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7일 수요일

"감옥에서 붓으로 쓴 삼천리 독보(獨步)의 꿈"

인권운동 사랑방·인권재단 사람,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선(線) 위에 선(立)' 전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
승인 2019.04.18  00:35:30
페이스북트위터
  
▲ 인권운동 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이 주관한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선(線) 위에 선(立)' 장기수 9인의 서예작품 전시회가 17일 개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교도소에 들어가면 재소자는 혼자 걸을 수가 없습니다. 교도관이 반드시 뒤에 따라야 합니다. 독보를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반쪽밖에 독보를 못하는 형편이지만 그때 삼천리를 독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팔도일행'(八道一行)이라고 썼습니다."
인권운동 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이 주관한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선(線) 위에 선(立)' 장기수 9인의 전시회가 개막된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라이프러리 아카이브.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20년동안 옥고를 치르다 1988년 6.29선언 1주년때 석방된 오병철 선생은 이날 개막 행사에서 1987년 옥중에서 쓰고 이날 전시된 '팔도일행'을 이같이 풀이해주었다.
  
▲ 오병철 선생이 붓으로 쓴 '삼천리 독보'의 꿈에 대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전시된 서예작품은 류낙진 선생, 박성준 선생, 석달윤 선생, 신영복 선생, 안승억 선생, 오병철 선생, 이구영 선생, 이명직 선생, 이준태 선생 등 아홉 분의 작품 50점.
20여년 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모았던 것으로 옥중 작도 있고 출소 후 쓴 작품도 있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은 오병철 선생이 올해 봄 신현칠 선생의 시 제목을 쓴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오병철 선생이 쓰던 붓과 벼루, 신영복 선생이 감옥안에서 새긴 전각은 물론 감옥에서 공부하며 쓰던 책자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오병철 선생의 작품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명직 선생의 작품들. '송심난정', '소나무같이 꿋꿋한 마음 난초같은 유연한 성품'이 눈에 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전 3회, 광주시, 전라남도 미술대전에 수차례 입선하기도 했던 류낙진(1928~2005) 선생이 쓴 '從善如流(종선여류), 선을 따름이 물 흐르듯 한다', '心淸事達(심청사달), 마음이 깨끗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백련강(百鍊剛), 쇠는 백번을 두드려야 단단해진다'는 작품은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여전한 가르침을 주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익힌 붓글씨를 감옥 서예반에서 만난 성주표, 조병호 선생과 옥중 스승인 이구영선생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운 신영복(1941~2016) 선생의 옥중작인 '회우보인(會友輔仁), 벗을 모아 어짐을 더한다), '한겨레 한나라'를 비롯해 세계인권선언 전문 등 여러 작품도 볼 수 있다.
옥중에서 신영복, 이명직, 오병철 선생에게 한학과 서예를 가르친 이구영(1920~2006)선생은 '晴耕夜讀(청경야독), 날이 밝으면 논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 '自天佑之(자천우지),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는 글도 전시되어 있다.
이명직(1926~2012)선생이 쓴 3.1독립선언서가 병풍으로 전시되었으며, '兼治別亂(겸치별난), 겸애하면 화평해지고 차별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寬則得衆(관즉득중),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德必有隣(덕필유린),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다', '松心蘭性(송심난성), 소나무 같이 꿋꿋한 마음 난초 같은 유연한 성품' 등 가장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성준(1940~ ), 안승억(1935~ ), 오병철(1937~ ) 선생은 직접 전시장에 나와 인사도 나누고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으나 거동이 불편한 석달윤(1932~ )선생과 연락이 끊긴 이준태(1943~ ?) 선생은 과거 작품으로만 볼 수 있다.
1981년 안동 일가족간첩사건으로 무고한 8년 감옥살이를 한 안승억 선생은 재심청구 5년만인 오는 5월 16일 첫 재심재판이 열리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박성준 선생은 최근 어떤 계기에 '언제 가장 슬펐나'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의 운명을 해결할 방도를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는 답을 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대학노트 한권 분량에 나는 이렇게 본다는 견해를 정리해 살아 생전 치르는 장례식을 준비해 여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이 소책자를 예물로 드리겠다"고 근황과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는 라이프러리 아카이브(02-363-5855, 02-725-2080)
  
▲ 선 위에 선.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오병철 선생이 사용하던 붓과 머루, 신영복 선생이 새긴 전각들도 전시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정-18일 09:33)

[관련기사]

이승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군사정권 아래 노점상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

