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5일 월요일

북 비핵화인가, 한반도 비핵화인가

[사설] 북 비핵화인가, 한반도 비핵화인가
아직도 북 비핵화타령인가.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협상을 앞두고, 이번에는 북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꼭 확인해야 한다면서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는 북미 상호비핵화의 길을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미국내 의회, 전문가, 언론의 ”북 비핵화“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전했다. 미국의 전직 대북 담당관, 연구자들은 일치하게 ”북의 선비핵화 없이 대북제재를 풀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의회 일부의 목소리는 더욱 강경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의 선 비핵화 조치없이 대북제재 해제에 들어가면 입법을 통해 막겠다“고 강변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공’에 눈이 멀어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할까봐 걱정스럽다“는 식이다.
국내 주요 언론들 논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 방문길 오른 김정은, 비핵화 진정성 입증해야”, “빅딜 기대감 커진 북미 정상회담, 북한의 결단을 촉구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하노이 정상회담의 본질이다” 등등의 제목을 보면 어느 나라 언론사설인가 의문이 들 지경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작년 6월 12일 싱가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공동성명 3항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한다’고 못 박은 사항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해석하면 될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를 미국과 국내 수구세력은 집요하게 “북 비핵화”라고 해석하면서 쟁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의 반북적 세계관, 일방주의적 전략, 여론을 호도하는 프레임을 담고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곧 “북 비핵화”라는 주장은 세계를 기독교적 선과 악으로 나누는 미 제국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한 마디로 북의 핵만 제거하고 미국의 핵은 그대로 두어도 좋다는 논리인데, 북의 핵은 나쁜 것이고, 미국의 핵은 선한 것이라는 서방세계의 일방주의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주장은 주장에 불과하다. 오직 팩트만이 거짓주장과 가짜뉴스의 침략적 본질을 드러낸다.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가장 먼저 만들었고,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미 제국주의자들이다. 오히려 북은 한국전쟁 시기부터 끊임없이 미국의 선제핵공격위협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시달려왔다는 것이 역사적 팩트이다. 한반도에서 진정한 우환거리는 한국 국민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에 의해 한반도에서 대북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 비핵화론”은 미국의 대북협상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이해하는가, “한반도 비핵화”로 이해하는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북 비핵화로 이해할 경우에는 북이 선비핵화조치를 취한다면, 미국이 시혜나 보상차원에서 종전선언, 대북제재 해제를 베푸는 문제로 된다. 미국이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영변핵시설 폐기를 뛰어넘어 핵리스트 제출, 비핵화 로드맵 등을 운운하는 모든 주장이 핵심에는 바로 “한반도 비핵화”는 “북비핵화”이며, 미국은 여기에 따른 보상조치를 취할 아량이 있다는 식의 접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가 말 그대로 “한반도 비핵화”일 경우에는 북이 영변핵시설을 폐기한다면, 미국 역시 한미연합훈련 영구중단을 비롯하여 일체의 핵전략자산 한반도접경으로의 접근을 금지하고, 핵전략자산을 끌어들이는 핵심인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협의해야 하는 “단계적 동시행동”의 문제로 된다. 북이 요구하는 미국의 상응조치란 바로 1차 북미협상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가 북미가 단계적 동시행동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호비핵화, 즉 말 그대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의미이다.
북미회담이 열리게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욱 뚜렷해진다.
미국이 애초에 북과 대화하겠다고 협상장에 나선 것, 싱가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를 형성하자는 것에 합의한 것,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일차적인 목표가 미국의 본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 등은 북미간 협상의 본질이 핵보유국 사이의 대등한 평화회담임을 말해준다. 이제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반도 인근에 전략자산을 투입해서 북을 핵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끝났다. 오히려 북의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로 날아오는 것을 막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것이 북미협상의 본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협상전략 차원에서 “북 비핵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도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의 현실적 목표를 핵동결로 잡고 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북은 신년사에서 언명한 대로 부득불 “새로운 길”을 갈 것이 명백하고, 그 길은 미국에게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북 비핵화론”은 여론을 호도하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무수한 언론들이 습관과 관행에 따라, “북 비핵화론”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미국의 침략적 본질을 은폐하고, 일방적, 반북적 입장을 옹호하는 편에 서게 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 관전포인트를 “북 비핵화”로 집중시키는 프레임 전략은 결국 회담의 성과여부를 평가하는 가치기준으로까지 작동한다. “한반도 비핵화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성공적인 회담결과도 “북비핵화의 입장”에서 보면 실패한 협상, 뒤집어야 하는 협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호도하는 시선과 세계관, 전략과 프레임은 두 가지 점에서 유해하다.
무엇보다 반평화적이다. 총은 함께 내려놓아야 평화가 온다. 그러나 어느 한쪽의 총만 내려놓으라고 하면, 협상을 깨지고 다시 총성을 울리게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한반도의 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그 무게를 우선 가늠해보는게 순서일 것이다.
다음으로 반민족적이다. 지금 남북이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선언을 통해 평화번영통일의 시대로 가고자하는 민족적 열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세계경제나 남북경제를 놓고 볼 때에도 남북공동의 평화번영은 매우 절실한 시점이다. 이러할 때 남북평화번영의 주된 걸림돌은 미국의 대북제재이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한미동맹의 울타리안에서 남측의 대북경협을 가로막는 장애로 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남북공동의 발전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북미간 동시행동조처를 촉진해 한반도평화번영의 길을 열어갈 대신에 오히려 대북압박을 고창하는 주장은 북미협상의 성공에도 유해하고, 민족의 이익에도 어긋난다.
이런 점에서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은 “북비핵화”라는 프레임을 탈피하고 말 그대로 “한반도 비핵화”로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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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사건 5년, 얼마나 달라졌을까?

[복지국가SOCIETY] 국민 14% 달하는 '비수급 빈곤' 문제 해결해야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던 게 꼭 5년 전이다. 2014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 씨와 장녀 김모(35) 씨, 차녀 김모(32) 씨가 번개탄을 이용해 동반 자살했다. 현장에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려고 했던 선량하고 정직한 보통 사람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당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비판과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더 커진 소득 격차, 왜? 

2월 21일, 통계청은 '2018년 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계층 간 소득 격차가 갈수록 더 커졌고, 지난해 4분기 소득분배 지표가 사상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61만 원으로 전년도 4분기보다 3.6% 증가했다. 그런데 소득계층별로 살펴보면, 가구 소득 상위 20% 구간의 2018년 4분기 소득은 932만4000원으로 2017년 동기에 비해 10.4% 늘었지만, 놀랍게도 소득 하위 20% 구간은 월 평균 명목 소득이 123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7.7%나 줄었다. 

