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5일 금요일

100% 에너지자립 마을인데 실업률은 0%

18.10.06 12:01l최종 업데이트 18.10.06 12:01l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독일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Feldheim)은 주민 수가 130명 남짓인 농촌이다. 통일 전 동독 지역이었던 이 마을은 수도 베를린에서 자동차로 약 두 시간이 걸리는 시골인데도 세계 각지에서 방문객이 꽤 찾아온다. 주민들이 쓰는 모든 전기와 난방을 태양광·풍력·바이오연료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에너지전환(에네르기벤데) 모범마을'이기 때문이다.

돼지와 양, 옥수수와 밀을 키워 생계를 꾸려온 이 마을에는 현재 55개의 풍력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연간 250기가와트시(GWh)의 전기를 만든다. 옛 군용부지에 조성한 태양광단지에서는 연간 2.75G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또 농가의 돼지분뇨에서 바이오가스를 추출하고 이것으로 열병합발전기(CHP)를 돌려서 연간 4.15GWh의 전기를 얻는다. 1GWh는 4인 가족 기준으로 3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으로, 이 마을에서 생산한 전기는 1퍼센트(%) 정도만 주민들이 쓰고 나머지는 판매된다. 마을 사람들은 또 폐목재에서 나온 우드칩을 태우는 바이오매스 시설과 열병합발전소에서 얻은 열에너지로 난방과 온수를 쓴다.

쓰고 남는 전기 팔아 농가소득 보전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 펠트하임 마을의 태양광단지. 과거 군용부지였던 45만제곱미터(㎡), 축구장 약 60개 규모의 초지에 태양광 모듈 1만여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방목하는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를 오가며 풀을 뜯고 있다.
▲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 펠트하임 마을의 태양광단지. 과거 군용부지였던 45만제곱미터(㎡), 축구장 약 60개 규모의 초지에 태양광 모듈 1만여개를 설치했다. 주민들이 방목하는 양떼가 태양광 패널 아래를 오가며 풀을 뜯고 있다.
ⓒ 펠트하임 신에너지포럼
 
주민들이 쓰고 남은 전기는 '에네르기크엘러(Energiequelle)'라는 지역에너지 회사를 거쳐 독일 내 다른 도시에 판매된다. 지역에너지 회사는 판매 수익을 마을 주민과 나눈다. 주민들은 풍력·태양광 발전시설 부지 임대료도 받는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얻는 수익은 평균적인 독일 가정이 내는 연간 전력요금(2014년 기준 978유로·약 128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일부 주민은 지역에너지 회사에 고용돼 태양광설비를 점검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다. 옛 동독 지역은 통일 후 한때 30%까지 치솟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았고 지금도 일자리 사정이 나쁜 편이지만, 이 마을은 펠트하임 재생에너지사업 덕에 실업률 0%를 자랑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 1994년 주민과 지자체·에너지회사·중앙정부·유럽연합(EU)이 자금을 분담해서 시작했다.

지난 7월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BMWi) 초청으로 펠트하임을 방문했던 권필석(44)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지난달 10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재생에너지로 마을에서 쓰는 에너지를 모두 충당하고, 이익까지 얻을 수 있으니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더라"고 전했다. 그는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미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2009년 설립된 신재생에너지 전문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30여년 꾸준히 추진해온 '에네르기벤데'

독일에는 펠트하임처럼 '에너지 자립'과 '소득 보전' '일자리 창출'에 두루 성공한 마을의 사례가 많다. 이런 마을과 도시들이 모여 독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이루고 있다. 석탄과 석유를 줄이는 '탈화석연료',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산업경쟁력도 세계 최강수준으로 유지하는 나라로서 각국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를 오는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하는 탈핵일정을 지난 2011년 이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2050년까지 생산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원에서 얻는다는 목표로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가는 중이다.

오는 2030년까지 1990년도 탄소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하기로 하는 등 기후변화대응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러면서도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이자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탄탄히 하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탈원전을 확정한 2011년 이후 6년간 독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47%로, EU 평균 1.38%를 웃돌았다.
 