최인기의 빈민스토리(6)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04.18 09:19
  • 댓글 0
1. 1980년대 이후 노점상
▲ 1980년대 노점상[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80년대 이후 노점상 문제를 집약해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김순희(여 79세) 씨의 삶을 통해 당시의 삶을 돌아보자.
"남편을 여의고 서울로 올라와 창신동에서 월세방을 얻어 1남 1녀와 살았어요. 새벽에 경동시장에 나가 야채나 과일 같은 걸 떼어다가 길음역 근처에 펼쳐 놓고 팔았지요. 그런데 부근에 대형 슈퍼마켓이 생기고 장사가 안되어 도봉산 등산로 입구로 옮겨 다시 소라와 옥수수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장사를 마치고 인근 시장에 나가 소라를 사다가 집에서 삶아 다음 날 10시쯤 도봉산으로 올라갔지요. 이것도 한철이라 여름에는 소라가 팔리지 않아 다른 품목으로 바꾸려고 했지만 적당한 품목도 없고, 장마까지 겹쳐 사다 놓은 물건마저 모두 날렸버렸습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단속 때 잘 봐 달라고 노점상들끼리 걷어 상납한 돈과 왔다 갔다 차비, 점심값을 떼고 나면 손에 들어오는 것은 그야말로 몇 푼 없었어요."
이러한 김 씨에게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이 생겼다. 바로 노점상 단체다. 전국의 노점상이 하나 되어 서로의 생존권을 지켜 주고 어려울 때 도와줄 조직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고 얼마나 도와줄까 망설였어요. 또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주변 몇 사람과 단체 가입했지요. 하지만 서로 함께 도와주며 사는 삶에 감동하였지요. 단속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며 새롭게 조직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녁때는 나도 모르게 단체 사무실로 달려가는 거예요. 밥도 같이 지어 먹으면서 다른 지역 노점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유하고 단속이 나오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참여했어요. 집회에서 서로의 생활을 고민하고 함께 걱정하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비록 하루 종일 장사 하다 보면 몸은 피곤하고 지쳐도 마음은 언제나 뿌듯하고 활기찼어요. 노점상단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호루라기 소리와 완장을 찬 사람만 나타나도 허급지급 뒷골목으로 도망치기 일쑤였으니까요. 매일매일 올림픽이다 뭐다 대로변 도로의 장사를 전부 금지시켜 생계가 막막하기도 했었어요.”
정동익의 도시빈민운동(아침 출판사)의 자료에 따르면, 1983년 7월11일부터 18일까지 집중적으로 단속된 전국의 노점상은 모두 3천2백82건으로 집계되었다. 이 가운데 2백52건이 수거되고 33명이 고발당했으며 2백22명이 범칙금 스티커를 발부받았다. 포장마차의 경우 모두 3백52대가 단속되었고 그 가운데 2백대가 단속 차량에 의해 수거되어 1백62대가 현장에서 폐기되었다. 1983년 7월 19일 오전 1시부터 시청 앞 광장에 노점상 1천여명이 모여 당국의 무차별 단속에 항의하며 ‘정부는 노점의 생계를 보장하라, 생활 대책을 세워 달라’ 고 쓴 플래카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여 시청 앞 일대 교통이 큰 혼잡을 빚게 되었다. 시위가 점차 격렬해지자 기동 경찰 200여명이 출동,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던 노점상 50여명을 강제로 버스에 태워 연행하였다.
그리고 노점상 양복임(여 37세)씨가 자살한 사건으로 이어졌다. 양 씨는 그해 8월 3일 단속을 나온 종로구청 소속 단속 반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아스팔트에 넘어지면서 뇌를 다쳐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종로구청은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고서도 아무런 대책 없이 양 씨를 버려두었다. 이에 항의하여 종로 노점상 200여명이 양 씨의 유해가 안치된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 몰려가 농성을 벌였다.1)
주1) 정동익 도시빈민연구 200쪽-201쪽
단속은 전국에 걸쳐 시행되었다. 대구에서는 칠성 시장 노점상 1백여 명이 북구청에 몰려가 계속 장사할 수 있도록 요구하면서 농성을 벌였고, 부산에서도 노점상 200여명이 부산 중구청 단속반 30여명과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이 밖에도 같은 시기 서울의 성동구 마장동 우시장 입구 노점상 90여명이 노점 철거에 항의하여 구청 직원과 전경 등 100여명과 충돌하여 부상자가 발생하고 노점상 12명이 연행되었다. 경찰과 단속반에 의해 폭력적인 진압을 당하자 노점상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빈 병과 돌 등을 던지며 항의하였다.
이 시기 노점을 하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유치장에서 구류를 사는 게 비일비재 했다고 김순희 씨는 증언한다.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으면 아이들끼리 집을 지키고 있을 생각을 하면 불안해서 가슴이 미어졌어요. 즉결 처분을 받고 나와 또 하루 벌어 하루 먹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는 올림픽이 축제였지만 우리에겐 지옥이었습니다."2)
주2) 이 시기 노점상단체의 결성을 둘러싼 내용은 ‘가난의 시대 : 동력출판사’ 102쪽부터 121쪽 까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2. 6.13대회와 노점상 운동
▲ 1987년 도시노점상연합회 개소식 장면
