분해 후자를 인정할 방도를 만들라는 것이다.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형평성이란 측면에서 대체복무제의 설계는 앞서 언급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전화 연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설계는 현역 복무보다 좀 더 어렵게 만들면 된다”면서 자신이 대표발의한 대체복무제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 현역의 1.5배 기간을 합숙의 방식으로 복무하도록 하고 업무의 난이도도 간병이나 섬에서의 의료봉사 등으로 현역보다 어려운 수준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대만의 경우 같은 맥락에서 대체복무제를 설계했지만 실제 이를 선택하는 인원은 상한에 미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국방부 역시 박주민 의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고민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합리적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공동체적 필요가 아니라 신성의 영역에 밀어 넣는 것은 북한을 소재로 한 기만적 정치이다. 북한이 우리 공동체를 적대하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맞서는 폭력을 감행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불거질 내부의 모순 역시 폭력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이런 논리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 인식은 조선일보의 29일 사설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조선일보는 “우리는 남북이 200만 가까운 무장 병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다. 저출산으로 인해 병역 자원도 줄고 있다”면서 “대체복무를 도입하더라도 안보에는 일절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국가적 효율성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사고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보수정치는 이 논리를 효율성 추구의 신화와 결합해 세상만사에 적용해 기득권의 이익을 보장하는 통치 모델을 유지해왔다.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 정권의 파국적 결말 이후에야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헌법재판소 역시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논쟁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틀을 정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체제 원리의 문제와 맞닿는다. 폭력적 효율성보다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근본적 차원에서 우선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을 둘러싼 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효성 있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동아시아의 평화 체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을 목표로 한 정치가 힘을 발휘할 때에 가능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고민은 어떤 개인이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세계 각국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군비를 확장하는 게 아니라 평화를 위한 공동의 합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군사적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이 평화군축을 위해 연대하도록 구체적인 대중적 압력의 행사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대체복무제를 굳이 선택할 필요조차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인생을 건 실존적 결단으로 오늘의 결과를 만든 병역거부자들의 궁극적인 꿈일 것이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금강에서 발견한 재첩, 신대륙을 발견한 듯 기뻐한 까닭

[산 강과 죽은 강③] 모래톱의 위대한 귀환


등록 2018.06.29 07:49수정 2018.06.29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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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 4대강'에 죽어가는 금강을 기록한 금강요정, 김종술 기자 ⓒ 정대희

그는 신대륙을 발견한 듯이 기뻐했다. 금강 세종보 수문을 연 뒤 생긴 모래톱 위에서였다. 투명카약에서 내려 강물이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곳에 서니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금빛이었다. 두 손으로 물속 모래를 퍼 올렸더니 손가락 사이로 물과 함께 흘러 내렸다.   

"어, 여기 붉은 깔따구가 일광욕 나왔네."

두 손에 남은 모래 속에서 붉은 깔따구가 꿈틀댔다. 시궁창 펄에서 사는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이다. 강물을 가둔 뒤 강바닥에 쌓인 펄을 점령했던 생명체였다. 이게 모래 속에서 나온 건 '산 강'이 '죽은 강'을 뒤집고 있다는 뜻이다. 강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교란의 징표였다.  

그는 붉은 깔따구를 한 번 더 찾으려고 모래를 파서 들어 올렸다. 뜻밖이었다. 이번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이게 진짜여. 재첩이 돌아왔다! 이게 금강의 희망이여!"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김종술 시민기자. 그는 1년 320여일을 금강으로 출근하면서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의 처참한 모습을 고발해왔다. 물고기 떼죽음, 공산성 붕괴, 큰빗이끼벌레 창궐,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등 굵직한 특종보도를 해왔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살아있는 강을 보며 감격했다.

[산 강] 강의 허파, 모래톱이 돌아왔다

▲ 콘크리트 장벽이 누웠다.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라졌던 모래톱이 나타났다. ⓒ 김종술

"와, 물살이 겁나게 세네요."

김 기자는 어렵사리 노를 저어 4대강 독립군을 한 명씩 하중도(하천 가운데 생긴 퇴적지형) 모래톱으로 실어 날랐다. 

지난 21일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7박8일간의 4대강 탐사취재를 시작했다. 오전 10시경 투명카약을 타고 세종보 하류 하중도에 들어갔다. 사람 발자국은 없었다. 세종보 수문을 개방한 뒤 드러난 모래톱에 사람 흔적을 새긴 건 이날 4대강 독립군이 처음인 듯했다.  

