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8일 월요일

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여성, 정치를 하다](11)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장영은

입력 : 2020.09.29 06:00 수정 : 2020.09.29 08:30



멜리나 메르쿠리 

멜리나 메르쿠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진 정치인이자 예술가였다. 문화와 예술로 군사정권에 맞섰고, 약탈 문화재 환수는 물론 ‘민주주의라는 그리스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진 정치인이자 예술가였다. 문화와 예술로 군사정권에 맞섰고, 약탈 문화재 환수는 물론 ‘민주주의라는 그리스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 세상에서 내가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리스, 그런데도 그리스의 바다, 그리스의 언덕, 그리스의 태양 그리고 그리스의 산등성이에 부딪혀 반사하는 그 찬란한 햇살을 나는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일이다. 그리스와 그 정치 이야기, 외국의 지배라든가 외국의 지배 세력에 이용된 비열한 정치가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다가 수없이 좌절한 우리들 그리스 국민의 이야기를 쓰려는 것이다.”

1967년 4월, 그리스의 대령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1960년, 40세에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떨친 멜리나 메르쿠리는 196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군대가 그리스를 점령해 버렸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듣고 현기증이 났다. 약 1년 전, 멜리나 메르쿠리는 한 파티에서 “악명 높은 극우파” 니코스 파르마키스와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대뜸 “멜리나, 나는 파시스트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유행이니까요. 우리 편에 가담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 정치의 주도권은 우리가 잡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를 “천치와도 같은 자”로 치부했던 자신의 안일한 태도와 어리석음을 자책했다.

메르쿠리는 배우이자 가수로서
문화와 예술의 파급력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위기를 수수방관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리스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사관은 단호하게 통보했다. “그리스와의 교신은 안 됩니다.” 라디오에서는 “그리스는 부활되었다. 참다운 자유가 도래했다”는 거짓 프로파간다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깡패 같은 군인 패거리”는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일순간에 파괴시켰다. 그들은 바로 학교를 폐쇄하고, 일체의 집회를 금지시켰다. 예금 인출 및 야간 통행도 통제했다. 누구라도 법적 절차 없이 체포될 수 있었다. 전 국민에게 상시적인 압수수색과 더불어 모든 언론에는 검열이 적용된다는 골자의 선언문이 배포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교활했다. 그들은 멜리나 메르쿠리를 선전 도구로 이용하고자 했다. 군사정권이 발행한 신문에 그녀의 뉴욕 진출 소식이 실렸다.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었다. “우리의 멜리나!”라는 축하 기사가 그녀의 사진과 함께 “버젓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우리”라는 단어에 모멸감을 느꼈다.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다. 결단을 내렸다. “나는 내 의견을 말하고 군사정권을 탄핵하고 그들을 괴롭혀 줄 수 있는 일을 해야만 되겠다.”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리스의 몇몇 섬에는 감옥이 있는데 거기서는 고문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에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군사정권에 반대합니다”라고 국제사회에 쿠데타 세력들을 고발했다. 협박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다. “귀가 찢어질 듯이 큰 목소리! 그 내용은 매춘부 같으니! 공산주의자의 매춘부!” 가짜뉴스도 떠돌기 시작했다.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와 그녀의 유태인 남편은 미국 공산당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고 있다.” 사실무근이었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텔레비전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으로 방송에 출연했고, 여러 대학을 순회하며 강연회를 가졌다.

1967년 7월12일, 영국 신문기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의 내무부 장관 파다코스는 당신이 그리스 국민의 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당신의 재산은 몰수되었습니다. 국적도 박탈되었습니다.” 기자는 그녀에게 “무슨 할 말이 없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나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나서 그리스인으로서 죽겠습니다. 파다코스는 파시스트로 태어나 파시스트로 죽겠지요.”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에서 추방되었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멜리나 메르쿠리의 발언은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의 여러 가게에서 ‘멜리나는 그리스인이다’라는 슬로건이 든 배지가 팔리기 시작했다.” 오리아나 팔라치는 그리스 민주화운동 특집기사를 실었다.

군사정권의 폭정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었다. 민주화운동 인사들은 수감되거나 가택 연금을 당했다. 의문사도 늘어갔다. 그러나 그리스에는 “악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천사도 존재했다”. 보수 성향 언론사 사주였던 헬레니 부라고스는 “자기의 신문을 모두 폐간해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녀는 “자택 구금 상태”에서 “대담하게 영국으로 탈출하여”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정치적 지향점은 달랐지만, 진정한 보수 언론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신중하게 검토했다. “범(凡)헬레니즘 해방전선”에 참여했다. “최대의 굴욕은 자기 자신 속에서 일어나는 공포심이다. 그 공포심은, 총을 가지고 자기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타도할 수가 없다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비롯된다.” 총을 든 자들에게 총으로 맞서는 대신, 문화와 예술로 사람들의 공포심을 잠재우고 민주주의의 정신을 되살리기로 한다.