1980년대는 전두환과 노태우 군부독재의 공안 통치가 극에 달하던 시절이다. 1985년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총회를 앞두고 진행된 단속을 계기로 '노점상 생존대책위'라는 형태의 조직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86아시안게임을 끝내고 12월 29일 노점상 양연수 씨를 중심으로 ‘도시노점상복지연합회’가 만들어지게 된다. 처음 이 단체는 노점상 간의 친목과 상호부조 및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출발하였지만 ‘87년 저항의 시대’에 맞게 조직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올림픽은 소중한 역사적 책무였기에 자고 일어나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정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살아가는 듯싶었다.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도시미화 사업의 미명 아래 일제 단속이 전개되었다. 1987년 5월 20일 몇몇 노점상은 등사잉크로 제작한 유인물을 들고 서울 곳곳을 돌며 노점상에게 명동성당으로 모일 것을 요청하였다. 양 연수 씨의 기억에 따르면 처음엔 제대로 모일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성당 계단에 수백여 명의 노점상이 모여 집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그 후 노점상 집행부와 양연수 씨가 구속되는 것을 계기로 6월 항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1987년 거리를 달구었던 시민들의 항쟁은 6.29선언을 끌어내고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분다. 그 영향으로 노점상을 조직하는데 유리한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어 10월 19일 ‘도시노점상연합회’로 명칭을 바꾼 후 '노점상 및 영세상인 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한다. 그리고 12월에 '노점상 양성화 촉구대회'가 명동성당에서 개최되었다.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노점상 수백여 명이 참가하였다. 노점상단체는 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 대투쟁에 참여하면서 노점상 문제를 사회화시켜내며 자신을 얻게 되었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해가 바뀌어도 군사정권은 청산되지 않고 노태우 정권으로 갈아탔다. 서울 올림픽은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였다. 여전히 한쪽에서는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는 학생들의 집회로 술렁였다. 정권의 노점상 정책은 바뀌지 않고 노점상 숫자를 줄이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구청, 시청, 단속반, 게다가 경찰, 방범대원, 까지 단속으로 노점상들은 시달렸다. 조직되지 않았던 일반 노점상은 이들에게 상납 형태로 갈취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독재정권 아래 관료들 그리고 그 하부조직까지 부패되어 있어 실제 단속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일 뿐이었다.
▲ 1988년 노점상 6.13대회 장면
노태우 정권은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노점상 싹쓸이 단속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 시기 노점상들은 더는 예전의 노점상이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단속에 맞서 대응하기 시작했다. 1988년 4월 18일 우리도 올림픽에 하나의 주최자로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도시 노점상 생존권과 88올림픽에 관한 공청회’를 각계각층의 참여 속에 개최한다. 그러자 노태우 정권은 그해 6월부터 손수레 보관소 폐쇄를 포함하여 성화봉송로 주변에 대하여 대대적인 탄압을 전개한다. ‘도시노점상연합회’로 결집한 노점상들은 올림픽을 얼마 앞둔 6월 13일 성균관대학교 금잔디 광장에서 3천여 명이 모여 '노점상 생존권 수호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집회를 마친 노점상과 시민들이 합세하여 5천여 명으로 늘어난다. 분노한 시위대가 투쟁을 결의하며 성균관대 교문을 박차고 시청으로 진출하자 곧바로 ‘군부독재 퇴진과 노점상 생존권’ 쟁취가 터져 나왔다. 이를 가로막는 전투경찰과 백골단의 진압으로 노점상 17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 벼랑 끝에 놓인 노점상들은 6월16일까지 무려 3일 동안 쉬지 않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마침 여론도 노점상에 대해 생존권 보장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우호적이었다.
결국 노태우 정권은 강경한 노점단속 방침을 유보하고 손수레 보관소 폐쇄 계획을 보류하게 된다. 1988년 8월 4일 서울시는 일시적으로 노점단속 중단을, 8월 29일에는 국무총리가 노점단속 중단을 발표하였다. 마침내 조직되고 단결한 노점상들이 최초로 구체적인 승리를 쟁취한 순간이었다. 6.13대회를 계기로 노점상 생존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여론화되면서 노점상은 하나의 저항세력으로 사회 운동진영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날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점상조직들은 매년 6월 13일에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노점상이 조직적으로 사회 운동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6.13 대회는 노점상의 대항쟁이었던 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노점상들이 88올림픽이 가난한 이들을 몰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치뤄져야 한다며 9월17일 경희대에서 '도시노점상올림픽'을 개최하며 뭉치고 생존권의 정당성을 알려냈다. 이런 사업과 실천을 바탕으로 1988년 10월 드디어 '전국조직'을 결성하여 체계적이고 탄탄한 조직 위상을 갖추게 된다.
