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5일 목요일

김정은 위원장 “초강력 무기체계들을 줄기차게 개발해나가야!”

김정은 위원장 “초강력 무기체계들을 줄기차게 개발해나가야!”
김영란 기자 
기사입력: 2019/07/26 [09: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25일 북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는 남측에 대한 경고 의미를 담은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이었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조직 지도했다.

북의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최고영도자동지께서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지역에 첨단공격형 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 연습을 강행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남조선 군부 호전 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신형전술유도무기사격을 조직하시고 직접 지도하시였다고 26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국방과학부문 지도 간부들과 함께 화력 진지에서 발사준비 공정들을 지켜보며 새로 작전배치하게 되는 신형전술유도무기체계의 운영 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감시소에서 위력시위사격을 직접 지도했다.

이번 시위사격을 통해 신형전술유도무기체계의 전투적 성능 지표들이 다시 한번 만족스럽게 검증되었으며 이 위력시위사격이 목적한 대로 겨냥한 일부 세력들에게는 해당한 불안과 고민을 충분히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신문은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신형전술유도무기체계의 우월성과 완벽성을 더 잘 알게 되었다특히 이 전술유도 무기 체계의 신속한 화력대응능력방어하기 쉽지 않을 전술유도탄의 저고도 활공도약형 비행궤도의 특성과 그 전투적 위력에 대해 직접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을 만족하게 생각한다이러한 첨단무기체계 개발보유라는 사실은 우리 무력의 발전과 국가의 군사적 안전보장에서 커다란 사변적 의의를 가진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동행한 간부들과 국방과학부문의 지도 간부들에게 남측의 정세에 관해 설명을 하고 최근 남조선군부 호전 세력들이 저들의 명줄을 걸고 필사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최신무장 장비들은 감출 수 없는 공격형 무기들이며 그 목적 자체도 변명할 여지 없고 숨길 수 없는 것이다우리 국가의 안전에 무시할 수 없는 위협으로 되는 그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초기에 무력화시켜 쓰다 버린 파철로 만들기 위한 위력한 물리적 수단의 부단한 개발과 실전배비를 위한 시험들은 우리 국가의 안전보장에 있어서 급선무적인 필수사업이며 당위적인 활동으로 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공격형 무기반입과 합동군사연습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우리는 부득불 남쪽에 존재하는 우리 국가안전의 잠재적직접적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한 초강력 무기체계들을 줄기차게 개발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군수공업 부문과 국방과학 부문의 지도 간부들에게 연속적으로 개발해나갈 중요한 전략 및 전술 무기체계들에 대한 연구 방향을 밝혔으며 나라의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억척같이 다져나가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계속해 김정은 위원장이 남조선 당국자가 사태발전 전망의 위험성을 제때에 깨닫고 최신무기반입이나 군사 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시위사격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통신은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사격지도에는 조용원·리병철·홍영칠·유진·김정식·리영식 등 노동당 제1부부장 및 부부장이 수행했고현지에서 장창하·전일호 등 국방과학분야 간부들이 영접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전술유도무기 위력시위사격을 조직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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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동북아 질서와 저항하는 일본

