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5일 일요일

뇌출혈에 코뼈까지 부러진 듯 “깨어나도 왼쪽 몸 마비될 우려”

등록 :2015-11-15 19:37수정 :2015-11-15 21:42


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농민 백남기씨가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동료들이 옮기고 있다.  뉴시스
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농민 백남기씨가 14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동료들이 옮기고 있다. 뉴시스
물대포에 쓰러진 농민 백남기씨

보성 가톨릭농민회장 맡고 있어
“그래, 밀도 다 심어불고(심어놓았고) 한가하니… 가자!” 전남 보성에서 농사를 짓던 백남기(68)씨는 “농민대회에 가자”는 동료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보성에서 가톨릭농민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14일 아침 농민 120여명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이날 오후 3시께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리는 서울에 도착한 백씨는 4시간 뒤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졌다. 서울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차벽을 치고 막아선 경찰은 이날 저녁 6시57분께 집회 행진을 하다가 차벽 앞으로 다가간 백씨를 향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쐈다. 백씨는 강한 수압의 물대포를 직접 맞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분사는 그가 쓰러진 뒤에도 15초 이상 이어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백씨는 현재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의식이 없는 상태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15일 오전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농민 한 분이 안타깝게도 경찰의 살인적인 폭력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경찰의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병실을 다녀온 가족과 동료들은 “머리뿐만 아니라 코뼈도 부러진 듯 부풀어 있고, 깨어나도 왼쪽 몸이 마비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수십개의 약물을 단 상태로 백씨가 누워 있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들은 오랫동안 농민운동에 앞장서온 백씨의 부상을 안타까워했다. 백씨와 30년 넘게 알고 지냈다는 최영추(68)씨는 “학생운동을 하고 가톨릭 수도원 생활을 거쳐 1981년부터 보성에 자리를 잡고 친환경·유기농업을 시작했던 사람이다. 순수한 농사꾼이자 우리 지역 농민운동의 선구자 같은 분”이라고 했다. 백씨는 유기농 쌀과 밀, 콩을 기르고 직접 고추장, 된장을 담가 팔았다. 동료들은 백씨가 이날도 “경제논리에 밀려나는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나왔다”고 전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백씨를 포함해 14일 집회에서 뇌진탕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 골절, 홍채 출혈 등 중상을 입은 참가자 가운데 우리가 확인한 수만 15명에 이른다”고 15일 밝혔다. 같은 날 경찰은 보도자료를 내고 “시위대의 폭력 행사로 경찰관 113명이 다치고, 경찰버스 50대가 부서지는 등 상당한 경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불법' 투표라고? 이것이 영덕의 민심이다


[영덕대게를 부탁해요!] 뜨거웠던 주민투표... 반대 '91.7%'
김종술 기자 쪽지보내기 | 15.11.16 11:01


▲ 개표장을 찾은 한 주민의 배낭에 매달린 ‘핵발전소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가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 김종술

2015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 경북 영덕은 투표 열기로 뜨거웠다. 영덕의 구불구불한 해안 길을 따라 천혜의 자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깊은 산골길에는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나뭇가지가 찢어질 듯 매달린 감나무에도 붉은 가을이 들었다.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청정지역에 핵발전소라니...

인구 4만 명의 소도시 영덕에서 핵발전소 유치 찬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가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이어졌다. 거리에서 나부끼는 현수막만도 1만 장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민간 주도로 치러진 투표소에는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인의 발길도 이어졌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500여 명의 시민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찾았다. 언론사 기자들도 몰려들어 취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핵발전소 반대 91.7%] 아이들까지 업고 나온 투표장

▲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가 한꺼번에 온 ‘3대 유권자’도 있었다. 거동이 편치 않아 보이는 106세 최고령 할머니도 핵발전소 유치 찬반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택시까지 대절해서 친구까지 모시고 온 팔순의 할머니. ⓒ 김종술

"넘어지면 다쳐!"