물론 노태우 정권은 올림픽을 앞두고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심정이었다. 1989년 올림픽이 끝난 후 이어지는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4월과 6월 또다시 노점상 전면 단속을 발표한다. 명동 성당에 3천여 명이 모여 다시 농성에 돌입한다. 노점상의 투쟁 전술도 한 단계 성장하였다. 명동에서 시청으로 그리고 서울시 전역으로 기습시위와 선전전을 벌이다가 대학교로 들어가 대열을 정비하고 학생들과 함께 다시 거리로 나와 시위를 전개하였다. ‘군부독재 타도와 생존권 쟁취’는 하나의 구호가 되었고 노점상 가슴에 깊게 각인되었다.
3. 1990년대 노점단속과 정책
1990년 10월 들어서는 사회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 특별선언 ‘범죄와의 전쟁’이 발표된다. 과거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이후 이정재를 비롯한 정치깡패들을 무더기로 구속했던 점.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절 ‘삼청교육대’와 같이 범죄와의 전쟁은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으로 불법과 무질서 그리고 과소비와 투기 또는 퇴폐와 향락 근절 아래 폭압 통치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노점상도 ‘민생침해사범’으로 규정하여 노점상에 기생하는 폭력배들을 도려내겠다는 것을 빌미로 단속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범죄로부터의 불안감은 반짝 줄어들 뿐이지만 사회안전망 확충, 복지정책 등이 동반되지 않는 범죄예방 정책의 성공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1993년 군부 출신이 아닌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현재의 행정구역이 1995년 확정되면서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게 되었다. 이제 노점단속은 기존의 중앙정부에서 자치단체로 그리고 공무원의 직접 단속에서 용역을 동원한 단속으로 바뀌었다. 단속권과 철거 권한을 민간으로 이양하면서, 범죄와의 전쟁으로 철퇴를 맞은 폭력조직이 합법적인 은신처로 거대한 용역 민간업체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물론 서울시가 단속으로만 일관하지는 않았다. 이때부터 조직화한 노점상을 사회적으로 분리하고 스스로 규율을 강제하는 방식도 병행한다. 사회운동의 열기를 이어받아 노점상이 조직화 되고 저항이 심해지자 서울시는 노점상 ‘절대 금지구역과 상대 금지구역’을 지정하였다. 그 내용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노점상을 할 수 없으나 이면도로에서는 묵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존 ‘가로가판대 사업’을 확대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융자 500만 원으로 전업을 알선하고 젊은 사람을 중심으로 기술교육을 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는 노점상에게 맞춤형으로 특화된 대책이라기보다 일반적인 실업 대책을 응용한 것이었다. 다만 구두닦이와 버스토큰 가판대등 가로가판대 1016곳을 추가로 허용하거나 풍물시장 설립과 함께 전국 100여 곳의 시영아파트 지하상가 입주권을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 높은 경제성장률에 따른 고용안정과 낮은 실업률은 노점상이 점차 자연 감소하는 시대였다. 이러한 경제적 토대 아래 개량적인 정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지하상가 입주는 유야무야되거나 풍물시장은 훗날 10년도 안 되어 모두 사라지면서 이주 대책 사업은 임시방편일 뿐 현실성 없는 대책임 드러났다. 개량적인 정책은 앙상한 물거품이라는 게 증명된다.
6공화국 5년간 노점단속으로 인해 3만 339개의 노점상 강제철거, 이중 5천 662개의 손수레파손 및 물품 파손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재산피해액 45억 6천 4백4십9만2천원으로 집계 되고 있다.3)
주3) 14대 대통령선거 도시빈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노점상들은 생존권 투쟁은 스스로 질서를 지킨다는 취지의 '자율질서' 사업을 전면에 걸고 노점상마차 규격화 사업과 거리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터졌다. MF 구제 금융사태는 한국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경제침체와 더불어 급격히 늘어난 실업자 대열은 전국적으로 노점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노점상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였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유연화 정책이 지속하고 한미FTA 협상을 통한 금융 자유화 조치 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확대되면서 새롭게 신빈곤층이 확산하여 나가기 시작했던 것도 1990년대 후반부터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현장] “어쩌다 마주친 탄력근로제, 과로사 조장하는 법이네”