[여성, 정치를 하다](11)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여성, 정치를 하다](11)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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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나 메르쿠리는 총을 든 자들에게 총으로 맞서는 대신 문화와 예술로 민주주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했다. 위 사진부터 메르쿠리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한 장면, 1955년 칸영화제에 참석한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 군사정권 몰락 후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의정활동을 하는 모습.

멜리나 메르쿠리는 파리로 망명한 후,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스웨덴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그리스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배우이자 가수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예술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그녀를 압박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문화와 예술의 파급력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스위스 로잔에서는 군부독재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를 시도했다. 1970년에는 자서전 <나는 그리스인으로 태어났다>를 출간하며, 그리스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저항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도 겪어내야 했다.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접했다. 속수무책이었다. 군사정권과의 불화로 그리스 입국이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도 나에게는 울 틈도 없었다. 나는 공연을 끝냈다. (…) 아무도 무대 뒤에 오지 못하게 했다. 들어온 것은 오직 하나, 이탈리아인 친구이며 저널리스트인 오리아나 팔라치뿐이었다. 오리아나는 ‘아버지의 영혼이에요’ 하고 아름다운 식물을 가져다 주었다.” 우정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그리스의 유산을 지키자고
당부했다
 

1974년, 군사정권이 몰락했다. 7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치고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로 돌아갔다. 진보진영 결집에 나섰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인 피레우스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33표 차로 낙선했다.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냈다. 1977년, 멜리나 메르쿠리는 전국 최다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4년 후인 1981년에는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여배우가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론을 조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침묵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삼류배우만 되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그리스의 유명 여배우가 문화부 장관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멜리나 메르쿠리는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길을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리스 문화의 자부심이자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아크로폴리스로 향하는 길. 멜리나 메르쿠리는 아테네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아크로폴리스까지 직접 걷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걷는 속도와 방식은 오로지 개인에게 달려 있었다. 각자의 보폭으로 자유롭게 걷다보면 민주주의가 조금씩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문화부 장관으로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영국이 1801년 약탈해간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 ‘엘긴 마블스(Elgin Marbles)’를 그리스로 되찾아 오고자 국제사회에 파문을 던졌다. 문화재 반환운동을 적극 주도했다. 영국이 그리스의 박물관 수준을 문제 삼아 반환을 거부하자, 멜리나 메르쿠리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건설을 위해 국제 설계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영국 정부의 거절 사유는 핑계에 불과했다. 제국주의 문화 정책을 일관되게 비판한 멜리나 메르쿠리는 유럽연합(EU)에 “유럽 문화수도”를 건의한다. 1985년 6월 EU는 유럽 문화수도를 공식 행사로 즉각 채택했다. 1986년 그리스 아테네는 첫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되었다. 문화를 통한 유럽 통합과 상호교류를 목표로 한 멜리나 메르쿠리의 ‘문화축제’는 매해 ‘수도’를 이전하며 현재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989년까지 8년 임기 동안 문화부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멜리나 메르쿠리는 배우 시절 이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93년에는 문화부 장관 복직 요청을 받을 정도로 그녀의 기획력과 추진력은 탁월했다. 1993년 문화부로 돌아온 멜리나 메르쿠리는 에게(Aegean)해(海) 문화공원 조성을 추진했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다. 폐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1994년 3월, 멜리나 메르쿠리는 뉴욕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의 모든 방송은 정규 프로그램을 잠시 중단하고, 멜리나 메르쿠리의 죽음을 슬퍼했다. 한편, 수백만명의 아테네 시민들은 그녀의 장례식을 위엄 있는 축제로 만들었다. 멜리나 메르쿠리가 “고통 없는 신의 나라”로 편안하게 떠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그리스인들의 방식으로 건넸다.