투표 당일 한 엄마가 투표장 앞에서 소리쳤다. 잰걸음을 옮기는 또 다른 젊은 엄마 등에는 갓난아이가 잠들어 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뒷짐 지고 느린 걸음으로 뒤따르는 할아버지도 투표소로 향했다.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가 한꺼번에 온 '3대 유권자'도 있었다. 거동이 편치 않아 보이는 106세 최고령 할머니도 핵발전소 유치 찬반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후손들의 미래를 위한 한 표였다.

개표 결과 91.7%의 핵발전소 유치 반대. 쉽게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 11일과 12일 20개 투표소에 1만1209명이 몰렸다. 7.7%, 865명만이 유치 찬성표를 던졌다. 나머지 0.6%는 무효표로 처리됐다.

투 표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핵발전소 유치 반대 의견은 55~60%였는데, 이 수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여론이 억눌려 왔다는 뜻이다.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와 한수원의 집요한 물량공세 속에서도 굳세게 견디면서 자기 표심을 지켜온 것이다.  

짧 은 기간에 유권자 10명 중 3명이 투표장으로 나왔다. 보수 성향이 강한 영덕에서 정부정책에 반기를 든 것으로, 위기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게로 유명한 '청정 영덕'. 송이 생산량도 전국 1위지만 브랜드 가치가 주변 지역에 밀려 찬밥 신세다. 여기에 핵발전소까지 지어진다면 천혜의 자연을 찾아드는 관광객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끈 것이다.

[엄청난 방해공작] 선심성 관광에 '도촬'까지

▲ 12일 오전 11시 영덕군 축산면 제2 투표소 축산항 투표소 50m 부근에 새벽부터 렌터카 두 대가 CCTV를 찍는 것이 알려지면서 경찰이 출동하고 투표소 관리원들이 몰려들었다. ⓒ 김종술

주민들이 자기 동네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인데도 방해가 만만치 않았다. "원전을 반대하는 단체가 주도하는 주민투표는 '주민투표법'에 따른 합법적인 투표가 아니며, 영덕군의 행정 지원이 없다"고 윤상직 산업통산부장관 장관은 말했다. 투표하기도 전에 재를 뿌렸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사인이 담긴 유인물이 집집이 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민투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공무원들의 수상쩍은 행동이 여기저기서 포착됐다. 군청 직원들은 투표하지 말라고 공공연하게 종용했다. 투표 당일에는 청사가 텅텅 비었다. 군수도 기자들이 들이대는 마이크를 교묘하게 피해갔다. 중앙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일이기에 주민의 뜻을 살피는 일을 포기한 것이다.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의 투표 방해 전술은 치밀했다.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한수원이 주민들을 온천관광에 선물까지 안기고 저녁까지 거하게 대접한다는 제보를 받고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저녁 식사 접대가 이뤄지는 오리전문점을 급습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여전히 접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관련기사: 영덕 주민들에 밥 사주고... '주민투표 소문' 사실이었다)

"정부가 불법이라고 하던데 투표는 해서 뭐하노."

한 수원은 20곳의 투표소마다 차량 3~4대를 배치하고 이렇게 외쳤다. 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180cm 이상의 건장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차 안에서 밥을 먹으며 대기했고, 심지어 초소형 블랙박스를 통해 투표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도촬했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면 '초상권'을 내세우며 강하게 제지하기도 했다. 당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투 표 전부터 도로 곳곳에 내건 현수막 문구는 날이 갈수록 강경한 톤으로 바뀌었다. 투표가 임박해서는 '원전반대 불순 좌파세력 강력히 규탄한다!'는 살벌한 문구도 등장했다. 동네 생활 투표를 '이념 투표'로 몰아가려는 의도다.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원전을 찬성하는 막장 현수막도 내걸었다.     

[투표, 그 후] 277명 미달하기에 '무효'?