이정훈의 반도평론(6)
  •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9.07.25 18:32
  • 댓글 1
1. 새로운 국제질서
국제정세에서 새 것이 떠오르고 낡은 질서가 무너질 때 나타나는 극적인 변화가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역동적으로 일고 있다. 일련의 국제정세를 주시하는 누구도 그 변화의 중심에 자력으로 국가핵무력을 완성하고 전략국가로 등장한 조선(북한)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변화도 놀랍다. 한(조선)반도 문제해결 방도와 기존 대미전략노선을 수정하면서 북과 연합하고 있다. 등소평 개혁개방 외교노선 이래 수십 년만의 충격적 변화이다.
미국이 소련 붕괴이후 중국을 압박하고 끌어들여 조선을 에워쌌던 적대적 제재망은 시진핑 주석의 지난달 평양 방문이후 완전히 허물어졌다. 이렇듯 조·중·러가 함께 추동하는 다극화를 지향하는 새 국제질서를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이지만 낡은 국제질서에 이해관계가 걸린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저항이 격렬한 것도 사실이다. 새 것과 낡은 것의 최전선에서 조-미가 직접 격돌하고 있다면, 그 바로 뒷자리에서 낡은 질서의 기득권을 지키려 저항하는 정치세력이 바로 일본 아베 정권과 한국의 자유한국당이다.
2. 협상장으로 돌아온 미국
베트남 하노이 2차 조미정상회담을 호기롭게 무산시키고 떠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논란의 ‘빅딜’ 제안을 뒤로 물린 채 다시 협상장으로 나왔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의 대미정책은 지난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명확하고 단호한 표현으로 제시되었다. 1) 협상의 내용은 6.12 싱가포르 조미공동성명의 포괄적 이행 2) 방법은 단계적 동시행동(미국 선(先)비핵화 포기) 3) 시한은 올해 말까지이다. 세부적으로는 조미정상간 합의와 협상을 교란시켜온 폼페오 국무장관과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의 교체(2선 후퇴) 등이었다. 이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조미간 핵대결은 2017년 위기 이상으로 재현될 게 분명하다는 신호였다.
경제제재 완화를 지렛대로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힘을 통한 강압외교로 일방적 선비핵화를 관철하려던 미국의 협상전술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시정연설 이후 미국의 선택은 협상을 아예 접거나 새로운 협상전술로 수정하는 두 가지로 좁혀졌고, 세계는 미국의 선택을 주목했다. 트럼프는 연거푸 “서두를 것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으로 상대국에게 시한 압박을 당하며 대책을 고심한 적은 트럼프 개인은 물론 미국 외교사상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 소련과의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그렇고 이후의 다른 어떤 위기 때도 미국에게 그렇듯 단호하고 실제적인 시한부 안보 위협을 가한 나라는 없었다.
4.12 시정연설 이후 북은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없는 이상 실무협상을 일절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친서를 통해 협상재개 의사를 전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반응한 데서 알 수 있다. 이후 트럼프는 꽉 막힌 조미 실무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특유의 트위터정치로 김 위원장에게 판문점 회동을 요청하고 성사시키며 그간의 교착상태를 반전시켰다.
지난 23일자 조선신보 보도에 따르면, 6.30 판문점 조미‘번개’회담에서 다시 한미연합군사훈련(동맹19) 문제가 거론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연합훈련 중지를 다시금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미 군당국은 다음달에 연합훈련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훈련명칭을 ‘동맹19-2’가 아니라 ‘전작권 전환 검증연습’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걸까?
판문점 ‘번개’회담에서 조미정상이 합의한 2~3주 이내 실무협상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한미연합군사훈련 때문이다. 연합훈련이 완전히 중지되지 않는다면 실무협상도 계속 지연될 게 분명하다. 조선 외무성쪽 입장 표명을 보면, 연합훈련을 완전히 중지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조선은 조미 협상원칙의 전제를 깨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음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은 이를 남북의 평화군축과 긴장완화 노력도 물거품으로 만드는 주된 장애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새벽 조선의 미사일 (시험)발사 역시 한미연합훈련이 완전 중지되지 않아 되풀이된다고 볼 수 있다.
3. 달라진 중국
최근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대조선정책이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껏 중국은 한(조선)반도 비핵화, 쌍중단(조선 미사일시험, 한미연합훈련 중단), 쌍궤병행(비핵화, 평화회담 병행), 6자회담 재개 등 늘 비슷한 원칙과 주장을 해왔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하며, 중국의 대조선정책이 현실에서 변함없이 관철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조선문제를 대하는 입장과 태도에서 전례 없는 변화상을 보이는 곳이 중국이다. 시진핑 주석이 표방하는 ‘신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노선도 크게 보면 1978년 등소평 개혁개방노선의 연장선에 있다. 이른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로 정립된 중국의 사회주의 전략은 중국공산당 주도 아래 시장과 자본주의를 활용해 낙후한 중국의 생산력을 먼저 키우자는 노선이다. 이와 맞물려 있는 중국의 대외, 대미전략이 등소평의 유명한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전략이다. 이후 후진타오 주석의 화평굴기(和平屈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로 변화했으나 기조는 같다. 즉 기존 모택동 노선과 다르게 제국주의 미국과 직접적인 대립은 피하면서 와신상담해 미국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중국의 실용, 실리주의 외교노선이다. 중국공산당은 이 기간을 대략 100년으로 잡았다.
중국의 대조선정책도 이 기조에 따른 것이었다. 한마디로 첨예한 조-미 대결이 중-미 대결로 진화하는 것을 차단하는 기조를 유지했다. 중국이 전통적인 조-중 사회주의 혈맹노선을 뒤로한 채 실제로는 조선의 핵개발을 반대하고 미국과 공조하며 조선을 압박했다. 이를 두고 중국은 자국 중심의 실리주의외교라 말할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주의운동론 차원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포기이자 사회주의 동맹국에 대한 배신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던 중국이 조선과 ‘반제사회주의 조중혈맹’을 다시 합창하고 있다. 최근 2년간 5차례에 걸친 조중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획기적으로 바뀌었고 시진핑 주석의 평양방문은 그 절정이었다. 평양정상회담의 기조는 시종일관 “반제자주, 사회주의를 위한 공동투쟁”이었다. 즉 중국은 더 이상 미국편이 아니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선언한 평양방문이었다.
이런 중국의 변화에는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준 조선의 대중국정책이 녹아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공언하고 평화적 방도에 의한 조-미 대결 종식을 표명함으로써 시진핑 주석에게 명분을 준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조선의 실력과 실체를 인정하고, 조선을 미국의 대중국 봉쇄압박전략을 벗어나는 동반자로 재설정한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분열되었던 주요한 사회주의 나라간의 연합과 단결이 복잡한 정세 속에서 극적으로 복원된 것이다. 중국은 이후 적극적으로 한(조선)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그리곤 미국에게 조미협상 성사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이후 조미협상이 파탄되더라도 더는 미국편에 서지 않을 것임을 여러 경로로 암시하고 있다. G20 중미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기 시 주석의 평양방문은 미국에게 20여년 공든 패권탑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 세종시에서 열린 일본 제품 불매 운동[사진 : 뉴시스 김기봉 기자]
4. 극렬 저항하는 일본
동북아의 극적인 정세변화에 가장 불안해하는 정치세력이 일본의 아베 정권이다. 아베 정권이 이젠 미국만 믿고 있을 수 없다는 심리적 불안상태에 빠질 만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의 기본 틀은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 이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또 다른 패전국 독일의 경우와 달리 일본에게는 사실상 선물이었는데 전범국으로서 반성과 사죄 없이 부활할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전쟁 와중에 체결된 조약의 기조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그대로 반영됐다. 팽창하는 중국과 조선의 사회주의를 막기 위해 패전국 일본을 부흥시켜 종국적으로는 ‘아시아의 영국’으로 만드는 장기전략의 시작이었다.
일본의 자민당 중심 우익보수정치체제의 대외정책적 근간은 미일안보조약(1951년)에 기반한 군사동맹과 조선을 적으로 삼는 한(조선)반도 분단체제이다. 그래서 4.27 판문점선언과 조미 평화협상의 진전은 일본 민중에게 자주와 평화를 추동하지만, 아베를 필두로 한 우익보수세력에겐 전후 70여년 자민당 중심 보수정치체제(샌프란시스코 체제) 몰락의 시작을 의미한다. 일본 자민당에게 한(조선)반도 평화와 통일의 진전은 여느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운명과 직결된 체제문제이다.
불안감에 휩싸인 아베 정권의 대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심리에서 나온 독자적 군국주의화, 핵무장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반대해도 한국 문제에 직접 개입해 한국의 정치 변화에서 미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일본이 6,000여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47톤을 보유하고 있고 수개월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베 정권에겐 평화헌법 개정과 핵을 보유한 ‘보통국가’를 지지하는 여론조성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는 일본 우익보수정치체제의 활로와 직결돼 있다. 그래서 변함이 없고 집요하다.
일본이 독도문제 등 고질적인 영토문제를 넘어 외교와 경제, 무역 등 다방면에서 한국을 압박하고 개입력을 키우려는 시도는, 미국의 대한(조선)반도 영향력이 계속 약화돼 남북이 평화, 번영, 통일의 길로 들어설수록 심화될 공산이 크다. 대법원의 일제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빌미로 아베 정권이 경제제재를 가해오는 것을 결코 우연하거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이 이를 방치한다면 압박의 강도가 더한 금융제재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지금 조미협상이 달갑지 않다. 이 협상에서 일본은 완전 배제돼 있고, 따라서 그 결과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4.27 판문점선언에 합의한 문재인 정권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더 극렬한 방법으로 정권을 흔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아베 정권과 친일 자유한국당의 막후 공조는 시간이 갈수록 더 노골화될 것이다.
5. 전환기 미국의 대(對)한국 정책
동북아 정세가 급변함에 따라 주변국들의 대한국 정책 역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한 정책기조는 바뀌고 있는가? 일반적으로는 미국이 한국의 극보수정권이나 자유한국당보다는 4.27판문점선언에 우호적인 문재인 정권이나 중도정권을 더 지지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 지배집단 내부의 혼선과 분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의 수구분단세력을 더 신뢰하고 옹호한다.
한국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한국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보수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지만 미국이 이들의 집권조차 반기지 않는 이유는 전환기 정세에서 조선과의 민족공조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은 4.27 판문점선언 이후 벌어지는 남북의 화해와 번영, 통일의 열기에 놀라고 있다. 이 열기의 뿌리는 5천년 반도에서 살아온 한겨레로서 이제 분단과 전쟁을 끝내고 화해협력과 평화통일로 가자는 염원이다. 이 열기가 촛불처럼 번진다면 미국의 대북 협상전략도, 남쪽에 대한 지배력 유지도 모두 다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4.27 판문점선언과 통일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로막는 실세임을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 핵문제와 조미관계가 단계적으로 해결되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대한 영향력과 지배력을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은 한반도는 물론, 한국 내 정치정세 변화에 다양한 경우의 수로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제3세계 나라의 정변과 정권교체를 식은 죽 먹기로 반복해온 미국이 기득권을 잃을 수 있는 ‘불안정 지역’에 대처하는 방식은 인위적 사회혼란 조성, 경제제재를 통한 현지 정권 흔들기, 정변을 통한 정권교체 등이다. 한국에서 5.16과 같은 군사쿠데타와 정변이 더 이상은 쉽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최근 일부 정세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제재를 통한 한국 정권 흔들기는 충분히 가능한 방법의 하나이며, 일본이 먼저 이를 무기화하고 있다. 미국이 겉으로 일본의 대한국 경제제재를 조정하고 말리는 시늉을 하고 있으나 특정한 정치상황에서 미국 역시 경제제재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일본 정권은 한국을 대등한 협상 상대로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을 대하듯 한국 정부를 만주군관학교 부하처럼 대하고 있으며 여전히 한국을 식민지로 보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경제제재에 굴복하고, 일본의 압박이 계속 통한다면 한국은 일본 극우보수정치세력의 영향력과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온 국민이 일어나서 이를 저지하고 파탄내야 한다. 한국의 촛불은 후퇴를 거듭하는 문재인 정부의 반개혁적 정책과 싸워야하고, 전환기 미일 외세의 음흉한 농간과도 싸워야한다. 한국의 촛불민중은 아직 할 일이 많다.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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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슨 낯짝으로 신문 봐 달라느냐