 독일은 신축건물의 재생에너지 활용 및 에너지 효율화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수도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은 1999년 재건축을 계기로 지붕의 유리 돔과 거울 기둥을 통해 자연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  독일은 신축건물의 재생에너지 활용 및 에너지 효율화를 의무화하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수도 베를린에 있는 연방의회 의사당은 1999년 재건축을 계기로 지붕의 유리 돔과 거울 기둥을 통해 자연채광 효과를 극대화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당하고 있다.
ⓒ 제정임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 에너지전환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전력의 80%를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에서 얻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세계적 석유파동으로 충격을 받은 후 '에너지원 다양화' '에너지 효율화'를 고민하게 됐다.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이 부상했지만 방사능의 위험성과 핵산업의 비민주적 의사결정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격렬한 반핵운동에 나섰다. 여기에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터지자 '원전 역시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를 잡았다. 체르노빌 사고 후 독일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이 추진되지 않았다.

1990년대 기후변화의 위협이 세계적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독일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주된 방향은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규제하고 재생에너지에는 경제적 유인(인센티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독일 정부는 1991년 세계 최초로 재생에너지 판매가격을 보장하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도입했다. 또 화석연료·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를 우선 이용하도록 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1998년에는 전력시장 자유화로 발전(생산)과 송·배전(공급) 업무를 분리해 민간에 개방했다.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 판매해 공급하는 과정을 특정 회사가 독점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전력 도·소매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한 것이다. 같은 해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사회민주당(SPD)-녹색당 연정은 1999년 화석연료로 발전한 전기와 휘발유에 환경세를 도입했고, 2000년에는 기념비적인 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했다. 이 법은 재생에너지 생산자가 향후 20년간 킬로와트시(kWh)당 고정된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관련 산업 발전에 기폭제가 됐다.

원전의 경우 사민당-녹색당 연정이 '2022년 무렵까지 100% 탈원전에 도달한다'는 합의를 이뤘으나 2005년 사민당과 대연정을 통해 집권한 기독민주당(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0년 자민당(FDP)으로 연정 파트너를 바꾼 뒤 이 기조가 흔들렸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탈원전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원전 가동기간을 2036년까지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독일 정부는 정계·학계·산업계·종교계·시민사회 대표로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고, '끝장토론' 등을 거쳐 '2022년까지 모든 원전 폐쇄'를 확정했다. 2011년 당시 남아 있던 원자로 17기 중 10기가 지난해까지 폐쇄됐다.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2주 후인 2011년 3월 26일 독일 시민들이 수도 베를린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베를린 외에도 함부르크, 쾰른, 뮌헨 등 주요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거리로 나와 ‘중단 없는 탈원전’을 촉구했다.
▲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2주 후인 2011년 3월 26일 독일 시민들이 수도 베를린에서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베를린 외에도 함부르크, 쾰른, 뮌헨 등 주요 도시에서 약 25만명이 거리로 나와 ‘중단 없는 탈원전’을 촉구했다.
ⓒ Flickr

'프로슈머'가 이끄는 에너지 민주주의

독일이 '탈화석연료'와 '탈원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게 된 원동력의 하나는 지역자치와 민주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분산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연료·원자력 등 대규모 발전소를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보다 소규모 분산배치가 쉬운 재생에너지 시설의 특성상 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던 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이 지역 단위로 원활하게 나누어졌다.

독일 재생에너지기구(AEE)에 따르면 2001년 66개에 불과하던 지역에너지협동조합이 2015년 1000개로 급증했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독일 전체 재생에너지 시설 중 42%가 지역에너지협동조합·농민·일반가정 등 시민 소유다. 독일의 4대 메이저 발전회사(E.ON, RWE, Vattenfall, EnBW) 소유 시설은 5.4%에 불과하며, 지역 군소회사 등으로 범위를 넓혀도 기업 소유 발전소 비중은 15.7%에 그친다.

자기가 사는 곳의 에너지 시설을 소유한 시민들은 에너지 사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역 여건에 맞는 시스템을 능동적으로 설계·통제하고, 판매이익을 나눈다. 일반 시민이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에너지 프로슈머'가 되고, 전기를 소비하는 지역과 생산·전송하는 지역이 분리되지 않는 '에너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규모 원전이 들어선 바닷가 마을 주민들이 생태환경 파괴와 방사능오염 등의 피해를 겪고, 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산골마을 등에 송전탑을 건설하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비민주주의'와 대조된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적한 산길에 자리 잡은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전력 소비자인 지역주민들이 가계나 마을협동조합 단위로 생산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이익 공유와 함께 ‘에너지 민주주의’가 증진되고 있다.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한적한 산길에 자리 잡은 주택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에서는 전력 소비자인 지역주민들이 가계나 마을협동조합 단위로 생산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이익 공유와 함께 ‘에너지 민주주의’가 증진되고 있다.
ⓒ 제정임