그리스 국민들은 그녀를 ‘인간적인’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합당한 평가이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정치가 필요하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그리스의 유산을 지키자고 당부했다. 그녀는 무엇이든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에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내가 죽은 후에라도 그리스의 유산이 원위치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나는 잠시 무덤 밖으로 나올 것이다.” 2019년 8월31일, 키라이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영국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조각상 반환 요구는 변함이 없다. 영국은 결국 이 전쟁에서 지게 될 것이다. 압박은 고조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이던 1986년 이미 멜리나 메르쿠리 장관과 문화재 반환을 주제로 공개 토론을 가진 바 있었다. 귀추가 주목된다. 멜리나 메르쿠리는 그리스의 문화를 지키고 있다. 문화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장영은

[여성, 정치를 하다](11)그리스 독재정권에 맞서…총 대신 예술로 민주주의를 지키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계전공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썼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를 썼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9290600025&code=910100#csidxd0775a15adc715d9e48125e58778d94 


"트럼프 대통령직을 돈벌이에 활용"...NYT 폭로 TV토론 쟁점으로

 [2020 美 대선 읽기] 첫 TV토론 앞두고 대형 악재 터진 트럼프...바이든 "교사가 트럼프보다 세금 더 내"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자체 입수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세무자료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가 지난 2000년부터 15년간 연방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으며, 지난 2016년과 2017년 연방 소득세로 750달러(약 87만 원)를 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TV 쇼 출연만으로도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였지만 자신의 사업이 전체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보고함으로써 세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오는 11월 3일 대선을 한달여 앞둔 상황에서 터진 이런 '대형 폭로'가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트럼프는 기존 대선 후보들의 관행을 깨고 끝까지 세금 공개를 거부해 왔다. 스스로도 가장 큰 약점으로 인식해왔다고 보여진다.


 

우선 두 가지 영향을 예측해볼 수 있다.


 

첫째, 당장 29일(화) 저녁에 열리는 첫 번째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TV토론에서 트럼프에게 다소 밀릴 것으로 예상되던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주요한 공격거리가 생긴 셈이다.


둘째,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계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세금 문제'는 탄핵 사태를 야기한 '우크라이나 스캔들' 등 외교 및 국가안보, 섹스 스캔들, 인종차별 발언 등 이전에 트럼프가 공격당하던 이슈와 결을 달리한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당장 자신과 비교 가능한 사안이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을 가능하게 했던 '러스트 벨트'(펜실베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중공업 지대)의 유권자들의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NYT "트럼프, 수입보다 손실이 더 크다고 신고해 세금 회피...대통령직 돈벌이에 활용"


 

NYT는 27일 트럼프와 그가 소유·운영하는 가족 기업 트럼프 그룹(Trump Organization)의 20년 치가 넘는 세금 환급 자료를 입수해 심층 보도했다. 앞으로 관련 보도를 이어가겠다고도 예고했다.


 

트럼프는 TV 출연 등 만으로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자신의 소유 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고 신고해 세금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는 TV쇼 '어프렌티스' 진행자로 얻은 인기와 인지도를 토대로 2018년까지 4억2740만 달러(약 5022억 원)를 벌어들였다. 


또 사무용 건물 두 채를 성공적으로 투자해 1억7650만 달러(약 2074억 원)의 수익도 올렸다. 하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지속적인 손실이 있었다고 신고해 연방소득세 대부분을 면제 받았다. 이 신문은 "셀러브리티로서 번 돈으로 고위험 사업체를 산 뒤 거기서 발생하는 손실을 세금을 피하는 데 활용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 재정 연금술의 핵심 공식"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세금 회피에는 자녀들도 동원된 정황이 보인다. 트럼프 그룹이 익명으로 지불한 '컨설팅료' 74만7622달러와 동일한 액수가 장녀 이방카가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공개한 재산 내역에서 발견됐다는 것. 이방카에게 별도로 컨설팅료를 지급한 것은 사업 경비로 처리해 세금을 줄이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트럼프는 개인 비용을 사업 경비로 처리해 세금 혜택을 받기도 했다. 음식값, 주유비 뿐 아니라 '어프렌티스' 촬영 당시 헤어 스타일링비 7만 달러(약 821만 원), 딸 이방카의 헤어 및 메이크업 서비스 비용 9만5000달러(1억1150만 원)도 사업 경비로 처리했다.


 

트럼프는 각종 '꼼수'로 미국에서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지만, 2017년 인도에 14만5400달러, 필리핀에 15만6824달러를 세금으로 냈다. 게다가 이는 대통령 취임 당시 공약을 어기고 대통령직을 돈벌이에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첫 2년 동안 외국 기업과 거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런 세금 회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재정 상태는 매우 위험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트럼프가 이런 '꼼수'로 세금을 환급 받은 것과 관련해 국세청으로부터 10년 넘게 감사를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1억 달러 이상을 벌금으로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판결이 현실화될 경우 트럼프는 파산할 수도 있다 한다.