이기명  | 등록:2019-07-25 17:50:52 | 최종:2019-07-26 07:35:1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칼럼] 무슨 낯짝으로 신문 봐 달라느냐
제국일보, 매국일보의 운명
“자식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네.”

죽마고우라고 할 수 있는 친구의 어두운 얼굴이다. 취직하기 어렵다는 요즘에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두다니. 욕만 안 먹으면 대우도 괜찮다.

“오래전부터 무척 고민하는 걸 봤네. 그래도 그만둘 결심까지 할 줄은 몰랐네. 결심한 것이 신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일본 제품 불매운동 대형 전광판 광고
■ ‘가지도’ ‘사지도’ ‘팔지도’
바로 뒤에 붙는 말은 ‘말자’다. 짐작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설명을 하자면 일본과 관련이 있다. 일본은 가지도 말고 물건은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자는 것이다. 그게 제대로 될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 것이라면 죽고 못 사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르단다.

친구 아들이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일본과 관련이 있다.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요즘 국민이 ‘제국일보’ ‘매국일보’라고 부르는 언론사다. 이 정도면 모두 알 것이다. 잘 모르면 끝까지 읽으시라.

■ 언론, 사실대로 보도해라.

조선일보는 일본어판으로도 신문을 발행한단다. 최근 조선일보 일본어판은 ‘일본의 한국 투자 1년새 -40%…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문제는 이 기사 제목이 일본판에서는 슬쩍 바뀐 것이다. 일본어로 된 제목을 한 번 보겠는가.

‘韓?はどの面下げて日本からの投資を期待してるの?(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
바뀐 제목이 얼마나 악의적인가. 일본인의 혐한(嫌韓)감정을 부추기고 고조시키는 이런 매국적 제목을 뽑은 자는 누구인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제목을 바꾸면서까지 한국을 깔아뭉갠 조선일보 일본어판 편집자가 한국인이라면 ‘무슨 낯짝으로 한국에서 사는가.’

일일이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조선일보의 일본 관련 기사는 언론의 정도를 벗어났다. ‘조선일보가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도 성경’이라는 농담이 있다.