지역에서 쓰는 전력을 자급해 수익을 내는 분산형 시스템은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2016년 AEE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독일 시민들의 지지도는 93%에 달한다. 권필석 부소장은 "독일에서 풍력·태양광 등 발전시설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은 이유도 재생에너지의 경제적 이익을 (프로슈머인 주민들이) 함께 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5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전체 발전량의 80%

독일 정부는 2016년 기준 전체 발전량 중 33.9%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0년 35%, 2030년 50%를 넘어 2050년에는 8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 7월 12일 독일에너지·물산업협회(BDEW)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수력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이미 36.3%까지 늘어나 석탄발전(35.1%)을 추월했다. 1990년 재생에너지 전체 전력생산 비중이 3.6%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장세다. 세부 에너지원별로는 풍력이 17.6%, 태양광 7.3%, 바이오가스 7.1% 등이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탈원전 정책이 확정된 2011년 당시 17.6%에서 7년 만에 11.3%로 줄었다.
 
 1990년과 2018년 1~6월 독일의 전체 발전량 대비 발전원별 비중 변화. 석탄·원자력발전은 크게 줄고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1990년과 2018년 1~6월 독일의 전체 발전량 대비 발전원별 비중 변화. 석탄·원자력발전은 크게 줄고 풍력·태양광·바이오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IEA, BDEW, 나혜인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추진된 에너지전환정책의 결과, 독일은 2016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7% 줄이는 데 성공했다. 향후 감축 목표는 2020년 40%, 2030년 55%, 2050년에는 80%~95%다.

