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C&B에 파지 운송 하던 50대 기사 하역편의 위해 경사로서 컨테이너 문 개방 위험 알아도 화물받는 고객사 눈치봐야 쌍용쪽 하역업무 외주화로 안전은 방치
쌍용쪽 “경사로 위험 전달 못 받아” 화물연대 “화물 받는 쪽이 안전인력 둬야”
지난 26일 화물차 기사인 장아무개(52)씨가 컨테이너 내부에서 쏟아진 파지 뭉치에 깔려서 응급차로 후송된 뒤 사고 현장 모습. 사진 화물연대 제공
30년을 화물차 기사로 일한 남편의 하루는 늘 해 뜨기 전에 시작됐다. 아내는 남편이 먹을 밥과 반찬, 떡과 주전부리를 싸서 손에 들려 보냈다. 지난 26일도 남편은 새벽 4시30분께 집을 나섰다. 세 딸을 애지중지하는 남편이 그날 되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아내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28일 화장지 생산업체인 쌍용씨앤비(C&B)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설명을 종합하면, 화물차 기사 장아무개(52)씨는 지난 26일 오전 9시15분께 화물 운송지인 세종시 조치원읍의 쌍용씨앤비 공장 안 도크(깊게 판 구조물)에 차를 세운 뒤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가 300㎏ 무게의 파지 두 뭉치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그 밑에 깔렸다. 장씨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인 27일 끝내 숨을 거뒀다.
화물운송사업법에 따른 화물차 기사(운송사업자)의 업무는 ‘화물차를 이용하여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일’로, 운송을 마친 뒤에 컨테이너를 여닫는 건 고유한 업무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화물을 받는 업체(수화인) 쪽은 화물차 기사에게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안에 있는 화물을 꺼내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잦다는 증언이 나온다. 강동헌 화물연대 전략조직국장은 “운송 과정에서 컨테이너 문 쪽으로 화물이 쏠려 있는 경우 문을 살짝만 열어도 확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화물 상·하차나 컨테이너 개폐 작업은 위험 요소가 많아 수화인 쪽에서 별도 인력을 두고 안전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쌍용씨앤비에 화물을 실어나르던 기사들도 공장 안 도크에 진입하기 전에 하역 관련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컨테이너 안의 화물을 내리는 쪽은 일하기가 편하지만, 화물차 기사 처지에선 화물이 쏟아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쌍용씨앤비의 공장 안 도크는 아래로 30도가량 경사져 있었다. 화물차가 경사면에서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보면 컨테이너 내부 화물이 문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상당하다. 화물차 기사들이 쌍용씨앤비 쪽에 여러 차례 ‘평지에 차를 대게 해 달라’거나 ‘문을 여는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요청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공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화물차 기사 ㄱ씨는 “이전에도 파지가 여러 차례 굴러떨어진 적이 있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며 “경사진 도로에 차를 대면 화물이 쏟아지기 쉬워서 평지에 대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요구 사항은 쌍용씨앤비에 직접 가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쌍용씨앤비 쪽은 “경사로 주차를 피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다만, 더 적극적으로 안전 관련 지시를 하지 못한 것은 잘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컨테이너 내부에서 쏟아진 파지 뭉치에 깔리는 사고로 숨진 화물차 기사 장아무개(52)씨가 사고 당일인 지난 26일 새벽에 들고 나갔으나 사고로 고스란히 남겨진 도시락통 모습. 사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공
화물 보낸 이도, 받는 이도 안전 외면…주인잃은 도시락 그대로 식어가
이런 안전 부재는 하역 관련 다단계 원·하청 구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쌍용씨앤비는 화물차에서 파지 등을 내리는 업무를 외주화했고, 하청업체는 자사 소속 지게차 기사에게 일을 맡겼다. 숨진 화물차 기사 장씨 등에게 ‘컨테이너 문을 열어달라’고 지시했거나 경사로 관련 불만을 청취한 쪽은 하청업체 관계자였을 공산이 크다.
