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소위원회의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거대 양당이 이 법의 필요성을 말로만 외치다가 입법절차를 시작하려니까 무서워서 피해버린 꼴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중시키거나 이윤 추구를 불편하게 하는 일의 두려움은 한국사회에 토착된 풍토병이다.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 과정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먹여 살린다’는 이 설화는 이윤과 임금의 관계를 설명하는 경제이론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위에 군림하고 있다.
‘먹여살리는 자’는 ‘감옥에 못 간다’ 소리치고 정치는 이 고함에 화답한다 징역·벌금…껍데기뿐인 법 무엇이 ‘과잉처벌’인가
이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주체성을 부정해서 자본에 복속시키고, 국가의 행정력과 선출된 정치력을 무력화시키고, 더 잘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내세워 희생자들을 ‘소수자’로 몰아붙이고, ‘먹여 살리는 자’가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저지르는 온갖 탈규범적 행태들을 정당화해왔다. 이것은 다수가 신봉하는 미신이다. 밥벌이하다가 죽는 죽음과 불구가 되는 사고를 줄이려는 많은 노력들은 이 미신 앞에서 좌절되었고, 좌절을 거듭할 때마다 미신은 더욱 번창했다.
이번 입법절차의 발단에서부터 정치권은 사용자 단체의 논리를 수긍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중대재해의 형사적 책임을 물어서 기업총수에게 실형을 언도하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이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어 있다. ‘7년 이하’라니까 당연히 ‘7년 이상’은 없을 테지만 ‘7년 이상’뿐 아니라 7개월도 7일도 언도한 적이 거의 없고, 벌금은 ‘1억원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체로 500만원 정도였다. 법은 껍데기뿐이었다(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피고인 1065명 중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받은 사람은 21명으로 전체의 2% 정도이고 평균 형량은 9.3개월이다. KBS 2020년 12월6일 보도).
이러니, 중대재해의 기업주 처벌이 과잉처벌이라는 말은 무엇이 ‘과잉’인지 아무런 비교기준이 없다. 이 말은 ‘감옥에 못 간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먹여 살려주는 자’의 무서운 고함이다. ‘감옥에 못 보낸다’는 정치의 메아리가 이 고함에 화답하고 있다.
‘감옥에 못 가는’ 또 하나의 논리는 노동의 최하위 현장에서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최상부의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올려서 밀어붙일 법리적 연결고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CEO는 사고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먹여 살려주는 자’의 논리다. 노동자가 몸으로 당면하는 현장이 최하이고, CEO의 위상이 최상이라는 인식이 이 논리의 기본틀이다. 법은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아랫부분에서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 물러간다. 물러가면서 이 물러감을 다시 논리화한다. 논리 안에 정의는 없고 말의 형식만이 존재한다. 말의 형식이 결국 법제를 이루는데, 국회는 이 위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동자들은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부딪히고 깨진다
내가 이 답답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식인·분석가·활동가들이 TV에 나와서 이 문제로 특집좌담을 하는 동안에도, 국회에서 권력의 지분을 놓고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고층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2020.12.8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동안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24개나 되는데도 부동산값 상승률 역대 정부 최고, 풍선효과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매매가격과 임대가격이 동시에 폭등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 와중에 변창흠 LH공사 사장이 새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도무지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중책을 맡게 됐으니 변 후보자의 마음은 기쁘기보다는 착잡할 것 같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 국토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3년 반을 지내왔으니 지금 와서 가던 길을 돌이켜 되돌아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새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실패한 정책이 초래할 피해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라도 제대로 해내려면, 이미 시행된 정책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시행된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에 대해 평가한 후, 새 장관이 펼쳐야 할 정책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변창흠 장관 후보자는 오랫동안 한국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온 부동산 시장만능주의나 가격규제 만능주의에 물들지 않은 흔치 않은 부동산 전문가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살아온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경제학 훈련을 받았기에, 대증요법이나 규제정책의 부작용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좋을 때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됐더라면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요즘처럼 '험악한' 상황에 그리 됐으니 보는 마음이 참 안쓰럽다. 나는 현 정부 들어서 적지 않은 개혁적 지식인들이 정권에 참여해 정책성과를 내기는커녕 자신의 개혁적 정체성마저 상실하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 글은 변 후보자마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고언이다.
변창흠 후보자도 내심 동의하리라 생각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는 바로 잡을 생각 없이 윗단추들도 계속 끼워왔다. 작금의 낭패스러운 상황은 그 정책 오류가 유발한 불가피한 결과다. 충언역이(忠言逆耳)이나 이어행(利於行)(바른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는 이롭다)이라고 하셨던 공자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몇 가지 냉정한 평가를 하고자 하니, 부디 변 후보자가 유념해주기를 바란다.
부동산 투기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질곡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하여 대수술이 필요한 상태에 도달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정권 초기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용으로 하는 '세 바퀴 경제정책'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 세 가지의 발목을 잡는 것이 부동산 불로소득임을 깨닫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란 거대한 괴물과도 같은 존재임에도 그것을 제압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니 올바른 정책 철학 아래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투기를 근절할 개혁 정책을 마련할 리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저 단기 시장조절 정책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하면서 거기에 약간의 주거복지 정책을 덧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가 근본대책 대신에 마련한 것은 '핀셋증세'와 '핀셋규제' 그리고 사후약방문식 대책이었다. 부동산 불로소득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토지보유세 강화다. 이 정책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서 가격도 안정시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고, 부동산 보유비용을 높여 투기 유인을 억제하므로 선제적 대응의 효과가 크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2018년 4월 서울의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보유세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빗발치자 민간 위원이 다수인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서 보유세 개편문제를 논의하도록 했다. 같은 해 7월 이 위원회에서 발표한 최종 권고안은 종합부동산세의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연간 5%씩 높이고 세율을 약간씩 인상해 과세를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세수 증가 효과가 작아서 '찔끔증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이 권고안조차 무시하고 그보다 세수 증가 효과가 작은 정부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쉽게 끌 수 있는 투기 불길을 방치하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주지하듯이 그 후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종합부동산세는 그 후에도 세 차례 찔끔찔끔 강화됐다.
