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0일 목요일

남북분단 씨앗은 동아일보 기사였다


[프레임전쟁] 2화 찬탁은 없었다, 반탁운동은 반공운동의 뿌리·친일파는 반공프레임 덕분에 애국자로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7년 04월 2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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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27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이란 기사는 거짓이었다. 12월16일 모스크바에서 소련·미국·영국 3국외상이 만나 조선 문제를 논의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를 전하는 해당 보도는 실제 미국이 제안한 신탁통치를 소련이 제안한 것처럼 왜곡했다.
“번즈 미 국무장관은 출발 당시 소련의 신탁통치안에 반대해 즉시 독립을 주장하도록 훈령을 받았다고 하는데 3국간에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불명하나, 미국의 태도는 카이로 선언에 의해 조선은 국민투표로써 그 정부의 형태를 결정할 것을 약속한 점에 있는데, 소련은 남북 양 지역을 일관한 일국 신탁통치를 주장해 38선에 의한 분할이 계속되는 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 동아일보 1945년 12월27일자 1면기사
▲ 동아일보 1945년 12월27일자 1면기사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왜곡보도는 한국 언론사(史)에서 좌우이념이 대립한 최초의 사건이다. 동아일보는 당시 친일파 지주들이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한민당)의 핵심 김성수가 창간해, 송진우가 사장으로 있었고 ‘한민당 기관지’로 불렸다.
한국인들은 신탁통치를 ‘제2의 식민지’로 생각해 격렬히 반대했다. 반탁열풍은 시위·동맹휴학 등 대중운동으로 확대됐다. “전 민족이 투쟁하자”(김구), “전국이 결의 표명”(이승만), “최후까지 투쟁하자”(송진우) 등 성명서가 쏟아졌고, 임시정부는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했다. 자연스럽게 반탁운동은 신탁통치를 제안했다고 알려진 소련에 적대적인 성격을 보였다.  
실제 모스크바 3상회의 내용은 동아일보 보도와 달랐다. 신탁통치안은 소련이 아닌 미국의 구상이었다. 미 대통령 루즈벨트는 1943년 테헤란회담에서 소련 수상 스탈린에게 “한국민은 40년의 훈련기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2년 뒤 얄타회담에서 ‘한반도는 소련·미국·중국 등에 의해 20~30년 신탁통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루즈벨트 사망 이후 대통령이 된 트루만은 신탁통치에 소련 영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소련은 미국 제안에 대해 신탁통치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입장이었다.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은 신탁통치가 아니라 조선의 독립민주정부 수립이다. 합의문 1항이 “조선을 독립국가로 재건하고 민주적 원칙에 바탕을 둔 발전”을 위한 “임시적인 조선민주정부 수립”이다. 이를 위해 2항에서 “남조선의 미군사령부와 북조선의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들로 공동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위원회는 조선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신탁통치 내용이 담긴 3항 “조선 독립의 달성을 위해 협력·원조할 수 있는 방책 작성”은 부수적이었다.  
반탁운동 확산, 친일파는 애국자·좌익은 매국노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건 ‘조선의 민주적 독립정부 건립’을 지지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3상회의 결정을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로 왜곡하면서 ‘3상회의 결정지지’가 ‘찬탁’으로 변질됐다. 
▲ 해방 이후 박헌영(왼쪽)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여운형은 조선인민당 당수를 맡았다. 이 사진은 반공서적에 '음모를 꾸미는 공산주의자'로 묘사되며 많이 실렸다.
▲ 해방 이후 박헌영(왼쪽)은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여운형은 조선인민당 당수를 맡았다. 이 사진은 반공서적에 '음모를 꾸미는 공산주의자'로 묘사되며 많이 실렸다.