그 결과, 5분위(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분위(하위 20%)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5분위 배율'이 5.47배로 나타났다. 이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4분기 기준으로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것이다. 참고로 가구 소득 하위 20~40% 구간(2분위)의 2018년 4분기 소득도 4.8% 줄어든 277만3000원으로 집계됐다. 반면에 소득 하위 40~60% 구간(3분위)은 411만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8% 증가했다. 그리고 소득 상위 20~40% 구간(4분위)은 가구 소득이 557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8% 늘어났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는 근로 소득과 사업 소득의 감소가 꼽힌다. 1분위 가구는 고령·여성·저학력자의 비중이 커서 임시·일용직이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근로 소득(43만500원)과 사업 소득(20만7300원)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36.8%와 8.6% 감소했다. 경기 둔화로 지난해 4분기에 임시·일용직(-15만1000명)과 직원이 없는 자영업자(-8만7000명)가 크게 줄었는데, 그 직격탄을 저소득층이 맞은 탓이다. 실제로 소득 1분위 가구주 가운데 무직인 비중은 55.7%로 전년 동기(43.6%)보다 12.1%포인트나 증가했다. 게다가 1분위의 가구당 취업 인원수는 0.64명으로 전년 동기(0.81명)보다 21%나 줄었다. 고령화도 소득 1분위의 소득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1분위의 평균 나이는 63.4살로 전년 동기의 61.7살보다 1.7살 많아졌다. 1분위에서 가구주가 70살 이상인 가구의 비중이 2017년 4분기 37%에서 지난해 4분기 42%로 5%포인트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17년 현재 4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5%의 3배를 넘는다.

▲ 송파 세 모녀가 남긴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메모. ⓒ서울지방경찰청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대 빈곤율은 17.4%(OECD 평균은 11.8%)이다. 이것은 중위 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데, 여기서 중위 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수준에 따라 정렬한 상태에서 딱 가운데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소득 불평등이 심하기 때문에 중위소득의 크기가 형편없이 작은 편이다. 어떤 가구의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절대빈곤에 가까울 정도로 충분히 가난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속하는 가난한 인구가 2017년 현재 전체의 17.4%나 된다.

2018년엔 상대 빈곤율이 전년보다 더 커졌을 개연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상대 빈곤자들이 얼마나 복지국가 체제와 공적 사회 보장의 보호와 도움을 받고 있는지다.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 목표는 격차 사회의 해소이고, 이를 위한 최우선적 과제가 바로 상대 빈곤율을 줄이는 것이다. 주요 선진 복지국가들의 상대 빈곤율이 5∼10% 수준이고 OECD 평균이 11.8%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 17.4%는 높아도 너무 높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을 통해 상대빈곤율을 2017년 17.4%에서 2023년 15.5%로 낮추고, 2040년엔 OECD 평균 수준인 11.3%로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목표를 지켜보며 많은 분들은 두 가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나는 왜 격차 사회의 해소를 위한 상대 빈곤 감축 속도가 이렇게 더디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많은 상대 빈곤자들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밖에 없을까?  

송파 세 모녀는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 생활을 이어가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빈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공공 부조,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소위 '비수급 빈곤층'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대 빈곤자들 중 상당 부분은 절대 빈곤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만이 공공 부조의 제도적 도움을 받고 있다. 사각지대가 구조적으로 너무 크고, 그래서 앞으로도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비수급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방안으로 크게 두 갈래의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공공 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포괄 범위를 크게 확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경제와 복지 제도를 유기적·통합적으로 잘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공공 부조를 통해 빈자들을 더 넓게 보호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 체제를 통해 경제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최소화함으로써 빈자의 비중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이 두 가지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했을까. 돌아볼 필요가 있고 따져봐야 한다.

먼저, 공공 부조의 역할 강화부터 따져보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유도할 목적으로 공공 부조 법령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통합 급여 체계를 개별 급여 방식의 맞춤형 급여 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2014년 12월 30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했고, 2015년 7월 1일부터 개정 법률을 시행했다. 그래서 현재는 통합 급여가 아니라 생계·의료·주거·교육·자활·장제·해산 등 총 7종의 개별 급여가 소득 수준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먼저 소득인정액 기준을 보면,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기준 중위 소득의 30% 이하라야 하고,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 44%, 교육급여는 50% 이하라야 한다. 부양의무자(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없거나 혹은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법령으로 정한 부양 능력이 없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 수는 2018년 말 기준으로 174만 명(생계 급여 123만 명, 의료 급여 140만 명, 주거 급여 153만 명, 교육 급여 31만 명)이다. 박근혜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기존의 통합 급여에서 개별 급여로 개편한 가장 큰 목적은 급여를 단 하나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맞춤형 급여 개편 전후를 비교해보면, 수급자 수는 2015년 164만 명에서 2018년 174만 명으로 단지 10만 명 정도만 늘었다. 그런데 기준 중위 소득의 30% 이하에 해당하는 생계 급여 수급자 수는 2015년 126만 명에서 2018년 123만 명으로 오히려 3만 명이나 줄었다.  

결국,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한국의 경제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지만 공공 부조의 역할과 포괄 범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2017년 상대빈곤율 17.4%가 우리나라의 빈곤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담고 있다고 간주해보자. 2018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74만 명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4%이다. 그렇다면 17.4%에서 3.4%를 뺀 나머지 14%,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상대 빈곤자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이들은 극심한 민생불안에 시달리며 어렵게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14% 모두가 비수급 빈곤층으로 공공 부조의 잠재적 포괄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 또 그렇게 되는 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최대한 위로 올라가서 자립적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런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공공 부조 대상자에 당장 포함시키거나 잠재적 포괄 대상으로 간주하고 지원 체계를 갖추어야 할 대상자는 기존의 공공부조 대상자 수만큼은 될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비수급 빈곤층은 2014년 당시 거의 120만 명 수준이었는데 차츰 줄어들어 2018년 현재 89만 명이라고 한다. 2014년 당시 120만 명이라면 전체 인구의 2.4%가 비수급 빈곤층이라는 건데, 상대 빈곤율 17.4%에 견주어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이는 과소하게 평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어찌됐든, 2014년 120만 명이던 비수급 빈곤층(이 숫자가 옳다고 간주한다면)이 2018년엔 89만 명으로 줄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함으로써 생활이 어려우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줄여나간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부터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 또는 중증 장애인이 모두 포함된 경우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8년 현재 비수급 빈곤층이 89만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2019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 장애인(장애인연금 수급자)이 포함된 경우, 그리고 수급자 가구에 만 30세 미만 한부모가구 및 보호종료 아동이 포함된 경우에도 생계 급여와 의료 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또 2019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기초연금 수급자)이 포함된 경우 생계 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아울러 2022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기초연금 수급자)이 포함된 경우 의료급여에 대해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2022년까지 문재인 정부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를 47만 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보편적 사회보장 정책이 중요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던 2014년 거의 120만 명이나 되던 비수급 빈곤층이 현재 89만 명 수준으로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3일에도 중랑구에 살던 모녀가 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가족에겐 기초연금 25만 원 외에 어떤 정부지원금도 없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우리 사회에 민생과 복지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크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달구어진 냄비처럼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받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언론도 즉자적이고 피상적인 해법을 요구한다. "왜 그분들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느냐, 발로 뛰고 찾아내서 긴급 복지를 지원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극히 부차적인 해법이다. 당사자가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가 될 의지가 없거나 수급자 낙인을 거부하면 지방 정부가 찾아내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찾아내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최소복지를 제공받는 공공 부조 수급자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래서 구조적 해법을 제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체 국민의 3.4%만 보호하고 있는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더 확충해야 한다. 상대 빈곤율 17.4%, 절대 빈곤율 5∼8%인 나라에서 3.4%의 빈자만을 보호한다는 건 지나치게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공 부조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해법이다.