화물을 받는 쌍용씨앤비와 화물차 기사 사이엔 원래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 파지 같은 화물을 파는 업체(화주)가 장씨가 소속된 운송업체에 돈을 지불하면 그 업체가 장씨에게 일감을 주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화물을 받는 쌍용씨앤비가 계약한 하역 하청업체의 요구를 화물차 기사가 거부하기 어렵다. 화주의 고객사인 쌍용씨앤비가 화물을 받는 하역 현장에서 마찰이 생기면, 추가로 운송 일감을 받기 어려운 탓이다. 화물차 기사는 계약서상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다른 노동자처럼 급여를 받는 게 아니라 소속된 운송업체로부터 계약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 이런 탓에 위험을 알면서도 컨테이너 개방을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화물차 기사들이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화물 상·하차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엔 한 화물차 기사가 화물을 싣던 도중 기계가 굴러떨어져서, 11월엔 화물차 기사가 석탄재를 컨테이너에 싣다가 추락해서 숨졌다. 지난 3월엔 화물차 기사가 석고보드를 내리다 석고보드가 쏟아져 사망했다.
운송 현장을 함께 다니기도 했다는 장씨의 아내는 “운송 업무가 다 끝났는데도 수화인의 지시로 컨테이너 문을 열거나 내부를 청소할 때가 있는데,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컨테이너 검사·청소 작업’은 국토교통부 규정에 따라 운송사업자에게 시킬 수 없는 업무다.
숨진 장씨의 차량엔 도시락통이 남아 있었다. 아내가 싸준 하얀 밥과 장조림, 김치 등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식어갔다.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여야 5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 실현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동력 확보 △미사일 지침 종료 △백신 공급 및 첨단기술, 원자력에서의 실질 협력 △기후 변화 협력 등의 성과가 있었다며 정의용 외교부 장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나서서 별도의 브리핑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반발을 불러왔던 공동성명에서의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표현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여야 5당 대표와 회동 자리에서 "중국과 소통하고 있다"며 상황 진화에 나서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왔던 미중 사이의 '모호성'에서 벗어나 동맹인 미국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프레시안>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 및 향후 과제에 대해 전망해 보는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간 대담을 마련했다. 러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위성락 전 본부장은 정부의 이같은 행보가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한 것이 아닌, 당장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일회적인 조치로 보인다며 "마음먹고 내린 정책 전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위성락 전 본부장은 △회담 이전에 이에 대한 별다른 숙고 작업이 없었던 측면 △회담 이후 정부가 대만해협 표현에 대해 원론적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 △공동성명의 내용이 사실상 미국의 초안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는 "그러면 한국 정부는 왜 이런 합의를 했을까? 앞뒤 정황을 고려했을 때 북핵과 관련한 표현을 얻기 위해 미국의 초안을 받아준 것 같다"며 "정부가 마음먹고 정책전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 전 본부장은 한국이 미국쪽으로 경도되면서 얻어낸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의 기초 위에서 향후 북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전부 명목적인 것으로 실질 가치가 적다"며 교환의 등가성에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는 지키지 않겠다고 하면 큰 문제지만, 지키겠다고 하면 그저 괜찮은 정도의 일들"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이걸 선물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역시 "북한이 미국과 관계에서 근본적 문제로 이야기한 적대시 정책의 변화 조짐이 거의 없고, 남한과 관계에서 제기했던 근본 문제인 연합 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문제에 대해서도 변동 조짐이 없다"며 "김정은도 이야기했고 3월에 김여정 당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거듭 이를 확인했는데 한미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태라면 북한은 대화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 대표는 "더군다나 6월부터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교역이 빠르게 정상화될 가능성도 있다"며 "만약 8월에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실제 실시된다면 북한이 모종의 조치를 취할 텐데,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및 9.19 군사합의를 취소하는 등의 조치를 감행할 수 있다. 상황의 개선보다 악화의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고 우려했다.
대담은 지난 26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이다.
