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4일 월요일

트럼프 대통령 “2차 미북 정상회담 근시일 내에”

한미 정상회담, 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메시지 전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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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5  09: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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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뉴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2차 북미 정상회담 등을 협의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페이스북]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4일(이하 현지시간)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6시 15분께 뉴욕 중앙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유엔 총회에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오후 2시45분에서 4시10분까지 1시간 25분 동안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밝혔다.
김 대변에 따르면, 두 정상은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공조 방안과 한미동맹 강화 방안 등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게 협의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 주 열린 평양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결과를 환영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전세계를 대상으로 직접 재확인했으며, 본인이 15만 평양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이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함으로써 공식화하게 되었다고 소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을 평가했다”는 것.
  
▲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주고받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페이스북]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 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진전이 있었다”며 “김 위원장은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그러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다”고 긍정 평가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과 나는 한미 협력에 있어서, 또 여러 가지 논의에 있어서 상당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께 전해달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도 있었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구축 방안, 그리고 미북 간의 대화와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님의 통 큰 결단과 새로운 접근으로 지난 수십 년 간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린다”며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기대를 거듭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조기에 만나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비핵화 과정을 조속히 끝내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을 돌렸다.
김 대변인은 “양 정상은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확인하고 “김 위원장이 내린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를 계속 견인해 나가기 위해 미국 쪽의 상응 조치를 포함한 협조 방안에 대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은 9.19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합의한 바 있다. 미국의 ‘상응 조치’를 촉구한 셈이다.
아울러 “양 정상은 대북 제재를 계속해 나가는 한편, 북한이 비핵화를 이룰 경우 얻을 수 있는 밝은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지속적으로 견인하는 방안들에 대해서도 계속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 한미 정상회담에는 양측 핵심 당국자들이 배석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페이스북]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 중에 있다”며 “비교적 근시일 내에 구체적인 장소 등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인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주민들도 이와 같은 잠재력을 확인하기를 바란다고 생각한다”고 ‘경제적 기회’를 부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간의 관계는 매우 좋다. 아주 놀라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며 “지켜봐야겠지만 2차 미북 정상회담을 근시일 내에 가지게 될 것”이라고 재강조 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양 정상은 정상회담 종료 후, 양 정상이 서명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이번에 양국 통상 장관 간에 서명된 한미 FTA 개정 협정이 포괄적 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평가하면서 개정된 협정이 조속히 발효되도록 필요한 조처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회담을 마친 한미 정상이 한미 FTA 개정 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페이스북]
앞서, 한미 통상장관은 한미 FTA 개정 협상 결과 문서에 서명했고,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 직후에 한미 FTA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서명식이라고 하는 것은 미국에 아주 불공평했던 무역 협정을 다시 재협상한 그런 것”이라며 “문 대통령과 나는 이 협정에 대해서 아주 상당히 기쁘게 생각하고, 미국 또 한국에게도 아주 훌륭한 그러한 무역 협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FTA 협상은 우리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가 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며 “한미 간의 교역 관계는 보다 자유롭고 공정한, 그리고 또 호혜적인 그런 협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날 정상회담에는 미측에서는 펜스 부통령, 이방카 보좌관,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이, 우리측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조윤제 주미대사 등이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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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정상회담, 통일의 기운 넘쳤다

[개벽예감 315] 평양정상회담, 통일의 기운 넘쳤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8/09/24 [12: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그 아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 깃발
2.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세계의 화약고’
3. 핵무기도 없고, 핵위협도 없는 삼천리강토


1. 그 아래서 함께 살기로 약속한 깃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만나 9월 20일 삼지연에서 헤어질 때까지 54시간. 70년을 헤아리는 통일국가건설운동에서 처음 보는 격동적인 사변을 민족사에 아로새기며 꿈같은 54시간이 흘러갔다. 5,000년을 함께 살다가 70년 동안 갈라진 민족분열의 통한을 잠시 접어두고, 누구라 할 것 없이 감격과 흥분을 진정하지 못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펼쳐놓은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의 순간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 시간 속에서 겨레의 넋은 통일의 기운으로 뜨거워졌고, 민족과 통일이라는 네 글자가 겨레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상봉과 회담과 교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메시지, 그 역사적인 사변이 8천만 겨레에게 전하는 강렬하고 절절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1) 2018년 9월 18일 오전 10시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이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부터 9월 20일 오후 3시 30분 삼지연비행장을 출발할 때까지 일정을 수록한 영상기록과 사진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체류일정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화면에 나타나는 특별한 피사체가 눈길을 끈다. 그것은 흰 기폭에 파란색 삼천리강토를 아로새긴 통일기다. <사진 1> 

▲ <사진 1> 위쪽 사진은 2018년 9월 18일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영접을 받으며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 있는 뒤쪽 벽면에는 통일기와 똑같이 삼천리강토를 형상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첫 장에서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커다란 통일기가 5.1경기장 상단에 공식 게양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기 아래서 2박3일 동안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를 이어갔다. 그 깃발 아래서 남과 북은 더 이상 갈라져 살지 말자고, 우리 모두 통일강국 새 나라에서 함께 살자고 뜨겁게 약속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남측에서는 단일기 또는 한반도기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잘못 부르고 있는데, 그 기의 올바른 명칭은 통일기다. 원래 통일기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남측 올림픽위원회와 북측 올림픽위원회는 1990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그 기를 응원기로 사용하였고, 이듬해 일본 지바현에서 개최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선수단이 출전하였을 때 그 기를 선수단 단기로 사용하였다. 당시 남과 북은 그 기의 정식 명칭을 정하지 않은 채 ‘선수단 단기’라고 합의서에 명기하였다.  

이처럼 1990년대에 남북단일선수단의 단기로만 사용되던 그 기는 2000년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통일국가건설운동이 대전환기를 맞아 남북해외 각계각층 인사들이 회합하는 민족통일행사들에서 사용되면서, 남북체육교류를 상징하는 단일선수단 단기에서 겨레의 통일의지를 아로새긴 통일기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통일기는 민족통일행사들에서만 사용되었을 뿐, 네 차례 진행된 이전의 남북정상회담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섯 번째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은 통일기를 공식 게양하였다. 그렇게 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천만 겨레에게 전하는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형상한 통일기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체류기간 내내 내걸도록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체류일정준비를 지도하면서 심지어 식단표까지 세심히 검토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시각매체로 통일기를 선정한 것이다.   

그 깃발 아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과 교제가 이루어졌다.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와 독도까지 우리나라 삼천리강토를 아로새긴 그 깃발 아래서 남과 북은 더 이상 갈라져 살지 말자고, 우리 모두 통일강국 새 나라에서 함께 살자고 뜨겁게 약속했다.  