트럼프 "가짜뉴스" 반박...언론들 "트럼프 2년간 소득세가 머리 손질 비용보다 적어"


 

트럼프는 NYT 보도에 대해 "가짜 뉴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앨런 가튼은 성명을 내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사실이 부정확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가 지난 10년간 수백만 달러의 개인 세금을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측에서는 아직 이 보도가 "가짜뉴스"임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출마 당시부터 자신의 세금 기록 공개를 거부해왔던 트럼프의 탈세 의혹에 대한 충격적인 보도가 나오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랫동안 비밀에 부치려고 했던 금융정보를 NYT가 상당 부분 폭로했다"고 평가했다. <CNN>은 트럼프의 '사기꾼'(sham)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났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이해 상충에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는 엄청난 부채에 짓눌린 무능한 사업가와 지속적인 세금 회피자가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자서전 <협상의 기술>의 대필 작가인 토니 슈워츠는 <CNN>과 인터뷰에서 "수억 달러의 소득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가짐이 드러났다"며 "그 무도함과 뻔뻔함에 놀랐다"고 비판했다.


CNN은 또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과 2017년 750달러의 연방소득세를 납부했는데 이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숱한 미국인들이 내는 세금보다 훨씬 적은 액수"라면서 "트럼프는 자신의 머리 손질을 위해 쓴 7만 달러도 세금을 공제 받았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TV토론에서 활용할 듯..."이번 대선은 부자 후보 대 노동자 후보"


 

첫 TV토론을 앞두고 터져나온 이 보도는 당장은 바이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대선후보 TV토론은 29일 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폭스뉴스의 크리스 월리스의 사회로 진행된다. 바이든은 이번 선거는 자신이 태어난 펜실베니아주 스크랜턴 대 파크 애비뉴의 대결로 규정하고 있다. 스크랜턴은 백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며, 파크 애비뉴는 뉴욕의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지역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8일 NYT 보도에 대해 "이번 선거가 노동자 계층과 부유한 엘리트들 사이의 선택이라는 바이든의 메시지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캠프에서는 28일 영상 광고를 통해 교사(7239달러), 소방관(5283달러), 간호사(1만216달러) 등의 연간 소득세와 트럼프의 세금을 비교했다. 바이든 측은 또 "나도 트럼프보다 세금을 많이 냈다"고 쓰여진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에 나섰다.


 

공화당 출신이지만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지지 연설을 했던 존 케이식 전 오하이오 주지사는 "나는 블루칼라 출신이며 평생 열심히 일해왔다"며 "트럼프의 변명이 무엇이든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힘들 것"이라고 CNN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바이든 측은 특히 이 보도가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층이 두터운 '러스트 벨트'(미시간,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의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전국 지지율에서 바이든에게 뒤지고 있는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선거인단 선거에서 역전을 꾀하는 것 밖에 없다. 미국은 단순 득표가 아니라 선거인단 선거(총 538표)에서 270표 이상을 확보하는 후보가 이기는 간접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단순 득표에서는 300만 표 가량 뒤졌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겨서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 골수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을 듯


 

트럼프 측은 NYT 보도에 대해 아무런 증거 없이 "가짜뉴스"로 몰아세우고 있다. '트럼프를 저격하는 주류 언론의 가짜뉴스'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메시지다.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들은 기존 정치권, 주류 엘리트들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불만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한다. 트럼프가 자신들을 대리해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틀을 깨기를 바란다. 따라서 트럼프 개인의 도덕성은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가 각종 스캔들 뿐 아니라 탄핵, 코로나19 대응 실패 등 여느 평범한 정치인이라면 일찌감치 날라갔을 대형 이슈들에도 건재한 이유다.


 

물론 '세금 도둑'이라는 비판은 다른 정치적 어젠다와 달리 추상적이지 않고 '내가 직접 피해를 보는' 문제라는 점에서 지지층 균열을 다른 이슈들에 비해 기대할 수는 있다고 할 수 있다.


 

TV토론에서 바이든의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9290727535776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낙태죄 폐지, 국회와 정부가 수상하다

 우리는 '폐지'라는 진전을 원한다

본문듣기 등록 2020.09.29 08:24 수정 2020.09.29 08:24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 나는 심드렁한 기분이 들었지만 위기의식이 생기진 않았다. 내게 낙태죄는 단순히 시대착오적이고 불평등한 법안 정도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낙태죄가 유지된다는 소식을 듣고도 딱 이 나라에 어울리는 정도의 구린 판결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위헌 판결이 내려지리란 희망도 그다지 없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임신중단 수술을 받던 1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 사건을 한 청소년의 일탈처럼 묘사하거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 가십처럼 소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사망한 이의 부모가 인터넷을 통해 비밀상담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 했다는 기사의 한 문장을 읽은 후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병원을 찾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무엇일까. 접근성·친절·병원의 설비 등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병원에서 우리는 의사에게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의 몸을 맡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사가 실력이 좋은지, 되레 몸에 안 좋은 과잉 처방은 하지 않는지 등을 수소문 한 후에 병원을 찾을 때가 많다. 비용이 더 들어가도 그건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건에서 사망한 이의 부모들은 다른 무엇보다 비밀 유지가 가능한지를 먼저 물었다. 무려 수술을 해야 했는데 말이다. 왜 그랬을까. 딸이 낙태죄로 처벌을 받고 사회적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뉴스를 읽고 곰곰이 생각했다. 만일 임신중지가 죄가 아니라면 그 부모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질문했을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비로소 위기감이 느껴졌다. 낙태죄는 정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조항이었다.