문재인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강화는 3주택 이상 소유자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소유자에 한정되었다. 2주택 이하 소유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세율 인상이 있었을 뿐이다. 토지에 대해서는 나대지 등에 부과하는 종합합산 토지의 세율을 찔끔 인상했을 뿐, 빌딩 부속 토지 등에 부과하는 별도합산 토지의 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와 똑같이 그대로 두었다. 게다가 지방 보유세인 재산세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2020년 7.10대책을 발표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6%로 인상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에 해당하는 대상자는 극소수였다.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정책은 '핀셋 증세', '찔끔 증세'의 전형이었다.
언론에 의해 '세금폭탄론'이 시중에 확산되면서 실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똘똘한 한 채' 소유자나 토지·빌딩 소유자의 보유세 부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시종일관 부동산 부자를 배려한 셈이다. 2020년 11월 3일에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서 자연스럽게 보유세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지만, 1주택자 재산세 감면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시장 상황이나 정권의 소재에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할 보유세 강화 정책을 단기 시장조절용으로 활용했다는 점도 문제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할 경우 이번에 강화한 종합부동산세를 다시 완화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심각한 점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배경에 '1주택자는 실수요자,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작금의 투기열풍이 다주택을 보유한 일부 투기꾼들의 탐욕스러운 행동 때문에 발생했으므로, 이들에게 중과세와 규제라는 '벌칙'을 부과하면 열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부분적 진리만을 담은 이 프레임 때문에, '부동산보유세는 벌금이요, 1주택자에게는 투기적 동기가 없다'는 오해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 물론 소수의 민첩한 투기꾼들이 투기열풍을 선도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다수 국민이 그들을 따라 투기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1주택자도 얼마든지 투기적 동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보유세는 투기행위를 징벌하기 위해 부과하는 벌금이 아니다. 사유재산이지만 국민의 공공재산이라는 성질도 갖는 토지를 보유하면서 그로부터 편익과 소득을 얻는 데 대해 대가를 징수하는 것이 보유세다. 물론 이 세금을 강화하면 조세의 자본화 효과로 인해 부동산가격이 하락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부동산보유자가 부담하는 보유비용이 늘어나므로 사람들은 공연히 불필요한 부동산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부동산보유세는 이런 효과를 유발해 결과적으로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기는 하지만, 투기꾼을 타깃으로 부과하는 벌금이 아니다.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일정한 혜택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 가운데 1채를 가진 사람들만 골라내서, 대가 납부라는 공적 의무를 면제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동시에 부동산 투기를 자극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두 가지가 대표적인데 하나는 연간 10조 원, 총 50조 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등록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 투기꾼에게 꽃길을 깔아준 것이다.
특히 임대주택의 실태를 파악하고 임대료 상승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등록 임대사업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한 것은 치명적인 오류다. 이 제도는 문재인 정부 투기대책에 거대한 루프홀(구멍, loophole)로 작용했다. 사실 임대주택 등록제를 처음 도입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이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8년 이상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혜택을 한층 확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17년 12월 13일 발표된 '집주인과 세입자가 상생하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에 오롯이 담겼다. 임대주택 등록 시 취득세·재산세와 임대소득세를 감면하고, 양도소득세 감면을 확대하며, 임대소득세 정상과세에 따른 건강보험료 인상분을 대폭 감면한다는 내용이었다.
임대주택 등록제가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문재인 정부는 등록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혜택을 줄이는 조치를 발표했다. 2018년 9.13대책을 발표해 조정대상지역에서 신규로 등록하는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세제 혜택을 줄이겠다고 했고, 2020년 7.10대책에서는 4년 임대와 8년 아파트 장기임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기등록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진 과도한 특혜다. 약 160만 호에 달하는 기등록 임대주택은 기간 만료 때까지 기존의 혜택이 유지된다. 그러니 이미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들이 투기 목적으로 보유한 주택을 내놓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집값을 더 끌어올릴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정책
문재인 정부는 공급확대 정책을 시장안정의 주요수단으로 삼았다. 2018년 9.13대책에서 수도권 내 교통여건이 좋고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공공택지 30곳을 개발하여 3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이 방침에 따라 2018년 12월 19일과 2019년 5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5곳(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을 포함하여 총 86곳에 택지를 개발해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2020년 8.4대책에서는 기존 공급 목표에 13만 2천 호를 더해 2028년까지 수도권 지역에서 총 127만 호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틀림없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 작용으로 결정되고, 가격 상승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생긴다는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고 가격 폭등 문제를 공급 확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급부족론 내지 공급확대론은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자 등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활용해온 단골 메뉴다. 물론 일반상품은 가격 상승 시에 공급을 확대하면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이런 원리를 적용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첫째, 일반상품과는 다르게 부동산 수요에는 투기적 가수요가 더해질 수 있다. 투기적 가수요는 실수요와 달리 단기간에 크게 팽창할 수도 있고 삽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미래 집값에 대한 예상이 투기적 가수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래 집값에 대한 예상이 낙관적으로 바뀌면 투기적 가수요는 급팽창하고, 반대로 비관적으로 바뀌면 급속하게 줄어든다. 이처럼 변동성이 큰 수요에 공급을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한때 크게 팽창한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렸다가는 나중에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둘째, 투기국면에서는 공급확대 정책이 오히려 새로운 투기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공급확대 정책의 발표 자체가 시장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개발 호재를 던져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투기와 주택투기가 일어나기 쉽다. 수요-공급 이론을 적용해서 설명하자면, 정부는 공급곡선을 바깥쪽으로 이동시켜 가격을 안정시키려 하지만 수요곡선이 원래 자리에 머물지 않고 바깥쪽으로 크게 이동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격이 내려갈지 올라갈지 알 수가 없다.