좌익세력은 사실을 파악하는데 우선했다. 국내에는 30일부터 3상회의 결과가 보도됐다. 여운형은 조선인민당 선전국장 김오성에게 “이번 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은 논리상으로 따지면 임시정부를 세우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소”라며 “원색적인 감정은 눌러두고 냉철해야지, 임시정부 수립에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요”라고 말했다. 46년 1월3일 좌익 최대세력인 조선공산당은 ‘3상회의 결정지지’ 입장을 밝혔다.
김구와 이승만 등 우익은 ‘3상회의 결정’을 곧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로 봤기 때문에 좌익을 ‘찬탁세력’으로 몰았다. ‘찬탁’표현이 처음 나온 건 1월4일, 한민당은 ‘조선공산당이 반탁 대신 신탁통치를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좌익이 찬탁을 주장하지 않은 사실은 1월7일 한민당·국민당·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이 모여 ‘자주독립과 민주정부 수립’에 동의한 ‘4당 코뮤니케’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1월7일 이승만이 “탁치(신탁통치)가 강요된다면 열국의 종속민족으로 우리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타인에게 맡겨놓은 격이 될 것”이라며 반탁입장을 밝히자, 8일 한민당은 ‘4당 코뮤니케’를 번복했다. 앞서 한민당 수석총무 송진우(동아일보 사장)가 3상협정안을 확인하고 이를 지지하자 45년 12월30일 새벽 한현우·유근배 등에게 암살당한 사건도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이 마비된 시기였다. 미군정의 하지 중장, 장택상, 조병옥 등은 송진우 암살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
해방 직후 가장 중요한 이슈는 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이었다. 당시 미군정이 실시한 조사에서 서울시민이 선호하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14%,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로 나타났다. 주로 좌익이 진정성 있게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열세에 놓인 우익, 특히 친일파들은 동아일보 왜곡보도로 분위기를 뒤집었다. 친일청산과 토지개혁은 ‘반탁 프레임’으로 바뀌었다. ‘반탁=반소=반공=애국’과 ‘찬탁=친소=용공=매국’으로 구분됐다. 
왜곡보도의 배후세력은 
동아일보 왜곡보도 출처는 ‘워싱턴 25일발 합동’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조선에 대한 결정’이 공식 발표된 시각은 12월28일 정오, 한국시각 28일 오후 6시, 워싱턴 시각 28일 오전 4시였다. 주한미군사령부가 3상회의 결과를 워싱턴에서 통보받은 시각은 29일 오후였다. 동아일보는 공식발표 전에 이런 중대한 내용을 잘못 보도한 것이다.
미군정의 ‘신탁통치’라는 보고서에서 동아일보 기사 출처로 지목한 곳은 ‘합동통신사’, ‘성조기’, ‘태평양성조기’였다. 동아시아 미군들을 상대로 도쿄에서 매일 발행된 ‘태평양성조기’ 27일자 내용이 동아일보 왜곡보도와 내용이 똑같다. 필자는 UP통신의 랄프 헤인젠 기자였다. 헤인젠 기자는 30년대부터 유럽에서 활동했고, 동아시아와 별 인연이 없었다. 동료들 사이에선 ‘악명 높은 날조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정리하면 3상회의 공식 발표 이전에 신뢰가 떨어지는 필자가 쓴 도쿄의 ‘태평양성조기’에 실린 글이 하루 만에 ‘합동통신사’를 거쳐 서울의 동아일보에 실린 것이다.
합동통신은 일제강점기 ‘도메인통신’을 미군정이 1945년 11월에 접수해 합병 등을 거친 곳이다. 합동통신 주간 김동성은 이승만 정권 초대 공보처장을 맡을 정도로 이승만과 친했다. 이승만과 김동성의 힘만으로 도쿄와 서울에서 동시에 왜곡보도를 낼 순 없다. 일본과 한국의 여론을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곳은 미군정(주한미군)과 맥아더의 도쿄 극동군사령부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남한 내 언론을 검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군정은 반소·반공 여론이 필요했다. 일본 항복 이전부터 소련이 한반도 북쪽에 주둔했고, 미군은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 38선을 그었다. 38선 이남 민심마저 좌익에 우호적이었고, 신탁통치 반대나 친일청산 요구가 거셌다. 미국 본토 정부에 비해 태평양 주둔 미군은 남한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가 남한 정국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신탁통치 계획 수정을 미 국무부에 요청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했다. 
▲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의 왜곡보도 이후 반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 1945년 12월27일 동아일보의 왜곡보도 이후 반탁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미군정청 공보부는 12월29일자 ‘정계동향’에 “미국이 즉시 독립을 원한 반면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합동통신사(KPP)의 기사배포가 강력한 반소감정을 일으켰다”고 기록했다. 왜곡보도로 남한 내 우익과 미군정은 반소·반공을 고리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박헌영 기자회견 왜곡, 미군정의 좌익 죽이기 
뉴욕타임즈 통신원 리처드 존스톤이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헌영의 기자회견을 왜곡한 건 ‘반탁=반소·반공’ 프레임을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이다.
1946년 1월5일 박헌영은 내·외신 기자들과 영어로 소련의 신탁통치와 소비에트 연방 가입가능성 등을 묻는 기자회견을 했다. 존스톤은 박헌영이 소련 신탁통치를 찬성했고, 소련 가입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고 기록했다. 뉴욕타임즈에 실리지 않은 이 내용은 열흘 뒤인 1월15일 샌프란시스코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16일 동아일보·대동신문 등 우익 신문들이 인용하며 박헌영을 공격했다.  
17일 조선공산당은 존스톤의 왜곡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18일 존스톤은 회견 취소를 원한다면 뉴욕타임즈에 항의하라고 발언했다. 당시 뉴욕타임즈에 박헌영 인터뷰가 실리지 않은 사실을 국내에서 확인하긴 쉽지 않은 점을 악용해 거짓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날 미군정은 존스톤 기사에 왜곡이 없다고 발표했고, 조선공산당의 존스톤 추방요청을 거절했다. 박헌영 기자회견 직후 미군정의 하지 장군이 존스톤의 메모에 대해 흥미롭다고 주의를 환기한 사실은 ‘박헌영-존스톤 사건’ 배후가 미군정이라는 의심에 무게를 더한다. 
박헌영 같이 노회한 정치가가 기자들 앞에서 조선공산당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만드는 발언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미군정의 여론공작 결과 박헌영의 정적들은 그의 목에 현상금 30만 엔을 걸었고, 박헌영은 좌익들 사이에서도 ‘구제불능의 친소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소련의 반격, 미군정 여론통제  
소련은 남한 내 상황을 파악하고 46년 1월22일 ‘타스통신’을 통해 ‘미군정이 남한 내 반소선전을 허용하고 3상회의 결정 반대를 자극한다’는 평양발 급보를 냈다. 미국 정부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고, 맥아더 장군 대변인만 타스통신을 비난했다.
타스통신은 24일자로 미국이 신탁통치를 제안한 사실을 공개했다. 미군정이 남한 내 언론을 통제해 타스통신 보도가 전달되지 않자, 미소공동위원회 소련대표 스티코프는 26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타스통신 보도 전문을 발표했다. 그때도 미국 정부가 아무런 대응을 못한 것은 미군정이 반탁·반소 선전을 허용한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 정부 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한미수뇌들. 왼쪽부터 미진주군사령관 하지, 태평양미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연합뉴스
▲ 정부 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한미수뇌들. 왼쪽부터 미진주군사령관 하지, 태평양미육군 총사령관 맥아더,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연합뉴스