▲ 11일~12일 양일간의 투표가 끝나고 개표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인구 4만의 영덕군에 이렇듯 많은 기자들이 몰려든 것도 처음이라고 한다. ⓒ 김종술

정부는 이번 주민투표를 불법선거로 못 박았다. 동창회 선거도 지원하는 선관위는 '핵발전소 유치'라는 주민들의 중차대한 미래가 걸린 선거에서 선거인 명부조차 주지 않았다. 불법이라고 윽박질렀고 철저하게 외면했다.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 발표가 난 뒤에는 태도를 약간 바꾸었다. 중앙선관위는 유권자 수치를 언론에 제공했고 주민투표법상 효력을 문제 삼았다. 일부 언론은 중앙선관위 유권자 3만4432명(9월 기준)을 기준으로 주민투표법상 효력 수치인 3분의 1에 미달되기에 효력이 없다고 보도했다. 1만1478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 데 277명이 미달됐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그제야 언론 보도를 통해서 유권자 수치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수치다. 부재자 투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재자를 제외한다면 현 총유권자 대비 약 41%가 투표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총력을 기울여 추진한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20% 전후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투표 에 참여했던 주민들은 허탈했다. 선관위가 명부를 주지 않아서 발품을 팔면서 1만2008명의 선거인 명부를 만들었다. 시장통을 돌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핵발전 유치 반대 서명과 함께 만든 '땀에 전 명부'였다. 당초 서명했던 모든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향하지는 않았지만 선거 당일 신규 투표인 명부를 등록하고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아서 1만1209명의 유권자를 확보한 것이다.

압도적인 승리의 환호성부터 터져 나와야 할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는 정부와 일부 언론의 '무효 선언'에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하지만 핵발전소 유치 반대에 대한 폭발적인 민심을 확인하며 몸을 추스르고 있다.

이 번 선거의 법적 유효성을 가른 277명. 정부와 한수원의 엄청난 '방해 공작'만 없었다면 훌쩍 뛰어넘었을 수치다. 만약에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했다면,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를 인정했을까? 지난 2010년 영덕군은 한국수력원자력에 핵발전소 부지 유치 신청서를 내면서 인구 4만 명 중 399명의 서명을 첨부했다. 그마저도 조작 의혹이 일었다. 또 이번에 투표한 유권자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치다. 1만명의 의사보다 399명의 의사를 중요시한 것이다. 이게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민주주의일까?

[영덕을 떠나며] 희망을 보았다

▲ “(투표) 귀찮아, 난 그럭저럭 살겠지만...그런데 아이들은 살아야 하잖아”라고 말씀하시던 팔순 어르신이 밭고랑처럼 골 자리가 파인 손으로 투표를 하고 있다. 영덕의 희망을 보았다. ⓒ 김종술

단식과 투표를 이끌었던 이강석 군의장의 지도력은 대단해 보였다. 군의원 전원이 투표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국회의원부터 군수, 군의원까지 몽땅 새누리당인 곳에서 정치생명을 걸지 않고서는 어려웠을 결정이었다.

박 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대외협력위원장, 강한 듯 보이지만 눈물 많은 여자였다. 그녀를 보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보인다. 주민들 이야기만 나오면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오는 눈물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투표를 마치고 개표 직전 박 위원장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처음 인명부를 만들면서 온갖 멸시와 고통이 뒤따랐다. 온갖 고생 끝에 8000명의 인명부를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주변의 도움으로 1만2000명 이상의 숫자를 채웠다. 지금 득표율은 관심이 없다. 주민들이 어렵게 참여한 만큼 무사히 주민투표를 마칠 생각뿐이다.

