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4일 목요일

'붉은 수돗물'이 노후 관로 탓? 국민을 속이지 마라

19.07.05 07:30l최종 업데이트 19.07.05 07:30l







참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의 물 관련 정보들에는 터무니없는 오류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은 UN이 정한 물부족 국가다'라거나, '한국인들은 물을 물 쓰듯 한다'거나, '한국의 물 값이 지나치게 싸다'거나 하는 따위다.

조금만 자료를 찾거나 비교해도 쉽게 드러날 거짓말을 일부 국민은 상식이라고 알고 있다. 정부와 언론,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주입해온 결과다. 국민 탓만 하는 이들 논리가 횡행하니 정부는 가뭄이 들어도, 수질이 나빠도, 홍수가 나도 기승전 '시설투자'로 일관해 왔다. 

물 정책에는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환경부가 생긴 이후 25년간 환경부 예산의 2/3가 물 분야였을 정도다. 하지만 그 기간 강의 수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댐, 제방, 정수장, 상하수 관로의 규모는 세계적인 성취를 이뤘는데 수돗물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물 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그런데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또다시 잘못된 방향이 등장하려고 한다. '노후관로 탓'이다. '녹물 수돗물의 원인이 노후 관로 탓이고 대책은 노후 관로 교체다'라는 주장이다. 국가가 노후 관로 교체를 외면해 왔던 것이 문제고, 노후 관로만 아니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기사들이다.

가뭄이 들어도, 수질이 나빠도, 기승전 '시설투자'
 
 6월 27일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유출부에서 채수 한 수돗물에 대한 탁도 및 잔류염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6월 27일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아파트 유출부에서 채수 한 수돗물에 대한 탁도 및 잔류염소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 인천시

하지만 살펴보자. 인천 서구의 녹물이, 서울 문래동의 녹물이, 노후 관로 탓인가? 사고가 난 인천 서구는 겨우 20년 된 신도시다. 서울의 문래동도 공급받는 수도 관로는 2005년에 설치된 것이다. 문래동 관로에 유입되기 전 단계 관로가 오래됐으나, 그 노후 관로를 통해 수돗물을 공급받은 지역 중 일부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노후 관로 탓일까? 

인천의 녹물 발생에 대해서는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6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정확히 밝힌 바 있다.
 
"수계 전환 전  10시간 정도 (준비 시간이) 걸리는데, 10분 만에 밸브를 열어 압력을 2배까지 올리고 2~3시간 만에 물을 다른 방향으로 보냈다. 탁도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 부유 물질을 빼내는 것도 대응 가능한데, 그 모든 것을 다 놓쳤다. 100% 인재라고 본다." 

대단한 원인이 있었던 게 아니라, 수계(수돗물 공급체계) 전환 과정에서 업무를 엉망으로 했다는 뜻이다. 특히 열흘 동안 아무런 수습도 못한 채, 시민들에게 수돗물이 기준을 충족한다고 거짓말을 한 게 본질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민원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이리저리 돌리며 책임을 떠넘긴 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인천 사고 후 20일 만에 발생한 서울 문래동 녹물 사태 대응이 전혀 진화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깝다. 성급하게 수돗물의 수질이 안정화 됐다고 주장하고, 노후 관로 개선을 위해 727억 원을 추경으로 편성하고 올 해 내에 시작하겠다고 한 것도 스텝을 꼬이게 했다. 사실이 아니거나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서울시 문래동의 녹물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수질 측정치는 들쭉날쭉한다. 그런데 노후 관로가 문제라고 발표했으니 다른 이유를 찾는 것도 이상하고 다른 대책을 앞세울 수도 없게 됐다.

서울시는 아직도 문래동 일대의 수질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대책회의에 주민들을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이는 정보를 공개할 만큼 자신이 없는 상태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많은 탓일 테다. 하지만 이렇게 감추고 숨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서울시도 그렇고 인천시도 그렇고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아직도 생수로 음식을 하고 수돗물의 탁도를 시시각각 확인해야 하는 불편 속에서 살고 있다. 그제도 인천 서구 곳곳에서 녹물이 나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사고 때 발생한 노폐물들이 수도 관로 속에 가득한 상태에서 이를 제거하지 못한 탓이다.

평소 수도관 관리 할 인력이 없는 게 문제

소화전이나 가정의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빼내고 있지만, 이들은 관로 속의 녹물 배제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아니다. 의당 수도 관로라면 있어야 할 이토(泥土, 빛깔이 붉고 차진 흙) 밸브가 없는 탓이다. 이들을 설치하지도 않았고, 이를 운영해본 경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예 관로의 세척이나 청소를 위한 계획이 없었으며, 설혹 이토 밸브를 설치하더라도 이를 개방했을 경우 나오는 물과 배제된 용수를 받아 낼 하수 관로를 어떻게 운영할지 모르고 있다.