한국에는 조·중·동이라는 별칭이 있다. 한국 언론사에 기록될 조·중·동이라는 명칭이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그들 자신도 잘 알 것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대학 시절 동아일보는 지식인들의 필독신문이었다. 이승만·박정희 독재는 동아일보를 눈에 가시로 생각했다. 광고탄압이라는 목을 죄는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는 무릎을 꿇었다. 동아투위 기자들이 길바닥에 동댕이쳐질 때 한국의 언론은 죽었다. 내쫓긴 기자들이 책 장사로 목에 풀칠을 할 때 변절한 기자들은 독재자의 입과 눈이 됐고 조선일보는 승승장구했다.
▲매국 논란을 일으킨 조선일보 일본어판 보도(이미지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 언제까지 목숨을 부지할 것인가

길을 가다가 가판대에 있는 조선일보를 보면 가슴이 떨린다. 광화문에 가면 조선일보 건물이 높이 서 있다. 길 건너 서울신문 건물도 있다. 4·19 때 성난 국민의 손에 불탄 서울신문의 운명을 언론의 비극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중앙일보에 다니는 후배가 있다. 만날 때마다 미안해하는 그를 보며 가슴은 찢어진다. 국민을 조롱하며 매국일보 제국신문에서 밥 먹는 기자들의 가슴도 찢어질 것이다.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에는 한국 언론들이 조선일보 비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겁이 나서였다. 이제 조선일보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지면에 올린다. 세상이 변했음을 절감할 것이다. 이제 더 변할 것이다. 명함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언론은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제한은 말할 것도 없는 경제침략이다. 임진왜란 침략이나 경술국치. 궁궐을 침범한 일본 낭인이 명성황후를 능욕 살해한 것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오늘의 거침없는 경제침략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는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 자식들의 돌 반지 결혼반지를 모아 IMF를 이겨 낸 저력을 가진 우리 민족이다.

적을 두려워하면 싸우기도 전에 패한다.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고 한 이순신 장군의 투지와 애국심은 승리의 원천이다. 제국일보를 비롯한 매국 언론들은 일본의 경제침략을 규탄하는 사설이라도 한 번 써 봤는가. 기껏 한다는 소리가 ‘무슨 낯짝으로 투자를 기대하느냐’는 제목 바꾸기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망각한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국민이 응징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조국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드골이 처단한 수천 명의 언론인도 프랑스라는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였다.

정치하는 인간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국민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가. 일본이 수출을 거부한 첨단 반도체 소재는 우리가 개발하면 된다. 일본에 뒤쳐졌던 기술을 따라잡은 것도 많다. 일본이 팔지 않는 첨단기술도 우리가 개발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돈이 들어도 할 수 있다. 국민은 그 고통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다. 정치인들이 지금처럼 싸움질이나 하면서 추경하나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바로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며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일본은 한국을 표적으로 침략을 배웠다. 삼국시대 이전에 왜구침략으로부터 임진왜란,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기억하라. 3·1운동 당시에는 화성 조암리 예배당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문을 잠근 뒤 불을 질러 태워 죽였다.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를 죽어라 반대한다. 남북이 손잡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제 매국 제국 일보는 정론으로 돌아와 국민의 편에 서라. 아사이 맥주 마시며 분노를 달래는가. 차라리 현해탄을 건너가 살라. 분노한 국민들이 신문사 간판에 대못을 박는 일은 없기 바란다. 무슨 ‘낯짝’을 들고 국민에게 신문을 봐 달라고 할 것인가. 지금 폐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사지’도 ‘보지’도 ‘읽지’도 말자.

친구의 아들이 궁금할 것이다. 걱정할 것 없다. 친구도 그의 아들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4826&table=byple_news 

국정원장이 바뀔 때마다 액수는 더 올라갔다

19.07.26 07:55l최종 업데이트 19.07.26 08:49l






1주일에 한 번꼴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들을 다룹니다. 각 사건의 핵심내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의 범죄 또는 부패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권력부패를 기억하는데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 공동취재사진/이희훈/최윤석

2019년 7월 2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선고했다.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 원"

1심에서 선고된 징역 6년보다 1년, 추징금 33억 원보다 조금 줄어든 형량이다.

이 재판은 국정원장에게 배정된 특별사업비 명목의 국정원 예산을 박근혜에게 상납한 이른바 '국정원 특활비 상납사건'에 대한 재판이었다. 국정원 특활비를 박근혜에게 상납한 사건에 대한 재판은 모두 3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상납을 요구한 박근혜에 대한 재판과 상납을 했던 국정원장 등에 대한 재판, 그리고 국정원에서 온 돈을 받아 박근혜에게 전달한 박근혜 측근 3인방에 대한 재판이다.

25일 박근혜에 대한 2심 판결이 선고됨에 따라 이 세 재판은 모두 2심까지 끝났다. 이제 대법원 판결만 남은 상태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와중에 국정원 특활비 상납 요구

박근혜는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와 2012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등에서 여론전을 전개했다. 명목은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었지만, 실상은 여당 지지와 야당 비방, 정부비판 세력 비방을 통한 여당 집권 연장이었다.

국정원의 불법선거 개입과 정치 개입의 꼬리가 살짝 드러났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쯤 앞둔 12월 11일, '댓글작전'을 전개하던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의 거주지(오피스텔)를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이 급습하였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선거 직전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린 12월 16일 밤 11시에 '대선 후보 관련 게시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틀 후 실시된 제19대 대선 결과 여당의 박근혜 후보가 야당의 문재인 후보를 근소하게 따돌리고 승리하였다.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 후보가 당선된 만큼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경찰은 대통령 취임식(2013년 2월 25일)보다 50여일 뒤인 2013년 4월 18일에 국정원 직원 몇 명에 대해서만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취임 초기 박근혜의 위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취임한 후 얼마 안 된 2013년 5월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기 시작한다.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을 보면 박근혜가 상납하라고 지시한 것은 최소한 5월 이전으로 보인다. 검찰로 넘어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조심할 만한데 박근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정원 예산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국회나 감사원이 구체적인 지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박근혜는 악용했다.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매달 5천만 원에서 1억 원이 청와대로 들어간다. 명절이 있을 때에는 한 달에 2억 원이 보내졌다. 이 기간 중에 박근혜에게 전달된 것으로 재판에서 확인된 돈은 모두 35억 원이다.