미군정의 언론통제로 좌익의 목소리는 묻혔다. ‘해방일보’는 46년 4월29일 박헌영을 인용해 “조선에 대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는 식민지 민족해방과 독립을 보장하는 유일하게 옳은 국제적 원칙”이라고 보도했고, ‘노력인민’은 47년 11월20일 “파쇼희랍화하려는 조국을 구하자”라는 글에서 3상회의를 “조선민족을 위해 참으로 유리한 진보적 결정”이라고 했다.  
좌익 언론을 보면 미군정이 ‘3상회의지지’를 어떻게 ‘찬탁’으로 몰아 한국인을 탄압했는지 알 수 있다.  
46년 1월27일 3상회의를 실현하기 위해 입국한 미소대표단 환영대회에 악기를 가지고 나간 구실로 전남 종연방직 공장장은 노조간부 손만기를 해고했다. 이곳 사장은 미군정의 관리였다.  
2월 경성 철도노동자들이 3상회의 실천을 위해 미소대표단 환영회에 참여하려했다. 이를 간부들이 강제로 막았는데 당시 철도국장이 미국인이었다. 노동자들이 서울운동장으로 향하자 정체불명의 테러단이 습격했고, 철도노조간부 김재완·방준표·박성순·임종한 등이 검거돼 전원 실형을 선고받았다.  
13일자 해방일보는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미소대표단을 환영하자는 시민대회에 참여하려는 우리들에게 무슨 까닭으로 철도국장(미국인)은 참가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테러범은 왜 석방하고 테러받은 우리들은 무슨 이유로 구금하는가”라며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길행 간부 등이 지난 1월12일 반탁데모 때 폭력으로 우리를 강요 참여케 했음에도 그들은 어찌하여 미군이 단호 처단치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미군정이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국민을 ‘찬탁’세력으로 몰아 폭력을 이용해 해산시킨 내용이다.  
반공으로 갈라진 좌우 
▲ 1945년12월과 46년1월 신탁통치, 3상회의 관련보도. 자료출처=김영희, 미군정기 신문의 보도경향
▲ 1945년12월과 46년1월 신탁통치, 3상회의 관련보도. 자료출처=김영희, 미군정기 신문의 보도경향