2017년 6월, 이곳 하류에 있는 공주보 수문을 상시 개방했다. 수문 높이인 7m의 수위가 내려가자 강바닥을 채운 펄이 드러났다. 7개월 뒤인 11월부터 500여m 상류의 세종보 수문(전도식 가동보)을 완전히 눕혔다. 강물은 수문에 갇힌 시커먼 펄을 토해냈다. 상류의 모래와 자갈을 실어 날랐다.  

이곳에 와 보니 4대강 사업 때 수심 6m를 유지하려고 강의 모래와 자갈을 파낸 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강바닥 펄을 밀어내고 모래가 돌아왔다. 펄에서 나는 시궁창 냄새를 몰아내고 상쾌한 강바람이 불었다. 수문이 열리자 대자연은 자기 상처를 빠르게 치유했다. 금강은 4대강 사업 이전으로 회군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모래는 강물을 정화하는 허파예요. 그게 돌아왔다는 건 4대강 사업으로 썩은 강이 스스로 정화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죠."

4대강 독립군인 이철재 시민기자(에코 큐레이터)가 물속을 걸으며 말했다. 물은 모래 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하면서 깨끗한 물로 거듭난다. 모래는 물고기 산란장이기도 하다. 수문개방 이전의 펄은 '불임의 공간'이지만 모래는 '잉태의 공간'이다. 그곳에 손톱만한 새끼 재첩이 희망의 전령처럼 박혀 있다. 물 가장자리에는 치어들이 떼 지어 놀았다.  

침묵의 강에 소리도 돌아왔다. 보에 가로막혀 흐름이 멈췄던 강은 세차게 흐르면서 물소리를 냈다. 그 흐름은 물고기 비늘과 같은 물결무늬 지문을 모래톱과 물속 모래 위에 새겼다. 모래는 흐르는 물과 함께 하류 쪽으로 흐르고 있다. 곳곳에 여울도 생겼다. 강물은 모래와 자갈 위를 자맥질하듯이 뒹굴면서 물속에 산소를 공급했다. 

[죽은 강] 강의 귀환을 알리는 징후들

▲ 멈췄던 금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금강요정의 얼굴에도 웃음이 돌아왔다. ⓒ 정대희

이곳은 세종보와 공주보 수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죽은 강'이었다. 2013년부터 매년 4대강 독립군이 찾았던 이곳에는 녹조가 창궐했다. 가만히 있어도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강바닥을 파면 시커먼 펄이 나왔고,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창궐했다. 하지만 수문을 연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곳은 죽은 강과 산 강이 공존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펄 속에서 재첩의 사체가 나왔다. 지금은 반대였다. 펄 속에서 살았던 주먹만 한 펄조개가 입에 모래를 잔뜩 머금은 채 모래톱 곳곳에 죽어 있다. 강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다는 뜻이다. 깨끗한 모래 속을 손으로 30cm 정도 파내려갔더니 펄층이 나왔다. 손을 코로 가까이 댔더니 역한 냄새가 풍겼다.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4대강 독립군은 하중도 반대편 모래톱으로 이동했다. 어른 키 두어 배 쯤 자란 갈대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끝이 가늘고 털이 섞인 것을 보니 멸종위기종인 삵의 똥이다. 배변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다섯 개 발톱자국이 선명한 것을 보니 수달 발자국이다. 고라니 똥과 새똥도 즐비했다. 

모래톱에 도착하니 반대쪽보다는 물살이 거세지 않았다. 모래 위 자갈은 회칠을 한 것처럼 펄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다. 바깥으로 드러난 모래에 말라붙은 펄이 종잇조각처럼 말려 있다. 물속 모래에도 시멘트 가루를 살짝 뿌려놓은 것처럼 펄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본 죽은 강의 흔적은 산 강의 귀환을 알리는 희망의 증거였다.  

[세종보 위에 서서] "흉물 보, 하루빨리 해체해야"  

▲ 금강의 세종보가 누웠다. 4대강 독립군은 여기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 햇볕에 달궈진 세종보에 엉덩이가 뜨거웠다.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강물과 모래가 몸을 식혀줬다. ⓒ 김종술

4대강 독립군은 하중도에서 나와 세종보로 갔다. 4m 높이의 보는 완전하게 누웠다. 4대강 사업 때 만든 16개 보 중 유일한 전도식 가동보이다. 수문을 위아래로 여닫는 게 아니라 유압식 실린더로 누웠다 세우는 방식이다. 세종 지구를 포함해 2177억 원의 공사비로 만든 세종보는 최첨단 보로 홍보했지만 고장이 잦았다. 