겨우 가능성 열자 들려온 소식
  

▲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이어진 임신중지 시술 병원 고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판결,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까지 이 일련의 상황들에 충격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점차 낙태죄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슈로 부상했고 많은 이들이 속속 낙태죄 폐지 운동에 합류했다.

이후 거의 해마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고 그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집회에 함께했고 그만큼 낙태죄 폐지를 향한 염원은 커졌지만, 낙관적인 결과를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계속 내면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는 걸까.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 낙태죄 폐지를 간절히 염원해온 동료들과 기뻐했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고, 이는 2020년 전에 국회가 대체법안을 통과시키거나 혹은 그 기간이 지나 낙태죄가 자동으로 사라지게 두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낙태죄는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리고 새로운 낙태죄 관련 법률이 처벌조항은 그대로 둔 채, 임신중지가 가능한 예외적인 조건이나 허용 기간을 두는 식으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이 불길한 가능성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얼마 전 들려왔다.

우리는 후퇴한 논의를 원하지 않는다

최근 몇몇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3일 낙태죄 조항의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국무총리실의 주재로 법무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등 5개 부처 장관들이 모인 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입법 시한을 겨우 3개월을 남겨놓고 부랴부랴 회의를 연 것도 실망스러운데 논의 내용이라도 긍정적이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렇지 못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기사에 인용된 정부 관계자들의 말대로라면 진행된 논의 결과 처벌조항은 존속하되 허용 기간과 예외조항을 두는 방식으로 결론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관계자의 전언이라는 것이 아주 명료한 정보도 아니고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도 없기에 섣불리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도의 내용이 사실임을 가정한다면 이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도의 개정으로는 임신중단과 관련된 여러 사회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필요한 혼란까지 야기될 위험까지 존재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법무부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한 권고에도 매우 상세히 드러나 있다. 위원회는 지난 8월 발표한 권고에서 신체적 조건과 상황이 개인마다 다르고 정확한 주수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형벌을 면제하거나 부과하는 것은 형사처벌 기준의 명확성에 어긋나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당사자들조차 처벌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기준이 무슨 쓸모가 있나.

'낙태죄'의 존치는 인권 탄압이다
 

▲ 모두의페미니즘 회원들,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학생연합동아리 모두의페미니즘 회원 및 관계자들이 낙태죄 전면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몰래 임신중지 시술을 받기 위해 암암리에 병원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높은 비용을 치르는 일, 보다 안전하게 시술을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하고 의사 앞에서 환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 임신중단을 이유로 이미 헤어진 배우자나 파트너에게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당하는 일까지 이 모든 상황들은 임신중단이 범죄인 때에 계속해서 발생해왔다.

누군가 자신의 몸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필요한 정보 속에서 최선의 의료적 선택을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도리어 범죄자 취급을 받고 그게 약점으로 잡히는 일 말이다. 특정 인구집단이 이런 일에 처하거나 혹은 그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대규모의 인권 억압이 자행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게 지금까지 한국의 현실이었다.

국회와 정부는 이런 끔찍한 상황을 수십 년간 방치해 왔다. 그런데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시킬 기회 앞에서 이를 유지하는 선택을 한다면, 이제는 방치 정도가 아니라 상황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임신중단과 관련된 유일한 사회적 문제는 집단적인 기본권 박탈과 인권 탄압이며 이로 인해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것이다. 그 외에 고민되고 검토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추석 이후에 개정된 법안을 입법예고 했다고 한다. 부디 그 법안이 낙태죄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기를 바란다.