1945년 12월~46년 1월 두 달 간 3상회의·신탁통치 관련 보도 중 동아일보는 다른 자유주의 신문들에 비해 신탁반대 논평·시위 관련보도 비중이 높았다. 동아일보는 신탁반대 보도비율이 47.6%로 조선일보(31.9%)·자유신문(27.1%)·중앙신문(26.4%) 등에 비해 높았다. 반면 3상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내용은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3상회의·신탁통치에 대한 정당관련 기사 역시 우익정당 반응은 64건을 보도했지만 좌익정당 반응은 11건밖에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46년 5월11일자 사설에서 소련을 “우리에게 탁치를 강요하는 나라”라고 비난하는 등 3상회의 결정내용을 파악한 이후에도 반공프레임을 강화했다.
미군정의 여론조작결과 해방 후 첫 3·1절 기념식이 분열됐다. 좌우익은 서울운동장과 남산에서 각각 3상결정기념식과 반탁기념식을 열었다. 3000여명의 3상결정지지자 중 일부는 반탁을 외친 50여명에게 기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좌우대립이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다. 이승만은 세달 뒤인 6월3일 정읍에서 “우리는 무기휴회된 공위(미소 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이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바라는 중대발언으로 패전·전범국인 일본 대신 한반도가 남북으로 찢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승만은 1919년 미국에게 위임통치를 요청해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한 인물이다. 그가 해방 이후에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유는 미군정의 뜻대로 소련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김구를 중심으로 한 우익들은 ‘3상회의 결정’의 사실관계도 무시한 채 반탁을 외치며 이승만과 친일파에게 이용당했다.  
45년 8월15일 일본 항복이후 4개월이 지나서야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3상회의가 열렸다. 해방 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동아일보 왜곡보도로 좌우익 갈등이 극심해졌다. 3상회의 결정을 위해서는 미국과 소련이 적극적으로 만나 조선의 민주독립정부 수립을 준비해야 했다.
반탁운동은 46년 3월 1차, 47년 5월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산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결국 같은해 9월17일 한국의 독립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됐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48년 5월10일 38선 이남에서 총선거가 실시됐다.
▲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절차를 토의하는 양국대표들 왼쪽은 미국대표 하지 중장 오른쪽은 소련대표 스티코프 중장
▲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절차를 토의하는 양국대표들 왼쪽은 미국대표 하지 중장 오른쪽은 소련대표 스티코프 중장

같은해 12월 이승만 정부는 사실상 좌익 숙청이 목적인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분단정부 수립이후 첫 3·1절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해방 이후로 반탁운동과 반공운동에 우리 전 민족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서 태산 같은 방해를 다 물리치고 오늘까지 성공하여 온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무산과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숙청·국민보도연맹 학살 등은 동아일보 왜곡보도 이후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보를 조작하고, 그 정보를 믿은 대중의 행동결과만 역사적 사실로 남는 이 무서운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 참고문헌 
김삼웅, 곡필로 본 해방 50년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박태균, 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윤해동, 반탁운동은 분단·단정노선이다 김영희, 미군정기 신문의 보도 경향-모스크바 3상회의 한국의정서 보도를 중심으로정용욱, 역비논단-1945년 말 1946년 초 신탁통치 파동과 미군정-미군정의 여론공작을 중심으로 
<프레임전쟁> 연재목차 
2화 해방 이후 찬탁 대 반탁 갈등 
뉴스의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의제(어젠다·agenda)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여과를 거친 의제는 복잡한 이슈를 찬반 양자택일 구조로 형성하고 여론이 기술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에만 몰두하게 했다. 또한 언론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할 힘조차 미화시켜 역사적 국면마다 흉기로 둔갑하곤 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미디어오늘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체제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史에서 언론·국가·자본권력이 첨예하게 갈등하거나 야합했던 주요한 사회적 모멘텀(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장면)을 제공했던 사건들을 프레임(개념 틀) 전쟁이란 관점에서 14회에 걸쳐 연속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언론의 바람직한 모습을 성찰하고 되짚어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겠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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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대선후보를 말하다

도올 김용옥, 대선후보를 말하다“文-투명하고 믿음직, 安-학습능력 뛰어나지만 불투명”…홍‧유‧심은?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사진제공=뉴시스>
도올 김용옥 교수가 5개 정당 대선후보들에 대한 촌평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김용옥 교수는 20일 아침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사회자의 요청에 화답, 먼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해 “투명하고 깨끗한 사람, 그렇기 때문에 든든하고 딛을 만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아무리 그 사람이 부족한데가 있다고 할지언정 그 부족한 것이 보인다고 숨겨져 있지 않다”며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투명하고 그런 의미에서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여러 가지로 ‘꼴보수’의 대명사라고는 하지만 밉지가 않다”며 ‘이번 대선에서 자기할 말을 정확하게 하면서도 자기주장을 관철해내는, 또 헝그리 정신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잘 완주하면서 보수세력들을 결집해 위대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가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학습능력은 상당히 있는 것 같다”면서도 “불투명해 잘 안 보인다. 비전이 무엇이고, 구현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인생의 가치관 등이 명료하게 파악이 안 된다”고 촌평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경우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꼴보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지만 경제 문제나 정치적인 행보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알고 대선토론에서도 봤든 명쾌하고 안정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보수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대해서는 “우리사회에 심상정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해야 한다”며 “‘심상정은 빨갛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지 말로 우리사회의 귀한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심상정에게 노동부 장관을 맡겨 노동문제를 다루게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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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대선,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가 주요 과제

[목요집회] 촛불대선,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가 주요 과제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7/04/20 [17:0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4월 20일, 1119회 목요집회가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4월 20일 오후 2시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 촉구 1119회 목요집회’가 진행되었다.

첫 번째로 조순덕 민가협회장이 발언을 하였다.

조순덕 회장은 “현재 양심수가 47명이 수감되어 있다. 징역살이를 하면 계절이 여름과 겨울 2번 밖에 없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는데 건강이 걱정이다. 촛불혁명으로 지금 대통령 선거운동이 진행 중인데, 이번 대통령은 당선이 되면 양심수를 전원 석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 양심수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자.” 호소하였다. 