그 아름다운 약속은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맞은 북측 인민들이 평양국제비행장에서 공화국기와 함께 통일기를 흔들면서 열렬히 환영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환영하는 예술공연이 진행된 평양대극장에서도, 그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진행된 5.1경기장에서도 통일기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환영연회가 진행된 국가연회장 목란관에서도, 평양랭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도,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일행을 위한 마지막 오찬이 진행된 삼지연 호반의 이깔나무숲 설레는 오찬장에서도 통일기는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온 겨레의 힘으로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통일 새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려는 아름다운 약속이 그 기폭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2) 2018년 9월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첫 장에서 ‘아리랑’의 선율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커다란 통일기가 5.1경기장 상단에 공식 게양되었다. 그 깃발 아래서 연단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 속에 강렬하고 절절한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5.1경기장 관람석을 메운 10만명 평양시민들은 폭풍 같은 만세소리를 터치며 열광적으로 환호하였고, 그 연설장면을 텔레비전방송화면으로 지켜본 남북해외 모든 동포들도 환호하였다. 남측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민족단합과 조국통일의 의지를 그처럼 확실하게 천명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밖에 없다. <사진 2>
  
▲ <사진 2> 위쪽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밤, 문재인 대통령이 5.1경기장에 구름처럼 모여든 10만명 평양시민들 앞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한 직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통일기 아래서 맞잡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장면이다. 그 순간, 5.1경기장 관람석을 메운 10만명 평양시민들은 폭풍 같은 만세소리를 터치며 열광적으로 환호하였고, 그 연설장면을 텔레비전화면으로 지켜본 남북해외 모든 동포들도 환호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리설주 녀사와 김정숙 여사와 함께, 그리고 남북의 수행원들과 함께 백두산 장군봉에 오른 뒤에 삼지연으로 내려와 오찬을 나누는 장면이다. 흰색 초대형 천막과 붉은 융단으로 꾸려진 오찬장에 통일기들이 내걸렸다. 온 겨레의 힘으로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통일 새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살려는 아름다운 약속이 그 기폭에서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2018년 9월 20일 목요일 오전, 이 땅의 모든 산악을 낳아 키운 백두산이 가슴을 활짝 열었다.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이고 솟아있는 민족의 성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216개 백두련봉의 전설이 깃든 천지의 잔잔한 물결이 눈앞에 펼쳐졌다. 백두산 천하절경은 수려한 풍치를 넘어 신비롭고 장엄한 세계를 펼쳐보였다.  

8천만 겨레에게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약속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그 천하절경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등장하더니, 이윽고 굳게 맞잡은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격정의 순간, 통일의 기운은 마침내 최절정에 이르렀다.    

선조들이 수수천년 신령한 산으로 우러르며 국태민안을 빌었던 백두산 장군봉 마루에서 천지의 맑은 물을 굽어보며 두 손을 굳게 맞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수수천년 후대들에게 물려줄 백두산통일강국의 약속을 천지물에 붓을 적셔 백두산정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하였다. 통일국가건설의 여명은 백두산에서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백두산 장군봉 마루에서 두 손을 맞잡고 번쩍 치켜든 순간, 8천만 겨레는 백두산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하였다. 아메리카핵제국의 방해책동을 꺾어버리고 삼천리강토에 끝없이 융성번영할 백두산통일강국을 일으켜 세울 거대한 힘이다. 백두산의 힘이 삼천리강산 휘감으며 저 멀리 한라산까지 죽 내리벋을 때, 우리 겨레는 백두산통일강국의 주인으로 용약 일어서리라!  

백두산통일강국에서 함께 살자는 8천만 겨레의 약속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통일기라면, 그 약속을 문서화한 것은 평양공동선언이다. 평양공동선언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의 남북관계발전을 통일로 이어갈 것을 바라는 온 겨레의 지향과 염원을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해나가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사진 3> 

▲ <사진 3> 이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리설주 녀사와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8천만 겨레에게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약속한 두 정상이 굳게 맞잡은 두 손을 백두산정에서 높이 쳐드는 순간, 통일의 기운은 마침내 최절정에 이르렀다. 두 정상은 수수천년 후대들에게 물려줄 백두산통일강국을 세우자는 약속을 천지물에 붓을 적셔 백두산정에 불멸의 문자로 기록하였다. 통일국가건설의 여명은 백두산에서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백두산의 힘이 삼천리강산을 휘감으려 저 멀리 한라산까지 죽 내리벋을 때, 우리 겨레는 백두산통일강국의 주인으로 용약 일어서리라!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2.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세계의 화약고’

평양공동선언에서 주목되는 것은,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이하 군사분야합의서로 약칭함)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교환한 직후,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고, 그 합의서를 교환하였다. 

군사분야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문서로 채택한 것은, 그 합의사항을 이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전에도 남과 북은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한 적이 있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이행하려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8년 6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2018년 6월 14일 10여 년 만에 성사된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측에게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60km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정찰활동을 중단하고,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40km 안에서 상대방에 대한 공중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파격적인 제안이다. 

그 제안을 받은 남측은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단독으로 검토할 수 없었고, 남측의 작전통제권을 가진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함께 북측의 제안을 검토하였다. <뉴시스> 2018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 관계자는 남과 북이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기 전에 남측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합의서 초안을 놓고 사전협의를 충분히 하였다고 한다. 

남과 북은 2018년 9월 13일과 14일에 진행된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하여 ‘군사분야합의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군사분야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부속문서로 채택되었다.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지상평화지대, 해상평화수역, 공중평화구역을 각각 조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합의하였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2018년 9월 18일 평양남북정상회담 첫째날 회담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남측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배석하였고, 북측에서는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배석하였다. 아래쪽 사진은 2018년 9월 19일 평양남북정상회담 둘째날 회담이 진행되는 장면이다. 남측에서 서훈 국정원장이, 북측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이 각각 배석하였다. 이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친 뒤에 역사적인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평양공동선언 부속문서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가 발표되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지상에 평화지대를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5km 안에서 포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감시초소들을 전부 철수하기 위한 시범조치로 상호 1km 이내에 근접한 남북의 감시초소들을 완전히 철수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비무장화하기로 하였다. 

(2) 해상에 평화수역을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서해에서 남측의 덕적도 이북 해상으로부터 북측의 초도 이남 해상에 이르는 수역에서, 그리고 동해에서 남측의 속초 이북 해상으로부터 북측의 통천 이남 해상에 이르는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 및 함포의 포구포신에 덮개를 씌우고, 포문을 폐쇄하기로 하였다. 덕적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있고, 초도는 남포특별시 항구구역에 있으므로, 서해평화수역의 남북길이는 135km다. 속초는 남강원도 양양군과 인제군에 인접해 있고, 통천은 북강원도 회양군과 안변군에 인접해 있으므로, 동해평화수역의 남북길이는 80km다. 

- 남과 북은 2004년 6월 4일에 진행된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서명한 ‘서해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에 관련된 사항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전면적으로 복원, 이행해나가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서해 접경수역에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조성하는 문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안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해상순찰을 하는 문제, 남과 북이 한강(임진강)하구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한 문제 등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3) 공중에 평화구역을 조성한다

- 남과 북은 2018년 11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그 구역 안에서 고정익 항공기(전투기나 폭격기)의 공대지유도무기사격 등 실탄사격을 동반한 전술훈련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 비행금지구역은 다음과 같다. 전투기 같은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4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고,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공격헬기 같은 회전익 항공기의 경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무인항공기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5km까지 구역에서,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비행선 같은 기구의 경우,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5km까지 구역에서,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10km까지 구역에서 비행을 금지하기로 하였다. 

<뉴시스> 2018년 9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남측 국방부 관계자는 남과 북이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기 전에 남측 국방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와 그 합의서 초안을 놓고 사전협의를 충분히 하였으므로, 남과 북이 합의한 비행금지구역은 미국군에게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오산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동하는 미국군 고고도유인정찰기 U-2는 오는 11월 1일부터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20km 밖으로,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40km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또한 오산미공군기지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동하는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 Hawk)도 오는 11월 1일부터 서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10km 밖으로, 동부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남 15km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4) 합의서를 실질적으로 이행한다

주목되는 것은,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남측 차관급 당국자와 북측 부상급 당국자가 공동위원장직을 맡게 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군사분야합의서의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방지를 위한 항시적인 연계와 협의를 진행”하는 상설기구다. 