“대북지원 불법으로 매도한 가짜뉴스 사과하라”

 

시민단체들, 국회 앞에서 지성호 의원 항의 기자회견
이하나 통신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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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8  21: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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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레하나는 북민협 및 민주노총과 함께 28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남북관계 ‘가짜뉴스’ 폐단이 심각한 가운데, 대북지원사업마저 불법행위라고 규정하는 가짜뉴스까지 배포되자 시민단체들이 항의하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얼마 전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은 시민단체 겨레하나의 2016년 북한수해돕기모금사업이 위법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지성호 의원은 해당 자료에서 “통일부가 불법기부금 모금 진보단체, 기부금품법 위반 친여성향 법인은 놔둔 채 애꿎은 단체만 감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겨레하나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및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함께 28일 오전 10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성호 의원은 대북인도적지원사업마저 불법으로 매도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지성호 의원은 가짜뉴스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통일부 비판 위해 시민단체 이용”

  
▲ 신미연 겨레하나 사무총장 직무대행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기자회견에서 신미연 겨레하나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지성호 의원의 가짜뉴스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지적했다.

“지성호 의원이 현재 통일부가 진행 중인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 있는 25개의 탈북자단체 감사를 막고 싶은 심경은 알겠다. 그러나 최소한 가짜뉴스까지 동원해서 시민단체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겨레하나는 위법단체가 아니다. 2016년 북한수해모금사업 대부분은 겨레하나 회원 및 단체회원의 모금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기부금품법 위반이 아니다. 지성호 의원은 사실관계 확인도 하지 않고 겨레하나를 ‘불법단체’로 낙인찍는 가짜뉴스를 배포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북지원단체를 이용한 것이다.”

또한 지성호 의원의 과거 행적을 언급하며 “지 의원은 가짜뉴스 제조기나 다름없던 과거 행각에 대해서도 사과한 적이 없다”며 “국회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짜뉴스를 배포, 양산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북민협 이주성 사무총장은 “북민협은 55개의 진보-보수, 불교-기독교 등 다양한 단체가 모여 있다. 우리는 대북인도적지원사업은 우리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북민협은 2016년 북한수해모금 돕기 사업에 국제적십자사와 연대했고, 겨레하나도 회원단체로 함께 했다. 국회가 이런 인도적 활동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는 커녕 가짜뉴스를 만들어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가짜뉴스 진원지인가

  
▲ 이주성 북민협 사무총장은 국회가 가짜뉴스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 지성호 의원이 문제삼은 2016년 북한수해모금사업에 겨레하나와 함께 참여했던 민주노총의 엄미경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이주성 사무총장은 국회가 가짜뉴스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우리가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으면 겸허히 수용하겠다. 그러나 순수한 인도적 지원에 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가짜뉴스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가짜를 선별하여 진실을 만들어내야 할 국회가 오히려 가짜뉴스 진원지가 된 것이다. 국회의원은 정의를 세우는 사람이고, 부정한 것에 대한 날선 비판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가짜뉴스에 대한 사과를 요청한다. 지성호 의원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면 용기를 내주길 바란다.”

2016년 북한수해모금사업에는 민주노총, 전농, 전교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참여했다. 이날 민주노총 엄미경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많은 조합원들이 그 동안 겨레하나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남북협력사업에 꾸준히 한마음으로 함께 해 왔다”고 확인하고 “그런데 이렇게 ‘아니면 말고’ 식의 가짜뉴스, 시민단체에 대한 부당한 정치 공세가 계속된다면 민주노총도 이를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공당의 국회의원이라면 가짜뉴스를 만들게 아니라 남북화해에 대해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성호 의원을 비판했다.

지성호 의원 측 “사과할 일 아냐, 통일부 편향 비판 위한 것”

  
▲ 지성호 의원 측과의 면담 결과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할 뜻이 없음”이 확인됐다. [사진 - 통일뉴스 이하나 통신원]

기자회견 이후 겨레하나측은 지성호 의원실 항의면담을 진행했다. 신미연 직무대행은 의원실 면담 결과에 대해 “지성호 의원실은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며 “도리어 이번 일이 탈북자 단체를 보호하고 ‘통일부의 편향’을 비판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이용한 것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고 전했다.

신미연 직무대행은 “이번 일로 대북인도적지원 모금이 위법이고 겨레하나가 불법단체인 것처럼 매도되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 북녘 동포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정치적으로 훼손되었다”며 “이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고 더욱 단호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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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위기, 어떻게 해소되었나

 

[아침햇살96] 한반도 전쟁 위기, 어떻게 해소되었나

문경환 | 기사입력 2020/09/2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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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전쟁위기

 

밥 우드워드는 신작 『격노』에서 2017년 북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뻔하였다고 밝혔다. 우드워드는 “이것은 진짜 위기였다”라고 적었다. 

 

그해 8월 8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11월에는 항공모함 3척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투입해 훈련을 하도록 했다. 12월에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발사될 경우 요격미사일로 격추할 권한을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에게 부여했으며 2017년 4월과 2018년 1월 “한국에 있는 미군 가족을 전부 데려오라”라며 비전투원 후송 작전(NEO)을 지시했다. 