20년 된 인천 서구 관로나 14년 된 문래동 관로나 단 한 번 세척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사고를 낸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녹물은 또 나오게 되어 있다. 평소 관로 관리를 해서 노폐물을 제거하고, 이 업무를 무리없이 할 수 있도록 관리 인력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23일 서구 공촌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정상화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박남춘 인천시장이 6월 23일 서구 공촌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 정상화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인천시

환경부는 인천 사고 10일이 지날 때까지 현장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보름이 지난 서울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태 파악에 나서지도 않았다. 수십 만의 시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개입하지 못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는 환경부가 과연 인천시를 질책할 자격이 있는 걸까?

환경부의 이런 무기력과 무능은 지난 10년 이상 수돗물 정책을 포기하다시피한 관행의 결과다. 올 초까지 있었던 수도정책과의 주요 업무는 대구의 물산업클러스터(물산업공단) 조성이 주축이었고, 생수와 정수기 산업 육성 등이 또 주요 업무였다. 이렇게 수돗물 정책이 변방이다 보니, 지금 물이용계획과에는 수도 업무에 능통한, 아니 2년 이상 근무 경력이 있는 관료들을 찾아볼 수 없는 정도가 됐다.

필자가 노후 관로 교체 주장을 거칠게 비판한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대책 마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수도 관로는 무려 20만 9000km이고, 20년이 넘은 관로는 6만 8000km에 달한다. 이를 교체하려면 수십 조의 예산이 들 뿐더러 공사하면서 겪는 불편 등을 감안할 경우 이걸 실제로 진행한다면 대규모 재앙에 해당될 것이다. 단순히 재정 뿐만아니라 시민 생활에 혼란을 일으키기에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도관로의 대규모 교체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으며 결국 수돗물 불신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어려운 원인과 대책 때문이었다면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책임을 덜어주게 될 것이다.

노후 관로를 교체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와 노후 관로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논점을 이탈하지 말자는 것이다. 노후 관로라는 개념이 어디 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은 40년, 미국은 75년, 영국·캐나다는 100년을 쓰는데, 한국에선 20년 이상 쓰고 있어서 문제라는 건 과잉이다. 특히 수돗물을 처음 만들어 쓴 로마의 관로는 2000년이 된 것도 있고, 로마시대에 만든 수도꼭지 중 960개는 아직도 사용 중이다.

서울시까지 엉뚱한 길로 들어서... 환경부라도 제 역할 찾기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21일 새벽 '붉은 수돗물'이 나온 영등포구 문래동을 긴급 방문해 관계자에게 철저한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21일 새벽 "붉은 수돗물"이 나온 영등포구 문래동을 긴급 방문해 관계자에게 철저한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수돗물 정책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조금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첨단기술이거나 심각하게 복잡한 산업이 아니다. 전문가들이나 정부가 독점할 일이 아닌데도 자기들끼리 속닥여가면서 성급히 대책을 내놓는다. 이는 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차분히 진단하고, 국민의 도움을 얻어가며 풀어야지, 갑자기 무슨 비법이나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사고는 관리 인력의 역량 부족이 발단이고, 사태 처리 능력의 부재가 일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시설이 아니고 돈도 아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체계를 정비하지 못했으며, 시민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쳐 온 것이 문제다.

논리적으로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책을 세우자.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속에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관리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관리 매뉴얼을 정비하며, 시민과의 소통체계를 개량하자. 그리고 관로와 정수장 등의 문제까지 살펴보자.

서울시까지 엉뚱한 길로 들어선 지금 환경부라도 제 역할을 찾기를 바란다.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서울과 인천과 같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수십년간 비뚤어진 수도 정책을 다시 세우기 위해 너무 성급하게 진단하고 대책을 내놓는 일을 참자. 진지하게 논의하고 책임 있게 대책을 낼 정부 기구를 구성해 운영했으면 한다. 그리고 노후 관로 교체만 강조하고픈 이들은 빠져주셨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염형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수돗물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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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삭감안에 쏟아지는 맹비난