주요 인물 9명과 보조 인물 2명

국정원 예산이 박근혜에게 상납된 사건의 전개 과정을 하나하나 보기 전에 이 사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부터 보자.

우선 청와대쪽 사람들이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주역이다. 다음으로 박근혜를 보좌한 그의 측근 3인방인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들 그리고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등장한다.

이재만 비서관은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2016년 10월까지 줄곧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만 일했다. 안봉근은 2015년 1월까지는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었고 그 후 2016년 10월까지는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일했다. 정호성은 2016년 10월까지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또는 부속비서관으로 일했다. 이들 세 사람은 청와대 근무 이전부터 10년 이상 박근혜의 비서진으로 일하며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2016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짧은 기간 비서실장이었다. 이 사건에 등장한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다음은 박근혜의 요구에 부응한 국정원쪽 사람들이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이헌수. 남재준은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국정원장으로 2013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재직했다. 이병기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국정원장이었다. 그는 국정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곧바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옮겨갔다. 이병호는 박근혜가 임명한 세 번째 국정원장으로 2015년 3월부터 박근혜 탄핵 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일했다. 이헌수는 국정원 간부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 국정원에 복귀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4월부터 2017년 6월까지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일했다.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인물이다.

재판에 회부된 이들은 이러했지만, 남재준 원장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아무개 실장, 오 아무개 정책특별보좌관도 자금 상납에 관여한 인물들이다. 특히 박 아무개 비서실장은 이헌수 기조실장이 돈 전달 역할을 맡기까지는 직접 돈을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정원장에게 이미 말해두었다는 대통령의 지시

이들의 범행은 2013년 5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5월 초 어느 날, 박근혜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말한다.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청와대 지원 예산 관련해서 이야기해두었는데 소식이 없다. 남재준에게 한 번 확인해보라."

비슷한 때에 박근혜가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말한다.
 
"국정원으로부터 봉투가 올테니 받아놔라."

마침 남재준 원장이 참석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린다. NSC 회의가 끝난 뒤를 기다렸다가, 안봉근은 남재준 원장을 청와대 경내의 '서별관' 건물 밖 정원에서 만난다. 안봉근은 남재준에게 '대통령님이 청와대 지원예산과 관련해 원장님과 말씀하신 게 있다는데...'라며 말한다.

이 일이 있은 직후 남 원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 아무개 국정원장 정책특별보좌관을 불러 지시한다.
 
"청와대에서 돈을 좀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중에서 5천만 원을 현금으로 만들어 청와대에 전달하라."

이 지시는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에게 전달되고 국정원의 예산을 총괄하던 이 실장은 특별사업비 지출계획서를 예산관 등에게 작성하게 한다. 이 실장은 정 아무개 예산관이 가져온 지출계획서를 결재한 다음 특별사업비 5천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은행표시 없는 띠지와 고무줄로 묶어 오 보좌관에게 전달하라고 시킨다. 은행표시가 없는 띠지는 자금 출처를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오 보좌관은 예산관으로부터 5천만 원어치 현금 다발을 받는다. 그는 5월 중순경에 이 돈을 서류 봉투에 담아 남재준 원장의 비서실장인 박 아무개 실장에게 전달한다. 그러고는 이 돈 봉투를 청와대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미 박 실장도 남 원장으로부터 같은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박 실장은 돈 봉투를 전달할 때와 장소를 의논하기 위해 이재만 청와대 비서관에게 연락한다. 이재만 비서관과 상의한 대로 그는 청와대에 파견 중인 국정원 직원을 만난다는 명목으로 청와대 연풍문을 거쳐 청와대 경내의 이 비서관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한다. 그곳에서 이 비서관에게 직접 돈이 든 봉투를 전달한다.

서너 번째부터는 방문확인 절차 거치지 않고 청와대로

봉투를 받은 이재만은 대통령 관저로 가서 박근혜에게 곧장 전달한다. 박근혜는 이재만에게 관저에 있는 금고에 넣어 보관하라고 시킨다. 한 달 후인 6월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박 아무개 실장을 통해 돈 봉투를 받은 이재만이 관저에서 박근혜에게 돈 봉투를 전달한다. 이때 박근혜는 이재만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와대 특수활동비에 준해서 엄격히 관리하라." 

이재만의 주장에 따르면, 이 때 처음으로 자신이 전달한 봉투 안에 든 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국정원의 박 실장은 처음 두 세 번은 국정원 파견 직원을 만나러 왔다는 명목으로 방문기록을 남긴 후에 청와대 경내로 들어갔다. 그러다 두 세 번이 지난 후부터는 청와대 인근에서 이재만 비서관이 보낸 차를 타고 청와대 경내로 들어간다. 별도의 검문이나 방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재만 비서관이 돈 봉투인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 실장의 출입방법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재판에서 이재만 비서관의 범죄사실에 처음 두 번 받은 돈은 제외되고 그 다음부터 받은 돈만 범죄사실에 포함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매달 5천만 원이 박근혜에게 상납된다. 남재준 원장이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사건을 계기로 퇴임한다. 물론 그 직전에 터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의 여파로 이미 퇴진 압력을 받고 있던 남재준 원장이었다. 그가 2014년 5월 22일에 퇴임하였는데, 그가 재임하던 2014년 4월까지 매달 5천만원 씩 상납되었으니, 남재준 원장 시절에 상납된 돈이 6억 원이나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상납은 멈추지 않는다.
 
탄핵 앞둔 청와대, 정문 앞은 한산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오전 청와대 정문 앞은 주변과 달리 평소와 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며 청와대 주변 도로에는 경찰 병력과 차벽이 줄 지어 대기하고 있다.
▲ 2017년 3월, 탄핵 앞둔 청와대 지난 2017년 3월 9일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청와대 정문 앞은 주변과 달리 평소와 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며 청와대 주변 도로에는 경찰 병력과 차벽이 줄 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 주변은 국정원장들이 박근혜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할 때 접촉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 이희훈
 
박근혜에게 가는 돈은 2배가 되고

이병기 국정원장은 남재준 원장의 후임자로 2014년 7월에 취임한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이헌수 기조실장한테서 다음과 같이 보고받았다.
 