이제껏 남과 북은 무려 60여 차례에 이르는 군사회담을 개최하고 수없이 협상해왔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군사분야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수시로 점검하면서 이행을 다그칠 것이다. 남북공동군사위원회는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때까지 군사긴장완화 및 평화체제수립이라는 공동목표를 추구할 것이다.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과 공중에 각각 평화지대, 평화수역, 평화구역을 조성한 것과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첫 걸음이다. 6.25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정전체제 아래서 중무장한 전투부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크고 적은 무력충돌을 수시로 일으켰던 ‘세계의 화약고’가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5>  

▲ <사진 5> 이 사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역사적인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들어보이는 장면이다. 두 정상은 선언문을 교환한 뒤에 그 자리에서 진행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 서명식에서 남측 국방장관과 북측 인민무력상이 그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로써 평양공동선언은 군사분야합의서를 부속문서로 가지게 되었다. 군사분야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지상평화지대, 해상평화수역, 공중평화구역을 각각 조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합의하였고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합의들은 2018년 11월 1일부터 이행될 것이다. 이 중대한 합의가 이행되면, 6.25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정전체제 아래서 중무장한 전투부대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밀집되어 크고 적은 무력충돌을 수시로 일으켰던 '세계의 화약고'는 마침내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5) ‘세계의 화약고’ 해체되면, 유엔사령부도 해체된다 

남과 북이 ‘세계의 화약고’를 해체하는 도중에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것이다. 미국이 유엔 명칭을 도용하여 불법적으로 조작해놓은 유엔사령부는 43년 전에 해체되었어야 한다. 1975년 11월 18일 유엔총회 제30차 본회의에서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기 위한 표결이 진행되었는데, 그 회의에서 미국이 상정한 3390a호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결의안에 따르면, 정전협정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이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대안에 동의한다면, 미국 정부는 1976년 1월 1일 유엔사령부를 종료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한, 1975년 6월 27일 유엔안보리 의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 유의하면서”,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방안과 더불어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수 있도록 제1단계 조치로서 모든 직접 당사자들이 조속한 시일 안에 협의할 것을 촉구”하고, “유엔사령부가 1976년 1월 1일을 기하여 해체되고, 남코리아에 유엔 기치를 든 군대가 잔류하지 않도록 위에 언급한 협의가 완결되기 바란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한 미국의 사기극이었다. 왜냐하면,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하는데도, 미국은 그 문제를 협의하는 별도의 회담을 진행하려고 획책하였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미국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만 질질 끌다가 회담을 무산시킬 흉계를 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 사회주의국가들은 미국의 주도로 채택된 기만적인 결의안과 배치되는 3390b호 결의안을 유엔총회 제30차 본회의에 상정하였다. 그 결의안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유엔 기치 아래 남코리아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을 철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간주”하고, 정전협정의 실제적 당사자들에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도록 촉구”하였다. 3390b호 결의안은 채택되었으나, 친미국가들을 동원한 미국의 방해공작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진영이 해체된 이후,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유엔총회에 상정되지 않았고, 조선만 그 문제를 줄기차게 유엔에 제기하였다. 그런데 2018년 9월 17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엔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사령부의 불법성을 거론하였던 것이다. 마차오쉬(馬朝旭) 유엔주재중국대사는 “유엔사령부는 냉전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유엔사령부가 조선반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Vasily Nebenzya) 유엔주재러시아대사는 “유엔사령부가 21세기 베를린장벽인가”고 묻고 나서, 유엔사령부는 1950년에 유엔안보리 결의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당시 소련은 중국 국민당 정부가 유엔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것을 반대하여 유엔안보리 회의에 불참한 시점에 “역사적 맥락을 거스르며 (그 결의안이) 통과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만장일치제로 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안보리에서는 유엔사령부 해체문제가 상정되어도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므로, 유엔안보리에서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1975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다수가결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유엔사령부 해체문제는 아무 때나 불쑥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될 수 없다.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군사분야합의서’가 어느 정도 이행되면, 미국이 6.25전쟁을 위해 조작한 유엔사령부는 존재근거를 상실할 것인데, 그런 변화가 일어날 때 조선은 유엔사령부를 해체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할 것으로 예견된다. <사진 6>  


▲ <사진 6> 2018년 7월 27일 6.25전쟁 정전 65주년이 되는 날, 조선은 6.25전쟁 중 사망한 미국군 유골 55구를 미국에게 송환하였다. 오산미공군기지에 마련된 안치소에는 성조기와 함께 유엔기가 내걸리고, 모든 유골함에 유엔기가 덮혀 있었다. 이것은 미국군이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하였고, 정전 이후 유엔사령부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연출하는 기만극이다. 유엔사령부는 미국의 작간에 의해 불법적으로 조작되었고, 유엔과 전혀 무관하게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제멋대로 그 이름을 도용하는 것이며, 유엔군은 실체가 없는 유령군대다. 남과 북이 이번에 채택한 '군사분야합의서'를 이행하여 '세계의 화약고'를 해체하면, 유엔사령부도 해체될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핵무기도 없고, 핵위협도 없는 삼천리강토

평양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그 선언문을 문재인 대통령과 서로 교환한 뒤에 진행된 기자회견 발언에서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습니다”고 언명하였다. 북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5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립장이며 자신의 의지라고 비핵화의지를 거듭 확약하시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실현을 위해 북과 남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나가자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미 9월 5일에 천명하였던 비핵화의지는 9월 19일에 채택된 평양공동선언 제5항에 그대로 담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은 조선반도에서 핵위협만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핵위협과 핵무기를 모두 제거한다는 뜻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 문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를 핵위협이 없는 땅으로 만든다는 말은 한반도에 드리운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핵우산이란 핵폭발력을 타격대상에 맞춰 조절하는 신형 전술핵탄으로 정밀타격하는 선제핵타격을 뜻한다. 지난 시기의 핵우산은 전략핵탄의 핵폭발력이 너무 커서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핵위협만 가하는 핵공격억제를 뜻하였으나, 정밀타격능력과 핵폭발력조절기능을 지닌 전술핵탄이 출현한 이후 핵우산은 실전에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선제핵타격을 뜻하게 되었다. 

조선은 미국의 핵우산을 어떻게 철거하려는 것일까? 조선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조선이 미국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한다는 말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조선이 핵무기에 관련된 모든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핵우산을 철거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미국이 한국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군사동맹체제에서 알맹이는 떨어져나가고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핵우산 철거는 한미군사동맹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군사동맹이 무력화되면, 그 동맹에 근거하여 주둔해온 주한미국군은 존재근거를 상실하고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핵위협 없는 조선반도’는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도 철수된 조선반도라는 뜻이다. 

(2) 2013년 6월 16일 조선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발표한 ‘중대담화’는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시킬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언명하였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이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목표로 삼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조선과 미국이 한반도 전역에서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한반도 전역에서 상호핵사찰을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조선에서만 핵사찰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상호사찰은 미국이 사찰단을 조선에 보내 조선의 핵시설들을 사찰하는 것과 더불어 조선도 사찰단을 남측에 보내 주한미국군기지들을 사찰한다는 뜻이다. 그런 상호사찰을 하려면, 조선이 미국에게 사찰대상을 신고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도 조선에게 사찰대상을 신고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조선에게 핵신고서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미국도 마땅히 조선에게 핵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핵신고서 제출은 일방적 의무가 아니라 쌍방적 의무다.  

하지만 상호핵신고와 상호핵사찰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조선과 미국이 모두 상호핵신고와 상호핵사찰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는 상호핵신고 및 상호핵사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어서 조선이 미국에게 구태여 신고할 필요가 없는 조선의 핵시설들을 해체하고 사찰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미국에게 구태여 신고할 필요 없이 미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조선의 핵시설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되었다.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동창리발동기시험장과 로케트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서해위성발사장에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엔진분사시험장과 위성운반로켓발사대를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한다는 뜻이다. 서해위성발사장에는 그 이외에도 다른 시설들이 있지만, 그 두 가지 핵심시설이 해체되면, 서해위성발사장은 사실상 폐기된다. 그러므로 위의 합의조항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폐기한다는 뜻이다.