또한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 째 수감중인 이병진 교수의 만기출소가 9월인데, 더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하자고 발언했다.

▲ 1119회 목요집회에서 연설하는 민가협 조순덕 회장     © 자주시보

이어 본 기자가 자주시보 이용섭 기자가 구속되어 있는 것에 대해 연설을 했다.
“이용섭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애써온 기자이다. 기자로써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국민들의 알 권리도 침해하는 것이다. 특히 분단된 나라에서 북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 이를 무조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다면 우리 사회의 진보와 자주통일을 가로막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 후보들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것을 약속하여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세 번째로 강경대 열사의 아버님인 강민조 선생이 연설을 했다. 
“국민들이 위대하다. 위대한 국민들이 우리 역사를 최소한 20년 앞당겼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와 부정부패도 청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 국민들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 1119회 목요집회에서 연설하는 강민조 선생(강경대열사 아버님)     © 자주시보

1119회 목요집회 마지막 발언자는 채은샘 환수복지당 전북도당 대변인이 연설했다.
채은샘 대변인은 “지난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환수복지당 당원들이 사드배치 반대, 세월호와 관련된 포스터를 부차했다. 그런데 종로서와 선관위가 나서서 선거법위반이라며 포스터 부착을 방해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것이 왜 선거법 위반인가? 선관위와 종로서는 더 나아가 포스터 부착에 항의하는 당원들을 폭언을 쓰며 연행해 갔다. 
과연 경찰이 민중을 위한 경찰인가? 최근 미 대사관 주변에서 진행하는 1인시위도 탄압하고, 소녀상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 당원들에게도 탄압을 한다. 경찰도 개혁대상이다.”며 발언을 했다.

1119회 목요집회 참가자들은 힘찬 함성을 지르며 마쳤다.

▲ 1119회 목요집회에서 연설하는 채은샘 환수복지당 전북도당 대변인     © 자주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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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낯선' 군소후보 5인, 면면 살펴보니...

'7, 12, 13, 14, 15번', 그들은 왜 3억 내고 대선 나왔을까?

 오는 5월9일 열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군소후보들의 선거 포스터. 기호13번 김정선(한반도미래연합) 후보의 경우, 20일 현재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당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책자형 선거공보'로 갈음했다.
▲  오는 5월9일 열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군소후보들의 선거 포스터. 기호13번 김정선(한반도미래연합) 후보의 경우, 20일 현재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지 않은 관계로 당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책자형 선거공보'로 갈음했다.
ⓒ 오영국, 이경희, 김정선, 윤홍식, 김민찬

"지금 언론에서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만 대선 후보인 것처럼 띄워주고 있잖습니까? 저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습니다."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때 이른 대통령 선거에 무려 1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텔레비전 토론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5명의 주요 후보들만 있지 않다. 당선 가능성은 낮지만 자신의 비전을 알리기 위해 나선 인사들도 있다.

일반인들에겐 낯설다. 아마 다음 5인은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게다. 오영국(59·경제애국당), 이경희(43·한국국민당), 김정선(58·한반도미래연합), 윤홍식(43·홍익당), 김민찬(59·무소속) 후보다.

[기호 12번] 국회 앞 '민족통일대통령리빙텔' 지은 이경희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는 2002년 만 28세의 나이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낸 바 있는 청년정치인이다. 1993년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네 차례나 총학생회에 출마했다. 기존 질서의 붕괴를 외치는 강성 민족해방(NL)계열의 운동권에 신물이 났다. '비운동권'을 표방하며 도전장을 던졌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전패(全敗)'였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공인중개사 사무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닥에서 분투하며 착착 밑천을 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족통일부동산'이라는 이름의 부동산 임대업소를 차렸다.

장사 수완이 좋은 덕에 자금이 불어났다.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2002년), 이문동 한국외대 인근(2004년)에 오피스텔을 지었다. 거기에 '민족통일대통령리빙텔'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공동대표로 있는 소속 정당의 당사는 여의도 리빙텔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다.

"다른 정당은 건물 4~5층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당은 1층에 있어요. 접근성이 좋습니다. 공간도 넓어요."

이경희 후보는 유독 '민족통일'을 강조한다. 포스터에서도 '통일이 답이다!'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는 대통령이 돼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을 열일곱 살 때부터 품었다. 헌법 4조에서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 수립"의 의무를 규정해놓은 만큼 이를 준엄한 명령이자 국민적 의무로 본 것이다.

"중학교 윤리 교과서에 '통일' 대목이 나오잖아요. 수업을 듣다가 분단에 따른 국가의 이권 손해, 민족의 기회비용을 알게 됐고요. 그래서 통일을 반드시 이뤄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대학을 나온 뒤, 한국외대에서 '통일헌법'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무리했거든요. 우리가 통일이 됐을 때,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 헌법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죠."