더욱이 영덕의 주민들만으로는 불가능했을 일들을 수백 명의 외부 연대자들과 시민들이 함께 해서 주민투표가 가능했다. '탈핵' 쪽의 승리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녹색당이 공동 기획안 '영덕대게를 부탁해요!' 응원글쓰기 캠페인에는 400여 명이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영덕 주민들의 핵발전소 유치 반대 운동을 격려하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민중의 절규를 ‘폭력’으로 매도하지 말라

폭력이 아니라서 차벽 못 뚫은 거다

김갑수 | 2015-11-16 11:48: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폭력이란 무엇이고 비폭력이란 무엇인가? 길게 말할 것도 없이 14일의 두 역사적 사건이 이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파리가 폭력이라면 서울은 비폭력이었다. 물론 서울에서도 폭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이 폭력이었다면 시위 군중은 비폭력이었다.
대학로에서 집회가 끝난 시각은 3시 35분, 약속된 시간에 맞춰 광화문으로 가기에는 조금 늦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행진은 시작되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인근 성균관대학의 논술고사가 시작되는 4시 이후에 움직이자고 했고 시위 군중은 이에 따랐다.
시위대는 질서정연하게 광화문 가까이까지 행진했다. 종로 1가 일대는 이미 경찰이 남발한 물대포로 인해 수해현장 같았고 도로는 물론 골목마다 매캐한 최루가스 때문에 눈이 따끔거리고 기침이 터질 정도였다.
<이미지 출처 : 한겨레>
시위군중은 거대하고도 완벽한(?) 차벽을 넘은 적이 없다. 이는 경찰 스스로 차벽에 써 놓은 ‘폴리스라인’을 넘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곳에 다가가기만 해도 물대포를 쐈고, 물줄기를 피해 물러나는 사람들에게도 최루액을 발사했다. 누가 폭력이고 누가 비폭력인가?
물대포와 최루액은 차도 인도 가리지 않고 난사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마스크와 수건으로 제 입을 막을지언정 경찰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최루 성분은 인근 음식점 내부와 화장실에까지 들어차 있을 정도였다.
물론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은 일부 시민이 경찰버스와 차벽 위의 경찰에게 저항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가 10명 안팎에 불과했다는 것은 오히려 이 시위가 얼마나 온순한(?) 것이었는지를 입증하는 사례일 따름이다.
폭력이란 불법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원래 차벽부터가 위헌적인 것이고 그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통행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대포와 최루액 발사가 불법이듯이 쇠줄로 연결한 700여 대의 차벽 모두가 불법적인 것이다. 불법적인 구조물을 이용하여 위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폭력 아니고 또 뭐란 말인가?
조선일보에게 묻는다. 폭력시위가 무언지를 아는가? 만약 어제(14일)의 시위가 폭력이었다면 지척에 있던 너희 건물이 배겨날 수 있었을까? 너희들이 현장에서 사진 찍고 기사 송고할 수 있었을까? 아니 너희들이 감히 그곳에 얼씬거리기라도 할 수 있었을까?
농민들이 상여를 메고 차벽에 접근했을 때, 경찰 말대로의 ‘폴리스라인’을 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물대포를 난사하여 사람을 쓰러트리고 구급차에까지 최루액을 발사한 게 폭력 아니고 뭐란 말인가? 어제(14일) 시위에 폭력이 있었다면 그 폭력의 시작도 끝도 모두 경찰의 것이었다.
조선일보는 더 이상 사람 웃기지 마라. 횃불은 횃불이고 도로 점거는 도로 점거일 뿐이다. 그게 왜 폭력이라는 것인가? 진짜 폭력이라면 러일전쟁 때 동경시민들이 강화조약에 찬성한 한 신문사를 찾아가 사옥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린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몇 년 전 호주에서 소 값 폭락했다고 농민들이 시위했을 때 트랙터 동원하고 소를 난자하여 죽인 일이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1만 명 이상 모인 시위가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는 예는 거의 없다. 어제(14일) 시위 현장을 지켜보며 나는 한국인은 참으로 평화를 애호하는 기질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최소로 잡아 10만 명 이상은 족히 모였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돌멩이를 들거나 도시 시설물을 건드리는 걸 보지 못했다.
어제(14일)의 시위가 폭력이었다고? 차벽을 공격했다고? 바로 알아야 한다. 폭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벽을 넘지 않고 밧줄을 써서 시위대 쪽으로 당긴 것이다. 이는 폭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벽을 뚫지 못했다는 뜻이다. 폭력 군중이었다면 그 차벽 하나를 넘지 못했을까? 정말 분노가 치밀면 차벽보다 수십 배 더 높고 험한 산성의 성벽도 넘어가는 것이 민중이다.
다시 말하자면 11월 14일의 파리와는 정반대로 서울은 비폭력이었다. 11월 14일의 폭력은 경찰이었고 비폭력은 민중이었다. 정작 위험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비폭력을 폭력이라고 매도만 하면 언제 어디서 ‘진짜 폭력’이 터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시민은 국정화를, 노동자는 노동개악을. 젊은이는 헬조선을, 농민은 밥쌀수입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절규’였다. 어제의 사건은 ‘절규’를 평화적으로 ‘데몬스트레이트’ 할 줄 알았던 실로 온순한 민중의 민주적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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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평양생물기술연구원 깜짝 놀랄 몇가지