그래서 보편주의 사회보장이 중요하다. 일자리와 소득 및 사회서비스 보장이 유기적·통합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서 누구에게나 사회보장과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 생활을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국민의 적정한 삶, 기본 생활을 잘 보장하려면 일자리 문제나 경제 문제와 함께 보편적 복지를 잘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애초에 빈곤층으로 잘 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빈곤층으로 떨어지게끔 방치해놓고, 이들 중의 일부 극빈자들만을 공공 부조를 통해 보호하려니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게끔 보편적 사회보장이 제도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 사회보장의 중요성을 '송파 세 모녀' 사례로 설명해보자. 어머니 박 씨의 남편은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녀는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만화가를 꿈꾸었던 차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그런데 두 딸은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이들 가족의 생계는 식당 일을 하던 엄마 박 씨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 씨가 자살 한 달 전에 넘어져 오른쪽 팔을 다치면서 식당 일을 못하게 됐다. 그때부터 이 집의 소득은 단절됐다. 두 딸은 소득이 없었으므로 엄마 박 씨가 식당 일을 해서 벌던 월 150만 원이 이 가구의 총 수입이었다. 이 정도의 가구 소득이면 절대 빈곤선을 넘나드는 상대 빈곤 가구에 속한다.

만약 송파 세 모녀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국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빈곤을 이유로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4대 사회보험이 작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박 씨가 일하던 식당이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었을 것이고, 산재보험의 급여로 평소 받던 임금의 약 80% 정도를 수령했을 것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식당들 대부분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녀는 보편적 국민건강보장 제도를 통해 당뇨와 고혈압에 대한 치료와 건강 관리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다. 차녀는 만화가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과 직업훈련의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보편적 복지로 구직 수당을 받을 수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 획기적으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 및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확대하고 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자영업자의 가입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고용보험 피보험자 규모를 2018년 1343만 명에서 2023년까지 15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도 2023년까지 특수 형태 근로자 중 건설기계업종(11만 명)과 1인 자영업자(65만 명)로 확대하고 무급가족 종사자도 임의 가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양극화돼 있고, 고용보험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구조적으로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고용보험이 없어도 공공 부조 대상자로 추락하는 것 대신에 직업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별도의 소득 보장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부터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하기로 했다. 중위 소득의 60% 이하에 해당하는 근로빈곤층과 청년층(중위 소득의 60~120%)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한 참여자에게 매월 50만 원씩 6개월간 구직 촉진 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5년 후 우리가 더 행복해지려면 

문재인 정부는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 후엔 현재 OECD 28위인 국민행복 수준을 20위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평균적인 행복 수준이 높아지려면 중하위 계층의 행복지수가 향상돼야 한다. 최대한 빠르게 상대 빈곤율을 낮추고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경제-일자리-복지가 유기적·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소득(사회보험+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되, 먼저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돌봄 경제 분야에 투자를 적극 확대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크게 늘려야 한다. 또 비숙련 노동자들과 고령자들이 종사할 수 있는 일자리를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범위를 넓히고 생계급여액도 확충해야 한다. 또 어려운 처지에 놓인 빈자들이 비교적 쉽게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비수급 빈곤층 문제의 갈등적 구조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대신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6개월 또는 1년 이내에 '탈수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만, 부정수급에 대한 방지 장치가 어느 정도 마련돼야 공공부조의 제도적 강화가 보다 완전해질 수 있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로부터 제도 확충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받기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을 강화해야 한다.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고 급여 수준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저소득 실직자를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최대한 앞당겨 도입해야 한다. 보건의료와 복지를 포함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보장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는 일자리의 보고이자 동시에 삶의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지출을 줄여준다. 여기에 투자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위한 사회 투자이자 동시에 사회 임금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이고 소득계층 간 불평등과 격차를 줄여준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의 능력을 키우는 데 돈을 많이 써야 하다. 이것은 보편적 복지와 함께 가는 '적극적 복지'의 요체다.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이자 혁신적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건이다.  

이 모든 게 가능하려면 적극적 재정 정책이 요구된다. 재원 마련을 위한 논의, 즉 복지국가 증세에 대한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제주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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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해제는 누구에게 필요한가

[아침햇살14]대북제재 해제는 누구에게 필요한가
허세뿐인 미국의 논리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9/02/26 [09:15]  최종편집: ⓒ 자주시보
1. 북한은 북미협상을 깰 수 없다?

지난 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CBS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국가 중 하나로 만들 기회를 가졌다”, “북한은 경제대국이 될 기회가 있으며 그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한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난 20일 백악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는 “나는 대북제재를 해제하고 싶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대편에서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종합해보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면 대북제재를 해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이 경제대국으로 될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북한 경제가 번영하려면 대북제재 해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핵을 폐기하라는 논리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여준 동영상도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한미 정부 당국자나 전문가들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지난해 경제총집중 노선을 선포하고 경제건설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 협상을 이어가야 하고 그래서 미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 해도 결코 협상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종종 ‘북한이 핵시험, 미사일 발사를 안 하고 있는 지금 상태가 좋다’면서 미국이 상응조치를 하지 않아도 북한은 어차피 협상판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들의 논리, 즉 대북제재 해제 없이 경제 번영은 없다는 논리가 틀렸다면 북한이 협상을 못 깰 것이라는 전망도 틀리게 된다. 

2. 대북제재 유지하면 북한은 번영할 수 없다?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북한은 대북제재 아래에서 경제번영을 실현할 수 없을까?

일단 경제번영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살펴보자.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력갱생을 통한 자립경제노선을 밝혔다. 올해만 특별히 강조한 게 아니라 북한은 그동안 한 번도 자력갱생노선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북한이 경제건설을 위해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 적도 없다. 이런 북한의 입장은 미국의 주장과 상반된다. 