▲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봤던 포인트가 있었는지? 또는 당초 예상과 실제 회담 결과가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위성락 : 이번 회담은 중국 문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주요 관심사를 배려하면서 이를 기초로,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 평화 관련해 미국의 양해를 확보하는 자리였다. 회담 결과를 보면 일견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주 관심사를 우리가 많이 수용했는데, 주로 동맹 및 중국 관련 사안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북한 관련 표현을 받은 걸로도 보인다.
동맹의 발전 및 미중 사이에서의 모호성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주로 보수진영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진보 진영은 자신들이 만든 정부가 한 회담이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비판하기는 어려운 사정이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이번 회담이 괜찮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내 관점은 조금 다르다. 저는 이번 회담 결과를 보고 난 뒤 4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첫째로 우리가 한미 동맹과 중국 관련 사안에서 새로운 방향을 약속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대로 지속가능한 일인지, 즉 지금의 약속에 진정성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내주고 받은 것 사이에 등가성이 있는지, 가치가 있는 것들을 주고 받았는지의 문제다.
세 번째는 받은 것의 실질가치가 얼마냐 되는지의 문제다. 즉 우리는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견인해서 남북대화‧미북대화를 재개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활성화하는 것이 목표일 텐데,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양해 받아온 것이 북한을 견인해낼 수 있는 기대효과가 있을 것인지의 문제다.
마지막으로 중국 발 역풍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우선 지속가능성의 문제부터 보자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취한 정부의 입장은 역대 보수, 진보 정부를 통틀어 동맹 및 미중 문제 사이에서 가장 미국 쪽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 넘은 것이다.
시계 좌표로 미국이 3시이고 중국이 9시라면 지금까지 11시 반에서 12시 언저리에 있다가 갑자기 2시 가까이 간 것이다.
이걸 과연 정책 전환으로 볼 수 있을지가 문제인데, 마음먹고 내린 정책 전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게 볼 근거가 별로 없다.
우선 이 정도로 정책을 전환하려면 수개월 또는 수년 전부터 언론을 비롯해 정당, 지지세력, 시민사회단체 등과 정지작업용 논의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은 전혀 없었다.
또 만약 이것이 정책 전환이라면 회담이 끝난 이후라도 무언가 설명을 했어야 했는데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왜 미중 사이의 모호성을 버리고 동맹(미국)쪽으로 경사했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만 해협 언급은 늘 나오는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참고로 한미 간 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한 것은 사상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
.
정부는 이번 회담의 4대 주요 성과로 북한 문제와 백신, 반도체 투자, 기후변화 등을 꼽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만 설명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사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중 사이에 모호성을 가지고 있던 한국이 미국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인데 이 부분의 설명은 없다.
대만 해협의 평화 안정을 포함하여 이번에 정부가 미국에 동의해준 중국 관련 문구들이 심각한 정책전환으로 비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저렇게 행보했고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공동성명의 영문을 살펴보니 미국이 제시한 초안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한 부분이 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즉 정책적 전환의 결과로 나온 합의가 아니라 문안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기를 하다가 다소 '캐주얼'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성명의 첫 번째 부분인 동맹 파트에서는 동맹은 중요하고 공통 가치에 기초해 있으며 새 시대에 맞게 진화시켜야 된다면서 지역적 역할, 글로벌 역할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장에는 지역, 국가, 글로벌 차원의 역할이 자세하게 적혀있고 기후변화와 반도체 기술 협력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미국이 항상 제기하는 논리의 흐름이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초안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만약 우리도 초안을 만들어서 미국과 주거니 받거니 했다면 성명의 내용이 섞이고 구조가 흐트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성명은 구조가 정연하고 정교하다.
미국으로서는 일본 다음으로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한국에 안겨준 배려에 손색이 없는 정도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합의로 한미 동맹이 처음으로 지역적, 글로벌 차원으로 진화했다. 미국이 오랫동안 하려던 것을 정부가 임기 말기에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 한국 정부는 왜 이런 합의를 했을까? 앞뒤 정황을 고려했을 때 북핵과 관련한 표현을 얻기 위해 미국의 초안을 받아준 것 같다. 즉 정부가 마음먹고 정책전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대만해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안을 이렇게 쉽게 다뤄도 되는지, 정상회담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 ⓒ프레시안(최형락)
다음으로 등가성 문제를 보면, 미국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은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의 기초 위에서 향후 북한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또 한반도 비핵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개입, 남북대화 지지 등이 있다. 그런데 이는 전부 명목적인 것으로 실질 가치가 적다.
