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일 토요일

막 내린 APEC 정상회의, ‘AI 협력’·‘인구구조 변화 대응’ 최초 합의

 


이 대통령 “한반도 평화, 아태지역 번영 위한 필수조건” 지지와 협력 호소

  • 경주=최지현 기자
    • 발행 2025-11-01 14: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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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1-01 14:56:3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북 경주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제2세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경주에서 1박 2일 동안 진행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일 공식 마무리됐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APEC 최초로 '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합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APEC 정상회의 두 번째 세션인 '리트리트'를 주재했다. 한국을 포함한 총 21개 APEC 회원 정상들은 형식적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지역 현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 의제는 한국의 제안으로 아태 지역이 공통으로 직면한 도전 과제인 'AI 기술 발전',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였다.

    전날 첫 번째 세션인 초청국과의 비공식 대화에서는 '무역·투자 촉진',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경제적 연결성 강화', '민간 부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민관 협력' 등에 관한 방안을 논의했다.

    APEC 정상회의 결과, 'APEC 정상 경주선언'과 'APEC AI 이니셔티브',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 등 총 3건의 문서가 채택됐다.

    'APEC 정상 경주선언'은 올해 APEC의 3대 중점과제인 연결·혁신·번영'을 기본 틀로, 무역·투자, 디지털·혁신, 포용적 성장 등 APEC의 핵심 현안에 대한 주요 논의를 포괄했다. 또한, 인공지능(AI) 협력 및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대한 회원들의 공동 인식과 협력 의지를 집약했다. 문화창조산업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신성장동력으로 인정하고 협력 필요성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APEC AI 이니셔티브'는 모든 회원이 AI 전환 과정에 참여하고, AI 기술 발전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AI 혁신을 통한 경제성장 촉진 ▲역량 강화 및 AI 혜택 확산 ▲민간의 회복력 있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APEC 최초의 명문화된 AI 공동비전이자, 미국과 중국이 모두 참여한 AI에 관한 최초의 정상급 합의문이다.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는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가 역내 공통의 도전과제라는 인식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회복력 있는 사회시스템 구축 ▲인적자원 개발의 현대화 ▲기술기반 보건·돌봄 서비스 강화 ▲모두를 위한 경제역량 제고 ▲역내 대화·협력 촉진 등 5대 중점 분야별 정책 방향과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APEC 최초의 포괄적 인구협력 이니셔티브다. 한국은 내년 'APEC 인구정책포럼'을 개최해 동 분야에서의 역내 협력과 정책 연계 강화를 지속 선도해 나갈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공식 기념촬영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1.01. ⓒ뉴시스

    이 대통령은 이날 APEC 정상회의 일정을 모두 마친 뒤 미디어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세 가지 문서는 아태지역을 평화와 번영의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APEC 경제지도자들의 뚜렷한 의지가 함께 모였기에 가능했던 '우리 모두의 성과'라며 "이들 문서가 향후 APEC이 나아갈 길을 분명히 제시할 것으로 자부한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APEC의 발전과 아태지역 번영을 위한 여정에 함께할 것"이라며 "차기 의장국인 중국을 포함해 모든 APEC 회원이 경주에서 모은 의지를 행동으로 이어가 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내일의 변화'를 실현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APEC 회원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호소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의 토대가 바로 평화라고 생각한다. 평화가 뒷받침돼야 우리의 연결이 더욱 확대되고 모두가 함께 누리는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야말로 아태지역 번영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군사적 대립과 긴장, 핵문제는 한반도는 물론 아태지역의 안정과 협력을 제약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원칙 아래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의 한반도 새시대 열어가고자 한다. 한반도의 평화공존은 동북아를 넘어 아태 전체의 협력과 상생을 통한 공동번영의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회복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왔으며 앞으로도 평화를 위한 대승적이고 더욱 적극적인 선제적 조치를 지속해 나가겠다"며 "APEC 회원 여러분의 지지와 협력이 동반될 때 한반도 평화공존의 길도 실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내 마련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5.11.01. ⓒ뉴시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두 번째 세션을 마친 뒤 차기 APEC 의장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에게 의장직을 인계했다.