"전임 남재준 원장 때부터 특별사업비 중에서 매달  5천만 원씩을 청와대에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병기 원장은 2배 증액한 1억 원을 대통령에게 보내라고 지시한다. 2014년 7월 18일경의 지시다. 남재준 원장 퇴임 후 자신이 취임할 때까지의 공백 기간이었던 2014년 5월과 6월에는 5천만 원을 상납하지 못했다. 이병기 원장은 이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 달치 5천만 원에 더해 두 달치 1억 원을 보내라고 이 실장에게 지시하였다.

하지만 7월 이후에도 매달 청와대에 보내는 상납금은 1억 원을 유지했다. 7월 이후에도 왜 1억 원이었을까? 그건 박근혜의 측근 정치인이자 '친박근혜계(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요구 때문이었다. 국정원장에 취임한 7월에 이병기 원장이 최경환 장관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한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청와대가 어려우니 제공하는 돈을 늘려주라고 말한다. 이 원장은 이를 자신의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래서 8월부터도 계속 1억 원을 보내게 되었다고 이 원장은 재판에서 진술하였다.

전임 남재준 국정원장 시절과 달라진 점은 또 하나 있다. 이병기 원장 시절에 돈을 전달하는 역할은 이헌수 기조실장으로 바뀐다. 이 실장은 이병기 원장의 지시를 받은 직후 기조실 소속의 예산관에게 현금 1억 원을 준비하라고 하고, 그로부터 5천만 원짜리 돈다발 묶음 2개를 받는다. 이 실장은 그 돈다발을 넣은 서류가방을 가지고 청와대 근처로 간다. 그러면 안봉근 비서관이 청와대 인근 연무관 옆 골목길로 차를 끌고 나온 뒤 그 곳에서 이 실장을 차에 태운다.

안 비서관의 차에 탄 후에 이 실장이 곧바로 돈가방을 주고 두 사람이 헤어지지도, 또는 안 비서관이 이 실장을 태우고 청와대 경내로 바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연무관 주변을 한 바퀴 돌거나 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인 것처럼 위장한다. 차에 탄 채 청와대 주변을 배회한 뒤에 이 실장은 돈 가방을 차의 조수석에 두고 내린다. 그러면 안 비서관이 돈가방만 가지고 유유히 청와대로 다시 들어간다.

돈가방을 받아온 안 비서관은 다시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달하고, 이 비서관은 다시 박근혜에게 전달한다. 2014년 7월부터 매달 이 방법이 반복된다. 이런 식으로 이병기 원장이 퇴임하는 2015년 2월까지 8개월 동안 매달 1억 원씩 모두 8억 원의 국정원장 특별사업비가 박근혜의 관저 속 금고로 들어갔다.

명절에는 좀더 상납하고 싶었던 이병호 국정원장

이병기 원장도 2015년 2월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으로 이병호 원장이 2015년 3월에 취임한다. 원장은 바뀌지만,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몫의 국정원 예산이 청와대에 제공되는 것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2015년 3월 중순 이헌수 기조실장은 이병호 신임 원장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이 원장은 계속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다.

돈 가방을 준비하여 청와대에 전달하고 또 전달받는 과정에도 변함이 없다. 이병기 전임 원장 시절의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다. 돈을 전달하고 받는 역할을 맡은 이들도 이헌수 실장과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으로 똑같다.

그렇다고 모든 게 똑같지는 않고 한 가지 바뀐 게 있다. 이병호 원장은 전임 남재준이나 이병기 원장 때는 없었던 '명절 상납'을 추가했다. 이병호 원장은 매달 정기적 상납 외에 명절에는 1억 원을 더 상납하게 했다. 2015년 3월에 취임한 그는 2015년 9월의 추석과 2016년 1월 설 명절을 맞아 상납금을 각 1억 원씩 더 보낸다.

이렇게 세심히 챙기는 것은 박근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초에 내렸던 상납 지시 한 번으로도 국정원에서 차곡차곡 돈을 매달 보내왔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2016년 5월에 이병호 원장에게 전화로 또 한 번 말한다.
 
"그간 국정원에서 지원한 자금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 계속 지원해 주세요".

돈을 꾸준히 받는 도중에도 계속 돈을 보내라고 지시하는 지나친 세심함이 돋보인다.

최순실게이트로 멈춰버린 상납, 스스로 재개한 국정원장

2016년 7월 말에서 8월 사이에 안봉근 비서관이 국정원에 돈을 보내지 말라고 한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이헌수 기조실장이었다. 박근혜 탄핵 사태를 촉발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이 된 TV조선의 첫 보도가 7월에 나왔다. 아직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본 이 실장은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로 지원된다는 것까지 알려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중단하면 안 되겠느냐고 안봉근에게 물어본다. 안봉근이 이런 우려를 박근혜에게 보고하는데, 안 비서관은 중단하라는 박근혜의 지시를 이 실장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2016년 8월치 상납금은 청와대에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달인 9월 박근혜는 다시 국정원의 돈을 받는다. 청와대가 다시 돈을 보내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한 달치 돈을 보내지 않았던 국정원 스스로 나선 일이다. 2016년 추석을 앞둔 8월 하순, 이 실장은 안 비서관에게 요즘 청와대는 어떻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안 비서관이 대통령이 금전적으로 어렵다, 명절에 격려금이나 금일봉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답한다.

이 실장이 이 말을 이병호 원장에게 보고하자, 이병호는 "그 전에 드리는 것보다 조금 더 드려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이 실장은 기조실의 예산관으로 하여금 2억 원을 현금으로 준비하게 한 뒤 이를 가방에 담은 뒤 과거와 동일하게 청와대 인근 연무관 옆 골목길로 간다.