또한 평양공동선언에는 “북측은 미국이 6.12 조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을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폐기하는 경우, 미국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조선은 녕변핵시설도 해체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녕변핵시설도 서해위성발사장과 마찬가지로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되는 것이다.  

이제 명백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해체하여 폐기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2018년 5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미정보당국이 파악한 조선의 핵시설 15개소는 대부분 녕변핵시설단지 안에 있는데, 한미정보당국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핵시설까지 합하면 약 100개소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평양공동선언에 폐기대상으로 명기된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합하면 15개소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한미정보당국은 그 이외에도 약 85개소의 핵시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의 15개소를 폐기하는 경우,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가 끝났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중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평양공동선언에 들어있다. 그 선언에는 “녕변핵시설의 영구적 페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라고 명기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한 이후 미국이 추가적인 상응조치를 취하면 그에 부응하여 다른 대상들도 추가로 폐기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이 사진은 2018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취재진 앞에서 단독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시설 가운데 20%만 해체하면 이른바 '불가역적 비핵화'기 실현될 수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미국의 추가적 상응조치에 따라 몇 개소의 핵시설으 추가로 더 해체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미국이 이행해야 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올해 안에 발표하고, 2019년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는 의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2월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 그 평화체제 위에 우리 겨레가 열망하는 자주적인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이 암시는 매우 기묘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과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당시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 씩프릿 헥커(Siegfried S. Hecker)가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서 조선의 비핵화를 완결하려면 15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잘못된 것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나, 20%를 (비핵화)하는 지점에 이르면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이며 저명한 과학자인 자기 삼촌 존 트럼프(John G. Trump)와 핵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면서 그런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존 트럼프는 1985년에 별세했는데, 당시 부동산개발에 열을 올리며 조선의 핵문제에 무관심했던 30대 재벌총수 도널드 트럼프가 자기 삼촌과 핵문제를 논하고 심층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아마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통령에게만 주어지는 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정보보고를 통해 그런 심층정보를 파악했다고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의 핵시설을 100%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20%만 해체하면 이른바 ‘불가역적 비핵화’가 실현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녕변핵시설은 한미정보당국이 추정하는 조선의 전체 핵시설들 가운데 약 15%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해체되기를 바라는 조선의 핵시설은 약 20%다. 그러므로 조선이 서해위성발사장과 녕변핵시설을 폐기하고, 미국의 추가적 상응조치에 따라 몇 개소의 핵시설을 추가로 더 해체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서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는 모두 끝나게 될 것이다. 

조선은 평양공동선언에서 확약하기 이전부터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기 시작하였으므로,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서해위성발사장이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완전히 해체되면,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는 작업은 2018년 안에 완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조선의 종전선언 발표요구에 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올해 안에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이 사진은 2018년 9월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역사적인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삼지연으로 내려와서 못가를 산책하는 장면이다. 백두산의 정기를 머금은 밀림 속에 자리잡은 삼지연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다. 두 정상은 그 풍경화 속에서 산책하며 신뢰를 더욱 쌓았다. 두 정상이 8천만 겨레에게 굳게 약속한 평양공동선언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대사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발표되면, 2019년 초부터 조선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국제사찰단의 참관 하에 녕변핵시설을 해체하기 시작할 것이다. 녕변핵시설 해체작업은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견된다. 2019년 여름에 조선이 녕변핵시설단지를 폐기하면,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2019년 여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수해야 하고, 남과 북은 상호군비축소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2020년 말에는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공고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예견된다.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2월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은 조선과 미국의 공통된 목표다. 그 평화체제 위에 우리 겨레가 열망하는 자주적인 통일공화국이 세워질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8천만 겨레에게 굳게 약속한 평양공동선언은 트럼프 행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대사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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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첫 독집 음반 준비 중인 가수 우위영 “10번의 생을 산 것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10월말 음반 발표 예정… “하루 종일 노래 하면서 치유하고, 스스로 내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발행 2018-09-24 14:01:03
수정 2018-09-24 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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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열린 석방 환영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후배가수 류금신과 함께 노래하는 가수 우위영
2017년 11월 열린 석방 환영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후배가수 류금신과 함께 노래하는 가수 우위영ⓒ민중의소리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어둠 산천 타오르는 작은 횃불 하나 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래가 이 잠든 땅에 북소리처럼 울려날 수 있다면 침묵산천 솟구쳐 오를 큰 함성 하나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우위영의 노래는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었고, 잠든 땅을 울리는 ‘북소리’였고, 침묵산천의 ‘함성’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동안 그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 뜻하지 않게 진보정당 대변인을 맡으며 진보정당 당직자로 살아야 했고, 박근혜 정권의 온갖 공격을 받으며 시련을 겪어야 했다. 결국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그는 다시 가수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노래마을’ 출신으로 ‘파랑새’, ‘굽이치는 임진강’ 등의 노래로 사랑받았던 우위영은 첫 독집앨범인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노래로 자신이 치유를 받고, 그 치유의 힘으로 세상도 위로받기를 꿈꾸며 노래하고 있는 가수 우위영을 만났다.
“나도 노래를 통해  
운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민중가수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었다”
 
그의 노래를 기억하고, 그의 노래로부터 힘을 받은 세대였지만 한동안 가수로서의 우위영을 잊고 있었다. 그가 민주노동당 문예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몇 차례 인터뷰도 했지만 모두 ‘대변인’ 우위영과의 인터뷰였고, ‘가수’ 우위영과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에게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물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 잘하나보다 했고, 어렸을 때부터 독창대회, 합창대회, 대학에선 민중가요 동아리활동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와 가까워졌다.” 1984년 대학에 입학해 교내 가요제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인연으로 라디오음악프로그램(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 어쩌면 대중가수가 됐을지 모르는 순간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민중가요’였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운동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당시는 다들 분위기가 그랬다. 87년 유월항쟁 직후라 졸업을 했어도, 어디 직장을 잡아서 돈을 번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운동을 했던 이들 가운덴 많지 않았다. 나도 노래를 통해 운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민중가요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었다.” 
대학시절 스페인어노래동아리 엠티에서 노래하는 우위영
대학시절 스페인어노래동아리 엠티에서 노래하는 우위영ⓒ우위영 제공
가수 우위영이 노래마을 활동 당시 대학로 학전에서 공연하는 모습.
가수 우위영이 노래마을 활동 당시 대학로 학전에서 공연하는 모습.ⓒ우위영 제공
1988년 7월 ‘노래마을’을 찾은 우위영은 1993년까지 5년여 동안 가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 뒤 10년여 동안은 지역으로 가 청년운동과 지역운동, 그리고 정당운동에 힘을 쏟았다.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적어졌지만 그는 가수를 그만 뒀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역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가끔씩 무대에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행사에서 ‘초혼 아리랑’을, 2003년 1주기 행사 때는 ‘약속-우리 촛불을 켜자’를 불렀고,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가 한창일 때는 '평화아리랑'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던 2010년 효순이미선이 8주기엔 “때로는, 논평쓰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말하고 싶고, 말해야 할 사연이 너무 많아서 입니다”라며 기자들에게 효순이미선이 1주기 추모곡이었던 ‘약속-우리 촛불을 켜자’ 노래파일을 보냈다. 그에겐 ‘노래’도 그 어느 말보다 강한 ‘논평’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이어지던 가수로서의 모습은 진보정당 활동에 집중하며 점점 찾아보기 힘든 과거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 문예위원장을 할 당시까지만 해도 언제든지 노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08년 집단탈당이 일어나면서 중앙당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중앙당 경험 조금이라도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변인을 맡게 됐다. 후회는 하지는 않고, 지금 생각해도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느끼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분당이 없었다면 그렇게 깊이 관여하진 않을 것이고, 노래도 계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독방으로 돌아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를 만들고 싶어  
당시 성서에서 마음에 닿는  
구절을 뽑아 성가를 만들어 불렀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서  
악보를 만들고 부르니 노래가 됐다”
 