북한은 ‘경제건설을 위해 외자유치를 해야 한다, 개혁개방에 나서야 한다’고 한 적도 없다. 이 점은 중국, 베트남과 확연히 다르다. 북한은 경제제재와 무관하게 오로지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개발을 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런 북한의 입장은 과연 현실 가능성이 있을까?

첫째, 북한은 역사적으로 자력갱생을 통해 승리해왔다. 

북한의 역사적 뿌리는 항일무장투쟁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동아시아를 재패하겠다며 기세등등한 일본에 맞서 전쟁을 선포한 항일유격대를 두고 일본군을 이기기는커녕 산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고 생존이나 가능하겠냐는 의혹이 있었다. 특히 일본이 유격대를 뿌리 뽑는다며 유격근거지를 원천봉쇄하고, 집단부락을 설치해 지역 주민과 유격대의 접촉을 차단하면서 유격대는 극심한 어려움에 빠졌다. 

그러나 밀림 속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던 유격대는 자체 힘으로 폭탄을 만들고 대포까지 만들어 일본군을 놀라게 하였고 끝내 일본군을 소탕하고 한반도의 38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았다. 당시 유격대 내에서는 소련의 무기 지원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산 속에서 하나하나 재료를 찾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기어이 화약을 만들고 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이 폭탄을 연길폭탄이라 불렀는데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도 연길폭탄이라면 두려워했다고 한다. 

▲ 1930년대 이후 새 사조를 받아들인 젊은 조선인 반일,항일독립운동가들은 자체로 폭탄을 만들어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과의 전투에서 사용을 하였다. 연길폭탄 또는 연길작탄이라고 불리우던 자체 제작한 폭탄은 적들과의 전투에서 커다란 성과를 냈다. 이는 당시 항일혁명투사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같은 사변이라고 볼 수 있다. 참으로 현명하기 이를데 없는 우리 조상들이다.     ©이용섭 역사연구가

이처럼 자력갱생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은 북한은 이후 한국전쟁에서도 미국과 비교도 안 되는 경제력 차이, 군사력 차이를 이겨냈다. 북한은 전후복구도 빠른 시일에 완료했고 70~80년대에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북한 자체의 힘이 기본이었다. 오히려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대국들은 북한에게 자신들의 노선을 강요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약속한 지원을 철회하는 등 방해가 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제재와 봉쇄가 극에 달했고 중국, 러시아의 지원도 거의 없었다.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사회주의 교역도 모두 끊겼다. 하지만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였다. 

지금 북한 경제는 확연한 상승기의 한복판에 있다. 단순한 상승기가 아니라 매우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음을 세계가 인정한다. 2017년 7월 21일자 중앙일보 기사 「대북 제재에도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 3.9%로 17년만에 최고」는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이 한국을 1.1% 포인트나 추월했다고 전했다. 또 김기헌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기획실장은 2018년 9월 11일 오마이뉴스 기사 「최대 압박과 제재에도... 북한 경제 잘 굴러간다」에서 한국은행 등의 북한 통계는 신뢰성이 낮으며 여러 자료를 분석해보면 중화학공업, 건설, 경공업, 유통 등 경제 전반에서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마트(the Diplomat)는 2018년 10월 16일 칼럼 「제재 속에서 북한 경제가 실제 성장할 수 있나?」에서 북한이 2017년에 3.7% 경제성장률을 보였다는 리기성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의 교도통신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대북제재가 최고조에 달해도 북한 경제는 계속 성장한다. 애초에 제재 속에서 자력갱생으로 탄생하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지금껏 잘 성장하던 북한 경제가 앞으로 제재를 지속한다고 해서 갑자기 흐름이 바뀔 근거는 없다. 아마 북미관계가 정체돼도 북한 경제의 상승기는 계속될 것이다. 

둘째, 북한은 국방경제를 민간경제로 전환하고 있다. 

북한은 2013년 3월 3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선포했다. 경제건설-국방건설 병진노선의 발전적 변화인 셈인데 국방을 핵무기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재래식 국방력 규모를 축소할 수 있고 축소한 만큼 경제건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게 2018년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총집중 노선으로 발전적 변화를 하면서 국방경제의 민간경제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군수공업부문에서는 경제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전투적 호소를 심장으로 받아 안고 여러 가지 농기계와 건설기계, 협동품들과 인민소비품들을 생산하여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추동”했다고 지난해 성과를 평가했다. 또 올해 군수공업부문 과제로 “경제건설을 적극 지원하여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 금성뜨락또르공장.     ©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국방경제의 민간경제 전환을 더해 더욱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한다. 그런데 국방경제를 민간경제로 전환하는 게 얼마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먼저 국방과학기술이 민간 산업에 이전되는 효과가 있다. 누구나 사용하는 컴퓨터, 인터넷, GPS 기술도 모두 처음에는 전쟁을 위해 개발한, 국방과학기술의 산물이었다. 이처럼 국방과학기술이 민간에 이전되면 예상치 못한 폭발적 효과를 낳기도 한다. 북한에 어떤 군사기술이 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세계가 알지 못하는 기술이 민간에 도입될 때 얼마만큼의 파급력이 있을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수 인력이 민간경제에 투입되는 효과가 있다. 국방과학기술을 발전시켜온 북한의 최고 인재들과 최고 수준의 대학을 졸업할 우수한 인재들 다수가 경제개발에 투입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국방비를 민간경제로 돌리는 효과가 있다. 미 국무부가 2016년 12월 22일 발표한 ‘2016 세계 군비지출 무기 이전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1년 간 구매력 평가(PPP)기준 GDP의 평균 23.3%를 국방비로 썼다고 한다. 이는 국가 전체 살림살이의 거의 4분의 1을 군사비에 쓴 것이다. 물론 북한의 경제 상황을 외부에서 정확히 알기 어려우므로 미국이 추정한 북한의 GDP나 국방비가 정확한 값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방비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처럼 높은 국방비를 민간경제로 돌렸을 때 경제 성장 속도를 매우 높일 수 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끝으로 군수산업시설의 일부가 민수로 전환되는 효과가 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는 제2경제위원회 소속의 전문군수공장이 44개, 인민무력성 소속의 일반군수공장이 136개 등 180개의 군수공장이 있으며 미확인된 군수공장까지 포함하면 3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공장 가운데 탱크 만들던 공장이 트랙터를 만들고, 군복 만들던 공장이 작업복을 만드는 식으로 전환이 된다면 민간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신년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런 전환은 이미 한창 진행 중이다. 

이처럼 북한이 경제총집중노선에 따라 국방경제의 일부를 민간경제로 전환하면 할수록 북한 경제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셋째, 대북제재가 유지돼도 북한과 외국의 경제협력이 강화될 것이다. 