    이 대통령은 우선 "아태 지역의 새로운 이정표가 필요한 중차대한 시기에 대한민국이 APEC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은 큰 기쁨이고 영광이었다"며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지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제 시 주석의 리더십 아래 APEC이 새로운 순항을 시작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올해의 성취를 바탕으로 내년 APEC의 성공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시 주석은 "의장직을 맡게 돼 영광이다. 회원국들의 지지에 감사드린다"며 "아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역내 발전과 번영을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2026년 APEC 의장국으로서 중국은 모든 당사자들을 하나가 되게 하여 아태 공동체의 성장과 번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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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군인들 넘쳐나던 그 때... 대한민국 구한 전쟁 영웅

 [어떤 어른] 한국전쟁의 명장 김홍일

민족·국제 김종성(qqqkim2000)

25.11.01 19:16최종 업데이트 25.11.01 19:16

지난 100년간의 역사적 사건들은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 형성에 기여했다. 3·1운동과 8·15 해방은 항일투쟁을 했거나 지지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으로 정착시켰다. 홍범도나 김구 등이 영웅으로 부각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편 사람들이 명분도 없이 부와 권력을 거의 독차지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친일청산이 과제로 남아 있다.

4·19혁명과 6월항쟁은 민주화 투쟁을 했거나 지지한 사람들의 가치관에 보편성을 부여했다. 이 투쟁을 통해 부각된 김대중·김영삼은 대통령이 됐고, 그 외 사람들은 새천년 들어 정치권 주류세력이 됐다. 그러나 반대편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여전히 점유한 채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2016년에는 촛불혁명이 타오르고, 8년 뒤에는 빛의 혁명이 발사됐다.

인민군의 진격 막아내고, 대한민국을 구하다

김홍일 장군위키미디어 공용

한국전쟁은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가치관이 그 뒤 오랫동안 보편적 가치관이 되도록 만들었다. 이런 속에서 백선엽이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됐다. 그러나 실제로 이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군인은 독립투사 김홍일(1898~1980)이다.

국가보훈부가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김홍일 편은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였던 그가 1919년 3·1운동 이전에 학생비밀결사사건 때문에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1921년 이후에 독립군단체인 대한의용군사회를 거쳐 중국 국민혁명군에 들어가 사단 참모 등을 역임했다고 기술한다.

김홍일은 중국 군관학교 교관 시절인 1937년에는 "한인 학생 100여 명을 훈련시켜 이들을 조선의용대로 편성하여 항일투쟁에 참여"시키고, 1944년에는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참모장이 되어 국내상륙작전을 준비했다. 이처럼 3·1운동 이후부터 전쟁 무대를 누빈 김홍일의 관록이 투영된 무대가 1950년 6·25전쟁이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인민군의 진격으로 인해 대한민국 영토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났다. 낙동강 전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된 것은 8월 1일이다. 인민군의 진격은 그처럼 빨랐다.

인민군이 부산을 점령했다면, 유엔군은 한국이라는 성곽 밖에서 공격을 해야 했다. 이렇게 됐다면 미군이 성 안의 인민군을 제압하기가 곤란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유엔군이 일본 등에 진을 쳐야 하므로 전쟁의 범위와 파급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산은 함락되지 않았다. 유엔군이 전열을 갖출 때까지 인민군의 진격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쟁의 향방을 갈랐다. 이는 김홍일이 인민군의 발목을 한강 이북에 묶어놓은 직접적 결과다.

개전 사흘 만인 6월 28일, 인민군은 서울을 점령했다. 이날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가 폭파된 것이 인민군의 도강을 지연시켰지만, 이것이 주된 원인은 아니다. 주원인은 한강 이남의 국군이 여러 날 동안 버틴 점에 있다.

국방부 국방홍보원이 발행한 <국방저널> 2021년 제569호 기사 '6·25 개전 초 한강방어전으로 대한민국을 구하다'는 전쟁 발발 직전만 해도 육군참모학교(지금의 육군보병학교) 교장이었던 김홍일 소장이 야전사령관으로 전격 발탁되는 극적인 상황을 기술한다.