노래를 하지 못했지만, 노래를 향한 그의 갈망은 그친 적이 없다. 무대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수임을 잊은 적이 없다. 지난 2002년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는 블로그 소개에 ‘나는 가수다. 누가 뭐래도’라고 글귀를 남겼다. 자신이 가수임을 잊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 11월 감옥에서 출소한 뒤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출소 뒤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석방환영대회에서 후배가수 류금신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오른 우위영은 ‘가야하네’와 자신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파랑새’를 열창했다. 우위영은 “그날은 노래가 아니라 절규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 가수 우위영은 하루 대부분을 노래를 생각하며 보낸다. “지금 제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가운데 70% 이상은 노래다. 항상 노래를 하고, 항상 노래를 고민하고, 항상 생각한다. 나의 노래가 이 사회에 어떻게 전해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평가되는 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 없이 행복하다.”
청주여자교도소 수감 당시 우위영. 감옥에서 우위영은 노래를 만들었고,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에도 3곡이 실려있다.
청주여자교도소 수감 당시 우위영. 감옥에서 우위영은 노래를 만들었고,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에도 3곡이 실려있다.ⓒ우위영 제공
감옥은 그에게 노래를 절실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위로가 된 건 노래였다. “감옥에서 적응장애 판정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했다. 감옥에서의 고통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힘든 순간 감옥에서 세례를 받았다. 감옥에 가기 전에 함세웅 신부님의 삶을 보면서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신부님에게 수녀님을 소개 받아 교리공부를 하려고 연락처도 받았는데, 연락도 못 드린 채 구속되고 말았다. 함 신부님과의 약속도 있었고, 저의 간절함도 있어서 감옥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구치소 있을 때 종교집회가 1주일에 한 번 있다. 어떨 때는 미사가 없어서 2주에 한번 가야하고, 여름과 겨울엔 미사가 없는 방학이 있다. 미사에 가서 성가를 부르고 신부님 말씀을 들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 힘을 얻었다. 청주여자교도소에 가서는 교정사목 담당 신부님이 좋은 분이었다. 기타를 들고 와서 노래도 해주셨다. 신부님이 기타치며 노래를 배워주시던 그날, 독방으로 돌아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가를 만들고 싶어 당시 성서에서 마음에 닿는 구절을 뽑아 성가를 만들어 불렀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서 악보를 만들고 부르니 노래가 됐다.”
그렇게 처음으로 성가를 만든 그날은 2017년 4월 14일 금요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막 구속된 다음이었다. 그 성가는 ‘하느님께서는 정녕 의로우시어 여러분에게 환난을 겪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겪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같이 안식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장 6~7절)라는 성서 구절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탄압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고통 받으며 지난 시간들에 아주 작은 안식이 찾아왔고, 그렇게 노래로 그는 힘을 얻었다. “A4용지를 4분의 1로 잘라서 연필로 오선지를 찍찍 긋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소리로 나오는 대로 음표를 그려 넣었다. 아주 낮게 불러가며 만들었다. 수십 번 수백 번 불러가며 음을 골랐다. 여기에 온통 집중하였다. 성가 다음으론 동생이 써서 보내준 시에 곡을 붙였다. 시간이 더 지나선 내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하고 했다.” 이번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음반에 들어갈 예정인 ‘은행나무’, ‘별들아’, ‘오랜 가뭄 끝에 비’라는 곡이 이렇게 감옥에서 만들어진 노래다.
함세웅 신부와 함께 있는 우위영. 우위영은 함 신부의 삶에 감동에 세례를 결심했고, 교도소에서 세례를 받았다.
함세웅 신부와 함께 있는 우위영. 우위영은 함 신부의 삶에 감동에 세례를 결심했고, 교도소에서 세례를 받았다.ⓒ우위영 제공
그렇게 감옥에서 만든 노래와 예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모아 그는 첫 독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 감옥에서 만든 노래가 20곡 정도 있다.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면 앨범 하나는 될 것 같아서 독집 음반을 준비했는데 주변에서 새로운 곡으로만 앨범을 만들기 보다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예전 노래도 함께 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귀에 익숙한 노래들을 새롭게 현대적 감각에 맞게 편곡해 우위영의 목소리로 담고, 새롭게 만든 곡도 음반의 주제에 맞는 곡을 골라 3곡을 넣은 것이다. 앨범 준비를 위해 노래마을에서 활동한 백창우 선배를 만났다. 백 선배는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예전에 내가 발표는 못하고 녹음만 했던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을 이번에 정식으로 발표하는데 동의해 주셨고 앨범 작업을 격려해 주셨다. 그 노래가 앨범 타이틀 곡이 됐다. 다시 들으니 가사도, 노래도 마음에 너무 와 닿았다. 1초 만에 앨범 제목이 됐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그대 잠들지 말아라 
그대 잠들지 말아라
 
마음이 착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지닌 것보다 행복하고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있나니
 
차마 이 빈 손으로 그리운 이여 
풀의 꽃으로 태어나 피의 꽃잎으로 잠드는이여” 
-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정호승 시, 백창우 작곡)
 