[7월4일] 노동동향브리핑
▲ 사진 : 뉴시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노동자위원들이 내년 최저임금 1만원을 제시한데 반해 사용자위원들은 지난 3일 8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올해보다 4.2% 삭감한 8,000원으로 제시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먼저 민주노총은 사용자위원들을 향해 “인면수심 그 자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노총은 3일 논평에서 “최저임금을 8천원으로 낮추자는 망언을 하려거든 재벌 곳간에 쌓여있는 1천조 사내유보금을 사회에 내놓겠다는 약속을 먼저 해야 한다. 수백억 연봉을 받는 재벌 총수의 셀프임금을 삭감하겠다는 선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곤 “최저임금을 깎자는 주장은 재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원하청 불공정거래 등 반민주 경제종속체제와 재벌 경영으로 나타나는 경제실패를 저임금 노동자에게 전가하겠다는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숙식제공을 포함한 현물급여를 최저임금에 산입하자는 사용자위원들의 주장에 대해선 “이중차별 여부를 떠나 극우 파시스트나 할 법한 발상”이라고 질타했다.
○ 최저임금연대도 4일 입장문을 통해 “사용자위원들은 한국 경제상황이 어려우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임대료, 가맹본부의 착취, 불공정한 카드수수료 등이 근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최저임금연대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소상공인 500개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소상공인 경영실태 및 정책과제 조사」 결과(2019.5.6.)를 근거로, “경영수지 악화의 원인은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판매부진(83.5%), 제품, 재료비 원가 상승(27.8%) 동일업종 소상공인간 경쟁 심화(27.3%), 인건비 증가(22.3%) 순이었다”고 알리곤 “최임위는 경제위기를 핑계로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태롭게 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550만 최저임금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에 적정한 임금수준이 얼마인지 논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은 4일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 삭감안은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저소득, 비정규 노동자들을 우롱한 것”, “적정한 최저임금의 수준과 을과 을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기에 삭감안을 제시한 사용자위원들은 ‘저소득 노동자의 보호’라는 최저임금의 제도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하곤 “이런 발상을 즉각 멈추고 시대정신에 맞는 상식선의 최저임금 안을 들고 협상장에 나오라”고 촉구했다.
○ 노동자위원들은 또 “기획재정부가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을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기획재정부(기재부)와 관계부처가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을 발표하며 ‘보완할 경제 과제’ 중 하나로 사용자단체가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요구해온 “경제·고용 영향, 부담능력, 시장 수용성 등을 고려”하고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되도록 적극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 것에 대해 노동자위원들은 “올초 최저임금의 근본취지를 벗어난 ‘기업의 지불능력’, ‘경제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결정기준 개편안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노동계의 반대와 사회적 비판에 부딪히며 입법에 실패한 것을 또다시 들고나오는 것은 연초 공익위원 전원사퇴라는 파행에 이어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을 ‘일회용’으로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이어 “최임위 심의 논의가 한창인 와중에 기재부가 주도해 현행 법적 기준을 무시하고 사용자의 입장만을 대변한 것은 결코 용납될수 없다”면서 “최임위에서 최임제도의 근본취지인 저임금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상생의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기재부는 외부에서의 어떠한 개입도 중단하고 자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식 위원장은 노사 양측에 오는 9일 열리는 전원회의에 수정안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
☞ 최저임금 관련 논평·성명 전문 보기 : https://drive.google.com/file/d/1d60i_XXbfHAZQ35oyuQpIje_bkNrG4Ul/view?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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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적폐 청산의 시작은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

김현미 장관께 충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철도 적폐 청산의 시작은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



나는 순진했다. 탄핵정국이 끝나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을 때 편의점으로 달려가 맥주를 사서 축배도 들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에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각하자 더 희망에 부풀었다. 386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는 없었지만 오영식 전 민주당 의원이 코레일 사장으로 취임하고 철도 공공성,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의 통합을 이야기하자 한국철도의 미래가 낙관적으로 보였다. 더구나 남북 정상이 만나고 합의문 한 가운데 남북철도 연결 사업을 추진하자고 할 때에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김현미 장관의 강단과 능력, 의지를 볼 때 관료들의 포위망을 제대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 착각이었다. 한국철도의 희망은커녕 더 확장된 관료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철도의 현실에 자괴감만 쌓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4대강 사업으로 임기 내내 건설사들은 주머니를 두둑이 챙겼다. 강물은 온통 녹조류로 덮여 썩고 있는 동안 그나마 혜택을 본 것은 철도다. 이 전 대통령 취임 초기 철도민영화를 언급했으나 4대강 사업에 매진하느라 수서고속철도 민영화는 레임덕에 빠진 임기 말에 추진됐기 때문이다. 결국 수서 발 고속철도 민영화는 불발되었다. 그러나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권이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출범을 이뤄냈다.

두 정권이 '철도 개혁'이란 이름 아래 추진한 정책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국토부 관료들은 수서고속철도 출범으로 한국철도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역에서는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여수, 순천, 창원, 마산, 진주, 포항, 전주 같은 도시에서는 도약했다는 철도가 왜 수서까지 직통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촛불정신을 계승한 개혁 정권으로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국토부는 철도에까지 미쳐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집권 초기 전격적으로 진행될 것 같던 철도 개혁은 관료들의 벽에 부딪혔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철도정책을 추진했던 관료들이 하루아침에 자신들이 집행한 철도 정책을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장관의 결단과 추진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집권 초 폭등하는 아파트 값을 잡지 못해 허둥지둥하더니 개혁정부가 집값만 올려놨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에 변명도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되었다.