셋째, 주택의 공급곡선이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공급확대 방침을 발표하더라도 실제 공급이 이뤄지는 데는 3~5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공급곡선은 바깥쪽으로 거의 이동할 수가 없다. 앞에서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하면 투기가 발생하여 수요곡선이 바깥쪽으로 크게 이동한다고 했다. 이처럼 수요곡선은 바깥쪽으로 크게 이동하고 공급곡선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주택가격은 하락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한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내재한다. 우선, 이 방안에 도심 내 군 부지와 공공기관의 이전·유휴 부지를 신규택지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택공급을 증가시키겠지만, 어떻게든 지켜나가야 할 국공유지를 소멸시킨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 국공유지 비율은 30%로 싱가포르(81%), 대만(69%), 미국(50%)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고, 대부분이 공원이나 도로 등 경제적 이용의 여지가 작은 토지들이다.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토지비축 제도를 활용해 국공유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유지를 민간에게서 강제수용해 조성하는 공공택지도 가능하면 민간 건설업자에게 분양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2020년 8.4대책에서 정부는 군 부지나 공공기관 부지를 활용하여 건설할 주택 중 분양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 밝히지 않았으나, 분양주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도심의 국공유지에 주택을 지어서 민간에게 팔아넘긴다니, 과연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내린 결정인지 의심스럽다. 정히 이 정책을 추진하고 싶다면, 토지의 국공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주택 위주로 공급하는 것이 옳다.
설사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주택 위주로 수도권 주택공급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자본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되어버린 수도권에 주택투자가 더 집중된다면, 지역 간 불균형은 더 심해지고 지방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까지 재가동하겠다는 정부·여당이 이처럼 수도권 비대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토건국가다. 전체 산업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크고, '토건족'이 경제정책과 부동산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까지 토건족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때는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을,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 때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며 이익을 챙겨왔다.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도 외형상 주택가격 안정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토건족의 이해관계를 챙기는 성격이 강하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완수해야 할 단기 과제
이상의 평가를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를 옥죄는 최대 질곡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것을 해결할 근본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할 수 있는 정책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이 정책 전략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바 있는데, 아마 변창흠 후보자도 그 내용은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길어야 1년 5개월밖에 일할 수 없는 변창흠 장관 후보자 입장으로는 나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난감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장관 재임 중 할 수 있는 간단한 일 몇 가지만 제안하고자 하는데, 변 후보자가 이것만이라도 완수해주기를 바란다.
▲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토부 장관에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내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4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2020.12.4
첫째,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주고 매물을 잠기게 만든 임대주택 등록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바란다. 다주택을 소유한 임대주택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혜택을 감축하라는 말이다. 당장 혜택을 없애면 혼란이 초래될 터이니 시한을 정해 혜택을 줄여서 다주택자들이 보유주택을 매각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는 단기간에 주택 매물을 증가시켜 투기 열풍을 잠재울 비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7.10대책에서 제도의 일부를 폐지하기로 했으나 약 160만 호에 달하는 기등록 임대사업자가 누리는 혜택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게다가 제도 폐지 결정이 아파트에만 해당하고 빌라나 다세대 주택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쪽 방면에서 투기가 발생하는 것을 방치했다.
둘째, '핀셋규제'니 '추가대책 마련'이니 하는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기 바란다. 이런 말들은 정책의 공표효과를 저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정책 가운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내용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난 11월 3일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이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만 하면, 보유세 과표 산정의 형평성을 실현하면서 보유세를 보편적으로 강화해 갈 수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투기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부동산 시장은 빠르게 안정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부동산정책의 공표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동결 효과를 유발하는 양도소득세 중과 정책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 양도소득세 완화 정책은 홀로 추진할 경우 불로소득을 허용해서 투기를 자극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지만, 보유세 강화와 패키지로 묶어서 추진할 때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다주택자로 하여금 보유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만드는 데 이보다 좋은 정책은 없다. 또 7.10대책에서는 취득세도 대폭 강화했는데 이렇게 모든 부동산세를 강화하는 것은 변칙이다. 이는 빨리 원래대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넷째, 금융규제의 범위에 금융기관 대출뿐만 아니라 전세금까지 포함해야 한다. 전세금에는 임대료의 의미도 들어 있지만,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사금융의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전세금이 금융규제의 대상에 포함되면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성행한 갭투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사실 보유세 강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할 경우, 이런 내용을 갖춘 금융규제가 단기 시장조절의 주요수단이 될 것이다. 그래서 향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여 부양이 필요해 보일 때는 즉시 금융규제 완화로 대처할 수 있다. 다만 금융규제의 틀을 개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는 원칙 정도를 밝히고 장기 과제로 넘기더라도 상관은 없다.