내란음모 조작, 종북몰이,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구속… 
“결국 우리 문제는 우리가,  
결국 우리한테 달려 있다.  
사회적인 복권과 명예 회복도  
결국 우리가 하는 몫이지,  
다른 이들이 해 주는 게 아니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통합진보당 향한 박근혜 정권의 부단한 공격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내란음모 조작, 종북몰이,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구속에 이르기까지 아픔은 컸다. “그 고통과 아픔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10번 정도의 생을 산 것 만큼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영원히 묻혀 있을 것만 같던 진실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때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죽음의 늪 같았던 시간이었다.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도 했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힘이 되진 못했다. 현실은 고통이었으니까. 그런 상황 겪고 보니깐, 지금 진실이 새롭게 드러나는 너무 덤덤하게 느껴진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할 문제다. 나의 내면, 정신, 고통의 문제는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스스로 치유해야 하고, 스스로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 무대에 선 가수 우위영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 무대에 선 가수 우위영ⓒ우위영 제공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을 마친 뒤 청년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가수 우위영
2018년 4월5일 성수아트홀에서 열린 ‘감옥에서 부른 노래’ 공연을 마친 뒤 청년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가수 우위영ⓒ우위영 제공
오는 9월29일 김홍열 진보당 전 경기도당 위원장이 만기출소하면 내란조작 사건 관련자 가운데 이석기 전 의원만 감옥에 남게 된다. 끊임없는 양심수 석방 호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끝내 양심수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외면이 아니라 의도적 배제다. 아직 배제와 낙인이 있는 거다. 이미 역사를 되돌린 순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결국 우리 문제는 우리가, 결국 우리한테 달려 있다. 사회적인 복권과 명예 회복도 결국 우리가 하는 몫이지, 다른 이들이 해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걸 잘 알기에 그는 노래를 다시 시작했고, 요즘은 책도 준비하고 있다. “노래와 마찬가지로 책도 저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통의 근원을 찾고 있다.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그걸 더 이성적으로 찾고,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서, 외부에서 외부의 바람이나 외부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제 스스로 가야하는 인생, 더 아프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정리하려 한다. 정리하지 않고 가면 그냥 미움과 억울함만, 원망과 감정만, 자책과 자괴감 그리고 패배감만 남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책 작업이 만만치 않다고 그는 고백했다. “하나의 사건 가지고도 한 권의 책 나올 만큼 엄청난 일들이 있었다. 책을 쓰는 건 대재앙의 빙산의 일각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노래도 그렇지만 글도 가슴으로 쓰는 거더라. 내 가슴이 허락하지 않으면 진도가 안 나간다. 지금 고 박영재 당원 부분을 쓰고 있다. 그때로 돌아가서 되새기는 게 너무 힘들다. 5분을 쓰고 나면 한 시간이 넋이 나가 있기도 한다. 쉽지 않다. 그래도 누군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통합진보당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시절까지 포함해 꼭 정리해 볼 계획이다.”
요사이 70~80 세대들의 노래가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데 
민중가요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힘겹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그의 노래는 예전과 다른 힘을 얻었다. “옛날에 노래할 때를 지금 돌아보면 참 어렸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소리를 지른 거였다. 지금은 노래를 목소리만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또 당시는 노래를 즐길 줄도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노래고, 노래가 나인 게 아니라, 대상화되어 있었다. 지금은 노래가 도구라기보다 노래와 하나가 되려 한다. 하루 종일 노래를 하면서 치유하고, 스스로 내 노래에서 위로를 받는다.”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가수 우위영
녹음실에서 작업 중인 가수 우위영ⓒ우위영 제공
또한 자신이 받은 위로를 아이들과 나누기도 한다. “지금 물푸레 도서관 친구들과 음악수업을 한다. 이번 음반 작업에도 함께 하고 있다. 예전에도 푸른학교 노래수업을 했었는데,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는 월 30만원 강사료가 더 중요했다. 워낙 가난했다. 그래서 수업을 가야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부담이 생기고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함께 노래하는 것이 너무 좋다. 아이들의 어떤 행동도 예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들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수업이 기다려진다.” 
그는 이번에 발표하는 앨범이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민중가요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민중가요의 매력을 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요사이 70~80 세대들의 노래가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데 민중가요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편곡이 잘 됐다. 음악을 들으면 아주 젊은 감각이다. 그 음악에 민중가요의 드라마틱한 선율이 더해지면 어떨지 기대가 높다.” 
이번 앨범엔 감옥에서 만든 노래 3곡과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이외에도 ‘노동자의 길’, ‘백두산’, ‘동지를 위하여’, ‘굽이치는 임진강’, ‘파랑새’, ‘우리의 노래가 그늘진 땅에 따뜻한 햇볕 한줌될 수 있다면’ 등 주옥같은 민중가요가 실릴 예정이다. 주옥같은 민중가요와 함께 다시 돌아온 가수 우위영이 전할 위로의 메시지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목 상태나 연습 정도에 좌우되겠지만 지금은 10월말 정도에는 시중에 나오게 하려고 한다. 음반을 얼마나 팔 수 있을지 걱정하진 않는다. 꼭 사라고 말씀드리기도 그렇다. 그냥 듣고 싶은 분들이 들으면 된다. 아마도 내 음악을 듣는다면 충분히 위로가 되고, 정화가 되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노래를 하면서 큰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첫 독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는 가수 우위영은 오는 10월말 음반을 발표할 예정이다
첫 독집 음반을 준비하고 있는 가수 우위영은 오는 10월말 음반을 발표할 예정이다ⓒ우위영 제

김종대 "남북군사합의는 비핵화 위한 버퍼링 작업"

[인터뷰] 김종대 정의당 의원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3차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군사 분야 합의'를 꼽았다. 김 의원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협 종식'에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으로 미국까지 포함한 3자 종전선언으로 가는 중간단계이며,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으로 가는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의원은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와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언급한 것을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일 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대국민 보고에서 "이번 비핵화는 사상 처음으로 북미 양 정상 사이에서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북미 양 정상이 국제 사회에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행되리라고 믿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평화협정으로 가는 여정에서 "예선전"을 치른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준결승, 결승 등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서 참패할 경우, 지금까지 추진해온 한반도 정책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강경파들은 호시탐탐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엎어지길 바라며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

또 남한과 북한도 각각 내부에 반대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벌써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가 서해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등 영토주권을 포기하고 있다. (9월 21일 김성태 원내대표)"며 '퍼주기 논란'을 또다시 꺼낼 태세다 김정은 위원장도 북한 내 강경 군부 세력을 제어하면서 비핵화 협상에 나서야 하는 상태다.  

김 의원은 "평화는 유리와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각국의 지도자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평화의 신념'을 설파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듯 미국 국민들에게도 자유·평화·민주주의의 정신을 이야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역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김 의원은 말했다. 

다음은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 김종대 정의당 의원. ⓒ프레시안(이재호)

"군사 합의, '남북미 종전선언' 엔진 재가동"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공동선언' 부속으로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어떻게 보나?  

김종대 : 3차 남북 정상회담과 '평양 공동선언'으로 지난 7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에 대한 원칙이 재논의되고, '전쟁 없는 한반도'가 가시권에 진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3자 종전선언으로 가는 엔진이 재가동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군사 합의'는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으로, 구체적인 이행 방안까지 담겨있다. 여기에 미국이 합류해 내용을 조금만 더 확장한다면, 3자 종전선언의 중간단계 2자 종선선언을 한 것이다. 지금은 주어가 '남북'으로 되어 있지만, 향후 미국이 합류한다면 '남북미' 3자 종전선언으로 진화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으로 가는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다" 

프레시안 : 미국에서도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까?

김종대 : 미국은 '군사 합의'에 대한 관심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신고-사찰'에 집중하고 있다. 비핵화 신고 여부에 따라 종전선언을 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우리와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군사 합의'는 비핵화 문제와 짝을 이루는 것인데, 현재 비핵화 문제는 괄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남북 간 합의된 내용이 있다고 해도 괄호 밖으로 보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정상회담의 명분 확보를 위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띄운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만 한 소재는 되지만, 미국이 가지고 있는 북한 핵폐기의 수순으로 보기에는 미흡하다.  

미국은 여전히 '신고'와 '사찰'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핵폐기, '신고-사찰 및 검증'이라고 하는 경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는데 북한이 핵 시설을 신고한다고 한들, 미국이 은폐했다며 의혹을 제기하면, 사찰단을 보내겠다고 하면, 북한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증'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 깨졌다.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문 등 좋은 합의가 있었지만, '신고-사찰' 단계로만 들어가면 서로 '못 믿겠다'며 판이 깨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여러 차례 경험한 바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상응조치가 없다는 주장이고. 합의점이 나오기 어렵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지금 미국과 북한 간에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 대책회의'한 남북, 결승전은 따로 있다"  

프레시안 : 북한 측은 '미래 핵'에, 미국 측은 '현재 핵'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종대 : 그렇다. 미국은 북한이 그동안 보여준 조치는 '동결' 조치라는 입장이다. 미국은 북한이 어딘가에 숨겨놓은 '현재 핵'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평양 공동선언'을 통해 '현재 핵', 즉 영변 핵시설 폐쇄를 이야기했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북한이 반발 짝 양보한 셈이다. 그러면서 '종전선언과 등가교환을 하자'고 미국에 다시 묻고 있다. 미국이 어떤 응답을 할지는 우리의 중재외교에 달려 있다. 만약 미국이 '노(NO)'를 하면, 3차 정상회담의 성과는 부정된다.  

또 어느 지점에서 충돌이 일어날 텐데, 그렇게 되면 상상력을 발휘해 파격적으로 순서를 바꾸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7월 이후 북미 간 교착상태는 상상력의 위기였다. 창의성의 위기였다. 기존 입장 그대로 하던 말만 계속하다 보니,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깨달은 것이다. 이래서는 문제가 안 풀린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허심탄회하게 한 것이고. 그래서 3차 정상회담은 남북이 '트럼프 대책회의'를 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숨겨진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은 어디까지나 예선전이고 준결승과 결승전은 따로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자만하면 안 된다.  