나는 진즉에 서울 시민들의 소박한 바람인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겠다는 꿈을 버렸다. 내가 사는 구의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 값은 10억이 훌쩍 넘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폭등한 결과였다. '노동귀족'으로 불리는 나 같은 사람도 지난 20년간 받은 임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렇게 노동을 배신하는 정책이 재테크란 이름으로 진행되도록 놔둔 책임을 정치인이 지지 않으면 누가 져야 할 것인가? 더구나 학업도 취업도 어려운 230대 젊은이들에게 현재의 부동산 가격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다. 이런 현실에서 꿈을 갖거나 도전을 하라거나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은 성안에 똬리를 튼 자들의 기만적 언사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관료들은 자신감을 갖고 역공을 펼쳤다. 철도 개혁을 위한 연구 용역을 중단시키더니 아예 사장시켜 버렸다. 한국철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네트워크 산업인 철도에 가장 적합한 체제인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여부에 대한 연구가 좌초된 것이다. 국토부 관료들은 장관도 통합에 대한 문제 의식이 바뀌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관료들에 둘러싸여 통계수치와 그동안 정립된 논리들을 들으면 장관 입장에서도 그럴듯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장관이 철도 통합을 주장하는 전문가나 시민사회단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부동산도 철도정책도 김현미 장관체제에서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현미 장관에게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수도권 광역 고속 철도인 GTX 기공식을 자신의 치적처럼 선전하는 모양새로 만든 것이다. 수도권 이동을 수월하게 하는 광역고속철도망은 그 효용성 때문에 철도 중심 교통체제로의 전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추진 방식이다. 민자 사업으로 추진되는 GTX는 결국 대기업의 수익보장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지하철 9호선부터 신분당선까지 민자 철도 사업이 일으킨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이용 시민들의 몫이었다.

민자 사업으로 진행되는 GTX는 사업자들이 높은 이용요금을 책정할 논리와 여지가 충분하다. 고속열차로 빠른 이동시간을 보장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수도권 광역 교통체계 요금을 훨씬 초과하는 요금을 책정할 것이다. 정부는 가능하면 GTX 사업을 재정사업으로 돌리거나 최소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를 내걸어 기업들과의 실시 협약 단계에서부터 시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장관이나 정책부서의 할 일은 자신의 정치적 치적거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 스펙으로 쌓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에 이익이 가는 정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실천하는 호민관의 모습이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정신이다.

김현미 장관은 총선 출마설도 있고 총리 기용설도 있다. 정치권이나 일부 시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소한 국토부 장관으로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소신과 비전을 가진 정치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김현미 장관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정치인의 이미지와 철학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토부는 마음 떠난 장관 눈치 안보고 마음 놓고 자신들의 기존 정책을 추진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것이 단지 소문이길 바란다. 김현미 장관에게 충심으로 부탁한다.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을 위한 정책을 고민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최소한 철도 정책만큼은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추진된 적폐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의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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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수소제조기, "당뇨병 및 피부미용에 효과"

휴대용 수소제조기, "당뇨병 및 피부미용에 효과"
박한균 기자 
기사입력: 2019/07/05 [11: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개발한 수소제조기.     

▲ 북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개발한 수소제조기.     

▲ 북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개발한 수소제조기.     







북 주민들이 지난해 개발한 수소제조기를 이용해 만든 수소수를 꾸준히 마시고 난 후 건강이 좋아지고 피부미용에도 효과를 보았다고 북 매체 ‘서광’이 소개했다.

수소제조기를 이용한 한 남성은 “나는 당뇨병으로 오래 앓으면서 여러 가지 약을 써 보았지만 잘 낫지 않았다. 수소제조기로 수소수를 정상적으로 마셨더니 아무런 불편 없이 장외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피부미용에 효과를 본 한 여성은 “수소수제조기로 수소수를 만들어 마시고 세면도 해보았는데 피부의 탄성과 광택이 좋아져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4월 북 매체 ‘조선의 오늘’은 “공화국의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과학부에서 우리 식의 성능 높은 휴대용수소수제조기를 연구 개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매체는 “수소수란 먹는 물에 수소를 분자상태로 용해시킨 물을 말한다. 수소수속에 포함되어 있는 분자수소는 비타민C, E를 비롯한 천연항산화제들과 달리 반응성이 센 유해로운 활성산소들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며 부작용이 없고 침투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활성산소들과 반응한 다음 물로 되어 배설되기 때문에 축적성과 잔류독성이 전혀 없는 가장 안전하고 이상적인 천연항산화제로 공인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수소수를 매일 1. 5~2L정도씩 정상적으로 마시면 심장혈관계통 질병, 소화기 및 비뇨기질병, 변비와 부인병, 당뇨병, 암을 비롯한 각종 병의 예방과 치료에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북에서는 휴대용 수소제조기로 만든 수소수를 과일, 야채를 씻는데 사용하고 화분물주기, 밥짓기 등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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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기고> 전재진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대표
전재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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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4  1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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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4년 동안 풍화될 위기에 놓여있던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김진홍 감독이 다큐영화를 제작하여 8월에 개봉한다 하니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는 다음과 같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 국민관람에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필자 주