독일 재생에너지산업은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함과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에 고용된 노동자 수는 약 33만명으로, 2004년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연방경제에너지부는 2020년까지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매년 1만80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10.4기념 민족통일대회 “평화·번영·통일 새역사 써나가자”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공동호소문 채택… 김영남·리선권·조명균 연설
▲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남북은 5일 평양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 발표 11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면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갈 것을 다짐했다.
남북은 이날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민족통일대회를 갖고 공동호소문을 채택, “남북 정상이 두 손을 굳게 잡고 확약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분열과 대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진로를 밝혀주는 민족공동의 이정표”라며 이같이 밝혔다.
남북이 10.4선언 발표를 기념한 공동행사를 열어 함께 호소문을 발표하긴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언을 발표한 이래 처음이다.
남북은 또 공동호소문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계속 전진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야 한다”면서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남북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경이로운 성과들은 우리 민족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이루어낸 귀중한 결실이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땅에서 전쟁위험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우리의 강토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엄숙히 천명하였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은 그 실천방안을 명백히 밝혀주었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해 삼천리강토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남과 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를 활성화해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해나가야 한다”면서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천적 방안이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력,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큰 강물이 더는 거스를 수 없이 남북 삼천리에 굽이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 참석한 평양 시민들이 박수하고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민족통일대회에선 앞서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연설을 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10.4선언의 계승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는 새로운 희망으로 높뛰는 민족의 박동이 있고, 강렬한 통일 의지로 빛나는 겨레의 넋이 있고, 머지않아 현실로 나올 우리의 소망과 꿈이 담겨져 있다”며 “온 겨레는 사상과 제도 차이를 초월하고, 누구나 다 평화와 번영, 통일의 대업을 위한 민족적 대의에 모든 것을 복종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열의 고통과 대결을 겪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자기의 힘, 자기의 지혜, 자기의 뜻으로 하나 된 강대한 조국을 일떠세우는 것을 똑똑히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평화와 번영, 통일로 가속화하려는 성스러운 여정에 언제나 지금처럼 두 손을 꼭 잡고 민족의 휘황한 앞날을 앞당겨나가자”고 호소했다.
다음 연설에서 리선권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민족의 생사가 달린 것으로, 북남 관계의 개선과 발전의 최대 문제”라며 “북남 당국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시켜 군사분야 합의서의 이행을 점검하고 전쟁위협을 완전 종식시키고 실천적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빠른 시일 안에 철도와 도로 현대화 착공식을 가져 9월 평양선언을 힘차게 이행해야 한다”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이 지금까지 중단된 것은 안타깝다. 북남당국은 이들 사업의 새로운 길을 마련하고, 이행 의지가 얼마가 확고한가를 세상 사람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쪽을 대표해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연설했다.
조명균 장관은 연설에서 “난관이 있을 때마다 남북은 협의하면서 어려움을 넘어서 왔다. 앞으로도 남과 북은 이 땅의 공고한 평화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함께 해나갈 것”이라며 “11년의 시간을 넘어 남북 정상이 만났다. 이제 남북은 분단 70년을 넘어 누구도 가지 못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번영의 결실을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해찬 이사장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선언부터 평창올림픽, 4·27판문점선언, 9월 평양선언에 이은 일련의 과정은 분단 70년을 청산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향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적대와 분단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한반도에서 살게 될 것”이라며 “어떠한 일이 따를지라도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꾸준히 내딛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주석단 앞줄엔 남쪽 공동대표단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 오거돈 부산시장, 원혜영 의원, 지은희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 이창복 6.15공동실천선언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등이 앉았다.
북쪽에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박명철 6.15북측위원장 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차희림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안명국 조평통 부위원장 등이 자리했다.
대회가 열린 인민문화궁전엔 평양 시민 3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5일 오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김영남 북한(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해 박수하고 있다.
10.4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공동호소문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실천방안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을 채택하고, 온 겨레가 통일조국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1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련과 난관이 있었지만 10.4선언 이행을 위한 겨레의 힘찬 발걸음은 한 순간도 멈춤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도래한 따스한 올해 4월의 봄기운에 평화의 새싹은 기운차게 움트고 통일의 길에서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번영의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였습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빛나는 계승이며 온 겨레의 통일지향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획기적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기 위한 민족공동의 새로운 통일 이정표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온 겨레의 일치된 염원을 반영하여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들이 채택, 발표된 여기 평양에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지키고 과감히 실천하기 위하여 10.4 선언 발표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성취하려는 온 겨레의 지향과 의지가 일관되고 확고하다는 것이 오늘의 민족통일대회장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평화번영을 향한 겨레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해 나가려는 확고한 실천의지를 담아 온 겨레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계속 전진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가야 합니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경이로운 성과들은 우리 민족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이루어낸 귀중한 결실이고 소중한 자산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실현해 나가는 데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은 민족우선, 민족중시, 민족존중의 관점과 입장에서, 주인인 우리 민족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힘차게 열어 나가야 합니다.
2. 이 땅에서 전쟁위험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우리의 강토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전 세계에 우리 겨레보다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갈망하는 민족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은 이 땅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엄숙히 천명하였으며 9월 평양공동선언은 그 실천방안을 명백히 밝혀주었습니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하여 삼천리강토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70여 년 동안 이어져온 불신과 적대에 마침표를 찍고,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하여 대결과 전쟁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3. 남과 북 사이에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를 활성화하여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 접촉과 왕래는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이어주는 실천적 방안입니다.
각계각층의 왕래와 접촉,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력,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하여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큰 강물이 더는 거스를 수 없이 남북 삼천리에 굽이치도록 해야 합니다.
민족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들을 시급히 해결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 있는 날들에 남북당국과 대내외의 각 정당, 단체들, 각계각층 인사들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개최하여 겨레의 확고한 통일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해야 합니다.
우리 겨레의 항일역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전민족적 거사인 3.1운동 100주년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기념하여 우리 민족의 불굴의 기개를 다시 한 번 떨쳐야 합니다.
국제적인 체육경기들과 문화예술축제들에 남과 북이 함께 진출하여 민족의 슬기와 재능, 단합된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4. 온 겨레가 뜻과 힘을 합쳐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지키고 이행해 나가야 합니다.
남북 정상이 두 손을 굳게 잡고 확약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분열과 대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진로를 밝혀주는 민족공동의 이정표입니다.
선언은 길지 않아도 여기엔 새로운 희망으로 벅차오르는 민족의 숨결이 있고 통일의지로 뜨거워진 겨레의 넋이 있으며 머지않아 현실로 펼쳐질 우리 모두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은 남과 북이 아무리 훌륭한 선언들을 채택하고 좋은 합의들을 내놓아도 그것을 지키고 이행해 나가지 못한다면 빈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철저한 이행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남에 살든, 북에 살든, 해외에 살든 누구나 뜻과 마음을 합쳐 남북공동선언들의 이행에 저마다의 형편에 맞게 기여해야 합니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남북공동선언들을 확고히 지지하고 일관되게 실천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노력을 힘차게 기울여 나가야 합니다.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여!
지금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비상한 각오와 결단력을 가지고 평화와 번영, 통일의 큰 길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시대가 우리를 주시하고 역사가 우리를 평가할 것입니다.
모두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여 세계가 보란 듯이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역사를 써나가야 합니다.
10.4선언발표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2018년 10월5일 평양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서독' 중심 통일론 30년, 이제 '동독'에서 바라보기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①] 독일 신연방주 사람들을 만난 이유는?