북, 평양생물기술연구원 깜짝 놀랄 몇가지

종업원 대부분 일하면서 배우는 대학생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11/16 [12:5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평양생무연구원은 80여가지의 해충과 구제하기 힘든 진드기류를 100% 죽일수 있는 생물농액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지난 6월 한국에 메르스 사태가 맹위를 떨치며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을 당시 조선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평양생물기술연구원 현지지도 소식을 발표했고 미국은 이 생물연구소를 세균전(탄저균)을 위한 시험연구소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주장에 대해 조선은 국방위원회 담화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상하원의원 및 장차관. 국방부 관계자들까지 모두 데리고 평양을 방문하라면서 “그 기회에 첨단을 돌파한 평양 생물기술연구원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며 "진짜 인권이 보장된 사회가 어떤 것인지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 미국측은 더 이상의 반대 의견이나 견해를 표명하지 않았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6월 평양생물연구원를 현지지도하면서 “우리 식의 생물농약을 연구 완성했으며 공업적 방법으로 생산을 정상화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춰놓았다.”고 크게 치하했다.

해외동포 단체가 운영하는 한 싸이트에서는 지난 14일 내나라를 인용 평양생물연구소를 새롭게 소개했다.

‘내나라’ 사이트는 평양생물기술연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 지난 6월 평앵생물연구원을 찾은 김정은 제1위원장은 생물연구원의 기술 과학적 성과를 크게 치하하며 만족을 표했다.     ©

“생물 산업은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건강, 식량, 에네르기(에너지), 환경 등 난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런 것으로 하여 생물기술연구 및 응용분야의 발전 수준에 따라 해당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평가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싸이트는 “오늘 많은 나라들에서는 생물산업을 국가적인 전략산업, 핵심산업으로 내세우고 그 발전에 큰 관심을 돌리고 있다.”면서 “조선에서는 평양생물기술연구원을 잘 꾸려놓고 과학자들의 지혜를 발동하여 우리 식의 생물농약을 연구 완성하였다. 그리고 공업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정상화할 수 있는 토대도 갖추어 놓았다. 생물기술연구원 과학기술 집단이 이룩한 첨단 수준의 생물기술은 오늘 세계적으로 발전된 몇 개 나라들만이 독점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평양생물연구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1세기 첨단생물농약을 연구 개발할 데 대한 뜻을 받들고 조국의 해당 부문 과학자들은 짧은 기간에 문헌조사와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그 생산기술개발에 고심어린 탐구를 기울였다고 소개했다.

싸이트 기사는 농업용항생소를 이용하여 만드는 이 생물농약은 구제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진 각종 진드기류를 포함하여 80여 종의 병해충들을 거의 100% 죽일 수 있는 생물 살충제라고 밝혔다.

또한 농산과 축산, 과수, 원예 및 원림사업에 절실히 필요할 뿐 아니라 인체와 토양, 생태환경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생물농약이라고 측징을 설명했다.