지난해부터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재논의해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착수한 만큼 당연한 요구지만 여기에는 중국, 러시아의 처지도 한 몫 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러시아는 끝내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대북제재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북한과 경제협력에 나설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침햇살4]2019년 북한 신년사에 병진노선이 등장할까?」를 참고하기 바란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함께 대북제재의 주요 요소를 이루는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도 갈수록 힘을 잃을 것이다.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가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는 미국의 국력에 비례한다. 미국의 세계 패권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기에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도 점차 무력해질 것이다. 

이는 대북제재뿐 아니라 대 이란 제재, 대 러시아 제재 등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들이 갈수록 세계 여러 나라의 항의에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8년 6월 6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에 맞서 EU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재 무력화 규정을 업데이트해 발동했다. 

북한과 외국의 경제협력 강화는 북한의 경제성장에도 일정하게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북한은 최첨단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성장동력이 있어야 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은 최첨단 기술개발에서 나온다. 최근 세계 각국은 새로운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부흥,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무인운송수단, 3차원 프린팅, 나노기술, 양자암호 등이다. 

2009년 8월 11일 노동신문 정론 「첨단을 돌파하라」가 발표되면서 북한 전역에서 ‘최첨단 돌파전’ 열풍이 불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정보기술과 나노기술, 생물공학기술을 핵심기초기술로 꼽고 국가적 투자를 집중하였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흐르면서 북한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중요한 점은 북한의 첨단과학기술 성과들이 독자적 노력, 즉 자력갱생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자력갱생을 통한 북한의 최첨단 돌파전은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며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을 살펴볼 때 북한은 경제제재 아래에서도 부강국가 건설 목표를 실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3. 대북제재는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생긴다. 미국의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번영을 막을 수 없다면 미국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제부분만 살펴보자. 일단 미국의 대북제재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악영향을 미칠까? 미국이 자국의 경제 피해를 감수하며 70년 넘게 대북제재를 해왔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 상태에서 대북제재가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미래 가치를 놓고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 미래 가치를 보는가. 자본주의에선 원래 현재 물질화된 가치뿐 아니라 미래 가치도 현재 경제력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지금은 안 보이는 가능성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면 당장 석유 한 방울 시추하지도 않았음에도 유가가 들썩이고 그 나라 경제에 외부 투자가 줄을 잇는다. 사실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는 미래 가치가 더 큰 영역을 차지할 수도 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계속하면 미국 자본이 북한에 투자할 기회가 사라진다. 북한의 미래 가치에 참여할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다. 현 양상을 볼 때 이렇게 되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 같다. 최근에도 거물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미국 자본가들의 대북 투자 의향은 강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월 2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한의 경제가 개방된다면 국제기구, 국제자본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국제자본의 대북투자는 북한의 경제개방이 아니라 대북제재가 해제돼야 가능하다. 국제자본이 왜 투자하나. 그만큼 미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들의 투자를 막는 것은 분명 미국에게 손해다. 만약 미국이 일시적 손해를 감수하고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을 무너뜨리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느 정도 손해를 보는 것일까? 즉, 미국이 북한에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미래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남·북·중·러 경제협력을 추구한다. 이런 경제협력을 통해 동북아 공리·공영을 이루려 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대북제재를 고집한다면 한·미·일은 북·중·러 경제협력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북·중·러 경제협력은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일단 무궁무진한 지하자원과 우수한 노동력, 낮은 임금, 국가 핵무력이 보장하는 평화적 환경,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첨단기술 등은 북한의 강력한 경쟁력이다. 

여기서 잠깐 북한의 낮은 임금을 ‘노동 착취’로 바라보는 견해에 대해 짚어보자. 개성공단 사례에서 보듯 북한 노동자 임금은 중국은 물론 베트남보다도 낮다. 예전에는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기업들이 낮은 임금을 찾아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노동자 임금이 많이 올라서 선호도가 떨어진다.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화가 많이 돼서 노동자들도 자기 직장에 대한 소속감이 없다. 한 달이나 지속되는 중국 춘절 기간이 끝나면 더 많은 돈을 주는 기업을 찾아 떠나버려 연락도 없이 직장에 복귀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속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베트남보다 임금이 낮은데도 노동자들의 직장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그 이유는 북한에서 노동자들은 ‘취업’의 개념이 아니라 국가에 의한 ‘배치’ 개념으로 기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가의 명을 받아 지정된 일을 하니 마치 전 국민이 공무원인 셈이다. 북한의 튼튼한 사회주의 복지제도에 의해 완성된 사회안전망은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아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노동자들은 기업에게 임금을 받는다는 개념이 없고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받는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용은 개성공단 기업주들에 의해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북한 노동자의 저임금은 ‘노동 착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아무튼 북한이 이런 경쟁력을 가지고 중국,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하면 지역 경제번영은 물론 세계 경제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중국의 동북3성은 인구 1억910만 명에 달해 대규모 시장이 될 수 있으며 막강한 중국 자본, 5G 기술에서 미국을 멀찌감치 따돌린 화웨이와 같은 최첨단 기술력 등은 중국의 강점이다. 러시아 극동지역 역시 막대한 양의 시베리아 천연가스, 연간 어획고 220만 톤을 자랑하는 수산자원과 함께 최근 공개된 최첨단 무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기술력까지 더해 강력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중국, 러시아 모두 극동지역 개발전략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북·중·러 모두 미개척 영역이 더 많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미국이 대북제재를 고수하면 한국은 이런 동북아 경제협력에서 소외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 러시아가 한국의 참여를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경의선, 동해선 연결이 되지 않아도 중국, 러시아는 북한의 라진항을 이용해 물류 운송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동북아 경제협력은 세계적인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 만약 미국이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의 주변부로 밀려날 수 있다. 자본주의의 특성 상 중심부에 진입하지 못한 자본은 도태하고 몰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몰락과는 반대로 북한은 대북제재와 무관하게 자력갱생을 통해 성장하고, 동북아 지역도 번영하고, 세계 경제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높다. 

4. 경제 영역에서 북·미는 누가 갑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는 미국이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북한은 경제 번영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인데 한 마디로 미국이 갑, 북한이 을이라는 소리다. 반면 북한의 논리는 대북제재를 하든 말든 자력갱생으로 경제부흥을 이루고 자국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와 협력해 공영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동북아 경제협력에 참여하려면 북한의 허락을 받아야 하므로 북한이 갑, 미국이 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미국의 논리보다 북한의 논리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은 북한에 압박을 가할 때가 아니라 과거를 덮고 경제협력을 해달라고 요청해야 할 처지다. 이렇게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얼마나 허세인지가 분명해진다. 