사족 : 진정한 시장주의자
국민의힘과 수구 언론은 강한 경로 의존성 아래에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헨리 조지를 들먹이고 토지사회주의를 운운하며 변 후보자와 그의 주변을 공격하니 말이다. 외국 학계에서는 자유지상주의 계열로 분류되는 헨리 조지가 한국에서는 좌파의 두목쯤으로 여겨지는 현실은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명토 박아 둔다. 헨리 조지는 물론이고 변창흠 교수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숭상'하는 시장주의자다. 이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반대하는 유일한 요소는 부동산이나 특권에 의존해 얻는 불로소득이다.
곽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20.12.09. 17:32:59 최종수정 2020.12.09. 21:09:28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해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여당이 강행처리를 밀어붙이면서 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하며 이에 맞섰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수처법 등 3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진행했고 해당 법안은 9일 중 처리가 불가능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가 자동 종료된디는 점을 이용, 10일 소집을 요구한 임시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가결시킬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대북전단 규제법 △국정원법 등 3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최종 신청하고, 밤 9시부터 이를 진행했다. 국민의힘은 당초 △5.18 왜곡처벌법 △사회적참사특별법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 신청안을 냈으나 본회의 도중 "양당 협의 끝에 3가지(법안에 대해서만) 진행키로 했다"고 배현진 원내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필리버스터 신청이 철회된 법안 2개는 앞서 진행된 본회의에서 바로 가결됐다.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은 그러나 문언대로 '무제한' 이어지지는 못할 전망이다. 올해 정기국회 회기는 9일 자정까지이고, 국회법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법106조의2 8항)"고 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패스트트랙을 통해 현행 공직선거법·공수처법이 통과될 때도 여당은 이런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한 바 있다. 여당에서도 필리버스터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오늘 자정에 저절로 끝나니 따로 조치할 게 없다", "9일은 필리버스터로 시간을 다 보낼 것 같고, 10일 정도에 표결이 가능하지 않을까"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앞서 민주당은 전날 법사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립 표결로 처리한 데 이어, 같은날 오후부터 이날 새벽에 걸쳐 국정원법·경찰청법·상법·5.18왜곡처벌법(법사위),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사회적참사특별법(정무위), 노동조합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징수법(환노위) 등을 모두 일방 처리했다. 여야 간 합의 처리가 이뤄진 곳은 국방위(5.18진상조사특별법) 정도였다.
특히 전날 밤 정무위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야당으로부터 "입법 사기"(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민주당은 정무위 안건조정위원회에 참여한 정의당을 설득하기 위해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를 약속해 놓고는, 전체회의에서는 재계 반발을 고려해 이 부분을 삭제한 수정안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내어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필리버스터가 시작되기 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됐을 때, 반대 토론에 나선 것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정의당 소속 배진교 의원이었다.
정무위 안건조정위원이었던 배 의원은 토론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 스스로 역할 한계를 인정하고 당사자들에게 고발권을 되돌려주는 안"이라며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민주당이 기억상실증인지, 청와대의 특별 지시가 있었는지, '친(親)재벌당' 본색을 드러낸 것인지 해명해야 한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배 의원은 또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에서 전속고발권 폐지안을 통과시켜 놓고도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이를 뒤집은 데 대해 "이렇게 할 거면 안건조정위나 소위원회의 심사 권한이 무슨 권한이 있느냐. 최소한의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하고는 "내용적·절차적 공정성과 정당성이 훼손된 이번 안에 동료 의원들이 반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진 공정거래법 개정안 표결 결과는 재석 257인에 찬성 142명, 반대 71명, 기권 44명, 가결이었다. 재석 과반(129명)을 10여 표 넘긴 비교적 아슬아슬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가결은 됐지만, 민주당 의석 수(174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찬성표가 나온 셈이다.
정의당 의원 전원은 물론, 국민의힘 등 보수 성향 의원들도 정의당과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였지만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에서도 우상호 의원이 반대 투표를 해 눈길을 끌었고, 박용진·진성준·한준호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도 기권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은 당일 새벽에 있었던 '법안 뒤집기' 사태에 대해 이날 본회의 안건상정 전 이례적으로 빠른 대응 논평을 내어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은 경제민주화를 저버리고 재벌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법안들"이라며 "본회의에서 반드시 수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무위에 그쳤다.