①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 지금까지 베일에 싸인 이유
  
▲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위한 상징물. [자료사진 - 통일뉴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은 2차세계대전 전쟁총지휘본부인 대본영의 전쟁지휘·지도자 히로히토를 살려야 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연합국가들의 조사관이 일왕 히로히토의 전쟁범죄를 조사하여 제소하려 한 일제관동군731부대 인간생체실험, 난징대학살, 일본군 세계여성성폭행범죄, 조선인강제징용·강제노동, 아시아를 대규모로 약탈한 황금백합작전 그리고 각종 제노사이드 등의 진상조사를 미국이 직접 나서서 방해하고 차단함으로서 A급 전범자인 히로히토를 극동전범재판소에 회부하고자 하는 연합국의 주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팽창을 저지하고 일본의 민주화를 내세웠으나 비겁한 전후처리였다는 국제적 비난을 피할 수 없으며 일본제국의 천황제 유지를 인정한 미국의 행위는 지구 생성 이래 최악의 범죄였다.
우리는 여기서 1945년 5월 스위스에서 일본과 미국 사이에 전개된 화평공작이 우키시마호 폭침사건과 직접 관련됨을 알아야 한다. 당시 스위스 주재 무관 후지무라 중령과 미국 국무성의 아렌 달레스 사이에 비밀공작이 있었다.
그 비밀공작에서 미국은 일본측에 요구사항이 없었으나 일본은 미국측에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천황주권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이 섬나라이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 현재 남아 있는 상선은 그대로 일본에 남겨 둘 것을 요구했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대만과 조선을 그대로 둘 것 즉 대만과 조선은 일본인의 식량이 있는 땅이니 일본 영토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 일본에서 건너온 물건. 일본제국의 대륙침략은 멈춰진 시계가 아니다. [자료사진 - 전재진]
바로 첫 번째 요구사항인 천황제를 유지토록 하려면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리하면 안 되었다. 이렇게 일본이 항복하기 전부터 미국은 일왕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리할 방침이 아니었다.
그런데 전쟁시기가 아닌 평화시기에 대본영의 군사적 조치에 따라 대형 제노사이드인 우키시마호 폭파사건이 자행되었다. 이 초대형 제노사이드가 국제사회에 알려지면 히로히토의 방패막이가 돼야 할 미국으로서는 난감해지면서 치명타를 맞을 판국이었다.
스위스 화평공작 첫 번째 사항으로 천황제 유지 약속이행으로 히로히토를 살리려고 일제관동군731부대 인간생체실험, 난징대학살, 일본군 세계여성성폭행범죄, 조선인강제징용·강제노동, 아시아를 대규모로 약탈한 황금백합작전 그리고 각종 제노사이드 등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다.
그래서 연합국총사령부 맥아더를 이용하여 일주일만인 9월1일에 이 사건의 전말을 덮었고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은 베일에 싸여 있다.
② 시모키타반도에서는 왜 서둘러서 조선인을 내보냈나?
일본의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는 우키시마호에 승선했던 조선인들의 강제노역장이라는 점에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발상지이다. 이 시모키타반도에는 일본의 4대 군항인 오미나토해군경비부가 주둔해 있었다.
미국의 전함이 북태평양에서 동해로 진격하려면 홋카이도와 시모키타반도 사이에 있는 츠가루해협을 통과해야 했다. 이 해협의 제해·제공권 확보와 일본 북방지역의 방위를 담당한 하코다테 해군기지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려면 시모키타반도의 군사요새화는 필연적이었다.
하여 대본영은 각종 군사설공사장에서 필요한 인력으로 조선인 9천명을 투입하라는 공문을 오미나토 해군경비부에 하달했다. 이 지역에는 대본영 공문 지령 이전에 이미 강제징용된 조선인과 아베시로 광산에서 일하던 조선인을 합하면 1만5천에서 2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일본군의 억압과 핍박과 학살과 고문치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조선인이 일제 항복 후 귀국하려고 우키시마호를 타게 된다. 이 때 일본 대본영은 9월 중순부터 조선인 송환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모키타반도에서 만큼은 8월13일 조선인긴급소개 명령이 떨어졌다.
  
▲ 연합국 소련, 미국, 영국, 중국의 일본 본토 분할점령(안). [자료사진 - 전재진]
1945년 7월 26일 공포된 포츠담선언 제7항은 연합국은 일본 영토의 보장점령 즉 분할점령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렇게 영국과 중국, 소련과 미국 네 나라가 일본 본토를 분할통치하기로 돼 있었으나 영국의 처칠이 미국의 트루먼에게 “소련이 극동에서 교두보를 설치하려 한다”고 통보하자 미국은 일방적으로 분할통치를 취소했다. 그 날이 8월 13일이었다.
하지만 소련군은 사할린에서 홋카이도와 일본 본토를 향해 진격해 내려왔다. 이 때 일본 본토 아오모리현에는 강제징용과 강제노동과 고문치사 학살로 억압받아 온 조선인이 집중돼 있었다. 이들 민족성이 강한 조선인이 진격해 내려오는 소련군과 합세하면 대규모 군단을 이뤄 소련에 할당되었던 일본 본토 북방지역이 소련군에 점령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그래서 홋카이도와 마주보고 있는 시모키타반도 일대 군사시설에 투입되었던 1만여명의 조선인을 긴급 소개해야 했다. 당시 오미나토 일대로 몰려든 조선인을 소련군 스파이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조선인을 음해하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모두 유도된 음모였다. 그러면서 고향으로 보내준다며 우키시마호에 모두 태워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만에서 폭파침몰시켰다.
③ 우키시마호 침몰원인
미사와 비행장을 포함한 시모키타반도 일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조선인이 오미나토항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멀리 이와테현 채석장과 홋카이도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 조선인들은 멀리 정박해 있는 우키시마호까지 거룻배로 오가며 승선하는데 3일이 걸렸다.
일본 군부는 검은 페인트를 칠해 배의 이름을 지웠고, 기관실 옆 창고에 자폭장치를 설치했다. 해군승무원들이 승선을 거부했으나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협박하여 250명의 승무원도 탔다. 이 협박성은 조선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일부 강제승선임을 주장하게 된다.
승선을 완료한 배는 출항하지 아니하고 24시간을 해상에서 머물다가 22일밤 10시에 오미나토항을 떠났다. 무츠만을 빠져나온 배는 부산항을 향하는 직항로를 택하지 아니하고 일본 본토를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갔다.
이 때 해군 승무원들이 연료가 부족하여 보충해야 한다. 물을 실으려고 마이즈루로 들어간다고 수단을 피웠으나 모두 거짓이었다.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간 배는 마이즈루방비부의 부두 접안을 회피하고 시모사바가 해변 3백미터 전방에 멈춰섰다. 기관실 기계도 껐다.
  