민주노총, 4.28 산재사망 추모 결의대회...탄력근로제 기간확대 중단 등 촉구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9-04-17 18:37:26
수정 2019-04-18 08:55:55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열린 4.28산재사망 추모,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산재 사망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열린 4.28산재사망 추모,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산재 사망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민중의소리


"버스 운전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씩 운전하다가, 졸음운전을 해 사고가 나고는 괴로워했습니다. 그들은 작년에 근로기준법이 바뀌면서, 노동시간 특례에서 제외돼 인간답게 일하고 살 수 있을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탄력근로제가 도입되면서, 결국 16시간 하던 운전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발언 내용 중)
해마다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2,400여명, 과로사로 숨진 노동자는 한 해 370명이다. 2017년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국가 평균(1763시간)보다 306시간을 더 일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여전히 '과로 공화국'이다.  
오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노동자 참여로 쟁취하자"며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17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4․28 산재사망 추모 및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모두에게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을'이라고 적힌 빨간색 햇빛 가리개를 머리에 썼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라는 송골매 노래를 '어쩌다 마주친 탄력근로제'로 개사해 부르며 '탄력근로제 개악저지', '살인기업 처벌강화'가 적힌 부채 피켓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어쩌다 마주친 탄력근로제/노동시간 고무줄 되었네/어쩌다 마주친 탄력근로제/과로사를 조장하는 법이네/국회에게 할 말이 있는데~왜이리 귀 막고 있을까./공짜노동 탄력근로제/노동자만 쥐어짜네./더이상 못참겠다./투.쟁.으.로. 개.악.저.지." 
(송골매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개사한 민주노총 '열정페이(가칭)' 팀의 '어쩌다 마주친 탄력근로제' 노래 가사 중) 
민주노총은 ▲과로사를 합법화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 중단 ▲ 모든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노동자 참여 보장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청 책임 강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 등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과로사회를 멈추자고 하면서, 정작 국회엔 재벌 대기업의 청부입법인 '탄력근로제'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한다"며 "'탄력근로제'는 주당 최장 80시간에 달하는 장시간노동, 휴일 없는 연속노동을 가능하게 한다. 노동자에게는 과로사를 사용자에게는 공짜노동 천국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도급인 책임범위 확대와 유해 작업 도급 금지로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자고 했지만, 산안법의 실행도구인 시행령에는 구의역 김군도, 발전소 김용균 노동자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약속이었다"며 "정부는 이제라도 탄력근로제 개악을 멈추고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명확하게 담은 산안법 시행령을 만들어, 차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산안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열린 4.28산재사망 추모,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산재 사망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열린 4.28산재사망 추모,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산재 사망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민중의소리
지난해 12월, 28년만에 산안법 개정이 이뤄졌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 씨의 죽음과 유가족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는 이날 무대에 올라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과 산재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했다.
김미숙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됐지만, 용균이가 들어있지 않은 반쪽짜리 법안으로 통과됐다"며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장관) 도급 승인 대상에 화력발전소가 포함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씨는 "다발성 중대재해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전력산업 운전설비 사회 곳곳에 놓여있는 컨베이어벨트, 궤도장비, 조선업, 건설업 등 모두 도급승인 대상에 들어가야 안전사고 재발 방지가 되지 않겠냐"고도 말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근무일수를 줄여서 (주당) 전체평균이 52시간만 되면, 상관없다는 얘기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심지어 3달, 6달까지도 매주 64시간씩 일하고 나머지 기간동안 주 40시간 일하면, 사람 몸의 피로가 평균 주 52시간 만큼 쌓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3개월 동안 일한 평균 노동시간이 50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도, 열흘 동안 과로하다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일 년에도 수십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최민 활동가는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을 준다고,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얘기한다"고 비판하며 "주 64시간 일하면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것을 월화수목금 5일하고도 주말 4시간 더 일해야 된다"며 "9시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일하면 다음날 2시간 늦게 출근할 수 있는 게 겨우 11시간 연속 휴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재계는 근로기준법이 주 52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왜곡해서는 안 되며, 향후 주 40시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어떤 나라에서도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12시간 연장 근로 시간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면서 "실제로 과로사를 없애겠다 하면, 연장근로 12시간을 모든 산업에 무조건 허용하는 근로기준법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특수고용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감시단속노동자, 1차산업노동자들한테도 노동시간 규제가 적용되야 된다. 남아있는 59조 특례부터 철폐해야 한다"며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은 못시키도록 하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안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학습지 교사, 골프 캐디, 대리운전기사, 레미콘·건설기계노동자 등 전국 약 250만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 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공공운수 화물연대본부 오윤석 수석부본부장은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하루 평균 화물차로 인해 돌아가시는 분이 3명이라고 한다. 도로공사에서 발표한 내용"이라며 "화물차 노동자들은 파이프에 맞아서 죽고, 교통사고 나서 죽고, 짐 싣다 죽고 참 어렵다"며 열악한 현실을 토로했다.
오 수석부본부장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사장이라는 이유로,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산업재해에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 이후, 조합원들은 "진짜 사장 나와라. 원청이 책임져라"라고 응답했다.  
건설노조 부위원장인 김인호 전기분과 위원장은 한국전력이 발주처로서 책임이 강화돼야 노동자 안전과 배전시설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전기분과위원장은 "한전은 1년에 1조 2천억이라는 공사를 발주한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전력이 발주처임에도 산안법에 빠져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나면, 원청이 책임을 져야함에도, 노동자들한테 떠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단위 사업장에서 도급금지, 원청책임 강화, 특수고용노동자 보호, 일터 괴롭힘 금지 등 개정된 법의 실질적 적용을 위한 단체협약 투쟁을 전면적으로 전개할 것"이라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현장을 조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노동자들은 집회 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수 백개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광화문을 거쳐 보신각까지 행진을 펼쳤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열린 4.28산재사망 추모,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산재 사망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영정을  들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열린 4.28산재사망 추모,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산재 사망 기업 처벌 강화를 촉구하며 영정을 들고 있다.ⓒ민중의소리