"세종보는 매년 4번씩 개방을 했어요. 유압 실린더 관을 청소해야만 보가 작동했기 때문이죠. 최첨단 보라고 자랑했지만 보를 조작하는 유압실린더의 고장이 잦아서 '고철 보'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겨울에도 잠수부가 얼음을 깨고 물속에 들어가 수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김종술 기자는 세종보 철제 가동보 위에 걸터앉아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수문이 개방된 뒤에 이틀에 한 번 꼴로 이곳 생태환경 변화를 취재하면서 혼자 길이 347m나 되는 '세종보 밟기' 행사를 한단다. 4대강 독립군은 금강을 가로지른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재 구조물을 밟으며 식생 상태를 조사했다.  

"저기 쌓인 모래와 자갈밭에 풀이 들어왔어요. 수문을 연 뒤 상류에서 모래와 자갈이 유입되고 있지만, 시궁창 펄들이 뒤섞여 있어서 그런거죠. 저게 다 강물에 씻기고 나면 예전처럼 깨끗한 모래톱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거나, 여울 낚시를 하던 어른들이 가족들과 함께 수박을 쪼개먹는 모습을 볼 수 있겠죠. 

여기 대평리 모래는 기왓장을 찍을 정도로 질이 좋았어죠. 공주 곰나루 모래는 건물 미장을 할 때에 사용할 정도로 고왔죠. 언제쯤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김종술 기자는 "세종보에 가뒀던 물은 호수공원에 펌핑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는데, 수문이 열린 뒤에도 물을 펌핑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서 "금강을 죽인 이 구조물은 하루 빨리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물치 한 마리가 세종보 구조물에 걸려 머리와 뼈만 남은 채 죽어 있다. 바깥으로 드러난 사석보호공(보의 유실을 방지하려고 쌓아놓은 바위돌) 속에 갇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준치도 보였다. 김종술 기자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흉물을 빨리 걷어내야지."

[또 다른 희망의 근거] 새알 네 개의 정체

▲ 금강의 모래톱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자갈틈에 숨어 있던 둥근 물체였다. 물떼새 알이었다. 다시 흐르는 금강에 새 생명이 태어날 예정이다. ⓒ 정대희

4대강 독립군은 세종보 위쪽에 드러난 모래와 자갈밭으로 갔다. 전날 김 기자가 30여 명의 수녀들과 동행하면서 발견한 새알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전날에는 어미 새를 보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끼고 새알을 놔둔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날 김 기자는 "꼬마물떼새 알보다 약간 큰 게 흰목물떼새 알인 것 같다"면서 긴가민가했다. 

다음 날에는 둥지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멀리서 인기척을 죽이고 관찰했다. 

"아, 저기 흰목물떼새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말했다. 카메라 렌즈로 새알 주변을 관찰하던 그는 알을 품던 어미 새가 둥지에서부터 20여m 떨어진 물가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발견했다. 세종보 수문이 닫힌 뒤에 이곳에서 서식할 수 없던 멸종위기종이다. 4개의 흰목물떼새 알은 자갈처럼 위장한 둥지에 그대로 있었다.

둥지 옆으로 차가운 물살은 거세게 흘렀다. 그 물살은 자갈과 모래 속에 박혀있던 시궁창 펄을 씻어내면서 흘렀다. 금강에 세운 3개 보 중 백제보는 그대로 둔 채 2개 보의 수문을 개방했을 뿐이다. 흐르는 강은 4대강 사업으로 생긴 죽음의 그림자를 거둬내고 있었다. 힘차게 흐르면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한 장면] "손톱만한 재첩, 가슴이 두근거린다"


4대강 독립군은 탐사보도 첫날 저녁 공주 한옥마을에서 '수문개방 이후, 금강의 미래'라는 주제로 금강 포럼을 개최했다. 정민걸 공주대 교수, 김영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술 기자에게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손톱만한 재첩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금강에서는 죽은 사체만 봤죠. 1급수에서 사는 재첩도 사체만 봤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입니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 치어를 본 적이 없었는데, 녀석들도 오늘 처음 봤어요.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이게 진짜 희망입니다. 금강의 미래입니다. 금강에 마지막 남은 백제보 수문도 열어야 합니다."  