위 이슈들의 공통점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부인할 때 문제가 되는 사안들이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는 지키지 않겠다고 하면 큰 문제지만, 지키겠다고 하면 그저 괜찮은 정도의 일들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걸 선물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걸 깨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성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임명한 것도 그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기는 좀 어렵다. 특별대표는 통상 있어왔다. 임명 안했다면 다소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내준 것을 보면, 우리는 대만 문제를 사상 최초 언급했고 인권 문제도 적시했다. 심지어 인권 문제의 경우 '국내외에서' 라고 언급돼있다. 즉 이는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와 북한, 중국의 인권 문제까지 모두 포함한 것으로 해석된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 저해 활동에 대한 반대, 법의 지배 강조, 남중국해 자유 항행의 질서 부각 등도 주목할 만한 언급이다. 이 모두가 정책적 함의를 갖는 것들이다. 결국 우리는 정책적 함의와 명목상의 함의를 교환한 셈이다.
정욱식 :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면서 미중 관계도 완화시키는 것이 최선인데, 그게 힘들긴 하지만 최소한 이 두 가지를 분리시켜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들을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회담 이후 오히려 이 두 사안의 협착이 심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대만 문제가 처음으로 언급됐는데, 정부에서는 원론적인 것이고 미일 공동성명에 비해 중국을 덜 자극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는 느닷없이 나온 건 아니다.
대만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외의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때 한미 동맹,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한미군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미국의 오랜 전략적 고려 사항이다. 그런 맥락에서 적어도 미국의 관점에서는 한국을 자신들 쪽으로 당겼다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
.
한미 정상회담 직전 폴 라캐머러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은 인도 태평양 전략의 일부고 한반도 밖에서 분쟁이나 우발사태가 일어날 경우 투입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이 공식적으로 이러한 점을 언급한 상황에서 공동성명에 관련 내용이 담겼고, 한미 정상회담 전후로 사드는 정식 배치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적어도 미국에 다 연결돼있는 문제들이다.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거나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 투입에 대해 미국에서는 계속 그런 의중이 있어왔는데, 이번 성명에 대만해협과 남중국해가 명시된 것은 추후에 미국이 실제 그러한 의중을 현실화할 때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한국이 양해해야 한다는 하나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사드의 임시 배치를 서둘러야 하는 근거로 활용 가능한 측면도 있다.
판문점 선언에는 정상회담 최초로 '단계적 군축'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이러한 판문점 선언을 한미 정상회담에 명시했다면 북한이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 및 대규모 군사 증강 문제,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등의 문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유연성을 보일 수 있다는 부분을 담았어야 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에는 이러한 의사가 아직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당 성명에는 연합 억제력 강화를 추구한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이는 맥락상 군비 증강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또 싱가포르 합의 때는 당시 합의문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한 합의 정신을 살린다면 올해 8월 훈련을 유예할 계획은 가지고 한미 공동성명에 싱가포르 합의를 담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군사적 준비 태세를 강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훈련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에 기초하여 남북대화를 시작하고 그걸 지렛대로 삼아서 북미대화를 촉진하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희망을 갖기에는 이번 정상회담 결과는 다소 실망스럽다.
위성락 : 미국이 쉽게 넣어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이던 판문점 선언을 성명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소중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겠지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면 이것이 향후 남북관계나 미북관계 협상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 표현이 들어갔다고 해서 판문점 선언의 모든 내용을 미국이 지지한다고 해석하는 것도 지나치게 희망적이다.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에 기초한다는 표현을 쓴 이유를 따져 보면 왜 지나치게 희망적이라고 말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했던 일을 다 무너뜨리는 이단아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 이란 핵 합의도, 기후변화 협약도 모두 없애버렸다. 이를 비난하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 트럼프가 했던 것과 똑같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인 셈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트럼프가 했던 것을 지지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미국 정부 이름으로 합의된 문건을 공개적으로 깨뜨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말이 '기초해서' 라는 단어다. '따른다', '존중한다' 등의 말은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는 판문점 선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제한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정부가 하는 일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어떤 반응 보일까
프레시안 : 관건은 북한이 대화에 응할지의 문제인데, 어떤 반응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는지?