올해 초만 해도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남북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해빙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인 북미관계 역시 화해의 전기를 맞았다. 

지금 필요한 건 공존과 교류의 길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세밀히 닦는 것이다. 그간 북한은 어떤 한국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한국에는 남극만큼이나 먼 땅이었다. 한국이 사실상 섬이었던 까닭이다. 이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남북이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만 그 다음(통일)을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통합'이 먼저 선행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교류가 시작된다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된다. 시민 각자가, 인민 각자가 교류의 주체가 된다. 이제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북한과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는 2019년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째 되는 해다. 그 30년간, 이를테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온 동독의 스무살 청년은 이제 50살이 됐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직업을 구했고, 어떻게 서독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을까?  

교류는 상호 동등히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9월 7일부터 약 이주일에 걸쳐 독일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독일 신연방주, 즉 옛 동독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 동독 체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 시절 동서독이 얼마나 달랐는지, 재통일 후 두 체제가 어떻게 하나로 융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를 개개인 삶의 여정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독일 재통일은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다. 모두가 대략적인 재통일 이야기를 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여 후인 1990년 10월 3일, 분단됐던 서독과 동독은 다시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다.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이었다. 독일은 급박했던 재통일의 비용을 치르느라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탄탄한 통일 국가로 다시 섰다. 지금도 유럽 경제를 견인하는 선진국 독일의 역사에 관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줄거리다.  

이 이야기에서 빠진 내용이 사람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동서독의 교류를 서독 정부, 서독 체제 중심적으로 들어왔다. 서독 정부가 이른바 '동방정책'을 이어왔고, 때맞춰 소련을 정점으로 한 공산 체제가 무너졌기에 재통일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실제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통일은 당시 극단적으로 다른 체제를 살던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동서 교류가 정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에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는지 등의 이야기를 통일의 약자였던 동독의 입장에서 우리는 정리해보고자 했다.  

통일 후 교류의 경험 역시 중요하다. 동서독 통일 후 이어진 동서 독일 사람들의 교류는 일방적이었다. 서독 자본이 주역이었고, 서독 정치가 주역이었고, 서독 사회가 주역이었다. 흡수 통일의 결과다. 동독은 철저히 조연에 머물렀다. 그 차이가 잘못된 교류로 이어졌다. 독일은 지금도 이 격차를 극복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다. '흡수통일은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강자 주도의 일방적 교류는 안 된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 사람이 동등하게 교류할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일로 북한 시장이 열리면 남한에도 일자리 기회가, 추가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식의 통일 설득론은 자칫 북한을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 독일 베를린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인근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취재팀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 사정은 다르다. 이제는 둘의 역사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두 분단 상황의 동질성이 오히려 논의되지 않을 지경이다.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오늘날 북한을 '우리의 이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청년세대 중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보다 북한사람을 더 가까운 이로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북한에는 이제야 기초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되고 있다. 자생적으로 피어난 '장마당 자본주의'다.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체제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선봉에 선 나라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 밀접하게 접목된 나라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낸 경험을 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처럼 다른 체제가 70년 이상 잦은 교류를 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우리가 남북 교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이다. 

때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야 숲이 살아난다. 정부가 숲을 조성하지만,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끔 하는 힘은 민간에서 나온다. 우리는 독일의 사례에서, 민족 통일의 당위론 차원에서 오직 큰 이야기만 하다 놓친 세밀한 이야기들이 결국 커져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벌어지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이에 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동독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최대한 세밀히 정리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동독에서, 통일 독일에서 한국의 과거사를, 북한의 오늘을, 미래에 평화로운 공존이 보장되는 한반도를 상상해보고자 했다. 동독인의 삶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다가올 교류의 시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각자의 삶만큼이나 제각기다. 그럼에도 화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북 교류에의 단초를, 반면교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11편의 이어질 이야기는 크게 통일 당시 성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통일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마지막으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독일 분단이 낳은 아주 특별한 기업사 한 편도 준비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서독' 중심 통일론 30년, 이제 '동독'에서 바라보기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①] 독일 신연방주 사람들을 만난 이유는?


올해 초만 해도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남북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해빙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인 북미관계 역시 화해의 전기를 맞았다. 