낙동강 지킴이로 활동하는 정수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제 낙동강 현장을 다녀왔는데 녹조가 피지는 않았더라고요. 그런데 살아나고 있는 금강을 취재하기 시작한 오늘부터 낙동강에 녹조가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금강의 산 강에서 낙동강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죠. 낙동강의 수문은 모두 닫혀 있는데, 수문개방 효과를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던 취재였습니다."

MB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허구였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녹조가 창궐했다. 강바닥 시궁창 펄은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점령했다. 수문을 열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은 끝내 열지 않았다. 수문 2개만 열었는데, 금강에 재첩이 돌아왔다.  

수문 개방이 복원의 시작이라면 4대강을 망친 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세금 22조 원을 날렸지만 처벌된 자는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 있지만 4대강 죗값은 혐의 내용에서 빠졌다. 이제부터 혈세를 낭비하고 민주주의도 파괴한 4대강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금강으로 귀환하는 모래처럼, 이게 희망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 10년간 'MB 4대강'을 고발하고, 지금도 강의 회복을 위해 현장을 지키고 있는 4대강 독립군들을 응원해주기 바란다.  



4대강 현장탐사-영화 만들기에 후원을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6월21일부터 27일까지 금강과 낙동강을 탐사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수문을 연 '산 강'과 아직도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죽은 강'을 비교하면서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오마이뉴스는 4대강 사업을 소재로 한 최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4대강 다큐 영화는 불법 비자금을 집중 추적합니다. 부역자들이 받은 '떡고물'을 전격 공개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운 4대강 독립군의 눈물겨운 투쟁도 담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10만인클럽 회원으로 가입해서 후원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내란음모‧통합진보당 피해자들 대법원 앞 천막농성 돌입

내란음모‧통합진보당 피해자들 대법원 앞 천막농성 돌입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8/06/29 [02:03]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내란음모 조작’,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피해자들이 대법원 앞 농성에 돌입했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내란음모 조작’,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피해자들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규탄하며 대법원 앞 농성에 돌입했다.

전 통합진보당 의원단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만기출소자로 구성된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의원 석방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28일 오후 2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사법농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법률에 의하지 않은 국회의원직 박탈 무효’, ‘내란음모사건 조작 진상규명’, ‘이석기 전 의원 석방’ 등을 요구했다.

공동행동은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며 청와대는 이번 지방선거 여당 압승을 두고서 색깔론 끝났다’, ‘분열의 정치도 끝났다’” 했지만 색깔론의 최대 피해자들의 독방 수감은 아직 그대로 입니다종북의 주홍글씨가 찍힌 10만 명의 상처도 아직 그대로입니다범죄자들에게 죄를 묻고 있지 않은 현실은 아직 그대로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오병윤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치하에서 이뤄진 사법부의 헌정유린과 사법난동들에 대해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산된 통합진보당 10만당원의 응어리진 한과 명예회복해산까지 있었던 정치공작과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공작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석기 전 의원의 누나 이경진씨는 이석기의원은 당장 사면 복권 되어야하고 양승태 대법원장은 당장 구속되어야 한다며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천주교 수원교구의 최재철 신부는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탄압과 새로운 진보정당의 새순이 싹트는 것을 봐주지 못하고 종북빨갱이로 몰아 넣었던 것이 속상하다며 오늘부터 농성을 시작하는 분들이 힘을 내고 많은 분들이 연대해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 대법원 앞에서 농성에 돌입한 참가자들. (사진 : 민중의소리)     © 편집국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대법원 동문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천막농성은 714일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콘서트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김명수 대법원장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과의 면담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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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피해자들이 몸을 던져서라도 끝내 진실의 문을 열겠습니다"
사법농단에 맞선 대법원 농성에 돌입하며

저희는 '내란음모 조작',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피해자들입니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 지위를 박탈당한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입니다내란범의 누명을 쓰고 복역 후 출소한 옛 통합진보당 당원들입니다박근혜 독재로부터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은 진보정치인들입니다.
'역사의 새봄이 반드시 온다짓밟힌 사람에게도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에게도 차별없이 봄이 온다저희는 믿고 있습니다그래서 쓰러지지 않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석기와 통진당의 진실'도 이제는 돌아와야 합니다.