"'군사 합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버퍼링 작업"  

프레시안 : 남북 두 정상의 친밀감은 나날이 돈독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언제든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번 '군사 합의'가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 같은데, 그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김종대 : 그렇다. 남북한 문제는 사실 우발적인 충돌 발생에 있다.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재래식 군사 분야의 충돌이 발생하면, 비핵화의 판이 깨진다. 비핵화 프로그램이 잘 작동되려면, 운영체계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군사 합의'는 그에 앞선 일종의 버퍼링 작업이다. 이 작업이 없으면 향후 비핵화 프로그램이 불안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후가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군사 합의'를 보면, 과거 북한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상당수 들어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같은 조치에 합의했을까.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이 없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또 '군사적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전방 초소(GP) 철수처럼 다소 분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한 부분도 있다. GP는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상대방에 근접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시설물이다. 정전협정 상 DMZ에는 무장 시설이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무장한 채 DMZ에 있는 게 GP다. 

북한의 경계 작전 개념을 보면, 전방 GP를 주축으로 경계 작전을 수립했다. 남한은 후방 GOP를 경계 작전으로 설정해 놨기 때문에 전방 GP를 철수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후방에 다른 시설물이 없다. 따라서 GP 철수가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불리한 합의다.  

북한이 전방 GP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이미 DMZ 내 생활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DMZ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파종기에는 몇천 명씩 들어온다. 농사를 화전으로 한다고 불을 놔 산불도 일어나고, 식수를 구하겠다고 들어오기도 하고. 북한의 전방 GP는 이렇게 군사적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계속 증가했다. 정전협정 상 DMZ에 수천 명이 들어오면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지만, 남한은 지금껏 묵인해 왔다.

그런데 DMZ 내 GP를 철수해 평화지대로 만든다면, 어느 쪽 손해가 더 크겠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 이전 장성급군사회담에서 GP 철수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그리고 이 내용이 합의문에 담겼다는 것 역시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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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전쟁의 위험성을 종식시켰다는 건, 북한 내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종대 : 그렇다. 지난 7월 이후 <노동신문>을 훑어보면,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 군부 내부 단속이 중요 변수로 대두됐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이 원로장성이나 혁명원로를 예우하는 보도가 부쩍 많아졌다. '핵무기라는 보검(寶劍)을 내려놓으면 우리 안보는 어쩌란 말이냐? 무장 해제하자는 이야기냐?'와 같은 내부 강경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다. '핵무기 없어도 전쟁 위협을 줄였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군사 합의'가 절실했다. 

이렇게 좋은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데도, 자유한국당은 '군사 합의'에 대해 "일방적 무장해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보수정당에게 북한은 항상 '공포'였다. 나약한 안보관과 패배주의적·비관주의적 발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모든 변화는 우리에게 공포다. 북한은 믿을 수 없다'라는 태도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핵은 놔두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무장해제했다'는 말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형성되어 있다. 

"'전방 GP 철수', 2005년 한나라당 아이디어였다"  

프레시안 : 자유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김종대 : 사실 청와대가 평양으로 가기 전부터 걱정했던 지점이 부각됐다. 집권여당이 평양에 가기 전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안을 서둘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양 선언' 국회 비준까지 논쟁거리가 됐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출했을 때처럼 합의문 제출 행위 자체가 정쟁이 됐다.

자유한국당의 '군사 합의=일방적 무장해제'라는 주장에 대해 바로잡아야 할 게 있다. 군사 분야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가기 전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을 통해 이미 합의된 내용이다. 또한 자유한국당 주장처럼 '무장해제'가 아니다. 수백조 원의 국방 예산을 투자해도 달성하지 못할 안보의 증진이며, 무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안보를 달성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라고 한들, 고민이 없겠는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4선언 발표 석 달 전, 한나라당은 대선을 겨냥한 대북 유화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내놨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GDP를 3000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각종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을 공약했다. 하지만 2008년 북한은 "이명박 역도"라는 말까지 쓰면서 거부했다.

핵폐기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어서 그렇지, '비핵개방 3000'에도 북한과 협력하는 좋은 안도 있었다. 그래서 2009년 임태희 비서실장이 비밀리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물론 청와대 내 강경파인 김태효 비서관이 MB를 흔들어대는 등 암투도 있었지만. 2014년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며 대북정책을 펼쳤다.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만 한다며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의 정치적 위치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 꼬인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전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방 GP 철수 대한 최초 아이디어도 한나라당에서 나온 것이다. 2005년 전방에서 남북한 군인들 사이에 미미한 총격전이 벌어지자,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던 김학송 한나라당 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발 장비를 위해 남북한 모두 전방 GP를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방 GP 철수 문제는 당시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도 이야기됐다. 이 안이 이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보수진영도 정치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평화가 본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냉전 본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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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선언', 흥분 가라앉혀야…" 

프레시안 : 카퍼레이드와 백두산 등반 등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면서 여론은 호의적이다. 자유한국당의 반격, 과연 영향이 있을까?  

김종대 : '군사 합의'의 실효성 문제로 이미 전선은 형성됐다. 보수정당은 김대중-노무현 등 대북 친화 정책을 쓰는 정권을 향해 경제에서는 '퍼주기론', 안부에서는 '무장해제론'을 주장했다. 우리가 치르는 희생과 부담이 크다는 걸 적극적으로 부각하며 세금이 얼마나 들어간다는 식으로 

그런데 현재 우리 상황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여러 퍼포먼스에 취해 있어서 그렇지, 냉철하게 보면 경제지표는 악화됐고 민생은 추락하고 있다. '왜 이런 비용을 써야 하지?'라는 의문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보수정당이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해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  

따라서 퍼포먼스에 취하지 말아야 할 당사자는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평양 선언'의 실질적 의미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높은 정책 역량이 요구된다. 우리도 감정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지 않나.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번영의 고난과 역풍이 예상된다'는 발언을 세 번씩 하며 경고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움에 대해 첫날 환영만찬에서 한 번 언급했을 뿐 낙관주의로 일관했다. 지금은 예선과 본선을 치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문제는 결승전이다.  

'평양 선언' 합의문이 완성도가 높지만, 그럼에도 2박 3일간 벌어진 평양 퍼포먼스에 취하는 순간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숙제가 많다는 걸, 정책 당국자들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남북미, 각각 국내 상황이 문제  

프레시안 : 남북 모두 내부에 반대 세력이 있는 셈인데,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난관이 예상된다. 어떤 난관이 있을까?  

김종대 :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면서 11월에 있는 중간선거가 어려워졌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정책 심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으면 트럼프의 구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대외정책에 변화가 생기는 결정적 계기가 바로 중간선거다. 2006년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대패하자, 그동안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고립과 압박을 가했던 북한과 대화하겠다며 급선회했다. '이라크 전쟁'에 실패한 네오콘도 전부 숙청했다. 그래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그런가 하면, 워싱턴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에워싼 채 '대북제재는 뚫렸으며 대북정책은 실패했다'는 논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5일 "새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는 북한의 불법 무기 판매와 위장된 연료 선적, 불법 금융거래의 최신 증거가 담겼으며 국제 경제제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또 북한 무기기술자들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개발을 돕고 있으며, 시리아·예멘·리비아와 다른 분쟁지역에 무기를 팔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각 뉴욕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이처럼 '대북제재 강화'를 선동하고 있는 미국 강경파는 우리에게 큰 위협이다. 그리고 일본의 '고춧가루 뿌리기', 즉 납치자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에서 거론해 달라는 것 역시 위협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제외한 다른 여건이 좋지 않다. '평화정책'이라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성과가 나오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고난과 역풍'은 바로 그런 의미다. 남북한이 손을 잡고 연대해 같이 노력할 때만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호소한 것이다. 우리가 과연 지금 취해 있을 때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정치는 냉엄한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를 준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국제정치는 절대 기회를 주지 않는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미국 국민을 향한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현지시간으로 9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일단 긍정적인데, 이후 상황이 진전될까? 