위성락 :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가져오라면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고 했다. 공은 미국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새로운 인센티브를 내놓아야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점진적 접근, 제재와 협상 병행 등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내놨다. 여기에 북한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요소가 없다. 여태 수십년 동안 해오던 이야기 아닌가. 또 미국은 공은 북한 코트에 있다고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북한이 대화에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고 북한에 한 제안에 대해 여전히 북한에서는 답이 없다. 그렇다고 이번 정상회담 결과로 북한을 유인할 만한 새로운 것이 있지도 않다. 미국의 대화 제의에도 응하지 않는 북한이 남북 대화에 응할 가능성도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북한은 가만히 있을까? 북한이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 구두든 행동이든 도발의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희망적 관측 보다는 냉정한 관찰이 필요하다.
정욱식 : 2018년 12월 이후 남북대화가 없는 상태다. 북미관계도 그렇지만 남북관계 관련해서 북한이 계속 실망감과 배신감을 표출해 왔는데 남한 정부가 그걸 계속 무시해온 측면이 있다. 특히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나 남한의 군비 확충 등을 봤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방향 선회가 이뤄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리고 북한은 이제 제재에 대해 할테면 해봐라, 우리식으로 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제재에 대해서도 한미의 유연한 입장이 없었다. 회담 직전에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에서 근본적 문제로 이야기한 적대시 정책의 변화 조짐이 거의 없고, 남한과 관계에서 제기했던 근본 문제인 연합 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문제에 대해서도 변동 조짐이 없다. 김정은도 이야기했고 3월에 김여정 당 부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도 거듭 이를 확인했는데 한미의 태도 변화가 없는 상태라면 북한은 대화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6월부터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교역이 빠르게 정상화될 가능성도 있다. 제재 범위 내에서 코로나 이전 수준의 북중 무역을 정상화하려는 조치들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우려되는 부분은 만약 8월에 훈련이 실제 실시되면 북한이 모종의 조치를 취할 텐데,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및 9.19 군사합의를 취소하는 등의 조치를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의 개선보다 악화의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불장난 하지 마라'던 중국, 향후 대응은
프레시안 :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사드 배치 때와 유사한 보복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을까?
위성락 : 중국 외교부에서 우리에게 내정 간섭이다, 용납할 수 없다, 불장난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반응 수위가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미일 정상회담 이후 보다 그 수위가 낮긴 하지만 중국이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 중에는 가장 강한 수준으로 보인다. 또 지금까지 주변국가 중에 우리에게 이런 입장을 표한 나라도 거의 없다. 따라서 미일 정상회담 이후보다 중국의 반응이 수위가 낮다고 해서 이걸 안도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물론 중국이 사드 배치 때의 경험과 교훈이 있어서 그 정도 수준까지 우리에게 보복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한국의 미국 선회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는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에서 반대 입장 표명이나 질타, 비판은 기본적인 수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은 그렇지 않아도 한국 내 반중 여론이 강해지고 있는 와중에 한국을 일본과 비슷하게 취급해도 괜찮을지, 또 한국에서 대선도 있어서 고민할 것이고, 약간의 선택지 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 한국이 미국 쪽으로 넘어가지 못할 정도로 목표를 설정하고 대응 수위를 판단해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미 정상의 성명이 한국의 진정한 정책 전환이지, 아니면 우발적인 것인지를 가늠해보고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발적인 것이라고 판단하면 한국을 심하게 때리기 보다는 다시 잡아당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향후 중국과 관계에서 중국의 의도를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게 표면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중국과 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정욱식 : 중국 당국은 한미 공동성명이 나오자마자 톤 다운을 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민간 학자들이 <환구시보>에 한미 공동성명을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고 밝혔다는 점을 보더라도 그렇다.