이어 여구원 연구사들과 기술자들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완강히 뚫고 나가면서 연구종자를 쥔 때로부터 5년만에 중간규모에서의 공업화실현에 성공하였다고 전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몸소 과학자들이 시험적으로 생산한 생물농약을 보아주고 대단히 만족해하며 그들도 미처 생각지 못한 생물농약생산의 보다 높은 공업화 목표를 제시하였다고 밝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물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시사했다.

내나라는 평양생물기술연구원 과학자들은 1년 남짓한 기간에 생물농약 생산의 공업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생물제품공장도 세웠다면서 생물제품공장에는 생물농약을 공업적인 방법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무균화, 무진화, 무인화가 높은 수준에서 실현되어 있다고 생산 정형을 실었다.

이 매체는 균준비실, 무균조작실, 진탕배양실, 균검사실, 발효장들에는 현대적인 각종 설비들이 갖추어져 있고 깨끗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종합조종실에서는 발효장의 모든 탱크들과 도관들의 작업을 프로그람에 의해 자동조종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무균공기, 무균물 생산을 비롯하여 생산공정의 무균화, 무진화를 위한 과학기술적 요구가 원만히 보장되고 있다고 밝혀 연구원의 시설이 최첨단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공장에서는 생산과정에  나오는  부산물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써 완벽에 가깝게 재활용 되고 있음도 시사했다.

특히 놀랄만할 사실은 공장의 종업원들은 대부분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된 대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기사는 “그들은 첨단기술에 의거하고 최신식설비로 장비된 공장에서 우리 힘과 기술로 공장의 생산정상화와 현대화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결의에 넘쳐있다.”고 게재했다.
이 기사로 미루어 볼 때 최첨단 생산시설을 갖춘 평양생물연구원의 운영이 정규대학생도 아닌 일하면서 배우는 대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로 이는 북의 과학기술 수준을 가늠할 수 있어 놀라을 주고 있다.