일반적인 국제관례와 인류 역사를 고찰해보면 핵무력에서 우위에 선 북한이 미국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동북아 지역의 미군을 모두 철수하고 대북제재 등으로 그간 북한에 끼친 피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게 받은 막대한 피해도 배상 요구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상태였기에 요구하지 않았지만 종전선언을 하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다. 원래 전쟁이 끝나면 승전국이 패전국에게 당연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런 문제를 꺼내지 않고 있다. 공존·공리·공영의 입장에서 미국 자본에게도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정신이라면 이 기회를 덥석 잡으면 된다. 자기 처지가 ‘을’인 줄도 모르고 제재를 풀지 않겠다고 하는 건 자기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짓이다. 70년 넘는 대결에서 무수히 반복한 패배를 다시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감안하면 아무리 봐도 미국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이 글은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에 동시 게재됩니다. 

문 대통령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

수보회의 주재, “신한반도 체제 주도적 준비하겠다”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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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5  16: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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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사진제공 - 청와대]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지금 식민과 전쟁, 분단과 냉전으로 고통 받던 시간에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주도하는 시간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 손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27~28일)을 눈앞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오후 2시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역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전쟁과 대립에서 평화와 공존으로, 진영과 이념에서 경제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례브리핑을 통해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와 우리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 해체와 신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한다는 내용”이라며 “이 신한반도 체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3.1절 연설문에서도 더 구체화돼서 담길 예정”이라고 전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으로부터 100년의 역사가 흘렀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냉전질서에 묶여있는 현실을 넘어서서 ‘신한반도 체제’를 구축함으로서 역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겠다는 역사적 맥락을 담은 발언으로 평가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자기 목소리를 확실하게 낸 셈이다.
참고로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이 채택되자 송민순 당시 한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는 “늘 우리에게 만들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를 앞으로 우리를 위한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 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의 북핵 외교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대담한 결단과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대북 외교를 직접 이끌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의 해체에 성공한다면 세계사에 뚜렷하게 기록될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핵 대신 경제 발전을 선택하여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도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두 정상을 성원하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과 안보 불안을 해소하고, 평화경제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한반도 문제의 주인으로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하고,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문 대통령은 19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면서 “남북 사이의 철도 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고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경제가 개방 된다면 주변 국가들과 국제기구, 국제자본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도 우리는 주도권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대북제재로 주변국들의 손발을 묶어둔 미국이 북한 경제를 선점해 정작 대북제재가 해제되더라도 한국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항간의 우려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성과를 거둔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마음으로 회담의 성공을 기원할 것”이라면서도 “힘들게 여기까지 온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개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모두가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우리에게 다가온 기회를 붙잡는 데 전력을 다하자”고 당부했다.
  
▲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는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이 참석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는 노영민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수현 정책실장을 비롯해 수석비서관들이 참석하고 주요 비서관들이 배석했다.

한편, 김의겸 대변인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종전선언의 형태가 어떻게 될지 그것은 알 수가 없으나 북미 사이에 얼마든지 종전선언이 합의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도 우리 정부는 환영이고, 북미 종전선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2차 북미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 여기에 사람이 산다

19.02.26 08:16l최종 업데이트 19.02.26 08:16l






마그마 수증기 덕에 자연온천이 발달한 미국 캘리포니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시하고, 백인들은 호텔과 리조트를 세운 이곳의 역사를 전현직 기자인 우세린 작가 부부가 충주 유순상 작가의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편집자말]
 왼쪽 멀리 슬랩 시티 지역 예술가들이 판매하는 기념품 트럭이 있고 오른쪽에는 방문객들 차량이 주차돼 있다.
왼쪽 멀리 슬랩 시티 지역 예술가들이 판매하는 기념품 트럭이 있고 오른쪽에는 방문객들 차량이 주차돼 있다.ⓒ 우세린

존재하나 기록되지 않은 곳이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남부 슬랩 시티(Slab City)다. 슬랩(Slab)은 흔히 아버지 세대가 말하던 회색 단열재인 '슬라브'와 같은 단어로, 다시 말해 이곳은 판자촌을 뜻한다. 빈자들의 공동체, 그들의 무료 노천 목욕탕인 슬랩 시티 온천(Slab City Hot Springs)을 찾아갔다.

슬랩 시티 온천은 행정구역 상 임페리얼 카운티 닐랜드(Niland)에 있으며 소노란 사막(Sonoran Desert)에 자리하고 있다. LA에서 남쪽 309km 지점으로 111번 하이웨이를 달리다 비포장 길인 빌 로드(Beal Rd)로 접어들면 나온다. 길가에 별다른 안내판이 없어 외지인들은 못 보고 지나치기 쉽다. 지역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기념품 판매 트럭 뒤쪽에 있으니 구글 지도를 '굳게' 믿자.
 
 사막에서 자라는 키 작은 덤불을 사이에 두고 레저차와 폐차가 세워져 있다. 히피들은 이런 차량들에 래커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고물을 이용해 조형물을 만든다.
사막에서 자라는 키 작은 덤불을 사이에 두고 레저차와 폐차가 세워져 있다. 히피들은 이런 차량들에 래커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고 고물을 이용해 조형물을 만든다.ⓒ 우세린
 판자로 지어진 기하학적 집. 사막지대라 여름에도 그늘만 만들면 꽤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판자로 지어진 기하학적 집. 사막지대라 여름에도 그늘만 만들면 꽤 쾌적하게 지낼 수 있다.ⓒ 우세린

이곳은 공식적으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명의 도시다.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0월, 미 해군이 북아프리카 공격을 위한 대공 포탄 훈련지 캠프 던랩(면적 2.6㎢)을 세운 뒤 1961년 부대를 철수하면서 폐허로 남아 있던 공간이다. 그 전후로 LA와 샌디에이고 등 미 전역에서 노숙자와 히피들이 몰려와 텅 빈 탄약고와 무기고, 목욕탕 건물을 점거해 살고 있다.

뜨거운 여름철에는 300여 명이 거주하다가 겨울이 되면 따뜻한 곳을 찾아온 장기 여행자들이 더해져 인구가 10배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카운티로서는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이곳이 골칫거리라 공식적인 행정구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전기∙수도 시설이 없다. 쓰레기를 버릴 곳이나 더러운 물이 흘러가야 할 하수시설도 없다. 그 대신 군부대 맨홀과 각종 물탱크만이 고대 화석처럼 곳곳에 남아 있다.

마지막 자유의 땅에서 보내온 우편물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차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자 사막에 레저 차량이 듬성듬성 모여 있다. 어떤 이들은 고급 레저 차량 앞에 파라솔을 쳤고, 어떤 이들은 낡은 레저 차량 지붕에 판자를 덧대 햇볕 가리개를 만들었다. 버려진 레저 차량 상판을 모래에 박아 놓고 낡아 부서진 벽에는 두꺼운 종이 박스로 막아 둔 집, 인근 태양광 발전소 기자재를 나르던 지게차용 팰릿을 붙여 만든 누더기 집, 노아의 방주를 뒤집어 놓은 듯한 기하학적인 판자 집도 있다.