중국도 사드 때의 학습 효과를 알고 있긴 한데, 사드가 정식 배치 수순으로 간다는 확신이 들면 모종의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또 제주해군기지에 미군 함정이 입항하면 이걸 보는 중국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사드 도입 당시 중국이 외교적으로 거친 언사를 하고 경제적인 보복을 해도 한국 정부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국민들의 여론을 등 돌리게 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 다른 가능성은 북한이다. 북한을 전략적 부채가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아시아 전체의 미중 간 세력 균형 차원으로 바라보면 북한에 대한 입장이 바뀔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가시적 보복보다 더 힘든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 22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백신 기업 파트너십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백신 위탁 생산 계약 MOU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문 대통령, 스테판 반셀 모더나 CEO. ⓒ연합뉴스
미사일 주권, 중국과 북한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프레시안 : 미사일 주권을 찾아왔다는 부분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정욱식 : 북한이 다른 국가한테는 허용하면서 자신들은 제재한다는 소위 '이중잣대론'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풀리면 지금까지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시험을 자제해왔던 북한이 8월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실시를 빌미로 이를 재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사거리 문제는 대북 군사적 억제력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미 사거리 800km 까지는 미사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비확산을 중시한다고 이야기했던 바이든 정부가 왜 이 부분을 인정했을까. 다른 상위의 전략적 이익이나 목표와 연관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충돌이 발생할 때, 주한미군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오산이나 군산에서 군용기를 동원하려고 할 수도 있고 성주에 있는 사드 레이더를 사용할 수도 있고 제주 해군기지를 기항지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중국은 이들 지역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생긴다.
문제는 이들 지역이 모두 우리 영토라는 점이다. 그래서 만약 미중 간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국내에서는 대중국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 억제력의 핵심으로 중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해서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 주한미군 사령관의 발언 및 사드 기지 내 움직임을 종합해볼 때,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렇게 한반도 문제와 미중 문제의 협착증이 더 강해지는 셈이다.
이는 동맹 복원을 통해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효과적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아시아 세력 균형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다고 판단하면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북한 문제다.
중국은, 대놓고 공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겠지만, 핵을 가진 북한이 한미일 견제에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불리해진 세력 균형에서 북한과 관계가 강화되면서,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개연성도 있다는 것이다.
위성락 : 미사일 사거리 제한 철폐는 우리에게 또 다른 정책적 옵션(선택사항)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성과라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 미사일 사거리를 이미 800km로 완화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사거리 제한 철폐 여부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은 분명히 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다. 미사일, 인권, 반도체 투자 등을 모두 반(反)중국의 움직임으로 간주할 것이다. 북한도 이를 빌미로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할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반응이 나올 것이다. 러시아는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가 800km로 연장됐을 때 비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들이 전부 러시아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다소 확대해석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프레시안 : 전시작전권 전환받지 못해서 군사주권이 없는데 미사일 주권은 있다는 것이 형용모순 아닌가?
위성락 : 그것과 별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 체계가 다양해진다는 것, 또 그를 통해 잠재적 억지력을 키우게 된다는 점은 정부 입장에서 정책 옵션을 늘려주므로 좋은 결과다.
남한 정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프레시안 : 남한 정부가 남북, 북미 대화 등을 끌어내기 위한 레버리지가 있다고 보나?
위성락 : 일단 한미 공동성명에서 대만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어야 했다.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 선택을 하고 이를 지켜야한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다음에는 저쪽으로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다. 우리의 좌표를 가지고 미국과 중국이 우리에게 과잉 기대하는 부분을 포기하게 했다면 나름의 입지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북한하고도 이러한 방식으로 일정한 입장을 가지고 대응했어야 했다. 순간순간의 방책만 있고 견고한 입장이 없으니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다.