지금 필요한 건 공존과 교류의 길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세밀히 닦는 것이다. 그간 북한은 어떤 한국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한국에는 남극만큼이나 먼 땅이었다. 한국이 사실상 섬이었던 까닭이다. 이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남북이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만 그 다음(통일)을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통합'이 먼저 선행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교류가 시작된다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된다. 시민 각자가, 인민 각자가 교류의 주체가 된다. 이제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북한과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는 2019년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째 되는 해다. 그 30년간, 이를테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온 동독의 스무살 청년은 이제 50살이 됐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직업을 구했고, 어떻게 서독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을까?  

교류는 상호 동등히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9월 7일부터 약 이주일에 걸쳐 독일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독일 신연방주, 즉 옛 동독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 동독 체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 시절 동서독이 얼마나 달랐는지, 재통일 후 두 체제가 어떻게 하나로 융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를 개개인 삶의 여정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독일 재통일은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다. 모두가 대략적인 재통일 이야기를 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여 후인 1990년 10월 3일, 분단됐던 서독과 동독은 다시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다.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이었다. 독일은 급박했던 재통일의 비용을 치르느라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탄탄한 통일 국가로 다시 섰다. 지금도 유럽 경제를 견인하는 선진국 독일의 역사에 관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줄거리다.  

이 이야기에서 빠진 내용이 사람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동서독의 교류를 서독 정부, 서독 체제 중심적으로 들어왔다. 서독 정부가 이른바 '동방정책'을 이어왔고, 때맞춰 소련을 정점으로 한 공산 체제가 무너졌기에 재통일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실제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통일은 당시 극단적으로 다른 체제를 살던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동서 교류가 정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에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는지 등의 이야기를 통일의 약자였던 동독의 입장에서 우리는 정리해보고자 했다.  

통일 후 교류의 경험 역시 중요하다. 동서독 통일 후 이어진 동서 독일 사람들의 교류는 일방적이었다. 서독 자본이 주역이었고, 서독 정치가 주역이었고, 서독 사회가 주역이었다. 흡수 통일의 결과다. 동독은 철저히 조연에 머물렀다. 그 차이가 잘못된 교류로 이어졌다. 독일은 지금도 이 격차를 극복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다. '흡수통일은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강자 주도의 일방적 교류는 안 된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 사람이 동등하게 교류할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일로 북한 시장이 열리면 남한에도 일자리 기회가, 추가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식의 통일 설득론은 자칫 북한을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 독일 베를린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인근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취재팀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 사정은 다르다. 이제는 둘의 역사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두 분단 상황의 동질성이 오히려 논의되지 않을 지경이다.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오늘날 북한을 '우리의 이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청년세대 중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보다 북한사람을 더 가까운 이로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북한에는 이제야 기초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되고 있다. 자생적으로 피어난 '장마당 자본주의'다.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체제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선봉에 선 나라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 밀접하게 접목된 나라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낸 경험을 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처럼 다른 체제가 70년 이상 잦은 교류를 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우리가 남북 교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이다. 

때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야 숲이 살아난다. 정부가 숲을 조성하지만,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끔 하는 힘은 민간에서 나온다. 우리는 독일의 사례에서, 민족 통일의 당위론 차원에서 오직 큰 이야기만 하다 놓친 세밀한 이야기들이 결국 커져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벌어지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이에 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동독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최대한 세밀히 정리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동독에서, 통일 독일에서 한국의 과거사를, 북한의 오늘을, 미래에 평화로운 공존이 보장되는 한반도를 상상해보고자 했다. 동독인의 삶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다가올 교류의 시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각자의 삶만큼이나 제각기다. 그럼에도 화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북 교류에의 단초를, 반면교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11편의 이어질 이야기는 크게 통일 당시 성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통일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마지막으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독일 분단이 낳은 아주 특별한 기업사 한 편도 준비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서독' 중심 통일론 30년, 이제 '동독'에서 바라보기

[장벽 너머 사람들을 만나다 ①] 독일 신연방주 사람들을 만난 이유는?


올해 초만 해도 이 같은 반전이 일어나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남북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해빙의 물꼬를 텄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인 북미관계 역시 화해의 전기를 맞았다. 