그가 내놓은 담론의 다른 날개는 '40대 기수론'이다. 이 후보는 "40대인 대통령이 있으면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며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젊은 인재들, 조직이나 연줄이 없어 정치를 못하는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2020년 총선을 통해 많이 등용되면, 국회의 판갈이를 할 수 있다"고 정치세력의 전면 교체를 주장했다. ▲ 청년청 설치 ▲ 청년복지카드 도입 ▲ 군복무 기간 16개월로 단축 등이 주된 공약이다.

특히 이 후보는 야당도 박근혜 정부 실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전혀 구현하지 못한 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 해서 국정과제를 잘 수행할 것이라 보지 않는다"며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나 박근혜 탄핵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것에 불과하고,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의 마음이 야당으로 흐른 것 뿐"이라며 기성정치권의 '적폐 청산' 의지를 평가절하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군소후보 주요 공약
▲  제19대 대통령 선거 군소후보 주요 공약
ⓒ 박동우

[기호 14번] 철학자 출신 윤홍식 "태극기 집회 어르신도 '양심'에 끌렸다"

철학자가 대선에 출마한 경우도 있다. 홍익당 윤홍식 후보는 '홍익인간' 이념을 새로운 사회의 아젠다로 주창한다.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남에게 베풀자는 정신을 사회 제반 분야를 넘어 정치의 현장에도 적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고교 시절 소설 <단(丹)>에 푹 빠졌다. 명상, 단전호흡의 붐을 일으킨 소설이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봉우(鳳宇) 권태훈옹(1900~1994)이 살던 집을 찾아갔다. 대종교의 으뜸가는 어른인 '총전교'였던 권태훈옹에게서 홍익인간 이념을 배웠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동안 감정평가사 시험 공부에 전념했다. 고시 문제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철학 사상엔 눈길이 갔다. 딴짓에 빠졌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서양의 모든 철학 서적을 섭렵했다고 한다.

2004년 인문학 교육공간 '홍익학당'을 설립한 뒤 기독교의 '황금률', 유교의 '인', 불교의 '자비' 사상에 깃든 고갱이는 '양심'이라는 점을 누누이 역설했다. 이듬해 출판사 '봉황동래'를 설립해 지금까지 16권의 책을 남겼다. 유튜브에 게시한 강의 동영상만도 2천여 건에 육박한다.

윤홍식 후보가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직후였다. 집회의 불꽃이 점화된 지난해 11월, 곧장 창당발기인 서명 작업에 돌입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하나같이 '새로운 혁명의 시대'라 했지만, 알맹이가 없더라. 민주주의를 향한 주권자의 보편적 의지는 양심이다. 촛불혁명은 '양심혁명'이 돼야 한다."

다섯 개 시·도에서 1천 명씩 5천 명의 창당발기인을 모아야 했다. 학당 회원들이 나섰다. 전국 각지로 흩어져 거리를 돌아다녔다. 서울 시내에선 을지로, 명동, 종묘 일대를 공략했다. 어르신들은 기꺼이 서명에 동참했다. 진보, 보수 성향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어르신도 서명했다. 그들은 '홍익'이나 '양심'이라는 단어를 듣자 호의를 표시했다.

그는 "진보도 문제가 되고 보수도 문제가 될 때는 양심을 어겼을 때 문제가 되기에 그런 것"이라며 "이제는 '양심적 진보', '양심적 보수'가 나와서 서로의 문제가 지닌 본질을 찾고 '이렇게 살자'는 큰 틀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념의 틀을 깰 것을 촉구했다.

홍익당은 ▲ 독립운동가, 순직자, 의인 등 후손에 최대한 지원 ▲ 원스톱 민원 해결 '양심콜센터' 설치 ▲ '양심코리아' 국가브랜드 확립 등을 약속으로 내놨다. 특히 전국 유·초·중·고에 '양심노트'를 보급하겠다는 파격 공약을 제시했다.

'양심노트'는 윤 후보의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내가 한 행동이 양심에 따른 것인지, 욕심에 따른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끔 체크 리스트를 짰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실험해본 결과,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 옆자리에서 함께하는 학생이 관찰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인성교육의 본질은 그 사람의 양심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인성교육은 '노예도덕'을 가르치고 있어요. 주입식으로 특정 이념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거니까, 양심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죠."

윤 후보의 공약은 단출하다. 거창한 공약보다는 리더십의 바탕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약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공약보다는, 그 공약을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리더십 없는 리더가 작은 조직이라도 끌고 갈 수 있을까요? 리더는 그 조직의 그릇이고 문화입니다. 그 리더가 건전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국민의 만족을 위해 실제로 어떤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죠."

[기호 15번] 김민찬 "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설"

'백화점식 공약'보다 몇 개의 핵심 공약으로 승부하는 건 무소속 김민찬 후보도 매한가지다. 중앙선관위 선거정보포털 홈페이지에 공약계획서를 올리지 않은 유일한 후보다. ▲ 비무장지대(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설 ▲ 국가진단위원회 설치 등을 개인 홈페이지에 공약으로 내건 게 전부다.