“품앗이 한다는데 대북제재 웬 말이냐?”

“품앗이 한다는데 대북제재 웬 말이냐?”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04/17 [23:4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농민들이 남북 농민들 간의 '통일품앗이'를 위해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 - 전농 페이스북)     © 편집국

농민들이 남북 농민이 통일농기계로 품앗이를 하고 따뜻한 쌀밥을 나눠 먹길 바란다며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16일 오후 1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제재 해제와 통일농기계 품앗이 보장을 촉구했다.

전농은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미국에 의해 물거품이 될 위기라며 미국의 전쟁 미치광이와 남한의 반통일 세력의 준동을 제압하고 대북제재를 국민의 힘으로 박살내자고 호소했다.

전농은 먼저 문재인 정부를 향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자주적으로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전농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는 누구의 허락을 받을 일이 아니라며 문재인 정부는 통일의 당사자로서 제 머리로 판단하고 제 발로 통일의 길을 걸어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전온은 문재인 정부와 미국이 통일품앗이를 보장해야 한다며 남북 농민이 품앗이를 한다는데 대북제재는 무어란 말입니까품앗이가 제재의 대상이 된다면 지나던 개가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농민들은 남북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작년 10월부터 통일트랙터 운동본부를 구성해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농은 미국을 향해 대북제재를 당장 해제하고 6.12 싱가폴 합의를 이행해야한다며 현재 미국이 주장하는 빅딜은 내용상 북핵 선 폐기론이며 이는 역사적 선례를 보더라도 실패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전농은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들에게 일본과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며 오로지 제 목구멍에 넘어갈 밥만을 구걸하는 당신들은 머지않아 끊어진 철조망처럼 용광로에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한편 전농은 오는 26일 오후 7시 민중공동행동 등과 함께 통일트랙터 출정식 및 미국반대 자주평화 행진을 진행하며판문점 선언 1주년인 27일 오후 2시 통일트랙터를 몰고 파주 통일대교 앞에서 대북제재 해제와 통일품앗이 실현을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기자회견전문]
대북제재 해제하고 통일품앗이를 보장하라!

8천만 겨레는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벅찬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한반도에 평화와 번영통일의 전성기가 열리는 듯합니다개성연락사무소가 생기고 철도와 산림의료분야 교류가 확대되고 있습니다남북해외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얼마나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지 확인했으며 더 이상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을 것이라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서 서명이 무산되고 다시 한반도에 냉전의 기운이 드리워졌습니다북미관계 개선을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미국에 의해 물거품이 될 위기입니다그러나 길은 있고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없습니다. ‘없는 길은 만들고 막힌 길은 뚫고 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백번 들어도 옳은 말입니다.

판문점 선언 제 1조 1항은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다입니다전면적인 남북교류 실현을 위해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문재인 정부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자주적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미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대가없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하자고 공개 제안했습니다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막아놓은 길을 뚫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누구의 허락을 받을 일도 아닙니다미국도 전면적인 남북교류 실현을 약속한 판문점 선언을 지지한다고 천명하지 않았습니까민족자주의 원칙,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문재인 정부는 통일의 당사자로서 제 머리로 판단하고 제 발로 통일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둘째문재인 정부와 미국은 통일품앗이를 보장해야 합니다.
농민들은 18년 10월부터 통일트랙터 운동본부를 구성해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농민들이 통일트랙터 운동에 나선 이유는 대북제재로 인해 막혀있는 남북 민간교류를 활성화하여 평화와 번영 통일의 마중물이 되고자 함입니다남북 농민이 품앗이를 한다는데 대북제재는 무어란 말입니까품앗이가 제재의 대상이 된다면 지나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전농은 4월 27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임진각으로 통일트랙터를 몰고 갈 것입니다정주영 고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 방북으로 평화 통일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농민들은 통일트랙터 품앗이 실현으로 평화 통일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셋째미국은 대북제재를 당장 해제하고 6.12 싱가폴 합의를 이행해야 합니다.
단계적 동시행동의 원칙은 북미간 싱가포르 선언에서도 확인된 것이며 사실 이 길 밖에 없습니다지금 미국이 주장하는 빅딜은 내용상 북핵 선 폐기론이며 이는 역사적 선례를 보더라도 실패한 방식입니다재재와 관계개선은 양립할 수 없고 상호주의가 무시된 일방적 주장은 협상을 계속하지 않겠다는 판 깨기 전술과 같습니다불량한 심보로는 건설적 대화도관계개선과 평화정착도 이룰 수 없습니다.

넷째남한의 자한당 등 보수세력에게 경고합니다.
아직도 철지난 종북 공세색깔론을 버리지 못하고 북을 끊임없이 혐오의 대상으로 삼으며 분단에 기생하는 벌레처럼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되역사는 당신들을 반민족행위 범법자로 기록할 것입니다일본과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며 오로지 제 목구멍에 넘어갈 밥만을 구걸하는 당신들은 머지않아 끊어진 철조망처럼 용광로에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국민여러분!
논을 갈아야 모내기를 하고 풍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이 준비한 트랙터에 평화와 번영 통일의 염원을 실어 함께 품앗이 갑시다.
미국의 전쟁 미치광이와 남한의 반통일 세력의 준동을 제압하고 대북제재를 국민의 힘으로 박살냅시다.

국민의 힘으로 트랙터를 밀고 갑시다.
<품앗이 한다는데 대북제재 웬 말이냐?> 이 구호를 함께 외칩시다.