▲ 무츠만을 빠져나온 배는 부산항을 향하는 직항로를 택하지 아니하고 일본 본토를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갔다. [자료 출처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 우키시마호 침몰원인. [자료 출처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곧 구명보트가 내려져 고위급 장교들이 빠져 나가자 나머지 승무원들은 마치 송사리떼처럼 헤엄쳐 모선을 빠져 나갔다. 그러자 굉장한 폭발소리와 동시에 중간 부분이 꺾이며 앞뒤가 들려 V자 형으로 가라앉았다. 선실에서는 화약냄새가 퍼졌고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이뤘다. 기관실 연료탱크가 터져 바다는 온통 중유로 덮였고 죽은 사람이 바다를 메웠다.
해군들은 구조에 나서지 않았으며 주변을 오가던 다른 배들도 사건 현장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렇게 수 천 명의 사람의 생명을 집어삼킨 마이즈루만은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침몰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닿아(촉뢰:觸雷) 침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가 기뢰성상, 생존자들의 증언, 현장정황을 분석해 본바 일본 정부의 주장은 허위일 뿐이다.
당시 미군이 부설한 기뢰는 감응기뢰로서 수압, 전파, 음향의 영향으로 폭발하게 되어있다. 앞서 기술한대로 우키시마호는 멈춰 섰기에 수압이 발생하지 아니하고 기관을 껐기에 음향과 전자파가 발생하지 아니한다. 그렇다고 기뢰가 배 밑으로 다가와 부딪쳐 폭발할 논리도 아니다. 더구나 폭발소리는 2회였고 물기둥이 없었다.
따라서 침몰원인은 대본영의 조선인 긴급소개라는 군사적 조치에 따라 오미나토 해군경비부가 주도하여 출항 이전에 기관실 옆 창고에 설치한 자폭장치가 폭발하여 침몰되었다. 미군이 부설한 기뢰에 닿은 침몰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이를 반박하려면 한국 정부와 한국의 진상규명회측에 반박자료를 제시하라. 그 증거는 74년이 지난 지금도 마이즈루만 해저에 있다. 일본 정부가 이를 인양 수습하여 그 증거로서 제시하기 바란다. 그 때 국제무대에서 혹독하게 따지겠다.
④ 사후처리의 부당성
우키시마호 침몰은 여행선 타이타닉호 침몰과는 그 정황이 질적으로 다르다. 타이타닉호는 여행객들이 타고 대서양을 건너다 빙산과 충돌하였으나 우키시마호는 일본이 일으킨 2차대전 전쟁터로 강제징용당한 조선인이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일본 대본영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부가 의도적으로 자행한 외국양민계획적대량학살(Genocide)이다.
그럼에도 2차대전 전후처리기구인 연합국총사령부에서 이 사건을 조사조차 하지 아니하고 단 일주일만에 사건의 전말을 조작•발표하고 마무리했다. 당해 12월 7일 일본 조선인연맹 아오모리지부 손일 위원장이 GHQ(연합국최고사령부)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다. GHQ 법무국 검찰과는 “사건발생 증거불충분”이라며 소를 기각했다.
마이즈루만에는 몇 명이 될지 모를 시체가 선실에 가득한 우키시마호가 마스트를 수면위로 내밀고 있었는데도 증거불충분이라며 기각한 것은 미국의 양심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대목이었다.
배를 즉시 인양하여 사망자의 신분도 확인해야 했고 부상자와 실종자도 조사해야 했으나 이런 일은 없었다. 해안가에 밀려든 시신을 굴비처럼 엮어 바닷가에 매뒀다가 타이라해병단 뒷산 골짜기로 옮겨 기름을 붓고 태워 그 자리에 매립했다. 고구마 밭에도 묻었고 인근 무인도 자연동굴에도 방치했다.
침몰한 우키시마호를 해저에 방치했다가 9년만에 인양할 때도 조일우호협회에서 유해를 원형 그대로 인양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묵살하고 다시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였다. 9년 전에 죽은 사람을 다시 다이나마이트로 산산조각 내 죽인 것이다.
그 뒤로 일본 정부는 피해자와 진상규명회가 요구하는 지료를 단 한건도 제공하지 아니했으며 피해자 원고단이 승소한 교토지방재판소 판결도 결국 오사카고등법원 항소심에서 피해자 패소로 판결했다.
이 일본 군부의 계획적 대량수장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는 74년이 지나도록 사죄도 보상도 전혀 아니했다.
⑤ 한··일 정부의 책임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의 피해에 대한 제반 법적·인도적 책임은 한·미·일 3국 정부에게 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이전 한일 수교 협상 과정에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종결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 뒤로 사건 해결에 힘쓰지 아니한 책임이 있다.
일본에 대해 “과거는 묻지 않겠다”, “일본과 외교적 마찰이 우려되는 부분은 조사하지 않는다”고 해 온 한국 정부의 자세는 자국민의 존엄과 인권을 무시한 독재적 발상에서 나온 굴욕적 소치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일본은 자국이 감행한 태평양전쟁에서 자국민이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지른 점에 수치인지 자긍인지는 몰라도 패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외에 있는 자국민의 유해를 찾는데 600억엔을 투자했고, 유해를 찾지 못하면 죽은 장소의 모래와 자갈을 파다가 전쟁인양기념관 전시실에 전시해 놓고 추모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일제에 강제연행되어 귀국 도중 억울하게 죽은 수백 수천구의 조선인 유해가 한 장소에 있는데도 발굴·수습·봉환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미국 정부도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일본도 수락한 포츠담선언을 미국이 위반했다.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에 대한 연합군국의 의사를 무시한 미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사회주의의 팽창을 막는다는 일방적인 전략으로 패전국 일본의 위신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전쟁총지휘자였던 일왕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리하지 아니하였으며, 특히 당시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이 국제문제로 확산되면 일본과 히로히토를 엄호하는데 국제사회에서 불리하게 될 것이므로 일왕 히로히토의 침략전쟁 행위 가운데 일본이 불리한 사건은 덮었고, 조사하는 것조차도 방해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나치 동맹국인 일본의 전범처리를 유기한 점과 같은 2차대전 전범인 독일에 대해서는 조사·공개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호했으며 특히 우키시마호 사건을 인지하고도 사후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연합국 대표국격으로서 인권유린에 해당되므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일본의 아시아 약탈에 대한 공식조사 역시 한 번도 없었다. 1945년 5월 스위스에서 미국과 일본이 화평공작을 전개하던 시기에 골든릴리작전이 완료되었고, 175개의 황실보물창고 건설을 담당했던 175명의 토목건축기술자 전원이 생매장되었다. 골든릴리를 진두지휘한 왕자들과 야마시타 장군은 잠수함을 타고 필리핀을 탈출하여 본국으로 귀환했다.
마닐라항에는 황금을 가득 실은 7천톤급 군함을 고의적으로 가라앉혔고 마이즈루만에도 같은 방식으로 가라앉혔다. 7천톤급 함대 몇 척 분량의 금괴가 미국으로 넘어갔는지를 추정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이 외 얼마만큼의 금괴가 미국에 제시됐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위스 화평공작에서 미국은 일본측에 요구사항이 없었던 것은 이미 뒷거래로서 황금도색시공이 끝난 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미국이 전후처리를 어떻게 했을지는 뻔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유지와 비공산화에만 열을 올린 나머지 조사를 하자는 연합국의 요구를 반대했으며, 일본에 불리한 어떤 조사도 실시되지 않도록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러므로 전범국을 비호하여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을 조사하지 못하도록 한 책임이 미국 정부에게도 주어진다. 일본 정부의 책임은 지구상에서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일본 정부에게는 원천적인 책임인 원상회복이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종결하지 아니하였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외교문제와 경제문제였지 인도에 관한 사항은 없었고 시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외국양민계획적집단학살은 국제법에 따른 인도적 책임이 있다.
일본 정부가 GHQ에 보고한 ≪今後의 日本政府의 自主的인 處理方針≫에서 《…鮮人의 편승 수송은 해군의 의무는 아니고 완전한 호의에 근거하는 것이며 아울러 조난사건은 완전히 불가항력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는 완전한 조작이므로 책임이 있다.
《便乘者의 員數에 관해 日鮮兩者의 조사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二復(후생성제2복원과)으로서는 當部調査의 성과를 현 단계에 있어서 최선의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鮮人측의 6천 수백 명 또는 8천 수백 명 등과의 망언에 대해서는 특히 명확한 근거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하 생략>》는 완전한 조작이므로 책임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에 대해 「내선일체(內鮮一體),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외치며 “동원”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인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다. 그러다가 패전 뒤에 일본군(일본인전쟁피해자)에게는 일반연금과 장애연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재일조선인전쟁피해자에게는 「일본 국적이 아니다」는 이유로 연금지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본 정부는 2차대전과 태평양전쟁이 남긴 조선인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일본은 폭파 침몰 자체의 잘못 외에도 사건은폐, 사체 유기라는 중대한 잘못이 있다. 70년여 동안 피해자를 기만한 잘못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
⑥ 우리국민의 유해를 봉환해야 한다.
  