 

이처럼 당장 북한을 공격할 것처럼 큰소리치던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자신이 전쟁을 막았다며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려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막았다’거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하지 못했다’라고 해야 말이 맞는데 ‘내가 전쟁 하자고 했는데 내가 막아서 기쁘다’라고 하니 말이 안 된다. ‘전쟁을 하고 싶다’와 ‘전쟁을 막아 기쁘다’ 사이에 뭔가 있어야 한다. 

 

그 답은 『격노』에 실린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보여주었다. 그는 당시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워싱턴 국립대성당 2차 세계대전 추모 예배실을 여러 번 찾아 기도를 올렸다. 북한은 국가 핵무력을 완성했고 미국은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도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한을 공격하려 하였다. 하지만 끝내 전쟁을 개시할 수 없었다. 모두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그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 실시, 그리고 이에 맞선 북한 조선인민군의 3월 30일 전시상황 돌입 선언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그러다 4월 15일 케리 국무장관의 대북특사 파견 제안, 5월 1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제안, 5월 7일 북한의 1호 전투근무태세 해제로 전쟁 위기가 누그러졌다. 

 

▲ 2013년 전쟁위기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회의에서 미국 본토 타격 계획을 검토하였다.   [출처: 인터넷]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2013년 4월 1일자 USA 투데이에 “전쟁 시뮬레이션에선 결국 우리가 승리하지만 1차 세계대전 수준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왔다”라고 밝혔다. 1차 세계대전의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의 군 병력 사망자는 438만 명, 부상자는 838만 명, 그리고 실종자는 362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314만 명에 달한다.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의 피해는 군 병력 사망자 552만 명, 부상자 1283만 명, 실종자 412만 명, 민간인 사망자는 360만 명에 달한다. 종합하면 4천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마 핵전쟁을 가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정도 피해를 감수하며 전쟁을 할 수 없었다. 

 

2002년 부시 정부도 전쟁을 준비했다. 북한 정권을 교체한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이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전쟁 시뮬레이션을 실시하였는데 구체적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2003년 5월 30일에 진행한 1차 워게임에 입회한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의 기자는 2003년 8월 18일 영국의 BBC 텔레비전에 출연해 “결국 참가자들은 중대 결단을 내리려다가 중단하고 말았다. 유효한 군사적 선택카드가 하나도 없다는 점 때문에 그들은 좌절감을 맛보았다”라고 밝혔다. 2차 워게임은 7월 중순에 진행되었는데 2003년 8월 1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사에 따르면 “우리가 패배한다(we’re doomed)”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이 시뮬레이션 결과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2005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선제공격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2020년 9월 19일자 보도 「“서울 불바다 되지만 北선제공격"” 美대통령마다 준비한 카드」를 보면 “북한을 제압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라고 한다. 

 

1994년 클린턴 정부는 영변 핵시설만 제거하는 ‘외과수술식 정밀 폭격’을 준비했다가 포기했다. 앞의 중앙일보 보도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은 당시 모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면전 상황도 예측해 봤다. 그 결과 90일 이내에 주한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 명이 다치거나 죽는 것으로 나왔다. 민간인을 포함해 100만 명의 사망자가 예상됐다. 당시 결국 선제타격을 포기한 배경이다.”

 

물론 이 결과 역시 북한에 핵무기가 없다는 가정 아래 나온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1월 23일 발생한 푸에블로호 사건이 있다. 미 해군의 최신예 전자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영해인 원산 앞바다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북한 해군 함정에 나포된 사건이다. 미국 존슨 정부는 즉각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는 제7함대 주력 기동부대와 항공모함 3척을 비롯해 핵잠수함과 전투기 수백 대를 한반도에 급파하였다. 

 

그러자 2월 8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그러나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평화를 구걸하지는 않겠다”라고 선포하면서 동시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에는 보복, 전면전에는 전면전으로”라며 북한인민군과 각급 준군사조직, 전 인민에게 전시동원체제를 명령했다. 사태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푸에블로호의 영해 침범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문을 발표하였다. 1968년 12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배는 북한의 전리품이 되어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다. 

 

▲푸에블로호     ©자주시보

 

당시 상황을 다룬 북한 소설을 보면 미국이 항공모함을 집결시켜 북한을 위협할 때 북한 지도부가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는 미사일을 미국 정찰자산이 볼 수 있게 노출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뿐 아니라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해 주요 군사시설을 지하 깊이 마련하고 전국 곳곳에 지하 방공호를 건설했다. 또 군부대는 물론 주요 건물과 심지어 열차에까지 엄청난 수의 대공포를 배치해 폭격기의 접근을 막았다. 해안선을 따라 바위지대 속에 포와 미사일기지를 잔뜩 배치해 군함의 접근도 차단했다. 이런 상황을 정찰기와 정찰선으로 확인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수 없었다. 