종전선언을 먼저 외쳤다가 내란 누명을 쓴 이석기 전 의원은 5년째 감옥에 있습니다평화협정을 주장하다가 해산당한 통합진보당 10만 당원의 명예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이윽고 '이석기와 통진당의 진실'은 최근 대법원 특조위 보고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대통령 박근혜대법원장 양승태헌재소장 박한철 등이 저지른 사법공작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담겨있습니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그들'이 있습니다.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낸 지위 확인 소송을 대법원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확보하고도 검찰이 '내란조작 정당해산 커넥션고발 사건 수사에 손도 안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박근혜 '청와대 캐비넷 문건수천 건이 드러나도 검찰이 미동도 하지 않은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바로 진실이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이 상식적인 말이 제대로 실현된 적은 드물었습니다청와대는 이번 지방선거 여당 압승을 두고서 '색깔론 끝났다', '분열의 정치도 끝났다'고 했습니다정말 그렇습니까색깔론의 최대 피해자들의 독방 수감은 아직 그대로 입니다종북의 주홍글씨가 찍힌 10만 명의 상처도 아직 그대로입니다범죄자들에게 죄를 묻고 있지 않은 현실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진보정치의 한길을 걸어온 저희에게 하늘이란 곧 민심입니다국민의 뜻입니다진실을 밝히고 범죄자를 단죄하고자 하는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억울하게 갇힌 사람을 대신해서명예가 짓밟힌 10만 당원을 대신해서 저희는 스스로를 던지고자 합니다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하늘같은 국민을 바라보고 가겠습니다국민의 힘으로 마침내 감옥문도 활짝 열고 진실의 문도 열겠습니다진정한 새로운 시대는 거기에서 시작한다고 믿습니다함께 해주십시오고맙습니다.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의원 석방을 위한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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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도로협력 분과회담..개성-평양, 고성-원산 현대화 합의(전문)

남북, 8월초 경의선 도로 현대화 공동조사남북 도로협력 분과회담..개성-평양, 고성-원산 현대화 합의(전문)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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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8  17: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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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은 28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도로협력 분과회담을 열고,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사진제공-통일부]
남북이 오는 8월 초부터 경의선을 시작으로 도로 현대화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도로 현대화 구간은 경의선 개성-평양, 동해선 고성-원산으로 확정됐다.
남북은 28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도로협력 분과회담을 열고,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우선, 남북은 “동해선, 경의선 도로 현대화 사업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앞으로 이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도로 현대화 구간은 동해선 고성-원산, 경의선 개성-평양으로 확정됐으며, 앞으로 구간을 확대하기로 했다. 공사범위와 현대화 수준은 동해선.경의선 도로, 구조물, 안전시설물, 운영시설물 등을 국제기준에 준해 지역적 특성에 맞게 정하기로 했다.
착공식은 필요한 준비가 이뤄지는 데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 남북이 오는 8월 초부터 경의선을 시작으로 도로 현대화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도로 현대화 구간은 경의선 개성-평양, 동해선 고성-원산으로 확정됐다. [사진제공-통일부]
이를 위해, 남북은 ‘남북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연구조사단’을 구성하고, 오는 8월 초 경의선부터 현지공동조사를 실시하고 이어 동해선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도로 현대화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도로건설과 운영에서 필요한 선진기술의 공동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남북은 “동해선, 경의선 도로 현대화 구간에 대한 공동조사와 관련한 실천적 문제들을 문서교환방식으로 계속 협의 해결해 나가며 필요에 따라 쌍방 실무접촉도 진행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남북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해 합의한 사항들을 충실하게 이행하여, ‘판문점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알렸다.
이날 회담에는 남측 김정렬 국토교통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이주태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백승근 국토부 도로국장이 나섰다. 북측은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을 단장으로 김기철 국토환경보호성 처장, 류창만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장이 마주했다. 양측은 전체회의 2회, 수석대표접촉 1회, 대표접촉 2회 등을 가졌다.
[전문] 남북도로협력 분과회담 공동보도문
남과 북은 2018년 6월 28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도로협력 분과회담을 진행하고, 동해선‧경의선 도로 현대화사업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1. 남과 북은 동해선‧경의선 도로 현대화 사업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앞으로 이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동해선‧경의선 도로 현대화를 위한 범위와 대상, 수준과 방법 등 실천적으로 제기되는 방안들을 협의 확정하기로 하였다.
① 도로 현대화 구간은 동해선은 고성에서 원산까지, 경의선은 개성에서 평양까지로 정하며, 앞으로 이를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공사범위와 현대화 수준은 동해선‧경의선 도로 현대화 구간의 제반대상(도로, 구조물, 안전시설물, 운영시설물)을 국제기준에 준하여 지역적 특성에 맞게 정하는 것으로 한다.
③ 도로 현대화를 위한 설계와 시공은 공동으로 진행한다.
④ 착공식은 필요한 준비가 이루어지는데 따라 조속한 시일내에 진행한다.
3. 남과 북은 당면하여 도로 현대화 구간에 대한 공동조사를 선행하기로 하였다.
① 이를 위해 남북 도로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연구조사단을 먼저 구성한다.
② 현지공동조사는 8월 초 경의선부터 시작하고, 이어 동해선에서 진행한다.
4. 남과 북은 도로 현대화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도로건설과 운영에서 필요한 선진기술의 공동개발에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동해선‧경의선 도로 현대화 구간에 대한 공동조사와 관련한 실천적 문제들을 문서교환방식으로 계속 협의 해결해 나가며 필요에 따라 쌍방 실무접촉도 진행하기로 하였다.
2018년 6월 28일
판문점