▲ 우키시마호를 삼킨 바다는 말이 없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금도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시 인근 바다 마이즈루만에는 우리국민의 유해가 《수중표류(水中漂流), 해저매몰(海底埋沒), 선실적체(船室積滯), 집단매립(集團埋立), 유기방치(遺棄放置)》된 상태이다. 한국 정부만이 발굴하여 수습할 수 있는 《유해봉환(遺骸奉還)》을 언제 하려는지?
9백 년 전에 서해 항로를 따라 개성으로 가던 조공선이 태안 앞바다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하면서 가라앉은 밥그릇과 접시는 잘도 건지는데, 일제의 전쟁터로 강제연행 당해 죽을 고생을 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던 도중에 일본군들의 집단학살만행으로 돌아가신 우리국민의 유해는 건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세월이 9백년쯤 지나야 가능할 일인가 보다.
그 날이 1945년 8월 25일이었다. 아내와 두 딸을 잃은 장종식씨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이즈루만 바닷가로 가족을 찾아 나섰다. 살아남기를 바람이 간절했지만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나갔으나 찾지 못했다. 시신은 온통 검은 중유로 덮였고 얼굴과 온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해변에는 시체가 겹겹이 쌓였고 바위틈이나 돌 틈에도 끼어 있었다.
해군은 아니었고 공무원인 듯한 일본인들이 시신을 굴비 엮듯 밧줄로 엮어 끌고 다니다가 말뚝에 매놓았다. 그리고는 트럭에 실어 타이라해병단 뒷산 골짜기로 옮겨 기름을 붓고 태워 그 자리에 묻었다. 유골함에 담는다거나 보자기로 싸서 따로 보관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이는대로 고구마 밭에도 묻고 무인도 동굴에도 넣었다.
해저에 9년 동안 방치한 우키시마호를 인양하면서 건져낸 유해는 화장하여 9년 전에 발표한 사망자 수에 맞춰 나눠 담았다. 이를 분골이라 한다. 이 분골의 일부가 아직도 도쿄 우천사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조상의 뼈라고 소중하게 할 이는 아무도 없다. 마이즈루만 해저 갯벌 속에는 아직도 유해가 가득하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나 정부기관으로 된 피해자재단에서는 우천사에 가서 추모식을 하잔다. 이에 경남 거창에 거주하는 유족 한영용씨는 “마이즈루만 해저에도 팽개쳐 있고, 해병단 뒷산 골짜기에도 묻혀있고, 무인도에도 있을 것이고, 고구만 밭에도 묻혀있고, 우천사 납골당에는 몽땅 합쳐 태운 것을 나눠 담은 것인데 내 어찌 거기에 절을 하겠는가!”고 항변했다.
  