 

1976년 판문점 도끼사건 때도 미국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를 포함해 대규모 폭격기, 항공모함 등을 투입해 북한을 위협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북한은 유감성명을 발표했다. ‘유감’은 참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유감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거부했지만 결국 수용하고 사태를 종결지어야만 했다. 미군 대위 1명, 중위 1명이 사망하고 병사 4명이 중상을 입었지만 미국은 아무런 보복도 응징도 못하고 나무를 자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북한과 전쟁을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을 공격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끊임없이 반복됐지만 그때마다 이를 좌절시킨 건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지, 즉 전쟁능력이었다. 북한은 자신의 핵무력이 수많은 전쟁 위협을 막아낸 ‘평화의 보검’이라고 주장하는데 위의 과정을 보면 이런 북한의 주장에 객관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2. “한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은 우리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격노』에서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다는 내용이 나오자 청와대는 “한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은 우리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역사적 사례들을 보면 한국정부는 전쟁위기 고조와 해소 과정에 어떤 책임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 1994년 전쟁 위기 당시 자신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전쟁을 막았다고 썼다. 하지만 미국 정부나 평론가 중 김영삼 전 대통령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다. 앞의 중앙일보 보도는 “클린턴 행정부의 선제타격 방안 검토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배제됐다. 김영삼 정부는 미국에서 선제공격 논의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2017년 위기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도 한반도에서 죽는다”라며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호응해 반북공세를 펴며 위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파악조차 못했다. 

 

“당시 주한미군에 미 본토와 해외 미군 기지로부터 참모 인원을 중심으로 한 증원이 이뤄졌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들어왔다. 미군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군이 오면 입을 다물곤 했다. 그리고 한국군을 뺀 채 자기들끼리 비밀회의를 자주 열었다.” (중앙일보 9월 27일 보도 중)

 

미국은 결국 핵전쟁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전쟁을 포기했다. 물론 이 과정에 문재인 정부가 영향을 미쳤다는 그 어떤 자료나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앞의 19일자 중앙일보 보도는 “한국은 이처럼 한반도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논의할 때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다. 미국은 전략무기인 핵무기에 관해선 사용 계획을 동맹국과도 협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번에 청와대가 얘기한 “한반도에 대한 무력 사용은 우리의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라는 소리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저 ‘나도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외마디 비명일 뿐이다. 비참하지만 이게 우리 현실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나타내주는 징표는 여기저기 널려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핵무기 반입 여부를 모른다. 심지어 미군이 몇 명 있는지도 모른다. 세균무기 실험을 하는지도 모르고 택배로 살아있는 탄저균을 반입해도 모른다. 주한미군이 국내에 들어올 때 코로나19 검사도 못한다. 이태원에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됐을 때도 주한미군 연관설이 파다했지만 파악조차 못 한다. 경기도 포천에서 주한미군이 안전조치를 위반해 자국민이 4명이나 죽었지만 미군에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군 책임을 묻는 대학생의 입을 틀어막느라 여념이 없다. 

 

▲ 경찰은 진상규명단이 캠프 케이시에 면담요청하러 가는 것조차 매일 가로막고 있다.     ©김영란 기자

 

이런 걸 놓고 볼 때 한미 관계는 동맹관계가 아니다. 독일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해당 국가 정부의 승인 없이는 미군이 한국에서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독일 같은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식민지라고 누가 비난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국 관련 일들은 식민지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그래서 비참하고 참담하다. 

 

문재인 정권은 미국의 ‘승인’을 추구한다. 하지만 『격노』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를 거칠게 대하는 상대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말 뜻은 줏대를 가지고 자기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는 그런 상대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트럼프 앞에 가면 기가 죽어 아부하고 굴종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개돼지로만 보고 그렇게 취급한다. 트럼프에게 저자세를 보인 아베 전 일본 총리는 미일정상회담 자리에서 레드카펫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기자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레드카펫에 못 올라오게 막아 망신을 준 것이다. 

 

2019년 2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한국이 전화 두어 통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5억 달러 더 내기로 했다”라며 한국을 개돼지 취급했다. 2019년 8월 9일에는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13 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 받는 것이 더 쉬웠다”라며 또 한국을 모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비참하고 참담한 현실을 제대로 알고 이를 혁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주권국가임을 과시하고 우리 동의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 못한다는 것을 확립해야 하는데 그 시작으로 정부는 한미워킹그룹과 동맹대화를 해체하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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