돈가방을 받으러 나온 이는 안봉근 비서관이 아니었다. 이 실장은 박근혜의 측근 비서관 3인방 중 또 다른 1명인 정호성 비서관을 만난다. 안 비서관이 사전에 이 실장에게 "2억 원은 대통령에게 직접 올려드리는 돈이니, 전달 방법은 정호성 비서관과 상의하라"는 취지로 말했고, 정호성 비서관에게도 "이 실장과 연락해서 이번에 한 번 돈을 받아 대통령께 올려드려 달라"고 이미 부탁했기 때문이다.

돈 가방을 받은 정 비서관은 "국정원에서 추석 때 쓰시라고 좀 보내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박근혜에게 직접 돈 가방을 전달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병호 원장 재임 기간동안 박근혜에게 상납된 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첫 보도가 나오기 전인 2016년 7월까지 17개월 동안 보낸 19억 원과 2016년 9월 추석 명절에 맞춰 보낸 2억 원이었다. 모두 21억 원이었다. 만약 최순실게이트가 2016년 9월 말에 폭발하지 않았다면 돈의 규모는 더 늘었을 것이다.

박근혜에게 건넨 돈은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16일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이병호 (왼쪽부터), 이병기 전 국정원장 (지난 11월13일 검찰 출석 당시 사진)
▲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왼쪽부터)
ⓒ 최윤석

남재준 원장 시절부터 이병기 원장을 거쳐 이병호 원장 때까지 박근혜가 상납받은 국정원 예산은 모두 35억 원이다. 이 돈은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로 배정된 돈이었다. 이 돈은 예산명세서상에는 '특수공작사업비'라는 별도 항목으로 편성되는데, 연간 40억 원이 배정되고 있었다.

이 돈의 불출 및 집행절차는 이렇다. 국정원장이 기획조정실장에게 불출을 지시한다. 그러면 기조실장은 기획조정실 소속 예산관에게 지출결의서 작성을 지시한다. 예산관이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기조실장이 결재를 하고, 다시 예산관은 지출결의서에 적힌 금액만큼을 국고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한다.

그 뒤 기조실장은 국정원장에게 불출 금액을 보고하고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그 돈을 쓴다. 통상적으로는 국정원장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기조실장이 매달 반복적으로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국고 계좌에서 인출해 원장에게 전달하거나 국정원 사무실의 금고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쓴다.

이런 특별사업비의 실제 사용처는 국정원장만이 알고 있거나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은 극소수의 국정원 직원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국정원 예산에 관한 회계 검사는 국정원장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므로 이 돈에 대해 외부인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같은 범행이 3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다.

혼자만 받는 게 미안했을까

그런데 박근혜는 혼자서만 돈을 받는 게 미안했는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돈을 보내주라고 국정원에 지시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경, 박근혜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매월 5천만 원 정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원종이었다.

매달 박근혜에게 1억 원씩을 상납하고 있던 이병호 원장은 이헌수 기조실장에게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에서 돈을 빼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도 주라고 지시한다.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돈을 직접 전달한 사람은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아무개였다. 박 아무개 비서실장은 2016년 6월부터 8월까지 3번에 걸쳐 서류봉투에 돈을 담아, 이원종 실장의 수행비서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 경내로 들어와 이원종 실장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이원종 비서실장은 직접 5천만 원이 든 서류봉투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3차례에 걸쳐 현금 5천만 원씩 모두 1억5천만 원을 받았다. 이병호 원장한테서 '다섯개쯤 보내주겠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 이원종 실장은 처음에는 5백만 원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실제 받은 돈이 5천만 원이어서 박근혜에게 질문까지 하였다.

박근혜는 '내가 국정원에 요청한 것이니 쓰라'고 하고 '비서실 운영비로 쓰면 된다'고 이 실장에게 말하였다. 이원종 실장은 이 돈을 수행비서의 의견에 따라 비서실장 집무실이 아니라 비서실장 관저 금고에 보관하다가 소속 직원 등의 격려금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재판에서 주장하였다.

3개로 나뉘어 진행된 재판의 결과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국정원장,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청와대 비서관 등 모두 9명이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피고인별로 따로 이루어졌다. 돈을 받은 박근혜는 이 범행만으로 단독 기소되어 혼자 재판을 받았다(박근혜 재판). 돈을 제공한 측인 국정원쪽 피고인들 네 명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함께 기소되어 재판(국정원장 등 재판)을 받았다. 박근혜와 국정원 사이에 중개역할을 한 이재만 비서관 등 박근혜 측근 3인방들도 따로 기소되어 재판(이재만 비서관 등 재판)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2심까지는 3곳의 재판부에서 제각각 진행되다보니, 법률 적용면에서 차이가 발생하였다.

국정원장을 국고 손실죄의 적용 대상인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처벌이 조금 달라졌다. 박근혜 재판의 2심 재판부와 국정원장 등 재판의 2심 재판부는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회계관계직원'이지만 국정원장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정원 기조실장인 이헌수가 관여한 행위에 대해서만 국고 손실죄나 공범죄가 적용될 수 있고, 이 실장이 관여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횡령죄나 횡령죄 공범으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다.

또 박근혜가 따로 지시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2016년 9월에 이병호 국정원장의 지시로 이헌수 실장이 박근혜에게 준 2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도 재판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뇌물죄가 적용되지 않으면 국고 손실죄나 횡령죄로만 처벌된다.