공정거래법과 마찬가지로 '개혁 후퇴'라는 비난이 일었던 상법 개정안은 이날 본회의 처음 순서에서 일찌감치 통과됐다.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조정훈 의원이 나서서 "국회는 재벌 앞에 왜 이렇게 무력한가"라며 기업 감사위원 임명시 대주주(연결주주) 의결권 제한이 '합산 3%'에서 '개별 3%'로 변경되는 등 법안심의 과정에서 원안보다 내용이 후퇴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조 의원과 정의당 의원들이 반대 표결을 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등 보수진영의 반대 이유는 정의당·시대전환과는 정반대로 '지나친 규제로 기업을 옥죈다'는 것이었다. 상법 개정안 표결 결과는 재석 275인 중 찬성 154명, 반대 86명, 기권 35명이었다. 이 역시 찬성표가 민주당 의석 수에 미치지 못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상법·공정거래법 등 '공정경제 3법'을 포함한 법안들이 다수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무쟁점 법안은 필리버스터 실시 이전에 먼저 통과시키자'는 여야의 신사협정 덕분이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회의 모두에 "주호영 의원 등 102인(국민의힘)으로부터 무제한 토론 요구서가 제출된 안건은 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해 상정을 잠시 보류하고, 무제한 토론 요구서가 제출되지 않은 다른 안건부터 먼저 상정해 심의·의결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이날 본회의 상정 안건 131건 가운데 필리버스터 대상 안건과 여야 추가 협의가 필요한 안건 등을 제외하고 약 100여 건의 법안·결의안·비준동의안 등을 통과시켰다. 김기현 의원부터 시작된 야당의 '무제한' 토론은 다른 안건들의 처리가 모두 마무리된 후, 밤 9시 정각이 돼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순특별법 공동발의자중 한명인 서동용 의원을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특별법 추진 현황와 의미, 전망에 대해 들었다. [사진-조천현]
72년전인 1948년 10월 19일 새벽.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그날 밤 무장을 한 채 뛰쳐나와 20일부터 여수와 순천, 광양·구례·곡성·벌교·보성·고흥을 차례로 장악했다. 이들은 일주일만인 27일 토벌군에 의해 완전 진압되었다.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이다.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그들을 잡기 위해 군경은 산간마을을 이 잡듯이 뒤졌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1955년 4월까지 여순지역을 비롯해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대구 일부 지역에서 무력충돌과 진압이 이어졌다.
다수의 민간인이 이 과정에 희생당했다.
제14연대의 진압을 위해 계엄법이 없는 상태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해 12월 1일에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한반도 남쪽에는 확고한 반공국가가 틀을 갖춰가게 되었다.
국군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반란'의 멍에가 들씌워졌지만 여순사건의 핵심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진실이 지금 힘을 얻고 있다.
지난 7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앞서 지난 7월 28일 전남 동부지역 5개 지역구 의원인 소병철(순천·광양·곡성·구례갑)·서동용(순천·광양·곡성·구례 을)·주철현(여수 갑)·김승남(고흥·보성·장흥·강진)·김회재(여수 을) 의원을 비롯한 152명의 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한데다 야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는 기류여서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대 국회부터 18, 19, 20대 국회에서도 특별법은 계속 발의되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됐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입법공청회까지 거치는 등 절차도 순조롭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올해 정기국회가 9일 마무리되었고 내년 1월 10일까지 임시국회가 소집되어 있으나 여야 공방이 첨예한 상황에서 여순특별법 제정은 내년도 다음 회기로 넘어갈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 공동발의자중 한명인 서동용 국회의원을 공청회 이튿날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특별법 추진 현황과 의미,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 의원은 자신이 여순사건의 피해 가족이기도 하고 올해 초 민간인 희생자인 장환봉(당시 29·순천역 철도원)씨의 재심 변론을 맡아 72년만에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여순특별법 입법공청회 거치며 기대감 커져
서 의원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 통일뉴스 : 어제(12월 7일)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그 의미와 주요 내용에 대해 소개해 달라.
■ 서동용 국회의원 : 법을 제정할 때는 입법공청회를 거치도록 법에 나와 있다. 상임위 내에서 법안을 전담하는 소위를 두고 또 결산을 담당하는 소위도 두는데, 상임위 의결로 법안소위 차원에서 공청회를 할 수도 있고 전체 공청회를 할 수도 있다. 어제는 상임위 차원에서 전체 공청회를 한 것이다.
여순사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향토사학자인 주철희 박사와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최현주 소장 두 분이 나와 각 10분씩 진술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질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 법안을 공공발의한 소병철, 서동용, 김회재 등 세명의 국회의원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맨 마지막에 발언기회를 주어서 한마디씩 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정의당 이은주의원이 참가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사위 앞에서 농성하느라고 한명도 없었다.
전체적으로는 진술자들도 그렇지만 국회의원들도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을 했고, 왜 이 법이 이렇게 늦게 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이 문제를 특별법이 아니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기본법'(진화위법)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의사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철희 박사가 그러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을 했다.
제정 법의 경우 소위 의결로 공청회를 건너 뛸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다들 거치는 절차이다. 어제 공청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입법과 관련한 외부적 절차는 다 밟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구체적으로 조문을 들여다보는 '축조심사'를 하고, 국회의원들과 행정안전부가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뒤, 법안소위에서 원안 그대로 또는 수정안으로 통과시키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 다음 행안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본 회의에서 채택하면 법안이 만들어지게 된다.
□ 법 제정을 위해서는 행안위 법안소위 통과와 법제사법위원회 및 본 회의를 거치게 되는 데, 152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찬성의견을 낸 상황이어서 어느때보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높다. 특별법 제정 전망은?
■ 어제 입법공청회는 꼭 해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고 또 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외적 절차는 다 거친 것이다.
다른 법률의 경우 상임위 공청회를 마쳐놓고도 안된 경우들도 있다. 지금은 공청회를 안하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데, 그 절차를 마쳤고 국회 행안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이 법의 통과에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법 통과는 충분히, 많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약간의 우려가 있는 것은 8~9일 사이에 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간 극한 갈등과 국회 공전과 같은 외적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여순사건은 발발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여순반란사건이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이것을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로 아직 남아 있다.
혹시라도 이념대립의 양상이 벌어지면 이 법이 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럽다. 정말 유리구슬을 옮기듯이, 아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나 하나 풀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여순사건의 본질은 무엇인지, 여순사건을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나.