지금 필요한 건 공존과 교류의 길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세밀히 닦는 것이다. 그간 북한은 어떤 한국인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한국에는 남극만큼이나 먼 땅이었다. 한국이 사실상 섬이었던 까닭이다. 이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남북이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만 그 다음(통일)을 본격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 통합'이 먼저 선행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부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교류가 시작된다면 정부는 필연적으로 뒤로 물러나게 된다. 시민 각자가, 인민 각자가 교류의 주체가 된다. 이제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다. 과연 우리는 북한과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는 2019년은,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째 되는 해다. 그 30년간, 이를테면 베를린 장벽을 넘어 온 동독의 스무살 청년은 이제 50살이 됐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직업을 구했고, 어떻게 서독사람들과 어울려 살았을까?  

교류는 상호 동등히 이뤄져야 한다 

<프레시안>은 지난 9월 7일부터 약 이주일에 걸쳐 독일을 둘러봤다. 정확히는 독일 신연방주, 즉 옛 동독 지역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모두 동독 체제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난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 시절 동서독이 얼마나 달랐는지, 재통일 후 두 체제가 어떻게 하나로 융합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를 개개인 삶의 여정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독일 재통일은 어느 정도 익숙한 주제다. 모두가 대략적인 재통일 이야기를 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1년여 후인 1990년 10월 3일, 분단됐던 서독과 동독은 다시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다.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이었다. 독일은 급박했던 재통일의 비용을 치르느라 한때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고생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탄탄한 통일 국가로 다시 섰다. 지금도 유럽 경제를 견인하는 선진국 독일의 역사에 관해 우리가 익히 들어온 줄거리다.  

이 이야기에서 빠진 내용이 사람이다. 우리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동서독의 교류를 서독 정부, 서독 체제 중심적으로 들어왔다. 서독 정부가 이른바 '동방정책'을 이어왔고, 때맞춰 소련을 정점으로 한 공산 체제가 무너졌기에 재통일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실제 사람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통일은 당시 극단적으로 다른 체제를 살던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동서 교류가 정말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에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는지 등의 이야기를 통일의 약자였던 동독의 입장에서 우리는 정리해보고자 했다.  

통일 후 교류의 경험 역시 중요하다. 동서독 통일 후 이어진 동서 독일 사람들의 교류는 일방적이었다. 서독 자본이 주역이었고, 서독 정치가 주역이었고, 서독 사회가 주역이었다. 흡수 통일의 결과다. 동독은 철저히 조연에 머물렀다. 그 차이가 잘못된 교류로 이어졌다. 독일은 지금도 이 격차를 극복하는 중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다. '흡수통일은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강자 주도의 일방적 교류는 안 된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남북한 사람이 동등하게 교류할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통일로 북한 시장이 열리면 남한에도 일자리 기회가, 추가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식의 통일 설득론은 자칫 북한을 단순한 투자 대상으로만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 독일 베를린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인근에 남아있는 베를린 장벽의 잔해. 베를린 시내 곳곳에 장벽이 보존되어 있다. ⓒ특별취재팀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 사정은 다르다. 이제는 둘의 역사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두 분단 상황의 동질성이 오히려 논의되지 않을 지경이다.  

다른 체제는 다른 사람을 만든다. 오늘날 북한을 '우리의 이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오늘날 청년세대 중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보다 북한사람을 더 가까운 이로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북한에는 이제야 기초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식되고 있다. 자생적으로 피어난 '장마당 자본주의'다.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체제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최선봉에 선 나라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다시 말해 세계 경제에 밀접하게 접목된 나라다.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몰아낸 경험을 한 민주주의 국가다. 이처럼 다른 체제가 70년 이상 잦은 교류를 하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며 이어졌다. 우리가 남북 교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화성인과 금성인의 만남이다. 

때로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야 숲이 살아난다. 정부가 숲을 조성하지만, 나무를 건강하게 자라게끔 하는 힘은 민간에서 나온다. 우리는 독일의 사례에서, 민족 통일의 당위론 차원에서 오직 큰 이야기만 하다 놓친 세밀한 이야기들이 결국 커져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친구 사이에서, 연인 사이에서 작은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벌어지는 것과 같다. 한국 사회는 이에 관한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동독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최대한 세밀히 정리할 것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동독에서, 통일 독일에서 한국의 과거사를, 북한의 오늘을, 미래에 평화로운 공존이 보장되는 한반도를 상상해보고자 했다. 동독인의 삶을 거울로 삼아, 우리는 다가올 교류의 시간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인터뷰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는 각자의 삶만큼이나 제각기다. 그럼에도 화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북 교류에의 단초를, 반면교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11편의 이어질 이야기는 크게 통일 당시 성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 통일 당시 청소년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마지막으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독일 분단이 낳은 아주 특별한 기업사 한 편도 준비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 바란다.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다스는 MB것” 인정 못하는 조선일보