이번에 출마한 김민찬 후보는 원광디지털대 자연건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템플턴대 상담심리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삶의 전환점은 우연찮은 계기에서 비롯됐다.

경남 삼천포로 회사 워크숍을 갔을 때다. 도공들을 만났다. 가마의 짜임새가 허술했다.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힘들게 살면서 전통 예술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처음엔 몇 명을 후원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회사를 그만뒀다. 2004년 비영리단체 '대한신문화예술교류회'를 꾸렸다. 사단법인 '대한민국명인회'의 전신으로, 문화예술인을 '장인'으로 떠받드는 단체였다.

"이분들이 연세도 있으신데, 전통이 이어지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그때 조직을 해서 전국에 숨은 장인들을 찾아다녔죠. 첫 해에 7명 찾았어요. 10년이 지나니까 330명 정도까지 늘었네요."

공예·국악 등 각 분야의 장인을 가려냈다. '대한민국명인'으로 추대했다. 매년 이들과 함께 '대한민국명인전'을 열어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문화예술계에서 활약하는 장인들을 발굴하는 일은 해외로 뻗어 나갔다. '세계명인회'를 조직하는 한편, 2012년 국내외에서 발굴한 장인들을 한데 모아 관리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월드마스터위원회'라고 이름 지었다.

70여 개 국가의 주한대사관에 자국 문화예술인 중 장인으로 꼽힐 만한 이들을 추천해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그 결과 280여 명의 해외 문화예술계 장인을 발굴했다. 해외 장인들을 국내로 초청해 2010년과 2012년 '월드마스터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특히 2014년부터 매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한외국대사관의 날'을 개최했다. 세계 각국의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장이 됐다. 김 후보가 '민간외교의 성과'로 자랑하는 대목이다.

김 후보는 몇 안 되는 공약 가운데 비무장지대에 '세계문화예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일성을 부르짖었다. 문화예술 분야를 둘러싼 지대한 관심이 투영된 산물이다. 각국의 문화예술촌을 들여와 한 도시 안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장을 여는 한편, 남과 북의 공생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정책을 사과나무에 비유했다. "오염된 땅에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튼실한 과일이 나오겠나. 오염된 땅을 다 갈아엎어서 깨끗하게 만든 다음에 사과나무를 심어야 제대로 된 과일이 자란다"며 정책을 만드는 시스템의 '진단'에 주목했다.

적폐 청산의 해법으로 내놓은 '국가진단위원회 설치' 공약은 부처 및 공공기관 내부에서 이뤄지는 상시 감사 체계를 강화하자는 구상이다. "구조적인 잘못을 다 찾아내야 헛되이 쓰는 예산을 파악해서 복지 부문으로 돌릴 수 있죠. 국장급을 중심으로 각 부서에서 근무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체 진단 과정을 통해 조직을 정화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호 7번] "800만 지지자 있다"는 오영국, 자기 사업 홍보에 치중하는 듯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공약을 선보였다. 오영국 후보는 ▲ 세계 1위 경제대국 건설 ▲ 2~3년내 1300만 개 일자리 창출 ▲ 강력범죄 제외한 모든 징역형 사면 ▲ 신용불량자 700만 명 이상 전원 신용 회복 ▲ 세계전자은행 설립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19대 대통령 후보'라 검색하면 포털 사이트 검색창 맨 위에 내 이름이 뜬다"며 아리송한 말을 늘어놓았다. 또한 오 후보는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800만 명 넘는 엄청난 지지세력이 전국에 깔려 있다"며 "미국 맥(General MacArthur)재단의 재정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이고, 나는 거기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기업 300개사가 합쳐진 단체가 '국제금융기구'인데, 여기서 공약의 재원을 조달하겠다" 등 믿기 어려운 주장을 잔뜩 폈다.

중앙선관위에 신고한 그의 직업은 '하하그룹 회장'이다. 하하그룹은 의료용 대장 세정기를 판매하는 업체다. 샤워기 호스에 끼우면 강한 수압의 물을 내뿜는데 이를 통해 변비를 해소하고 숙변을 제거할 수 있단다. 오 후보는 "우리 회사는 세계 최초로 수명 연장하는 제품을 개발한 회사"라며 "18년 동안 연구·개발해서 지난해 10월 14일에서야 마무리를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유독 자사를 떠올리게끔 하는 공약이 많이 눈에 띈다. 하하그룹의 먹거리 원천은 대리점 사업이다. 그는 유통청을 설치하고, 방문판매 관련법을 폐지하겠다 약속했다.

특히 '1300만개 일자리 창출' 가운데 33%에 달하는 430만 개 일자리를 하하그룹에서 만들겠다 공언했다. 오 후보는 "대리점이나 지점 등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추산한 것"이라며 "일자리의 수가 더 많이 나오지만, 과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일단 최소치로 잡았다"고 해명했다.