■ 그동안 제14연대 군인들의 소위 '반란', 그 봉기가 남로당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지역에서도 '반란사건'이라는 표현이 끊이지 않았던 측면이 있는데, 주철희 박사가 어제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백선엽 회고록에도 여순사건은 남로당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기록이 있고 처음부터 그런 의견이 많았었는데, 1967년에 처음으로 남로당 연관설이 나온 후 마치 그것이 정설인양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가짜가 진짜를 뒤덮어 버린 사례인 셈이다.
이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저로서도 여순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배우게 됐다.
가슴 아픈 일인데, 여순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저를 포함해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나서지 마라', '남앞에 서지 마라'는 이야기를 늘상 들으면서 커왔다.
1949년 전라남도 통계로 1만 1,1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통계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례들도 반영이 안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내가 들어 알고 있는 광양의 집단학살 사례만 해도 50~60명씩 끌어다 놓고 총살해 버린 경우가 여러 건 있다.
어제 주철희 박사는 1만5,000명~2만5,000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더라. 그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빨갱이, 반란군이었고 부역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아무 거리낌없던 세월이었기 때문에 그 자식의 인생이 어떻게 잘못될 지 몰라서 입다물고 숨기며 살았던 세월이 70년이었다.
육사 진학을 희망했던 제 친구도 아버지가 뚜렷한 설명없이 절대 안된다고 말리는 통에 꿈을 꺾었다가 최근에야 할아버지가 반란군으로 낙인찍혀 돌아가셨다는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얼마전 94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임종 직전에야 작은 아버지 한 분이 여순사건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해서 알게 된 사연도 있다. 이렇듯 여수·순천·광양 곳곳의 가정에는 진실을 숨기고 가슴속에 통한의 눈물을 안고 살아왔던 세월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런 세월에 대해 이제는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도 중요한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주철희 박사는 이 사건의 핵심은 국가권력기관인 군에서 촉발된 사건이며, 군의 잘못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왜 국가는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는지 △왜 그들이 이야기하는 반란군으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고 구하려고 하지 않고 반란군과 한편이라는 이유로 총을 쏘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높지만 이념의 덫에 넣어 해석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진-조천현]
□ 특별법이 제정되면 가장 먼저 할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이 사건과 관련해서 1949년 전라남도 통계에 1만1,173명의 희생자가 있다는 기록만 있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은 한편으론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은 살아계신 분들의 진술을 통해서 진실이 규명될 수 밖에 없는데, 72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치매가 온 경우 신빙성있는 진술을 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른 분들도 너무 많다.
조속히 특별법을 제정해서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시급하다.
□ 특별법 제정이 아니라 진화위법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진화위)를 거치지 않고 왜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의 명예회복만 놓고보면 거길 통해서 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건의 성격상 국가기관내에서 촉발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피해자 조사를 주로하는 다른 조사위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면들이 있다.
또 여순은 워낙 광범위한 사건인데 진화위 활동의 한 분야, 부분으로 다뤄지다 보니 지난 1기 진화위에서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서 충분한 조사가 되어야 한다는 개선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여러 사안 중의 하나로 처리하기에는 피해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전담해서 할 수 있는 위원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진화위법에 따라 구성된 1기 진화위가 제대로 홍보도 안된 상태에서 조사 신청도 미처 받지 못하고 부랴부랴 끝냈던 문제를 극복하고 폭넓은 진상규명을 하자면 조사위원회 직권으로 여수·순천·광양·구례·고흥·보성 등 6개 시·군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진술을 듣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또 다른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화위의 한 부문으로서 조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4.3이 있었기 때문에 여순이 있었고 여순은 4.3의 결과라는 점에서 개별 민간인 희생사건이 아닌 제주4.3, 광주5.18과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여순사건이 갖는 의미, 그 지위에 걸맞는 법적 체계를 갖추는 것도 국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일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4.3이 별도의 특별법을 통해서 '한국현대사를 여는 사건'이라는 규명을 얻은 것 처럼 여순도 당연히 별도의 특별법을 통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많기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지난 7일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입법청문회가 처음으로 열려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진제공-서동용 의원실]
□ 특별법 제정에 대한 야당쪽 태도나 반응은 어떤가.
■ 현재로서는 특별히 반대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이미 1기 진화위를 구성하는데도 동의를 했고 또 제주 4.3특별법이 있기 때문에 단지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하는, 즉 배상과 보상규정을 포함하지 않는 여순법에 대해서 특별히 반대하는 기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만약 이념적인 문제가 정국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기제로 작동하는 시점이 오면 그걸 이유로 해서 여순법을 문제삼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긴 하다.
□ 현재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 특별법 제정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은 없어보이지만 이념적 갈등으로 표면화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나.
■ 앞으로 혹시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왜 진화위로 가지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갈등 또는 문제였는데, 거기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웬만한 문제들은 다 해소되어 있다.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고 지금 여야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이유는 배·보상 규정을 두자는 것과 관련된 것인데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주 4.3이나 여순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민간인 희생자가 확인되면 보상을 해 주긴 하는데 그 보상을 재판을 통해서 받아야 한다. 지급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으로 지급규정을 두면 국가가 조사를 해서 직접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어서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훨씬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런데 지금 국가폭력에 대한 배·보상 규정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정도 밖에 없다.
거창양민학살사건과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제주4.3 모두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배·보상 규정은 없다.