문재인 대통령, 쌍차 죽음 막겠다는 약속 지켜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30번째 죽음
뉴스프로 | 2018-06-29 11:30:3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문재인 대통령, 쌍차 죽음 막겠다는 약속 지켜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30번째 죽음
-문 정부의 반 노동정책, 촛불인가?
이하로 대기자
2012년 9월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을 때 경기도 평택시 통복동의 ‘와락센터’, 와락센터에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방문했다.
와락센터는 쌍용차 파업과 해고 과정에서 생긴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다.
이날 당시 문대통령 후보는 “너무 늦게 찾아온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과드린다”며 “쌍용차 폭력진압 과정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는 처벌하고, 여러분께 사과를 해야 할 이들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후보는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현 정부에서 해결이 안 되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해결하겠다”며 “아무리 어려워도 꿋꿋이 버티셔야 한다”고 격려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쌍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과의 대화 중에 서너차례나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와락센터 방문을 보도한 한겨레신문의 2012년 9월 21자 보도다.
그리고 5년 후 문재인 후보는 촛불혁명으로 이루어진 탄핵 정국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정권 하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쌍차 해고노동자의 30번째 죽음이 일어났다.
이날 죽음을 택한 30번째 쌍차 해고노동자는 문대통령이 2009년 방문해서 진상조사와 처벌을 약속했던 바로 그 2009년 정리해고 당시 파업에 참가했다가 평택 쌍용차 조립공장 옥상에서 경찰 특공대의 방패와 곤봉에 집단 폭행을 당한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구속되었던 노동자 중 한 명이다.
고인은 이후 이날의 경찰 집단 폭행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자살까지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려진대로 쌍차 노동자들은 복직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복직되는 그날을 기다리며 막노동을 전전하며 견뎌왔다. 고인이 된 김씨도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화물차를 운전하고, 낮에는 막노동까지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런 김씨의 안타까운 선택에는 쌍용차 사측의 복직 합의 파기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노조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회사는 2015년 12월 30일 해고자 복직에 합의했지만, 3년째인 올해까지도 복직된 해고자는 45명에 불과하다. 쌍차 해고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진압 처벌자 처벌을 약속하고 쌍차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쌍차 해고노동자들은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졌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1년이 지나도록 쌍차노동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절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회사가 복직 시한만이라도 알려줬더라면, 문재인 정부가 2009년 국가폭력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사해 해결했더라면 김 조합원은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쌍차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들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3년 쌍용자동차 정문 앞 철탑 고공농성장에 올라 당시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을 만나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쌍용차 국정조사가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없었다.
2015년 쌍용차 안 굴뚝 고공농성에 돌입한 해고노동자들에겐 “‘이기는 정당’ 만들어 이분들이 다시는 철탑 위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고노동자 120명은 기약 없는 복직을 기다리고 있고, 당시는 야당 의원이었지만 이제는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은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서른 번째 죽음에 분명한 정치적 책임이 있다”며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견뎌냈을 그러나 다시 살릴 수 없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죽음 앞에 무엇을 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죽음을 부른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살인진압과 사법농단이라는 총체적 국가폭력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또다시 이 죽음을 외면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 먼저’인 대통령”이라고 했다.(출처 레디앙 기사에서 인용)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정책이 기대와는 달리 반노동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죽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반노동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문제해결을 약속 받은 노동자가 문제해결을 약속했던 대통령에게 죽음으로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죽음에 답을 해야 한다. 적어도 쌍차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진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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