민중총궐기, 대통령 사과·경찰청장 즉각 파면 요구


경찰 살수 피해자 백 씨 뇌출혈 수술...의식회복 안돼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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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5  14: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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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강신명 경찰청장의 즉각 파면을 요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남 농민 백남기(68살)씨가 경찰의 직사 물대포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가운데 전날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투쟁본부)’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강신명 경찰청장의 즉각 파면을 요구했다.
투쟁본부는 15일 오전 백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집회와 평화행진을 원천 봉쇄하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살인적 진압을 가한 경찰 당국을 강력 규탄한다”며,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살인진압을 강행한데 대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강신명 경찰청장을 즉각 파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조영선 사무총장은 경찰이 피해자 백씨에게 20초 이상 안면을 겨냥해 조준 살수하고 뒤로 쓰러져 넘어진 이후에도 살수를 멈추지 않았으며, 구조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조차 살수로 위협했던 정황 등은 업무상 상해를 훨씬 뛰어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백씨는 현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뇌출혈 수술을 받고 있으며,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쟁본부 관계자는 백씨가 전날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던 상황에 더해 병원에 입원한 후에 코뼈 함몰과 안구 이상 등이 발견됐다는 가족들의 전언이 있으나 의학적 소견이 필요한 부분이어서 추가적 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영선 사무총장은 사건 발생 직후 촬영된 동영상 자료와 증언 등을 토대로 경찰이 14일 오후 6시 56분 11초부터 20초 이상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백씨의 얼굴 정면을 향해 직격으로 물대포를 살수하고 몸이 완전히 휜 상태로 뒤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집요하게 얼굴을 향해 정조준 살수를 계속했으며, 이미 넘어진 백씨의 얼굴을 향해 살수를 계속함으로써 1미터 이상 뒤로 쓸려가는 상황이 있었다고 밝혔다.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백씨는 이미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며,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경찰은 백씨를 구조하기 위해 나섰던 이들에게도 집중적으로 살수를 펼쳤다고 한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어제 경찰의 대응은 자국 국민들에게 하는 행위라고는 볼 수 없으며, 적군 또는 적대적 세력에게나 하는 수준”이라고 분개했다.
박 대표는 “백씨가 물대포를 바로 맞고 1~2미터 튕겨져 나갔다는데, 이는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에 해당될 것”이라며, “최소한 현장 책임자와 직접 작동했던 사람은 구속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중의 요구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민주주의 제대로 하라’는 것인데 이러한 민중의 간절한 염원을 담은 평화적 행진을 원천 봉쇄한데서부터 나온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서도 금지시킨 차벽설치와 원천 봉쇄를 서슴지 않고 하고 있는 박근혜·새누리 당 정권의 막장방식의 살인 진압에 대해서는 국민적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 이날 기자회견 후 별도로 백씨 사고 당시 동영상을 상영하는 자리가 있었다. 쓰러진 백씨의 오른쪽 뺨으로 피가흐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11월14일 오후 6시 56분 11초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에 의해 백씨가 쓰러지는 장면.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날 집회 부상자 치료에 나섰던 보건의료단체연합 진료지원팀은 물대포 자체가 매우 강력한 물리력으로 사람을 쓰러지게 하여 뇌진탕이나 골절을 일으켰던 일들이 여러번 일어났기 때문에 “이번 백 씨의 유감스러운 부상이 ‘예정된 참사’였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진료지원팀은 백씨 외에도 전날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경찰의 물대포 직사에 따른 눈의 홍채출혈, 골절(의증), 인대손상이 다수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또 인체에 위험한 물질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는 파바(PAVA, 캡사이신)를 경찰이 물대포에 섞어 살수하거나 분무형태로 고농도로 살포함으로써 안 손상, 열상(찢어짐), 피부상해, 호흡곤란 등 상해가 의료진들이 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생했고 응급진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날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기 위해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한 ‘인권침해감시단’은 이날 브리핑에서 14일 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폭력적 진압’ 그 자체였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인권침해감시단에 따르면, 14일 경찰청은 경찰관 약 2만여명, 경찰버스 700여대, 차벽트럭 20대를 투입해 시민 50여명을 연행했고 집회기간 내내 물대포를 직사, 난사, 특정인 조준발사 하는 등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폭력적 진압을 서슴지 않았다.
농민 백씨와 유사한 피해사례가 많이 있었으며, 부상자를 운송하는 구급차 안으로 살수액이 들어가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평소와 달리 이날 유난히 긴 시간동안 물대포 살수가 이루어 졌으며, 여러 곳에서 매캐한 최루액이 섞였고 종로경찰서 앞에서는 최루액과 함께 초록색 색소가 섞여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는 한번 살수를 시작하면 최소 5분 이상 집중 조준 살수를 했으며, 잠시 멈추거나 방향을 바꾼 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등 해산할 때까지 3시간 가까이 인도에 서 있는 시민들에게 까지 무차별적인 물대포 살수가 이루어졌다.
발사할 물이 부족하자 소방방재를 위해 설치된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감시단은 경찰이 이날 광화문 사거리, 세종로 일대에서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인 오후 1시께부터 차벽설치를 준비하고 3시 무렵 광화문 사거리 차로에 선제적으로 차벽을 설치했으며, 대회 참가자들의 행진 경로가 아닌 헌법재판소, 안국동, 인사동에도 이미 차벽설치를 완료해 청와대로 향한 어떤 공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긴 장대에 매단 톱으로 시위대가 있는 차 아래쪽으로 휘두르거나 식용유를 뿌려 사고위험을 높였던 문제도 지적했다.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회 참가자들이 버스에 매단 밧줄을 풀기 위한 행위이거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경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집회의 보장과 시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 도중 기자회견장 주변에서는 기자를 사칭하며 메모를 하던 사람을 붙들어 신원확인을 하는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투쟁본부는 15일 오후 5시 서울대병원 앞에서 백씨의 쾌유를 빌고 경찰의 폭력적 진압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