2018, 2019년의 남북 및 북미 대화도 겉으로 보기에는 남북대화가 북미 대화를 견인한 것처럼 비춰졌지만, 내용상으로 냉정하게 보면 김정은이 견인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으려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정욱식 : 우리가 뭘 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다음 달 바이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이 회담에서 바이든이 푸틴에게 직접 이야기할 수 있으니, 6자회담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러시아 쪽에 전달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정부가 6자회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우선적으로 결정돼야 하지만, 어쨌든 이번 미러 정상회담을 활용해야 하지 않나 싶다.
위성락 : 당장의 미러 관계나 미러 정상회담을 떠나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활용할 소지는 있다. 러시아에게는 북한이 중국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그런데 비핵화 자체에 대한 관여 및 의지는 러시아가 더 강하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 내내 자기 권역에서 핵 비확산을 책임져 왔다. 중국은 세계를 반분해서 운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한 국제적 가치에 대한 관여가 약하다. 편의주의적인 측면이 있다.
또 러시아는 통일에 대해서도 전향적이다. 통일 한국이 러시아 극동의 발전에 기여하는 등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플러스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을 활용할 수 있다. 러시아가 참여하는 장으로 6자회담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그런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관계를 가깝게 가져가려는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 바이든 정부 일부 인사들 중에는 이상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 민주 자유 가치와 인권 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중국 견제를 위한 러시아 활용이라는 현실주의적 그림을 그리기가 어려워 보인다.
다만 미국과 러시아의 양국 사안에서 북핵 문제는 비확산의 대표적인 이슈다. 따라서 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핵 문제를 협력의 범주로 묶을 수는 있다. 또 우리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중국과 같이 묶기 보다는 별도로 간주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중국의 시선은
프레시안 :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에 대해 중국의 반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위성락 : 정부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판단해서 시행한 일인데, 반도체 기술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미국의 우위가 확고한 현실에서 미국을 등지면 사업을 꾸려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중국은 그 다음 문제, 즉 관리해야 할 문제다. 그러므로 이번 한미 기술 분야 협력 합의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반도체 투자 외에 기후변화 사안에 대해, 사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말 따로, 행동 따로'의 모습을 보인 측면이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을 '기후 악당'으로 보기도 할 정도다.
이번에 기후 변화 이야기가 언급된 것은 미국이 우리를 끌어 들인 것인데, 꼭 미국에 압박을 받았다고 보지 말고 우리가 스스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경제적 측면에서 새로운 차원의 도약이 가능하다. 여기서 피하기만 하면 뒤쳐질 것이다. 기후변화 부분 합의도 잘한 것이다.
정욱식 : 기후변화 부분이 미중 간 협력분야에서 경쟁분야로 넘어가는 것 같다. 즉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기후 문제는 중국과 경쟁 구도 속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전반적으로 볼 때 리스크를 좀 키우는 방향으로 간 것 같다. 동맹의 문제에서 운동장이 더 기울어진 것 같다. 노무현 정부 때도 반미라는 평가가 나오긴 했지만, 당시에 한미 전략동맹의 씨앗이 많이 뿌려졌고 이제는 글로벌 동맹으로 이어지고 있다.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동맹으로 엮인 것이다.
앞으로 동맹의 복원력이 생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동맹 중시의 경향이 항상 강했지만 그래도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균형추가 동맹 쪽으로 더 기운 것 같다. 이게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다.
동맹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선택인데 동맹에 의한 한국의 방어보다는 연루의 위험을 키우는 방향이 더 커지는 것 같다. 동맹의 균형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더 중요해졌는데 지금 불균형이 회복될 수 있냐는 부분이 숙제다.
위성락 : 동맹을 어디까지 끌고 가고 중국이나 다른 요소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우리 외교의 긴 숙제인데, 금번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이런 일을 이렇게 간단하게 편의적으로 할 수 있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미국과 중국 사이 우리의 외교노선 문제는 나라의 명운이 달린 문제다. 우리나라 같이 지정학 요소에 안보 상황까지 민감한 나라가 전 세계에 거의 없다. 동맹에 기울어지는 것은 맞지만 지나침이 없이 적절하게 좌표를 잡아야 한다. 1시 정도의 좌표가 적절했을 것이다.