감사합니다.

2019년 4월 16
전국농민회총연맹

후원하기
트위터페이스북

서울대가 특별한 이유 3가지, 사라져야 할 이유 8가지

19.04.17 20:49l최종 업데이트 19.04.17 20:51l




 서울대학교 정문
▲  서울대학교 정문
ⓒ 연합뉴스
 
성폭력과 성희롱이 뉴스의 중심인 세상을 살고 있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밥 먹듯 성희롱 서울대 교수들"이다. 대학교수에 의한 성희롱이 특별한 뉴스가 아닌 세상이지만 이 기사가 주목을 받은 것은 "서울대 교수들"이 주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서울대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과거에 수없이 반복되었던 입시 비리에서조차 서울대가 끼어 있으면 언론의 흥분지수는 급상승하고, 그렇지 않으면 좀 시시하게 취급되었다. 비리에서조차도 학벌주의가 작동하는 것이 한국이고, 서울대는 비리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성폭력에서도 서울대 교수가 주어인 것과 아닌 것이 차별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는 여러 가지로 특별하다.

우리나라에 알파벳 S로 학교 이름이 시작하는 대학은 32개였다. 지난해에 S대 중 하나였던 서남대학교가 폐교되면서 S대는 31개가 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교들은 감히 "S대학교"라고 부르지 못한다. S대학교는 오직 서울대를 지칭하는 특별한 명칭이다.

성균관대학교가 2018 중앙일보 대학평가 종합 순위에서 2위였고, 공학 계열에서 7위인 서울대를 누르고 3위에 이름을 올려도 S대학이 되지는 못한다. S대는 오직 서울대뿐이다. 서울대만이 S대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서울대가 특별한 이유 3가지

첫째, 탄생 과정이 특별하다. 알려진 대로 이 땅에 처음 세워진 근대식 종합대학교가 서울대이다. 설립 당시에는 K(경성)대학이었으나 해방 직후 일본식 명칭 경성이 서울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S대학이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세운 대학이 경성제국대학이고, 이 대학교는 또 다른 제국주의 미국에 의해 1946년 교육계의 거센 반대 운동을 물리치고 서울 주변 관공사립 대학을 흡수해 국립서울대학교로 재탄생했다. 두 개의 제국주의 권력의 합작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S대학교는 아마도 지구상에 서울대 외에는 없을 것이다.

둘째, 서울대는 정부의 특별한 사랑 속에 성장한 학교다. 2018 회계연도 기준으로 서울대는 4371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비슷한 규모인 부산대학교가 1295억 원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3.5배 수준이다. 부산대의 2018년도 총예산은 2660억 원이고 서울대의 총예산은 8031억 원이다. 충북대학교는 정부지원금 1210억 원을 받으며 총예산은 1982억 원이다.

서울대 학생 수는 2만8102명이고 교수 총수는 2101명(교수 1인당 학생 13.4명), 부산대는 학생 2만8854명에 교수 총수는 1185명(교수 1인당 학생 24.3명), 그리고 충북대는 학생 2만3363명에 교수 총수는 755명(교수 1인당 학생 30.9명)이다. 학생 규모가 비슷한 다른 지방 국립대학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오늘이 아니라 지난 70년간 서울대는 이런 특별 대우를 받아 왔다. 물론 대학평가에서 이런 차등에 대해 어떤 위로점수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평가 기준은 하나이며, 평가 기준 중 많은 것이 재정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차등 지원을 하고 공정경쟁을 요구하는 국가권력의 모순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셋째, 서울대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가르치는 특별한 학교이다. 전국의 60만 입시 지원생들이 공부하는 목표는 서울대 입학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지원자 중 불과 0.5%만이 합격하고 나머지 99.5%는 실패하는 것이 현실임에도 모두 하나의 목표에 올인하며 초·중·고등학교를 다닌다.

서울대가 대학평가 공학 계열 순위에서 7위, 자연 계열 순위에서 3위를 하더라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서울대를 향한 열정은 전혀 식을 줄 모른다. 서울대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주는 온갖 권위와 특권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학부모들이다. 서울대에 입학할 확률이 20~30배 높은 강남구로 전입하려는 금천구나 중랑구 거주 학부모를 탓하는 것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졸렬한 짓이다.

서울대가 사라져야 할 이유 8가지

우리 교육이 창의성이나 다양성을 억누르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상징적 폭력기구의 오명을 벗어버리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제4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절박한 이 시점에서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온갖 교육특권을 폐지하는 것은 일차적 필요조건이다. 서울대(적어도 학부) 폐지론을 다시 주장하는 이유는 허다하지만 지면 관계상 여덟 가지 정도만 제시한다.