▲ 2016년 8월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상 제막식 및 합동추모제’ 대표단이 우키시마호 침몰 현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2016년 8월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합동 추모행사에 참가한 양대노총 대표단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국민의 유해가 무주고혼으로 구천을 헤매는 것은 비단 우키시마호폭침 희생자(수장학살) 뿐만이 아니다. 일제 항복 이후의 학살만 치더라도 사할린 가미시스카 경찰서 학살(화염학살)과 미즈호 학살(냉동학살)을 자행했고 제주도 땅굴진지 공사장에 투입되었던 옥매광산 광부들도 귀향하는 도중에 청산도 앞바다에서 수장학살 당했다. 남태평양과 사할린에는 더 많은 유해가 구천을 헤매고 있으며 탄광, 채석장, 철도공사장, 지하군수공장, 비행장 등지에서 죽어간 우리국민의 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이 지면을 통해서 한국 정부에 말한다. 제발 이제는 질질 끌지 말고 마무리 짓자.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의 대일투쟁이 얼마나 간고한가 말이다. 일제침략피해문제 즉 대일청구권문제 해결이야말로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투쟁해 온 비영리민간단체는 또 얼마인가.
1945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권이 식민역사, 식민문화, 식민법제, 식민정치, 식민경제, 식민잔재, 미국의 패권과 일본의 군국·제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모두 정치권의 잘못과 정치인의 역사인식 부재였다. 너무 긴 세월이 흘렀다. 민족반역자·친일파·일제동조파·친일동조파·일제침략동조파를 처단하지 못한 자멸현상이다.
이제라도 태평양전쟁 피해자(사망자·실종자·부상자·생존자 유족회) 5백만 유족이 하나로 뭉쳐 역사정의(歷史正義)가 정치권을 능가해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 가능하고 민족번영과 동양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