김종대 : 한미 정상회담이 더 중요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절반을 채웠다면, 나머지 절반은 한미 정상회담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은 회담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으로 수용하겠지만, 그럴수록 본인의 정치가 어려워지는 워싱턴 상황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한미 정상회담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공외교(公共外交, Public Diplomacy)가 있어야 한다. 미국 시민과 언론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 평화외교가 필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기간인 1865년 3월 두 번째 취임 연설을 하면서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시민들 앞에서 '150여 년 전 링컨 대통령의 메시지인 화해와 관용, 용서의 정신이 한국에서도 재현되기를 바란다'라고 연설한다면? 아니면,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나에게 꿈이 있다"며 설득한다면?

문재인 대통령, 미국 시민들과 '평화의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평양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양 15만 시민 앞에서 보여준 진심을 미국 시민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각오 없이 뉴욕을 간다면, 싸늘한 시선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방미 일정을 늘리더라도 이런 공공외교, 평화외교가 있어야 한다.

여야 3당 대표가 평양을 다녀왔지만, 정작 대통령과 같이 가야 하는 곳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안 갈 것이다. 오히려 미국 내 싸늘한 시선을 믿고, 더 냉전적인 상황으로 갈 것이다. 평화번영시대에 냉전주의자들이 더는 설 자리가 없다. 그럼에도 저쪽이 힘을 얻으면, 현재의 평화는 파괴된다.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프레시안 :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김종대 :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2007년 10.4 남북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지난 9년 보수정권에서 안보는 더 나빠졌다. 평화는 유리와 같아서 아무리 애써 만든 것이라고 해도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깨져버린다. 평화가 가지고 있는 연약한 속성이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수반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를 한 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밀협상을 통해 '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으로 이스라엘군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철군했다. 하지만 1995년 라빈 총리가 암살된 뒤, 상황은 나빠졌고 전쟁에 돌입했다.  

'평화'라고 하는 것은 완성되는 성격의 그 무엇이 아니다.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 평화 체제를 완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느냐, 마련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는 성공했다. 그는 야당을 설득해 정권이 교체되어도 평화 체제가 유지되게 했다. 그렇게 독일은 통일이 됐고, 강국이 됐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바른미래당이 평양행을 막판에 취소한 것은 아주 아쉬운 대목이다.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킬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을 국회에 비준시키면서 초당적 상황을 만들 수 있었는데 실패했다. 국회 비준에 찬성하는 당대표들만 평양에 갔다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닌 본전치기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제2의 데탕트 시대' 열어야"
 

프레시안 : 청와대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미숙한 것도 있는 것 같다. 계속 문젯거리가 될 것 같은데 

김종대 : 협치(協治)에 능하지 않은 지도자가 평화에 성공한 적은 없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세워 바르샤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수차례 비공식 접촉을 가진 끝에, 1972년 중국 상하이에서 마오쩌둥 국가주석을 만나 '상하이 코뮈니케(Shanghai Communiqué)'를 체결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 국교 정상화 합의 과정에서 '대통령이 내가 공을 독점하지 않을 테니, 지원해 달라'며 야당인 민주당을 직접 설득했다. 그의 노력으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 위원회를 구성, 중국과의 수교를 뒷받침했다. '데탕트(Détente)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하면서 에곤 바 외교안보 특사를 미국과 소련 등 주변국에 보내 설득했다. 첫 반응은 당연히 안 좋았다. 당시 키신저 보좌관은 브란트 총리를 '값싼 민족주의자'라고 말했다. 독일 야당인 기민당조차 브란트 총리를 인식 공격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브란트 총리는 평화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민당이 차기 정권을 잡았음에도 사민당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서명하면서, 독일이 통일시대를 맞았다.  

지금처럼 이데올로기 전선이 강화된 한국의 경우, 그 어느 때보다 '평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양보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해 자신의 신념을 확산시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연정과 협치에 능한 지도자가 평화를 구현한다.  

요즘 들어,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국내 정치의 연정과 협치가 대외정책과 평화정책으로 이어진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같은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이데올로기 전선으로만 해석했다.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이 차기 정권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아닌지.  

만약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정책을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대북정책으로 계승하겠다'라는 선언이 나온다면…. 정말 꿈같은 나라가 될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꿈을 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요한 지적이다. 현 정부가 야당을 위축시킬 목적으로 평화정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김종대 : 과한 지지가 때로는 공격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 더 넓게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로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전선은 이미 형성됐다고 말했다. '군사 합의'에 대한 실효성 문제다. 이게 전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중심으로 이데올로기 전선이 형성되면, 무조건 정권에 분리하다. 따라서 후반기 국정운영은 통합으로 가야 한다. 평화의 원칙과 비전이 이제는 승리로 이어지는, 그런 국정 운영이 되어야 한다.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전 총리는 1993년 미국 워싱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만나 가자지구·요르단강 서 안에 팔레스타인 자치를 허용하는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었다. 즉시 이스라엘 보수층이 반발했고, 각 도시에서는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70대 노(老)정객은 '반대 시위가 열리는 도시를 방문해 직접 설득하겠다'고 나섰고, 이듬해 한 도시에서 연설하던 중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가슴을 관통했다. 얼마 뒤 '평화의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가 피에 젖은 채 그의 양복 주머니에서 발견됐다. '평화 지도자'로 자신의 희생까지 불사한 그의 용기와 신념은 이스라엘 국민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전 대통령은 아랍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의회에서 '당신들의 신은 우리와 전쟁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라는 연설을 하는 등 평화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빵 보조금 폐지와 같은 국내 정치 문제와 맞물리면서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들과 유럽 국가 정상들이 참석했지만, 그를 반대한 아랍 국가 및 공산주의 국가 정상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20세기의 마지막 평화정책이자, 21세기의 첫 번째 평화정책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지만,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자민련과 공동 정부가 깨지면서 '햇볕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권을 재창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10년간 유지됐다.

독일의 '동방정책'을 제외하면, 20세기 평화정책 중 10년 동안 지속하 경우는 '햇볕정책'이 유일하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그 정책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3대에 걸쳐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문재인의 평화정책은 역대 대북정책 중 평화에 가장 근접해 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세 명의 지도자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결과다.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역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전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품격으로 평화정책을 성공시켜야 한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노회찬 서거, 그 후

프레시안 : 고(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등진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정의당은 어떤가.

김종대 : 정말 악몽 같은 여름을 보냈다. 정의당은 '노회찬'이라는 큰 정치인을 잃고, 원내교섭단체마저 무너졌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탑이 무너진 기분이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든 구조물이 붕괴된 상황이다. 공든 탑이 무너졌는데, 격려가 조금 늘었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지 않나.

특히 원내교섭단체 지위가 무너지자, 자유한국당은 노골적으로 정의당을 배격하고 있다. 이정미 대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서 배제하는가 하면,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위원장에 내정된 심상정 의원에 대한 입장도 바꾸었다. 정의당을 헌정특위에서 배제한 뒤로는, 위원회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국회 제1당과 2당이 '선거법 개정'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사실상 해태(懈怠)하고 있는 셈이다.

재벌의 청구 입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제완화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처리하다니…. 집권여당이 보수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의당의 지위가 더 뚜렷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있다. 노회찬 의원 서거 후유증이 치유되거나 회복되지 않고, 더 악화하는 쪽으로 정국이 흘러가고 있다. 안타깝다. 

정의당이 국민들에게 처지가 어렵다는 걸 진솔하게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국민들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을 닮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자는 꿈, 지금도 유효하다. 그 희망을 국민들과,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다. '함께 가겠다'고 말하고 싶다.

전홍기혜 기자 onscar@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이명선 기자 overview@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