아침신문 솎아보기] 적폐청산 그만하자는 중앙·동아, 아직 멀었다는 한겨레·경향

정철운 기자 pierce@mediatoday.co.kr  2018년 10월 06일 토요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이고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점이 넉넉히 인정된다.” 11년만이다. 2007년부터 지금껏 수없이 반복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에 대해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결론 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제 92세까지 복역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정계선)는 5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16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대통령에게 7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징역 15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82억 7070만원을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실소유주로 인정되며 중형을 받았다. 
▲ 한겨레 6일자 1면 사진기사.
▲ 한겨레 6일자 1면 사진기사.
한국일보는 “이번 재판의 핵심은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을 1987년 설립된 알짜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설립 당시 대부기공)의 실소유주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16개 혐의 중 절반에 가까운 뇌물, 횡령 등 중형이 불가피한 7개가 다스와 얽혀 있고,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로서 각종 불법 행위에 따른 이익을 받은 것으로 인정됐다”고 보도했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이자 최종결정권자로 관여하면서 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회삿돈 246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결론 냈다. 한국일보는 “검찰 공소사실에 적시된 횡령액 339억 원 중 73%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스와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받은 585만 달러 중 522만 달러 부분도 뇌물로 판단했다. 청와대 공무원에게 다스 미국 소송을 지원하게 했고 국가정보원 자금을 상납 받고 탈세 방안까지 검토·보고하게 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받아들였다. 


▲ 한국일보 1면 기사.
▲ 한국일보 1면 기사.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6일자 종합일간지는 1면 머리기사로 또 다른 전직대통령의 1심 선고를 일제히 보도했다. 한겨레·경향신문을 비롯해 동아·중앙일보까지 대다수 신문이 “다스는 MB것”이란 대목을 1면 제목으로 뽑았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 전 대통령 징역 15년·벌금 130억’이란 제목을 달았다. “다스는 MB것”이란 대목이 제목에 없는 이유는 사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설 제목은 ‘이 전 대통령 다스 실질적 소유자 맞는가’였다.
조선일보는 “기업 소유권은 주식 보유 여부가 핵심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스 주식은 이 전 대통령의 형 등 친척들이 대부분 갖고 있고 이 전 대통령은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뒤 “만약 이 판결대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실소유주라면 민사소송을 통해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나. 그럴 수도 없다고 한다. 형사적으로 실소유주이니 처벌받고, 민사적으로 실소유주가 아니니 되찾을 수 없다면 법리를 떠나 일반의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 조선일보 6일자 사설.
이는 다른 보수신문과 대조적인 논조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국가 원수의 권력 사유화”…착잡한 MB 중형’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은 세상에 없다. 정치적 사건일수록 찬반양론이 거세다.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날 재판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밝힌 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수 정부 9년에 대한 법적 심판이 이어지면서 철저한 과거 청산도 좋지만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MB 징역 15년, 청산과 단죄 이젠 매듭지을 때’란 제목의 사설에서 “많은 사람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적폐 청산에만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어제 MB에 대한 1심 선고로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 사이에 낀 보수정권의 두 수장에 대한 단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 청산과 단죄를 매듭짓고 대한민국의 부강한 미래를 보고 나아갈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두 명의 전직대통령에 대한 재판결과를 끝으로 적폐청산을 그만하자는 반면, 조선일보는 판결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를 보인 것이다.  
▲ 한겨레 6일자 6면 기사.
▲ 한겨레 6일자 6면 기사.
진보성향의 신문들은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이제야 20여년 국민 속인 ‘죗값’ 받은 MB’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는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이라 주장하며 옥중 수사를 거부했고 이날 선고공판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측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 다스 문제에서 국민을 속인 데 대해서만이라도 이제는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포빌딩에서는 각종 사찰과 정치공작 관련 자료들이 대거 압수됐다”며 “후속 수사도 성역 없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직 멀었다는 의미다.  
▲ 경향신문 6일자 사설.
▲ 경향신문 6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법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이 땅의 정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되었다”며 이번 판결을 높게 평가한 뒤 “1심 재판은 끝났으나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국정원과 군·경찰 등의 인터넷 댓글 공작과 관련해 직접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 등 국가폭력 사건의 책임자로도 지목되는 터다. 이 같은 의혹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한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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