정부에서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산 문제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기준을 적용하면 전체적으로 최저 4조5천억원에서 최대 8조5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드는데, 어느 하나 물꼬가 터지만 모두 다 들어올 것이라는 것 때문에 꺼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더라도 끝까지 계속 무시하면서 보상하지 않고 가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두고 두고 계속 제기될 문제를 마냥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선도적으로 나서서 풀되, 재정이 문제가 된다면 분할지급을 한다든지, 지급 대상을 한정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 행정안전부는 특별법이라는 개별입법보다는 '진화위법'을 통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어떻게 보아야 하나?
■ 정부는 당초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일반법인 진화위법으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 피해자의 수 등에 비추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따르겠다는 것으로 선회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김태년 원내대표 주재하에 여순특별법을 발의한 소병철, 서동용 의원과 행안위 여당 간사인 함병도 의원, 그리고 행안부 차관과 담당 국장이 모여서 심도있게 토론을 거친 결과 행안부도 특별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이후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행안부 입장은 특별법 제정에 동의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다루는 특별법 중 여순사건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지 말해달라.
■ 한국전쟁 전후 시기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최초의 특별법이 만들어졌던 건 제주4.3 특별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거창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졌고 노근리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법을 비롯한 몇개의 법이 별도로 만들어졌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매번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일반법을 만들어서 포괄적으로 다뤄보자는 접근이 있어 '진화위법'을 만들었다. 진화위의 조사대상에 웬만한 사건은 다 포함되어 있었고 여순사건도 진화위 조사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순사건만 빠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사건의 성격, 피해자 규모 등에 비추어 특별법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순사건은 남아있는 유일한 특별법 대상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것들을 신원하고 풀어내야 비로소 공동체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 국회 입성 전인 지난 2019년 6월 서동용 변호사는 '스무살 도망자'가 불러낸 1948년 여순'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통해 70여년전 여순의 소용돌이에서 피해를 당한 아버지로부터 광주항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들로 이어지는 잔혹한 우리 현대사를 일깨운 바 있다. 국가와 시민들은 여순특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라는지 말해달라.
■ 만약에 국가의 주장대로 이 사건이 반란이었다면 국가는 나서서 반란군으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오히려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
설령 적국 소속일지라도 총을 들지 않은 양민에게는 총을 쏘지 않는다는 것이 전쟁터에서도 지켜야 할 약속인데,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제 나라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쏘아 죽였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국가가 그래서는 안되지 않나.
어제 여순항쟁유족연합회 회장인 이규종 선생이 그러더라. 구례에서 토벌대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고난 뒤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빼지 말고 다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엄청난 양민들이 학살당했다는 거다. 국가가 그런 짓을 했다.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저는 그게 광주에서 또 한번의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가족사에서 대을 이어 그런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동네에서 한 사람은 가해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피해자인 그런 집들도 굉장히 많다. 광양·순천·구례 같은 곳에 가면...
어젯밤에 반란군(?)이 쌀을 한되 얻어갔다고 해서 다음 날 들어온 군경은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았다. 평소에 미워했던 동네사람들을 향해 '손가락 총질'이 가해지고 바로 총으로 쏘아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세월인데 이런 것들을 신원하고 풀어내는 계기를 만들어야 비로소 공동체가 복원될 것이다.
이것이 개인과 개인사이에 벌어진 문제였다면 어떤 형태로든 풀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겠지만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국가가 나서서 풀지 않으면 해결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속에 더 큰 비극을 키워 온 것은 아닐까.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정금교 목사 등 500인 선언에 참가한 시민들은 오전 11시 대구지방고등검찰청 앞에서 ‘중단 없는 검찰개혁 대구·경북 시·도민 500인 선언’을 발표했다. 애초 목표였던 500인을 훌쩍 넘는 717명이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채형복 교수는 “법학자인 제가 검찰 개혁 지지 선언에 나선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사법정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지금 들불처럼 일어나는 검찰 개혁 목소리는 '윤석열 한 명' 쳐내자는 게 아니라, 공수처를 설치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내린 검찰 개혁이라는 헌법적 명령을 즉시 완수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검찰 개혁 법안이 통과된 지 벌써 1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여전히 공수처는 출범하지 못하고 있고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일부 검사들의 이른바 ‘항명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라며 “이 같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남용과 검찰 개혁 방해를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더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선언 이유를 밝혔다.
특히 “검찰 개혁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독점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찰 권한을 나눠 국민에게 검찰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라며 “그러나 통제받지 않은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검찰의 비위와 범죄를 다스릴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을 반대하는 검찰의 ‘항명소동’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 “검찰 개혁에 저항하고 각종 비위와 범죄로 얼룩진 검찰 인사들에 대해 엄중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라며 “정부와 여당은 촛불 국민혁명의 명령인 검찰 개혁을 끝까지 완수할 것”을 주문했다.
대구·경북 시·도민은 ‘1. 공수처 출범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의 조속히 마무리 2.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각종 비위와 범죄로 얼룩진 검찰 인사들에 대해 엄중 조치 3. 촛불국민혁명의 명령인 검찰개혁의 완수’ 등을 담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구·경북 500인 선언은 지난 12월 4일부터 8일 자정까지 SNS 등을 통해 선언 참여자를 모았다. (조석원 통신원)
아래는 선언문 전문이다.
--------------아래-------------------
중단 없는 검찰개혁으로 적폐 기득권을 청산하고,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을 완수하라!
