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9일은 한글이 반포된 지 576해가 되는 한글날이다. 1443년 세종대왕 지휘하에 집현전 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제정된 한글은 1446년 우리의 글로 반포된다.
세계 6대주 안에서 UN에 등록된 국가 수는 193개국, 세계지도에 표시된 국가는 237개국, 그중에서 자국의 언어를 가진 나라는 28개국뿐이다. 이 28개국이 모두 자국에서 스스로 창제한 “고유”한 문자를 쓰는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국의 고유문자는 한글을 비롯해, 한자, 로마어, 아라비아어, 인도문자, 에티오피아문자까지 단 6개뿐이다. 특히 한글은 2009년, 2012년 두 차례 개최되었던 세계문자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으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문자로 인정받기도 한다(2012.01.09. 연합뉴스).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알파벳 26자로 300여 개의 소리를 표현하는데, 한글은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론상 1만 1천여 개, 실제로 8천 7백여 개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세계문자올림픽 한글 발표자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 그야말로 경이로운 글자다.
세계는 지금 여러 방면에서 한국의 문화에 눈길을 주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지는 K-POP, <오징어게임>, <미나리>, <기생충> 등과 같은 영화나 드라마. OTT(Over-the-Top) 서비스의 확대로 이제 우리는 전 세계로 전파되는 한국의 매체와 작품들을 매일 확인한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은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관심도도 함께 끌어올렸다. 2021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에 한국어 단어 26개가 추가되었다. 1976년 OED에 우리 말이 처음 등재된 이후 45년간 한꺼번에 스무 개가 넘는 낱말이 등재된 적은 없었다. 이례적인 일이다(2022.09.28. 독서신문. 김혜경 기자).
그런데, 이 중에는 ‘먹방’, ‘치맥’, ‘피시방’, ‘대박’, ‘파이팅’ 등과 같은 낱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글이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우리의 문화가 세계인의 관심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어떤 시각으로 봐도 긍정적이겠지만, 뭔가 뒷맛이 씁쓸하다. 대박까지는 그렇다 쳐도 먹방, 치맥, 피시방, 파이팅이 우리 말의 대표 낱말이 될 수 있나?
가만히 곱씹어 보니, 현재 문화를 선도하는 20대의 언어 층위로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대표 낱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검색 창에 ‘신조어’나 ‘줄임말’을 넣어보면, “신조어 사전”, “Z세대 신조어 알아보기”, “신조어 테스트” 등등의 표제들이 줄줄이 펼쳐진다. 이 표제들 안으로 들어가 어떤 말이 있나 살펴보니, 핑프, 킹받네, 알잘딱깔센, 꾸안꾸, 꾸꾸꾸, 스불재, 갑통알, 쉽살재빙… … 끝도 없이 이어지는 외계어들이 날아다닌다. 먹방이나 치맥은 그야말로 애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런 국적 불명의 말들이 왜 횡행하고 있는 걸까?
신조어는 현재 문화를 주도하는 세대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언어다. 요즘 중,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청소년들을 “급식”이라고 부르고, 그들이 쓰는 언어를 “급식체”라고 한다. 10대들도 쓰는 저들만의 말투나 언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와 반대로 철 지난 농담이나 예스러운 말장난을 치는 사람들에게는 “아재 개그”라는 말도 한다. 정리하자면, 세대별로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있다.
1446년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반포하실 때 함께 펴낸 ‘훈민정음 언해본’의 첫머리에는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 문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아니”하여 새로 우리의 말에 맞는 글자를 만들었다는 창제 의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세종대왕의 우리 문자 창제 의지는 “소통”이었다. 우리의 말이 중국의 문자인 한자와 다르니 우리 말과 글을 통일하고, 서로 의사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데에 문제가 없도록 하고자 만든 글이 한글이다. 여기에 어떤 특권이나 계층의식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우리 사람들이 함께 쓰는 말과 글을 만들고자 한 것이 세종대왕의 뜻이다.
외국의 사전에는 영어와 우리 말이 뒤섞여 줄여진 말이 한국의 말로 실리고, 젊은 층에서 쓰는 말은 그 세대와 그들의 향유 문화층에서 약간만 빗겨나가 있어도 그 의미를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외계어처럼 들리는 이 단절이 한없이 가슴 아프다.
물론 언어에는 역사성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언어도 바뀌고, 그 의미도 변화한다. 그 흐름을 막으면서 원의만 지켜내자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쓰는 말에 따라서 세대가 구분되다 못해 아예 서로 말을 알아듣는 것조차 힘든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글 창제 당시 귀족계급에 속해 있던 사대부들은 한글의 반포를 반대한다. 이들에게는 이미 중국의 한자가 있었고, 한자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이 평민과 다른 삶을 누리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세종대왕의 한글은 이 계급의식을 타파하는 혁명의 상징이었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음소의 조합으로 소리 나는 그대로 낱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제자원리만 익히고 나면,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무수한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의 이와 같은 창제 원리는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국가군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기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는 “2022 신조어 테스트”라는 글이 종종 보인다. 수준을 정해두고 그 수준에 해당하는 신조어를 모르면 그만큼 시대에 뒤처진 세대에 속한다고 느껴야 한다. 그들이 정한 최저 수준에 속하는 신조어에는 ‘당모치’, ‘너또다’, ‘사바사’ 등과 같은 낱말들이 속해 있다. ‘당모치’는 ‘당연히 모든 치킨은 옳다.’, ‘너또다’는 ‘너 또라이라서 다행이다.’, ‘사바사’는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뜻이다. 최저 수준에서도 단절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런 신조어들은 그냥 줄임말이 아니다. 찬찬히 곱씹다 보면 뭔가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나 상태를 경시하는 듯한 함의를 느낄 때도 많다.
줄인 내용을 풀어놔도 의미 파악이 안 되는 말들도 허다하다. ‘억텐’의 경우가 그런 예로, ‘억지텐션’이라는 뜻인데, ‘억지’는 우리 말이고, ‘텐션’은 영어의 음차다. 텐션(tension)은 긴장 상태라는 뜻의 영어인데, 원래 의미는 불안이나 초조를 동반하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텐션이 좋다.”, “텐션이 높다는 말속에서 뭔가 신나고 흥이 오르는 상태의 긴장으로 사용한다. 거기에 ‘억지’라는 말을 붙여 쓰면 괜히 애써서 뭔가 흥을 유지하려고 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듯하다. 줄이면 ‘억텐’이다. 다 풀어놔도 원의와도 거리가 있으니 평소 그 문화권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의미 파악이 어렵다.
며칠 전, 학교 앞 카페 메뉴에서 “아샷추 맛집”이라는 말을 보고 도대체 뭘까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 추가’라는 뜻이었다. 뻔히 메뉴판을 보면서도 뭔지 몰라 물어보는 이 작은 일에서도 소통의 단절을 느껴야 했다.
10월 9일 다시 돌아온 한글날에만 백성의 소통을 위해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뜻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는 내내 지금의 이런 단절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배선윤 강사(교육혁신본부 교양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