2019년 7월까지 진행된 이들 피고인들에 대한 2심 판결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는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 원을 선고받았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 받은 돈 6억 원에 대해 횡령죄 공범으로, 이병기 원장 시절과 이병호 원장 시절에 받은 8억과 19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또 이원종 실장이 받은 1억 5천만 원에 대해서도 국고 손실죄 공범이 인정되었다. 다만 이병호 원장으로부터 2016년 9월에 받은 2억 원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 돈은 박근혜가 요구한 적이 없는 돈이었기 때문에 박근혜에게 책임을 함께 물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 받은 돈과 후임 원장 시절에 받은 돈에 대해 다른 죄명이 적용된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남재준 원장 시절 범행에는 이헌수 기조실장이 직접 가담하지 않아서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2심 재판부들의 이유였다. 다만 국고 손실죄보다 형량이 조금 낮은 횡령죄는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재준 원장 역시 횡령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현대차그룹을 압박하여 재향경우회에 특혜를 제공한 범죄와 합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병기 국정원장은 남 원장과 달리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말한 대로 회계관계직원의 지위를 가진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횡령죄보다 형량이 높은 국고 손실죄 공범이 되었다. 그 역시 최경환 부총리 등에게 1억 3천200만 원을 제공한 범죄와 합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후임자였던 이병호 국정원장의 경우에는 박근혜에게 21억 원을 제공한 것은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1억 5천만 원을 제공한 것은 업무상 횡령죄로 처벌되었다. 이원종 실장에게 돈을 전달하는데는 회계관계직원인 이헌수 실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법률이 적용되었다. 그 역시 청와대의 2016년 총선 관련 여론조사비용 5억 원 대납 사건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과 자격정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헌수 기조실장도 당연히 처벌받았다. 남재준 원장 시절 박근혜에게 보낸 6억 원 중 4억 원에 대해 업무상 횡령 방조죄가 적용되었다. 이병기 원장 시절 8억 원과 이병호 원장 시절 21억 원 제공에 대해서는 국고 손실죄로 처벌되었다. 이 실장 역시 다른 범죄들(재향경우회 특혜 제공과 안봉근 비서관에게 뇌물제공)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장도 회계관계직원으로 보아 더 높게 처벌된 측근 3인방

돈을 전달받는 역할을 하였던 박근혜의 측근 3인방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이들에 대해 재판을 한 법원은 국정원장도 회계관계직원으로 판단하여, 박근혜 재판과 국정원장 및 이헌수에 대한 재판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또 이병호 원장 시절인 2016년 9월에 제공한 2억 원도 뇌물로 보았다.

이재만 비서관은 남재준 재임 시절 5억 원과, 이병기 재임 시절의 8억 원, 이병호 재임 시절 19억 원, 총 32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다른 범죄사실(국정조사 증인 불출석 사건)과 합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 비서관의 경우에 남재준 시절 박근혜가 받은 6억 원 중 1억 원은 제외되었다. 이것은 처음 두 달동안에는 그가 전달한 봉투에 돈이 들어있었는지 몰랐다고 한 이재만 비서관의 말을 재판부가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안봉근 비서관의 경우에는, 남재준 원장 시절 6억 원, 이병기 원장 시절 8억 원, 이병호 원장 시절 19억 원, 총 33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 방조죄로, 이병호 원장 시절인 2016년 9월 2억 원을 추가로 전달한 것에 대해 뇌물수수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안 비서관도 다른 범죄들(이헌수 실장으로부터 뇌물 수수 및 국정조사 불출석)과 함께 징역 2년 6월과 벌금 1억 원, 추징금 13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병호 원장 시절 받은 돈 중 2억 원에 대해 다른 재판부들과 달리 뇌물죄로 처벌받았다.

끝으로 정호성 비서관도 이병호 원장 시절 2016년 9월에 전달된 2억 원에 대해 뇌물수수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 원이었다.

한편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이 그를 뇌물 수수죄로 기소하였지만, 법원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로 받았고 직무성 대가를 바라고 주고 받은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준 이병호 원장이나 돈을 주라고 요구한 박근혜 모두 횡령죄로 처벌되었다.

국정원장을 법적으로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것인가와 이병호 원장 시절에 보낸 돈 중에 2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는가 여부는 이제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에 따라 재판은 좀더 길어질 수도 있고, 처벌 형량도 바뀔 수 있다.

이 사건들에 대해 법원에서 인정한 범죄사실과 법률 적용 등을 자세히 알고자 하면, 이 재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된다.

박근혜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8고합20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2150 사건이다.
남재준과 이병기, 이병호 국정원장, 이헌수 기조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233, 2018고합118(병합)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1729 사건이다.
이재만과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173, 1247(병합), 2018고합43(병합)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2073 사건이다.

김정은 "미사일 발사는 남한에 경고 보낸 무력시위"

폼페이오 "북한 미사일 발사는 협상용…실무협상 희망"
2019.07.26 09:00:55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은 남한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26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실시된 미사일 발사를 지도했다며 이번 미사일 발사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남조선(남한) 지역에 첨단 공격형무기들을 반입하고 군사연습을 강행하려고 열을 올리고 있는 남조선 군부 호전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반입과 합동 군사 연습강 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최근 남조선 군부 호전세력들이 저들의 명줄을 걸고 필사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최신 무장 장비들은 감출 수 없는 공격형 무기들이며 그 목적자체도 변명할 여지없고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국가 안전에 무시할 수 없는 위협으로 되는 그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초기에 무력화시켜 쓰다 버린 파철로 만들기 위한 위력한 물리적 수단의 부단한 개발과 실전 배비를 위한 시험들은 우리 국가의 안전보장에 있어서 급선무적인 필수사업"이라며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우리는 부득불 남쪽에 존재하는 우리 국가안전의 잠재적, 직접적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한 초강력 무기체계들을 줄기차게 개발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문재인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남조선 당국자'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남조선 당국자가 사태발전전망의 위험성을 제 때에 깨닫고 최신무기 반입이나 군사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 시위 사격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아무리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이처럼 남한의 무기 도입과 훈련 등을 직접 거론하며 탄도 미사일 발사 시험까지 벌인 이상, 미국이나 남한에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없다면 북한이 북미 및 남북 간 대화 테이블에 먼저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남한 내 무기 도입을 향후 북미 또는 남북 간 대화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TV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북한과) 외교적인 방식과 협상을 통한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여전히 협상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 시험이 탄도 미사일 기술 이용을 금지하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에 위반되는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폼페이오 장관은 "협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모두가 지렛대를 만들고 상대에 위험이 될만한 요소를 만들려고 한다"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인 지난 22일(현지 시각) 아이하트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밝혔던 대로 "수주 이내에 협상이 재개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을 통해 여전히 북한과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국무부를 통해서는 더 이상의 군사적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더 이상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없기를 촉구한다"며 "모든 당사자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를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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