지금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좋은 면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이 결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여러 측면에서의 파장에 대한 고려가 적어 보인다. 중국과 북한으로부터의 파장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후 어떻게 대처할지에 따라 미국으로부터의 파장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만약 북한이 도발하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정욱식 : 보수 정권에서 이런 성명이 나왔다면 진보 진영에서 비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동맹을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관념이 많이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에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미국이 어떻게 이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장문의 외교 전문을 써둔 것이 있었다. 여기에 한미동맹이 미국에 이익인 이유도 있었는데, 첫 번째가 중국 견제였다.
즉 미국의 중국 견제는 어느 날 느닷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계속 이런 흐름이 있어왔다. 미국은 정권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중국 견제에 있어 어떻게 한미 동맹을 활용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생각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서울 마포구에서 택배업무를 하던 택배노동자가 병원 앞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 노동자는 택배노동자 과로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분류작업을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하지 않기로 한 ‘1차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지 않은 택배사 소속인 것으로 확인됐다.</figcaption>
28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과로사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22일 토요일 로젠택배 택배노동자 서 모(44) 씨는 배송 업무 중 몸이 좋지 않아 조퇴했다. 그리고 당일 오후 3시쯤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요청한 뒤,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 주변에서 기다리던 중 쓰러졌다. 서 씨는 밤 11시경에서야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서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진 뒤 뇌수술을 받았다. 이후 이틀 만에 의식을 되찾았지만, 서 씨는 현재 팔다리를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언어활동도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젠택배 측은 서 씨의 하루 배송 물량이 120개 안팎이고, 노동시간도 하루 9시간 정도였다며 과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과로사대책위는 서 씨가 쓰러진 이유가 과로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과로사대책위가 확인한 서 씨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었다. 서 씨는 매일 아침 7시부터 분류작업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으며, 2~3시간 분류작업을 마치고 본래 업무인 택배 배송을 한 뒤,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집하물품을 상차하는 것으로 하루의 업무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렇게 집하물품 상차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이대로라면 서 씨는 주 평균 노동시간은 70시간이었던 셈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 이상이면 과로로 인한 발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과로사대책위가 확인한대로 서 씨의 한 주 평균이 70시간이었다면 업무상 질병 과로기준을 상당히 초과한 것이다.
로젠택배 측 주장대로 서 씨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9시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과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주 52시간을 초과하고 휴일부족, 정신적 긴장, 높은 육체적 강도, 근무일정 예측곤란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는 경우 만성과로기준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로젠택배 주장대로 9시간으로 계산해도 서 씨는 주 6일 일했기에 주 평균 54시간 일한 셈이고, 택배노동자 업무 특성상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없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과로사대책위는 “서 씨는 하루 평균 120개 배송만이 아니라, 매일 집하도 수행했다”라며 “배송 완료 후 집하거래처로 이동하여 집하물품을 싣고 다시 터미널(고양시)로 돌아와 집하한 물품 하루 평균 50개를 상차하는 업무까지 수행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로젠택배는 과로로 인한 사고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금 즉시 서 씨와 그 가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며 “더불어 재발방지대책을 하루 빨리 수립,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로젠택배에서 택배노동자가 쓰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3월 13일에도 로젠택배 김천지점 소속 택배노동자 김종규(51) 씨가 분류작업을 마치고 배송 업무를 하러 나갔다가 차량 안에서 쓰러졌다. 택배터미널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동료 택배노동자에 의해 발견된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 결국 숨졌다.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당시 택배노조와 과로사대책위는 로젠택배가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해 분류작업 인력을 별도로 뽑기로 한 사회적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반사회적 행태”라고 비판한 바 있다.
분류인력을 투입하기로 한 1차 노사정 사회적 합의에는 CJ대한통운, 롯데, 한진, 우정사업본부 등이 참여했다. 이후 진행되고 있는 2차 사회적 합의 논의에는 로젠택배도 참여하고 있으나, 아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