첫째, 서울대가 특별한 대학교, 유일한 S대학교가 된 것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 간의 현실적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장, '서울대 폐지론은 서울대를 나오지 못한 자격지심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동안의 경쟁이 공정해야 했는데 앞에서 제시한 통계가 보여주듯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교육특권은 비교육적이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사회생활에서 누리는 특권의 어디까지가 왜곡된 학벌에 의한 것인지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학벌이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왜곡된 학벌을 증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 특권, 그 특권에 의해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1위를 하고 있는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가져올 부정적 영향은 결코 크지 않을 것이다. 공정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대학 간 특성화와 전공에 따른 서열화야말로 우리나라 대학의 발전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둘째, 서울대로 인해 우리나라 공교육의 목표가 단일화되었고, 이것이 공교육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특성이나 꿈과 무관하게 오직 특별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경쟁하는 장이 우리나라의 학교이고, 이 야만적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이다. 우수 학생을 선발하는 능력에서 서울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인데, 과연 교육기관인 학교의 기능 중에서 '뽑는 기능'이 중심적인 기능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지 뽑는 곳이 아니다.

셋째, 이런 획일화된 교육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적 삶이 고단하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의 대한민국이 불안하다. 시험성적 올리기와 일류 대학 진입에 유리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 외에는 공부의 의미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아이들의 타고난 다양성이 존중받고,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삶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 목표의 획일화를 고착화시켜온 특별한 대학교가 사라지는 것 외에 대안이 없어 보인다.

넷째, 서울대가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교육의 의미가 비로소 정상화될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반대 논리 중에 '서울대 폐지는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어불성설이다. 서울대가 폐지되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초중고 학생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울대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따라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며, 목표로 했던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실망감이나 자기 부정의 심리는 완화될 것이다. 어느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 하나로 평가를 받는 세상은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고, 무엇이 되기 위해 어느 대학에 입학하여 얼마나 최선을 다하였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 세상이 점차 열릴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성적에 맞추어 서울대에 무조건 입학하던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 교수진 구성, 교육환경, 통학 편의, 등록금, 장학금, 기타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여 대학을 선택하고, 스스로 선택한 학교에서 원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원하는 공부를 위해 입학을 결정하는 것이지, 입학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폐지는 공부의 의미를 바꿀 것이고, 그것을 통해 공부의 참다운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다양한 기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사립대나 통합된 국립대의 특정 캠퍼스에 입학하여 원하는 공부를 하면 혁신 노력 없이 특권에 안주하고 있는 지금의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은 지적·정서적 성장을 이룰 것이다.

다섯째, 서울대에 매년 투자하던 정부 재정 수천억 원을 활용하여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과감하게 낮추고, 교육여건을 개선한다면 전국의 국공립대학 캠퍼스가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 수준 향상과 공공재로서의 역할 회복에 기여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서울대 폐지가 대학교육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대한 모욕이며 서울대 구성원 일부, 졸업생 일부, 엘리트 일부가 지닌 오만함의 표현일 뿐이다.

여섯째, 특별한 대학교가 없어도 최고의 교육, 최고의 복지 국가 건설은 가능하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나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보여준 경험적 교훈이고 현실이다. 서울대 폐지 혹은 국공립대 통합의 목표는 대학교육 평준화가 아니라 대학교육에서의 특권의 폐지와 공정 경쟁을 통한 대학교육의 정상화일 뿐이다.

'서울대를 폐지해도 학벌사회는 해소되지 않는다'거나, '서울대를 대신해 연세대나 고려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 폐지를 통해 얻는 것은 실제로 없다'는 주장이 많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하게 평준화된 대학시스템을 지닌 사회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특권화된 대학이 없는 것이 교육을 정상화하고 나아가 복지국가로 가는 데 전혀 불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곱째, '서울대를 폐지하기보다는 서울대가 가진 기존의 경쟁력을 보강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육성하는 노력을 더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의 모순이다. '서울대가 무능력한 관료주의의 간섭과 미국의 작은 주립대보다도 적은 정부의 예산 지원 하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더욱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서울대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하기 이전에 대한민국 관료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무능력한 관료들을 만들어낸 것이 어느 대학인지? 서울대 옹호론자들은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탓하기 이전에 그런 관료주의를 만들어낸 책임에 대해 자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키워온 주인공이 서울대이기에 그것의 폐지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서울대 발전의 장애물로서 미국의 작은 주립대보다도 적은 정부예산 지원을 탓한다면 그보다 열악한 나머지 국공립대학교들이 서울대와 경쟁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인지. 70년 이상 특혜를 누려왔는데 더 이상 무슨 특혜를 요구하는 것인지.

여덟째, '국가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인재 양성 대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시대착오성이다. 우리나라는 근대 학교의 출범 당시부터 교육이 구국의 수단으로 등장했던 측면이 있다. 식민지 시대에도 교육은 독립의 수단이거나,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해방 이후에도 국가발전에 필요한 인재의 양성은 교육 부문에 맡겨진 숙명 같은 사명이었고, 이것에 많은 국민이 동의하여 왔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적지 않은 해결과제를 안고는 있지만 나름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교육이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넘어 국가가 교육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때이다. 교육을 통해 시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 권력의 일차적 과제가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서울대가 있어야 국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대로 인해 고통 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을 생각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입니다.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살림터)에서 주장한 내용의 연속으로 일부 문장은 중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