"6월 28일 새벽 미아리 방어선이 무너지고 나서야 채병덕 참모총장은 뒤늦게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김홍일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김홍일 소장은 이때부터 일분일초를 쪼개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며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개전 직후에 김홍일은 '서울을 빨리 포기하고 한강 이남에 방어선을 구축하자'고 제안했지만, 국군 지도부는 상황을 오판해 이 건의를 무시했다. 그랬다가 전방 병력을 대거 상실하고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기자 김홍일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처음부터 김홍일 말대로 했다면, 국군 정예부대가 한강 이남에 일찍 진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군 전력이 삼팔선에서 대거 와해됐기 때문에, 김홍일은 패잔병을 모아 한강 이남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훨씬 약화된 전력으로 한강을 지키게 됐던 것이다. 이런 상태로 길이 24km짜리 방어선을 구축한 김홍일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결과를 연출했다. <국방저널>의 설명이다.

"30일 새벽부터 북한군은 한강 도하를 시도했다. 하지만 완강한 국군의 저항에 실패했다. 북한군은 도하 첫날에는 노량진 부근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점차 여의도와 영등포까지 전선을 확대했지만, 번번이 국군의 방어전에 막혀 꼼짝없이 묶이고 말았다."

미국 육군 제24사단 선발대인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부산에 상륙한 것은 7월 1일이고, 이 부대가 경기도 평택·안성에 진지를 구축한 것은 7월 2일 밤이다. 6월 28일에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한강을 넘은 것은 7월 3일이다. 인민군이 한강을 넘기 직전부터 미군이 한강 남쪽 지역에서 대기했던 것이다. 그래서 7월 3일 이후에는 인민군의 진격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김홍일은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의 닷새 동안 패잔병들과 함께 인민군의 도강을 저지했다. 이것이 밑받침이 되어 유엔군이 반격을 가했으니, 더글러스 맥아더의 전공도 김홍일의 전공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육군본부가 발행한 <유엔군 전사(戰史),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제1집은 "6월 25일 현재 98,000명이었던 한국군은 6월 말에는 22,000명"이었다며 "제6사단과 제8사단을 제외한 전 부대는 최초 공격을 받아 와해되었으며 반격 작전 능력은 전혀 없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한국군이 현저히 약화된 6월 말부터 김홍일은 기적을 연출했다. 이로써 국군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유엔군은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다.

"후퇴하라"는 김홍일의 말 거부한 백선엽

1995년 8월 8일 오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김홍일 장군 제15주기 추모식.연합뉴스

서울 함락 전날인 6월 27일 오후, 채병덕 총참모장(참모총장)은 문산지구 제1사단장인 백선엽 대령에 대한 작전지도권을 김홍일 소장에게 부여했다. 이에 따라 김홍일은 백선엽 부대의 전투 상황을 관찰하다가 그 부대가 포위망에 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김홍일은 한강 이남으로 신속히 후퇴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백선엽은 거부했다. 총참모장이 김홍일에게 부여한 것이 백선엽 자신에 대한 지휘권이 아니라 지도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위 책은 "제6사단과 제8사단을 제외한 전 부대는 최초 공격을 받고 와해"됐다고 기술한다. 백선엽이 지휘한 부대는 제1사단이다.

그 뒤 백선엽이 거둔 전공은 유엔군과의 공조하에서 나온 것이다. 김홍일은 그런 지원 없이도 닷새간이나 대군을 강 건너에 묶어놨다. 누구의 역량이 더 큰지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김홍일은 전공과 역량을 인정받아 제1군단장으로 승진했다.

대통령 이승만이 군을 지휘할 자격이 없다는 점은 얼마 뒤 증명됐다. 그는 한국전쟁 최고의 명장을 이유도 없이 갈아치웠다. 이때가 9월 1일이다. 이날 한국군은 김홍일이라는 노련한 야전지휘관을 잃었다.

국방부 군사(軍史)편찬연구소의 <군사> 2016년 제99호에 수록된 이동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원의 논문 '6·25전쟁 초기 김홍일의 활동과 예편'은 백선엽·정일권 같은 친일군인들을 통해 군부 장악력을 높이고자 했던 이승만의 구상과 더불어 김홍일이 작전 수행 중에 미군과 마찰을 빚은 것이 김홍일 퇴진의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지난 29일 경주 한미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가 '공식적인 전쟁 상태'에 있다는 말을 했다. 휴전 상태를 환기시키는 발언이다. 트럼프의 말처럼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게 만든 핵심 인물은 김홍일이다.

한국전쟁의 한국측 최대 공로자는 독립군 출신 김홍일이다. 백선엽의 과오를 명확히 적시하고 김홍일을 이 전쟁의 명장으로 기억해야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올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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