검찰개혁 법안이 통과된 지 벌써 1년이 가까워 온다. 그러나 여전히 공수처는 출범하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일부 검사들의 이른바 '항명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남용과 검찰개혁 방해를 우리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더이상 간과할 수 없다.
검찰개혁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독점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찰권한을 나누어, 국민에게 검찰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통제받지 않은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검찰의 비위와 범죄를 다스릴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을 반대하는 검찰의 '항명소동'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기간,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극우정당, 보수언론, 수구지식인 집단은 끊임없이 검찰개혁에 흠집을 내고, 격렬히 반대해왔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의 적폐기득권에 균열을 내는 검찰개혁이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와 징계절차를 통해 우리 대구·경북 시·도민은 더욱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절실히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재판부 불법사찰과 정치적 중립위반 혐의는 국민들을 기망한 중대 범죄 혐의로 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위시한 검찰은 말로만 검찰개혁을 따른다고 하면서 뒤로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검찰개혁을 방해하고 최악의 집단이기주의로 국민들의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선별적인 수사와 기소로 편파적인 업무수행을 바로잡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비판받아온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단없이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오늘날 윤석열 총장과 일부 검사들의 검찰 개혁 방해 행위는 검찰이 뿌리에서부터 철저히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검찰 개혁을 바라는 우리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지난 검찰 개혁 촛불에 호응하여 대구와 경북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국민들의 준엄한 검찰개혁 요구를 외쳤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만들어진 국회의원 180석은 검찰 개혁을 완수하라는 준엄한 국민의 명령이었다. 우리 시·도민들은 엄청난 인내로 검찰개혁의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 이에 검찰개혁을 바라는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 출범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조속히 마무리 짓도록 중단없이 검찰개혁의 속도를 높여라!
2.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각종 비위와 범죄로 얼룩진 검찰 인사들에 대해 엄중 조치하라!
3. 촛불국민혁명의 명령인 검찰개혁을 끝까지 완수하라!
2020년 12월 9일
대구·경북 717인
◆ 광주 43개 시민사회단체 ‘검찰은 국민의 명령에 따르라’
광주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현 사태의 본질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개인적 충돌이 아니라 검찰 개혁이라는 시민의 준엄한 명령과 그에 저항하는 검찰 내 반개혁적 기득권 세력의 대결”이라면서 “노골적인 정치검찰의 행태를 보여 시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국민의 준엄한 요구인 검찰 개혁의 대의에 동참하라”라고 촉구했다.
사법부를 향해 “재판부 사찰을 비롯한 노골적인 정치검찰 행위에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분명한 입장과 대응책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정부, 여당에 “적폐 청산이 지지부진하고 있다. 이는 적폐기득권의 준동을 일으킬 뿐이다.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여 사회대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기득권을 두둔하고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부끄러운 작태를 중단하고 진실의 파수꾼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다하라”라고 꼬집었다.
이번 시국선언은 광주의 43개 시민·사회·교육·종교·문화예술 단체가 참여하였다. (김태현 통신원)
<시국선언 참여 단체>
전국교수노조 광주전남지부/동강대 교수협의회/광주전남 대학 민주동우회 협의회/광주대 민주동우회/동신대 민주동우회/전남대 민주동우회/조선대 민주동우회/호남대 민주동우회/(재)누리문화재단/광주전남 민주언론시민연합/4·19 문화원/광주전남 시민행동/호남 의열단/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사)한국민족극운동협회/(사)한국곰두리봉사회 전남지부/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NCC)/광주노회(예장통합)인권위원회/(사)인문연구원 동고송/시민플랫폼 나들/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광주전남기독교민주화운동동지회/광주전남 작가회의/함께하는 세상을 위한 가톨릭 사회교리 실천 모임/(사)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사단법인 광주전남6월항쟁/광산시민연대/5·18평화연구원/광주여성장애인 연대/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사) 5·18 유족회/사) 5·18부상자회/사)5·18구속부상자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범민련 광주전남연합/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1987합창단/우리문화연구회 풍물패 "두드림"/4·19풍물단/오월 민주여성회/광주전남교수연구자연합
◆ 부산 ‘검찰 개혁은 각 분야 개혁의 출발점’
부산의 시민사회 단체들은 오전 10시 30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단체들은 “검사들의 집단항명을 정치검찰들의 반개혁적 난동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검찰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4년 전 박근혜 탄핵 국회가결이 된 오늘 모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며 엄격하고 공정한 잣대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지금 검찰은 법 위에 군림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의 안위를 위해 남용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라며 “박근혜 탄핵 때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제 검찰개혁을 이번에는 반드시 완성할 것이다”라며 기자회견 취지를 밝혔다.
이정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정치적이었던 검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현 정부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 정치와 국민의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한순간도 정치적 중립을 지켰던 적 없는 검찰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끝까지 국민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현 사태를 진단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검찰은 수구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권력기관 개혁을 저지하며 지금과 같은 검찰공화국을 유지해왔다. 검찰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며 민주정부와 더불어 국민 앞에 검찰개혁을 약속한 것을 본 적이 없다”라며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호범 부산대학교 교수는 “검찰 개혁은 사법, 언론, 사학, 노동,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의 개혁을 위한 시발점”이라고 밝혔다, 계속해 그는 “우리는 검찰개혁의 선봉에 섰던 노무현 대통령을 당시 검찰이 겁박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을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촛불혁명을 만든 촛불시민이 있기 때문에 두고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검찰이 국민이 신뢰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개혁에 동참하라”라고 발언했다. (조윤영 통신원)