[기호 13번] 박근혜 명예회복·상고사 재정립 외치는 후보도 있어

한반도미래연합 김정선 후보는 줄곧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외쳤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뒤에도 이러한 주장은 계속됐다. 지난 3월 12일에도 SNS에 글을 올려 "박근혜 대통령은 99일 이내에 명예회복하여 세계 여성 인권의 세계 지도자로 우뚝 솟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 김영란법 폐지 ▲ 기초의원 폐지 및 광역단체장 정당추천제 폐지▲ 사이버특수군 병력 10만 양병 ▲ 세계재활은행(WRB) 설립 ▲ 상고인류역사 재정립 등이 그의 주요 공약이다. 기자는 김 후보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소성리 롯데cc에 주한미군 ‘페이로더’ 2대 반입

부상·연행자 발생..“사드배치 불법추진, 장비 반입도 명백한 불법”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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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0  17: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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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주한미군이 운전하는 페이로더 2대가 한국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성주 소성리 롯데cc로 진입해 들어갔다. [사진제공-평통사]
사드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군 초천면 소성리 롯데cc에서 20일 오전 경찰의 호위아래 주한미군의 공사 장비 반입을 강행하면서 주민과 원불교 관계자들이 부상을 당하고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1~12일에도 한미당국은 주민들과 평화지킴이가 막고 있는 진입도로를 회피해 관련 장비를 치누크 수송헬기 10여대를 이용해 상공으로 실어 나른 바 있다.
소성리 일대를 평화지역으로 선포하고 사드배치와 관련된 어떠한 장비나 차량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주민들과 원불교 측은 “사드배치가 법적 근거도 없이 불법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를 위한 공사 장비 반입도 명백한 불법”이라며, 육탄 저지에 나섰다.
특히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공사 장비를 반입하는 것은 법 위반이며, 언론을 통해 사드 부지 공여를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공사 장비를 반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경찰의 불법에 항의하던 원불교 비대위 관계자가 부상을 당해 쓰러지기도 했다. [사진제공-평통사]
  
▲ 경찰은 진밭교 원불교 평화교당 앞 도로를 차량으로 완전히 막고 차단했다. [사진제공-평통사]
소성리 종합상황실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부지 평탄화 및 기지 건설을 위한 공사용 중장비인 페이로더 2대가 진밭교 앞 원불교 평화교당을 거쳐 롯데cc를 향해 진입했다. 페이로더 운전석에는 주한미군이 앉아 있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이날 오전 6시25분께 제보를 받고 진밭교 방향으로 이동하는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의 접근을 차량으로 차단하고 수백 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평화교당을 에워쌓았다.
경찰의 호위 아래 페이로더가 롯데cc로 들어간 이후에도 2차 장비 반입을 위한 경찰의 무분별한 장비반입 호위작전은 계속됐다.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이 오전 10시 마을회관앞에서 원불교 교무들과 천주교, 기독교 성직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 진행한 ‘미군장비 불법 반입과 경찰의 불법적 공권력행사 규탄 및 추가 장비 반입저지를 위한 생명 평화 기도회’에도 해산 종용과 연행위협을 거듭했다.
11시 50분께 소성리 마을회관을 경찰 차량으로 봉쇄하고 주민들을 움직일 수 없도록 고착시킨 후 2차 공사장비와 물자 반입 시도가 있었다. 또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 원불교 강현욱 교무를 포함해 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원불교 비대위 집행위원장인 김선명 교무가 부상당했으며, 윤명은 상황실장이 부상을 당해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2차 반입을 시도했던 트럭에는 이동형 화장실을 비롯해 폐기물 처리를 위한 장비가 실려있었다고 한다.
  
▲ 소성리 주민들과 원불교 교무들이 진밭교 앞 도로에서 연좌 평화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평통사]
소성리 주민들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장비 재반입을 시도하고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행태에 크게 격앙되어 “경찰이 불법적으로 우리의 길을 막는다면 우리도 불법적인 사드 장비 차량의 반입을 막겠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온몸을 던져 사드 배치를 막겠다”며 연좌농성 등 평화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드저지 평화회의는 이날 ”한미당국이 사드 배치를 위한 불법적인 공사 장비의 반입을 강행하는 것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사드 배치를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한미 당국은 지난 3월 2일부터 시작한 사드부지 공여 관련 SOFA 절차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시설구역 및 환경분과위원회의 세부협의가 최근 완료됨에 따라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합의 건의문 형태로 지난 19일 부지공여 승인을 SOFA 합동위원외에 요청하고 이를 한미 합동위원장이 이날 승인하는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드 장비 등 배치를 서두를 것으로 보이는 한미 당국과 이를 막기 위해 나서는 소성리 주민, 원불교, 평화지킴이의 충돌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