영화 <디스트릭트9>에 등장하는 세기말 모습이나 영화 <판의 미로> 속 어둡고 괴상한 아우라가 풍기는 키치적 공간이다. 산악 전문작가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이자 동명의 영화 <인투더와일드>(In To The Wild)에도 등장하는 곳으로 주인공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가 알래스카로 가 변사체로 발견되기 전 이곳에서 10대 소녀와 짧은 사랑을 나눴다.

이곳은 히피들의 예술 공간이기도 하다. 눈길을 먼저 붙잡는 것은 길 따라 버려진 군부대 검문소다. 히피들은 검문소에 색색깔 래커 스프레이로 다양한 메시지와 그림을 그렸다. 슬랩 시티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THE LAST FREE PLACE, ALMOST THERE'(마지막 자유의 땅, 곧 도착). 인생은 한번뿐(You only live once)이란 뜻의 'YOLO'(욜로), 외설적이란 뜻의 단어 'LEWD'를 써놓았다.
 
 슬랩시티를 걷다 만난 집. 대문과 안마당에 빨간색 하트 문양을 곳곳에 그려놓았다. 집을 지나자 주인장이 초콜릿을 먹고 가라고 우리 부부를 불렀다.
슬랩시티를 걷다 만난 집. 대문과 안마당에 빨간색 하트 문양을 곳곳에 그려놓았다. 집을 지나자 주인장이 초콜릿을 먹고 가라고 우리 부부를 불렀다.ⓒ 유순상

사막에 버려진 폐차에는 선풍기 날개 수십 개를 붙여 우주 로봇 괴물처럼 표현했고, 어떤 차에는 크레파스풍 원색을 칠해 레고 장난감처럼 만들었다. 마을 안 '버려진 곰 인형의 집'은 해가 지는 흐름에 따라 인형의 표정과 분위기가 바뀐다. 반려동물 공동묘지는 섬뜩하면서 가엾다. 마을이 마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흐물거리는 시계 같다.

이곳이 세상에 점차 알려지자 장기여행자와 이 문화를 체험하려는 속칭 '슬래버(Slabber)'가 찾아왔다. 종말을 대비해 생존 훈련을 하는 서바이벌리스트(Survivalist)와 무정부주의자, 각종 예술가 등 괴짜들이 모였다. 작가 찰리 해일리는 자신의 책 <슬랩 시티, 마지막 자유의 땅에서 보내온 우편물>(SLAB CITY, DISPATCHES FROM THE LAST FREE PLACE)에서 1985년 기준 겨울철 주민 수가 6천 명이었다고 기록했다.

주민끼리 논쟁거리가 발생하면 마을 이사회가 열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간혹 신분을 속이고 숨어 있는 도망자도 있다. 2016년 4월 뉴멕시코 주에서 여성을 목 졸라 죽인 40대 남성이 이곳에 은신해 있다가 석 달 뒤 또 다른 여성을 이 마을에서 총격 살해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유격훈련장 참호를 떠올리게 하는 온천

테니스 코트 크기의 온천은 진흙이 굳은 듯한 윤기 없는 거친 땅에 덜렁 있었다. 공사장 기초 작업을 위해 파놓은 대형 구덩이에 장맛비가 고인 모양새다. 온천 둘레도 콘크리트나 돌로 깔끔하게 마감이 돼 있지 않아 군부대 참호 같다.
 
 군부대 참호 같은 슬랩 시티 온천. 겉보기에는 지저분했지만 눈 딱 감고 입수하면 제법 후끈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군부대 참호 같은 슬랩 시티 온천. 겉보기에는 지저분했지만 눈 딱 감고 입수하면 제법 후끈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유순상
 깊은 곳은 2m가 훨씬 넘을 듯한 온천. 바닥이 진흙이라 미끄러질 수 있으니 위험한 장난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깊은 곳은 2m가 훨씬 넘을 듯한 온천. 바닥이 진흙이라 미끄러질 수 있으니 위험한 장난은 하지 않는 게 좋다. ⓒ 우세린

물은 시멘트를 풀어 놓은 듯 짙은 잿빛이다. 유황이 흘러 계란 썩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온천 가장자리에는 수초가 동전 만한 크기로 뭉쳐 있고 날벌레가 여기저기 빠져 죽어 있다. 이것을 온천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뜨거운 물 웅덩이라고 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마침 발가벗고 목욕을 하던 10대 후반 소녀도 아버지의 빛 바랜 하늘색 승용차를 타고 사막으로 사라졌다.

여긴 아니다 싶어 물에 손만 담그고 있는데 어디선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 백인 여성이 하얀색 호텔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이름은 안드레아. 그녀는 온천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 대뜸 "이곳에서는 원하는 사람은 옷을 다 벗고 목욕을 해도 돼, 나는 벗고 목욕할 거야"라고 말하더니 가운을 벗어 던지고 물에 들어갔다. 순간 눈을 어디 둬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갔다. 남편도 따라 입수. 온도는 36도로 제법 후끈했다. 더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니 물이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유황 성분이라 물이 탁할 뿐 물 속까지 더럽지는 않았다. 온천 바닥에서 온천수가 보글거리며 계속 솟구쳐 작은 수로로 흘렀다. 수심 깊은 곳은 2m가 넘었다. 바닥이 진흙이라 미끄러지면 위험할 수 있다.
 
 온천 바닥에 있는 진흙을 피부에 바르면 좋다고 해 남편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온천 바닥에 있는 진흙을 피부에 바르면 좋다고 해 남편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우세린

안드레아는 자신을 사회학자라고 소개했다. 대학을 다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고 6년 전에는 완전히 이주를 했단다. 하는 일은 굶주린 개에게 먹이를 주고 다친 개를 치료하는 것. 물론 그도 채소 한 포기 기를 수 없는 사막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한 달에 한 주 정도는 샌디에이고로 나가 돈을 벌고 지인들에게 개 사료 등을 기부받아 돌아온다.

"내가 거의 수의사나 마찬가지야. 이 마을 사람들은 다들 가난해서 개들에게 먹이를 줄 형편이 안 돼. 내가 사료를 주고 치료도 해주고 있어."

슬랩 시티 온천은 수돗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이곳에서 안드레아와 같은 가난한 독지가나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작품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지역 예술가, 높은 집값에 허덕이다 해방구를 찾아온 노숙인들에게 안식처다. 누구도 입장료를 받지 않으며 비싼 차, 명품 옷을 입고 와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함께 옷을 벗고 탕에 들어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다. 몸에 숨겨두었던 작은 상처까지 드러낸다. 시인 유하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처럼 이곳 온천은 허위를 씻어낸다.
 
"세상을 떠돌다 돌아온 옷들에게 나는 많은 걸 배운답니다. 그들에겐 새 옷이 지닌 오만과 편견이 없지요. 더러움의 끝에서 다시 순백의 빛을 보았으니까요."

안드레아는 온천을 떠나기 전, 아침 9시에 5달러짜리 샌드위치를 파는 오아시스 카페, 정크아트로 유명한 이스트 지저스(East Jesus) 등 마을 명소를 알려줬다. 그는 또 "매주 토요일 해가 지면 슬랩 시티 나이트클럽인 더 레인지(The Range)에서 밴드 공연이 있다"며 "오픈 마이크로 왜 자기가 이곳에 왔는지 등 사는이야기도 공유한다"고 추천했다. 그날이 토요일이었다.

세상을 걷어찬 자들의 연대
 
 구원의 산, 샐베이션 마운틴. 레오나드 나이트가 28년 동안 고무 페인트를 쏟아 부어 만들었다.
구원의 산, 샐베이션 마운틴. 레오나드 나이트가 28년 동안 고무 페인트를 쏟아 부어 만들었다.ⓒ 유순상
    
우리는 온천 욕을 끝내고 1.1㎞ 떨어진 구원의 산, '샐베이션 마운틴(Salvation Mountain)'을 찾아갔다. 샐베이션 마운틴은 미 동부 버몬트 주 출신의 레오나드 나이트가 36살에 종교에 심취해 이곳으로 온 뒤 종교 기념물로 만든 페인트 언덕이다. 처음에는 시멘트로 작은 기념물을 만들었는데 점차 커져 높이 46m짜리 대형 그림 언덕이 된 것이다.

투입된 시간만 28년, 쏟아 부은 페인트가 37만 리터다. 그는 청년 시절 한국전쟁에 징집돼 한국 땅도 밟았지만 열흘 만에 휴전이 되면서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거대 페인트 산에는 빨강색과 분홍색, 연두색 등 원색 페인트로 나무와 계곡, 각종 기호들이 그려져 있다. 정상에는 하얀 십자가가 2~3m 크기로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신은 사랑입니다(GOD IS LOVE)'라는 문구가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또 아래에는 '예수여, 나는 죄인입니다, 제발 나에게 와 마음속으로 들어와 주세요'(Say JESUS I'M A SINNER PLEASE COME UPON MY BODY AND INTO MY HEART)라는 메시지가 같은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이밖에 다양한 성경 구절이 여기저기 적혀 있다.

사실 임페리얼 카운티로서는 이곳이 눈엣가시였다. 세금도 안 내는 불온한 자들이 정부 땅을 불법 점거해 개발을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종교 시설물이라 쉽게 부수지도 못했다. 카운티가 세운 전략은 환경 문제를 제기해 철거하는 것. 카운티는 1994년 독소 전문가를 고용해 주변 환경 조사를 했다. 결과는 납 성분 환경 기준치 초과. 카운티는 바로 철거 수순에 들어갔다.
 
 샐베이션 마운틴 주변에는 폐차 등을 이용한 정크 아트가 많이 배치돼 있다. 성경 구절이 많이 적혀 있다. 사진작가와 종교인들이 많이 찾는다.
샐베이션 마운틴 주변에는 폐차 등을 이용한 정크 아트가 많이 배치돼 있다. 성경 구절이 많이 적혀 있다. 사진작가와 종교인들이 많이 찾는다.ⓒ 우세린
 현재는 동명의 비영리단체인 ‘샐베이션 마운틴’이 고무 페인트를 쏟아 부으며 보수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동명의 비영리단체인 ‘샐베이션 마운틴’이 고무 페인트를 쏟아 부으며 보수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세린

주민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역 예술가와 종교인이 연대해 여론전을 벌이며 타 지역 민간단체에 환경조사를 다시 의뢰했다. 다행히 납 성분이 환경 기준치 미만으로 나왔다. 수성전에 성공. 나이트는 이후에도 이곳에 머물며 여러 작품을 만들다 2014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샐베이션 마운틴이라는 같은 이름의 시민단체가 유지보수작업을 한다.

샐베이션 마운틴 바로 아래 판잣집에 살고 있는 활동가 론은 "오전 10시쯤 사람들과 모여 보수작업을 한다"며 "여기를 더 크게 만들 수는 없고 매일 무너진 곳에 지푸라기를 짚어 넣고 페인트를 채운다"고 했다. 론은 샐베이션 마운틴을 오르는 방문객에게 종종 고함을 친다. "그쪽은 올라가는 길이 아니에요! 언덕에 앉아 있으면 안 돼요! 페인트가 다 무너져요!" 론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차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 다니다 보니 하늘이 금세 어스름해졌다. 햄버거도 사먹을 겸 안드레아가 추천한 나이트클럽 '더 레인지'에 갔다. 늙은 기타리스트가 기타 줄을 튕기고 한 중년 여성은 하모니카에, 또 다른 남성은 탬버린을 친다. 노래는 슬랩 시티 주민인 마이크 브라이트가 만든 '슬랩 시티 송'(Slab City Song). 그들은 빠른 템포의 연주에 맞춰 "우리는 여기가 좋아,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We like it here and we ain't going back)라고 함께 불렀다.

노인 20명이 긴 의자에 앉아 음악과 밤공기를 즐기고 머리카락을 땋아 내려 드레드 머리를 한 청년들은 뒤편 의자에 앉아 마리화나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조끼 차림의 정체 모를 중년 남성들은 오른쪽 허리띠에 장도를 차고 공연을 지켜본다. 목줄 풀린 개들은 청중 사이를 마구 뛰어다니고 무대에 올라가 나른한 기지개를 켠다.
 
 공연장이자 마을의 유일한 나이트 클럽인 레인저. 햄버거를 팔며 술은 외부에서 사서 가져와야 한다.
공연장이자 마을의 유일한 나이트 클럽인 레인저. 햄버거를 팔며 술은 외부에서 사서 가져와야 한다.ⓒ 우세린

두 번째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한 여성이 올라와 드럼 스틱을 들었다. 주변에서 그의 이름을 외친다. "안드레아! 안드레아!" 낯익은 이름. 낮에 온천에서 같이 목욕한 금발 여성이었다. 안드레아의 드럼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은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읊조리듯 부르는 가수의 노랫말은 고요한 사막에 퍼지고 어느새 어둠의 커튼이 발 밑까지 내려왔다. 내 옆에 앉아 크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동네 개는 결국 내 햄버거를 차지했다. 객석도 어느새 활기가 넘친다. 이들은 세상에 낙오된 걸까, 아니면 스스로 세상을 걷어차 버린 걸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단비뉴스'와 브런치(brunch.co.kr/@name0904) 등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